친구가 아기를 낳았다. 어제 낮 12시경. 12시간 진통 뒤에 자연 분만하였다고 한다. 친한 친구가 아이를 낳은 것은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에 (고향 친구 중엔 몇 있지만) 난 조금은 떨렸다.

오늘 퇴근 후에 친구와 아기를 보러 병원에 갔다. 근처 상점에서 아기 선물을 사려 했는데, 뭘 사야할지 모르겠다. 웬만한 출산 준비물은 거의 다 있을 것 같아 딸랑이 세트를 샀다. 딸랑이를 가지고 놀려면 백일은 지나야 한다니, 벌써 딸랑이를 준비해두진 않았을 것이다.

산모와 아기가 있는 방에 들어가니 부은 얼굴의 친구와 신생아 침대에 누워 있는 아기가 보인다. 앉아서 웃는 얼굴로 맞는 친구를 보니 우선 마음이 놓인다.

아기는 아기의 모습이었다. 세상 구경한지 서른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아기라 쭈글쭈글하고 빨간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기는 아기의 형상을 온전히 갖추고 있었다. 손가락도 열 개, 발가락도 열 개였으며 까만 머리카락도 참 많았다. 살짝 쌍커플 자리도 보였고 엄마를 닮아 이마가 동그랬다.

친구는 자기가 열심히 먹은 밥과 음식으로 아기의 머리카락, 손톱, 발톱에까지 양분을 공급했다는 것을 신기해했고 뿌듯해했다. 난 그런 친구에게 "아기가 최상품이야!"라며 노고를 치하했다.

친구는 아기를 낳는 그 순간에도 고통을 표출하기 보다는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소리를 지르는 게 아기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단 한마디의 비명도 지르지 않았고 이도 악물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 아기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힘을 주느라 친구의 목덜미와 등에 있는 실핏줄이 모두 터졌다. 아직도 얼룩덜룩한 고통의 흔적이 친구의 몸엔 남아 있었다.

딱 한번, 고통의 순간을 이기지 못하고 옆에 있던 신랑에게 너무 힘들다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눈물이 나려고 했다. (흑, 지금도 눈물이 난다. T.T) 그래봤자 그녀가 겪었던 고통의 크기를 난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강한 그녀가 얼마나 아팠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나라면 아마 본격적인 고통이 오기도 전에 겁에 질려 배를 째어달라고 애원을 했을 것 같다. 

아기는 엄마가 그렇게 힘들게 낳은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잠만 잤다. 울지도 않고 깨지도 않고 내리 잠을 자다가 가끔씩 눈을 떠 서비스로 여러 표정을 지어주곤 했다.

발바닥을 간지르고, 다리를 주물러도 만사 귀찮다는 듯 자는 아기를 겨우 깨워 수유를 하였다. 난 얼마 전 <섹스 & 시티>에서 미란다가 아기에게 수유하는 모습을 보고 캐리가 기겁을 했던 장면이 떠올라 잠시 긴장했다. 그녀의 몸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과연 친구의 가슴은 수유를 위한 엄마의 것이 되어 있었다. 오물오물 젖을 빠는 아기와 친구의 모습을 낯설었지만, 아름다웠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을 존속하게 한 본능의 만남이었을테니까.

집에 돌아오는 길,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전화를 하진 않았지만 엄마에게 꼭 묻고 싶었다. 날 낳을 때, 많이 아팠는지.. 얼마 전 엄마에게 친구 이야기를 하며, 그 친구 지금 얼마나 무서울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엄마의 대답은 이랬다. 첫째를 낳을 때는 둘째를 낳을 때만큼 무섭지는 않다고. 그건 아기 낳는 고통의 실체를 경험해 보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상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난 둘째로 태어났으니 출산의 고통 뿐만 아니라, 무지막지한 공포심까지 엄마에게 안겨준 셈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위대하고 세상의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흔해 빠진 그 말, 오늘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오늘부터 자신의 의지로 10kg 이상 다이어트에 성공한 인간들에 더하여(^^;) 생명을 만들고 세상에 내놓은 모든 이들을 존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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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5-15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니님, 힘들지만, 모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여성은 위대하고, 모든 생명 또한 위대한 것이겠죠. 친구의 예쁜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라겠습니다.
서니님도 작업이 얼른 성공해야 할텐데~^^

찌리릿 2004-05-1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낳는 고통, 보살피는 정성... 우리 자식들은 너무 쉽게 잊네요. 엄마~ 엄마~~

삼성카드 CF던가... 갓 출산한듯한 새댁이 "내 새끼가 새끼 낳았다고..."하는 멘트가 생각나네요.

sunnyside 2004-05-15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존경합니다~ 두 건이나 해내셨을 뿐만 아니라, 건강하고 이쁘게 키우시기까지. 전 은제쯤 진/우맘님 진도에 맞출 수 있을지.. ㅎㅎ;
찌리릿님, 맞습니다. 효도합시다. (엄마~ 엄마~~)

Smila 2004-05-15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그 친구가 출산했나보군요. 하지만, 출산은 고통보다 기쁨이 훨씬 더 큰 작업이니 너무 힘들꺼라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아팠던건 다 잊어버립니다~~

이럴서가 2004-05-1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누이가 조카 둘 낳은 모습 보면서 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시절 늘 학생운동하며 뛰어다닌 누나의 성정이 종종 강퍅하다 느낄 때가 있었는데, 아이 낳고 본능적인 여성성을 봤을 때의 자애로운 누이 얼굴은 얼마나 평안한 모습이었던지, 새삼 기억이 소롯합니다. 모든 어머니와 생명들에게 근원적으로 빚진 바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좀 더 성실해야겠다, 다짐해봅니다.

휴머니스트연 하다보니 어깨가 좀 뻐근하군요... 휴.

sunnyside 2004-05-15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mila님, 정말 그럴까요? 부디 그래야 할텐데요... Smila 님도 둘째 아기 건강히 순산하시길 바래요. 아직 좀 남았지만요. ^^;
맞아요. 조선남자님. 허투루 태어난 사람 하나 없는데.. 우리 모두는 좀더 귀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비로그인 2004-05-15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지글이네요..읽는 저도 울컥~ 그렇게 아플까요?? ^^

sooninara 2004-05-15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차이가 있죠..저도 아프긴 했는데..하늘이 노랗지는 않더군요...^^
물론 둘째때는 '이정도론 안나올텐데..더 아파야 할텐데..'하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더군요^^
옆에서 아무 고통없이 우아하게(?) 수술 준비하는 산모들이 부럽기도하고..그래도 금방 아이 낳고 나니..잘 걸어다니고..잘 먹고...자연분만이 최고죠..
수술하면 낳고나서 고생해요...참 둘재낳으면 훝배앓이도 더 심하게 아파요..ㅠ.ㅠ
부풀은 배가 수축하는데..두번째엔 더 부풀어서 강하게 수축하느라 더 아프다죠..
헤헤..아직 아이도 안생긴 처녀에게 겁을 너무 많이 주었나요?
그래도 아픈것은 잠깐이라우...참을만 혀요...죽진않으니깐..^^

ceylontea 2004-05-1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저는 정말 자연분만 하고 싶었답니다.. 12시간 진통끝에..의사선생님이 수술하시자고 하더군요.. 아기도 너무 힘들고 태변을 누었는데.. 더 이상 진행은 안되고..태변을 먹으면 아기에게 안좋다고.. 그 소리에 저도 수술하자고 했습니다. 아마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자연분만하겠다 했겠지요... 지금은 그때 참 많이 아팠었지 하는 기억밖에 없네요...
지금 방에선 딸아이가 새근새근 자고 있어요... 에이... 자는 얼굴이라도 보고와야지... ^^
서니님도 어여 어여... 결혼하시고.. 애도 낳으시고.. ^^

sunnyside 2004-05-16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수니나라님, 실론티님, 존경합니다~ ^^
수니나라님, '참을만 혀요.. 죽진 않으닌깐..' 흑, 이걸 지금 안심하라고 하신 말씀인가요? 더 무서버요~ -.- 허지만.. 여러 선배님들 말씀 따라 '나도 할 수 있다!' 는 마음가짐으루다가... (그나저나 어느 세월에? ㅎㅎ; )
실론티님, 어휴, 고생하셨네요.. 엊그제 아기 낳은 친구의 여동생도 얼마 전에 아기를 낳았는데, 비슷한 문제가 있어서 (태변을 먹는...) 아기가 병원에 있었다고 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병원에 두고 나와야 하는 엄마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아기들은 저마다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폭스바겐님, 우리도 언젠가 경험할 날이 오겠죠.. 올까요? ^^;

ceylontea 2004-05-1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현이는 다행히 적정한 시간에 수술을 해서.. 태변도 먹지 않고.. 아주 건강하게 잘 태어났습니다.. ^^
서니사이드님.. 그 순간 지나고 나면... 아팠던 기억은 잘 안나요.. 무서워 마세요.. ^^
 

울 부모님에게 물려 받은 유전자 중 맘에 안드는 게 몇 가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술 먹으면 빨개지는 얼굴이다. 맥주 몇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개지고 열이 나서리... 같이 많이 마셔본 사람들은 신경을 안쓰지만, 첨 술을 마신 사람들은 꼭 묻는다. "괜찮으세요?" 이게 바로 울 엄마 아부지 탓이다. 두 분 다 술 한 잔에 얼굴이 벌개지시는 스탈이시니.

오늘 퇴근 무렵, 목도 가슴도 답답하여..  맥주 한 잔이 절실했는데, 이미 시간도 늦었고 남은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집에 오는 길 "뚜 뚜르 뚜르르르... 그냥~" 마신다는 맥주 PET 병을 하나 사다 반쯤 마셨는데... 또 얼굴이 벌겋다. 

술먹고 얼굴이 빨개지는 건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다.

좋은 점은 머물고 싶지 않은 술자리에서 빨리 탈출할 수 있다는 거다. 벌개진 얼굴로 머리에 손을 짚으며, 휴~, 저는 들어가봐야겠네요.. 하면 붙잡을 사람 별로 없다. 물론 좋은 술자리에서 누군가 "괜찮으세요? 얼굴이 빨갛네요." 얘기하면 눈을 부릅뜨고 자세를 가다듬으며 말한다. "괜찮아요. 제가 원래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잘 빨개지는데.. 끄떡 없어요!"

하지만 '비즈니스'가 개입된 자리에서 얼굴이 발개지는 건 난처하다. 혹여 상대가 나를 하수로 보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분칠을 하며 수습을 해봐도 어쩔 수 없다. 목까지 벌개진 때깔을 어떻게 감출 수 있으리오.

난 여전히 부럽다. 술을 부어라 마셔라 들이키고도 안색 하나 안변하는 사람들... 그러고 꼭 자기 지금 취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게 내 소원이다. 나 지금 취했다고 박박 우겨 보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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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13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우십니다.^^ 저랑 똑같네요. 난 괜찮은데 자꾸 물으면 화나지 않나요?? 또 화내면 "야..야 애 취했다 얼렁 보내!보내!"

sunnyside 2004-05-13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맞아요. 안 취했다는 소리도 술주정으로 들리나봐요
 

이제 나도 '달린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한 후에 몇 번을 뛰었지만 모두 동네를 휘~ 한 바퀴 돈 정도였다. 그것도 10~15분을 제대로 못뛰고 숨이 차서 걷다 쉬다를 반복하는 어설픈 달리기였다.

그러다 오늘 난생 처음으로 10km 이상을 계속 달렸다. 집앞에서부터 뛰기 시작하여 월드컵 경기장으로, 월드컵 경기장을 끼고 흐르는 도랑옆길을 달려 한강 입구까지 달렸다. 한강 입구에서 다리를 건너 되돌아와 다시 월드컵경기장으로, 월드컵경기장에서 연신내 방향으로 한강 5km 미터 지점 표지판까지 달렸다가 되돌아왔으니 확실히 10km 는 뛰었고,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마포구청역까지 우회한 것을 보태면 11km 정도를 뛴 것 같다. 시간은 한 시간 이십오분 가량 소요.

오늘 다른 날보다 특별히 많이 뛸 수 있었던 것을 어제 회식에서 사장님이 주신 조언이 적중했던 탓이다. 달리기에 일가견이 있으신 우리 사장님은 "숨이 차서 못 달리는 게 아니라, 다리가 후들거려 못 달리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나는 뛰지도 못하면서 욕심이 앞서서 늘 몇분을 달리다 숨이 차 헥헥 거리곤 했다. 그리고나면 다시 달리는게 귀찮아서 그냥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늘은 숨이 차지 않도록 적당히 페이스를 조절했다. 그리하니 계속해서 달리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달리고 나니 정말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팔다리가 나른하고 힘이 없어 머리통 무게를 지탱하는 게 어려웠다. 힘 없는 노인분들이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듯이 그렇게 머리가 흔들거렸다.

다음 번에는 만일의 사태에 택시를 타고 올 수 있는 약간의 돈과 들고 뛸 수 있는 물통을 준비하여 15km 에 도전을 해봐야겠다. 아자, 나가자! 고독한 런너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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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02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달리셨군요...저도 달리고 싶은데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 첨엔 운동복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은 운동화가 없다는 이유로... ^^(반갑습니다. 서니사이드님..인사는 이제야 드리네요 ^^)

찌리릿 2004-05-02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 겁난다. 정말 허벌나게 겁이 난다. (식은 땀이 쭉~)

둘. 써니사이드님... 첨부터 그렇게 무리하면 안되요~! 5km를 1주일정도, 그리고 조금씩 올려야하죠. 첨부터 빠르게 뛰는 것과 마찬가지로 첨부터 그렇게 길게 뛰는 것도... 아닌데.... (이건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정말로.. 마라톤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에요.)

셋. 그대로 정말.. 장하고 대단하십니다. 부럽습니다. ^^

sunnyside 2004-05-02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스님 감사합니다. ^^ 언능 운동복이랑 운동화 사서 시작하세요. 저는 오늘 스포츠 속옷도 샀답니다. 스포츠 시계도 살까 생각 중이구요. 투자를 해야 본전 생각이 나서 더 열심히 운동을 하지 않을까요? (제가 원래 좀 천박한 인간이라... ^^;) 그나저나 유명하신 폭스님의 코멘트를 제 서재에서도 보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sunnyside 2004-05-02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리릿님 겁내지 마세요. 누구나 다 뛸 수 있답니다. 5km 를 뛰는 사람은 10km 를 뛸 수 있고, 10km 를 뛸 수 있는 사람은 20km, 40km 를 뛸 수 있다는 사장님의 말씀이 뻥이 아닌 것 같습니다. (첫날부터 이렇게 의기양양하다.. 나중에 망신당할 일이 있지 않을까 슬슬 걱정이 되오만... ^^; )

빨간우산 2004-05-10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km? 호..... 대단하시오.. 마라톤을 해 볼 생각은??
이곳은 정말 읽을 것이 많구료.

sunnyside 2004-05-1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지금 가비압게 7km 뛰고 왔슴다. 웰빙서니사이드~ 움하하;;

빨간우산 2004-05-12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웰빙서니사이드.. ㅡ,ㅡ;; 그래서 그대의 삶은 웰빙하신가..?

sunnyside 2004-05-1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대로, so so ^^
웰빙, 맘에 안들어요? 웬지 딴지 거는 느낌인데요? ㅎㅎㅎ
 

오늘 친구에게서 전화가 한 통 왔다.

그 친구는 대학 시절부터 작년까지 5년 넘게 나와 한 집에서 고락을 함께 해온.. 그야말로 보통 친구가 아니다. 그러다 작년 1월,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술연수에 갔다가(그 친구는 현재 중학교 교사) 정말 마술처럼 어떤 남자 선생님을 만나 사랑에 빠져 그 후 7개월 후에 전격적으로 결혼을 했다. 그 친구의 결혼을 계기로 한 집에 살던 세 친구는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맨 마지막으로 그 집을 지키다가 올 2월에 새 집에서 혼자 살게 되었다.

우쨌든 전화를 한 친구는 다짜고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다음주 수요일이랑 목요일에 별 일이 없으면 나랑 같이 자 줄래?"

순간적으로 무슨 일인가 싶었다. 권선생님이랑 싸웠나? 그럴리가 없는데... 아무튼 더 이상 짐작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어쨌든 '예스'로 대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알았어." ......... "근데 왜?"

"응 딴게 아니구... 다음주 수요일, 목요일에 신랑이 수학 여행을 가거든. (신랑은 초등학교 교사) 근데 내가 지금 애기가 언제 나올지 몰라서 오늘, 내일 해..불안해서 누구하고든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애"

그렇다. 내 친구는 지금 만삭이다. 근데 벌써 출산할 때가 되었나? 4월 말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군. 아, 이 무심한 친구... (-> 나) -.-

아무튼 그래서 난 이번 주, 수요일 목요일 친구와 함께 자기 위해 원당에 가야 한다. 회사에서도 훨 멀고, 옷가지며 이런 것들 챙기려면 조금 불편하겠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상상을 해본다. 드라마에선가, 영화에선가 많이 본 장면이다. 나란히 옆에서 누워자던 친구가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날 흔들어 깨운다. 아기가, 아기가 나올 것 같애.. 화들짝 놀란 나는 옷가지를 챙겨 입고 친구를 둘둘 싸서 길거리로 나와 택시를 잡는다. 친구의 신음 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난 그동안 전설처럼 들어왔던 '택시에서 태어난 아기' 이야기를 상기하며, 부디 그런 일만은 벌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다행히 맘 착한 택시 아저씨를 만나 우리는 가장 신속하고 안전한 길로 병원에 당도하고, 난 아저씨에게 택시비를 드리며 잔돈은 넣으시라고 말한다.

정신 없이 수속을 밟고 친구를 병실로 밀어넣고 난 다음 난 신랑에게 전화를 한다. XX가 지금 애기를 낳으러 들어갔어요. 별탈은 없어요. 안심하세요... 신랑은 안절부절 못하고 불안해 하면서 지금 바로 서울로 올라오겠다고 한다.

친구가 들어간지 7시간째.. 난 출근도 하지 못하고 병실문을 지키고 서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의 비명 소리를 커지고 급박해져 가고, 나의 마음도 초조해진다. 부디 산모도 아기도 건강하게 해주세요. 예수님, 부처님, 알라... 신이란 신은 다 붙잡고 조른다. 

드디어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간호사가 나와 '사내아이입니다~(성별은 이미 판별됐다고...)'라며 맑은 미소를 보여준다. 병실로 뛰어 들어가 친구의 손을 꼭 붙잡고 '수고했어...'라는 말만 연신 되뇌인다. 그제서야 병원에 도착한 친구의 신랑이 사태가 평온함을 확인하고 활짝 큰 웃음을 짓는다. 행복한 세 식구를 바라보는 나... 눈에 그렁 눈물이 맺힌다. - The End -

물론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져선 안되겠지. 제 아무리 친구가 좋아도 신랑이 곁에서 지켜주는 것만 하랴. 난 그냥 친구 다리나 주무르고, 밥이나 차려주고 오련다.

친한 친구의 첫 출산이기 때문인지 (내 친구들은 다 나 닮은  꼴이라 결혼이 늦다) 기분이 묘하다. 드디어 나도 날 '이모'라 불러줄 조카가 생기는 것인가?

엄마 뱃속에서 세상 나올 채비를 하는 조카야, 잘 듣거라. 엄마 고생시키지 말고, 쑴풍~ 후딱~ 나와야 한다. 괜히 아빠의 큰 머리를 닮아서 네 엄마 힘들게 하면 나중에 사탕 안사줄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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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4-25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정말, <배부른 친구>였군요. 난 또~

마태우스 2004-04-25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배부른 친구였군요.

Smila 2004-04-2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옆에서 라마즈 호흡 도와주는 법 알려드릴까요?

mannerist 2004-04-26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친구사랑하는 마음이 담뿍 담긴 마지막 말이 압권이네요. 근데 막상 '이모이모'그러는 자그마한 녀석이 치맛자락 잡아당기면 안사주곤 못배길거 같은데요 =)

sunnyside 2004-04-26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마태우스님 : 맞습니다. 그래서 '배부른 친구'랍니다. 뭐 평소에도 약간 '배부른 친구'이긴 하지만, 근래 들어 가장 '배부른 친구'지요. ^^;
Smila님 : 흠, 라마즈 호흡이라.. 정말 뭐든 찾아봐야겠어요. 며칠 안남은 산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겁주기? ㅋㅋ)
mannerist 님 : ㅎㅎ 아무래도 그렇겠죠? 저도 지금으로선 자신이 없네요. '사탕은 몸에 안좋아~' 이러면서 딴걸 사주지 않을까 예상이 되오만.. ^^

starla 2004-04-26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왠지 수요일 목요일에 진통이 오면 재미있겠다~ 라고 생각하는 저는 나쁜 심보인 것일까요? ㅠ.ㅠ

sunnyside 2004-04-26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헤헤... 실은 저도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그런 일이 생기면, '나의 서재'에 쓸말이 마~니 생기겠다, 라고 생각한 적 있습니다. ^^;
 

저도 서재 오프 모임에 갔었답니다.

요즘 서재 활동을 열심히 못해서.. ^^; 내가 가도 될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 많은 것들을 받았습니다.


가을산님의 반전뱃지

 

 

 

 

 

 

 

 

▶ 가을산님이 주신 반전 뱃지입니다. 열심히 가방에 달고 다닐 생각이에요.


마태우스님 책

 

 

 

 

 

 

 

 

 

 

▶ 그 유명한 마태우스님의 대통령과 기생충. 드디어 제 수중에도 들어왔군요.


싸인도..

 

 

 

 

 

 

 

 

 

 

▶  저자의 친필 싸인까지. 꽁지가 바짝 슨 것이.. 아주 늠름한 말의 모습이죠. ^^


진우맘님의 책갈피

 

 

 

 

 

 

 

 

 

▶ 보면 볼수록 감동적인 진우맘님의 책갈피. 한분한분께 드리기 위해 봉투에 넣어 오셨었답니다. 제껀 없었지만, '찌리릿'과 '지기'가 한 명인줄 모르고 따로 만들어오셨던 덕분에 하나는 제 차지가 되었죠. ^O^ 신밧드와 스탈라님 것두 잘 전달하겠습니다~

매너리스트님의책읽는소녀

 

 

 

 

 

 

 

 

 

 

▶ 책갈피로 쓸 수 있는 매너리스트님의 책읽는 소녀 사진. 인사동에서 찍으셨다고.. 마태우스님 책 사이에 잘 끼우고 보겠습니다.

빈손으로 가서 너무 많은 것을 받고, 잘 먹고 잘 놀았습니다. 저도 뭔가를 준비했어야 하는데.. 농담 아니구, 알라딘 쿠폰 번호라도 몇 개 뽑아갈 걸 그랬어요. ^^; (하핫; 제가 알라딘 마케팅팀 직원이라..)

알라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참 감사했구요. 홍대 앞 맛집 기행도 훌륭했습니다. 다음에 꼭 한번 다시 가보고 싶은 곳들이었어요.

제 사진기에도 사진이 몇 장 있는데,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 주소를 알려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마태우스님의 엽기적인 표정과 수니나라, 매너리스트님의 열정적인 노래방 무대 모습이 있습니다. 아, 그리고 드류 배리모어를 닮은 연보랏빛 우주님의 모습.. 궁금하시면 말씀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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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19 0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우주 2004-04-19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니 사이드님 반가웠어요~~~! ^^*

아 그리고 드류...요? --;
앤티크님에게 전해주세요. 여기 증인있다구요.^^

mannerist 2004-04-19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 안녕하세요. 저 역시 반가웠구요.
노래방에서 잠시 엿본(?)사진 좀 부탁드릴께요. 입 쩍 벌리고 있던 순간을 어이 담으셨는지 신기해했더랬지요. 크게 보면... 음.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지네요. 편한 걸로 보내주시길.

MSN: pcmlucid@hotmail.com
e-mail: mannerist@empal.com

좋은 하루 되세요. ^_^o-

마태우스 2004-04-1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추로 절묘하게 이름을 가리시는 섬세함이 저의 눈가를 축축하게 합니다.... 만나뵈서 반가웠어요.

sunnyside 2004-04-1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보랏빛 우주님... 그때 모임에서 우주님 보고 누굴 닮았는데, 닮았는데.. 생각만 하고 끝내 누군지 떠올리질 못했거든요. 어제 저녁에 번뜩 생각이 나더라구요. 맞다! 드류 배리모어!
매너리스트님... 열창하는 모습, 잘 박혀 있습니다. 사진발 괜찮으시던걸요? ^^
마태우스님... 저도 정말 반가웠어요. 상상했던 모습과 똑같으셔서 더욱 좋았습니다. (뭘 상상했기에? ^^) 좋은 맛집 소개도 감사해요.

연우주 2004-04-1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절 보는 눈은 비슷한가봐요. 드류..도 몇 번 들었거든요...^^;;;;
자랑이 되는 셈인가요?!
사진, 보내 주세요!!! ^^

sooninara 2004-04-19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니님...저예요^^ 선물을 못드려서 가슴이 아픕니다..알라딘 식구는 다음에 우편으로 보내드릴려구했는데..기다리세욤..지가 종이학이라도 접어서 보내드릴께요..
님의 글을 읽다보니 님의 말투가 떠올라서 너무나 재미있습니다..밝고 재미있고..따뜻한 분이라고 기억되고 있답니다..다음번에 또 나오세요..찌리릿님에게 접선할께요..
첫번개는 네명이서 조촐하게 진지하게^^ 대화만 했는데..음주가무를 즐기다보니 깊이있는 대화는 못한것 같네요..분기별로다가 번개하는것이 우리 번개족의 목표인데..실현 가능하겠죠?
제 사진이 너무 추하지않으면 제서재에 올려주세요^^ 가을산님이 이미 다 올리버리셨는데..(알라딘 시스터즈) 가릴게 뭐있나요?

조선인 2004-04-1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써니사이드님이 알라딘 마케팅팀 소속이세요? 혹시... 제가 아는 분일지도... 음...

sunnyside 2004-04-20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어떻게요? 혹시 저도 조선인님을 아나요?

sooninara 2004-04-20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니님..코멘트 달때 에디터로 쓰기하시면 사진 올리기가 되거든요..
그래서 다른님 서재에도 사진을 올릴수 있답니다^^

조선인 2004-04-20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만나본 적은 없고 전화통화만 몇 차례 했죠. 전 아카넷티비라는 회사 다녀요. 지금은 끝났지만 예전엔 알라딘 배너걸고 있었구, 그때 담당자분이 여자분이었는데...

2004-04-21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nnyside 2004-04-21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셨군요. 예전엔 다른 여자 직원이 담당이셨고, 제가 맡은지는 몇 달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통화한 것 같네요. 또 이런 인연이.. ^^

진/우맘 2004-04-2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 님! 저, 엄청난 길치라서...서니사이드로 오는 길을 못 찾고 며칠간 헤맸답니다. (검색해도 안 나오더라구요. 서니와 사이드를 띄어써서 그랬나?) 아까 찌리릿님께 여쭤보고 왔어요.^^
어...그리고...찌리릿님도 말씀해 주시겠지만....제가 허락도 안 받고 님께 빨간츄리닝을 입혔답니다. -.-; 용서를....

sunnyside 2004-04-2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찌리릿님이 보여주셔서 그림 잘 봤습니다.
회사에서 난리가 났네요. 다들 봤냐고 묻더라구요. 진우맘님 솜씨는 정말 최고여요~ ^^

진/우맘 2004-04-22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노고를 알아주시는군요! 츄리닝 입히는 게 미안해서, 그래도 귀여운 사진으로 신경 써서 골랐습니다!

ceylontea 2004-04-2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이 많아 정신 못차리다가 오늘은 기여코 왔습니다.. ^^
만나뵈서 반가왔습니다... ^^ 앞으로는 종종 뵈요.

2004-04-23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