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니까 슬픔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폭염이 물러갈 기미를 보인다는 어느 여름날, 반가운 소식 뒤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서 미처 그 기미를 알아차리지도 못했는데, 마음 한 구석이 그저 싸할 뿐이었는데, 뒤늦게야 그게 슬픔이란 걸 알아차린다. 마음이 알아차리기 전에 먼저 몸이 아프다. 신물이 넘어오고, 소화가 되지 않고, 가슴께 통증이 느껴진 후에야, 슬픔이란 걸 알아차린다.

 

*

사람들이 묻는다. 더운데 괜찮으냐고, 일이 많은데 괜찮으냐고, 혼자서 괜찮으냐고.

그들의 질문이 괜찮다는 답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나는 괜찮지 않다고 대답한다. 더운데 괜찮겠느냐고, 일이 많은데 괜찮겠느냐고, 도대체 혼자서 괜찮겠느냐고. 전화기 너머에서 무안해 하며 머뭇거리는 그들에게, 쐐기를 박듯 말한다. 하나도 괜찮지 않다고. 나에게 괜찮다는 말을 듣고, 이 순간을 넘기고 싶겠지만, 나는 그럴 용의가 없다.

 

*

오래 전 마추픽추의 사진을 붙여 놓고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높은 곳에 흔들의자를 놓고 앉아 시간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가 살았던 순간들을 오래오래 기억하면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고. 또다시 마추픽추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깨닫는다. 오래오래 기억할 무언가가 내게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혹시 마추픽추에서 돌이켜보기에 나의 시간들은 지나치게 남루하다.

 

*

설레는 봄바람도 아니고, 쓸쓸한 가을바람도 아니고, 좀체 느껴지지도 않을 여름바람에 혼자서 앓고 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나면 폭염은 물러갈 것이다. 더위가 사라지면 불면도 없어질 것이다. 조금만 편안하게 자고 나면, 가시처럼 돋은 못된 감정들도 잦아들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시간이 가는 것을 지켜볼 밖에.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외에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책들.

 

김애란의 소설이 늘 좋았던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해 <두근두근 내인생>은, 그 책에 쏟아진 상찬에도 불구하고 크게 마음을 울리지 않았다. 조로증에 걸린 그 아이의 마음이 너무 조숙해서, 나는 그 삶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신간소식을 듣고도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이 책의 표지가, 이 책의 제목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흔든다.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슬픔이 출렁거린다. 어쩌면 나는 김애란을 좋았했던가 보다. 그 소설 속 인생들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미워해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어쩌면 조금은 편안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모난 소리를 퍼붓지 않는 것은, 마음이 넓어져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어져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가족이라면 나는 아직 대책이 없다. 여전히 포기는 되지 않고, 여전히 방법은 모르겠다. 표지에 담긴 이 배우들의 얼굴은 그래서 참 슬프다.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면서 이런 책들을 주문했다. 그러니까 좀처럼 책을 읽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시간은, 겨우겨우 이 책들과 보내고 나면, 여름은 이제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속에 출렁이는 것들도 잠잠해져, 나는 다시 아무 것도 아닌 이 시간들을 평화롭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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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라는데, 긴 비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그러나 문득문득 쏟아지는 강한 빗줄기에 먼저 귀가 놀라고, 번쩍이는 번개에 눈이 깨고, 머리 위에서 울리는 천둥에 몸이 일어난다. 다시금 시작된 불면, 무엇이 걱정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제 다 컸다고, 그러니까 좀처럼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조바심을 내지는 않아도 된다도 다독거려도 마음 한 구석에 박힌 불안이 가시질 않는다. 그렇게 여름을 지나고 있다.

 

 

 

 

잘못을 저지른 자의 불안은 그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의 불안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비록 그 잘못으로 인해 자신의 욕망이 해소되고, 순간의 열락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생에 다시 없는 경험을 하게 될지라도, 그래서 자신에게 엄습해올 모든 불안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같은 상황이 오면 같은 잘못을 저지를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불안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선천적으로 불안이라는 감정 자체를 지독하게 두려워하는 나는, 그래서 나의 욕망이 해소되는 순간의 열락을 경험할 확률이 아주 적다고, 이따금 스스로 자조한다. 

 

이 소설은 1909년에 태어난 작가가, 1931년에 쓴 작품이다. 그의 나이 22살. 그러니까 이 작가는 불과 22살의 나이에 욕망이 가득한 사랑을, 그 사랑의 하릴없음을, 전쟁의 비애를, 어머니와 아들의 마음 바닥에 깔린 은밀한 비밀을, 인간이 하는 말의 가벼움을, 그 가벼운 말의 날카로움을 모두 알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예민하고 단단하게 엮어 한 편의 소설로 만들어냈다는 말이다. 22살에 말이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공간은, 본심을 알 수 없는 사람만큼 두려운 존재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숲, 들어가는 길도 나오는 길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깊은 숲의 공간.

편혜영의 소설에 숲은 여러 형태로 펼쳐진다. 그 곳은 부엉이가 울고 비밀 벌목이 이루어지는 비밀의 공간이고, 그 비밀을 공유한 사람들이 삶을 지속하는 서쪽의 작은 도시이고, 환상과 실제를 구별할 수 없는 술 관리자의 내면이다. 그러니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헤맬 수밖에 없다. 모두들 실체를 알 수 없는 공간 속에 살고 있거나, 그 공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천둥과 번개 속에서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도,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 때문에 나 역시도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혹은 이 숲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는 아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마지막 장을 넘기고도 나는 그들이 왜 숲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진의 부엉이도. 나의 불안이 나의 이해를 방해하니, 나도 어쩌면 숲에서 길을 잃은 건지도 모르겠다.

 

 

 

 

원래부터 가족은 모든 불안의 근원이다. 이 소설은 지극히 극단적인 한 가정을 묘사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비극들은 이 작품 속 인물들이 던져주는 충격을 능가한다. 패륜이라 일컬어지는 문제적 상황들은 이제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라, 사회면 기사를 통해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문제적 가족들을 말하는 것이 상투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감옥이 되어버린, 누군가에게는 악마가 되어버린, 누군가에게는 곪은 상처를 헤집는 덫이 되어버린 이 가족들을 상투적이라고 말해 버리면 그만인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과오를 온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것만으로 그만인가. 다시,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장마라면서 긴 비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고 방심하고 있을 때

또 불쑥 폭우가 내릴 것이다.

천둥과 번개가 내리칠 것이다. 

그러니, 착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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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그림자 2012-07-2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나요?

선인장 2012-07-25 10:02   좋아요 0 | URL
아... 너무 오랫만이에요.
저는 그저, 오래 전과 같은 일상을 그 때와 비슷하게 살고 있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여전히, 이 곳에 계셨던 거군요...

빛 그림자 2012-07-25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네요. 알라딘에 간만에 왔어요. 언니 글 보니 무척 반가워요! 반갑고 기쁜데 무슨 말을 남길까 하는 망설임과 주저함은 생기더라고요.
제게 몇 해 동안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래도 일상은 여전해요. 상황이나 조건이 달라져도 저라는 사람 자체가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아서 그런가 봐요. 예전에 제가 교직 수업 들었던 거 기억하세요?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네요. 저는 학교 생활이 즐거운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미안하고 쓸쓸해질 때가 있어요. ^^
전처럼 가끔 안부도 전하고 할게요. 아, 더울 때일수록 잘 드셔야 해요!

선인장 2012-07-26 11:1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약간의 변화와 그리고 여전함... 선생님이 되었군요...
저도 이따금 학생들을 보면서, 그들은 누구를 만나도 즐겁지 않겠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도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쓸쓸한 마음을 갖는다면, 조금은 덜 팍팍한 생활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도 자주 들여다 보지 않은 곳이지만, 가끔 들러서 안부 전해주세요. 언제든 반가울 꺼에요....
 

그들과 술을 마실 때면 늘 농담처럼 말한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나는 꼭 회색 눈동자에 은발 머리로 태어나야지.

그들은 화답한다. 초록색 눈동자나, 파란색 눈동자로. 그러면서 저기 북유럽 어딘가의 나라들을 읊어댄다. 나는 추워서 싫어. 나는 프랑스 남부 촌구석이나, 스페인 어디쯤이 좋을 거 같아. 따뜻한 남쪽 나라. 한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은 곳에서, 까만 머리 까만 눈동자가 아닌, 회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로 태어난다면, 또다시 지리멸렬할지도 모르는 한 세상, 기꺼이 살아주지....

 

 

마흔이 넘어버린 선배들과 여전히 이런 농담을 주고 받은 것은, 아직 우리가 철들지 않았기 때문. 그리고.

 

 

 

이 책, <바람의 그림자>

인간의 삶을 소설이나 책에 비유하는 것은 상투적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소설 따위와는 비교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소설에 대한 몰이해와 지나친 자기 연민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인간의 삶은 하나의 텍스트이고, 하나의 텍스트는 누군가의 삶이다. 은밀한 도서관 한 구석에 숨겨진 비밀스런 책 한 권은 훌리안의 비극적인 사랑을 증명하는 텍스트이고, 그 비밀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다니엘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읽어 나간다. 헌책장에 쌓인 먼지 먹은 책 속에 먹먹한 삶의 비밀이 숨어 있듯이, 바르셀로나 어디 구석 이름 없는 누군가의 삶에는 뜨거운 욕망과 안타까운 눈물이 가득하다. 한 권의 책이 또 다른 책을 부르고, 한 사람의 인생이 누군가의 삶을 의미 있게 한다. 사슬처럼 이어지는 끝없는 이야기. 그래서 통속적인 결말이 허무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는 매력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안개 가득한 바르셀로나. 세상의 비밀을 공유한 아버지와 아들이 걸어가는 바르셀로나의 새벽길, 너무 일찍 경험한 사랑의 좌절 때문에 얼굴이 멍이 든 채 걸어야 했던 차가운 바르셀로나의 밤길,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가 그 사랑을 방해하는 누군가를 피해 은밀하게 만나던 바르셀로나의 골목길. 안개와 비가 가득한 바르셀로나의 그 길.

 

 

 

혹은 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은 70이 넘어서도 여전히 꿈을 꾼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피카소와 달리와 헤밍웨이가 사랑을 하던 그 시대에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을 함께 꾸게 된다. 자본의 욕망이 온 거리를 가득 메운 현재에는 불가능한 삶을 살았던 시대를 꿈꾸며, 자정 무렵 파리의 어느 밤 거리를 서성이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그 꿈에 빠져 설레일 때, 노감독은 현재를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의 의미에 대해, 이 순간 할 수 있는 선택에 대해, 그로 인해 달라지는 삶에 대해.

 

그러나 나는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고갱의 시대에 남겠다는 에드리아나처럼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가 함께 한 그 시대, 그 골목에 서고 싶다. 그게 안 된다면, 비오는 파리의 밤거리라도. 그 골목을 서성인다면, 지금 내 통장에 찍히는 얼마 되지는 않는 월급과, 그 월급에서 파생하는 몇 벌의 새 옷, 혹은 날마다 늘어가는 책장의 책들 따위들은 모두 잊고, 나도 여기 남겠다고, 용기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길이 예찬한 것처럼 비오는 파리의 밤거리는 그 자체로 다른 세상이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나에게 선사할지도 모르니까.

                    

 

장마라 했는데, 제대로 비도 오지 않는 서울은

 

참 덥구나.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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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택시들이 파업하는 줄 알고

느긋하게 차 몰고 골목을 빠져나온 후에야

아차,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차 안에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이 가득

 

 

그러니까

한때 나의 사랑이 지나갔을 때, 한때 나의 지난 사랑이 부질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이 다시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을 때

 

누군가 나에게,

사랑을 미워하지 마,라고 말해 주었다면

나는 그 모든 기억들을 애써 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감상에 아침부터 빠져 있다가

 

그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가사들이 너무 좋아서

 

진짜 오랫만에

죽어버리고 싶었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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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21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왜, 하필, 에피톤을 들으신거에요! 대체 왜! 어휴..

저는 특히 이전 앨범에서의 [눈을 뜨면]과 [이화동]의 무척 좋아요. 아주.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고 누구도 내게 그 순간만큼은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인장 2012-06-21 14:2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대체 왜 그랬을까요...
너도 반포대교 건너다 걸려온 전화받고 막 화가 나버렸어요.
그 순간에는 어떤 멋진 남자애가 고백을 한다해도 반갑지 않았을텐데 말이에요...

차에서 데려온 CD가 사무실 후배의 컴퓨터에서 하루 종일 재생 중이에요.
덕분에 정말, 일도 하기 싫다고요!!!
 
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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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에 사 두었던 신형철의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를 읽었다.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된 글을 묶어낸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철지난 기사에서 이미 헤어진 커플의 열애 사실을 확인하는 것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형철의 산문집을 이제서야 읽은 이유이다.

 

처음 몇 장을 읽다가, 펜을 들고 수첩을 펼쳤다. 형광펜과 연필을 번갈아 들어가며 열심히 밑줄을 쳤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들.

 

 

- 진실은, 그것이 참으로 진실인 한에서,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인은 함부로 진실을 진술하기보다는 진실이 거주하는 고도의 언어적 구조물을 구축해야 한다. 시는 진실이 표현되(면서 훼손되)는 장소가 아니라 은닉되(면서 보존되)는 장소다.

 

- 희망을 말하는 시에 마음을 내어준 적이 별로 없다. 크게 부르짖는 희망은 미학적 파탄을 가져오기 쉽고, 낮게 읊조리는 희망에는 어딘가 타협의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문학이 희망을 줄 수도 있을까. 문학은 절망적인 세계 앞에서 사력을 다해 절망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은가.

 

- 저의 괴벽인지 모르나 시인의 반성에 흔들려본 적 많지 않습니다. 저는 가끔 반성은 서정의 버릇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인들은 혹시 가벼운 죄를 반성하면서 진정 무거운 죄는 영영 봉인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고약한 의심을 해보기도 합니다.

 

- 젊은 시인들은 신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과 대화하기보다는 신을 모독하려 합니다.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길입니다. 신과의 대화는 우리 시대 큰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참혹에 눈물을 흘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 엉망인 세계를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신을 향해 말할 때'투쟁하는 형이상학'이 시작될 것입니다.

 

 

 

책장을 넘기다 중간중간 멈춰야했다. 신형철이 언급했던 시집을 뒤적이고, 생략된 부분들을 마저 읽고, 시에 대해 공부를 하듯이 2부를 읽어나갔다. 어떤 시집에서, 어떤 시를 찾아읽어도 원고지 스무 장 남짓한 신형철의 사유를 벗어나지 못했다. 펜을 내리고, 수첩을 덮었다. 그의 문장들이 아무리 큰 깨달음을 주어도, 이건 신형철의 깨달음이다. 밑줄을 긋고, 수첩에 그의 문장들을 옮겨 적어도 그것들이 나의 깨달음이 될 수는 없었다. 그저 습관적인 행위로 문학에 대한 열망 따위 남아 있다고 위안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그런 부질없는 위안의 도구로 쓰기에 부끄러울 만큼 깊은 사유와 문학에 대한 반듯한 열정이 그 짧은 글들 곳곳에 담겨 있었다.

 

신형철은 모든 글에서 시와 언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또 모든 글에서 지금 우리에게 문학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답한다. 어쩌면 시와 소설을 쓰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포기해 버렸을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이 시대에 걸맞는 유의미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많은 시들을 통해 그 답들을 찾아낸 것처럼 보인다. 덕분에 나도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답을 찾으려면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또한 여기 실린 모든 글에서 신형철은 그의 사유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예술의 언어가 무엇인지 두 번 이해했다. 그가 언급한 시들을 통해서, 그 시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의 문장들을 통해서. 결국 그는 자신이 말하고 있는 문학의 본질을, 자신의 글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 깊은 내면과 단단하고 좋은 문장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문학을 향한 그의 지극한 순정이다. 김연수의 어떤 소설들을 읽으며 문득 들었던 이런 느낌을 이 평론가의 글에서 더 절박하게 느낀다. 책머리에 스스로 고백한 바, 문학을 사랑할수록 그는 문학과 더 많이 싸울 것이고, 그 싸움에서 번번히 질 것이라고 했다. 사랑으로 인한 싸움에서 먼저 미안하다도 말하는 이는 잘못한 쪽이 아니라 더 그리워한 쪽이므로. 이토록 지극한 순정을 바치는 남자라니. 대체로 사랑에 목숨을 거는 남자는 찌질하다. 그들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곤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상대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순정을 바치는 남자라니, 참으로 근사하다. 때로 그 남자의 순정이 그 대상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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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12-02-17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형철의 책은 김현 이후로 제가 오랫만에 구입한 평론집입니다.
지극한 순정
이 말 참 좋군요.
선인장님 글을 다시 읽게 되어서 더 좋구요.


선인장 2012-02-17 20:31   좋아요 0 | URL
사랑 타령 하는 남자 정말로 매력없다고 생각하는데, 신형철의 글들을 읽다 보면, 자꾸만 "순정을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하고" 뭐 어쩌고 하는 노래가 생각하는 거에요. 며칠 전에는 기어이 그 노래 제목을 알아내서, 한참을 듣기도 하고 말이지요. 자꾸만 어떤 글을 읽고 사랑에 빠져서 큰 일이에요, 저는... 나이만 먹지, 아직도 철이 안 들어요,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