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1~18(완결) 세트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세주문화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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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몬스터>라는 만화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만화가를 알지 못했다. 그의 만화 <마스터 키튼>이 이미 우리 나라에 제법 알려진 상황이었지만, 나에게는 <몬스터>가 처음이었다. 1권, 2권을 읽으면서는 그저 흥미로운 모험담쯤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저 다른 의사처럼 나름대로의 포부와 야망을 가진 닥터 덴마는 다른 만화의 주인공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가 가진 적당한 속물 근성과, 그 이후에 오는 깨달음은 주인공을 만들기 위한 수순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 그 때까지 나는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만화가에 대한 어떤 인식도 없었다.

내가 <몬스터>의 완결편을 간절하게 기다리게 된 것은 아마도, 요한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는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리는 역할을 맡은 악당이지만, 주인공인 덴마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나는 항상 덴마의 미래보다 요한의 과거가 궁금했고, 요한의 종말이 기다려졌다. 금발의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요한이 보여주는 아주 지독한 한기 때문에, 나는 가끔 슬펐다. 도대체 그는 무슨 일을 경험한 것일까. 511 킨더하임에서, 혹은 세마리의 개구리가 그려진 이 이층집에서, 아니면 붉은 장미의 저택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만화의 결말에서, 요한과 니나의 경험이 전부 밝혀지지만, 나는 아직도 그 어린 요한이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할 수가 없다. 엄마의 손이 자신에게서 멈칫 하다, 니나의 손을 놓는 순간 도대체 그의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어렴풋하게도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렇게도 이름을 갖고 싶었으나 끝내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모두 없어져버린 슬픈 괴물의 기억이 마음 아팠을 뿐이다. 그래서 그 도서관에서 이름 없는 괴물이라는 동화를 보았을 때 나 역시도 요한만큼이나 큰 충격을 받았을 뿐이다.

닥터 덴마의 누명을 모두 벗겨진다. 너무나 인간적인 덴마가 살아가는 모습은 분명 엉성한 내 일상에 많은 충격을 주었다. 최선을 다해 생명을 지켜가려는 의사의 본분을 덴마는 온 몸으로 실천한다. 그만큼 아름다우면서도, 현실적인 캐릭터를 나는 좀처럼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요한의 미래가 궁금하다. 또다시 새 생명을 살게 된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름답지만, 냉혹한 그의 얼굴에서 슬픔의 기운이 언제야 가시게 될 것일가. 어쩌면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결말을 나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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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 1 -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
나카하라 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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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헤븐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나왔던 이 만화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무열이었다. 어느 작은 섬에서, 슬픔을 안고 달리기를 시작한 소년에서 매우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안타깝게 기다리던 다음 권이 꽤 오랫동안 나오지 않더니, 유스케라는 이름으로 이 책이 다시 나왔을 때 나는 내내 완결을 기다렸다. 그 어리던 무열이가 어느 새 고등학생이 되어 무거운 어깨띠를 두르고 역전 마라톤에서 뛰던 날, 나는 그 곳에 모인 어떤 관중들보다 더 흥분했다.

어쩌면 이 책은 만화로서 그리 재미 없을 수도 있다. <스타트>에 등장하는 유스케의 라이벌들은 그 많은 만화 속 인물들이 보여준 악당의 기질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은 온 마음으로 유스케의 질주를 동경하고, 그들이 최선을 다해서 뛰어왔던 그 바다가 고개길을 사랑한다. 달리면서, 자신이 달리는 의미를 찾으려는 그들은 마라톤이라는 그 장엄한 드라마에 애써 의미 부여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앞에서 뛴 선수의 땀방울이 스며든 어깨띠의 무거움만을, 그 무거움으로 인해서 더 무거워지는 다리의 움직임만을 고스란히 보여줄 뿐이다. 이 만화에서는 어떤 특별한 스포츠 철학도, 악당이 만들어낸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영웅의 뛰어난 지략도 없다.

다만, 언제나 조금 느린 호흡으로 유스케의 움직임으로 읽어내는 나오코의 독백은 그들이 함께 뛰어왔던 모든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에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보여줄 뿐이다. 이따금씩 가슴을 치는 나오코의 독백들이 어쩌면 만화를 읽는 재미를 반감시켜줄 수도 있다. <스타트>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의 방식이나 대사, 그들의 독백은 만화적이기보다는 지나치게 소설적이다. 호흡이 길어야만 끝까지 견딜 수 있는 마라톤처럼, 이 만화 역시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유스케가 지쳐할 때 그 속만큼 읽는 속도를 줄인다면, 나오코의 독백이 나올 때, 잠시 쉬면서 그 독백 속에 묻어나오는 바다 바람을 느낀다면 이 만화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만화가 된다.

만화다운 상상력이 넘치는 만화들은 여전히 좋다. 박진감 있는 승부의 세계는 스포츠 만화의 백미다. 그러나 그런 만화들 속에서 이따금 발견하게 되는 사람 자체에 대한 성찰은 유난히 더 감동적이다. 사람 많은 만화방에서 오래 기다린 책 한 권을 읽으면서도 그 속에 푹 빠져 눈물 글썽일 수 있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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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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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산 <자전거 여행>은 오래 만나다 이제는 남이 된 사람에게 선물을 했다. 오랫만에 그 사람을 만나던 날, 가방 안에는 이 책이 있었다. 몇 장을 아껴가면서 읽던 책을 주고 온 후 몇 달을 미루다 다시 샀던 책은 군대에서 휴가 나온 후배 한 명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오랜 시간이 보낸 후에 이 책을 사게 되었고, 그로부터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이 책을 모두 읽었다.

명문으로 유명한 김훈의 문장을 따라 읽어가는 속도는 처음으로 빠를 수가 없다. 그가 자전거 페달을 굴리다가, 쉬었을 언덕에서 내 독서는 같이 쉴 수밖에 없었고, 그가 눈길을 주었을 어떤 나루 한 그루에 나 역시 오래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김훈의 문장들은 그 언덕의 자잘한 굴곡을 세밀하게 느끼게 했고, 자전거 바퀴 틈으로 새어나가는 미미한 바람의 흔적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그의 수필이나 소설은 나의 독서를 방해하고, 머뭇거리게 한다. 그러다가는 결국, 내 마음은 방랑을 시작한다. 그의 자전거가 지나갔던 길들을 따라다니다, 마음은 금방 지쳐 책상 앞으로 돌아오지만 그 세세한 인상을 그대로 주변에 남아 있는 느낌에 오래도록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한 기행문은 책상 위에서 읽혀지는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책의 여정을 따라 몸을 움직이게 하는 책, 그 떠남의 길 위에서 책장이 들춰지는 책이 좋다. 그러나 김훈의 책은 그러기에 적합하지 않다. 떠도는 길 위에서 그의 책을 읽다가는, 어느 이름 모를 길목에 주저앉아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에 매혹되어, 더 이상 발을 옮기게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늘 먼 곳을 꿈꾸면서도, 여전히 이 곳에서 있는 사람들. 마음의 방황을 즐겨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아주 좋은 처방전이다. 한 여름 도심의 한 복판에서 나는 뚝뚝, 동백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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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 (완전판) - 0시를 향하여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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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던 동생이 말했다. '언니, 이 책 추리 소설 맞어?' 이 소설을 백 페이지 가량 읽어가다가, 나는 다시 옆에 있던 누군가에게 말했다. '이거 추리 소설 맞나?'

'살인 사건에 바탕을 둔 소설은 대부분 살인 사건 그 자체에서 출반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틀린 것이다. 살인을 오래 전부터 시작한다. 수많은 정황들이 주어진 시각에 주어진 지점에서 한데 합쳐지면서 그 정점에 달해 발생하는 사건이 바로 살인이다.' 이 소설은 살인 사건에 한 독특한 이해를 소설적으로 아주 잘 형상화하고 있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사람들의 일상들을 나열한 전반부는 읽는 내내 의아한 느낌을 들게 한다. 살인 사건에 대한 독특한 인식이 한 인물의 입을 통해 말해지지만, 그래도 살인 사건도, 정교한 트릭도 없는 전반주는 내내 이거 추리 소설 맞나하는 의혹을 들게 한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기대하게 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가 부각되는가.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은 이런 의구심의 충분히 해결하면서, 무릎을 치게 한다. 어쩌면 인간의 호의와 웃음은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부분 적당한 웃음으로 가장하면서, 살인이나 죽음을 꿈꾸기도 하고, 웃는 낯으로 상대방을 보면서 속으로는 욕설을 내뱉기도 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러한 인간 이중성의 극단을 보여준다. 추리 소설로서의 반전도 아주 멋지지만, 그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크리스티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욱 가중시킨다. 그리고 몇몇 등장인물의 아주 묘한 매력은 또 하나의 여운으로 남는다. 추리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재미는 단순히 사건의 개요를 파악하는 데서 오는 쾌감이 아니라, 범죄를 통해 내 안에 존재하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읽어내는 데서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나는 또 다시 깨닫는다. 아주 완벽한 살인이나, 아주 의미 없는(그래서 아주 과격한) 범죄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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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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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스티븐 킹의 소설은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의 소설이 원작이라는 영화도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친구 한 명은 <쇼생크 탈출>에 열광했지만, 나는 그 재미있다는 영화를 두 번이나 빌렸지만, 결국 끝까지 보지 못했다. 예전에 본 <캐리>의 몇 장면이 인상적이었을 뿐이다.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 광고를 보게 된 후에도, 그 책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스티븐 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며칠을 묵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는 오후의 약속을 취소했다. '이력서'라는 소제목이 붙은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그 이야기는 일상의 소소한 작업들을 포기하면 생존이 위태로운 우리들이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면서 글쓰기를 미워두었던 내게, 글쓰기에 대한 강렬한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갑자기 하루에 두 시간만 잘 수 있을 것 같고, 틈틈히 적어둔 메모가 하나의 소설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는 환상을 품게 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전개되는 문장에 대한 스티븐의 강의는 내가 예전에 배웠던 무수한 원론들을 눈 앞에서 구체화시킨다. 전에 학교에서 글쓰기를 배울 때, 나는 늘 설명적인 문장이라는 지적을 들으면서도,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설명적인 문장과 묘사적인 문장을 구분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나는 문장의 기초를 다시 배웠다. 상투적인 부사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독자를 우습게 여기는 설명이 무엇인지, 나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은 나의 체계 없는 책읽기를 정당화시켜준다. 내가 아주 재미 없는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런 책은 읽어 뭐 하느냐는 친구들의 비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앞으로 스티븐의 위로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형편 없는(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취향에 근거한 판단이겠지만) 소설을 읽고나서 밀려드는 허탈감을 그가 위로해줄 것이다. 나는 앞으로 더 열심히 책을 읽게 될 것이고, 지하의 작업실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게 될 지도 모른다.

한 권의 책을 읽고나서, 글쓰기에 대한 강력한 유혹을 느낄 때, 나는 행복하다. 며칠 안 가 내 게으름과 진부한 일상을 확인하게 된다 하더라도, 글쓰기가 나를 유혹할 때,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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