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의 딸 데이바 소벨 컬렉션
데이바 소벨 지음, 홍현숙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갈릴레오의 딸이 아버지 갈릴레오에게 보낸 편지들을 최초로(?) 공개하고 있다. 처음 신문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접하면서 딸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 갈릴레오의 인간적, 개인적인 모습이라는 것에 호기심을 느꼈고, 한편으론 갈릴레오라는 인간에 비해 그 인간적 모습이 별볼일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로 약간 망설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편지에 나타난 인간적 모습이 별볼일 없을 거라는 우려는 사실이었지만, 다행히 그래도 이 책은 만족스러운 독서경험이 되었다. 이 책은 <갈릴레오의 딸>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보다는 더 완벽한 갈릴레오 전기이다.

우선 호기심을 끌었던 편지 부분에서 첫번째 실망스러운 점은 아버지 갈릴레오쪽에서 딸에게 보낸 편지들이 없어서 부녀간 주고받은 대화를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딸의 편지들에서 간간이 갈릴레오가 무슨 이야기를 썼을거라는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어쨌든 한쪽편으로부터의 편지만을 읽는 것은 김빠지는 일이다.

두번째 실망스러운 점은 딸이 보낸 편지의 내용이라는 것이 곤경에 처한 아버지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 외에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심지어 약간 짜증스럽기까지 한 부탁들(돈을 보내달라거나 무슨무슨 일을 도와달라는 등등)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발견했다는 124통의 편지가 모두 이 책에 실렸는지는 다 세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책에 실린 딸의 편지들을 읽어보고 내가 인간 갈릴레오에 대해서 더 알게 된 것은 많지 않다.

다행히도 이 책은 딸의 편지들만을 주루룩 늘어놓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편지들은 중간중간 쉬어가는 양념 역할을 해주는 한편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갈릴레오의 업적들을 소상히 설명해줄 뿐 아니라, 당시 교황을 중심으로 한 종교권력과 학문 세계와의 긴장 섞인 힘겨룸 등을 상당히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갈릴레오가 직면했던 당시의 종교권력은 그저 법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되뇌일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것이 아니었고, 갈릴레오가 얼마나 실제적인 위협을 느끼면서 자신의 연구를 수행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자신의 가톨릭 신앙을 고수하기 원했는지, 따라서 자신이 사랑하는 가톨릭교회가 자연의 진리를 직시하지 않음으로써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막아보고자 노력했는지, 또한 그런 시도가 꺾이면서 그가 어떻게 절망해 갔는지를 잘 그려주고 있다.

갈릴레오 딸의 편지보다 오히려 흥미로왔던 부분은 갈릴레오가 경험했던 소위 '종교재판'이라는 것의 상세한 중계이다. 저자는 재판의 심문과정에서 종교재판관들이 무엇을 물어보았고 갈릴레오가 어떻게 위기를 모면하고자 했는지를 생동감있게 보여준다.

이 책의 클라이막스라고 할만한 재판 장면 이후, 노년의 갈릴레오를 도와 그의 업적을 정리한 젊은 제자의 이야기가 책 말미에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새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갈릴레오의 딸>이라는 제목이 가진 숨겨진 중요성이 마치 추리소설의 결말과도 같이 갑자기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갈릴레오의 딸이 보낸 편지들은 호들갑을 떨만큼 흥미롭지는 않으나, 결국 이 책은 갈릴레오의 딸에게 바쳐도 좋을 듯하다.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시라. 좀 지루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참고 읽어보면 약간의 댓가가 있을 것이다. 책의 번역은 비교적 매끄럽고 디자인이나 책모양도 나름대로 특색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눅스*그냥 재미로 - 우연한 혁명에 대한 이야기
리누스 토발즈 & 데이비드 다이아몬드 지음, 안진환 옮김 / 한겨레출판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우선 내가 매긴 평점에 대한 해명부터. 별 넷을 주고 싶었지만, 반 개는 이 책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듯한 미디어 때문에, 나머지 반 개는 성의 없는 번역 때문에 깎았다.

우선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한 신문사에 의해 발행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저자 리누스 토발즈는 언론인 가족과 친척들 사이에서 별종으로 자라났고, 따라서 '언론'을 쓰레기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아마 그 신문사가 이 책을 펴낼 때는, 그 바탕에 깔린 태도 - 오픈 소스 내지는 카피레프트라는 - 에 대한 반가움과 또한 가벼운 필치로 씌어진 이 책이 가진 잠재적 상업성을 보았을 것이다. 다소 불행하게도 이 책은 그 두 가지 점에서 약간의 배신을 때리고(?) 있다.

1. 저자 리누스 토발즈는 그 자신이 책에서 누누히 강조하듯이 오픈소스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주의'를 혐오한다. 그것이 비록 오픈소스일지라도. 따라서 그는 리처드 스톨만 같은 이와는 다소 거리를 둔다. 그가 리눅스의 소스를 처음 공개했던 것은 철없는 대학생 시절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당시에는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았던) 인터넷 상의 다른 해커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한편 자랑도 하고 한편 도움도 얻기 위함이었다. 결과적으로 리눅스는 수많은 개발자들의 협력 속에 놀라운 성공스토리가 되었다. 그리고 토발즈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어떠한 해명이나 합리화도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재미'있었다는 것 말고는.

물론 지금에 와서는 리눅스의 성공을 여러 가지로 합리화할 수 있다. 폐쇄된 개발(Micro$oft를 생각해보라)보다는 수많은 능력있는 젊은이들에 의한 열린 개발이 훌륭한 결과를 낳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 참여한 이들은 젊은 시절 자기들만의 공동체에서 나름대로 실력을 뽐낸 기쁨도 누릴 수 있었고, 금상첨화로 그렇게 검증된 실력은 나중에 기업에 채용되는데 도움도 되었다. 또한 와중에 본의 아니게 리더가 된 리누스 토발즈는 백만장자가 되는 행운도 누렸다.

2. 이 책의 가치는 특이한 한 사람의 개인적 이야기를 솔직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개인적 이야기로 담길 내용이 사실 리눅스를 개발하던 그 몇 달 간의 고독한 과정과, 그 후 미국으로 이주해 잘 나가는 프로그래머로서의 삶 뿐이라는 점에서 처음부터 빈약하기는 했다. 그래서 그냥 두어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 위해, 토발즈와 그의 공동 저자(언론인!)는 약간 무리한 노력을 보여준다.

그 한 예가 책의 첫머리와 말미를 장식하는 토발즈의 인간사회 진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생존에서 사회적 질서로, 결국은 오락으로 발전해간다는 그의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고, 그 자신 이를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는 듯하다. (뭔가 멋있는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만들어낸...)

아무래도 인간존재의 의미 따위를 논하는 토발즈는 재미가 없다. 차라리 리눅스를 개발하는데 들어갔던 시시콜콜한 기술적인 이야기들이 독자 중 일부(컴퓨터광?)를 열광시킬 수 있을 것이고, 토발즈가 본 빌 게이츠나 스톨먼의 이야기들이 오히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일 것이다.

--------
이 책은 그야말로 재미를 위한 것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지어다. 리눅스에 관심있었던 사람이라면 그 창시자라는 토발즈라는 친구가 도대체 어떤 놈인지 한번 그 떠드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재미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 번역판에서는 고의인지 미숙함에서인지, 수많은 영어 단어들을 그저 음역만 해놓는데(군데군데 엉성한 번역과 함께) 그쳐서 얼핏 보면 대충 써서 팔아먹는 컴퓨터 매뉴얼을 읽는듯 하다. 허긴 생각해보면 이런 류의 사람들은 평소에도 그런 식으로 떠들긴 하더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문의 길 인생의 길 -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실천적지식인 12명의 삶과 학문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2월
평점 :
절판


무척 흥미있으면서도 한장 한장 읽어나가기가 힘겨운 책이 있는가 하면, 정말 언제 책장이 넘어가는지 모르는 사이에 이만큼씩 와있고 책을 놓고 잠시 쉬려면 다시 집어들 충동을 느끼게 만드는 책도 있다. 나에게 <학문의 길 인생의 길>은 후자와 같은 책이었다. 그나마 책의 구성이 자연스럽게 12사람과의 12 대화로 나누어져 있는 것 덕택에 간간히 책을 놓고 생각의 숨을 쉴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빨리 읽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쉽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을 펴들 당시, 이 책에 실린 12사람의 학자들 중 내가 그 저서를 한 권이라도 읽어본 이는 딱 한 분이었고, 이름이라도 들어본 이는 두세분 밖에 안 되었다. 그만큼 내가 우리 학자, 우리 학문에 대해 무지한 까닭이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내 전공(경제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은 분야(주로 역사학)의 학자들이 그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12개의 인터뷰는 역사문제연구소가 펴내는 잡지인 <역사비평>에 연재되었던 것들이다. 대중적으로도 비교적 알려져 있는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인 이이화 선생이 주도가 되어 발행하는 잡지로 알고 있다.

이 책의 서두에 인터뷰 시리즈의 취지를 설명하는 이도 이이화 선생이며, 12개의 인터뷰는 각 분야의 후학인 교수들이 진행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역사학 관련 잡지에 실린 인터뷰인 만큼 대상이 된 학자들은 대개 역사학자이거나 역사학과 이런 저런 관련을 맺은 이들이고, 폭넓게 말하자면 학문과 사회에 대해 고민해 온 '실천적 지식인들'이다. 비록 이 책을 만나기 전에 나는 그들을 몰랐지만 이 책을 읽으며 잠깐이나마 인간으로서, 학자로서, 대선배로서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엿듣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이 각 분야에서 어떤 학문적 업적을 이룩하였고 그 가치가 정말 어떠한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 젊은 학자들이 볼 때 이미 한물간(?) 세대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학문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고, 나름대로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쌓았으며, 그 뿐 아니라 당시 사회 속에서 그 학문의 의미를 찾고자 애썼던 이들이었다. 이들 인터뷰들 자체가 잡지에 연재로 실렸던 것이라 각 장들간에는 다소간에 시차도 존재하고, 따라서 각 인터뷰 시점에서 언급되는 당시 사회상을 엿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이다.

내가 처음 이 책을 고르기에 다소 망설였던 것처럼, 어쩌면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낯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 모음이지만 이 땅의 선배 지식인들의 진솔한 모습을 만나보는 일은 참으로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조만간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이었다. (지금껏 내가 예닐곱 편 쓴 알라딘 독자서평 중 처음으로 별 다섯개를 붙이는 것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가 믿음의 글들 166
조셉 딜로우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성경 아가서는 희한하다. 처음 성경을 읽는 사람은 왜 아가서가 성경에 들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가서에는 어떤 교훈적인 사건이 나오지도 않으며, 심지어 하나님을 직접 언급하는 경우도 드물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집어낼 만한 구절도 많지 않다.

보수적인 교회에서 아가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혹은 하나님과 신자 간의 사랑에 대한 비유(알레고리)로 해석되어 왔다. 따라서 인용되는 구절도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문맥을 무시한채 가스펠 송 가사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심지어 표준새번역 성경이 나왔을 때 그 표현의 정도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나에게 입맞춰 주세요, 숨막힐 듯한 임의 입술로').

아가서는 영어제목대로 노래 중의 노래, 문학 중의 문학으로, 아무리 비틀어 보려 해도 남녀간의 사랑을 솔직하게 다룬 문학작품이다. 조셉 딜로우의 해설서 '아가'는 이 점을 명백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아가서가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현대 독자는 그 사랑 표현의 방식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상대 여성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표현들이 너무 낯설고, 가끔은 뜬금없는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다, 화자도 남자-여자-코러스로 순식간에 바뀌곤 한다.

딜로우의 '아가'를 읽으면, 많은 의문이 해결된다. 저자는 상식적이면서도 정통적인 해석을 과거의 주석들을 참고하면서 전달함으로써, 독자가 원문의 강렬한 사랑의 이미지들을 생생하게 느끼게 도와준다. 저자의 해설을 읽다보면 아가서가 얼마나 '야한' 책인지 새삼 느끼게 되고, 그만큼 아가서의 힘은 살아난다. 또한 거룩한 성경에 이런 글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유대인들은 아가서를 결혼 축제 때 모여서 낭독하며, 이 때 미성년자들은 끼워주지 않았다고 한다. 성경 중에서 유일하게 '미성년자 가독불가'였던 셈이다. 그동안 억지로 거룩하게만 해석하려고 애써왔던 아가서를, 혹은 매우 지루하게 느껴졌던 어설퍼 보이는 사랑의 시를 원문의 힘 그대로 가까이 다가가게 해주는 좋은 해설서가 딜로우의 '아가'이다.

다만 한 가지 흠을 잡자면, 각 장의 말미에 나오는 적용 부분은 다소 구태의연한(?) 내용이 많고, 아가서의 흐름을 따라가는데 다소 방해가 되는 곁다리 이야기들인 경우가 종종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성경을 올바르게 읽고 해석하려면 적용의 문제도 중요하겠으나, 이 책에 실린 적용의 내용은 결혼이나 가정을 다루는 다른 좋은 기독교 서적에 비해 크게 새로운 것이 없다.

기독교인으로서 성(性)의 문제에 대한 신선하고도 솔직한 성경의 한 목소리를 듣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심지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서 아가서를 접해볼 기회를 본서는 제공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광순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1998년 7월
평점 :
절판


우선 이런 류의 역사책은 매우 재미있다는 걸 고백하자. 요즘 들어 역사를 읽는 맛을 흠뻑 느끼고 있지만, 이 책처럼 보통의 역사책에서는 지나가기 쉬운 사소한 대상으로부터 역사를 펼쳐 나가는 소위 '미시사'는 정말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미시사 책들이 많이 등장하는 최근 경향을 환영하면서, 한편으론 이 책에 대해서 아쉬운 점들도 있다.

우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cod 즉 대구라는 물고기가 정확하게 어느 물고기일까? 우리가 흔히 음식으로 접하는 대구라는 물고기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책을 폈던 나는 다소 당황했다. 책의 서두는 캐나다 연안에서 대구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던 어느 마을에서 시작한다. 그곳의 대구가 멸종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음식점에 넘쳐나는 대구가 멸종 위기라니...다소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면서 책을 읽어나갈수록, 보통 대구라고 부르는 물고기가 한두 종류가 아니라는 것과, 특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구는, 우리가 주로 먹는 아시아산 대구와는 서로 다른 물고기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어쨌든 대구라는 물고기는 유럽과 북미 지역 사람들에게 중요한 자원이었다. 주로 아메리카 대륙의 대서양 연안에서 잡히는 탓에 유럽인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멀리까지 가서 잡아와야 하는 물고기였고, 그래서 심지어 생대구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가공된 형태를 더 익숙하게 여겼다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대구라는 물고기가 노예제도와 어떤 식으 로 얽혀있는지에 대한 서술 부분이다. 사소해 보이는 이런 연결고리에서 더 큰 역사적 흐름을 읽어내는 것, 이것이 미시사의 힘이요 매력일 것이다.

매 장마다 끝에는 한 가지씩 관련 시대의 대구 요리법을 소개하고 있도, 책 말미에도 여러 가지 대구 요리가 소개되어 있다. 아마도 재미있으라고 포함된 것 같은데, 솔직히 별 재미가 없는 부분이었다. 그 요리법이라는 것이 너무 단순하거나(적당히 잘라서 삶아라 등) 아니면 무슨 이야기인지를 알수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