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수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표지가 원래는 이런 블루 였군요^^

 저는 헌책으로 사서 껍질이 없어요.  그런데 껍질 없는 표지도 까칠하니 촉갑이 좋네요 ~

 사랑할 땐 마음을 드러내야하는 것 처럼..

 

 

 

 

 

 

 

 

 

 

 

 

  연애? 그냥 결혼을 해야 할 뿐. 사랑? 공주의 키스를 받는다고 왕자로 변하는 개구리는 이 세상에 없어.

  나는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장소에서 날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공부따위에 내 생에서 가장 값진 시기를 낭비하고, 모든 일에 절제가 가능하며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모든 것을 결정 하는 것이 나. 수진이다. 그래서 연애도 사랑도 그렇고 그랬으며 그가 사랑에 빠진 것은 그의 문제일 뿐 나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나와 똑같은 사람이 여기 있다. 바로 주인공 필라.

 

  필라와 그는 스페인의 작은 산골마을에서 함께 자랐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만 그는 세상을 배우기 위해 길을 떠났고, 그녀는 뿌리를 내리기 위해 한 곳에 머물렀다. 십수 년 뒤 그들은 다시 만났다. 그는 신학생이 되었으며 성모님과 대화를 하고 사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기적. 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능력이 그를 불행으로 이끌거라고 밎는. 그를 아끼는 신부의 지지로 그는 그의 능력을 포기하고 자신의 사랑을 찾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필라는 언젠가 모험과 부, 그리고 꿈을 찾아 떠나갈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를 두려워 한다. 그런 필라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말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연습을 해보라고.  여러 해 떨어져 있었고, 다시 만난 시간은 단 일주일.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펼처지는 그와 그녀의 사랑이야기.

 우정보다 깊은 사랑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한쌍의 커플. 달달하고 애틋하면서도 현실적인 여성의 마음을 그대로 읽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나 와 닿는다. 그동안 왜 자신의 펜이기를 거부하였느냐고 나를 다그치듯 한문장 한문장 가슴속으로 파고들어온다.

 

 나는 코엘료 책을 많이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의 책에는 항상 신이 등장한다. 콕 찝어 말하자면 카톨릭의 신.

종교의 편견을 갖고 있진 않지만 부담스러웠다. 나는 묵향이 좋고, 향나무 냄새를 좋아하고 산을 좋아한다. 코엘료는 모든신이 동일 하다고 말하면서 항상 카톨릭 신을 소재로 이야기한다.

 

  이 책은 <연금술사>보다 더 깊고, 더 시적이고, 낭만적이고, 달달하다. 짝사랑하는 누군가를 우연히 만난 것 처럼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이 책에서 보여준 표현들이 진정 언어의 연금술이다.

 

p. 20

마법의 순간을 기억한다. '예' 혹은 '아니오'라는 한마디가 한 사람의 생을 영원히 바꿀 수 있는 그 순간을.

그 순간들은 이제 아득히 먼 옛일처럼 느껴지지만, 내가 사랑하던 이를 되 찾아 그를 다시 잃은 것은 단지 일 주일에 지나지 않는 시간이었다.

 

P. 60

현실에서의 사랑은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설사 내가 주는 사랑에 대해 당장 대답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언젠가는 원하는 사람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사랑을 위하여!"

"때론 사랑이 유치한 짓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는 현명한 사람을 위하여!"

"현명한 사람은 오직 그가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현명한 것!"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리것은 것!"

 

P.65

나는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과는, 어떤 경우에도 사랑에 빠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를 너무나 잘 안다. 우린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했으며, 난 그의 모든 약점과 두려움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를 존경할 수 없다.

알고 있다, 사랑이 댐과 같다는 것을. 아무리 조그만 틈일지라도 방치하여 물이 새어나오게 내버려두면, 그 작은 특이 곧 댐을 무너뜨리리라는 것을.

거센 물살의 힘을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댐이 무너지면, 사랑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나면 무엇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내가 나의 연인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P.93

자신의 꿈을 위한 싸움에서 뭔가를 잃는 편이, 자신이 뭘 위해 싸우는지도 모르는 채 좌절하는 것보단 훨씬 낫겠지요.

 

P.155

만일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겪게 하소서. 저에겐 살아가야 할 날들이 있고,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선택을 해야 한다면 바로 지금 하게 해주소서. 그러면 저는 그를 기다리거나 잊겠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잊는 것 또한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어느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P.280

네가 강가에 서 있으면, 나는 제 곁에 서 있을 거야.

네가 잠들면, 나는 네 문 앞에서 잠들 거야.

그리고 네가 멀리 떠나면, 난 네 발자국을 좇을 거야.

네가 사라져버리라고 말할 때까지.

그럼 난 떠나겠지. 

하지만 죽는 날까지 널 사랑할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땐 달달한 소설일 거라 생각했꼬, 책을 처음 받았을 때 표지를 보고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루이스 세풀베다의 최고의 환경소설이라는 사실. 그리고 1989년 티그레 후안상을 받았다고 되어 있는데 티그레 후안상이 어떤 작가가 받는 상인지 아무리 찾아봐도 알 수가 없다. 무지 궁금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처음 이 책을 선택 했을 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다가 첫장을 넘기면서 엄숙한 마음으로 바뀌었을 거라 생각한다.

 

  노인은 말 많고 탈 많은 일반적인 도시를 떠나 아마존 지역인 엘 이딜리오로 가서 살게 된다. 아무런 인위적인 손이 닿지 않은 그 곳에서 원주민과 함께 자연을 알아가고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삶을 배우고 평화가 찾아올 때즈음. 문명이 서서히 이 고장에 침투하기 시작한다. 노다지꾼들과 술병이 몰려들고, 양키들은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며, 원주민들은 조금씩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가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정글을 잘 아는 노인이 원하는 것은 그들과 함께 정글을 헤치며 이익을 엊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오두막에서 달콤한 연애소설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망은 정글의 맹수를 화나게 한 누군가에 의해 방해 받게 된다. 노인은 자연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암살쾡이를 만나러 숲으로 향한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해서 쉽게 읽히기는 하나 언어는 예술적이고 인물들은 신비로우며 밀림은 울창하고 자연은 아릅답다. 세풀베다는 이 책을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바치며 우리에게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있다. 칠레의 저항문인 세풀베다는 직접 아마존 밀림지역에서 원주민과 함께 직접 생활했다. 하지만 멘데스가 죽기전 10년동안은 그곳에 대한 어떠한 글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글을 써서 아마존에 대한 환상을 일으키면 그곳이 보존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뒤 멘데스가 살해당했을 때 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는 말한다. " 민주주의 기반이 없는 경제발전은 성공할 수 없다고."

우리의 386세대처럼 그도 겪었다. 칠레에서의 군사정권을.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교도소에 투옥되고, 인접국가를 떠돌며 망명생활을 하고, 전투에 참전하고...

마침내 작가의 길을 가게 된 그는 소설을 시작할 때부터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는 행복하다고 한다.

 

우리의 자연은 안녕한걸까요?

 

 

p.44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 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잔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음절과 단어와 문장을 차례대로 반복하는 노인의 책읽기 방식은 특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또 읽었다.

 

p.52

  가난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용서해도 실패만큼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곳에 남아서 사라진 기억들을 보듬고 살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p.62

  어느 누구도 초탈의 순간에 있는 타인의 천국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지.

 

p.72

  나는 글을 읽을 줄 알아.

  그것은 그의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는 글을 읽을 줄 알았다. 그는 늙음이라는 무서운 독에 대항하는 해독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읽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읽을 것이 없었다.

 

p.100

  사실 노인은 삶의 지혜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자신에게도 그런 미덕이 찾아오리라고 기대했고, 내심 그런 미덕이 주어지길 간절히 기원했다. 물론 그가 기대하는 미덕은 그를 과거의 자신으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지혜이자 스스로 만든 덫이 빠지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지혜였다.

  그런데 또다시 걸려들고 만 거야. 빌어먹을! 도대체 이번에는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시"는  문학 장르. 자연이나 인생대하여 일어나는 감흥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언어표현한 이다. 형식따라 정형시자유시산문시나누며, 내용따라 서정시서사시극시나눈다. [비슷한 말] 포에지(poésie). 라고 네이버아저씨가 알려주신다. 하지만 나는 "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시를 읽을 때에는 .노래하듯이 운율을 살려서. 재미있는 표현을 찾아가며, 떠오르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읽는다'고 배웠다.

 

  하지만 나는 "시"라는 것이 아직 어렵다. 나에게 '시'는 자나가다 제목한줄 마음에 들면 그 한줄을 되뇌어 보고 생각해보고 마음에 담아보는 것 뿐. 그 시 전체를 다 이해하고 음미하지는 못했다.

 

  그때,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눈높이를 한 단계 상승시켜 줄 것이라 기대하며 펴낸 이 책은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찾아서 찾아서 공부를 하듯 시를 읽어야 알게 될 것들을 한편의 시 옆에 친구가 이야기 들려주듯 뒷담화를 들려준다. 그래서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그 시를 알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위선환 시인의 ' 새떼를 베끼다' 라는 시를 두고 이렇게 설명한다.

 

P.59

'맞부닥뜨리다', '관통하다', '비다'라는 세 형용사의 변주를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 가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든다. 삶이란 새떼처럼 서로 부딪치기도 하는 것, 부딪친 뒤에는 서로를 관통하는 것, 관통했으나 구멍 나지 않는 것. 굳이 말하자면 '공'의 세계가 아닐까. 당신, 이 시를 읽으며 반야바라밀다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를 떠올려 봐도 좋겠다.

 

김준태 시인의 '감꽃'을 두고는 이렇게 설명한다.

 

P.61

  남도의 키 크고 눈매 선한 이 시인은 역사를 천형처럼 짊어지고 시를 토해낸다..... 단 넉줄의 시에 영욕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가 가차없이 압축되어 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딱딱한 시간 구조가 '세다'라는 동사에 실려 명료하게 우리를 찌른다. 여기서 누가 아프지 않겠는가. 여기서 누가 지금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서슴없이 말하겠는가. 한때는 살육의 전쟁을 수행했고, 지금은 자본의 누예가 되어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부끄럽지 않은가. 특히 마지막 줄을 읽으며 당신과 나는 오래 침묵해야한다. 당신, 그리고 나는 먼 훗날에 과연 무엇을 세면서 살아온 날을 되돌아볼 것인가?

 

 

< 안도현 시인이 노트에 베낀 시>

1부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장편 - 김조삼

백석의 시집에 관한 추억 - 서정춘

밥그릇 - 정호승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 김사인

파안 - 고재종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처럼 - 장석남

수문 양반 왕자지 - 이대흠

봄날 오후 - 김선우

묵죽 - 손택수

찜통 - 박성우

파행 - 이진수

살구꽃 - 문신

 

2부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돌 하나, 꽃 한송이 - 신경림

새떼를 베끼다 - 위선환

감꽃 - 김준태

태백산행 - 정희성

별빛들을 쓰다 - 오태환

 손님 - 백무산

도장골 이야기 - 부레옥잠 -  - 김신용

밀물 - 정끝별

부검뿐인 생 - 이정록

불혹, 혹은 부록 - 강윤후

가재미 - 문태준

부부 - 오창렬

 

3부 마음의 풍경

그 굽은 곡선 - 정현종

들찔레와 향기 - 오규원

이런 시 - 최승자

고니 발을 보다 - 고형렬

고래의 항진 - 박남철

바람 부는 날이면 - 황인숙

흰뺨검둥오리 - 송재학

호랑나비 돛배 - 고진하

뻘에 말뚝 박는 법 - 함민복

11월 - 최정례

아, 오월 - 김영무

왜가리는 왜 몸이 가벼운가 - 이나명

 

4부 그대 언제나 내 뒤에서

물 끓이기 - 정양

환한 걸레 - 김혜순

가시 - 남진우

뻐꾸기는 울어야 한다 - 이문재

만년필 - 송찬호

트렁크 - 김언희

빗방물, 빗방울 - 나희덕

진흙탕에 찍힌 바퀴 자국 - 이윤학

 월식 - 강연호

불룩한 봄 - 강미정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 이병률

절편 - 유홍준

 

한 부에 12편의 시를 실으며 50여편 정도가 실린 듯 하다.

이런 시들 중에 아는 작가의 아는 시도 있고, 모르는 작가의 아는 시도 있고, 아는 작가의 모르는 시도 있고, 모르는 작가의 모르는 시도 만났다.

 

모르는 작가의 모르는 시 중에서,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시가 한편 있어 옮겨 본다.

 

 

가재미

 

                   -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냐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책의 곳곳에 김기찬(1938~2005)사진 작가의 골목안 풍격들이 실려 있어 감동을 더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