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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2003년 2월
절판


평소의 귀가 시각이 되자 그는 소리를 내며 집까지 걸었다.
하모니카 소리가 뚝 끊어졌다.
천천히 열쇠를 꺼내 문을 열자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창가에 앉아 있다 히메코가, 왜 이렇게 늦은거야, 하고 거칠게 말한다.

달려가서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있는
그에게 그녀는 느닷없이 무척 슬퍼보이는
눈길을 던진다. 그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다.
......

마슈는 생각하면서 방석 밑에 있는 하모니카를 언제까지나 못
본 척 하고 있다.-어디쯤쪽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짚신을 품어 따뜻하게 해서 오다 노부가나
에게 바쳤다. 나는 얼음을 품고 있다가 히메코에게 나를 바친다.
하지만 결코 눈에 들려고 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녀가 기분
좋게 지내기만을 바랄 뿐이다. 물론 그런 터무니없는 것을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원한다면
정말로 그렇게 해버릴 것만 같다. 그 정도라면 간단한 일이다.

......어짜피 나는 바보니까 제대로 말로 설명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하지만
왜 그런지 가슴의 통증은 여전하다.
자신을 후회하게 만드는 사람은 얼마나
사랑스럽고 멋진가.
어느새 그는 히메코를 숭배하고 있다.
-어드메쪽

이런 추운 날에 나가다니 참으로 별난 사람이로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선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술을 데웠다. ......

오징어 젓갈을 그릇에 담았다.
히메코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가게 메뉴에 젓갈이 들어있을 때 남은 게 있으면
잽싸게 싸서 히메코 님께 갖다 바쳐야 해, 하고
자기가 말해놓고서.
코로 먹으라고 심술궂게 명령해도 상관 없었다.
열심히 먹고 있는데 젓갈하고 민달팽이는 참 비슷하다는
식의 짓궂은 말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먹지도 않고 사라져 버리는 것에 비하면.-야마다에이미쪽

그녀는 지금 나를 무척 쓸쓸하게 하고 있다.
그건 좋다. 하지만 자신이 그녀를 쓸쓸하게 만들고 있다면?
견딜 수 없다.
가장 쓸쓸하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둘도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아닐까?

다시 한 번 그녀를 만나게 되면 그 때는
나의 팔 안에 가두어 버리리라.
서투른 노래지만 그래도 불러주리라.

이 사람에게는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고 서로 생각하며
마주 볼 때 비로소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사라지게 된다.

그 때는 어느 한 쪽에서 안거나 안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껴안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공주님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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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11월
구판절판


좌석버스가 빠앙, 소리내며
우리 곁을 스쳐갔다.

아무리 더운 여름햇살이라고 하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달려 가는 동안에는 덥지 않다.
그처럼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해도
우리가 달려가는 한은 절대로 절망적이지 않다.

우리는 달려 가면서 영원히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영원히 달려 가야 한다.

-7번 국도 중에서.
-어디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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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답다. 박사가 그토록 사랑한 숫자들과 아이들이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알겠다.

박사는 80분밖에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지만, 그의 마음은 따뜻하고 모두를 훈훈하게 한다.

아이의 생일을 잊지 않기 위해 큼지막하게 포스트 잇으로 온몸에 메모를 한다.

애틋하고 고귀하다.

너무 많은 것에 시달리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몰라 답을 적지 못하는 우리에게

박사가 일깨워주는 간명한 진리는,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힘껏 주위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머리가 쑥 눌린 듯한 모습이어서 붙은 별명인 루트, 그 아이를 지켜내려는 박사의

모습은 순수하면서도 숭고하다.

숫자와 아이의 공통점은, 이야기가 무궁무진 있다는 것일까.

1, 2, 3, 4, 5, 6, 7, 8, 9, 10......

우애수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인간사.

사람들도 숫자처럼 어쩌면 아주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조화롭게

서로를 아끼며 살아 갈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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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못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재밌는 소설이다.
후련하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 머릿속은 텅텅이지만
생각 하나는 바르고 심지 하나는 굳은
주인공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해준다.

주인공 엄마와 할아버지 역시 구제불능이지만
그런 셋이 모여 사는 가족은 오히려 평범한 가족보다
더 행복하고 순수해보인다.

서로가 무리하고 있지 않아서 일것이다.
말을 하기 보다는 말을 들어주고
스스로 깨치게끔 하는게 고등학생을 위한 진정한 교육이니까.

작가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썼지만 성인들이 읽기를
더 권하고 싶다고 했고 책장을 덮으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주인공은 내가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
영길이를 좀 닮았다. GTO의. 그리고 공중그네와 인 더 풀 에
나오는 못 말리는 의사 선생이랑도.

이들의 공통점은 끝이 없는 낙천성과 천진함.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깨끗한 본성이랄까.
음, 그런 자세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이 사회는
좀 더 재밌어지고 신날 것 같다.
즐겁고 유쾌한 세상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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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달려라, 아비.

아비

영화 <아비 정전>의 아비는 아니었다.

아버지를 친근하게, 아니 어쩌면 낮추어 부른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그 이름은

묘하게도 아비(阿飛)라는 말과 뒤섞여서 내게 전달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딱 한 번 날듯이 달렸다. 어머니와 잠자리를 함께 하기 위해 피임약을 사러(!) 

그리고 어처구니 없게도 피임약과 상관 없이 '내'가 태어났다.

엄마도 나도, 어디론가 가버린 아버지를 그리고 있지만 그 표현 방식은 무뚝뚝하다.

"잘 살고 있겠지".

무심결에 한 마디 툭 뱉는 그 말이 왜 다른 어떤 기다림보다 더 절실하게 들리는 것일까.

아버지, 아비, 애비. '어미'와는 또 다른 이 시대의 단면인 아비를 통해 작가는 새로운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었음 이리라.

달려라, 달려

달리는 것은 마치 숨쉬는 것과도 같다. 삶에 대한 또 다른 은유다. 조금만 무리해도

금방 균형을 잃는다. 인생 초반부터 너무 달려대면 나중에 후회한다. 몸 상하고 맘 상한다.

딱 한 번 러너스 하이까지 달려본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보다 빨리 달리는-비록 택시로이긴해도-

어머니, 그리고 그들 사이의 나.

언어유희를 좀 해보자면, 달리는 것 외에 우리가 달리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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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1: 작가가 심드렁하게, 그러나 인간 본성에 대한 적절한 묘사를 한 구절이 반향을 가져다 준다.

"정말 나쁜 사람은 자기가 나쁜 줄도 모르는 채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는 것.

덧2: 발랄하지만, 동시에 속 깊은 문장들이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소설집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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