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내가 선물한 희진샘 팟캐스트를 들을 때도 그 생각을 하다가 말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꼭 말해야 되겠다 생각했다고. 내가 선물한 <섬에 있는 서점>을 다 읽고 그 생각을 했다고 했다.
<섬에 있는 서점>...?
감동적인 말이었는데. 나도 그 친구를 좋아하는데. 그리고 그 책도 읽었고 좋았던 기억인데. 그런데 그 책을 그 친구에게 선물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거 말고 전에 만났을 때 기차타고 가면서 읽으라고 <밤의 여행자들> (재미있다길래) 을 선물하긴 했는데...
그래서 좀 부끄럽지만 주저하다가 물었다. 그게 내가 선물한 책이 맞냐고.. 그랬더니 맞다고 하면서 <밤의 여행자들>은 아직 못 읽었다고 했다.
그런가... 나는 그 책을 사서 읽지도 않았는데. 전자책으로 읽었고..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선물할만큼 좋아했었나, 그냥 책 좋아하는 친구한테 가볍게 선물하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 친구에게는 선물할 것 같지 않은 책이어서 좀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러고서 돌아와 알라딘 예스24 등 주문내역을 살펴보니 내가 구매한 적이 없었다. 난 어디서 그걸 사서 선물한걸까.. 아직도 그게 내가 선물한 책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그 책은 집사2가 나한테 권한 책이었고 집사2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다고 했던 구절은,
에이제이는 딸의 이마에 입맞춤했다. 이런 훌륭한 너드를 배출하다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였다 (....) -_-
어쨌든 그 친구가 그 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나한테 연락하게 만든 구절은,
"지난 가을에, 우리가 내내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을 때…… 저기, 당신 때문에 내가 브렛과 깨졌다고 생각지는 말아줬으면 싶군요. 그런 게 아니니까. 내가 브렛과 헤어진 건, 당신과 얘기하면서 다른 사람과 감수성을 공유하고 열정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기억해냈기 때문이에요. 바보 같죠." (p.159)
였다. 서재 친구들은 이 책을 어떻게 생각할까 찾아보다보니, 다락방님도 이 구절을 적어두셨길래 거기서 복사해왔다. (ㅋㅋㅋ)
다락방님은 이 구절을 적으며 관계에 대해 얘기하셨는데, 내 친구도 그랬다. 최근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람이랑 이야기가 정말 잘 통해서 옆에 있는 (이야기가 잘 안 통하는) 사람을 새삼스레 다시 보게 된다고 했고, 이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고. 그런데 그 책을 내가 선물해줘서 좋았다고.
<섬에 있는 서점>에서 에이제이와 에이미 (에이- 가 같네?) 가 둘 다 책을 좋아했고 책으로 인연이 되어 결혼을 했다는 것은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에겐 마야와 에이제이가 나누는 공감이라든가, 마야의 출생의 비밀이라든가, <탬벌레인>의 행방이라든가, 에이제이의 처형인 이즈메이의 이야기라든가... 그런 것들이 더 인상깊었기 때문에 저 구절은 기억하지 못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어제 정희진의 공부 5월호를 듣지 않고 <섬에 있는 서점>의 챕터 2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를 들으며 퇴근했다. 저기부터 듣기 시작한 이유는 챕터 제목을 보니 저기쯤에 그 얘기가 나올 것 같아서였다. 생각보다 좀더 뒤에 저 구절이 나왔지만... 오랫만에 다시 읽으니 아니 들으니 어찌나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재미있고 운전하는데 졸리지도 않고..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대화도 좋고. 너무 즐거운 퇴근길이었다. 물론 그 전 두 달 동안 내가 들은 책 탓일 수도 있지만..
친구한테 내가 이 부분을 다시 읽었다고 알려줘야겠다. 그 사람과 만난 게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당신이 좋다면 된거지, 관심은 없다-고 했는데 그게 어쩌면 서운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어제서야 비로소 들었다.
오늘 출근하면서도 들었는데 여전히 재미있었다. 내친 김에 다 들어버리고도 싶지만, <섬에 있는 서점> 나머지는 지루하고 우울한 날의 퇴근길을 위해 남겨둬야겠다. 다시 들으니 그 때 내가 몰랐던 케이트 쇼팽의 <각성> 그리고 E.L. 코닉스버그의 <클로디아의 비밀>의 제목이 귀에 들어와서 반가웠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도 읽어보고 싶다.
그런데 표지 왜 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