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책을 읽으면서 여성이 각성하고, 개인적으로 변화를 만들고 연대해도 그 열매를 모두와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법에 기반해야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해왔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고 논의되는 과정을 보면, 그것을 너무 뒤로 밀어둬서는 안될 것 같다고도. 그래서 막연히 관심이 있었는데 막상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성주의책함께읽기 6월의 책을 7월 1일에 겨우 다 읽었다. 대학 때 교양으로 많이들 듣는 민법총칙조차 듣지 않았던 나라서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그러려니- 하면서 끝까지 읽을 수는 있었는데, 각 판결의 의미 (친절하게 요점이 요약되어 있지만 찾아보고 싶은 케이스가 몇 있었다) 와 법률로 적용될 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 행간의 의미를 내가 다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초반 여러 여성주의 이론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에서, 내가 여성주의책을 읽으면서 접하게 되었고 (이름은 몰랐지만) 일정 부분 내재화하게 된 '지배 이론 Dominance Theory' 을 알게 되어 기뻤다.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급진주의 페미니즘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 - 개인이 아닌, 사회구조적인 부분 - 을 (물론 유쾌하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지배 이론이 일부 채워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작년 '포르노랜드' 를 읽으면서 알게된 캐서린 맥키넌과 안드레아 드워킨의 이름도 반가웠다.
직장, 교육, 젠더, 결혼과 가족, 섹스와 폭력 등 각 이슈와 관련된 법률이 특정 사건의 판결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또 일부의 경우 어떻게 수정되는지를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미국의 사건, 법률이라서 아무래도 조금 거리를 두고 읽게 되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법률을 새로 만들거나 수정하는 것은 기존의 법률을 고수하고자 하는 관성 외에도 법률이 바뀌었을 때 미치는 여러 여파를 다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도 크고 오래 걸리는 일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됐다. 개인간 혹은 개인-기업 이나 개인-국가간 소송이 미국에 비해 많지 않은 한국에서는 그런 개별 케이스로 조금씩 고쳐나간다는 것은 더욱 힘들 것 같다. 미국의, 비교적 소송을 시작하기 쉬운 문화를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많이 들어왔는데, 소수의 힘없는 사람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긴 시간 동안 관심과 노력을 할애하는 것도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사회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로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한국도 변호사 수도 많고 하니, 비용과 절차가 좀더 접근 가능해지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려면 아무래도 나처럼 법을 멀리하지 않고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겠다.
물론 법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듯 수단으로서의 의미도 크지만, 사람들이 그 법이 뜻하는 바에 대해 잘 알게 된다면 상징적으로 많은 사람의 의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그런 점에서 차별 금지법은 수단으로서도 상징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책이 있길래 예전에 보관함에 담아두었었는데, 빼곡한 목차를 보면 이 책은 현재 한국의 법률에서 여성과 관련있는 부분을 소개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엄청 지루할 것 같아서 차마 살 엄두는 내지 못하겠고, 도서관에 있으면 한 번 펴볼까 싶었지만 주변 도서관엔 없다. 책바다 서비스에서 찾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