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헤로도토스와의 여행(크림슨, 2008/2013)

한 사람의 생 이후에 출간된 책이다. 그는 마지막 책을 집필하고 떠났다. 나는 언제나 그랬다. 어디로 갔을까가 궁금하지 않고 그 사람의 생이 어디에 앉아 쉬고 어디서 격노하고 어디서 사랑을 얻는지, 그리고 그가 있던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가 더 궁금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유몰론자다. 세계를 세계 안에서 보고자 한다. 그래서 상상의 영역이 비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와 여행하는 동안 나는 한 사람 안에 자리잡은 하나의 책을 발견한다. 하나의 책과 살고 떠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여행이 이 책이다. 헤로도토스가 찾고자 했던 것도 그 미지의 것, 자신이 모르는 것, 그러나 알고 싶은 것들을 향해 떠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떠남의 아름다움을 이 책을 통해 수혈받는다. 시베리아로 떠나게 된다면 나는 평생 간직하고 싶은 하나의 책을 가방에 넣을 것이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그가 보았던 것, 그가 고민했던 것들을 더듬어볼 테지만, 그 사이 백년이나 지난 풍경이 처음으로 내게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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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흑단(크림슨, 1998/2010)

'르포 에세이'라는 새로운 접근이다. 카푸시친스키는 폴란드의 기자이자 르포작가이자 시인이다. 1958년 아프리카를 취재할 기회를 얻은 그는 유럽의 식민지에서 막 깨어나기 시작하는 아프리카의 혼란한 내전 현장을 발로 뛰어다닌다. 전쟁만 취재하려 했다면 긴박함을 전해야 하는 기사식 르포가 나왔을 테지만 그는 이 책을 1998년 출간한다. 아프리카와 만난 첫 대면 후 다시 아프리카와 만난 기간이 40년에 이른다. 때문에 그는 이 책을 에세이 형식으로 출간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것이 시인의 눈과 기자의 경험, 그리고 그 시간만큼의 사상적 깊이가 담긴 책으로 완성되었다. 다시 읽어보니 곳곳에 그가 처음 소개하는 아프리카라는 대지의 아름다움, 느리고 아무것도 할 것 없는 사람들의 정신세계, 물질관념, 즉 세계관 등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해준다. 코끼리의 죽음이나 딱정벌레, 거미에 관한 이야기들, 태양이 모든 것 삼키는 곳에서 물의 증발이 가져오는 사람들의 생황양식, 내전의 뿌리를 파헤치고 내전이 아이들의 전쟁이 되어가고 있는 참상, 특히 말라리아에 걸린 자신이 겪은 극심한 고통을 멈출 수 있는 위로의 방식은 문학적 상상력을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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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모흐센 마흐말바프, 칸다하르(삼인, 2002)

한 소년이 있다. 모든 인간은 한 몸의 일부라고 믿고 있는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아프간 협곡에서 양과 함께 자랐다. 양은 소년의 가족의 일원이었으며, 소년은 열심히 양귀비밭을 일구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면 소년은 그것을 거두어 어깨에 이고 맨발로 협곡에서 벗어나 자신만이 아는 지름길로 걸었다. 길은 몇개의 산을 오르고 내리며 이어졌고,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갔다. 오래 걸을수록 어깨에 이고 있는 양귀비는 점점 가벼워졌다. 드디어 이란 국경 지대에 도착했을 때 소년의 발은 살갗이 다 벗겨져 더이상 걸을 수 없었다. 소년은 이란 밀수업자들을 만나 절반으로 줄어든 양귀비포대를 주고 얼마간 굶주림을 대신해줄 빵을 얻었다. 소년은 거기서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발이 짓이겨진 한때의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양귀비포대도 없이 자신과 똑같은 빵을 얻어가고 있었다. 소년은 얼른 긴 줄의 꽁무니에 몸을 밀어넣었다. 드디어 소년의 차례가 되고 소년은 빵을 살 수 있는 20달러가 찰랑 손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소년은 트럭에 실려 국경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한곳에 버려졌다.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은 얼른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갔다. 소년은 그저 앞사람을 따라 걸었다. 걷다 지친 사람이 쓰러지면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를 발가벗긴다는 것을 소년은 똑똑히 보았다. 눈만 껌뻑이며 살려달라는 목소리조차 내뱉지 못하는 그저 죽어가는 사람들이 내일의 자신임을 소년은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소년은 얼마 전 도착했던 그곳에 도착했다. 그들은 소년에게 그때와 똑같이 20달러를 주며 말했다. "이제 너희 나라로 돌아가!"

이 책은 소년이 돌아가야 할 그 나라가 인류의 무관심 속에 파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처절한 내부비판서이자(아프간이 이란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것은 250여 년 전이다) 치욕을 못 이기고 스스로 무너져버린 불상의 한 조각 돌멩이다. 그 나라는 2천만 명의 굶주린 국민이 있고, 그 중 30퍼센트는 파키스탄과 이란으로 떠나는 난민이 되었으며, 전국민의 10퍼센트는 이미 굶어죽었다. 그렇다면 남은 60퍼센트에게 희망은 있는가?

한 소년이 있다. 모든 인간은 한 몸의 일부라고 믿고 싶었던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이제 아프간 협곡으로 돌아간다. 소년의 손바닥에는 그 나라로 돌아가는 댓가로 UN으로부터 받은 20달러가 있다. 이 돈은 소년이 돌아가야 할 나라의 일년 아편수익 5억 달러와 북부의 가스수출로 얻은 3억 달러를 합한 8억을 굶어죽어가는 2천만 인구로 나눈 1인당 연간 소득 40달러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이다. 마약을 팔았으므로 마약밀매상이 되어버린 소년은 자신이 돌아가야 할 나라가 전세계 마약의 절반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 절반의 수출액 5억이 년간 전세계 마약 거래액 10억이 아니라 무려 160배에 해당하는 800억 달러라는 것을 모른다. 이 돈이 세계 정치에 관여하고 마피아에게 들어감으로써 다시 200배로 가격이 오른다는 것을 모른다. 많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비밀 예산을 이 마약 밀매로 충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왜 자신이 마약이 아닌 밀을 재배할 수 없는지 소년은 모른다. 소년은 다만 20달러를 손에 쥐고 자신의 협곡으로 돌아가는 아프간의 남아 있는 희망, 걸을 힘조차 없으므로 난민 대열에 합류할 수도 없는 그 60퍼센트의 한 명일 뿐이다. 소년이 돌아가는 길에는 평화의 이름으로, 반테러 전쟁으로 쏘아올린 영리한 폭탄이 알 카에다로 가는 길을 잃고 소년이 살았던 협곡으로 떨어진다. 이미 폐허가 된 그곳으로 소년은 돌아간다. 평화의 이름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의족을 줍기 위해 지뢰밭으로 뛰어가는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이 뛰어가는 중간엔 이런 팻말이 서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4시간마다 7명이 지뢰를 밟습니다. 오늘 혹은 내일 그들 중 하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희망의 60퍼센트가 온전히 두 다리로 서 있으려면 이후 50년 동안 무리를 지어 지뢰를 밟아야만 한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소년은 다행히 그 7명에 속하지 않는 채 한 시간에 14명이 기아와 전쟁으로 죽어가고 다른 60명은 난민이 되어 오로지 걷고 있는 이 나라의 폐허가 된 협곡으로 20달러를 들고 돌아가는 중이다.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말한다.

"오늘 당신이 아프가니스탄에 간다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누구 하나 움직일 힘이 없으며 싸울 무기도 없다. 잔혹한 형벌이 두려워 범죄도 저지르지 않는다. 유일한 구제책은 인류의 무관심 속에 죽어가는 것이다. 지금은 사디의 '모든 인간은 한 몸의 일부' 시대가 아니다. 아직 심장이 돌로 변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바미얀의 석불이었다. 자신의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거대한 비극이 주는 굴욕감에 무너지고 말았다. 빵을 구하는 국민 앞에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던 부처는 치욕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부처는 이 모든 빈곤, 무지, 억압과 죽음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산산이 부서진 것이다. 그러나 무관심한 인류가 들은 것은 단지 불상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이 전부였다."

바미얀에 있는 세계 최대의 불상 파괴 사건은 전세계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곧 전세계 예술가와 문화인들이 불상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언론은 절대로 공정하지 않다. 일방적으로, 때론 교묘히 사실을 은폐한다. 불상 파괴 사건을 통해 분노를 표출했던 전세계 예술가들은 "왜 아사에 직면한 백만 명의 아프간인들에 대해 슬퍼하지 않는가? 그들이 죽어가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가? 왜 모두들 불상이 파괴된 것에 대해서는 소리내어 슬퍼하면서도 기아로 죽어가는 아프간인들을 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라고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묻는다. 정확한 통계조차 나오지 않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수가 너무 엄청나서 차마 언론은 그들의 현실에 대해 언급조차도 못하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가? 사람들이 침묵할 때 돌들이 일어나 스스로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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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귄터 발라프, 암행기자 귄터 발라프의 언더커버 리포트-세계화가 만들어낸 '멋진 신세계' 탐험기(프로네시스, 2009/2010)

귄터 발라프라는 작가가 있다는 걸 재작년 연말 시상식에서 알았다. 시인이면서 르포를 쓰는 한 작가가 내 옆에 앉았는데 내가 르포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자 그가 귄터 발라프를 아냐고 물었다. 내가 이름을 못 알아듣자 그는 바로 쪽지를 꺼내 '귄터 발라프'라는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소개해주었다. 암행기자라고 했다. 독일인이라고 했고 그가 내는 책은 유럽에서 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인기작가라고 했다. 그런 르포작가가 있다고? 나는 의아했다.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으니까. 나는 막연하게 미국식 추리소설처럼 혹은 미드처럼 다음을 보게 만드는 대중성이 그의 인기 비결이 아닐까 짐작했다. 정직하게는 대중추수적인 접근을 하는 작가가 아닐까 의심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내가 모르는 작가이니 그 정도 삐딱함은 괜찮겠지 싶었다. 그런데 내 예상이 틀렸다. 그는 끊임없이 접근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부자의 시선을 얻기 위해 암행을 하고, 위가 아닌 아래의 시각을 얻기 위해 직접 체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방법은 유럽 사회에 충격을 주고 시민의식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정책 변화까지 이뤄내고 있다고 했다. 1967년 알코올중독자, 노숙자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화학공장 노동 현장으로 들어가 취재한 이야기는 13가지 불편한 르포로 발표되었다. 이후 1977년에는 빌트지의 실상을 고발하기 위해 편집부에 취직하고, 1985년엔 앞서 본 터키 이민자로 변장해 튀센 철강회사에 위장 취업해 가장 낮은 곳에서, 2007년에는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로, 2009년에는 흑인으로 위장해 독일사회의 인종주의를 공격했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그는 이민을 바라보는 독일사회 시민의식에, 유럽에 침투한 미국식 세계화에 의해 뒤틀린 노동현장에, 도시인이지만 도시에서 밀려난 노숙자의 생활에, 서비스 노동으로 포장된 감정노동의 세계에, 민영화되어 가는 세계의 작동원리에, 자본이 깊숙이 침투한 법률적 싸움에 접근해 그 피폐한 삶의 현장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온 2009년 그의 나이는 68세였다. 늦은 나이는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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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귄터 발라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인권 사각지대 잠입 취재기(알마, 1985/2012)

책이 저항의 도구가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니 저항의 도구로서 책이 쓰여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80년대 대학생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운동에 투신할 때, 독일에 사는 한 남자는 우리의 '노동자문학회'와 비슷한 노동자 글쓰기 모임인 '61그룹'에 가입해 르포를 쓰기 시작한다. 물론 그의 글쓰기 배경은 위장취업을 통해 얻어진 것이었다. '산업르포'라 불리는 그의 르포들은 스스로를 "자유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 사회 속의 훼방꾼"으로 자처하는 권터 발라프에 의해 새로운 장르를 획득한다. 어떻게 쓰여지느냐면, 사회에 발표된 하나의 기사를 보고 과연 그런가 실험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는 독일 사회의 이민자인 터키인 알리로 변장해 위장취업을 하고 그들과 똑같이 일한다. 그 보고서가 이 책이다. 영상과 독특함이 미학으로 포장되는 사회에서 저항의 글쓰기 또한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몇 년 전 한겨레기자들이 인권 사각지대에 위장취업 후 내놓은 리포트(일어나라, 인권 OTL)도 이런 시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을 보며 사회적 분위기와 자료들, 인터뷰식 취재만으로는 르포가 문학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용기와 과감한 도전, 그리고 진짜 현장은 어떠한지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줄 수 있는 르포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시몬느 베이유가 쓴 노동일기(이삭, 1983)의 세세한 기록과는 또 다른 현대적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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