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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대해 반드시, 마땅히 말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문장마다 눈물을 흘리다가 결국 편지를 쓰기로 합니다.

 

하명희 (Myong Hee Ha) 샘, 좋은 소설 고맙습니다.

 

먼저 개인적인 고백을 해야겠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저의 첫 책과 두 번째 책 사이에 있던 제 고민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그러니까 이런 것이었습니다. 도시 빈민으로 태어나 도시 빈민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던 내가 그 삶 속에서 쓰고 묶었던 소설이 제 첫 번째 작품집이었습니다. 결혼을 몇 달 앞둔 시점이었지요. 그리고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제 삶은 소시민의 평범한 삶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변화는 아닙니다. 단칸방에 살다가 (거실을 겸한 안방을 포함하여) 방 두 칸짜리 임대 아파트가 생의 가장 큰 도약이었던 삶이 20평대의 아파트로 옮겨온 것이지요. 내 집은 아니지만 어차피 평생 내 집이라는 것, 내 방이라는 것도 가져보지 못했던 제게 누구나와 똑같이 사는 아파트라는 공간의 삶이 주는 울림은 참으로 크고 무겁고 묘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으로서도 소설적 자아로서도 경험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그런 삶이었지요. 그것은 내가 모르는 새로운 서사의 공간이었습니다. 이제, 전과 다른 새로운 소설을 쓰리라 꿈에 부풀었는데, 그러나 그 꿈은 그저 꿈이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안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새로운 것은 낯선 것이었고, 낯설다는 것은 쌓인 서사가 없다는 것이었고, 그 낯섦을 쓰기에 저는 무기력했습니다. 핑계 같지만, 그리고 핑계이지만 결혼과 출산과 더불어 찾아온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일이 한꺼번에 닥친 삶에 적응하기도 힘들었거든요. 글을 쓰는 자로서 가지고 있는 기억은 온통 내가 살았던 땅에 있는데, 문장도 서사도 은유도 모두 그 안에 있는데, 그 땅에서 그 땅을 말하는 건 당위이고 필연이고 타당이었지만 그 땅을 벗어나서도 그 땅에 대해 말해도 되는 걸까. 그건 거짓말 아닐까. 그렇지만 내가 아는 것은 그것밖에 없는데, 새로운 서사의 공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는데, 새 땅에 대해 쓰기도 지나온 땅에 대해 쓰기도 다 거짓 같아 두렵고 혼란스러웠습니다. 두 번째 작품집은 그런 혼란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마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10년 만에 하명희 샘의 <불편한 온도>를 읽으면서 그것이 단순한 혼란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명희 샘이 어떤 삶을 지나왔는지 저는 모릅니다. 자전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씌어졌으리라 싶은 첫 번째 소설이자 장편인 <나무에게서 온 편지>(사회평론)을 통해 미루어짐작할 뿐입니다. 내 유년과 많은 부분이 겹치고 맞닿아 있어서 어쩌면 우리가 같은 곳에서 같인 지붕을 맞대고 자랐던 것은 아닐까 상상하지만, 어디까지나 지레짐작일 뿐이지요. 그리고 하명희 샘이 지금 어떤 삶을 지나고 있는지는 더더욱 모릅니다. 페북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몇 번 안 되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짐작할 뿐이지요. 모르면서도 느낌은 있지요. 샘도 저처럼 어느 시절의 땅을 조금은 건너와 있다고 짐작할 뿐입니다. 이 말을 혹 누군가, 이제는 살 만 하다, 는 식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넉넉해지고 풍요로워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아등바등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짐작할 만한 보통의 삶 속으로 비로소 끼어들어왔다는 느낌. 그게 뭔지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설명하거나 이해시킬 자신은 없지만 샘은 무슨 말인지 아실 것 같습니다, 아실 거라고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우리의 마음을 너무 비약적으로 동일시했을까요.

 

그러나,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에 대한 감동과 별개로, 저는 그런 질투에 시달렸습니다. 왜 이이의 시선은 혼란 없이 단단한가. 성실해서? 취재를 꼼꼼히 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시선의 문제라고요.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집 사이에 제 시야가 닫힌 것은, 소설을 쓰면서 저는 저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화자도 다 제 안에서 튀어나온 모습이었지요. 어떤 서사도 저의 서사였습니다. (지금 이글도 그렇게 쓰고 있네요.ㅠㅠ)

 

그런데 하명희 샘의 소설은 달랐습니다. 샘의 시선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둘러 싼 공간과 시간과 그리고 바로 그 시간과 공간을 연대한 사람들에서 출발해 한번도 한눈팔지 않고 끝까지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소설은 나를 바라보는자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는 차이였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동시에 샘은 세상을 관찰자의 눈으로만 바라보지도 않더군요.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거리가 없더라는 뜻입니다. "해 지는 시간, 저녁은 잔치국수가 없어도 강변에 별들을 빠트리며 왔다' 같은 문장은 어떤 이에게는 수사이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서사가 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인용한 문장은 자전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겠지만요.

 

꼼꼼히 취재하지 않으면 글을 쓰기 힘들다고 하셨던가요. 실제로 작품집에 상재된 소설은 아, 성실한 취재형 작가구나 느끼게 하는 지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른 취재형 소설들과 느껴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재라기보다는 기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팩트를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혀내고 싶은 마음. 기록에 대한 의무도 아니고, 호기심도 아니고, 세상 모든 아픈 것들에게 자기 곁을 내줘야 하는 삶이 그 곁을 내줄 방법이 글 밖에 없어서 글을 쓰듯 그렇게 쓰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로서도 사람으로서도 결이 곱구나, 따뜻하구나, 그리고 좀 생뚱맞지만 의리 있구나. 싶었습니다. 좀 우습지요. 그런면에서 뒤쪽에 배치한 소설 두 편은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지요. 발표 순서가 어찌 되나 궁금했습니다. 소설의 발표한 순서를 따라 작가로서 그 사람의 지향점을 점괘 맞추듯 혼자 짐작해볼 때가 있거든요. 다음 소설을 벌써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건 소설(의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은 아닙니다. 저 역시 (안 쓴 지 너무 오래되었지만 어쨌거나 한때는 썼고, 쓰고 싶어하는) 쓰는 사람으로서 소설 뒤에 서 있는 작가의 쓴다는 행위는 무얼 의미하는가 고민해보다 가진 아쉬움인데, 샘의 소설은 곁에 있는 세상과 사람에게는 온통 마음을 다 내어주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목소리를 늘 다른 사람(화자)에게 양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하고 싶었던 마지막 말을 끝내 감춘 게 아닐까 싶다고 할까요. 소설가가 자기 자아를 마구 휘두르며 내보이는 소설도 피곤하지만 샘은 너무 단정하게 숨어 계신 듯해요. 소설가가 소설가의 자아를 굳이(?!) 감추는 이유는 보통 세 가지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1. 내 자아를 내가 모르는 경우 2. 내 자아를 들키고 싶지 않은 경우. 3. 내 자아를 정말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 발톱을 숨긴 경우. 샘은 어떤 경우일까요. 작가의 말을 읽다가 불현듯 떠올랐는데요, 하명희 샘. 샘은 비누도둑이 누구인지 알고 계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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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하나 타는데 드는 시간은 대략 50분 정도다.

아침 119배를 마치고 모두 아침 식사하러 가는 동안 분향소에 앉아 책을 조금 읽었다. 어제 들췄던 불편한 온도인데, 다 읽는데 향 하나가 필요치 않았다. 짧은 분량이기도 했지만 재미 있었기 때문이다.

 

크레인 기사 이야기. 기린 심장의 무게가 11킬로 심장 크기가 60센티, 두께가 무려 7.5센티(책에선 7.5미터로 나오는데 오타인듯하다). 이 수치에 압도당했다. 겨울을 버티는 새와 경골류 어류의 부레 얘기도 있다. 괴망이라는 시스템으로 버티고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정작 반복해서 읽었던 대목은 정혜언니의 일기. 크레인 기사들의 죽음을 담담하게 사실만 기록한 일기이자 일지였다.

 

예전 2011년 평택시청 앞이였던가. 쌍용차 집회를 하고 있었다. 언론 담당인 나는 집회에서 발언하는 기회는 거의 없다. 기자회견 사회가 나의 주된 업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발언을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돌아신 분들에 대해 자료처럼 읽듯이 해달라는 요청이었고, 회견문 쓰듯 쓰다가 그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다시 처음부터 작정하고 썼던 기억이 났다.

 

빠르게 숨이 찰 정도로 읽어내려갔던 기억. 2009년 4월부터 돌아가신 분들의 사연을 짧게 짧게 끊으며 달리듯 써내려간 글을 읽었던 기억. 그때까지는 14명이었는데도 너무 힘들었고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다시 그때 그 버전으로 글을 써서 읽으라면 자신이 없다. 30명이다... 서른 목숨을 단숨에 읽기도 그렇게 취급하는것도 그리고 이제는견디고 읽어 낼 수 있는 괴망이 내겐 없기 때문이다.

 

불편한 온도를 읽으며 그때가 생각났다. 상여을 들고 요령을 울리며 평택 시내 중심을 뚫고 공장 앞으로 갔던 장면들.

 

그때는 정말 몰랐다. 2018년 7월까지도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쌍용자동차 해고자 이창근 님이 주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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