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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주로 자신이 머무르는 거처나 집의 이름을 자나 호 대신 사용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출신 지역을 이름으로 사용하곤 했다. 앞의 것을 당호堂號라 하고 뒤의 것을 택호宅號라 한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도 당호를 사용한 이름이다. 사임당의 본명은 인선인데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름은 사임당이라는 거처하던 집의 이름이었다. 허균이 누이 허난설헌許蘭雪軒도 본명은 초희이지만 자신이 머물던 작은 집의 이름인 난설헌으로 더 유명해지게 되었다. 이는 궁중의 여인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빈궁도 자신이 거처하던 궁의 이름을 따 혜경궁 홍씨로 알려져 있다.”

-김대현, 당신의 징표(북멘토, 2018)

 

*읽다가 무릎을 친 부분이다. 조선 시대에 문장으로 이름을 날린 여성들은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는 기생이거나 자기만의 방을 가진 여성들이었다는 점을 연결하는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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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꿨어요. 그즈음엔 매일 밤 꿈을 꿨던 것 같아요. 형체는 보이지 않고 소리만 있는 그런 꿈. 어둠뿐인데 소리가 들렸죠.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는 듯했어요.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짐승이 보이지 않는데 짐승의 소리가 났어요. 고양이 울음소린가 하면 오소리 발자국 소리로 변했어요. 후드득! 저건 물결을 차고 날아오르는 가마우지의 날갯짓을 닮았어요. 간혹 미끄러운 소리도 들렸어요. 네, 미끄러운. 소리에도 촉감이 있답니다.

(...)

한번은 고막이 찢길 듯 지나치게 높고 큰 소리가 들렸어요. 아주 절박한. 포식자에게 쫓기고 있는 짐승이었겠죠?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 절박한 소리를 낼 리가 없으니까요. 뒤엉킨 소리를 헤치고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저마다 감정이 숨어 있어요. 슬픔 비슷한. 그래서 모든 감정은 슬픔으로 환원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죠."

강진, <멸종의 기록> 중, 《하티를 만난다면》(강, 2018)

 

*콜센터에서 일하는 내가 “소리를 들을 수 없어 멸종된 동물이 있다”는 오래 전 당신과의 통화 기록을 돌려 들으며 동물의 뼈를 맞추듯 '이야기'의 원형을 복원하고 짜맞추는 장면이 멋지다. 강진 소설가의 소설을 처음 보는데 이야기가 풀리는 방식과 단백한 문체에 막 빨려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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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도 종종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이를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그를 떠올리면 꽃에게 물을 주고, 화산을 쑤셔주고 활화산에서 밥을 해먹는 어린 왕자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몸을 동그랗게 구부려 아주 작은 별을 껴안은 채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모습만 생각난다. 꼭 그러고 있을 것만 같다.

오늘도 나는 수평선을 향해 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왔다.

-한창훈, <네가 이 별을 떠날 때>(문학동네, 2018)

 

 

*그러고 보니 어린 왕자는 바다를 본 적이 없겠지. 작가는 일만 번 걸어본 바닷가에서 그걸 주운 게 아닐까. 그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는. 수평선으로 사라진 것들의 아련한 것들을. 모래사막의 코끼리 말고 “바다가 뭐야?” 묻는 소년에게 물고기 그림을 그려주는 생텍스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물고기를 만나러 바다로 들어갔던 어린 왕자와 함께 수평선을 오래 바라보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려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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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여름날 오후에 어딘가 멀리서 아무것도 모른 채 터뜨리는 웃음소리와 같은 소설. 가령 장편의 마지막에 가면 이런 문장을 만난다.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391쪽)

 

빨간색 표지의 책은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고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던 스토너의 책일까? 아니면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주었던 친밀한 우정의 흔적일까. 그것도 아니면 결혼을 통해 열정을 살고 싶었으나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찾아온 사랑의 이름, 캐서린의 책일까.

하지만 인생의 마무리는 스토너의 몫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무리는 이제는 “그의 것이 아니게 된” 그의 손에서 흘러내린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의 몫이 된다. 이렇게. 우아하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끝>”--존 윌리엄스, <스토너>(rhk, 1965/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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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의 290쪽

 

"어두운 마을의 거리를 지날 때, 아무도 없이 혼자일 때가 많은 길을 달릴 때, 불현듯 떠오르는 순간들이 밝은 빛처럼 어둠을 가른다. 간접적으로 경험한 현실이 텅 빈 공간으로 퍼져나간다.

흩어진 연장 사이에서 한 수녀가 공허한 눈으로 위를 쳐다보며 누워 있다. 소녀들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수녀의 눈을 감긴다. 그들은 수녀복과 신발에 묻은 톱밥을 털어낸다. 소녀들은 가서 자기들이 본 것을 말한 뒤에 하얗게 칠한 창문을 닦고 땔감을 모은다. 그들은 머릿속에서 금지된 노래를 부르며, 자기들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한다. 차의 앞 유리창 와이퍼가 빗속에서 물을 튀기며 움직이고, 한 남자가 집에서 나와 상자를 옮긴다. 마당에 그 자리가 있다. 기억을 사로잡는 6월의 날들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연민을 고결하다고 하지 않고, 경솔한 연인을 탓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채소를 키우고 달걀을 모은다.

밝아오는 새벽에 말들이 뛰어가고 눈앞에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올드 킬메이넘, 아일랜드브리지가 보인다. 갈매기들이 강가의 담장에 앉아 있고 홉 열매 냄새가 대기를 풍성하게 채운다.

들리는 것은 엔진 소리뿐, 바다는 고요하고 가을 아침의 싸늘한 기운이 남아 있다. 무엇을 기억하게 될지 너는 안다, 그는 생각에 잠긴다. 허술한 기억이 무엇을 간직하게 할지 너는 안다. 다시 열쇠가 판석 위로 떨어진다. 다시 길에서 그녀의 발소리가 들린다.

아일랜드의 마지막 모습이 그에게서 멀어진다. 그곳의 바위와 가시금작화 덤불과 작은 항구와 멀리 선 등대까지. 그는 육지가 사라지고 바다 위에 춤추는 햇살만 남을 때까지 그곳을 계속 바라본다."--윌리엄 트레버, <여름의 끝>, 290~291쪽

 

고요하다. “육지가 사라지고 바다 위에 춤추는 햇살만 남을 때까지” 그곳, 라스모이의 시간과 그 여름의 끝을 계속 바라보며 첫장을 다시 넘기게 하는 여운. 18권의 장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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