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3주만의 도서관 방문에 흥분하여 글을 하나 올렸더니 수많은 알라디너들이 잘 다녀오라고~ 이젠 정신 차리고 책 좀 읽으라고 화답해 주셨습니다. 그 열화와 같은 성원을 한 몸에 받으며(성원하신 적 없다고요? 아니, 전 분명히 느껴버렸는 걸요) 책 두 권 껴안고 보무도 당당히 도서관으로 향하여, 반납대에서 '쟤 또 왔네' 하는 반갑잖아 하는 사서분들의 시선을 스리슬쩍 피해가며 무사히 반납을 마쳤지요.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습니다. 대출 기한을 어겨 도서관의 1급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는 걸 간신히 피했으니까요. 그러나, 신간 도서 코너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일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쪽에 이상하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 서 있을 때 직감했어요. 오늘 나의 목적달성은 이미 텄다는 것을.. 오늘따라 등빨 좋은 오빠들이 많아 그 틈새로 틈새로 간신히 이 등치를 구겨넣고 책장을 바라본 순간.. 오마나, 하나도 없네. -_-
네, 제가 어제 찍어놓은 책들, 한 권도 없었습니다. '퀘스트'도 '대중의 미망과 광기'도 '다이아몬드 시대'도 '파리와 런던..'도 아무것도요. 아니 우리 동네 사시는 분들이 어젯밤에 죄다 제 서재에 들르신 걸까요? 제 페이퍼 보시고 '음, 저 책이 재밌나부지? 쟤가 가기 전에 얼렁 내가 빌려버려야지' 하고 모의라도..? 후우, 하긴 제 동태눈에 뜨인 좋은 책들을 다른 분들이라고 몰라보시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제 제가 올린 책은 8권이었지만 사실 찍어놓은 책은 30권이 넘었었는데 어째 그것들이 죄다 나가버렸단 말입니까??
게다가 우리 동네분들, 이왕 페이퍼 읽으시는 거 마지막 문장도 좀 잘 읽어주시지.. 면역학 책 좀 반납해 달라니까 그 부분은 또 빼놓고 읽으셨는지, 안 들어와 있더군요. 10년 전에 나온 구닥다리 책들, 번역을 한 건지 만 건지 왼통 영어와 한자어로만 되어 있는 누런 책들만 있고.. 결국 대출도 안 해주는 면역학 사전만 줄창 읽다 왔는데, 그나마 가방에는 종이도 펜도 없어 중요한 부분을 적어오지도 못했어요. 복사기는 고장났지, 얄팍한 기억력은 돌아서면 메롱이지.. 오랜만에 보는 저녁 햇살이 도서관의 넓은 창으로 한가득 밀려들어와 책 읽는 이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비춰주긴 했지만 그런 걸로 위안받기에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요, 너무.. -_-
그렇게 허탈하게 도서관 문을 나서는데 엄마는 전화로 염장을 질러대지, 또 다른 인간은 전화로 내일까지 해야 될 일들을 던져주지(가뜩이나 일도 많아 죽겠는데!! 물론 안 하고 놀고 있지만!!), 집에 와 보니까 식구들은 근처 쇼핑몰로 야간 쇼핑 가면서 밥풀떼기 하나 안 남겨놔서 라면 끓여 먹게 만들고.. 그저 쪼꼬 크림 발린 오레오 쿠키만이 저의 멍든 영혼을 위로해 주더군요. (아냐, 사실 별로 위로도 안돼. 넌 아이스크림이 아니자나)
할튼 그래서 항상 단순하게 웃으며 사는 스타리가 오랜만에 우울해요.
내일까지 해야 되는 일이 있어서 더 우울해요. ㅠ_ㅠ
* 아참, 지금 기억났는데 저를 우울하게 만든 일이 또 하나 있었어요. 간만에 버스를 탔는데 버스카드 리더기가 절 완강히 거부하더군요. 다른 분들한테는 명랑하게 '감사합니다~' 인사도 잘하더만 유독 저한테만 '삑- (다시 해봐)' '삑- (제대로 좀 해봐)' '삑- (이게 콱! 너 그냥 내렷!)' 우웨~ ㅠㅠ
그래서 소심한 저는 정말 그대로 내려버릴 뻔했어요.. 근데 그 무섭게 삑삑대는 기계에 내릴 때도 또 신고하고 내려야 되는 거라면서요?? 오오, 그러나 내릴 때마저도 그렇게 사납게 거부당해 버린다면 정말 회복 불가능한 마음의 상처를 입어버릴 것 같아, 그냥 도망치듯 우다다다 내려버렸습니다. 그래도 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