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 서울 시 1
하상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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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 표지만 보고는 서울 관광책자인가 싶었다. 요즘은 내국인도 외국인도 관광차원의 서울 구경을 많이 하니까, 서울 시라는 제목과 지하철 노선도 형태로 꾸며진 표지를 보며 나 혼자 지레짐작했던 것이다. 얼마 전 대한민국이라는 국내여행 책자를 본 적이 있는 터라 더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근데 책장을 살짝 들쳐봤는데, 이 책은 절대 여행 책자가 아니었다. 간단한 글과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아주 심플한 내용구성의 책이었다.

 

에세이 집인가 싶어 제대로 첫 장을 들추는 순간. 난 혼자 빵 터져버렸다. 작가의 말에는 아무런 글이나 설명도 없이 멀끔한 말 한 마리가 떡 하니 서 있는 사진이 있는 것이었다. 다음 페이지는 더 가관이었다. 목차라고 써있고 그 밑에는 정말 사람의 목을 발로 차는 사진이 있었다. 말 그대로 목을 차는 목차였던 것이다. 이 두 장만 보고도 나는 이 책 꽤 재미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작가의 발상이 참 기발하다 싶었다.

 

무슨 책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보기 시작한 이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나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다. 한참 넘기고 나서야 이 책의 내용 구성을 깨닫고 이 책이 현대적인 시집이구나라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가볍지만도 또 무겁지만도 않지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 평범하지만 지극히 평범해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시였다.

 

끝이

어딜까

너의

잠재력

- 하상욱 단편 시집 ‘다 쓴 치약’ 中에서 -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시들. 특히나 ‘다 쓴 치약’은 너무나 큰 공감을 하게 되는 시였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 우리집 화장실에는 치약이 세 개나 비치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새 치약 한 개, 거의 다 쓴 치약이 두 개 이렇게 말이다. 이 시에서처럼 끝을 알 수 없는 무한 잠재력을 지닌 치약은 다 썼다 싶어서 마지막이다 싶음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했기 때문이다. 거의 다 쓴 치약은 신랑이 집에 있을 때만 쓸 수 있기에 그 생명력이 아주아주 길었다.

 

다른 척

애쓰지마

내눈엔

같아보여

- 하상욱 단편 시집 ‘생수’ 中에서 -

이 시집의 큰 특징은 시를 먼저 읽은 뒤 제목을 나중에 읽는 형식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의외로 꽤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시만 읽었을 때는 연상했던 것과 나중에 제목과는 달랐기 때문에 그 둘 사이의 폭이 클수록 웃음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내가 접했던 많은 시들이 삶에 대해 담고 있었다면 이 시는 우리의 생활을 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집은 우리가 삶을 바라보면서 하게 되는 무게 있는 말들을 생활 속에서 찾아냈기 때문에 그 말 속에 담겨있던 무게감이 확 떨어지면서 오히려 웃음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는 것은 돈이 더 많이 들어요.

- 하상욱 단편 시집 中에서 -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커져가는 웃음은 다음 장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고, 다음 장에서는 그 기대감을 계속해서 만족시켜주었다. 그렇게 웃음은 이 책을 펼친 순간,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는 다른 사람을 불러 이 책을 읽어주며 그 웃음을 함께 공유하고 싶게 만들었다. 현대인은 감정이 너무 메말랐다고 생각했던 요즘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웃음을 찾게 한 이 책을 보며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되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대인의 생활을 다른 이와 공유하며 함께 더 많은 이들이 웃음을 되찾길 바래본다.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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