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의 집 - 손으로 만드는 따뜻한 세상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리처드 브라운 사진 / 윌북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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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엄마다"라고 외친 CF가 생각난다. 그런 집에 살고 싶다라는 생각보다 꼬마 모델이 외친 그 한 마디가 참 푸근하게 다가왔다. 나도 어렸을 적 엄마가 집에 없으면, 풀이 죽었다가 엄마가 오면 집의 모습이 다르게 살아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엄마가 없는 집은 왠지 낯설고, 허전하다. 타샤튜더의 세 번째 책을 마주하면서 집 얘기를 꺼냈던 건 <타샤의 집> 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워낙 꼼꼼하고 부지런한 타샤 할머니 덕에 <타샤의 집>은 구경만 해도 벅찼다. 타샤 할머니의 집은 푸근함 보다는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현대의 삶과는 사뭇 다른 타샤 할머니의 라이프 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타샤 할머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 권씩 책을 모으고 있지만 비슷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걱정과는 달리 다른 책들과 조금씩 중복되는 부분은 있었지만, <타샤의 집>을 통해 말로만 전해들었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7개의 소제목으로 타샤 할머니의 생활을 구분해 놓았다. 타샤 할머니의 생활이 집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집은 타샤할머니 그 자체였다. 타샤 할머니는 19세기 생활을 좋아해서 집도 생활방식도 모두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꾸려 나간다. 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자급자족하려는 방식으로 힘들고 까다로운 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해 나간다. 집 안에서 벌여 놓는 일을 보면 그 만한 전문가가 타샤 할머니 외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할머니를 도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먼 거리도 개의치 않고 타샤 할머니와 일을 하는 모습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장인정신이 빛날 정도였다. 거기다 그분들이 만드는 것들을 살펴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바구니를 비롯해 비누,양초, 염색, 실 잣기, 베틀 짜기 등등 요즘이라면 직접 하지 않을 일들을 손수 하고 있었다.

 

  거기다 대부분의 재료들을 정원에서 구하고 있었다. 타샤 할머니가 정원에서 얻어 내는 것들은 요즘 시대에서 상상하기 힘든 것들이다. 염색을 위한 식물, 실을 얻기 위한 식물, 바구니의 재료 등 일부러 타샤 할머니는 그것들을 길러내고 있었다. 기르는 것보다 최종 단계의 재료가 되는 과정이 더 복잡했지만 될 수 있는한 자급자족 하려는 태도가 우리네 시골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세계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그런 생활을 영위해가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스스로 좋아서 그런 삶을 살아가는 분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너무나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하기에 지켜만 보고 있어도 행복해지는 그런 사람 말이다.

 

  타샤 할머니의 부지런함과 근면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타샤 할머니와 이 책을 같이 지은 토마 마틴은 양키(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방 사람들을 뜻함) 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한 데서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삶의 매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양키 문화 속에서 타샤 할머니도 그런 성향을 키웠을거라고 했다. 그런 배경이 있더라도 타샤 할머니의 일상을 보면 도저히 좇을 수 없는 활력이 느껴진다. 스스로 원해서 일을 하는 타샤 할머니를 무슨 수로 따라갈 수 있겠는가. 타샤 할머니의 발치조차 따라갈 수 없는 게으름이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을. 하지만 자책감으로 타샤 할머니를 대하라는 뜻은 아니다. 타샤 할머니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만끽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므로 전혀 기죽을 필요 없이 <타샤의 집>을 맘껏 구경하면 된다.

 

  타샤 할머니의 일상을 느끼다 보면 집이 주는 포근함은 물론 다른 책에서와는 다른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토마 마틴이 타샤의 친구가 되어, 관찰자가 되어 기록한 글 때문이다. 타샤 할머니의 생활이 소재가 되었지만,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따스했다. 타샤 할머니 삶 자체가 인위적인 것이 아닌 놀라움 그 자체지만, 조금 더 공들여진 글로 인해 아름답게 탄생할 수 있어 좋았다. 타샤 할머니의 삶을 차분하게 드러냈던 시간. 독자들이 미쳐 닿지 못한 세계로의 이끌어 주어 타샤 할머니의 매력이 더 돋보였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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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스케치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이야기 3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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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책장에 읽을 책이 엄청나게 쌓여 있으면서도 상뻬의 책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무리를 하면 안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결국 책을 구입하고 말았다. 상뻬의 책을 두 권을 주문하고 나니 어찌나 마음이 뿌듯하던지. 이번에는 어떤 세계를 만나게 될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책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내 손에 책이 쥐어지자 마자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말았다.
 

  다른 책들에 비해 하드커버에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파리 스케치>는 제목 그대로 스케치로 채워져 있다. 간간히 어디를 배경으로 그린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곁들어 있긴 하지만 그 외에 저자가 쓴 글은 없다. 온전히 파리를 스케치한 광경에 녹아들어야만 한다. 그림이 없는 글은 상상할 수 있고, 글과 그림이 함께 있다면 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글이 없는 그림은 온전히 독자가 채워야 한다. 유화도, 사진집도 아닌 스케치이기 때문에 파리를 내려다 보고 있어도 실재의 파리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케치이기에 가능한 친근한 감정과 동시에 나의 어설픈 지식속의 파리가 아닌 다른 세계의 파리를 만나야 했다. 파리를 직접 가보지 않았기에 스케치 만으로는 실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상뻬는 파리를 온전히 옮기려는 의도가 아니였기에 복잡한 생각 없이 편하게 보면 되었다. 파리를 배경으로 그려졌다는 사실감은 어느 정도 존재하더라도 상뻬 특유의 독특함이 들어가 있기에 틀에 박힌 파리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상뻬의 스케치는 얼핏 보면 무척 복잡해 보인다. 건물과 사람, 자동차들이 뒤엉켜 있는 파리는 숨쉴틈 하나 없어 보인다. 그렇게 복잡한 스케치를 그리고도 물감을 입히지 않은 것에 의문이 갈 정도로 상뻬의 스케치는 섬세하다(종종 색깔이 들어가 있는 스케치도 있지만). 그가 그려놓은 스케치에 감탄을 하기 전에 섬세함에 놀라 전체보다 부분을 보기 바쁘다. 그런 독자의 의도를 간파했는지 상뻬는 거대한 스케치의 구석이나 중간에 재미난 그림을 그려놓기도 한다. 높은 아파트의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는 신사의 모습이라든가, 건물 사이로 겨우 들어오는 햇살을 쬐고 있는 숙녀등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이웃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 단순하게 파리의 모습을 나타내려 했다면 식상했을지도 모를 그의 스케치에서 절대 눈을 뗄 수 없는 이유이다. 과장된 모습에서 나오는 익살, 상상력을 동반한 일상들이 구석구석 놓여 있어 글이 없는 심심함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만난 파리의 모습은 경외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보고 싶지만, 낯설기 때문에 조금은 두려운 곳. 그러나 상뻬의 스케치로 만난 파리는 무작정 갖게 되는 동경을 주지 않는다. 동경 대신 나의 상상속에 존재하는 도시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보려 하기도 한다. 도시여서 갖게 되는 불편함들도 당연함을 받아들여지는 어떤 에너지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고, 그 가운데서도 여유를 찾는 일부분의 사람들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정지된 그림속의 일부분이었기에 마음껏 상상할 수 있었다. 종종 실재의 파리의 모습을 진하게 나타낸 스케치들은 나의 갈망을 자극하기도 했다. 카페에 느긋하게 앉아 책을 본다든가, 작은 공원에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들이 그랬다. 꼭 파리가 아니더라도 나의 일상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보고 싶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책에서 파리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것이 진정한 파리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든지 파리를 그대로 재연해 낼 수 없을 것이고, 직접 가서 느낀다고 할지라도 파리는 이런 모습이다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좀 더 다른 파리, 새롭게 만날 수 있는 파리를 기대하며 상뻬의 스케치를 만난다면 즐거움이 배가 될거라고 생각한다. 스케치 속에 상뻬만의 파리가 재탄생 되기 때문이다. 상뻬의 파리가 궁금하다면 햇살 좋은 찻집에 앉아 이 책을 펼쳐놓고 빠져 보길 권한다. 꼭 카페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파리 속에 집어 넣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느 곳이든지. 분명, 색다른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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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응원하라 - 잘되는 나 실천편 - 나는 오늘도 잘될 것이다!
조엘 오스틴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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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를 갖기 전에는 모든 것이 우연으로 이루어 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종교를 갖게 되니 나의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믿음을 가졌다.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그런 생각이 옅어 질때도 있지만, 책 한 권을 읽게 할때도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느끼게 된다. 특히나 종교서적을 만날 때는 더더욱 그런 것 같다. 내가 어떠한 마음으로 책을 대하든 하나님은 내가 이 책을 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예비해 두시기 때문이다. 그걸 발견하는 길은 어렵지 않다. 책 속에서 나를 끔찍히 생각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되었다.

 

  부제목에도 있듯이 이 책은 <잘 되는 나>의 실천편이다. <잘 되는 나>를 읽고 긍정적인 사고와 자신감을 얻었다면 이 책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응원하며 앞으로 나가는데 힘을 얻으면 된다. 이 책은 7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한 주에 한 단계씩 꼭꼭 씹어 먹으며 총 7주간에 걸쳐 묵상을 해보라고 권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짧은 챕터지만 꽤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소제목에 부응하는 일련의 사연들과 예시를 설명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과정이 끝나면, 성경말씀이 실려있다. 그리고 짧은 기도문과 명언,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집약적인 말들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설명을 복잡하게 해서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2페이지에 걸쳐 있는 내용은 하루를 지내면서 묵상하기 좋다. 너무 간단해서, 혹은 내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라서 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인내심을 참지 못하고 하루에 많은 양의 내용을 읽기로만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는 똑같을 순 없다. 어떠한 일상이 펼쳐질지 모르는 삶이기에 순식간에 읽어버리지 말고, 차분히 대하며 다양한 하나님의 메세지를 만나 봐야 한다.

 

  똑같은 말이라도 나의 처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지듯 이 책에 있는 수 많은 글이 제각각 다르게 다가왔다. 어떤날은 행복감에 젖을 만큼 뿌듯했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정도로 아팠으며,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 질 때도 있었다. 마치 내 기분에 맞춰 글을 준비해 놓으신 것처럼 내 마음들을 곳곳을 찾아 다니며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주셨다. 용기를 얻는 글귀도 다양했다. 조엘 목사님이 소개하신 사연에서 용기를 얻기도 하고, 짧막한 기도문이나 명언, 하나님의 응원에 힘을 얻기도 했다. 마음판에 깊이 새겨지기도 하고, 잠깐 묵상하고 스쳐버리는 말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시간을 갖을 때 느꼈던 것은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신 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밀쳐내려고 하고 부정하려 했기에, 나를 어둠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건 아니였을까. 해바라기처럼 하나님은 나만 바라보고 계시는데 나는 늘 겉돌며 하나님의 존재를 무감각하게 대해버린 건 아니였을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 건강, 일상, 일 들을 돌아보면서도 감사가 나오지 않은 것은 내 중심으로만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고 하나님은 조건을 충족해주시는 분으로 낙인시켰다. 내가 삶의 주인이 되면 내 자신을 사랑하며 소중하게 아낄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늘 똑같은 삶의 언저리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나를 자녀삼아 주신 것,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 것,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만 깨달으면 되는데 늘 잊어 버리고 만다. 잊어 버리더라도 늘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각인시켰으면 좋겠다. 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자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 좋겠다. 그 다짐 뒤에는 이 책을 통해서 발견한 것들을 정리하며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양한 상황의 나를 이보다 더 위로해 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소에 TV를 즐겨 보지 않는데 우연히 김제동씨가 나오는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게 되었다.. 조금 보다 말아서 동영상을 찾아 다시 봤는데, 김제동씨가 자신에게 한 말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부담스럽다고 피해버리지는 않았는가'. 현재 내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을 콕 찝어 주어서 찔림을 받으면서도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공부, 책 읽기, 일, 맡은 역할 등을 부담스럽다고 모두다 피해 버리고 있었다.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이 의욕을 잃고 헤메기 바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내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워 준다는 것은 생각할 수 조차 없었고, 또 다른 나와 마주치지 않으려 요리조리 피하기 바빴다. 이제는 피하지 않고, 나의 처지를 직시하고 하나님의 응원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포기하지 마라, 승리는 너의 것이다! 나는 오늘도 너를 뜨겁게 응원할 것이다!' 라는 음성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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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나의 정원
타샤 튜더 지음, 리처드 브라운 사진, 김향 옮김 / 윌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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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샤 할머니의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책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모아둔 적립금을 싹싹 긁어모아 이 책을 구입했다. 다른 책보다 사이즈가 커서 더 궁금했던 책이었다. 나의 선택은 탁월했다. 타샤 할머니의 정원은 작은 책으로 구경해도 멋지지만, 이 책으로 정원을 구경하니 아찔하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했다. 전에 읽은 <행복한 사람 타샤튜더>에서는 타샤 할머니의 라이프 스타일을 정제된 느낌으로 표현했다면, 이 책은 타샤 할머니의 정원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었다. 뉴햄프셔에서 살다 버몬트 주에 있는 정원을 가꾸기까지의 과정이었다. 1971년, 타샤 할머니는 20년 후의 정원을 생각하고 땅을 일구었다. 타샤 할머니에게는 정원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다.
 

  책의 초반은 버몬트 주의 땅에서 큰 아들 세스와 함께 집을 짓고 정원을 다듬는 모습이 나온다. 지금의 정원을 봐서 그런지 초기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절대 뚝딱 하고 만들어진 정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땅을 사고, 평지를 다듬고, 집을 짓고, 그 넓은 땅에 나무와 화초를 하나하나 심은 손길과 세월의 흐름이 있었기에 현재의 정원이 만들어 진 것이다. 타샤 할머니가 어떤 틀을 갖춰놓고 정원을 가꾼 것이 아니라는 건 안다. 과정 속에서 습득한 지혜와 할머니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정원을 꾸몄기에 지금의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타샤 할머니는 철저히 식물들의 입장을 생각했다. 토양과 지역의 특색을 알아 어떻게 해야 식물이 기뻐하고 좋아할지를 생각한 분이셨다. 보통 사람들은 화분 하나를 가꾸더라도 자신이 보기 좋은 위치와 환경에서 기르려고 하는데, 타샤 할머니는 식물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식물들은 더 아름답게 피어났고 정원의 일부가 기꺼이 되어 주었다.

 

  타샤 할머니의 정원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웠다. 계절마다 꽃이 마르지 않았고, 겨울도 겨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할머니가 직접 가꾸고 함께 살아왔기에 꽃이 언제 피는지, 무슨 나무인지 일일이 설명을 해 주는 모습에서 애정어린 손길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 꽃이 그 꽃 같은데 할머니는 색깔까지 운운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꽃의 아름다움을 함께 말해주고 있었다. 흙의 쏠림을 돌담으로 처리한 것을 자화자찬 하면서, 어느 정원과 닮지 않은 자신만의 정원을 칭찬하는 타샤 할머니가 젠체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이 그런 이유였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모습. 자신이 지켜본 과정을 친절히 알려주었던 모습. 그 모습이 타샤 할머니를 순수하게 만들었다. 정원에 마음을 빼앗긴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이 책에서 타샤 할머니의 정원을 맘껏 구경할 수는 있지만, 할머니가 어떻게 정원을 일구는지에 대한 자세함은 없다. 가령 2000개의 구근을 심으면서 삽자루가 부러졌다든가, 물을 주는 어려움이 있다던가 그런 에피소드는 없다. 간간히 정원을 가꾸는 어려움을 말해 주긴 하지만 타샤 할머니에게는 그런 것조차 즐거움으로 보인다. 구근을 심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넙죽 엎드려서 일하기 때문에 커다란 고양이라도 되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할머니 앞에서 어떤 불평을 들을 수 있겠는가. 타샤 할머니의 정원 이야기는 어느 정도 완성된 이야기라서 세세함을 기대했다면 실망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타샤 할머니가 들려주는 꽃과 나무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향기로운 이야기다. 마음에 드는 식물을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심고, 여러해살이 화초를 좋아하고, 땅이 반기는 식물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는 타샤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정원을 구경하고, 꽃과 나무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어느새 타샤 할머니의 정원 속에 솟아 있는 꽃이 된 기분이 든다.

 

  이 책을 읽을 때 쯤 타샤 할머니가 천국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얼핏 기사를 본 것 같기도 했지만 아니길 바랐다. 검색을 해보니 올 6월에 돌아가신 걸로 나왔다. 나는 이렇게 할머니가 일구어 놓은 정원을 맘껏 구경하는데, 할머니는 지상낙원을 일구고 하늘낙원으로 가셨다니. 좀 더 빨리 타샤 할머니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타샤 할머니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오늘도 정원 어딘가를 일구고 있을 할머니를 상상할 수 없어 서운했다. 지금껏 할머니가 가꾸어 온 정원이 할머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오랜 세월을 같이 했기에 정원의 모든 나무와 식물들이 할머니의 손길을 기억할거라 생각한다. 할머니가 없는 정원은 왠지 허전한 느낌이다. 스스로가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듯이 많은 이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안한 삶의 방식을 선사하고 간 타샤 할머니. 왠지 하늘나라에서도 꽃을 가꾸고 있을 것 같지만, 지상에 낙원을 남겨 놓고 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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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 라울 따뷔랭
장 자끄 상뻬 지음, 최영선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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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배울 때가 생각난다. 동네에 자전거를 가진 오빠들이 둘 뿐이여서 힘들게 배웠었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자전거를 배우기도 하고, 동네에서도 배우기도 했는데 내가 왜 배워야 하는지 이유를 모를 정도로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가르치는 사람도, 가르쳐 주는 사람도 무언의 짜증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자전거 타는 법을 연습했으면 좋았으련만. 나에겐 자전거가 없어 남의 자전거를 얻어 타며 동냥 배움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라도 배워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로변에서 자전거를 탈 정도의 실력은 아니지만, 한적한 시골길을 혼자서 달릴 수는 있다. 힘들었지만 초등학교때 배우지 못했다면 지금도 자전거를 보며 피해버리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생각하니 잠시 아찔해 진다.

 

  하지만 나보다 더 힘들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라울 따뷔랭이었다. 넘어지고 깨지고 온갖 고생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전거 타는 법을 습득하지 못했다. 그는 생 새롱의 자전거 포 주인이었다. 그가 자전거를 수리하는 실력은 흠 잡을 데 없어 사람들이 자전거를 <따뷔랭>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자전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니. 자신이 가진 명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딱 드러맞는 상황이었다. 그가 자전거를 못탄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그럴 수만 있다면 따뷔랭 자신도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전거 위에서 중심이 잡혀지지 않았다. 자전거에 대해서 좀 더 알면 문제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연구하다 보니 자전거에 대해 빠삭하게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을 빼면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자전거를 잘 고쳤으며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이들도 얻었다.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아니 라울이 사진사 피구뉴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피구뉴는 최근에 광장 시장 아케이드 아래 사진관을 연 사람이었다. 자전거가 고장 나서 따뷔랭의 가게에 오면서 둘은 친구가 되었다. 마을에서 사진을 잘 찍는 사진사로 알려지면서 사람들도 더이상 사진이라 하지 않고 <피구뉴>라고 했다. 따뷔랭과 피구뉴의 우정은 날로 돈독해져 갔다. 어느날 피구뉴는 따뷔랭에게 자전거 타는 모습을 찍자는 제의를 해왔다. 따뷔랭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거절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고백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일요일 아침, 피구뉴가 도시락을 싸들고 따뷔랭에게 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다자고짜 찾아왔다. 빠져나올 구실을 대지 못한 따뷔랭은 어쩔 수 없이 피구뉴를 따라 나섰고, 경사가 험하고 골짜기가 있는 언덕에서 자전거를 탔다. 사진사는 그런 따뷔랭의 모습을 완벽하게 찍었고, 그 일로 인해 따뷔랭은 석달 동안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다. 따뷔랭의 사진은 해외에서도 대서특빌 될 정도로 무모하지만 잘 찍힌 사진이었다. 피구뉴는 따뷔랭의 사진을 포함해서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따뷔랭은 자신의 사진을 보며 피구뉴에게 '일종의 사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피구뉴의 놀라운 고백이 시작된다.

 

  피구뉴의 직업은 사진사지만, 그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 못하는 사진사였다. 중요한 행사나 에피소드를 만들어낼 만한 사진들도 그가 찍으면 평범한 사진이 되었다. 그런 사실을 고백하면서, 따뷔랭이 묘기를 부리던 사진을 찍었던 것은 불행히도 우연이라고 말했다. 사진기를 떨어뜨린 순간 따뷔랭의 사진이 찍혔고 자신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했다. 그 사실을 털어놓은 피구뉴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며 다음 날 여행을 떠났다. 피구뉴의 고백을 듣고 난 따뷔랭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녀석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 했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의 기분은 날이 갈수록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자신이 자전거를 탈 수 없다는 사실도 어떤 식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러부터 두달이 흐른 후, 피구뉴가 돌아왔다. 둘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 따뷔랭이 먼저 말을 건넸다. 비밀이 하나 있다고, 자신이 할 줄 모르는게 하나 있다고 외쳤다. 그리고 별안간 웃는 따뷔랭을 따라 피구뉴도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둘은 알아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못했던 따뷔랭과 피구뉴. 그 둘이 만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면에 자리잡고 있었던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드러나게 되었다. 처음엔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이 서툴러 온전한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과정이 치유의 시간이 되어 회복하는 결과까지도 낳을 수 있게 되었다. 상뻬의 작품은 글도 글이지만, 글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있어서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른 사람의 작품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상뻬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품이 더 좋다. 글과 그림이 일치가 된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뻬의 사랑스럽고 사실적인 그림과,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들, 그리고 내면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두 사람이 있었기에 분위기에 폭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상뻬의 글과 그림이 좋아 어쩔 줄을 모르며 공간이동을 해 프랑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온 기분까지 들었다.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상뻬의 작품.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과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하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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