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책 제목만 본다면 내용이 심상치 않을 것 같은데, 겉표지를 보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겉표지의 소녀는 악녀로 보이지 않을 뿐더러 고뇌에 차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추천사를 보니 불편한 내용이라고 한다. 흑인 노예가 물건처럼 거래되던 19세기 네덜란드 소녀의 이야기인데, 인물들만 저자가 꾸며냈을 뿐 수리남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사람들은 불편하다고 하고, 악녀라고 불리는 걸까. 두껍지 않은 책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내 눈길이 잠시 혼란스러웠다.
 

  글은 짤막한 단락으로 채워져 있었다. 산문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한 글 속에는 천진난만 한 14살 소녀가 등장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며 원하는 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말한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10대 소녀지만 그녀의 글을 보면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녀는 14살생일 선물로 아빠에게 노예 꼬마를 선물 받는다. 그것도 쟁반 안에 리본을 단 채 웅크리고 있는 노예 소년 꼬꼬. 다른 아주머니는 노예에게 쓸 채찍을 선물로 주었다. 14살 소녀에게 흑인 노예를 선물로 주는 시대. 그 시대의 14살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갔던 것일까.

 

  소녀의 내면은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난다. 노예 소년을 받은 기쁨도, 그 소년을 괴롭히는 것도,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노예들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모든 것이 소녀를 통해 전해진다. 우리가 일상을 얘기하듯 흘러가는 소녀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부족한 것 없이 사는 소녀와 노예를 물건 다루듯이 다루는 어른들. 그 안에서 소녀가 저지르는 행위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세속 된 행위였다. 노예에게 심하게 굴어도 나무라는 어른이 없고, 맘에 안 들면 팔아버린다는 생각을 지지해 준 것도 어른이었으니 나름 순수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뻔했다.

 

  소녀는 부모님이 교환한 노예를 임신시킨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친척 오빠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녀는 충격을 받지만 곧 자신에게 펼쳐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 바쁘다. 소녀에게 흑인 노예는 그냥 물건일 뿐이고, 거리낌 없이 팔 수 있는 존재 이상의 것이 되지 못했다. 엄마가 아빠와 함께 사는 흑인 노예에게 흉터를 만들어 주어도, 자신이 좋아한 오빠가 흑인 노예와 애를 낳고 여행을 가도 일상의 한 부분일 뿐, 그 안에 내포된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그러기엔 소녀가 어리기도 했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옳게 가르쳐줘야 할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책을 읽고 보니 추천사에서 언급되었던 '불편하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것을 알았다. 과연 이 이야기를 19세기에만 국한 시킬 수 있을까. 저자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수리남을 1970년대에 여행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 광경을 보고 책으로 써 낸 것이다. 저자가 수리남을 여행한 시기가 현재와 결코 가깝다 말할 수 없지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금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여전히 인종차별은 현 시대에도 팽배해 있고, 대 놓고 거래할 때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14살 소녀는 자신의 행동이 악한 행위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지만, 소녀의 글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역사의 치부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현재에도 비일비재한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유색인종의 고충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긴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행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독자에게 커다란 짐을 남겨준 이 책의 이야기는 여전히 해결 방법이 없다. 당장 내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인간에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뿐이다. 나와 우리의 책임도 아니며 역사의 한 자락일 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음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만 정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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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네버랜드 클래식 1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엘 그림, 손영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이상한 나라 앨리스>만큼 많이 들어본 명작이 있을까. 책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에 상관없이 늘 궁금증을 자극하고, 새롭게 번역 되어 나올 때마다 추억을 되새겨 주는 책. 아직 앨리스를 만나지 못해서 깊은 애틋함은 없었지만, 앨리스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늘 열등감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언제쯤 읽고 속을 후련히 만들 수 있을까란 의문에 답을 해 주었던 것은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를 만나고서다. 내가 놓쳐버린 명작들을 읽게 해주었고, 현재의 내가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작품들을 만나다, 오랫동안 읽어보고 싶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심으로 돌아갈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앨리스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입에 오르내리는 것일까. 책장에 빨려 들듯 읽어 나가는 나의 눈길이 초조해 보일 정도였다. 거의 최근에 루이스 캐럴이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부 교수였다는 사실을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학장의 딸 '앨리스'에게 들려 준 이야기가 이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터라 호기심은 최고조였다. 앨리스가 흰 토끼를 따라 토기 굴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평범한 세계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나 이상했으면 앨리스 앞에 '이상한 나라'라고 붙였을까. 그러나 내가 책으로도 경험하지 않은 평범하지 않은 세계가 이렇게 나를 당황스럽게 할 거라고 예상치 못했다. 처음에는 앨리스를 따라가느라 숨이 찼고, 나중에는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약간 경계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떠한 이야기가 펼쳐지더라도 안정된 구조 안에서 흘러갈 거라는 나의 예상을 철저하게 깨 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책이고(요즘은 어른들에게도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지만) 아이들의 불규칙(어떠한 것이 규칙적이란 말인가!)적인 상상력을 자극해 준다는 사실을 잊고 오로지 나의 시선에서 보게 된 결과였다. 나의 수준에서, 나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던 앨리스였기에 녹록할 리가 없었다.

 

  앨리스를 따라 절반 정도 여행을 할 때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정신없이 등장하는 괴상한 등장인물들과 계획되지 않은 앨리스의 방향(발걸음이든, 앨리스가 가고자 하는 길이든)은 순간적인 상상력에서 나왔다는 희미한 추측이었다(아니나 다를까 루이스 캐럴은 이 이야기를 쓸 때, 다음 이야기를 생각해 보지 않고 우선 앨리스를 토끼 굴로 내려 보낸 후, 그때그때 사건을 엮어 나갔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앨리스의 이야기를 앨리스의 수준에서 따라가려면 대상이 누구인지, 그들의 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나처럼 나이를 먹은 어른은 아니기에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상상하며 그들의 시선이 조금 느껴지기도 했다. 촘촘한 구조를 원하기보다 조금은 헐거워도 신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좋아할 거라 생각하니 나를 옥죄던 불발 같던 이야기의 흐름은 안정되기 시작했다. 엉뚱하고 생뚱맞다는 생각을 잠시 밀쳐둔 채 앨리스의 발걸음을 따라 앨리스가 보는 세계에 관심을 돌리자 아이들이 앨리스의 시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쉼 없이 만나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등장인물들. 앨리스가 이상한 여행을 하도록 자극한 흰 토끼부터 못생긴 공작부인, 웃고 있는 체셔 고양이, '당장 목을 베라'라고 말하는 여왕 등 모두들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동화 속의 등장인물들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괴상할 것도 없었는데, 앨리스라는 존재는 이미 내게 너무나 친숙했고 이제야 앨리스를 알아가려는 시도를 하다 보니 너무 진지하게 임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앨리스가 만나는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앨리스를 현실의 아이로 끌어다 놓고 이상한 여행을 하는 것을 그야말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책의 제목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임에도 '앨리스'와 '이상한 나라'를 동시에 인식하지 못했던 어리석음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 내가 느꼈을 허탈감과 의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실망감이 교차한다. 내가 상상한 앨리스, 내가 만나고 싶었던 앨리스는 이런 모습이 아니라는 제멋대로의 판단으로 엉망이 되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앨리스가 체험한 괴상한 여행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난감해 하고 있던 찰나 잠에서 깨어난 앨리스를 만났으니 내 마음은 오죽했을까. 다짜고짜 내 책장에서 주석이 달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꺼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였다. 엄밀히 말하면 앨리스와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 앨리스만의 독특함과 발랄함을 따라가지 못했고, 즐기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고, 누군가에게 설명을 요하고 내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나를 다독이는 것 또한 새로운 난관으로 다가왔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한 번의 만남으로 앨리스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앨리스에 집착을 하고, 내가 만들어 놓은 세계로 끌어들이려는 편협한 생각이 있더라도 주석아 딸려 있든 새로운 번역본이든 앨리스를 어떤 마음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 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 게 되었다. 동화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순수한 내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어른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앨리스와의 만남이 당혹스러웠더라도 다음의 만남이 있다는 확신 때문에 마음이 편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앨리스를 내 안에 가두려 하지 말고, 나만의 앨리스를 만들어가며 내면을 살펴야 한다는 깨달음이 책을 읽고 난 뒤 한참인 지금에서야 나의 내면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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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주 마이리뷰 당선작
 




타샤 할머니가 숫자를 알려 준다면... - 태극취호
<1은 하나>
타샤 할머니의 책을 거의 다 읽어서 새로운 번역본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번역본이라고 해도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들이 전부였지만,동화책이라도 한 권씩 모으며 타샤 할머니를 추억하고 싶었다. 그만큼 타샤 할머니는 나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었고, 타샤 할머니의 흔적을모아보고 싶었다. 그런데도 출간 소식이 들리지 않아 기다리고 있던 중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하니<1은 하나>가 출간된 사실을 알고 바로 구입했다. '광고라도 좀 해주지' 라는 생각과 함께 아쉬움도 잠시, 책을 받고 보니 타샤 할머니의 열혈 팬이 아니면 구입하기...

 

 

 

- 대박이다!

알라딘 로그인을 했다가 적립금 5만원이 들어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만원이라 함은....

리뷰어 사이에서 꿈의 마일리지로 불리운다는 알라딘 이주의 리뷰 당첨!!!

바로 가서 확인해 보니 정말 내가 당첨이 되어 있었다!

당첨된 책은 타샤 튜더의 <1은 하나>.

오잉? 정말 순식간에 읽고 아주 편안하게 휘리릭 쓴 서평인데...

이 책이 되었다!

알라딘에서 구입하고, 신간이어서 뽑아 주었나 보다!

앗싸뵤~~!

책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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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6-13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리뷰에 축하한다고 댓글 달고 나니 이게 있네요.^^
알라디너에겐 꿈의 마일리지~~ 맞는 말이죠.
난 1년에 딱 한 편 당선인데 올핸 아직이에요.ㅜㅜ

안녕반짝 2009-06-1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3년 전에 되고 안된 것 같아요. 이번이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기억이 가물가물 해요. 알라딘은 정말 되기 힘들더라구요!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꿈에서 깨니 가슴이 후련한 게 기분이 이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꿈속에서 무척 서럽게 운 기억이 떠올랐다. 꿈을 꾸는 시간 동안은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기에 무척 진지한 상황을 맞으며 서럽게 울어댔나 보다. 그 동안 내 마음 속에 쌓여 있던 응어리가 풀어지는 듯 했지만 꿈 내용이 섬세해 질수록 마음은 무거워 지고 있었다. 

  꿈을 무의식중에 나타난 현실의 거울이라 생각하고 해몽하는 경우가 있다. 내 안에 어떤 서러움이 깃들었는지 내 자신조차 알 수 없는 가운데 나를 더 서럽게 만든 책을 만나고 말았다. 한 권의 책에 덕지덕지 붙인 메모지가 민망할 정도로 나를 사로잡았던 책. 여성을 위한 자계서라 시큰둥한 시선을 던졌던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이었다. 미술관에 혼자서 간 적이 많기에 제목은 끌렸지만, 자계서라는 장르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한창 유행하는 심리 에세이에 여성이 어떻게 하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빤한 내용이 실려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현재의 나에 대해서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꿈에서 서럽게 울던 감정의 북받침을 조목조목 짚어주는 느낌이 들어 갈수록 감정이 격해지고 말았다.

 

  이 책의 요점은 '여자가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다. 결혼이 늦든, 이혼을 하든, 사별을 하던 배우자나 가족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혼자가 될 때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혼자 있다는 것을 새로운 기회로 삼고 그 시간을 즐기라는 얘기인데, 과연 그것이 여성들에게 전해줄 메시지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당장 나만 보더라도 서른을 눈앞에 둔 나의 나이를 보고 긍정보다는 걱정스런 시선이 더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옆에 누군가 없다는 사실을 되레 불안해하고, 더 나아가 내가 무슨 문제가 있는 양 쳐다보는 시선들이 곱지 않다. 그런 시선들과 마주하다 보면 '내가 정말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다행히도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인간이기에 종종 외로울 때도 있지만), 나름대로 잘 보내는 터라 우울증이라든지 대인기피증이 없는 것에 감사해야 할 처지다. 그만큼 혼자인 여성이 많고, 어딘가에 종속되어야만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여성들은 혼자일 때 큰 불안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온전히 여성의 탓으로 돌릴 수 없었다. 지금껏 사회는 혼자인 여성에게 던지는 시선이 곱지 않았고, 배우자나 자녀를 갖지 않은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지 않았다. 그런 부수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여성이 혼자인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한다. 외로움과 고독은 분명 다른 것인데, 지금껏 그 시간을 자기 자신과 함께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어쩔 줄 모르며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 여성들에게 저자는 혼자인 것이 외로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고립이나 소외나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구해 줄 남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그 시간을 가짐으로써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심리 치유사인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이 상담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었다. 이런 경험담들은 독자에게 다양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반면 사례 위주로 나가다 보면 깊이는 없고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만의 통찰력과 경험담, 책과 영화 등 다양한 자료를 언급하며 깊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깊이에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지는 물론 여성의 삶을 넘어 과거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독을 어떻게 즐길 것이며,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처럼 잔잔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전해주는 책은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다. 어쩌면 혼자가 되는 여성의 조건 안에 내가 포함되어 있기에 깊은 공감을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껏 살아왔던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기에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이면에 자리한 내 자신과 마주하기를 외면하지 않길 바랐다.

 

  그렇다면 어떻게 혼자인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까. 책을 다 읽었지만 콕 집어 이렇게 해야 두려움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몇몇 방법을 직접적으로 제시해 주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들이 더 소중했다.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갖으며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어렴풋이 그려본 일은 독서하는 과정에서 모두 드러났다. 그 느낌을 정리하는 것도, 어떤 방법을 취하는 것도 나에겐 여전히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아껴가며 읽었던 수많은 날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 줄의 글에 울기도 하고, 한숨 쉬며 보내기도 하고, 과거와 미래를 더듬어 본 일은 색다른 경험이었고 무척 오랜만에 마주한 나 자신과의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내 마음 속에 울분과 설움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꿈속에서 서럽게 울었던 일, 한 권의 책으로 위로 받았던 일은 교묘하게 맞물려 내가 현재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뚜렷이 보여주는 계기가 되어 주고 있었다.

 

  아끼기도 하고, 펼치는 것이 두렵기도 해서 더디게 읽은 책이었다. 내가 읽은 글이 어떠한 메시지도 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쉬워 아껴 읽었고, 현재의 나를 맞닥뜨리는 것이 두려워 피하고 싶기도 한 책이었다. 그 과정이 힘들어서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긴 터널을 지나온 듯 한 기분에 사로잡히면서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고한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에 빠지는 것은 변화할 용기가 없어서다'는 저자의 말을 인정하고,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믿음과 인내심과 나 자신을 존중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충고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타인의 도움으로 핑크빛 미래를 꿈꾸는 것 보다 내 자신에 솔직해져 가며 내가 스스로 길을 닦아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이 보기 좋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최선을 다하며 내 자신에게 솔직해 지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 나에게 주어진 삶이 현재하고, 그 시간은 소중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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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 이야기 네버랜드 클래식 20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C. E. 브록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세라 이야기>를 읽자 <세드릭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늘 두 소설이 짝꿍처럼 붙어 다니기에 한 작품만 읽는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미리 <세드릭 이야기>를 주문해 놓고, <세라 이야기>를 읽자마자 바로 <세드릭 이야기>를 읽었다. 그제야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의 3종 세트(비밀의 화원, 세라 이야기, 세드릭 이야기)를 읽은 후련함이 밀려왔다. 거기다 <세드릭 이야기>에도 푹 빠질 수 있어 무척 즐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세드릭은 엄마와 뉴욕에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 에롤 대위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세드릭과 엄마는 서로를 위로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세드릭은 아이답지 않게 늠름했으며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있었다. 구두닦이 딕, 사과장수 할머니, 식료품 가게 주인인 홉스 씨가 세드릭의 친구였다. 세드릭이 어찌나 허물없이 대했던지 딕과 홉스 씨는 세드릭을 친구 이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드릭이 백작이 되어 영국으로 떠날 때도 가장 서운해 하는 사람이 딕과 홉스 씨 일 정도로 그들의 우정은 끈끈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도린코트 백작 가문의 변호사인 허비셤 씨의 등장으로 세드릭의 운명은 뒤바뀌고 만다. 아빠인 에롤 대위는 도린코트 백작의 셋째 아들이었고, 큰 형과 둘째 형이 모두 죽고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에 세드릭이 폰틀로이 경이 되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에롤 대위가 미국인인 엄마와 결혼하는 바람에 도린코트 백작의 노여움을 샀고 그 때문에 지금껏 세드릭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살았었다. 하지만 세드릭에게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에롤 부인과 세드릭은 영국으로 가게 된다. 

 

  세드릭은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슬펐다. 그러나 백작이 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도린코트 백작이 세드릭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돈을 쓰게 해주었는데, 세드릭은 그 돈으로 어려운 딕과 사과장수 할머니, 어려운 처지에 있는 브리지트 아줌마를 도와준다. 그 일로 백작이 되는 것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자신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도와준 할아버지가 무척 궁금했다. 그러나 영국에 도착하면 세드릭은 엄마와 같이 살 수 없고, 할아버지의 성격이 괴팍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도린코트 백작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세드릭을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지금껏 자신의 쾌락만 좇으며 생활하던 그가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셋째 아들 에롤이 미국인과 결혼을 하자 마음이 무척 상했다. 작위를 물려주는 일이 아니라면 세드릭과 미망인 에롤 부인을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린코트 백작은 세드릭이 미국인 여자에게 자라서 무척 건방지고 제멋대로 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세드릭을 보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모두 사라짐을 느꼈다. 의젓하고 잘생기고 똘망똘망한 세드릭은 어느 곳에서나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단박에 세드릭이 마음에 든 도린코트 백작은 이후로 놀라운 변화를 거듭하게 된다.

 

  반면 세드릭은 자신에게 할아버지가 있다는 사실도 흥분되는 사실이지만, 할아버지가 베푼 은혜 덕분에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생각하자 할아버지가 무척 친절한 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영지의 소작인들과 그 주변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한 세드릭이 옴으로써 어떠한 소문이 돌고 있는지 세드릭은 모르고 있었다. 세드릭은 엄마와 떨어져 산다는 것이 무척 슬펐지만, 자주 보러 갔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성에서 사는 것에 많은 흥미를 느꼈다. 넓은 집과 영지에는 세드릭이 맘껏 뛰어 놀 수 있는 것들이 무한했고, 무엇보다 할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을 무척 좋아했다. 지금껏 도린코트 백작을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없었기에 도린코트 백작도 주변인들도 모두 놀랄 따름이었다.

 

  도린코트 백작은 순전히 세드릭으로 인해 변해가고 있었다. 지루한 삶도, 타인에게 상처만 주던 괴팍스런 성격도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꼈다. 세드릭으로 인해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기가 싫었다. 세드릭은 할아버지가 무척 친절하고 좋은 분이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지만 굳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세드릭으로 인해 변화하고 있는 자신을 드러내기도 싫었다. 그러나 그런 긍정적인 변화의 물결에 획을 긋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아들이 폰틀로이 경이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나타난다. 이미 세드릭을 사랑하게 된 도린코트 백작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세드릭에게 작위를 물려주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구원병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 미국에서 날아온 딕과 홉스 씨가 그 사건을 해결해 주었고, 그 일로 많은 것을 깨달은 도린코트 백작은 에롤 부인을 자신의 성으로 데려와 세드릭과 함께 산다.

 

  <세라 이야기>처럼 무척 재미나게 읽은 소설이었다. 너무나 완벽한 소년 세드릭은 겉과 내면에 흠 하나 잡을 것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을 다 자신에게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고, 세드릭과 함께라면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다.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소년이었기에 너무 완벽해서 흠집이 날까 걱정될 정도였다. 다행히 할아버지를 변화시키고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로 끝을 맺지만 할아버지의 위선, 세드릭의 완벽함이 조금은 거슬렸다. 소설이라고 해도 허점 하나 느껴지지 않는 인물들과 이야기의 흐름은 식상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세드릭이 타인을 변화시킨 것은 사랑의 힘이었다는 사실을 기억 하려 한다. 사랑이야말로 굳게 닫혔던 마음을 변화 시키고, 그로 인해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은 이 소설이 간직한 가장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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