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마음 - 장 자끄 상뻬의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이야기 11
장 자크 상뻬 지음, 이원희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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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올 초부터 내게 친숙한 작가가 있다면 단연 장 자끄 상뻬다. 그의 작품을 거의 다 소장하고 있지만, 유독 <꼬마 니콜라>시리즈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야 만나서인지도 모르겠다. <꼬마 니콜라> 시리즈 권수가 좀 되다보니 삽화로 참여한 상뻬이인데도 오랜 시간 만난 것 같다. 그렇게 그의 작품을 섭렵해 가는 가운데, 오랜만에 그의 신간을 만나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무조건 구입했음에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제야 책을 펼쳤다. 상뻬의 삽화집을 아끼다가 늦어졌다는 핑계가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책을 보고 혼자서 키득댔다. 요즘 마음이 싱숭생숭하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는데, 상뻬의 삽화집으로 인해 숨겨졌던 밝은 감정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최근에 상뻬의 삽화집이 대형 판으로 재출간 되면서 기쁘면서도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그 소식을 일찍 알았더라면, 최근에 구입한 작은 판형 대신 대형 판을 구입했을 거라는 데 오는 아쉬움이었다. 대형 판이 비싸긴 하지만 오랫동안 절판되었던 작품까지 재출간 되어서, 그 책으로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데생집은 대형 판으로 볼 때와 작은 판형으로 볼 때의 느낌이 무척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발간된 상뻬의 신간이 대형 판으로만 출간되어서 상뻬의 작품을 기다린 팬들에게는 기쁜 소식이겠지만, 상뻬를 알고자 하는 일부 독자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되기도 한다.

 

  상뻬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대형 판으로 만나게 된 신간은 무척 즐거웠다. <각별한 마음>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겉표지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책을 받았을 때, 마치 마당에 고추를 널어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 속에 들어있는 상뻬의 데생은 어떤 모습을 갖고 있을지 겉표지부터 궁금하게 만들더니,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각별한 마음>이라는 다소 추측하기 힘든 제목 아래, 상뻬식으로 다양하게 그려진 <각별한 마음>이 들어 있었다. 일탈과 익살, 독자가 보는 데생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이면의 독특함까지 모두 들춰내고 있었다. 대부분 데생 속 인물들의 대화 내용이 실려 있었지만, 대화가 실려 있지 않아도 나름대로 상상해 볼 수 있고, 그림과 대화가 엇나가는 엉뚱함도 맛볼 수 있었다.

 

  상뻬가 그려놓은 데생에서 그런 대화를 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한 엇나감이 독자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고, 즐거움을 선사해 주기도 했다. 전화응답기의 황당함과 복잡한 미술관에서의 로맨틱, TV속의 자신을 비평하는 일, 자신의 책을 홍보하는 일 등, 상뻬의 복잡하고 세세한 데생 속에서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프랑스 사람의 일상이 모두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 없대도, 우리와 문화가 다르고 생활방식이 달라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 박자 돌아서 오는 것이 미국식 유머라면, 장황함과 엉뚱함이 숨어있는 것이 프랑스 유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뻬의 익살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런 유머가 아니더라도 큼지막한 책에 그려진 상뻬의 데생과 그 안에서 독자 나름대로 상상할 수 있는 무궁무진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상뻬의 데생집의 제목이 정해져 있다곤 하지만, 일관된 느낌을 남긴다는 것은 역부족이다. 너무도 다양하게 펼쳐지고, 느낌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책을 보는 작가이기에(책을 읽으면서도 어떻게 느낌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개인적인 압박감을 빗대어) 정말 즐겁게 마주한 책이었다. 그렇기에 상뻬의 데생집이 '이러이러하다' 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상뻬의 데생집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기쁘고, 동시대를 살아가며 그의 작품을 느끼고 기다릴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감사하다. 그가 그려내는 데생으로 인해 굳이 말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상호간의 공감을 느끼고, 이면의 느낌까지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앞으로도 그의 데생집이 계속 발간되길 바라는 마음이며, 다양한 활동으로 독자들과의 만남이 잦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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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해항로 민음의 시 161
장석주 지음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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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움이 밀려오는 밤이면, 시집을 꺼내게 된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로 채워졌다 해도 내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문학중 하나는 시(詩)다. 몹시도 고단하고 쓸쓸함으로 채워지던 마음을 부여잡던 밤, 시집을 꺼냈다. 위로를 얻으려 펼쳤다고 하지만, 내 자신조차도 무엇을 얻으려 시집을 집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현재 나를 지배하고 있는 이 마음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펼친 시집이었건만, 시집을 읽는 내내 그리움이 더 짙어지고 말았다. 시집 가득 잠재해있는 그리움과 내가 가진 그리움이 맞부딪쳤기 때문이었다.
 

  시를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보통 사람과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것, 모든 것을 시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 등등 나름대로 많은 의견이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 틈바구니에서도 또렷이 정의되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틀 안에 가두지 않고 자유로운 생각을 짧은 언어라 할지라도, 누가 봐도 수긍할 수 있도록 표현해 내는 것이라고 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시집을 만날 때마다 하나로 단정 지어지지 않는 자유분방함에 늘 어리둥절해 진다. 몇 권의 시집을 읽었다고 해서 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낯익었다 싶다가도 낯선 시집을 만나면 새로움이 샘솟는다. 그래서 더더욱 시를 정의할 수 없는 것이고, 시의 세계에서 여전히 입문하지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리라.

 

  해설을 해주신 문광훈님은 '시는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미세하게 관찰하고 생생하게 기억하며 정확하게 기억하면서 인간과 그 주변을 돌아본다.' 라고 했다. 장석주 시인의 시는 문광훈님의 '시'에 부합하는 시였다. 모든 시인들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고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해도, '인간과 그 주변을 돌아본다.'는 것을 얼마나 따르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무래도 시에 대한 지식이 없다보니 깊게 들어가 버리는 '인간과 그 주변'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는지는 몰라도, <몽해항로>에서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시인은 일상의 자잘함을 모두 시로 승격시켰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웃에게 떠들지 못할 소소함을 시로써 펼쳐놓고 있었다. 그런 시들을 마주하면서, 시에 대한 어려움을 떨쳐버렸을 뿐만 아니라 나의 일상의 자잘함까지 돌아보게 되었다.

 

  2부 앞부분에서는 곤충과 동물들에 대한 짤막한 시들이 나온다. 모기에게 남의 피를 빨며 그렇게 살지 말라고 호통을 치는가 하면, 평생을 손발 빌며 산 파리에게 남루하다는 씁쓸함을 던진다. 달팽이에게는 '사는 것 시들해/배낭 메고 나섰구나.'라고 안쓰러움을 내비치는 시들을 보며, 보통 사람과 다른 시선을 가졌다는 것을 통감했다. 1부의 <뱀을 밟다>에서는 '풀섶에서 일어난 가벼운 접촉 사고다.(중략)/너를 밟은 건/실수였을 뿐이야!'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무릎을 딱 치며 '올 커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논두렁을 걷다 뱀을 밟은 기억이 있었기에, 내 발길질에 놀라 똬리를 푸는 뱀에게 이제라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당시에는 너무 놀라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도망친 기억밖에 없고 종종 에피소드로 읊어댈 뿐이지만, 이 시를 빌어 나 또한 그 뱀에게 사과고하는 바이다.

 

  그리움을 달래려다 도리어 시인이 드러낸 그리움과 마주치고 말았다는 나의 고백이 드러났던 시는 <청산에 살다>였다. 시조를 읽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무위도식하는 삶을 현대판(?)으로 그려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자연과 함께하고 싶은 소망가운데서도 나의 감정을 건드렸던 것은 그리움이었다. 자연이 아무리 삶을 위로해 준다고 해도, 그리운 사람 하나 곁에 있는 것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의 곳곳에 그리운 이가 다녀가면 온 몸과 일상에 붙어있는 후유증이 드러났다. 그리운 이가 곁에 있는 것이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런 분위기가 드러나는 시를 읽을 때마다 그래도 그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비단 시인에게만 던지는 소망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집을 덮었을 때는 잠들기에 그리 깊은 밤이 아니었음에도,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어지럽게 펼쳐진 꿈속을 헤맸고, 몸을 뒤척이느라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머리맡에 놓인 시집을 보면서, 나를 어지럽게 한 것이 너였다며 가벼운 면박을 주고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이 몽롱해 정신을 차릴 수 없으면서도, 결국 나를 위로해 준 것이 시였음을 깨닫고 있었다. 북받치는 서운함과 그리움이 범벅이 되어버린 가운데, 약간의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시 때문이었다. 다시 들춰보아도 어제의 간절함과 위로가 다시 샘솟지 않음을 알기에, 비슷한 일상이 찾아오는 날에 다시 펼쳐볼 것을 다짐했다. 그렇게라도 내 곁에 오래도록 머물러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길 바랐다. 타인의 삶에 어떠한 간섭을 하지 못할지라도, 알지 못하는 이에게 언어로 위로를 실어 나른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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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성경 : 생활풍습 이야기 상(上) - 성경의 비밀을 푸는 생활풍습 이야기 열린다 성경
류모세 지음, 최명덕 감수 / 두란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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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알게 된 것은 <성전 이야기>를 읽게 되면서였다. 성경에 얽힌 이야기가 너무나 재밌고, 신선해서 여기저기 입소문을 내고 다닐 정도였다. 이후로 나올 시리즈를 기다리다 <생활풍습 이야기>가 2권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먼저 <상>권을 집어 들었다. 읽으면서도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신앙을 가진 지인들에게 또 다시 입소문을 퍼트렸다. 그랬더니 현재까지 출간된 시리즈를 모두 사달라는 사람이 3명이나 되었고, 3세트를 주문해주고 나니 꼭 내가 이 책을 팔러 다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단지 책이 좋아서 설명했을 뿐인데, 세트로 구비할 줄은 몰라 내가 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면서도 그분들을 따라 나부터 빠진 책들을 채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리즈 소설도 아닌데,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기다리게 되는 것은, 성경읽기에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나온 내용으로 인해 온전히 성경을 읽는다고, 모든 부분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초배경이 없이 성경을 읽었을 때의 좌절감을 알기에, 이렇게 도움이 되는 책을 통해 성경과 가까워진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했다고 본다. 새로운 시리즈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성경을 읽고 아직 접하지 못한 시리즈 내의 다른 책을 봐야했음에도, 늘 게으름을 피우다 새로 나온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이번에는 <생활풍습 이야기>였고, 두 권으로 되어있어 다양한 성경배경을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로 마주한 책이라 부담감이 없어서인지, 너무 재미나게 읽고 많은 것을 알게 되어 내심 뿌듯해 했다.

 

  생활풍습 이야기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성경배경에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차를 보고서야 내가 생각한 생활풍습이 우리의 일상과 거리가 먼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 시대에 옷감은 무엇이며, 빨래는 어떻게 하며, 어떤 방법으로 고기잡이를 했는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갖게 되는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현재에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생활방식이 많이 달라, 2000년 전 성서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에서 사역했던 저자를 통해서 현지의 소리를 들은 듯 했다. 현재의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2000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없지만, 국내보다 그곳에서 흔적이 더 많기에 피부에 더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열린다 성경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성경을 읽으면서 지나쳤던 단어 하나의 의미도 새롭게 다가온다는 사실일 것이다. 성경을 읽는데 그 단어의 의미가 큰 흐름을 방해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허투로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도 했다. 읽다보면 이렇게 상세하게, 이런 어휘가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들이 있었다. 성경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얄팍한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숨겨진 의미를 알고 나면 그런 생각이 사라짐과 동시에 새로움을 알게 된다. 일례로 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라고 하면 바울의 전도여행에 관련된 여인으로 생각을 그쳐 버렸다. 그러나 자색 옷감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당시의 사람들이 입는 옷감의 색깔로 신분을 알게 되는 등 생활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냄과 동시에 예수님과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는지를 알려준다. 

 

  성경에 분포된 말씀을 중심으로 생활풍습을 풀어가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모든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올 정도로 읽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무래도 성경이 주는 딱딱한 이미지를 벗어나 사람 사는 향기와 하나님의 뜻이 어우러져서인지 재미와 평안함, 그리고 은혜가 함께 버무려졌다.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다는 것에서 어떤 부분을 잡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당시의 교육방법, 옷감의 재료와 세탁, 화장품과 향신료까지 그야말로 생활 곳곳에 숨겨진 하나님이 뜻이 참 달콤했다.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거나, 지나치기 일쑤였던 성경 안에 감추어진 의미가 이렇게 신선하게 다가올 줄 몰랐다. <성전 이야기>를 통해서 이미 경함한 바 있지만, 좀 더 친숙한 생활 속으로 파고든 이번 시리즈는 많은 사람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굳이 출간된 순서로 읽는 것 보다, 은혜가 닿는 대로 읽고 싶은 순서로 시리즈를 만나보는 것도 한 방법인 것 같다.

 

  이렇게 성경과 연관된 책을 만나면, 왠지 성경을 읽고 이 책을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온전히 책 속으로 빨려 들지 못할 뿐더러, 성경에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저자도 서문에 밝혔듯이 억지로 영적인 메시지를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과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발상만 이루어진다면 메시지는 자연적으로 따라온다고 했다. 또한 이 책을 재밌게 읽고, 성경에 대해서 많은 궁금증이 해소되었다고 해서 지식으로만 채우려고 하면 안 될 것이다. 귀만 커지고, 머리만 커지는 성경 지식이 아니라 행동할 수 있는 지식을 알아간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따라올 것이다. 늘 말씀과 함께하며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할 때에 우리의 삶이 더 빛을 발하듯,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열린다 성경>시리즈도 그에 부합하는 책이라고 생각하기에, 많은 신앙인들이 조금이나마 하나님을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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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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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2시를 향해가고 있는 시각, 당신이 있어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한없이 벅차오르는 가슴을 가눌 길이 없어, 지금 당장 이 문자를 보지 못할 것임을 앎에도 전송 버튼을 눌렀다. 눈가를 훔치며 보낸 문자라서 그런지 괜히 마음이 뜨거워지고, 한 존재에 대해 한없는 애정이 샘솟았다. 청승맞다고 해도 좋을 행동을 하게 된 것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독특한 제목의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이라는 책을 읽은 뒤였다.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데서 오는 거리감을 충분히 좁혀주었고, 어디선가 대필을 하며 하루를 일으키고 있을 한 남자가 떠나지 않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한 남자의 일생과 슬픔을 느껴버려 도리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단조롭고 덤덤하게 이어지는 남자의 일상과 추억의 추켜올려짐은 여기저기 얽혀 있었다. 중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남자와 추억 속에 존재하는 남자는 별반 다르지 않으면서도 같은 인물로 보기 힘들었다. 내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어른들에게도 유년시절이 있고 청춘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힘들 듯, 중년에 머무른 한 남자의 현재와 과거의 회상의 연결을 거부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시작에 등장한 남자의 일상은 특별할 것이 없는,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대필을 하며, 자잘한 원고를 쓰는 주인공은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과 일을 의뢰하러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심심하게 다가왔으면서 묘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어, 시작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그를 바라보게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분주하게 마음을 놀리면서도 일상을 덤덤하게 이겨내고 있는 주인공의 독백이 길어지면 그의 실체를 모두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실체를 가뿐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직감하면서도 도시의 구석에 웅크리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평범함을 엿보고 싶었다. 무언가 사건이 일어나겠다 싶은 조짐이 보였던 것은 독특한 의뢰인 때문이었다. 주인공이 기억하지 못하는 술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소설로 써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찾아온 노인이 있었다. 범상치 않은 노인의 등장에 주인공이 그의 이야기를 소설화함으로써 무언가 이변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다. 노인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에도 한 남자의 흔적을 좇아 소설을 써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인물과 인물이 좀 더 또렷한 양상을 띠지 못하고 사그라진 것이 아쉬웠다.

 

  그의 일상을 좇으면서도 의뢰인들에 의해 그의 지난한 삶이 뒤바뀔 거라며 무작정 기대를 걸었다. 소설이므로 그 정도의 기대를 해도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자각시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대필을 업으로 삼고 있긴 하나, 도리어 직업을 빌미로 자신의 인생을 대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중언부언 털어놓고 있었지만, 글이 아닌 생각의 언저리에 머무는 것들이라 대필 업의 주인이자 주인공은 결국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혼자서 힘겨운 하루를 살아가며, 생계를 위해서 글을 쓰는지, 살아온 날들을 불쑥 떠오른 회상들로 대체하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남의 인생의 글만 써주면서 느끼는 자괴감이 느껴져서가 아니라 그런 일련의 과정들로 충분히 자신의 삶을 말했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빈자리, 유년시절의 추억, 가족의 이야기, 시골에서 살았던 추억들을 끄집어내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온 힘을 다해 그리움을 말하고 있었다.

 

  현재 자신의 생활과 위치에서 서서히 아래로 훑고 지나가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향해 추억을 반추하는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이 물큰하게 전해지고 있어, 새벽 2시가 가까워져 가는 시각에 나에게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아내의 빈자리를 조금씩 드러내는가 싶더니, 아내와 함께 한 세월을 모두 곱씹었다. 주인공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아내를 잃은 슬픔은 더 진해졌고, 그 기억과 맞물리거나 연관 없는 주인공만의 기억들도 함께 들추어졌다. 기억의 근본바탕은 슬픔과 그리움이었다. 유년시절의 추억들을 드러낼 때도 마찬가지였고, 아내에 대해서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아내와의 추억이 묻어난 곳에서 아내를 떠올리는 남자, 원래 아내가 없었던 듯 일상을 살아가는 남자. 그 남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모르게 슬픔이 전이되어 전혀 다른 성격의 눈물을 훔치곤 했다.

 

  남자의 직업이 대필하는 것이어서인지 글에 관한 내용도 자주 언급되어 또 다른 흥미를 일으켰다. 소설 안에 쓰인 대필할 때의 방법들이 드러나 있어 글쓰기에 참고해도 될 듯 했다. 그런 일상 속에서 그냥 한 남자의 행보를 지켜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또한 그 남자의 앞날이 지금과는 다르게 평이하게 흘러간다는 보장이 있었으면 얼마나 다행스러웠을까. 남자가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동네에 아내와의 추억이 많이 묻어 있었고, 조금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아내에 부응하듯 남자의 눈에는 죽은 사람들이 보였다. 죽은 사람의 모습은 그 동네에서만 보였고, 소설의 끝자락에서는 죽은 이들과의 조우로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도대체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도시 속에 머무르고 있는 고독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려도 되는 걸까? 그렇게 지나쳐버리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그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없다는 것. 우리의 내면에도 그런 아픔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 무엇보다 그런 사람들이 수두룩함에도 제대로 된 교류를 가져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울면서 걸어가는 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던 저자의 말마따나 이 소설이 "교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움과 슬픔이 더 진해지더라도 한 편의 소설로 인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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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2
리처드 바크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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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타인의 집에 가면 통과의례처럼 책장을 꼭 둘러보고 온다. 아무리 빈약한 책장이라도 목록을 훑어봐야 그 집을 구경하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몸이 아픈 지인의 집에 병문안을 가면서도 당연하단 듯 책장을 구경했다. 책들에 대한 설명도 듣고, 겹치는 책들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다 <갈매기의 꿈>을 보게 되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인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 책을 달라고 졸라서 거의 10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1999년에 책을 읽었지만, 리뷰가 남겨져 있지 않아서인지 내게는 새로운 책이나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어나갈 때마다 무(無 )로 남아있는 기억의 언저리를 차곡차곡 쌓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책이나 영화나 너무 유명하면 더 관심을 갖게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정작 책을 읽지도 않고 영화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행동하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수집된 다양한 정보들로 그런 착각을 하기 쉬운데, 나 또한 <갈매기의 꿈>을 다시 읽기 전까지 갈매기 조나단의 고뇌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짧은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얼마나 많이 책장을 덮고 심호흡을 했으며, 기억하고 싶은 구절에 메모지를 붙였는지 모른다.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책의 두께도, 발행된 시간도 상관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험이기도 했다. 약 20년 전에 발행된 책이어서 지금 읽기에 어감이 조금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처럼 강렬할 수가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존재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갈매기 조나단이 하게 되는 고민들이 격정적으로 나를 훑고 지나갈 때의 그 익숙함. 10대와 20대 초반에 내가 겪었던 과정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 했다. 나의 존재감부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정답 없는 고뇌의 나날들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그런 시간에 과연 나는 어떠했는가가 떠오르는 순간, 조나단을 향해 경이로운 시선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포기해 버리는 것이 더 빠르고, 내가 속한 세계에 있는 듯 마는 듯 두루뭉술하게 존재해 갔던 나와는 달리 조나단은 자신의 열망을 찾아 나섰다. 오로지 먹이에 구하는 것에 바빠 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동료 갈매기들을 보면서, 조나단이 가진 안타까움이 나를 향한 시선인 것 같아 낯이 뜨거워졌다.

 

  조나단은 먹이만 구하며 살아가는 삶에 만족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알기 위해 나는 연습을 했다. 그러나 주변의 시선은 따가웠다. 급기야 무리에서 쫓겨난 조나단은 남겨진 그들이 안타까우면서도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갈매기 떼 전체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조나단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노력했고, 그에 따른 대가에도 개의치 않았다. 조나단은 한 마리의 갈매기에 불과하지만, 얼마나 높은 곳을 향해서 올라가며 하강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기술이 필요한지를 연마해 나갔다. 그것은 혼자 가야하는 고독한 길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 하면서 한계를 시험하고, 나날이 발전해 가고 깨달아가는 일상이 조나단은 만족스러웠다.

 

  그런 비행을 하고 있던 중, 조다난은 자신과 비슷한 일행을 만나게 된다. 조나단이 갈매기 떼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갖게 된 고민을 그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고, 조나단이 연마한 비행기술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 무리에 합류한 조나단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었음은 물론,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겨진 갈매기 떼 무리를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했다. 오로지 먹이다툼만 하고, 고귀한 삶이 있다는 것은 모른 채 사그라져 가는 생명들. 비단 갈매기 떼를 향해서 던지는 안타까움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간군상도 그런 모습이 비일비재했고, 조금만 다른 색깔을 내면 배척하기 바빴다. 조나단은 자신이 당한 처사를 감수하면서도, 같은 동족에 대한 안타까움만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들과, 특히 원로 갈매기 치앙과 일행과 함께한 날들은 꿈만 같았다. 인간으로 치자면 경지에 닿을 수 있는 한계를 시험하기도 했고, 그 세계에 머문 치앙을 직접 보기도 했다. 조나단이 완전한 속도를 꿈꿀 때,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음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이야." 라며 충고를 해주었다. 조나단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떠날 때, 치앙은 '끊임없이 남에게 사랑을 베풀어라.'는 말을 남겼다. 그가 남긴 말들과 행동으로 인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종교를 떠올리기도 했는데, 결국은 어떠한 생각을 강요하거나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시키며 자신의 삶의 깨달음을 나누어 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나단은 자신의 내면에 일렁이는 안타까움과 신념이 치앙의 말로 인해 확신이 서는 듯 했다. 그래서 치앙이 말한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찾아 자신을 배척한 갈매기 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것 자체가 파장을 일으켰듯이 그곳에서 평탄할 리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는 몇몇 갈매들을 가르쳤고, 그들에게 치앙의 뜻을 실현시킨다는 것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앎에도 '사랑을 베푼다.'는 말을 실천하고 있었다. 조나단이 가진 생각과 나는 법을 보고 마치 신격화 시키려는 무리들도 있었다. 조나단은 평범한 갈매기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이해를 시키려고 한다. 남들과 다르게 난다고 해서 그것을 믿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자아를 발견하라고 말한다. 스스로 움직여서 찾아내야 하며, 그럴 때 스스로 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서서히 조나단의 뜻을 이해하는 갈매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나단이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한계를 시험하며, 깨달음을 다른 갈매기에게 나눠주는 과정은 그 세계에서만 속한 것이 아니었다. 내 자신에게, 수많은 무리들에게 쉼 없이 하는 말로 들렸고, 한 단계씩 밟고 올라갈 때마다 내 몸을 관통하는 짜릿함이 느껴졌다. 조나단이 경험한 것들을 내가 똑같이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 그가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삶에서 나를 대입시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리지 말고, 이해하려 하며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설 때 날 수 있다고 했으니, 나의 길이 어떤 것인지는 나에게 남겨져 있다. 여전히 무거운 질문이지만, 꿈을 품고 잃지만 알아도 조나단처럼 비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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