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다 성경 : 동물 이야기 - 성경의 비밀을 푸는 동물 이야기 열린다 성경
류모세 지음 / 두란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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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 이야기>를 끝으로 열린다 성경 시리즈 1탄이 마무리 되었다. 7권의 책 중에서 세 권밖에 못 읽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들과 이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2탄이 언젠가 출간된다는 것에 관심이 간다. 그만큼 성경을 이해하고 숨은 뜻을 발견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배경지식을 조금이나마 알고 읽을 때 책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열린다 성경 시리즈가 주는 개운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지식이라도 습득하고 성경을 대하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대할 때마다 한가지의 주제로 책 한권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하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이 시리즈 중 처음 만났을 때도 놀라웠는데, 새로운 시리즈를 만날 때마다 성경의 다양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마디도 땅에 떨어뜨릴 수 없이 귀하듯, 열린다 성경 시리즈로 그 말씀이 더 귀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자칫 의미를 몰라 지나치기 쉬운 구절들을 의미상 해석을 해 주는 것은 물론 그 이면의 숨은 뜻까지 알려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약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현대인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지만, 시대적 배경이 너무 달라 이해할 수 없거나 왜곡되는 경우도 많다. 이 책을 그런 오류를 줄여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성경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생각하며 만나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성경에서 나오는 동물들이 이렇게 많고, 이런 의미가 담겨 있는지 몰랐었다. 기껏해야 양이나 나귀 정도밖에 떠올리지 못했는데 개, 소, 돼지, 여우, 올빼미를 지나 벌과 메뚜기, 나방, 이까지 포함하고 있어 다양함에 주눅이 들 정도였다. 말(馬)만 하더라도 단순히 타고 이동하는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하시며 전쟁과 교만의 상징이 되지 않게끔 하셨는데,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 왕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행한 불명예스런 왕이었다.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것 이외에도 아내와 금은을 많이 축적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모든 것을 어겨 '지혜의 왕' 이면에는 불순종의 왕이라는 명칭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나귀와 구유에도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나귀라고 하면 당시의 이스라엘에서는 짐을 나르는데 쓸모 있는 짐승이었지만,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것이나 구유에 누인 예수님의 모습은 스스로 낮아지시고 순종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흔히 구유라고 하면 말구유를 떠올려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기 일쑤인데, 당시의 구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뿐더러 예수님이 뉘이신 곳은 말구유가 아닌 나귀 구유라고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수정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혼자만의 오해 속에 그냥 넘겨버린 사실들이 바로잡힘으로써 하나님이 어떠한 존재인지, 하잘것없는 나를 위해 어떠한 모습으로 오셨는지를 더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른 책에서도 그랬듯이 동물 이야기를 통해서 성경의 참된 의미를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바로잡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지 꼭 짚고 넘어갔다. 만약 그런 오류를 단지 수정만 하고 넘어간다면 방대한 지식으로 머리가 비대해지는 현대의 그리스도인의 편협한 모습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지식도 중요하나 그 안에서 어떻게 믿음을 바로 잡아나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참뜻을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배경지식을 좀 더 안다고 젠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데 섞여 있는 양과 염소를 보면서 '믿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믿음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을 충고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바로 보아야 할 것들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온 동물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내가 잘못 알았던 것들을 짚어 나간다는 것은 무리다. 또한 이 책에 실린 동물과 관련된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 성경에 한 발짝 다가간 느낌이 들었고, 책 속에 실린 색다른 의미나 성경 구절 하나로 마음이 들뜨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다. 하찮은 참새마저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 라고 말씀해 주실 때면 나의 존재감이 불쑥 솟아오르곤 했다. 성경을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고, 나의 믿음을 키워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나의 존재감을 세워가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는 뜻이 와 닿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내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누리게 해준 세상의 모든 것들을 기꺼워할 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열린다 성경 시리즈로 인해 성경과 한층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다. 재미나게 책을 읽은 이상 모든 것이 내 안에 축적되지 않더라도 성경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준 것만도 감사했다. 무엇보다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하나님을 증거하며, 이 기쁨을 타인에게 나눌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깊은 뜻도 헤아리게 되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시인하고, 주일 성수를 잘하고, 십일조를 잘 내고, 건축헌금을 분에 넘치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핵심은 바로 '손접대(구제)'에 있다.' 고 말한다. 이 말씀이 오로지 성경지식으로 채우려는 나의 발걸음을 멈칫하게 만들었고, 사실을 알아가는 데만 그치지 않고 영안을 트이게 하는 것에 게을리 하지 않게 해주었다. 모든 것을 예수님과 같이 행동할 수 없지만, 다양한 노력(성경 배경을 알아가는 것도 포함해서)을 통해 그분을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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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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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간의 휴가가 주어져 종일 집에서 뒹굴 거리다 해질녘에 책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간단한 볼일도 있고 근처 공원에서 책을 읽기 위해서였다. 계속 집에만 있어서 광합성을 좀 하고 싶기도 했고 휴일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공원에서 책을 보는 것이야말로 그 두 가지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거라 생각하고 그곳에 제격인 에세이를 들고 갔다. 고 장영희 교수님의 1주기에 맞춰서 출간된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란 책을 공원에서 읽으니, 책의 내용이 온 몸으로 전달되는 것은 물론 글로나마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으로 다가왔다.

 

  순식간에 읽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이틀간의 휴가를 모두 활용하기 위해 장영희 교수님의 책은 모두 공원에서 읽었다. 집중해서 읽느라 햇볕을 너무 많이 쬐여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첫날은 '사람과 풍경'에 관한 에세이를 읽었고, 둘째 날은 '영미 문학'에 관한 부분을 읽었다. 자연 풍경과 스며드는 글은 나와 하나가 되었고 그런 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현재의 모습이 참 싱그러웠다. 이런 시간을 혼자서 만끽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글은 내 마음을 흔들었고 담요 한 장을 무릎에 덮고 있는 내 모습도 자연 속에 동화되길 바랐다.

 

  공원에서 책을 읽은 첫 날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장은 아주 짧았다. "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I Think I can." 미국의 유명한 동화 <꼬마 기차>에 나오는 말이라는데, 'Yes, I can.' 보다 색다르게 다가왔다. 이 말을 구분해서 가르치는 것이 미국적 사고방식의 근간인지 모른다는 저자의 말처럼 "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한탄하기보다, 사소한 것이라도 표면으로 드러내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 현재 나에게 필요한 것 같다. 첫 날 나선 산책에서 얻은 것은 그 단순하고도 뼈 있는 진리였다.

 

  이처럼 저자의 수필을 읽다보면 간결한 문장 하나에 힘을 얻기도 하고, 유치한 개그에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며, 일상 속에 묻혀있는 자잘함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다른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글의 소재로 삼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지나쳐 버리기 쉬운 참된 의미까지 발견해 주는 저자의 글은 그래서 더 힘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이 밑바탕이 되어 짧은 글귀로 독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타인의 이야기, 자신의 경험담으로 글을 진솔하게 만들어갔다. 어떠한 요소가 들어 있던지 간에 인간의 삶이 저변에 깔려 있어 생동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혼자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 낯모르는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공감대, 글로 남겨진 향연 가운데서 그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저자의 에세이와 <영미시 산책> 시리즈를 이미 만나서 구성은 낯익었을지 모르나, 고인이 된 저자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더 의의가 깊었다. 마치 오래전에 알고 지낸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움이 앞섰고, 편안한 분위기에 몸도 마음도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공원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고, 타인이 날 봤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했을지라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책 내용에 따라 희로애락을 느꼈다. 한 줄의 시에 마음을 놔버리고 아파하기도 하고, 저자가 제자들에게 한 말을 나의 좌우명을 삼아도 되겠다 싶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합쳐져 한 권의 책을 읽어냈지만 그 속에 내포된 의미는 한 권의 책으로 결부시킬 수 없는 더 귀중한 것들이었다.

 

  저자의 <영미시 산책>에 삽화를 그려주었던 화백 김점선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분명 이 책의 삽화도 그 분이 그려주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글과 잘 어우러진 삽화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저자와 같은 해에 돌아가신 김전선 화백이 떠올랐고 '잠시 떠나고 싶지만 영원히 떠나고 싶지는 않은 곳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중략) 오늘이 나머지 내 인생의 첫날이라는 감격과 열정으로 사는 수밖에요.' 라던 저자의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글 속에서 만나는 삶에 대한 애착과 불안감, 감사를 마주하면서 저자를 기억하는 수많은 친구들과 독자들이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한정판의 혜택으로 저자의 육성과 창작 추모곡이 있는 CD를 들으면서 잠시나마 저자를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이 갖기도 했다. 저자가 읊어준 에밀리 E. 디킨슨의 <만약 내가······>란 시는 내 곁에서 직접 낭송해주고 있는 것 같아 더 애달프게 다가왔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도 더 이상 다른 글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사진으로 보는 저자의 일생을 보면서 저렇게 치열하게,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은 뜨겁게 간직한 모습을 통해 다시금 용기를 얻었다. 나의 현재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앞으로 같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연연해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얼마든지 저자가 흩뿌려 놓은 글로 다시 만날 수 있고, 그녀가 남긴 참 된 의미를 깨달아 간다면 그보다 더 좋은 만남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봄날의 끝자락에서 나에게 자연 속에서 독서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저자에게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나의 힘든 마음을 위로하여 준 것 같아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어디에 있든지 늘 우리와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분명 고인은 더 좋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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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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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을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취향과 한참 색깔이 다른 책이라는 걸 감지했다. 이 책에 대한 찬사를 보고 나름대로 기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취향을 충족시키지 못한 데서 오는 실망감이었다. 그렇더라도 무조건 책을 덮어 버릴 수 없는 노릇이라 나름 정독하면서 완독을 했는데, 충격적인 결말이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나를 휘감고 돈다. 책을 읽는 동안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결말이라는 데서 오는 충격이기도 했고,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독특한 구성과 소재에 호기심이 일었으나, 내가 소화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풀이 죽었음에도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은 힘이 들었을지 모르나 결말 앞에서 망연자실한 내 모습이 수습이 되지 않았다. 힘겨웠던 과정은 일순간 사라지고 결말 앞에서 오롯이 나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에 대한 느낌을 남길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강렬했음에도 결말을 알고 난 후에는 나름대로 할 말이 많게 느껴졌다. 그것은 상실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 속의 배경이 미래의 모습이라 생각해 본적은 없었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의식이 사라져 버리도록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인간미를 잃어버리고, 인간화 되지 못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기분이 어떨지 주인공 아낙시맨더를 통해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책 속에 내포된 의미는 많은 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나 보다. 띠지만 살펴보아도 인지과학, 분자생물학, 진화론, 플라톤 철학을 한 권에 담아냈다고 했으니, 나와 거리가 먼 소설이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다만 이런 주제를 어떻게 섞었을지, 그런 분야에 문외한인 내가 어떻게 읽어 나갈 수 있을지 궁금했지만 드문드문 이해를 하다가도 대부분 헤매기 일쑤였다. 철학자들이 통치하는 공화국의 최고기관인 학술원에 들어가려는 아낙시맨더(아낙스)와 시험관의 대화로 이루어진 소설은 소크라테스의 문답 형식을 빌리고 있었다. 총 네 시간동안 구술로 시험을 보는 아낙스와 시험관의 대화의 주제는 아담 포드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인간으로써 공화국에 나름대로 맞선 인물인 그를 연구한 아낙스는 시험관과의 대화를 통한 시험으로 학술원의 합격여부를 가르게 되어 있었다.

 

  네 시간동안 시험이 치러지고 잠깐의 쉬는 시간이 있는 가운데 아담 포드의 삶, 아낙스가 아담 포드에 갖고 있는 생각을 뛰어넘은 논리와 이상, 시험관들은 아담 포드의 삶을 통해 아낙스가 품고 있는 생각을 엿보려 했다. 시험 시간 동안 단순히 아담 포드의 삶만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담 포드가 한 작은 행위의 이면까지 간파하며 추론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안에는 미래의 모습에 대한 변화와 공화국의 배경, 인간으로서 가지는 가지와 의식, 인간미까지 모두 드러나 있었다. 아담 포드가 인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나 아낙스가 아담 포드의 삶을 연구하고, 그 안에 숨은 뜻을 시험을 통해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아낙스가 인간이라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대전쟁 이후 오랑우탄을 본떠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과 아낙스도 시험관들도, 자신이 학술원에 지원할 수 있도록 지도해준 펠리클레스 선생님도 모두 인간이 아닌 오랑우탄과 가까운 기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실이 밝혀지는 한 시간을 제외한 3시간 동안 인간의 감성을 내세워 자유를 갈망했다는 아담 포드의 삶에 대해 왜 저렇게 파고드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때론 따분했고 지난했으며 아무리 학술원에 들어갈 수 있는 과정이라고 해도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시험을 통해 아담 포드의 짧은 생애가 낱낱이 밝혀지다 기계인 아트와의 생활과 대화가 주된 주제로 떠올랐다. 기계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지, 아니면 인간과 같이 사고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끝없는 갈등과 신뢰를 낳다 아담 포드와 아트가 동시에 탈출하는 것에서 소설은 일단락되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시험관들은 술수까지 동원해 그런 아담 포드의 행동과 사고 속에서 아낙스가 갖고 있는 생각을 도출해 내려 애썼고, 아낙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뚜렷이 드러내야만 학술원에서 역사학자의 길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은 함정에 지나지 않았고, 생각지도 못한 반전 앞에서 아연실색한 것은 비단 아낙스 뿐만이 아니었다.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시험이 끝날 때마다 휴식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때마다 아낙스는 페리클레스 선생님을 만난 것부터 지금 이 자리에 온 것까지 모든 것을 떠올렸다. 그랬기에 독자인 나도 온전히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했고, 독특한 구성으로 소설이 씌였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낙스가 아담 포드의 삶을 보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과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위험(아담 포드의 삶을 옹호하는)이 감지되자 시험관과 학술원, 페리클레스 선생님의 정체까지 모두 드러난다. 철저하게 기계로 살아가야 하는 공화국에서 아담 포드와 같은 의식을 가진 오랑우탄은 허용할 수 없었다. 그 시험은 학술원으로 가장해 그런 의식을 가진 자들을 걸러내는 장치에 지나지 않았고, 4시간의 시험은 그런 자들을 분별해내는 과정이었다. 페리클레스 선생은 아담 포드와 같은 의식이 농후한 자들을 골라 학술원 시험을 준비시켰고, 판단은 시험을 보는 동안 가려졌으며 지원자의 최후 또한 결정되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아낙스의 마지막 말은 감정을 가진 모든 생명체의 최후를 보는 듯 했다. 미래의 세계가 그렇게 메말라가고 획일화 되어 간다 생각하니 끔찍하면서도 잠자코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내가 무척 미미한 존재로 느껴졌다. 아낙스와 시험관이 아담 포드의 삶에 빗대어 드러낸 모든 논쟁 속에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을 간파할 능력도 없거니와 아낙스의 최후 앞에 덩그러니 놓여진 '인간의 의미'만이 나를 뜨겁게 만들었다. 하잘것없는 내 모습이라고 해도 이런 모습을 잃어버린다면, 살아가는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세계를 통째로 잃어버리고, 감정을 가진 인물이 바이러스처럼 퍼질 것을 우려해 철저히 제어를 가하는 공화국의 모습은 상상하기 싫은 세계다. 그런 모습이 현재에 이미 잠재해 있다 해도,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종말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꽤나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는 소설 속에서 내가 찾은 것은 겨우 이것뿐임에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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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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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의 책을 읽어낸 느낌치고는 너무나 생경해 당황스럽다. 언뜻 에드워드 호퍼를 떠올리게 만드는 겉표지에 친근감이 갔지만 다른 화가의 작품이라는 사실과 낯선 저자의 이름이 긴장감을 주었다. 책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을 강렬하게 만들면서도, 책장을 여는 순간 현재의 나로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겉표지, 저자, 제목만으로 이토록 긴장하기는 오랜만이었고 그 기억을 상기시키듯 책을 읽는 내내, 책장을 덮고 난 뒤까지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느낌은 상실과 환희라곤 맛볼 수 없는 지지부진함이었다.

 

  단편을 읽으면서 이렇게 길을 잃어 본 것은 처음이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물론이고 책 속에 들어와 있는 도중에도 길을 잃기 일쑤였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잃고, 이야기의 흐름을 잃었으며, 그들의 의식가운데 담겨있는 고뇌를 잃었다. 그래서인지 10편의 단편을 읽었음에도 어떤 한 인물이 뚜렷이 기억나지 않았고, 각자의 색깔을 까지고 있음에도 하나의 덩어리로 뭉뚱그려진 느낌이 들었다. 분명 그들을 좇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헤맸으며 걸핏하면 길을 잃었던 것일까. 삶에서 마주치기 싫었던 것들을 그들 가운데 마주하고 말아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름대로의 색깔을 지녔다고는 해도 비슷한 느낌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공통된 소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결혼, 사랑, 불륜, 배신으로 점철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도피하고 싶은 인생의 단면이었다. 행복한 삶을 향해가도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까 말까인데 이런 주제들로 채워진 단편들 속에서 무엇을 갈망해야 하고, 무엇을 나누어야 하는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절망과 극단의 끝에서 범희망적인 가치를 꿈꿀 수 있다 해도 나의 내면은 온통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얼룩들로 채워진 것 같다. 아내의 귀걸이를 정부에게 선물로 주고 쾌락에 몰두하는 남자, 자신의 집에 머물러 있는 시인과의 관계를 눈치 챈 부인, 젊은 시절의 사랑을 다시 만났지만 겁이 나 도망치는 남자, 사랑의 실패와 성적 욕망이 뒤범벅된 여자들의 이야기 등 어느 하나 유쾌한 축에 못 드는 이야기들뿐이다.

 

  그런 이야기를 피하고 싶으면서도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은 인간 내부에 깊이 포진되어 있는 뒤틀린 욕망과 어긋나고 싶지 않은 삶에 대한 반듯한 잣대 때문이 아니었을 까란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꼭꼭 감추어둘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행동하며, 거리낌 없이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적어도 이 책 속의 인물들은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상실감에 겨워 불행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본능에 충실하며,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저자 또한 뚜렷한 결말을 내어주거나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옆에서 지켜보며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모든 이야기를 창조한 것이(많은 소재를 실재에서 재구성했다하더라도) 저자라고 해도 타인의 인생의 단면을 기록한 듯 어떠한 감정이입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다만 '행복은 다른 걸 갖는 게 아니라 언제나 똑같은 걸 갖는 데 있다는 걸 난 몰랐어.' 라고 말한 <방콕>의 여인처럼 삶의 진리가 책 속에 듬성듬성 박혀 나를 한없이 찔러대고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인 <어젯밤>은 가장 마지막에 실려 있어 그런 분위기를 고조시켜 주었다. 병든 아내의 자살은 도운 남편은 애인과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내지만, 다음 날 아침 침실에서 걸어 나오는 아내를 보고 경악하고 만다. 애인과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 났고, '그냥 그게 전부였다.'라고 끝맺음을 한 부분에서 이 책의 독특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단편집이기에 꼭 순서를 지킬 필요는 없으나 순차적으로 읽어나간 뒤 만난 <어젯밤>은 마지막에 실려 있는 것이 유종의 미를 거두려 거드름을 피웠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나와는 거리가 먼, 혹은 내가 살고 싶지 않은 삶을 살아낸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불쾌감이 일었지만 비난할 여지는 충분하지 않았다. 길을 헤맸을지언정 그들의 인생을 지켜본것 뿐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내고 있는 삶의 일부분을 본 것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어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단지 나와는 다른 삶이라는 차이를 둘 밖에는.

 

  대화체 옆에 연결된 문장 때문에 읽기에 헷갈렸던 나만큼이나 옮긴이는 번역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너무나 유명한 작가이고 문장에 들어있는 엄청난 의미를 온전하게 옮긴다는 것은 어쩜 불가능 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어색한 번역체를 읽다 단아한 우리 문장을 읽을 때의 차이를 알기에 옮긴이의 고역과 내가 느낀 낯섦을 이해하는 바이다. 하지만 모두가 찬사하는 작품이더라도 나와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 면에서 <어젯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싶고 제임스 설터라는 작가에 대해 조심스러워 진다. 먼 훗날 원서로 그의 책을 읽을 때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현재 나에게 제임스 설터는 미지의 세계에서 온 작가다. 앞으로 그의 행보를 지켜봐야겠지만 낯설고 당황스러운 첫 만남으로 그를 판단해 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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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얼굴 - 그의 카메라가 담는 사람, 표정 그리고 마음들
조세현 지음 / 앨리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한참 활자에 중독되어 있을 때, 오로지 읽는 것에만 치중해 사진으로 채워진 책이나 데생 집 같은 책은 멀리했었다. 읽을거리가 없다는 이유에서였고, 느낌을 어떻게 남겨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글에서 맛볼 수 없는 매력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사진집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읽을거리가 없다는 편견은 깨진지 오래였으나 여전히 느낌을 남겨야 하는 부분에서는 어려움이 따른다.

 

  국내에서 굵직한 사진가로 알려져 있음에도 사진에 관해서 문외한인 내게는 이름조차 낯설었다. 책을 읽다 여기저기서 그에 관한 정보를 듣고는 그제야 약간의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와의 조우는 처음이니 이 만남으로 인해 온전한 시간이 되길 바랐다. 저자는 중국 시안에서 찍은 사진들로 채워 짧은 글과 함께 <얼굴>이라 책제목을 붙였다. '사람의 표정을 사진에 담는 건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라고 말한 저자는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었다. 시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70~80년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 우리도 저런 표정을 가지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순수한 웃음이 배어나는 얼굴이 많았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있는 얼굴을 보면서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특별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느껴졌다. 저자 또한 그런 사람들의 통해 '삶이란, 그 존재로 이미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삶이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그들의 무심한 표정에서 배운다.' 라고 했듯이 일상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특권인 것 같았다. 무심한 표정의 이면에는 '타인을 향한 호기심으로 스스로를 무장해제시키는 웃음.' 도 담겨 있었다.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가족은 몇 명이나 될까, 자신의 삶에 행복해 할까 등 나름대로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활자로 읽지 않고 이면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진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글이 없다고 투덜대며 쉽게 넘기던 책장을 오랫동안 붙들면서 사진이 찍힌 순간의 찰나와 사진 속에 담겨지지 않은 세계를 만들어 보려 애썼다. 저자도 '구구절절한 문장들을 거둬내고 간결한 한마디로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작업의 묘미를 느끼는 순간이라고 했으니, 그 사진을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묘미가 전달될 거라 생각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찍어온 사진을 보면서, 혹은 찍히지 않은 곳을 마음에 담으면서 사진가는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곳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생각과 함께 살아있음을 불쑥불쑥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 사진을 찍는 일에 앞서 마음을 여는 일일 것이다. 풍경 속에 자신이 녹아들게 만들고, 마음에 따라 사진의 양상이 달라지듯이 사진을 찍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삶의 찰나를 살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그 모든 것이 잘 녹아 있는 것이 시안 사람들의 얼굴이 찍힌 사진집이었다. 얼굴을 보며 단순하게 표정만 지나칠 때도 있고, 흔적을 추측하기도 하며, 사진 속 배경을 탐문하기도 했다. 잘 찍힌 사진집이 만들어졌다는 생각보다 마음과 마음이 얽혀 보는 이에게도 얽힘을 유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자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사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며 때문에 사진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고 강조한다고 한다. 사진에 대해 잘 알아야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사진가가 좋은 사진가이고, 사진을 보면서 찍는 이의 시선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독자가 깊은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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