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제 140회 나오키상 수상작인 <애도하는 사람> 속에는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랑자가 등장한다. 그만의 독특한 애도의 요점은 죽음이 잊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주인공이 좀 색달라 보이긴 했지만 하루 동안에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타인의 죽음을 목도하고 아무런 감흥 없이 지나쳐버리던가. 그러나 목도하던 죽음이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에게 다가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제야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고, 자신의 삶까지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잊히고 무덤덤해지는 모습 앞에 인생의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을 맛보기도 한다. 

 

  첫 머리부터 죽음에 대해 언급하게 된 것은 <고향 사진관>을 쓴 저자 때문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친구인 서용준을 기리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조금은 지난한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죽음은 예견하지 못한 채, 친구의 기막힌 삶을 풀어놓는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책의 끄트머리에 가서야 저자가 친구를 잊지 않기 위해, 곁에 없더라도 가슴 속에 묻어두고 기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죽음은 너무나 쉽게 잊히기에 <애도하는 사람>의 주인공이 생각이 났고, 그 책 덕에 저자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타인의 죽음을 멀뚱멀뚱 쳐다보면 구경하는 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마음이 메말랐다며 스스로를 타박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제대를 앞두고 복학을 목전에 두고 25의 나이에 가장이 되어야 했던 청년 서용준. 자유롭고 자상하시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시자 그는 장남으로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다. 고향 영주로 내려와 아버지가 벌여놓은 사진관과 예식 업을 이어 받았지만, 그 일은 용준이 바라던 일이 아니었다. 생뚱맞은 아랍어과에 다니고 있었어도 완전히 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갑작스런 변화는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겉으로 표현을 잘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포자기 한 듯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져 버린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수재란 소리를 들으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던 그였으니 주변의 시선도, 자신에게 닥친 현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술에 취한 날이 많았고, 짜증이 늘기도 했으며, 사랑을 제대로 해 본적도 없으면서 어머니의 권유로 선을 보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 그래도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병세가 호전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꿈을 위해 학업을 이어가거나 시험 준비를 하는 등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거라고. 하지만 장남으로서의 책임감과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떠올리며 그 자신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 곁을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곳에서 결혼도 했고 고향을 떠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기울어가는 예식 업을 접고 3층은 주거 공간, 2층과 1층의 절반은 세를 주고 1층의 남은 공간에다 사진관을 열었다. 아버지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간판도 <고향 사진관>으로 하고, 아버지가 쓰던 기계며 다른 소모품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 시류와 맞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려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희망이라곤 엿볼 수 없는 삶을 살던 그가 그런 행동까지 하자 내 마음까지도 답답해졌다.

 

  책의 중반까지 통 마음을 잡지 못하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 때문에 진부함을 이겨내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주인공의 상황을 알고 있기에 그를 쉽게 이해한다고 못하면서도,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용준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돈다는 느낌이 들었고, 어떤 벽이 가로막고 있어 무언가 덧입힌 내면이 솔직하게 다가오는 것 같지 않았다. 문체가 좀 더 깊이 있었다면, 더 세밀하게 묘사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내내 일었다. 그런 글 속에서 벌컥 화를 내고, 고집을 피우며, 마지못해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은 여전히 그의 내면에 채워진 방황과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가족들을 건사해야 하는 부담감이 서려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은 친구들의 시선을 통해서였다. 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지만 타지에 있는 친구들이나 같은 고향에 있는 친구들일지라도 늘 <고향 사진관>에 들락거렸다. 당구를 치기도 했고, 소주 한 잔 걸치며 소소하게 보내더라도 용준이 편하고 좋았기 때문에 친구들은 몰려들었다. 속이 깊고 흉보는 걸 싫어하며, 좋은 얘기만 전해주는 친구이다 보니 고향의 푸근함처럼 용준이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두 동생과 누나도 결혼시키고 자신도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음에도 아버지가 여전히 병석에 누워 계시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가 왜 너는 늙지 않느냐는 물음에 아버지가 못 알아 보실까봐 라고 대답하는 그 앞에 세월의 무색함이 섭섭할 정도였다.

 

  그는 병석의 아버지 곁을 지키면서, 가족의 삶을 꾸려가면서 인생을 배워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노라고,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그렇게라도 계신 것에 감사해하며 아버지의 자리가 자신과 대체되는 것에서 많은 것을 느껴가고 있었다. 하지만 25살의 청년이 마흔이 넘도록 병석에 계신 아버지도 힘에 부치는 듯 했다. 가족들의 예견 가운데 아버지의 죽음이 임박한 것 같았고, 막상 아버지의 죽음이 다가오자 허무함과 동시에 알듯 말듯 한 감정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으로 소설은 끝이라고, 조금은 힘겨운 삶을 살아온 친구의 삶은 이제 빛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끝도 전부도 아니었다.

 

  청춘의 꿈을 접고 고향에 내려와 아버지 곁을 지켰던 용준에게 암이 찾아왔다. 세상을 타박하는 친구들이나 자신을 걱정해주는 가족들 앞에서도 오히려 태연했던 그였다. 그의 병은 제대로 펴보지 못한 꿈이 있었기에 안타까웠고, 앞으로 다가올 죽음은 남겨진 가족에게 한이 될까 염려되었다. 그래도 가족의 행복을 보며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위로라면 위로였을까? 그런 시간마저 허용되지 않는다면 세상은 너무 야박하다고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그를 기억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기에 그의 마지막 길이 쓸쓸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박해져가는 세상 속에서 그를 기억할 친구들이 많다고 생각하니 나름대로 멋진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꼭 무언가를 이루기보다 평범하게 가족을 잘 아우르며 사는 것이 더 큰 성공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사람이 그였기 때문일 것이다.

 

  파란만장했던 한 사람의 인생 앞에 눈물도, 회한도, 깊은 안타까움도 없었다. 내가 이렇게 무던한 사람이었던가 생각하다가도 그가 살아왔고 남겨놓은 삶이 불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타인의 삶이고 죽음이기에 메마른 시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부모와 가족밖에 모른 채 살아왔던 한 사람.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융통성도 없고 오로지 올곧게 살다간 그 앞에서 나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떠나 어떻게 살아가야 보람된 인생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 저자의 친구인 서용준이 살다간 삶 속에는 그가 자주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 늘 잠재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그런 친구를 잊지 않기 위해 저자는 이 소설을 썼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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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생존 게임 -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마르쿠스 베네만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을 보면서도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동물들의 생존 게임'보다 '지능적이고 매혹적인'에 더 의아심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동물들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고 해도,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동물들을 떠올리기엔 나의 지식이 부족했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나의 무지가 채워질 거라 생각하고, 어떠한 동물들이 등장하고 생존권을 펼치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나의 궁금증을 해소시키고 채워주듯 낯선 동물들의 생존 게임은 그야말로 놀랍고, 지혜롭고, 잔인하기까지 했다. 처음엔 그런 사실들을 마주할 때 흥미롭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동물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상세히 알아가자 인간보다 더 지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됨은 물론 동물들의 세계에도 나름대로의 질서와 생존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몇 동물들을 묶어 서식 방식이나 각자의 특징을 설명해 주어도, 이 책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은 동물들이 먹이를 구하는 방법이었다. 종종 먹이를 구하는 일 외에도 쾌락을 즐기는 동물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먹기 위해 하루를 살아가는 동물들에겐 그야말로 최대의 관심사이자 중요한 과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 과정에서 먹이를 구하는 지혜도 나올 수 있었고, 폭력성과 잔인함을 갖춘 면도 드러나게 되었다. 동물들이 처음부터 그랬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끊임없이 진화해가고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구를 사용하거나, 때로는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방법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더 이상 동물들을 무시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독수리는 등껍질이 딱딱한 거북을 먹기 위해 공중에서 바위로 던지고, 흑곰은 사슴을 잡기 위해 자신의 몸을 굴려 눈사태를 만들어낸다. 해오라기는 빵 쪼가리를 연못에 던져 잉어를 유인하고, 물총고기는 물줄기를 쏘아 나뭇잎에 매달린 곤충들을 사냥한다. 큰돌고래는 음파사격을 해서 물고기를 잡는 등 동물들이 먹이사냥을 하는 방법을 관찰하면 놀라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자신만의 필살기나 오랫동안 갈고닦은 숙련된 기술과 지혜로 사냥하는 동물들이 있는 반면, 잔인함을 내세워 사냥을 하는 동물들도 있었다. 리더의 연륜으로 원숭이를 사냥하는 침팬지, 곤충들의 뇌 속에 파고들어 좀비로 변화시키는 간충, 자신들의 몸으로 비바크를 지어 모조리 쓸어버리는 군대개미, 귀여운 이미지와는 달리 새끼 새들을 잡아먹는 청솔모까지 우리의 인식을 벗어나는 동물과 간사함까지 드러내는 동물들도 무척 많았다.

 

  동물들의 세계만큼이나 독특한 것이 있다면 저자의 문체였다. 아무래도 수집된 자료를 기록하다보니 지루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고, 촉각을 곤두세우며 동물들의 모습을 상상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다. 하지만 무조건 기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저자의 시선에서 재정립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직접 동물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고, 그들 세계에서 어려움을 피력하기도 하며, 주변 동물의 시선에서 등장동물을 평가하기도 했다. 거기다 다른 사례를 대입하면서 유머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외국 유머라서 그런지 한참 지나서 웃는 뒷북이 존재했지만). 종종 동물들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저자가 동물들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 편의 스릴러나 소설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세계 곳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이어서 그런지 익숙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사진이 실려 있는 것도 아니고, 간단한 일러스트가 전부라 책에 소개된 동물의 모습을 상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상세하게 묘사된 글로 인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했고, 조금이나마 딴 생각을 하면 펼쳤던 상상을 다시 닫아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반면 사진이 없어 확 와 닿지 못한 동물들의 모습이나 묘사의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서려 있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동물들을 관찰하고, 실험하고, 때로는 평생을 바쳐 연구하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해서 한 눈에 그려지지 않는다는 불평이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낯선 동물들을 어떤 식으로 그려가며 정립시켜야 할지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게다가 동물의 세계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무척 흥미롭게 느낄 수 있겠지만, 나만의 생존 비법 같은 것을 캐낼 엄두도 못 내고 오로지 관찰자의 입장을 취해야 하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조금은 지난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동물들의 생존 비법을 지켜보며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내가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간다는 것에 나름의 충족감이 생기기도 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더라고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동물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느껴져 동물과 인간의 공존이 새롭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오로지 동물들의 생존 비법만 관찰하느라 이 책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많이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동물세계에 어느 정도 경외감이 생기고 생명을 가진 존재의식이 자리 잡기도 했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는 곳마다 자연이 심히 파괴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동물과 인간이 적절히 어울리며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동물학자들에게 놀라움으로 비춰졌을 동물들이, 그들의 세계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나에게 다가왔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의미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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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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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그렇게 책을 많이 읽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TV를 안보고 컴퓨터 하는 시간을 줄여 책을 본다는 앵무새 같은 대답을 하지만, 컴퓨터 하다가 시간을 보낼 때도 허다하고 읽지도 않고 책을 쌓아 둔 경우는 차마 말로 못할 지경이다. 나의 실체를 모르니 그런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할 때마다 낯간지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요즘의 독서는 일상생활처럼 자연스러워 오히려 책이 읽어지지 않을 때가 위기로 다가올 지경에 이르렀다. 책이 쌓이는 것은 그냥 무시해 버릴 수 있는데, 책이 읽히지 않아 몸부림을 칠 때가 가장 괴롭다. 아무리 책장을 뒤져봐도 읽고 싶은 책이 없고, 힘겹게 책장을 펼쳐도 이내 덮어버릴 때는 진부함이 밀려와 일상생활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그럴 때 구원 같은 책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최근 나의 진부함을 떨쳐주고 독서열을 다시 끌어당겨 주었던 책은 장영희 교수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였다. 두툼한 책이었음에도 쉼 없이 달게 읽었을 정도로 너무나 귀중한 책이었다.

  

  진부함에 몸을 뒤척였던 적이 언제였냐는 듯 밤늦도록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며 내심 기쁘면서도 이런 즐거움을 안겨준 분이 장영희 교수님이라는 사실에 뿌듯했다. '문학'이란 단어가 들어간 제목 때문에 조금은 망설이기도 했고, 교수님의 에세이를 모두 읽어 아껴둔 책이기도 했는데 이토록 재미나게 읽힐 줄은 몰랐다. 교수님의 책은 모두 즐겁게 읽고, 많은 감동을 받긴 했어도 그중에서 가장 두툼한 책이라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 지레짐작한 터라 순식간에 읽어버린 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책을 읽는 순간을 허투로 보내지 않았고, 깊이 몰두하며 읽었기 때문에 이 글을 쓴 노고에 합당한 읽기였노라고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켜본다.

 

  '이 책은 2001년 8월부터 3년간 <조선일보>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라는 북 칼럼에 게재되었던 글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신문사 측은 ' '아,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하고 도서관이나 책방으로 뛰어가게 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는데, 그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문학 교수로서 비평적으로 글을 다루기보다, '그 작품이 내 마음에 어떻게 와 닿았는지,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 그래서 그 작품들로 인해서 내 삶이 얼마나 더욱 풍요롭게 되었는지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 했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고민이 '문학 교수'의 입장에서 글이 너무 깊게 들어가 버리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는데, 이미 저자는 그것을 간파하고 많은 독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문학보다 개인적인 글들이 더 많이 들어가 버렸다고 했는데, 오히려 그런 면이 독자들에게 문학을 편하게 알리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관심 있는 책이 나올 때마다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하고, 절판되지 않은 책을 장바구니에 담느라 나름 바빴다. 내가 읽었던 책도 저자의 시선에서 생소한 책으로 보이는 마당에,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한 욕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 유독 관심이 갔던 책들을 몇 권 구입하곤 했지만, 소유를 하자 읽기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지는 것을 보고 소유하기 위한 독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책장에 책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읽게 될 것이고 느지막이 교수님의 글을 떠올리며 읽더라도, 지금의 감동이 이어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을 못 읽자 일상까지 무너지는 내게 이 책은 단순히 문학을 알리는 것에만 일념하지 않고, 저자의 경험을 나누고 문학에 빗대어 위로를 해 주었다. 그랬기에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고, 마음이 한껏 고조돼 다른 책을 읽을 힘까지 얻은 것이다.

 

  연재의 제목이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였기 때문인지 고전에 관한 소개가 대부분이었고, 고전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열심히 읽지 않는 내게는 무척 흥미로운 책이었다. 거기다 소설의 줄거리라든지, 시만 달랑 싣고 말거나, 그 주변의 에피소드만 언급하고 말았더라면 지루한 읽기가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늘 글의 소재가 되는 제자들에게 미안하다고 할 만큼 제자들의 이야기, 주변 이야기,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곁들어 문학을 논하였기에 부담이 없었고 '가랑비에 속곳 젖듯' 문학이 내 마음에 스며듦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 궁금했던 작품에 대한 해소도 할 수 있었고, 정말 읽고 싶은 작품들은 따로 체크를 해 두어 꼭 읽어보려 했다. 그 가운데 문학과 일상을 잘 버무려낸 저자의 역량 덕에 문학도, 삶도 잘 와 닿은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문학을 문학으로만 논했다면 아무리 명문장이라 할지라도 스쳐버렸을 게 뻔하다. 저자는 '문학의 주제를 한마디로 축약한다면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에 귀착된다. 동서고금의 모든 작가들은 결국 이 한 가지 주제를 전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작가들이 사랑에 관해 전달한 메시지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논어에 나오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 란 구절을 언급하며 '사는 게 힘들다고, 왜 날 못살게 구느냐고 그렇게 보란듯이 죽어 버리면, 생명을 지켜 주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사랑할 몫도 조금씩 앗아가는 것이다.' 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마음에 박히고 말았다. 늘 힘들다고 투정부리고 내 삶은 왜 이모양이고 불평만 했는데, 나의 삶에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사랑하지도 못했고, 나를 살리기 위해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했다는 생각과 함께 문학의 이면을 제대로 캐내지 못한 부끄러움이 일었다.

 

  지금껏 나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독서를 하고 있다고 자부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 고전이든 현대문학이든 절대로 삶과 따로 결부시켜 동떨어진 것으로 볼 수 없음을, 또한 도피한다고 도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깊이로 더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이 주는 기쁨은 인간이 맞닥뜨리는 모든 고통과 역경에 맞설 수 있게 하고, 그것이야말로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라고 말한 서모셋 몸의 말처럼 나의 독서는 도피성이 아니라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귀중한 뜻을 발견하게 되었다. 윌리엄 포크너의 말처럼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라고 생각하자 문학에 대한 탐독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무조건 읽기에만 급급했던 나의 독서가 부끄러웠다면 앞으로 만날 문학작품에 내 삶을 대비시켜 보기로 했다. 먼저 살다간 이들의 삶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보면 더 이상 문학을 도피하기 위한 대처방법으로 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며 꿋꿋이 일어나 우리에게 이런 울림과 깨달음을 선사한 장영희 교수님께 나의 작은 변화가 닿는다면 그것보다 큰 영광은 없을 것 같다. 글을 통해 이런 사유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독서의 즐거움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책장을 넘기는 나의 손길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우며 행복했다고, 마음은 흡족함으로 넘쳐났다고 고백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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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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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양손가득 무소유를 한 꾸러미씩 들고 서점을 나오면서도 참으로 기분이 이상했다. 절판된 <무소유>를 한껏 소유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어제 이 책을 발견하고 오늘 이렇게 사들고 나선다는 사실에 기시감까지 느껴졌다. 근교의 언니 네에 온 김에 도스또예프스끼 보급판이 있을까 하고 서점에 들렀었다. 결국 원하던 책을 발견하지 못하고, 엉뚱한 책만 사들고 나오다 카운터에 쌓여 있는 <무소유> 양장본과 문고본을 발견했다. 의아해서 새로 출간됐냐고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게 서점을 나와서도 이상해 <무소유>의 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무소유>가 출간됐다고, 서점에 쌓여 있는 걸 봤다고, 이제 구입하면 되겠다고.

 

  그러나 지인의 반응은 뜨악했다. 지금 장난 하냐고, 온라인 서점에도 없고, 일반서점에도 없는 <무소유>를 어디서 봤냐는 답장과 함께 책이 있으면 당장 구입해 달라고 했다. 이미 버스를 타고 언니 네를 향하고 있었고, 서점도 문 닫을 시간이라 분명 <무소유>를 봤다고 하소연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믿는 눈치가 아니라 서점에 전화해서 재고가 넉넉히 있는지, 내일 몇 시에 문여는 지까지 물어보았다. 서점 주인은 책이 넉넉히 있으니 아무 때나 천천히 오라는 답변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지인은 오후까지 책이 남아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냐고 다그쳐대 할 수 없이 아침 일찍 서점에 가 양장본 6권, 문고본 5권을 구입했다. 6만원이 훌쩍 넘는 책 가격을 보면서 '이건 법정 스님의 뜻이 아니야!'란 생각을 하면서도 손에 쥐어진 책을 보며 흡족해 하던 찰나, 갑자기 이런 심부름을 시킨 지인에 주눅 들어 부랴부랴 책을 사들고 나온 내가 어이가 없었다. 아니, <무소유>를 발견해 그 소식을 알려주었을 뿐인데 왜 그렇게 안달복달해서 나까지 초조하게 만들었냔 말이다!

 

  책이 무거워 집에 가는 내내 투덜거렸지만, 이번 기회에 양장본과 문고본을 한 권씩 마련해서 내심 뿌듯했다. 고등학교 때 언니에게 <무소유>를 빌려 읽어서 언제고 '다시 읽어보마.' 했던 것이 법정 스님이 입적하시고 유언에 따라 책이 절판되자 그제야 조바심이 났다. 재출간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감감 무소식이라 이내 시큰둥해져 버렸다. 그런데 막상 책을 보니 생각이 달라져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 걸 보고 책에 대한 소유욕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왠지 쉽게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책장에 고이 모셔 두었다. 하지만 시선이 <무소유>에 닿을 때마다 내게 남겨진 숙제인 듯 찜찜한 건 마찬가지였다. 결국 책을 구입한지 이틀 만에 초조함을 이기지 못해 책을 꺼내들었고, 마치 법정 스님이 내 옆에 계신 양,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고 꼿꼿한 자세로 정독했다.

 

  책은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곤 하지만, 열여덟 살에 읽은 <무소유>와 서른 살에 읽은 <무소유>는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긴 강을 건너온 기분이었다. 기억 속에 사라진 이야기가 다시 살아난 것 같았고, 흐리멍덩한 이미지들은 선명해지고 있었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 다는 것은 지워진 이야기를 다시 살려내는 거라 생각했는데, <무소유>를 읽는 동안에는 법정 스님의 성품이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젊은 시절에 썼던 글이라서 그런지 글 속에 풍기는 스님의 이미지와 최근의 모습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미 <무소유> 안에도 날카로운 시선과 카랑카랑한 성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을 발견했다. 단지 덜 무르익어 조심스러웠을 뿐, 세월의 흐름과 함께한 참선이 스님의 성품을 단단하게 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책을 읽는 내내 괜히 질책당하는 기분이 들면서도 그 대상이 오로지 나뿐이더라도 싫지 않았다. 질책을 당하는 읽기였다면 분명 불편했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도 이상했다. 아무래도 질책 당할 것이 많은 내 자신을 오랫동안 방치하다 <무소유>를 통해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는 기분이 들었나보다.

 

   책에 메모지를 붙이는 작업과 짧은 느낌을 남기는 작업에도 숭고하리만큼 정제 된 행동을 보였다. 책에 대한 경건의 표현인지, 법정 스님에 대한 존경의 시선인지 헷갈릴 정도로 메모지를 덕지덕지 붙이면서도 이 모든 내용을 기억해 보겠다고 애쓰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럼에도 그 작업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너무 좋은 글귀가 많았고, 나의 환경에 따라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분명 열여덟의 나는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별 감흥 없이 지나쳤겠지만, 현재 서른의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옴을 느꼈기에 더 간직하고 싶었다. 종교와 사상, 인생철학이나 배움을 떠나 한 사람의 뜻이 깃든 책 앞에서 한껏 낮아지고 만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드러내기 위해 골프를 취미로 삼는 사람들 앞에 '오늘 나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다.'라는 글부터 시작해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로 건너가 '우리는 미워하고 싸우기 위해 마주친 원수가 아니라, 서로 의지해 사랑하려고 아득한 옛적부터 찾아서 만난 이웃들이다.'라며 문장이 점점 깊어질 때면 스님이 말한 양서의 정의처럼 자꾸 읽기를 멈추고 덮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카랑카랑한 스님의 사유를 나눠 받으면서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곤 했는데, 내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 앞에서는 스르르 무너져 성큼성큼 다가가고 말았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하고,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거란 생각을 가진 스님을 닮아가고자, 혹은 삶의 본보기로 삼고자하는 거창한 뜻이 있어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단지 나를 질책할 누군가 필요했고, 질책 가운데서 현재의 내 상황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는 무언의 절망어린 반항이 내제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고 나자 <무소유>를 읽기 전부터 겁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내가 변화해야 한다고, 내 삶의 방향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올곧은 분으로 인식되어 있어서인지 그분의 글 앞에서도 지레 겁을 먹었나보다. 법정 스님의 사유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고,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만 수용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순식간에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혼란스럽게 한 것 같다. 그것은 책을 읽는 자세로서도, 스님의 뜻에 합한 좋은 생각도 아니며, 글의 깊이에 동조하며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에 의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을 흐리는 나의 자세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도 걱정이 앞섰지만, 조금씩 본질을 찾아가니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있어 그 과정도 감사하게 다가왔다.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글을 쓴 연도가 나왔는데, 약 30년 전후로 쓴 글들이라 놀라웠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는 베스트셀러를 떠나 지금 읽어도 낯설지 않은 현실에 씁쓸하기도 했고, 오래전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안목에 감탄했다. 보통 사람이 살지 못한 정제된 삶을 사는 것, 그러면서도 보통인 우리와 부대끼며 다르지 않는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책 제목이 <무소유>라 이 책을 소장하는 여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지만,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법정 스님의 사유에 나를 대입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보면 '소유'에 대한 정죄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성찰들이 곳곳에 드러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고, 왜 이 책이 그토록 사랑받는지, 많은 사람들이 법정 스님을 존경하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함에서 나오는 진리. 그것을 너무 잘 이끌어 내셨기에 그 분 앞에 숙연해지는 마음 또한 감추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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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애찬 2010-05-30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무소유~ 참 좋은 책입니다. 처음에 문고판으로 4권 사서 한권은제가 읽고 나머지 세권은 지인에게 하나씩 선물 하고 그리고 양장본 처음에는 두권 구입해서 하나는 제가 하고 한권은 선물 드렷네요 그 구하기 어렵다는 무소유 문고판.양장본 둘다 쉽게 제눈에 띄어서 저는 고가에 안주고 정가에 샀는데 온. 오프라인서점 모든곳에서 사실 정말 구하기 어려운건 사실이죠.. 그리고 최근에 그 구하기 어려운 무소유 양장본 파는곳 발견해서 또 두권 구매해서 어제 받았어요..사재기는 아니고 다 선물 하고 있어서... 다른 책보다 제가 짧막하게 되어 있는 그런 책을 좋아 해서 제 독서 취향과도 맞아 떨어지구요... 그래서 오두막 편지 일기일회. 아름다운 마무리 . 맑고 향기롭게도 다 구매 해서 읽었네요..

구하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제눈에는 쉽게 보여서 전 아무 문제 없이 사서 읽고 있어요.. 교보문고에서도 한번씩 점별 검색 하면 재고 있는경우도 있구요..오늘두 보니까 범우사 홈피에 정가에 판매 하더라구요...무소유 양장본

안녕반짝 2010-06-01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등학교 때 빌려 읽고는 다시 한 번 읽어야지 했는데 이제야 발견하고 읽게 되었답니다. 문고본까지 사왔는데 양장본 읽고나니 바로 또 읽고 싶어지더라구요^^
무소유에 이어 <오두막 편지>를 읽고 있는데 역시 좋네요!
수필은 원래 좋아하는터라 간만에 우리 글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읽고 있답니다^^
 
눈으로 하는 작별
룽잉타이 지음, 도희진 옮김 / 사피엔스21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책에서 의외의 발견을 할 때, 책의 겉모습만 보고 제멋대로 한 추측이 빗나갈 때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 경우는 흔치 않아서 즐거움을 맘껏 만끽하곤 한다. 책을 아껴 읽으며 자주 사색하고,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며 짧은 호흡을 뱉어낸다. 그렇게 읽은 책은 책장을 덮었을 때 특별한 감흥이 일지 않는데, 이미 책을 읽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나에게 그런 즐거움을 안겨준 책은 <눈으로 하는 작별>이었다. 제목과 겉표지만 보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뻔한 소설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웬걸. 이 책은 에세이였고, 문화의 차이가 느껴지는 몇몇 에피소드가 이질감을 던져 주었지만 상당히 흡족한 책이었다.

 

  저자는 중화권에서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다양한 이력을 가진 지식인이었고, 그런 내면은 책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저자가 가진 지식을 고리타분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닌 일상과 맞물려 그려 냈기에 지식이라는 편견을 없애고 알찬 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의 시작과 말미에 부모님에 관한 글이 실려 있어 하나의 인생을 관통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특히나 아버지에 관한 추억이 가득한 책의 끝부분은 저자의 절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부모님에 관한 추억과 죽음 앞에서 조금은 숙연해지고,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저자의 경험이 구석구석이 녹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고, 색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듯한 부분도 많았다. 순식간에 읽어버릴 수 있는 에세이임에도 속도가 나지 않았던 것은 저자가 펼쳐놓은 삶의 면모가 낱낱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저자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누가 더 많이 살았느냐, 어떠한 무게를 갖고 있느냐보다 같은 곳을 바라볼 때 동감을 얻어낼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갖게 해준 작가가 바로 룽잉타이였고, 나의 인생보다 앞서나간 것 같은 많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 안에서 내게 맞는 이야기들도 넘쳐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저자는 중국의 고전 시들을 많이 인용하며 잔상들을 남겼는데, 고전 시가 내 마음에 와 닿지 않더라도 나름대로의 해석들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 때가 많았다. '어떤 외로움은 곁에 얘기를 나눌 누군가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개 한 마리가 덜어줄 수도 있다.', '사랑이란 속절없이 사라지는 존재라 해도, 반딧불이 밤하늘에 빛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이유를 생각하면 서로 사랑했던 그 시절조차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란 문장 앞에서 어떻게 나와 다르다고 떨쳐 버릴 수 있겠는가.

 

  저자가 명쾌한 문장가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글의 다양함 속에서 독자의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아무리 듣기 좋은 시 구절도 문학적인 가치만 언급한다면 지루할 것이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도 자신의 경우만 얘기한다면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그 모든 것을 적절히 섞었을 뿐만 아니라 유머도 집어넣고, 생활 속의 자잘한 에피소드까지도 기꺼이 드러냈다. 어느 날은 문학과 사회 현상에 대해 깊이 있는 글을 써내다가도, 계란 하나 삶는 것에도 가정부에게 타박을 들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아들과의 대화나 메일을 주고받을 때는 항상 긴장하게 되었다. 세대가 다르다는 차이를 느끼고, 자신의 의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 앞에서 버릇없음,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느끼다가도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 앞에서는 괜히 찡해지기도 했다.

 

  3부로 이야기가 나뉘어져 있긴 하지만 너무나 다양한 소재의 글을 만나서인지 나름대로 정리한다는 것이 벅차게 다가온다. 오랜 시간 꼼꼼히 읽었음에도 평소와는 달리 느린 독서여서 그런지 많은 이야기가 뒤엉킨 기분까지 든다. 그러나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내 일상의 자잘함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그 안에는 분명 나와 다른 것에 생경함을 느끼기도 했다. 저자가 살고 있는 타이베이의 풍경, 타이완의 문화, 그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일상이 그랬다. 하지만 그런 과정 자체도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걸러내고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오히려 그런 생경함 때문에 내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게 된 경우도 많았다. 문화의 다름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것일 뿐, 그것이 타인과 나를 연결해 주는 데 방해를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하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중략)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라고 말했다. 저자가 부모와 자식 간에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더 다양한 단상들을 엮어볼 수 있을 것이다. 삶, 관계, 사랑, 이별, 죽음 등 그런 식으로 바라보다 보면 자신의 현재 위치는 물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 보일지도 모른다. 꼭 이렇게 거창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갇힌 시선에서 타인의 드러낸 시선을 경험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내가 놓쳐 버리고 잊어 버렸던 기억들, 스치고 무시해 버렸던 추억들이 저자를 통해 생생히 되살아 날 것이다. 그로인해 현재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존재감이 드러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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