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
가스통 르루 지음, 김욱동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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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3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 내가 읽은 건 다소 두툼한 완역판이었고, 이 책은 청소년들이 소화하기 쉽게 다듬은 책이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13년 사이 내가 많이 변해 버린 탓일까? 분명 처음 읽었을 때는 에릭이 가여워서 어쩔 줄 몰랐는데, 다시 읽으니 에릭이 너무 이상하게 보였다. 크리스틴에게 음악의 세계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스토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때론 납치하고 집착하는 모습이 섬뜩했다. 시대가 변해 자극적인 범죄에 노출이 된 이유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의 변화가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20대 중반의 솔로였고, 다시 읽었을 때는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밝고 안정된 사람을 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에릭이 그려내는 오페라 극장의 지하세계가 실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어둡고 암울하게 보였다. 그의 외모 때문에 그를 낳아준 어머니까지도 그를 버릴 정도였으니 그의 삶이 얼마나 녹록치 않았을지 그저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나름의 특출난 재주도 있어서 외모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았더라면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수도 있었을 사람이었다. 그랬다면 억지로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강요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쓸쓸하게 죽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부분에서 자꾸 미안해진다. 사회적 약자였던 에릭을 감싸 안아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 크리스틴은 에릭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키스를 하지만 진심의 여부를 굳이 따져보기 전에 라울을 비롯한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오페라 극장 구조의 신비스러움과 에릭의 동선을 따라다가 보면 자연스레 추리를 하며 어떻게 그런 신기한 능력들이 가능했는지를(후에 그의 과거를 통해 좀 더 상세히 알 수 있다)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오페라 극장 안에서만큼은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능수능란하게 사람들을 다루는 모습이 괴이한 과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또한 이런 특별한 능력이 없더라도 사회적 약자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시선이 나를 비롯한 우리에게 있을까? 에릭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게 나를 비롯한 평범한 사람들의 무관심과 배려 부족에서라는 사실이 왜 이렇게 나를 잡아끄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의 인생과 그의 마지막은 쓸쓸하고 씁쓸하다. 그토록 바라던 크리스틴이 진심을 다해(그렇다고 믿고 싶다) 키스하고, 사랑을 확인하자 그녀가 정말 사랑하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라울에게로 보낸다. 둘은 많은 소문과 추측을 뒤로 한 채 조용히 국외로 떠나지만 곧 그의 부음을 듣는다. 훗날 오페라 극장의 지하에서 발견된 유골에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아 에릭의 유골임을, 크리스틴이 찾아와 그에게 반지를 끼워주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에릭의 마지막은 행복했을까, 쓸쓸했을까? 방법은 조금 괴이했을지라도 크리스틴을 향한 마음은 진심이었다는 사실, 크리스틴 또한 그 순간만큼은 에릭을 진심으로 위했다는 사실만 기억한 채 행복했으면 싶었다. 그렇기에 크리스틴을 온전히 차지하고 싶은 순간에 라울에게 돌려보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그들에게 알려 달라는 부탁 뒤에는 안심하고 맘껏 사랑하라는 배려도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처음 읽었을 때와 시선이 많이 달라져 버렸지만 그때와 달리 오로지 사랑만 보는 것이 아닌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수많은 것들이 보이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실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진실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진실 되지 못하고 왜곡되어 일어나는 수많은 범죄와 오해와 싸움들. 에릭의 방법 또한 온전히 옳다고 볼 수 없지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보여주었기에 그런 진심을 닮았으면 싶었다. 우리에겐 사랑할 대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마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어쩌면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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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 그림 친구들 작은 곰자리 7
크리스 투가스 지음, 박수현 옮김 / 책읽는곰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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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림을 정말 못 그린다. 그래서 결혼 전부터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미술학원에 보낼 거라고 지인들에게 말하곤 했다. 나의 그림 실력을 그대로 타고 날까봐 무서웠다고나 할까? 그만큼 그림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그림 그리는 것에 자신이 없고 창피하다. 그러면서도 기회가 되면 나도 미술수업을 받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행히 6살 딸아이는 나보다 그림 실력이 좀 낫다. 유치원에서 재미있게 그림을 그리고 오는 것 같아 항상 나보다 훨씬 잘 그린다고 칭찬 해준다.

그래서 표지의 아이만 봐도 아찔해진다. 아이는 온통 물감이 묻은 옷을 입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행복해 하고 있는데, 그림 그리는 걸 두려워하는 나는 그저 어지러운 기분만 든다. 아이는 즐겁게 자신의 친구들이 집을 어지럽혔다고 말하며 방 안을 보여주는데 그야말로 다양한 그림도구들로 빽빽하다. 어떻게 저렇게 붓과 물감과 도구들이 많은지 의아할 정도다. 하긴, 좁은 집에 내 책이 3,000권이 넘는 것과 비교해보면 아이의 마음이 크게 공감이 가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큰 도화지 앞에서 고민에 빠져 있다. 도화지에는 ‘내 화판에서 잔치한다. 미.도.알.챙’ 이라고 적혀 있다.

도무지 미.도.알.챙이 뭔 뜻인지 추측이 되지 않는 가운데 연필들과 지우개가 신나게 떠들며 이야기 하고 있다. 연필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다른 연필의 칭찬에 ‘근데 사실, 난 엉덩이가 잘 돌아가거든.’ 하며 뾰족한 연필심을 가리키는 모습에 그만 웃음이 픽, 하고 나왔다. 이어서 크레용, 매직펜, 파스텔, 잉크들이 각자를 뽐내며 잔치에 임하는 모습에 아이와 그림 도구들 모두가 정말 즐거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위와 테이프는 퀴즈를 내며 즐거워하고, 풀은 가위에게 입(가위 날)을 다물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타인이 자신에게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화룡정점은 물감과 붓과 팔레트 칼이었다. 모두 합세해서 맘껏 놀다 보니 멋진 무지개가 그려진 그림이 완성되었다. 아이는 무척 만족스러워 하고 기뻐하지만 곧 ‘보시다시피, 너무 바빠서 청소는 엄두도 못 냈어요.’ 하는 부분에서 내가 도리어 한숨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아마 내 아이들이 저렇게 방을 만들어 놨다면 분명 혼을 냈을 것 같아 만감이 교차했다.

그럼에도 아무리 바빠도 다시 잔치를 벌일 시간은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정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그림 도구들과 친구처럼 지낸다는 사실에 괜히 흐뭇해졌다. 그리고 뒤표지에 미.도.알.챙의 뜻이 드러난다. ‘미술 도구는 알아서 챙겨 올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이들이 낙서를 할까 펜, 사인펜, 크레파스를 높은 곳에 올려둔 내가 좀 계면쩍어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종이에 부지런히 그림을 그리는 딸아이와 옆에서 자기도 하겠다며 고집 피우는 둘째를 보며 나의 그림 실력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청소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놀이를 과하게 제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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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알 판 판 알 비노 비노 - 오로가 들려주는 쿠바 이야기
오로.김경선 지음, 박정은 그림 / 너머학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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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단지 머릿속 생각으로만 남겨 두는 이유는 바로 두려움 때문일 거야. 실패할까 두려워 정작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가슴 가득 미련만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난 친구들이 미련으로 얼룩진 삶보다는 도전해서 실패로 단단해진 삶을 사는 친구들이 되었으면 해. 114쪽

 

쿠바하면 ‘체 게바라’, ‘비에나부스타 소셜클럽’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쿠바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디자이너, 살사 댄스 강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오랜 편견을 깨트렸다. 거기에는 ‘체 게바라’가 가장 컸다. 내가 체 게바라 평전을 읽은 지 10년이 넘었고, 내가 책으로 읽은 체 게바라와 나와 나이가 비슷하지만 쿠바에서 자란 저자의 시선이 다른 건 당연했다. 저자는 체 게바라가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에 기여하고 발전에 힘쓴 사람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 인물들 중 한명이라는 뿐이고, 그때 만든 체제들에서 비롯된 쿠바의 어려운 상황들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들을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도 혁명가로서의 체 게바라만 기억하고 있었을 뿐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쿠바의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곳에서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게 자란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수학을 가르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사랑하는 법과 인생을 즐기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해. 지식과 정보는 아이 스스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배울 수 있지만 사랑은 받아 보지 못하면 남에게 쉽게 줄 수 없는 거잖아. 109쪽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깊은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과 쉽게 좌절하지 않으며, 도전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청소년 시절 별거 아닌 일에 마음이 삐뚤어지고 열등감을 느꼈던 나와는 달리, 타인의 시선보다 내 마음의 평화와 즐거움에 더 귀 기울이는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현재에도 여전히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가는데, 그건 내 스스로가 당당하지 못해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외모만 보더라도 우리와 확연히 달라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는 저자는 불친절한 사람을 만나도, 민망하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을 마주해도 한국 사람이 다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고 했다. 스스로 마음이 넉넉하고, 타인을 향한 시선에 편견이 없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여기며 별 일 아닌듯 넘겼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라며 남의 탓을 하는 마음이 많아 진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정신이 건강한 저자가 참 부러웠고, 닮고 싶었다.

 

현대인들은 너무 불안해하며 살아가고 있잖아요. 유년 시절 내가 가졌던 꿈, 나를 행복하게 했던 상상의 세계 그리고 그 안에서 나와 우주의 긴밀하고 비밀스러운 교감 같은 것들은 다 잊은 채 하루하루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지친 어른들은 이 책을 읽는 잠시 동안이라도 다시 유년 시절로 돌아가 모든 게 가능했던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 유년 시절의 나를 마음 한쪽에 항상 간직하고 지냈으면 좋겠어요. 123쪽

 

정말 그랬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쿠바의 역사와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 많았다는 것, 그리고 체 게바라 등 그간 가지고 있던 편견을 많이 깬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마치 내가 유년시절로 돌아가 ‘모든 게 가능했던’ 그리고 모든 걸 꿈꿨던 나를 떠올리는 시간들이 더 많았다. 자잘한 고민과 걱정은 있었어도 큰 걱정과 실망과 회환이 없었던 시절. 어느 정도 미화는 있겠지만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립다. 그리고 지금껏 계속 그때의 ‘나’를 간직하고 있다 여기고 있다. 그 유년시절의 내가 언젠가 나만의 글로 드러나기를 늘 바라고 있다. 이게 현재 나의 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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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이의 미술관 나들이 꿈상자 4
백미숙 지음, 이준선 그림 / 키즈엠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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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림을 좋아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중학교 때 미술 시간이면 과제로 내준 그림이 어려워 항상 친구에게 부탁할 정도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 그림이 좋아졌다. 20대 때 경주 여행을 갔다 강물에 비친 가로등 불빛을 보고 고흐 그림을 좋아하고, 서서히 미술 책을 보면서였을 것이다. 그 뒤로 종종 전시회를 보곤 했지만 여전히 지식은 쌓이지 않는다. 그저 보는 것만 좋아 미술책만 잔뜩 소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옛 그림을 보고 있는 여울이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에, 누런 종이에 그려진 그림들을 왜 보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지루하고 밖에만 나가고 싶은 마음이 말이다.


그러다 어디선가 수박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따라가다 신사임당의「초충도」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림 속의 수박을 파먹고 있는 쥐를 보고 여울이는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그리고 나무 아래 강아지와 동이라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반가워한다. 여울이는 재미없다고 여긴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숙제를 하지 못해 서당에 못 가고 있는 동이는 여울에게 함께 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둘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고 돌다리 위에서 예쁜 아줌마도 만나고(신윤복의 「미인도」), 내친김에 돌다리 밑으로 내려가 동이와 물고기를 잡고 놀게 된다. 그러다 임금님이 궁궐로 돌아가시는 행차도 보게 된다(김득신 외「화성능행도」). 둘은 산등성이에 올라가서 행렬을 보는데 지켜보는 내 입에서 자연스레 ‘우와’ 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장엄했다.


계속해서 동이와 여울이는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그림 속 인물과 만나거나 상황을 맞닥트린다. 그러다 호랑이와 마주치게 되는데 순간 너무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은 여울이는 이내 그림 밖으로 빠져나와 엄마를 만난다. 엄마가 시원한 음료수를 사주겠단 말에 미술관을 빠져 나오려 뒤를 돌아보는데 그곳에는 훈장님께 혼나고 있는 동이(김홍도의「서당도」)가 여울이에게 미소를 지어주고 있다. 여울이는 조그맣게 “동이야, 힘내!” 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미술관을 빠져나온 여울이는 처음 들어갔을 때와는 달리 아주 긴 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 만났던 사람들과 동물, 사물들이 미술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며 여울이가 얼마나 즐거운 여행을 했는지를 알려준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옛 그림을 여울이와 동이의 여행으로 흥미롭고 재미있게 만들어주었다. 옛 그림 속의 숨겨져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 하다는 사실을 재미있게 만들어준 책이라 마치 나도 그림 속 여행을 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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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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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을 탄 경험은 별로 없지만 국내선은 작년까지도 꽤 탔던 터라 비행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참 많다. 국내선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대기시간, 탑승, 출발, 비행, 도착으로 이어지는 동안 애매하고 감각 없는 순간들이 여전히 생생하다. 옆자리에 누군가만 앉아도 불편하고 어색했던 순간들. 꼭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기분 때문에 얼른 집에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런 느낌을 알기 때문인지 첫 단편「개와 하모니카」를 읽으면서 내가 스쳐가고 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마치 생생히 살아난 것 같았다.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로 비행기를 탔고, 한 공간에 갇혀 이동 중인 사람들을 그저 불편하고 어색한 존재로만 여겼던 내가 좀 많이 계면쩍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저자의 단편집의 첫 작품이 느낌이 좋아 기분 좋게 출발했음에도 두 번째 단편「침실」에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불륜이 등장한 이유가 크겠지만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해 책장을 정신없이 넘겨대면서도 알 수 없는 불쾌함과 어긋남이 당연하듯 드러나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늦여름 해질 녘」「피크닉」도 마찬가지였다. 일상을 통째로 도려낸 것처럼 소소하고 생생하지만 계속 불편했고 왜 이런 느낌이 지속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소설을 얼른 읽고 다시 내 일상으로 혹은 첫 단편으로 돌아가 단순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으면 싶었다.『겐지 이야기』를 저자의 언어로 풀어 쓴「유가오」는 푹 빠져들지 못했고, 복잡한 인물과 극단적인 사건이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 작품에서 분량이 가장 많은「알렌테주」는 게이 커플의 여행기라고 할 수 있는데, 등장인물들의 마음이 어긋나는 것을 보며 더 피로했졌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되도록 편견을 갖지 않으려, 이번에 읽은 작품이 내 마음에 차지 않았다면 몇 번의 기회를 더 가져 틀에 가두지 않으려 애쓴다. 그렇게 첫인상이 바뀐 작가도 있고, 역으로 호의적이었던 작가가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작가로 변한 경우도 있고, 바뀌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회를 엿보는 작가도 있다. 내게 저자는 이 모든 과정을 모두 거쳤다 신작이 나와도 관심이 잘 가지 않았던 작가로 남겨져 있었다. 오래 전 읽은 작품이 좋아 다른 작품을 읽었다가 실망하고, 또 다른 작품을 읽은 뒤로 그 느낌이 변하지 않아 오랫동안 또 다른 작품을 만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만났는데 그렇게 썩 유쾌한 만남이 아니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긴 힘들다. 어쩌면 일상의 불편함을 보기 싫어하는 내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단편을 너무 현실로 끌어들이려는 나의 어리석음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느낀 감정들을 억지로 감추거나 과하게 불편함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나의 느낌은 이 정도였노라, 앞으로 저자의 작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라는 것이 전부다. 그렇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느낌으로 이 작품을 폄하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의 성향은 모두 다르므로 느끼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저 나와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길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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