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와 지빠귀수염 왕자 이야기 속 지혜 쏙
김인숙 지음, 손지영 그림 / 하루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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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인 딸아이는 유난히 공주와 왕자 이야기를 좋아한다. 핑크색에 푹 빠져 있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도 온통 공주에다 꼭 옆에는 왕자님을 그려 넣는다. 딸아이가 생각하는 왕자와 공주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걸 보면 행복을 꿈꾸고 있다고 믿게 된다. 행복의 주체를 설명해주는 게 아직은 어렵지만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행복해질 때 누구를 만나든 행복한 거라고 알려주고 싶다.

 

아름답지만 잘난 척 하는 공주를 가진 왕은 무도회를 열어 결혼 상대를 초대한다. 후보들의 외모만 보며 공주는 버릇없게 놀리고 마는데, 딸아이에게 후보 중에 누가 ‘지빠귀수염 왕자’ 같은지 물어보니 바로 골라냈다. 수염이 있어서 알아챘다는 대답을 원했지만 ‘멋있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염을 잘 보지도 못하고 딸아이 눈에 그저 멋있어서 왕자를 골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자의 눈은 모두 비슷한가?’ 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공주는 외모를 가지고 모든 결혼상대를 놀린 벌로 처음으로 찾아온 거지에게 시집을 간다.

 

거지를 따라 살 집으로 가면서 보는 아름다운 숲, 넓은 들판, 멋진 도시를 마주하고 누구 거냐고 묻는다. 거지는 모두 지빠귀수염 왕자의 것이고 그와 결혼했다면 모두 당신 것이라고 말하는데, 공주는 그제야 ‘아, 나는 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빠귀수염 왕자랑 결혼하는 건데…….’라며 후회한다. 작고 낡은 오두막에 도착한 공주는 그날부터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밥을 지어야했고, 먹고 살기 위해서 바구니를 짜고, 베를 짜보지만 제대로 할 리 없다. 결국 보다 못한 거지가 시장에서 항아리를 팔라고 권하는데 말을 탄 군인이 그 항아리마저 다 깨버린다.

 

공주는 거지를 따라오며 후회하는 것 빼고는 대부분 불평 없이 모든 일들을 해낸다. 완전히 다른 삶을 순응하며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인다. 궁전에서 하녀를 구한다며 일을 하러 가라고 하자 자신도 공주면서 서슴없이 일을 하러 가는 것을 보며 과연 공주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후의 흐름은 예상대로 흘러간다. 같이 산 거지가 지빠귀수염 왕자였고, 말을 타고 간 군인도, 왕자의 결혼식 준비를 하던 왕자도 지빠귀수염 왕자며, 결혼 상대는 공주 자신이었다. 잘난 척 하는 공주를 고쳐 주려고 일을 꾸민 것이며 속여서 미안하다고, 결혼식을 다시 올리자는 왕자의 말에 공주는 기뻐한다. 결혼식을 올린 후 아버지를 다시 만난 공주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딸아이는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이 나서 재밌다 했다. 딸아이 앞에서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공주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외모를 보며 놀리고, 지빠귀수염 왕자 재산을 보며 후회하는 공주와(이 생각에서 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진실!) 잘난 척 하는 공주를 고쳐주기 위해 모든 일을 꾸몄다는 왕자도 불편하고, 처음 보는 거지에게 시집을 보낸 아버지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동화를 동화로 보지 못하는 진지한 마음일수도 있지만 딸아이의 시선에서 그런 모습이 행복해 보이면 그건 또 그것 나름이라 여기기로 했다. ‘잘난 척 하는 공주, 그런 공주를 속인 왕자, 그런 공주에게 벌 준 아빠 모두 너무하지 않아?’ 라고 딸아이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저 재미있게 읽고 잠든 딸아이를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증에 다시 읽으며 못다 한 질문을 해봐야겠다. 의외로 딸아이는 어렵지 않게 대답할 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만 진지할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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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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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과학적 연구들에 기초해서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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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집에 가는 길 김용택 시 그림책
김용택 시, 주리 그림 / 바우솔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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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자마자 ‘와~’ 하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버스에서 내리고 있고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풍경이 너무 예뻤다. 7번을 달고 있는 버스에는 행선지가 할머니 집, 우리 집 밖에 없다. 그런 아이를 나비 날개를 하고 있는 남자아이가 반겨주는데 자연의 아름다움과 상상 속으로 빨려 들어갈 거란 예감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산벚꽃 만큼이나 예쁜 진달래꽃과 살구꽃 골목을 지나면 할머니 집이 나온다. 아이는 혼자 버스를 타고 할머니 집에 온 모양인데, 대문을 열자 길동무였던 남자 아이는 나비로 변하고 할머니가 팔을 벌려 반갑게 맞아주는 모습이 보인다. 할머니가 입고 계신 바지를 보며 친정 엄마가 흔히 입는 기하학적인 무늬와 비슷해서 괜히 더 정겨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꽃을 실컷 보면서 걸어온 아이는 자신이 할머니에게 ‘어여쁜 꽃이 됩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뭉클했다. 할머니에겐 시골길에 예쁘게 핀 어떤 꽃보다 손주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여름, 가을, 겨울 모두 할머니 집을 찾아간다. 할머니 집으로 갈 때마다 길동무도 개구리, 허수아비, 두루미로 바뀌고, 그 사이 아이는 키도 좀 큰 것 같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그림만 봐도 괜히 마음이 푸근해졌다. 섬세히 관찰하고 그렸거나, 정말 시골에서 살아본 사람이 그린 것처럼 계절이 또렷하게 느껴지도록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할머니 집에 널린 수건에 글씨며, 할머니가 입고 있는 옷들이 그랬다. 정말 시골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너무 섬세하게 그려놓아서 마치 내가 엄마를 찾아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중학교 때부터 자취를 한 탓에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시골집에 갔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20분 정도 걸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은 다 볼 수 있었고(아쉽게 이 그림책처럼 꽃은 별로 없었고 온통 풀, 나무뿐이었다), 밤에는 또 얼마나 무서운지 느낌으로 알고 있다. 시골의 밤은 도시의 밤과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여서 혼자서 시골 밤길을 걷는다는 건 나로서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밤에는 풍경이고 뭐고 집의 불빛을 찾아 냅다 뛰어가기 바빴다. 그렇게 도착한 집에 엄마가 나를 어떻게 반겼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안도감에 늘 마음이 놓였었다.

그래서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이 뺏기기도 했지만 아이가 올 때마다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며 ‘내새끼’ 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혼자서 생활할 때 사랑하는 손주가 찾아오는 기분을 할머니의 동작만 봐도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맨발로 뛰어나오고, 눈 오는 날에는 걱정되었는지 밖에서 맞이하기도 한다. 아이는 할머니 집 가는 길에 무엇을 더 기억하게 될까?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 아니면 길동무? 다른 것보다 할머니가 늘 반갑게 맞이해주던 기억을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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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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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 119쪽


정말 그렇다. 여전히 그 때를 기다리는 책도 있고, 이미 만나서 기뻐하거나 실망한 책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한 권의 책이 내게 닿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한다. 마치 인생처럼 다시 시작하기 힘들다면 첫 만남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난 수많은 책들 중에서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는 책들이 있기 마련이다. 책 제목에 이미 ‘서점’이 들어가 있어 책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서점 주인이 되는 것에도 나름 영웅적인 면이 있고, 아이를 입양하는 것에도 영웅적인 면모가 있다고요. 130쪽

섬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아내와 사별하고 우연찮게 마야를 입양하게 된 에이제이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달리 보이지 않을까? 서점 주인과 출판사 홍보 직원 사이로 만난 에이제이와 어밀리아는『늦게 핀 꽃』으로 뒤늦게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출판사 직원이 추천하는 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뒤늦게 읽어보고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저절로 마음이 열릴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어밀리아에게 마음이 열렸지만 이미 그녀에겐 약혼자가 있었고 에이제이는 마야를 입양한 터라 시간이 어긋났다.

서점에 버려진 아이 마야. 미혼모인 마야 엄마는 삶을 버리기 직전 아이의 미래를 서점에 맡긴다. 서점에서라면 마야를 잘 거둬줄 거란 믿음. 에이제이가 마야를 키우기엔 여러 조건들이 맞지 않았지만 둘은 운명처럼 혹은 숙명처럼 그렇게 부녀사이가 되고 여러 어긋남을 극복하고 어밀리아도 함께 가족이 된다. 에이제이가 ‘나는 내가 읽는 책을 당신도 같이 읽기를 바랍니다.’라며 청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남편이 이입되었다. 비교가 능사는 아니지만 서재에 4천 권이 넘는 내 책이 있어도 달랑 한 권 읽은 남편(시오노 나나미의『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과 살고 있어서인지 정말 멋있는 청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인생이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순간 정말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에이제이는 불치병에 걸리고, 거액의 치료비 때문에 수술을 포기하려는 순간 책이 그를 구한다. 희귀본인 애드거 앨런 포의『태멀레인』이 그를 수술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이유로든 책이 사람을 구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렇게 수술을 받은 에이제이가 다시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랐다.『태멀레인』이 사라졌던 진실이 어렵게 밝혀진 만큼 에이제이를 구한 것은 역시나 책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혼자라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301쪽

결말을 추측하며 읽고, 이미 과정에서 충분히 만족시켜주며, 때론 반전이 있는 책. 이렇듯 한 권의 책이 담고 있는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리고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결말이 이어질 때 이게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삶처럼 불행도 기쁨도 순식간에 찾아오고 어느 순간 뒤바뀌기도 한다. 그럼에도 서점이란 공간과 책이 여러 사람의 삶에 스며들고 얽히는 것을 보며 그럼에도 혼자가 아닌 것에 안도하곤 한다. 내게 주어진 삶의 대부분이 책으로 채워지는 시간. ‘우리는 많은 책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는 믿어야 한다. 때로 실망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이따금 환호할 수도 있다.’는 말에 책 대신 다른 말을 대입해 보면 아주 조금 삶을 밀어낼 용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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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그리울 때 산하작은아이들 43
천위진 글, 오규원 옮김, 마이클 류 그림 / 산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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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십 분만 나가도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으면서 바다를 좋다고 여겨본 적이 없다. 산골에서 살았던 탓인지도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건 좋지만 바다를 내내 바라보면서 살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바다라는 공간을 떠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휴가 때마다 바다를 찾아가는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를 보며 마음이 찡해지고 말았다.

 

여전히 바다를 볼 수 없는 두메산골에 살고 있었다면 바다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 속의 아이도 바다를 볼 수 없는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 만나는 바다는 항상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자주 가는 숙소에 짐을 풀고 바다를 향해 가는 발걸음에 설렘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추억이 묻어 있는 장소라는 것 외에도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림책을 읽더라도 늘 글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편인데 이 책은 그림에 마음을 뺏겼다. 섬세하게 표현된 빛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색감의 바다를 만나고, 모든 것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내가 바라보며 사는 바다를 이렇게 자세하게 살펴본 적이 없어서인지 이렇게 풍부한 색감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지 않고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그렇게 바다의 색감에, 그곳에 담긴 추억에 마음을 뺏기고 있었는데 이 바다에 엄마와 함께 왔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빠와 아이만 온 터라 엄마가 곁에 없음을 알아버렸다.

 

아이는 바다에서 실컷 놀고 떠나기 직전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에 와 있으며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하늘나라에서 아프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편지 앞에서 눈물이 날 뻔 했다. 눈물을 참은 이유는 아이의 편지가 슬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감히 짐작할 수도 없지만 엄마와의 추억이 묻어 있는 바다에서 즐겁게 뛰어놀고 엄마의 행복을 생각해주는 아이 앞에서 슬프다고 울 수는 없었다. 그리움에 눈물을 흘릴 때도 있겠지만 적어도 세 가족이 함께 했던 바다에서는 슬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행복해 보였다.

 

버스에서 머물렀던 바닷가 마을을 돌아보는 아이의 모습에서 꼭 엄마를 두고 오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라도 돌아오면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곳. 그래서 아이는 하염없이 멀어지는 바다를 보고 있고, 다시 돌아올 힘을 얻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 항상 곁에 있기에 쉽게 지나쳐버린 바다, 언제까지 내 곁에 있어줄 거라 여기고 때때로 소중히 대하지 않는 가족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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