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래빗 전집
베아트릭스 포터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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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피터 래빗>에 입문했다. 책을 소장해서 읽고 싶었을 때는 단행본 뿐이어서 얇은 책을 일일이 구입해 읽고 리뷰를 남겼다. 그렇게 <피터 래빗>을 잊고 있었는데 전집 출간 소식에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그리고 전집을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처음에 <피터 래빗> 시리즈를 읽었을 땐 좀 어색한 부분들이 있었다. 개연성을 따지며 이상하다 여겼고 종종 잔인한 표현에 어리둥절하며 진지하게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을 읽고 저자를 좀 더 알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사랑하는 문학소녀였고, 가정교사의 어린 아들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위로하기 위해 지은 동화가 <피터 래빗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피터 래빗> 전집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시리즈를 읽을 때와는 달리 정말 이런 동물들의 세계가 있을 것 같고 너무 아기자기해서 읽는 순간이 행복해 졌다고 말이다. 100년도 전에 쓰인 이야기가 여전히 사랑 받는 이유가 아닌가 싶었다. 동물을 잘 관찰하고 애정 어린 시선이 아니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그림들도 좋았고, 의젓하게 옷을 차려 입고 티타임을 갖거나 예의바르게 초대를 응하며 당시의 문화가 동물세계에 스며든 것도 흥미로웠다. 이름을 갖고 있고, 자신만의 생활 터전이 있으며, 동물들끼리 어울리기도 하지만 때론 다른 동물들에게 혹은 인간에게 위협을 당하고 골탕을 먹이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유년시절이 많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놀 거리가 없어 온 동네를 쏘다니고 말썽을 부리다 혼나는 경우도 많았다. 책 속 만큼 다양한 동물은 없었지만 때론 동물을 괴롭히기도 하고, 집에서 기르던 개를 아직도 기억하기도 하고 잊혔던 추억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우수수 떨어졌다.

저자가 아픈 가정교사 아들을 위해서 쓴 책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더라도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 같다. 종류는 좀 다르지만 시골이라 동물을 흔히 만날 수 있었고 거부감도 없었다. 그런 동물들이 책 속에서 꼬물거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면 분명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다르게 보였을 거다. 학교가 파하면 가방을 던져놓기 무섭게 놀러 다니느라 바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도는 시간을 어찌 할 줄 몰라 학급도서를 모두 읽었다. 하지만 기억나는 책은 ‘충효사상대전집’ 외에는 없다. 그때 이런 책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동물들의 세계가 촘촘하고 섬세하게 묘사되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을 되찾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옛 기억을 떠올릴 정도로 말이다.

글이 더 많은 이야기도 있지만 따뜻한 느낌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활자중독자임을 자처하는 나도 그림에 마음을 뺏기게 된다. 계속 이 세계에 파묻혀 있고 싶어 책을 덮고 싶지 않은 마음. 따뜻한 이불 속에 몸을 파묻고 이야기에 빠져 있던 순간들이 정말 행복했다. 이 책을 떠올릴 때면 이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지금도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재미난 책을 읽으며 간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정도로 기분 좋은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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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2
호메로스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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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벼르고 벼르던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원전번역 세트 도서를 구입했다. 정말 읽고 싶고 소장하고 싶었지만 번번이 기회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구입해놓고 보니 이 책을 언제 읽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청소년이 읽을 수 있게 축약본으로 나온 <오디세이아>를 먼저 읽고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원전번역 <오뒷세이아>를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구입할 당시만 해도 언제 읽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에 이렇게 마음이 생겼을 때 읽어보자 싶었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율리시스>가 오디세이아의 영어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소름이 돋았다.


한 때 독자들 사이에 퍼졌던 <율리시스>에 관한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읽은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갖는 나름대로의 완독 불가능 이유를 들었는데, 하룻밤 이야기라면서 1,324쪽은 너무 하지 않냐는 말을 듣고 나 역시 격하게 공감했다. 11년 전에 구입해 놓았음에도 여전히 책장에 장식처럼 꽂혀 있고, 여전히 읽을 계획이 없어 그 핑계를 착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렇게 구입해 놓은 책들이 연결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묵혔으니 이제 읽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만간 <오뒷세이아>든 <율리시스>든 읽어보자고 다짐했다. 이렇게 계기가 될 때, 동기부여가 될 때 읽는 독서가 즐겁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폭풍이 휘몰아치듯 이 책을 읽어버리고 원전 번역까지 읽을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뭘까? 우선은 익히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그리스 군들은 모두 무사히 돌아왔지만 오디세우스와 그의 일행만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고 싶지만 포세이돈의 방해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타카 궁에서는 100명도 넘는 청혼자들이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한 명을 골라 결혼하라고 협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20년 째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텔레마코스는 결단하고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를 만나고 이타카 궁을 되찾기 위해 잠입하고 청혼자들을 처단하는 장면은 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되었다.

10년은 전쟁을 하고, 10년은 바다를 헤매다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일. 쉽지 않겠지만 오디세우스가 그간 경험한 이야기와 텔레마코스가 재회하고 다시 이타카 궁을 탈환할 거란 이야기만 유추해 봐도 이 책의 원전은 왜 두꺼운지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바다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키클롭스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우면서 긴장이 되었고,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가진(이건 우리도 마찬가지겠지만) 오디세우스를 보면서 경솔한 모습에 답답해하면서도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도안 이 이야기는 나에게 이렇게 재밌는 줄 모른 채, 여전히 나에겐 읽어야 할 짐으로 느껴졌었다. 그래서 오디세우스가 괜한 호기심과 욱 하는 성격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복수에 복수를 당하면서 온갖 모험하는 이야기를 또 다시, 하지만 이번엔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졌다.

또한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매일 마주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오디세우스는 분명 메시지를 던져준다. 물론 오디세우스는 신들의 미움을 받기도 하지만 보호를받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무모하게 사고(?)를 치는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만났을 때 오디세우스를 보며 나름대로의 비판적 사고를 가동해 도움을 받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거기에 흥미로운 사건들과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해 다른 생각 할 틈을 주지 않으니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오디세우스를 제대로 비판(?)하고, 동조하고, 짜릿함을 느끼면서도 어이없어 하려면 빠른 시일 다짐을 실천할 수 있길 바래본다. 그리고 이제라도 내게 다가와준 이 이야기가 그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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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참 좋다! 춤추는 카멜레온 115
바바라 레이드 글.그림, 서소영 옮김 / 키즈엠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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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이들에게는 정다운 친구가 되어요.’ 라면서 나무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자 어릴 적 나름대로의 피난처였던 소나무가 생각났다. 내가 살던 시골 마을의 당산나무 근처에 꽤 두툼한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중 가지 하나가 좀 낮았다. 어린 내가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한 나무였는데, 높이가 적당해서 그곳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심심하거나, 그냥 생각할 일이 있으면 그 소나무에 자주 올라갔다. 그때부터 나는 조용한 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나무가 주는 편안함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셈이었다.


얼마 전, 집 앞 사거리 횡단보도 앞 가로수 한그루가 뽑혀 나가는 걸 보았다. 신호대기 할 때 나무 아래 있으면 햇빛도 피할 수 있어서 유용했는데 왜 뽑아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항의라도 해봤을까? 그러진 않았을 것 같지만 최근에야 나무를 뽑아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무를 뽑아내고 횡단보도와 경사면을 만든 후 그곳은 자전거 전용 보도라고 떡 하니 새겨 놓았다. 동네사람이 아니라면 그곳에 나무가 있었는지 모를 수 있지만 오랫동안 그 나무의 존재를 알게 된 나는 그저 씁쓸하기만 했다. 자전거와 사람을 구분하자고 오래된 나무를 뽑아내는 일. 안전을 위해서는 당연하지만 과연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여름이 되면 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게 고역이 될 것임이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나무가 뽑혀나간 고통까지는 아니더라도 햇빛을 가려줄 수 없다는 이유로 나도 어쩌면 나무를 그저 편의로만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 책에서는 ‘나무는 요술쟁이’라면서 하늘로 뻗어나가는 나뭇가지, 나무와 사람과 묘하게 닮아 있는 모습, 터널도 되고 바다가 되는 나무숲을 보여준다. 물론 동물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처럼 나무도 나이를 먹어가고 무엇보다 계절을 가장 빨리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나무라고 말이다. 책 속의 나무를 보며 인간과 나름대로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순식간에 뽑혀나간 횡단보도 앞의 나무를 생각하니 좀 우울해졌다. 몇 년 전에 시골집 뒷마당을 정비한다고 큰 오빠가 그곳에 있는 나무를 모두 뽑았을 때는 무척 허무했다. 내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유독 홍시가 맛있는 감나무가 있었고, 단감이 맛있는 나무도 있었다. 그리고 키우던 고양이가 죽자 그 나무 아래 묻고, 벌들이 떼죽음을 당하자 순수했던 나는 벌들을 모아 묻어줬던 기억도 있다.) 공간이 사라져버렸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이를 등원시키면서 보았던 벚꽃나무, 가을이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겨울이면 앙상해지는 가지로 충분한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무가 참 좋아요!’ 라고 말하는 아이 앞에서 마냥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없는 이유가 추억이 담긴 나무가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끔 몇 백 년 씩 나이를 먹은 나무를 볼 때마다 그 아래 머물렀던 사람들의 모습이 영상처럼 스쳐지나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곳에 있는 나무는 얼마나 많은 일들을 보고, 많은 일을 겪었을까 싶다가도 외롭진 않았는지, 좀 사색이 깊어질 때가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추억이 담긴 나무와 함께 커간다는 것. 그 소중함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쓰잘머리 없는 이야기만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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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아빠와 등골브레이커의 브랜드 썰전 자음과모음 청소년인문 3
김경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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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중학교 때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인기로 그해 겨울 시내에는 온통 발목까지 내려오는 파란 농구 코트를 입고 다녔던 청소년들로 북적였다. 그렇게 입고 다니는 게 멋있어 보여 나도 입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넉넉하지 못했던 형편이라 부모님께는 아예 말을 꺼낼 생각도 못했다. 당시에 언니들이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서 부탁을 해볼 만도 한데, 정신 차리라는 소리가 들려올 게 뻔하고 내겐 너무 과분한 것 같아서 그저 다른 사람들의 외투만 실컷 구경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비싼 겨울 외투를 사지 못한다. 몇 년 전 가장 비싸게 샀던 게 20만원 대였으니 그 이상이 넘어가면 과분하다는 죄책감 비슷한 기분에 사로잡혀버린다.

 

어쩌면 나도 이 소설 속의 현수 아빠처럼, 친구들이 입고 다니는 고가의 브랜드 패딩을 사달라고 했을 때 단박에 ‘브랜드는 뱀파이어다.’ 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꼰대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의도치 않게 현수와의 세 번의 논쟁을 하고 난 뒤, 나이키 운동화가 갖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짝퉁을 사주는 바람에 겪었던 일들이 떠올리며 현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될 때, 이상하게도 난 현수 아빠에게 더 동질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메이커(우리 때는 브랜드보다 메이커란 말을 더 많이 썼다)를 입고, 신지 못했던 기억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현수가 사달라는 브랜드 패딩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고가일 것이다. 그런 고가의 패딩을, 청소년기에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해서 덜컥 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현수만큼 준비하고 조사해서 ‘브랜드는 뱀파이어가 아니다’란 논쟁을 하는 기특함이 있다면 현수 아빠처럼 마지막에 고정 관념과 선입견을 깨고 현수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지도 모르겠다(저자는 영리하게 함께 백화점 가는 장면에서 마무리 했다).

 

브랜드는 부족을 만들지. 그 브랜드를 가져야 같은 부족의 될 수 있게 말이야. (…) 그렇게 브랜드가 세상에 선긋기를 하는 거야.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브랜드가 또 다른 신분제 구실을 하는 거지. 브랜드를 쫓다보면 너는 그런 부족이 되지 못할까 봐 불안할 거야. 브랜드가 만든 허상에 빠지지 말아야 해. 27쪽

 

솔직히 꼰대처럼 들리는 이 말을 인정하지 않을 노릇이 없다. 무조건 브랜드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뭔가 더 나을 거라는 생각, 브랜드를 좀 더 우위에 놓는 편견은 여전하다. 때론 아무 생각 없이 ‘우와!’ 할 때도 있고, 속으로 세상에 선긋기를 했던 적도 있던 터라 나한테 하는 말 같아 찔릴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나에게 명품백이 있다거나, 무리를 해서 물건을 구입한 적은 거의 없는데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좀 더 세세하게 파고 들어가면 현수가 말하는 좋은 브랜드의 가치를 알고 있음에도(탐스, 아름다운 가게, 빅이슈 등), 큰 금액은 아니더라도 브랜드와 한정판에 현혹되었던 적이 많았음을 깨달았다. 스타벅스만 해도 집에서 300미터 거리에 있다는 이유로 자주 들르고 한정판 사은품에 현혹된 적이 많았다. 나는 보통 기분에 따라 카페에 가는 터라 가장 먼저 절제하고 마케팅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현수와 아빠는 세 번의 논쟁을 벌였다. 1대 1 상황에서 세 번째는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았고, 앞서 말했듯이 아빠와 함께 백화점에 패딩을 구입하러 가는 순간에 소설은 끝이 난다. 브랜드 패딩을 사기 위해 이렇게 논리적으로 접근한다는 구성이 부자연스런 부분도(아빠와 현수, 누나까지 너무 똑똑했다^^) 있었지만 나 역시 브랜드와 마케팅의 숨은 뜻을 알고는 깨닫는 바가 많았다. 이럴 때일수록 현명한 소비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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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중력 - 사소하지만 소중했고 소중하지만 보내야 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숙명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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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은 사기보다 버리기가 어렵다. 일단 마음먹기가 어렵고 마음을 먹었대도 실행에 옮기기가 어렵다. 새 물건은 카드만 긁으면 집 안까지 배달된다. 덤도 끼워주고, 적립금도 주고, 야단법석을 떨면서 소비를 축하해준다. 하지만 처분할 때는 갖은 수고를 들여야 한다. 쓰레기를 분리하고 배출하는 것도, 쓰레기장으로 들고 나르는 것도 모두 내가 직접 해야 한다. 145~146쪽


비가 개고 해가 쨍쨍한 오후, 벼르고 벼르던 분리수거를 하고 왔다. 대부분 플라스틱인데 늘 버리면서도 의문이 든다. 과연 이걸 재활용 할 수 있을지, 우리 집만 해도 이렇게 쓰레기가 많은데 내가 사는 지역, 우리나라, 전 세계로 따져보면 어질어질 해진다. 두 차례에 걸쳐 재활용, 일반 쓰레기, 음식물, 폐지까지 버리고 오니 집이 조금 깨끗해진 것 같았지만 물건이 꽉꽉 들어찬 집은 여전히 답답해 보였다. 가장 큰 원인 제공은 내 책이다. 더 이상 빈 벽이 없어 책장을 들일 수 없어 이중으로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면 내 욕심이 과하다 싶다. 최근에는 소장하지 않는 책들은 지인에게 주는 등 최대한 책을 늘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긴 하다. 꼭 1년 전에 무모하게도 내 책들을 세어봤다. 약 3,100권이었는데 분명 그보다 더 늘어났다는 것을 안다. 몇 십 권도 아니고 백 단위의 책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가끔 마음이 동할 때면 물건을 모두 끄집어내어 버리지만 항상 내 마음과 달리 양이 너무 적어 당황할 때가 많다. 특히 자잘한 물건들이 많은데 서랍에 처박아 둔 터라 잘 보이진 않지만 꺼내보면 양이 엄청나다. 물건을 쌓아두는 편은 아니지만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니 그냥 두는 물건들이 좀 있다. 한 때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기도 했지만 내 책들을 보며 포기한지 오래고, 책들이 모두 빠진다면 정말 그럴싸하다는 상상도 해봤다. 책장 때문에 우리 집엔 소파, TV장, 화장대(이건 내가 관심이 없어서)도 없다. 그러니 책들만 빠진다면 정말 간소화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잠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아예 싹 정리하고 해외로 살러 간 저자가 대단해 보였다. 필요하거나 버리지 못한 물건은 비키니 장 두 개에 담아 언니 집에 맡겨놨다고 했는데, 과연 내가 내 짐을 싹 정리한다면 양이 어느 정도 될까 싶었다.

집이 필요하다 생각하니 다른 문제들이 따라왔다. 치솟는 집값에 불안해하고, 안정된 직장이나 부유한 부모를 가진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고, 누가 투자에 성공했단 소리를 들으면 샘이 났다. 불안, 비교, 시기는 내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자꾸만 흔들어놓았다. 7쪽

한때 내 책들을 한 곳에 두고 싶다는 생각에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최근에도 그런 열망이 들떠 가라앉히느라 애를 먹었는데, 결국 집이 주는 만족감 하나로 평생 빚쟁이로 살기 싫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명한 건지, 현실 안주인지, 자기합리화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굳이 돌아보면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공간에 주는 만족감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끌어안고 사는 걸까? 그나마 옷은(내 옷만. 아이들과 남편 옷은 좀 된다) 많지 않아 나름 만족하면서도 항상 수수한 차림이 나에게 맞는 건지 어떤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물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저자를 보면서 한참을 웃고(이 책도 카페에서 읽다-저자의 패션 테러 부분-너무 웃겨서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려 책을 덮고 뛰쳐나올 정도였다), 패션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세상 이야기 같은 생소함에, 저자에게 물건이 머무는 순환 속도에 어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저자처럼 과감히 물건을 정리하지 못할 거라는 데서 오는 실망감(?)과 정말 다 정리했을 때의 후련함과 미련(?) 사이에서 갈등할 나를 상상해보고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꼭 저자처럼 따라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한 공간’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 없는 공간’을 갖고 싶었다.”라는 말은 실천해 보고 싶었다. 그럴 기회가 나에게도 분명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열망하는 책만 가득한 방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물건과 추억이 함께 어우러질 때 가능하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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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17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3,100권이면 서재를 크게 잡으셔야겠네요 못 쓰는 책은 저한테 던져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