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는 무섭지 않아 - 건강 빛방울 그림책 2
모닉 페르뫼런 글, 레인 판 뒤르머 그림, 콩세알 옮김 / 스푼북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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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에 큰 아이의 첫 유치가 하나 빠졌다. 어느 순간 아랫니가 좀 벌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우연히 안쪽을 보다 이미 아랫니가 유치 뒤에 나온 것을 발견했다. 순간 미안해졌다. 아이의 이가 흔들리지는 지, 영구치가 나오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큰 아이는 치과에 가기 싫어했다. 그러면 네가 혀로 밀고 더 흔들거리게 해서 집에서 뽑으라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도 진전이 없자 결국 아이를 데리고 치과로 갔다. 어르고 달래서 무섭지 않다고 말해주어도 겁을 잔뜩 먹고 있더니 아파할 틈도 없이 발치는 순식간에 이뤄졌다. 많이 흔들린 상태라 큰 아픔 없이 이가 빠졌고 피도 별로 나지 않았다. 간단히 동의서를 쓰고 아이의 빠진 첫 유치를 가져왔다.

그래서인지 큰 아이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두려움이 없었다. 이미 치과를 경험했고, 역시나 무섭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경험을 해보니 그럭저럭 견딜 만 한 곳이라 여기는지도 몰랐다. 주인공 한나가 당나귀 인형 두두의 부은 볼을 보며 치과에 가자고 한다. 하지만 두두는 ‘주사에다 칼에다……. 치과는 너무 무섭단 말이야.’ 라며 거절한다. 한나는 의사 선생님이 상냥하고 다정하며 재미있다고 하지만 두두는 쉽게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 한나의 마음도 두두의 심정도 이해가 가는 게, 아이를 달래서 병원에 가려고 하지만 이미 아이는 겁을 먹었고, 그 다음에는 자연스레 협박(?)이 뒤 따른 뒤에야 갈 수 있었던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나는 끝가지 두두를 안심 시키며 친절을 베풀기도 하고, 입을 벌리지 않으려 하자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어 웃게 만든다. 그리곤 입 안을 들여다보면서 곧 이가 빠질 거라고, 하지만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켜 준다. 그렇게 두두와 치과 놀이에 한참 빠져 있는데, 한나의 엄마가 다급하게 한나를 부른다. 치과 예약이 되어 있다며 얼른 나가자고 하지만 한나는 순간 겁을 먹고 절대 가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자 두두가 한나에게 다가와 치과는 무서운 곳이 아니며, 의사 선생님은 상냥하고 재미있다는 말로 위로 해준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한나는 그렇게 치과에 무사히 갔고, 두두의 말처럼 치과가 무서운 곳이 아님을 알게 된다.

큰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면서 네가 경험한 치과는 어땠냐고 물어보니 윙 소리(기계음)는 싫지만 무섭지 않았다고 말했다. 용감하게 치아를 잘 뽑았다는 약간의 자화자찬이 섞여 있었지만 당시에 정말 울지도 않고 겁도 내지 않아서 용감하다고 칭찬해 주었던 터라 아이의 말에 격한 공감을 해 주었다. 책의 뒷면에는 ‘무서움을 털어 내요.’라는 코너를 마련해 병원에 갈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을 알려준다.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병원에 대한 거부감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기 등 아이의 눈높이에서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역시나 내 편할 대로 겁주고 협박하고 억지로 데려갔던 순간들이 떠올라 부끄러웠지만 앞으로는 조금씩 그런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어른인 나도 병원은 무서운데 그런 나를 겁줘서 데려간다면 정말 싫을 것 같다. 아이들 시선에서 좀 더 헤아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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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돼가? 무엇이든 -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이경미 첫 번째 에세이
이경미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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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이 읽고 싶은데 도무지 읽어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책을 들고 집 근처 카페로 갔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평일 한 낮인데도 카페는 앉을 자리가 거의 없었다. 널찍한 책상에 겨우 자리를 정하고 앉았지만 내 앞자리까지 그야 말로 사람들로 빽빽했다.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평안한 상태에서 책을 펼쳤다. 그리고 얼마 안가 책을 덮고 천장을 보며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부디 내 앞에 앉은 여자가 날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길, 내가 웃지 않으려 천장을 보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않길 바랐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마주한 웃긴 장면에서 그야말로 나는 맥없이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렇게 책을 읽다 무심코 터져 나오는 웃음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냥 기분이 좋았다.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존중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정말 싫은 마음을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도 아름다운 존중이다. 75쪽

영화감독인 저자의 이야기는 주제에 따라 우울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어둠으로 침잠하기도 하며,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의 글은 결코 독자의 감정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 않는다.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고나 할까? 깊게 공감해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들지도, 너무 겉핥기만 하다 지나치지 않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감각적으로 잘 썼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고, 이래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빤하고 지난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도 어쩜 그렇게 솔직하고, 웃프고, 무언가를 자꾸 생각하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지! 저자의 의도야 어떻든 나는 이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글이 참 좋았다.

삶이라는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이라고 밀란 쿤데라는 말했다. 90쪽

그러면서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모든 것을 깨달아 버린 혹은 정답이 없는 삶의 질문 속에서 여전히 헤매는 것 같은 공감 가는 말들이 나올 때면 여러 번 문장을 곱씹었다. 마치 내 경험인 듯, 과거에 그러했던 일들이 이제야 확인 받는 듯한 기분에 휩싸여 쉽게 눈길을 떼지 못했는지도 몰랐다. 이상하게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나의 과거를 모두 되짚으며 그때는 왜 그랬을까, 참 어리석었구나, 즐거웠구나, 다시 돌아가도 어쩔 수 없겠구나 하는 여러 감정들이 솟구쳤다 사라졌다. 그런 감정들이 남긴 뒷맛이 일단 씁쓸하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잠시 추억 속에 잠겼지만 결국 그렇게 여러 맛을 느낄 과거를 또 만들기 위해 미래를 향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분명 재밌게 읽었는데 이 모든 감정들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대단하지 않는 일들이, 대단하게 여겨지도록 만드는 것은 일단 내 안에 잠재해 있는 모든 감각의 총동원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말이다. 그것을 풀어내는 능력에 따라 이야기가 갈리겠지만 나도 그런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어떠한 형태든 시작을 해보고 끝을 보고 싶었다. 오래전 저자의 일기가 이 책에서 그런 역할을 했듯이 무언가 끼적거리더라도 남겨보고 싶었다. ‘잘 되고 있지 않아, 아무것도’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어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하나의 과정인 것을! 뭔가 엄청난 걸 깨달아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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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을 보면서 참 책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마다 항상 '욕심이 지나치다 vs 책에 대한 사랑이다'라는 정답 없는 고민을 해본다. 좀 더 넓은 공간이 있어 책들을 숨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가도(마음 같아서는 내 잠잘 공간을 줄여서라도 책들에게 쉼터를 주고 싶지만), 현재에 감사하자는 마음과 늘 싸운다.



그러다 최근에는 김영하 작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 놓은 책 중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거라고!



정말 속이 후련하고, 그간의 죄책감을 다 잊게 해주는 명언(?)이었다.^^



그렇게 읽은 책 혹은 골라서 읽으려고 한 책들이 꽤 되는데 어쩌다 보니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오늘은 그 책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1. 뿌쉬낀 - 뿌쉬낀






고등학교 시절 어려워했던 도스또예프스끼 작품을 전집을 통해 새로이 탐독하고 있을 때였다. 책을 펼칠 때마다 나오는 수많은 러시아 작가와 작품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오고 궁금했던 게 고골의 <외투>, 폰비진의 <미성년>, 그리고 뿌쉬낀의 작품들이었다. 그 가운데 뿌쉬낀을 가장 궁금해 했던 이유는 다른 작가들은 한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나온 반면 뿌쉬낀은 정말 여러 작품이 나왔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작품을 검색해 봤는데, 한 권으로 된 전집은 절판이 된 후였고 단행본으로 몇 권이 있었다. 그래서 그 중에서 소설집을 사서 읽고 다른 단행본을 사려고 하는 중에, 우연히 광주의 한 서점에서 뿌쉬낀의 한권으로 된 전집을 보게 되었다. 손때가 타고, 너널너덜 하고, 굉장히 두껍고, 3만 9천원의 가격표를 달고 있었지만, 이미 내게는 그런 악조건 보다 갖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그때는 그 책을 살 여건이 안 되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는데 자꾸 눈에 밟혀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틀 후에 광주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그 책을 구해 달라고 했다. 아, 그 말을 하고 나니 왜 그렇게 가슴이 뛰던지. 정말 설렜다. 그러나 친구에게서 날아온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서점은 가보았으나 그 책을 누가 사 가버렸고 주문을 하려해도 절판된 책이라 구할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니 그 책이 갖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그러다 불현듯 출판사에 문의를 해보자란 생각이 들어 출판사 홈피에지에 글을 올렸더니 재고 문의를 해보라며 전화번호 하나를 알려 주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재고가 있었다. 책이 약간 더럽다며 9천원이나 깎아준 책은 생각보다 깨끗했고 책이 내게 왔을 때의 기쁨은 말할 수가 없었다. 책을 보는 사람들마다 이거 책 맞냐는 핀잔도, 집으로 들고 가는 길에 마주친 사람들의 힐끔거림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냥 기뻤다. 그렇게 내 생애 가장 두꺼웠던 책, 무려 1793페이지짜리의 뿌쉬낀 전집을 손에 쥐게(너무 두꺼워서 다 못 쥐었다. ㅋ)되었다. 2005년 1월 21일 금요일의 일이었다.


이 책은 1999년 뿌쉬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책들에서 발행된 책이다. 1999년이면 나는 고3. 그때 러시아 작품에는 관심도 없었고 뿌쉬낀을 알지도 못했을 뿐더러 알았다고 해도 이렇게 두꺼운 책을 살 용기도 없었을 것이다. 뿌쉬낀 200주년 탄생 기념이라는 이름 앞에 전집을 발행해준 열린책들이 얼마나 고맙던지. 그 유명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시가 뿌쉬낀이 썼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러시아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라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 외에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많아져 갔다.

 

이 책을 받고 가장 놀랐던 건 엄청난 양의 작품 수였다. 이 전집에서 크게 서정시, 장편 서사시, 희곡, 민담, 운문 소설, 소설로 나뉘어져 있다. 서정지가 약 400페이지 장편 서사시가 360여 페이지, 희곡은 190여 페이지, 민담은 46페이지, 운문소설 270여 페이지, 소설은 370페이지, 해설 및 연보가 146페이지로 된 엄청나고 방대한 전집이다. 페이지 수로만 따져 보더라도 시인이라는 뿌쉬낀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인데, 거기다 다양한 장르와 운문소설이라는 새로운 시도까지 한 뿌쉬낀의 역량이 느껴져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해설의 제목을 번역자 석영중 씨가 '아, 뿌쉬낀' 이라고 한 것처럼, 나도 '아, 뿌쉬낀'이라는 감탄사에 많은 것들을 내포시킬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감탄하고 감탄했다.




2. 율리시스 - 제임스 조이스




*11년 전에 큰맘을 먹고 <율리시스>를 구입했는데, 얼마 뒤에 출판사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똑같은 책이 한 권이 더 왔다.

그래서 이 책을 너무 갖고 싶어 하던 친구에게 선물로 줬던 기억이 난다.




한 때 독자들 사이에 퍼졌던 <율리시스>에 관한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읽은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갖는 나름대로의 완독 불가능 이유를 들었는데, 하룻밤 이야기라면서 1,324쪽은 너무 하지 않냐는 말을 듣고 나 역시 격하게 공감했다. 11년 전에 구입해 놓았음에도 여전히 책장에 장식처럼 꽂혀 있고, 여전히 읽을 계획이 없어 그 핑계를 착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며칠 전에 청소년이 읽을 수 있게 축약본으로 나온 <오디세이아>를 읽고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완역 <오뒷세이아>를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얼마 전에 완역본을 구입해 놓은 터라 이렇게 마음이 생겼을 때 읽어보자 싶었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율리시스>가 오디세이아의 영어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소름이 돋았다. 여기저기서 듣고는 언젠가 읽을 것 같아 구입해 놓은 책들이 이렇게 연결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묵혔으니 이제 읽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만간 <오뒷세이아>든 <율리시스>든 읽어보자고 다짐했다. 이렇게 계기가 될 때, 동기부여가 될 때 읽는 독서가 즐겁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되었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율리시스>가 어문학사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있다. 책이 절판되었을 때는 기존의 번역자를 따라서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




3. 롤리타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내게는 세 가지 버전의 <롤리타>가 있다. 가장 먼저 구입한 책은 민음사세계문학전집의 <롤리타>고, 그 다음에 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의 <롤리타>다. 현재 민음사 출판사의 <롤리타>는 절판된 책이라 내 나름대로 희귀본이라 여기고 있다.

내가 읽은 책은 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의 <롤리타>였고, 다 읽은 뒤에 <롤리타> 특별판을 선물 받아 총 세권이 되었다. 


이 책을 읽기로 다짐 한건 책이 세 권이어서가 아니라 김영하 작가의 『읽다』때문이었다.



김영하 작가는 『읽다』에서『롤리타』의 첫 장 두번째 단락부터 도발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 순간 독자는 밀란 쿤데라가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라고 정의한, 바로 그 의미를 실감하게 됩니다. 자, 도덕적 판단을 중지하기 싫다면 여기서 책장을 덮으시오, 라고 나보코프가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독자는 작가와 일종의 합의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작가인 당신의 도덕적 판단을 무조건 수용하겠다'가 아니라 '이 소설을 다 읽을 때까지 일단 도덕적 판단은 유보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물론 책을 읽는 내내 독자는 이 합의를 번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번복을 하고 책장을 덮어버립니다. 『읽다』 123쪽


과연 나의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계속 지켜볼 것인지 아니면 책장을 덮어버릴 것인지 무척 궁금해졌다. 그래서 책장에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롤리타』를 꺼내들고 싶어졌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으면 더 용기가 날 것 같아 고전 읽기 모임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었다. 

결국 나는 롤리타를 향한 험버트의 사랑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이 소설이 내게 남긴 건 무엇인가, 이 소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고리타분한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소설이 내게 불쑥 다가오면서 느낀 다양한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강하지만, 아마 다른 분들과 함께 읽으면서 그 분들이 용기를 주지 않았더라면 절대 이 소설을 완독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히 장담하건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각자 다른 롤리타, 각자 다른 험버트를 만날 것이다. 나는 여러분을 시샘한다.



옮긴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빌려보자면, 우리가 만난 롤리타와 험버트는 역시나 각자 다른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각자 만나고 있으면서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끝까지 읽어보라고 이끌어 주었다. 그래서 나처럼 낙오될 뻔 한 독자도 완독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때론 완독하기 버거운 책을 함께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4. 토지 - 박경리





무려 12년 전에 사 놓은 토지 세트 도서다. 책을 구입하고 약 2년 뒤에 저자가 돌아가셔서 이 책을 읽기가 더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 책을 읽어버리면 저자와 영원히 이별할 것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하면 이해가 갈까?


이 책은 나의 부족한 설명보다 너무 익히 들어온 명성 때문에 꼭 소장하고 읽고 싶은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이 책을 읽지 못하고 있고, 솔직하게 읽을 계획이 없다. <율리시스>처럼 어떠한 동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그렇게 왔을 때 순식간에 읽어 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세트도서는 이제 만날 수가 없다. 저자가 사망하고 난 뒤 저작권 문제가 있다고 들었고 출판사가 바뀌었다. 이 세트 도서도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는데, 좀 더 비싸졌고 디자인도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절판된 이 책에 대한 애정이 좀 더 있다. 이 책으로 <토지>를 읽을 것이고, 오랫동안 묵혀뒀던 마음의 짐을 말끔히 털어내고 싶다. 어서 그날이 오길 바랄 뿐!





5. 코기빌 3부작 - 타샤 튜더






나는 타샤 할머니를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국내에 출간된 모든 책을 거의 다 가지고 있다(개정판은 제외). 그 가운데서 타샤 할머니의 그림책을 정말 좋아하는데, 코기빌 3부작 책이 특히 그랬다. 이 책으로 인해 코기도 알게 되었고, 종종 코기를 발견하면 자연스레 타샤 할머니가 키웠던 개들이 생각났다. 그만큼 특별한 책이라 책 속의 내용이 진짜처럼 느껴지고, 그림도 생생해서 아끼는 책이다.


현재는 품절되었지만(중고도서는 있다), 자꾸 표지가 쪼글쪼글 변해가는 게 아쉽다. 그리고 무엇보다 활발하게 번역되고 출간되던 타샤 할머니의 책이 요즘엔 출간되지 않는 게 아쉽다. 그래서 그냥 번역되지 않은 해외도서를 사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게 있는 타샤 할머니 책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타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꼭 10년이 되었다. 할머니가 가꾸었던 정원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고, 그림들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그림 속의 세계가 어디선가 존재하는 것 같아 즐겁고 신비롭다.


타샤 할머니의 다른 책들을 만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 이렇게 절판 혹은 품절 된 책들(다른 판본이 존재하고, 중고로 구입할 수 있는)을 살펴보니 감회가 새롭다. 아마 뒤져보면 이런 책들이 더 있을 듯 한데, 딱 떠오르는 책 다섯 권만 골라보았다. 


개정판은 언제나 반갑지만 절판 혹은 품절은 마음 아프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이 희귀본이 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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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8-08-27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지세트 그리고 율리시즈는 저도 갖고 있네요 율리시즈는 읽기 매우 어려운 것이 번역에 대한 문제도 있다고 하는데 무엇보다 온갖 은유와 표징을 무수히 많은 고전에서 빌려와서 기초지식이 상당해야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율리시즈는 아직이에요 뿌쉬킨은 탐나네요 열린책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전집도 전설이라던데 구할 수가 없네요

안녕반짝 2018-08-27 00:48   좋아요 2 | URL
우와! 겹치는 책이 있군요^^
<율리시스>는 솔직히 아직 엄두가 안나요. 그래서 전 얼마 전에 구입한 천병희 교수님의 <오뒷세이아> <일리아스> 먼저 도전해 보고 그 다음에 읽어보려고 해요. 기초지식이 하나도 없어서... ㅜㅜ
열린책들의 도끼 옹 전집을 전 두 질이나 갖고 있는데 전설을 품고 있는 걸까요?^^ 절판될 무렵 구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열린책들에서 도끼 옹 전집을 내주어서 정말 도끼 옹 작품은 열린책들이다, 맹신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얼마전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문학동네 번역을 읽고 다른 부분이 많아 혼란이 오고 있습니다.
도끼 옹 작품의 새 번역이 나오면 찾아서 보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북프리쿠키 2018-08-27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책들이네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어쩔 수 없이 출판사별로 여러권 욕심나는 게 정상인가 봅니다ㅎㅎ 책장에서 고이 잠들어 있는 책들 언제 깨울 수 있으려나요.ㅎ 반짝님 말씀처럼 들었다 놨다 하다가 과감히 펼치는 날이 오겠죠.~

안녕반짝 2018-08-30 23:40   좋아요 0 | URL
저도요. 국외든 국내든 번역자, 출판사, 판형이 다르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들입니다.
일단 쟁여놓고 기회가 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카알벨루치 2018-08-27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율리시스>저도 저거 구입해놓고 쳐다보고만 있네요 ㅎㅎ 언젠가는.......^^

안녕반짝 2018-08-30 23:41   좋아요 1 | URL
앗! 똑같은 책인가요? 저도 오랫동안 묵히고 있는 중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8-30 23:54   좋아요 0 | URL
우리 숙성시켜 나중에 된장재료로 쓰지요 ㅋㅋ
 

 

 

태풍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갇혀 있었던 어제!


긴긴 하루를 버티려면 아이들에겐 간식,

나에겐 커피와 책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각자 놀게 하고

나는 뒹굴뒹굴 책을 읽었다.


물론 글로만 보면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겠구나 싶지만,

사이 사이 아이들에게 짜증도 내고, 혼내고, 먹이고, 낮잠 재우고, 목욕시키고,

절대 평화롭지 않았다.


휴, 정말 어제는 잊고 싶을 만큼 힘든 하루였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커피 두 잔에

책을 몽땅 읽었다.



1. 잘 돼가? 무엇이든


이경미 영화감독의 에세이인데,

며칠 전에 카페에서 이 책 읽다가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내가 카페에 갔던 시간이 사람들이 많은 점심 시간 직후라 정말 사람이많았다.

넓은 책상에 앉아 책을 읽던 중이라

내 앞, 옆, 뒤까지 사람이 빽빽하게 있었는데,

여기서 혼자 웃으면 정신 나간 여자 취급 당할까봐

책을 급하게 덮고

천장을 보며 겨우겨우 웃음을 참았다.


분명 유쾌한 이야기들이 아닌데,

절대 기분이 가라앉지 않은 맛깔 나는 글이었다.


정말 너무 즐겁게 읽었다.


2. 슬램덩크 1~3

 

 

 

간지 난다는 말을 잘 쓰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 표지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간지 난다'고 말했다.

저런 고등학생이라니!

정말 가질 수 없는 너! ㅋ

 

 

 

만화를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

잘 읽지도 않지만 정말 서태웅, 강백호는 멋있다.

강백호의 상식을 뛰어 넘는 B급 감성?)에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른다.


정말 <슬램덩크>는 다 모아야지!

다 읽어야지!




3. 피터 래빗 전집


책을 구입하자마자 80% 정도 읽고

흐름이 끊겨 버렸다.

어제 필 받은 김에 나머지도 완독했다.

정말 그림이 사랑스럽고,

저자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다른 버전의 책을 또 사고 싶을 정도다.




오늘은 어제 읽은 책들 리뷰쓰고,

먼저 읽어야 할 책들 위주로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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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라이프
장 줄리앙 지음, 손희경 옮김 / 아트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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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 까다로운 사람인데다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들도 무척 많다. 그렇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해대서 주위에 있으면 불편한 사람이 되느니, 내 작업을 통해 이런 것들을 코미디로 바꿔보기로 했다.


 

짜증을 코미디로 바꾸려는 시도가 어떤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아 무심코 책장을 넘겼다가 나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급기야는 낄낄대다 박장대소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유머를 발견하려 애쓰는 일은 곧 스트레스 해소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일상의 스트레스와 짜증이 이 책을 보는 동안에는 깡그리 잊혔다. 양복을 입고 태연히 발표를 하고 있지만 아랫도리가 축축한 그림이나, 한 남자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반대편 남자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든 그림, 의자 괴물을 나타낸 그림들은 흔히 마주할 수 있지만 세심한 관찰이 아니면 코미디와 연결 지을 수 없는 센스가 돋보인다.

 

 

 

그리고 그런 유머가 왜 즐거운지를 아는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림 속 상황과 배경이 우리 정서와 좀 다를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얽혀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불편하고, 피곤하고, 짜증이 날 수 있는데 생각의 전환으로 별 일 아닌 걸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용기가 없거나 시선이 두려워 해보지 못한 일탈(?)들로 인해 간접적으로나마 후련함을 느끼면서 불쾌한 감정들을 시원히 날려버리는 기분. 글이 거의 없는 그림으로 이런 기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또한 저자는 매일 아침 사무실에 도착하면 한 시간 남짓 주변 물건들을 갖고 논다고 했다. ‘창의력 체조’라 부른다고 하는데, 사물을 완전히 새로 인식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세상 속의 예술가’라는 제목이 붙은, 앞선 그림들과 좀 더 다른 창작물을 보고 있으면 주변 사물들도 얼마든지 존재감을 뽐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커피가 들어 있는 머그 두 잔이 선글라스를 낀 사람으로 변할 때나, 하얀 붓이 수염과 머리카락으로 변할 수 있는 모습들은 기발했다. 내가 매일 마주 하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고(?) 친구처럼 혹은 동지처럼 대할 수 있는 시선과 생각이 부러웠다. 그렇다면 나 혼자 늙어가는 게 아니구나(읭?), 혼자가 아니구나 하며 사물들을 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생긴다면 일상이 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 말이다.

 

집에 책이 많지만 대부분 글씨가 빽빽한 책들이라 아이들은 내 책을 잠깐 열어보고는 닫는다. 그런데 이 책을 다 본 뒤에 침대에 올려뒀는데 4살인 둘째가 책을 계속 넘겨보고 있었다. 책을 아이에게 잘 주지 않는 편인데(조심한다 해도 구기고 접어버리는 걸 많이 봐서), 이 책은 그냥 보게 두었다. 그래서 결국 구겨진 페이지가 생겨버렸지만 왜 저렇게 유심히 보는지 궁금했다. 엄마가 주로 보던, 글씨가 빽빽한 책이 아닌 그림이 가득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떤 마음으로 보는지 묻었으나 대답 불가! 그리고 이튿날인 오늘도 눈 뜨자마자 침대에 있는 이 책을 또 열어서 보고 있었다. 이 책은 오래 소장하고 있어야겠다. 다음에 둘째와 대화가 되면 보면서 뭘 느꼈는지 물어보고 싶다.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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