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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양장본) ㅣ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11년 10월 5일은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날이다. 그는 몇 해 수차례 병가를 내고 애플 CEO 자리를 비웠다. 하지만, 가끔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애플이 세계 최초로 내놓은 아이패드라는 태블릿 PC를 공개할 때, 그는 삐쩍 마른 모습으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사람들은 그 혁신적인 기기에 놀라고 스티브 잡스의 수척한 모습에 두번 놀랐다. 결국 그 이후, 스티브 잡스는 다시 무대에 나와 프리젠테이션을 하지 못했다. 간간히 그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전세계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또 은밀히 포착된 사진이 그의 소식을 대신해 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기업인들의 회동에서 그가 수척한 모습으로 샴페인 잔을 힘겹게 들어 올리는 모습이었다. 그 이후, 그의 부고소식이 어느 가을날 하루를 우울하게 장식했다.
한갓 기업 CEO의 죽음에 뭇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이례적일까? 그는 독특한 CEO 였다. 우리가 상상하는 CEO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몰며 많은 수행원을 대동하고 높은 연봉에 권위의식으로 포장된 그런 사람? 스티브 잡스가 그 모든 것에 예외는 아니었다. 그도 그만한 여유를 즐길줄 아는 CEO였다. 하지만, 프리젠테이션 무대에 등장하는 그는 우리가 봐 왔던 CEO의 행색이 아니었다. 허름한 청바지에 벨트조차 없이 검은색 터틀넥 상의를 입은 이 남자는 훗날 세계에서 가장 쉽고, 흥미롭게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모든 비지니스맨의 교본이 될 만 했다. 애플 제품들처럼 단순함과 명료함, 그리고 직관과 통찰력이 번득였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혁신의 상징이 된 잡스의 죽음은 한 CEO의 죽음이 아닌, IT업계에서 더이상의 혁신은 기대할 수 없을거라는 두려움을 불러왔다. 그러한 두려움과 아쉬움은 주식투자자들만이 아닌 애플 마니아들에게 가장 절박한 것이었다. 그가 죽고 1년이 흐른 지금, 그같은 예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아이폰 5는 여러곳에서 빈틈을 보였다. IOS를 개발하고 잡스와 오랜시간 손발을 맞췄던 수석부사장 스콧 포스톨이 최근 사임하기도 했다. 잡스 없는 애플이 그의 부재 1년 만에 흔들리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혁신의 아이콘으로 애플을 각인시켰던 것일까? 스티브 잡스의 삶과 인생, 그의 목소리와 여정이 모두 담겨 있는 한 권의 책이 있다. 바로 윌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평전이다.
<타임>의 편집장과 CNN의 CEO를 지낸 바 있는 이 책의 저자 윌터 아이작슨은 어느날 잡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자신의 전기를 써 달라는 것이다. 아이작슨은 당시 기괴한 습벽과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한 잡스에게 한가지 약속을 받는다. 평전 집필 과정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해서는 안되고, 사전에 보여달라고 해서도 안된다는 조건이었다. 그에 잡스는 `이건 당신의 책이니까요. 읽어보지도 않겠습니다' 고 약속한다. 이 책이 객관성이 담보된 평전으로 쓰을 수 있었던 계기다. 아이작슨은 잡스와 40여 차례 직접 면담을 했고, 그의 육성을 어느 전기보다 가장 많이 담아냈다. 아내를 비롯한 그의 지인들에 대한 무수한 인터뷰를 통해, 잡스의 내면과 외면 모두를 살폈다. 스티브 잡스는 죽을 때까지 이 책을 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출생과 삶, 업적과 분투, 그리고 혁신의 줄기찬 여정을 모두 담아낸 최초의 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완벽주의자였던 잡스가 자신의 평전에 보인 관용 덕분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대학생 신분이자 친부가 시리아인이라는 이유로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하자 그들 부부는 아이를 입양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한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바로 대학에 반드시 보낸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가난한 농부였던 양부모 폴과 클라라는 잡스의 양부모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잡스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입양아로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잡스에게 양부모는 그가 친부모에게 버림받은게 아니라 자신들로부터 `선택'받았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시절 이후, 잡스는 "버림받음, 선택받음, 그리고 특별함"이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고 자신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고 훗날 회고한다.
양아버지 폴 잡스는 자동차 수리 전문가로 생계를 잇는다. 그는 무척 꼼꼼한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진정한 전문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의 완성도까지 신경써야 한다고 늘 잡스에게 가르쳤다. 이같은 가르침은 잡스가 애플 제품을 설계할 때 그대로 차용되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컴퓨터의 내부 회로 설계도 줄의 반듯함 까지 신경썼던 것은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다. 젊은 시절 히피 문화에 빠져들었고, 자유롭게 방탕한 생활을 했으며 LSD라는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한다. 훗날 잡스는 LSD의 복용 경험을 인생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할 만큼 크게 여겼다. 또, 대학을 중퇴하고 인도로 떠나 불교와 선 수행을 했던 시절의 경험,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와 선 수행자들과 교분을 쌓으며 사과 과수원에서 일하게 된 일 모두, 일평생 애플이라는 회사에 자신의 DNA를 뼛속까지 이식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애플이 보여주던 혁신의 유전자는 결국 잡스의 인생 경험과 젊은 시절 쌓은 철학이 담고 있는 잡스 DNA의 일부였던 게다. 애플처럼 CEO의 철학이 회사의 비전으로 담겨, 제품에 끊임없는 혁신을 불러온 경우는 흔치 않다. 그는 일평생 애플이라는 회사를 이윤추구의 도구로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컴퓨터로 녹여내 사용자가 감탄할만한 제품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 그래서 잡스는 회사의 CEO를 돈벌이나 추구하는 기업가와 영속적인 기업을 추구하는 리더로 나누었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CEO들은 시장에 훌륭한 제품을 내놓고 일단 시장을 독점 지배하고 나면, 더이상 혁신을 멈추고 고만고만한 제품들을 생산하며 돈벌이에만 집중한다. 그 대표기업을 잡스는 평생의 라이벌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라고 일갈했다.
" 어떤 기업을 시작했다가 매각이나 기업공개를 통해 현금이나 챙기려고 애쓰면서 스스로를 `기업가'라고 부르는 이들을 나는 몹시 경멸한다. 그들은 사업에서 가장 힘든 일, 즉 진정한 기업을 세우는 데 필요한 일을 할 의향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일을 수행해야만 진정한 기여를 할 수 있고 이전 사람들이 남긴 유산에 또 다른 유산을 추가할 수 있는데 말이다. 한두 세대 후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표상하는 회사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윌트 디즈니, 휼렛과 패커드, 인텔을 구축한 사람들이 해낸 일이다. 그들은 단순히 돈을 버는 기업이 아니라 영속하는 기업을 구축했다. 애플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884쪽, 윌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1980년대 후반,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난관을 지나 1990년대 후반 애플 컴퓨터로 다시 복귀한 잡스는 그때부터 놀라운 혁신적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인다. 1980년대 최초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춘 매킨토시에 이어, 애플을 떠나 있는 동안 픽사를 통해 <토이 스토리>라는 걸출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크게 흥행시킨다. 애플에 다시 복귀 후에 그는 기적같은 IT 업계의 혁신 스토리를 써 나갔다. 매장의 디자인 하나까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뿜어내는 애플 스토어를 전세계에 보급했고, 아이팟을 통해 주머니속에 1천곡의 MP3를 넣고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아이튠스 스토어는 불법 다운로드에 익숙한 음악소비자들에게 합법적인 방법으로 음악을 구입하는 길을 열었고, 아이폰을 통해 웹 서핑에서 음악,사진촬영, 동영상,이메일 등 모든 기능을 통합해 스마트폰이란 혁신기기로 전자업계의 방향을 돌려세웠다. 앱 스토어는 무수한 벤처 콘텐츠 제작 산업을 일으키는데 공헌하고, 아이패드를 통해선 태블릿 컴퓨터의 문을 열어 디지털 신문, 잡지, 책, 동영상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제공하기에 이른다. 잡스가 죽기 10여 년의 기간동안 선보인 혁신 기법과 기기들은 인터넷과 컴퓨터의 오늘이자 미래였다.
이 평전속에는 그같은 혁신의 전 과정이 상세히 담겨 있다. 그는 놀라운 IT 세계의 혁신을 구축하며 애플 마니아들을 양산해 냈다. 하지만, 그 이면에 그가 가진 괴팍한 기질들이 무엇이었는지 이 책은 한 인간의 긍정적 면과 부정적 면 모두를 놀랍도록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 20대 시절 인도에 다녀온 이후 선과 불교 수행자로서 삶을 추구하던 때의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이 그의 나머지 삶을 지배했다. 그는 부자이면서도 졸부들의 삶의 행태를 비난했고 그와 정반대로 살고자 노력했다. 제품들 속에서 단순함의 극치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던 그는 생활 자체가 무척 검소했다. 일평생 채식주의자로 살았고 애플을 막 창립한 시절에는 맨발로 다니며 비지니스 상대를 난처하게 했다. 집안에 가구를 들여놓는 일 자체를 무척 꺼려해 집안이 텅 비었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거나 꾸미지 않았다. 그는 흑백논리를 통해 세상엔 천재 아니면 바보, 훌륭한 제품 아니면 쓰레기가 있다고 믿었다. 남에 대한 배려와 공손한 말투를 그에게서 기대할 순 없었다. 그가 꾸리는 팀은 언제나 최고여야 했고 평범한 아이디어와 사람들은 자신의 회사와 프로젝트를 망칠 거라고 여겨 그들을 해고하곤 했다. 이것은 그의 못된 성질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놀라운 혁신 제품들을 선보이기 위한, 그 나름의 경영기법으로도 해석된다. 경영학 교과서가 가르치는 기법이나 리더쉽 이론은 잡스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다. 아무때나 불같이 화를 내고 맘에 들지 않는 직원들은 과감하게 해고하던 그에게서, 오늘날 각광받는 리더쉽 이론이 먹힐리가 있겠는가. 그러고도 그는 죽기 직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CEO 자리에 올랐다. 잡스의 독창적인 경영철학이 그걸 가능케 했다.
"나는 내가 사람들을 함부로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가 형편없으면 그저 면전에 대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뿐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의 일이다. 나는 내 말의 논지를 놓치는 법이 없으며 대개는 내가 옳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것이 내가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 문화이다." 884쪽, 윌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는 도덕적이고 선량한 측면에서 존경할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기부와 자선에는 무척 인색했고, 노동환경에 대한 고민도 전무했다. 이 평전에 싸구려 감동이 부족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천재였고 놀라운 직관력과 통찰력을 통해 미래의 컴퓨터 산업을 내다보는 혜안을 갖고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일반적인 사업가의 이상과 비전을 품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더 많은 돈과 이윤을 목표로 한게 아니라, 더 놀라운 제품을 통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 창의적인 기기를 통해 인류를 하나로 묶어 내는 것, 그게 잡스의 이상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같은 천재들은 그에 합당한 금전적 대우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합리적 생각도 품고 있었다.
젊었을 때 히피같은 삶을 추구하며 마약류의 하나인 LSD를 복용하던 시절을 인생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경험이라 고백하는 것은 의외였다. 인도를 몇 달 간 여행하며 돌아와 선과 불교 수행에 전념했던 시절, 그 이후 죽을 때까지 육식은 입에 대보지도 않았던 결벽성, 암 진단을 받고도 1년 가까이 외과 수술을 거부하고 대체 요법을 통해 병을 다스리고자 했던 그의 고집, 어쩌면 이러한 기질을 통해 우린 잡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가진 천재성은 닮을 수 있는게 아니다. 그래서 이 평전을 통해 우린 기껏해야 한 위대한 혁신가의 기행적 삶을 되돌아보는게 고작이다.
하지만, 인상적인 그의 삶의 자세는 우리에게 어떤 힌트를 던진다. 그 가운데 하나는 잡스가 무척 시간을 소중히 여겼고, 위대한 일에 도전하라고 젊은이들을 독려했다는 사실이다. 직설적으로 그는 `우리가 이 지구에 머무는 시간은 한정 돼 있다'고 경고한다.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연설에서도 그는 한정된 시간과 젊은이들의 자세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면서 타인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도그마에 발목잡히지 말며, 타인의 의견이 내면의 목소리를 뒤덮게 나두지 말라고 조언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심장과 직관의 소리에 따르는 용기임을 명심하라고 말한다. 그 연설문은 이 단순한 문장으로 끝난다.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갈망하며 우직하게 나아간 것, 그게 잡스의 일생이었다.
"우리가 이 지구에 머무는 시간은 아주 잠깐입니다. 정말로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물론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젊음을 아직 잃지 않았을 때 많은 걸 이뤄 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258쪽, 윌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애플은 뼛속까지 잡스의 DNA가 이식된 회사였다. 그래서 오늘의 애플은 진짜 애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애플 마니아들이 잡스의 죽음을 애통해 한 이유다. 잡스 없는 애플이 가능할까? 모든 혁신이 그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이 평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애플이 살아남는 길은 역설적이게도 잡스를 잊고 새로운 방법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잡스는 경영학 교과서에 없는 리더쉽을 선보였고, 독창적인 리더쉽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새로운 리더쉽만이 애플의 혁신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 평전속에는 잡스의 파란만장한 삶과 IT 분야에서의 성공의 여정이 담겨 있다. 천재였지만 괴팍한 성미를 갖고 있었고, 어린 시절 가난한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대학을 중퇴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지상에서의 삶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했고 전념했던 창의적인 사람이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주목해야할 것은 창의성과 더불어 그가 삶을 대하고 전념하는 자세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기에 끝없는 진화가 필요한 법이다. 오늘보다 좀더 나은 제품, 좀더 나은 생활, 좀더 나은 삶을 그는 욕망했다. 스티브 잡스는 인류에게 끝없이 진화해야 할 동기를 상속했다.
2012.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