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람들 - 세계 최고의 독서가, 책 읽기의 즐거움을 말하다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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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독서하는가? 또 무엇을 위해 책을 모으는가? 독자들은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봐야 한다. 어떤 행위의 목적을 생각해본다는 건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불꽃같은 의욕이 솟구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문장 한 줄 읽는 것도 지치는 날이 오고, 모든게 회의로 치닫는 시절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 독자는 항상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준비해둬야 열정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고 인생 전체를 책과 함께 할 수 있다.

 

나에게 책읽기와 장서(藏書)에는 몇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젊은 시절 책은 구원 그 자체였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어떤 이들은 한 권의 책으로 구원받는다. 성서나 그외 경전들이 그렇다. 내게 구원은 이 세상에 태어난, 혹은 태어날 모든 책을 통해 이루어졌다. 우열을 두자면 성서는 세상 그 어떤 책보다 가치 있다. 지금도 성서 외에는 신앙에 방해물이 된다는 이유로 전혀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반대였다. 성서를 포함해, 세상 모든 책을 나는 구원의 도구라 생각했다. 좀 과장해서 그 많은 책을 읽기 위해, 나는 살아야했고 결국 책은 살아갈 이유와 동기를 부여했다.

 

둘째, 한번 읽은 책은 반드시 보관하는 버릇을 갖게 됐다. 장서는 취미라기보다는 독서의 부산물과 같다. 지금껏 내가 읽어온 책 모두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자 생의 이력이다. 서재가 손때가 묻은 책들로 가득 들어찬다는 것은 물리적인 의미와 동시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적인 포만감을 선물한다. 평생 읽은 책으로 원대한 개인 도서관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은 꿈이자 이상으로 자리잡았다. 세상의 모든 독서가들이 나와 같은 기억과 이상을 공유한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 <책 읽는 사람들>을 읽은 후, 유명한 독서가나 무명에 가까운 나같은 이나 그 시작과 과정이 다를 바 없음을 깨달았다.

 

망구엘은 책을 읽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의 직함은 다양하다. 소설가, 작가, 편집자, 번역가 등. 더군다나 그는 세계시민이었다. 남미의 불운한 정치적 환경에서 태어나 학창시절 조국을 탈출해, 유럽의 여러나라와 미국, 캐나다 등으로 삶의 영토를 바꿔왔다. 여러 매체에 기고한 책과 독서, 인물과 자신의 삶을 다룬 글을 묶어낸 <책 읽는 사람들>은 일평생 그가 전념해 온 독서와 책에 대한 열망의 후기다. 난 그가 다양한 직함 가운데 `독자'로 불리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젊은 시절 해외를 방랑하며 궁핍한 삶을 살아가던 그는 상금 욕심에 문학상에 소설 한 편을 응모해 당선되지만, 자신에게 작가보다는 독자로서의 삶이 맞다고 생각해 소설가의 길과 멀어진다.

 

한 편의 소설을 분석하며 그에 연관된 소설의 목록을 쉴새없이 토해내는 글쓰기에서 우린 독자로서 탁월한 망구엘의 재능을 확인하게 된다. 일평생 무수한 책들을 읽고, 그 후기를 적고, 개인 도서관을 만들어 소장한 책과 독서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든 십수 편의 글들을 읽으며 발견한 가장 인상적인 주제는 `이상적인 독자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창작과 고뇌의 상징인 작가는 독서의 세계에서 언제나 `갑'의 위치에 있는게 정당한 걸까? 독서는 주어진 텍스트를 읽어내려가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가? 육십 평생 세계를 떠돌며 세계시민으로서 책을 읽어온 망구엘의 답은 의외였다.

 

"이상적인 독자란?"이란 타이틀을 단 글에서 그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짧고 다양하게 변주해 나간다. 망구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독자에 대한 답을 몇 가지 옮겨보자.

 

" 이상적인 독자는 창작의 순간보다 앞서 존재한다 "

" 이상적인 독자는 텍스트를 절개해서 껍질을 들어내고 골수까지 파들어가, 동맥과 정맥을 일일이 추적해서 완전히 다른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번역가다. 이상적인 독자는 박제사가 아니다."

" 이상적인 독자는 책을 덮을 때마다, 자신이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세상이 더 불행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 이상적인 독자는 돈키호테의 윤리관, 보바리 부인의 열망, 바스 여장부의 욕정, 오디세우스의 모험정신, 홀든 콜필드의 기개를, 적어도 이야기를 읽는 동안에는 공유한다."

" 이상적인 독자는 밟아 다져진 길을 걷는다. `훌륭한 독자, 뛰어난 독자,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독자는 다시 읽는 사람이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로빈슨 크루소는 이상적인 독자가 아니었다. 그가 성경을 읽은 이유는 답을 찾기 위함이었다. 이상적인 독자는 의문을 찾아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 알베르토 망구엘 125~127 쪽, <책 읽는 사람들>

 

그는 책읽는 사람들의 능동성을 강조한다. 주어진 텍스트에 오직 만족하는 것은 망구엘이 생각하는 독서가 아니다.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 개인소개란에서 취미를 독서로 기재하는 것은 이제 넌센스가 돼야 옳다. 책과 독서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가닿는 그의 결말은 놀랍도록 요즘의 내 생각과 비슷했다. 책이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재료이고, 독서가 그 행위라는 것 말이다. 취미는 개인의 향락에 머물지만, 독서는 향락을 넘어선다. 독서는 이 세상을 지배했던 정치적 잔혹 행위를 `기억'하는 도구가 되며, 온갖 위협과 광기의 `피난처'가 된다. 독서는 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며, 그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도운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할 때, 누구에게도 인도받지 못한다는 당혹감이 밀려올 때, 우리는 글이 쓰인 곳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는다' 독서가 갖는 위로의 힘이다.

 

18세기엔 노예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이 금지 돼 있었다. 심지어 노예는 성경도 읽어선 안 되었다. 왜 그랬을까? 성경을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노예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소책자'도 읽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노예 지배자들, 즉 권력자들이 독자를 두려워했다는 증거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은 시민의 무지를 은근히 희망한다. 시민의 무지는 쉽게 벗어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래 국가는 대놓고 국민 독서 운동을 거창하게 진행하지만, 매년 독서율이 급격히 변동했다는 뉴스는 들어본적이 없다. 시민이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획득하고자 한다면 먼저 독자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무지한 유권자를 사랑하며, `책읽는 유권자'를 두려워 한다. 책이 작게는 개인을 구원하는 것을 넘어 사회를 구할 수 있다는 가정을 가능케 한다.

 

"이상적인 도서관에서 독자의 역할은 기존의 질서를 뒤짚는 것이다" 143쪽

 

그간 독자로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시간 `쓰는 일'에 대한 선망과 희망을 가져왔다. 위대한 작가는 있어도 위대한 독자는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왜 그랬을까? 읽는 일보다는 쓰는 일이 더 품위 있고, 인정받는 일이란 편견 때문이다. 한 편의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힘들고, 고달픈 과정이다. 몇 페이지의 글을 쓰기 위해 우린 수십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한다. 망구엘은 글을 짓기 위해 꼬박 이틀 밤을 새웠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그 날 이후 편안한 독자의 길로 되돌아왔다고 회고한다. 그가 훗날 소설 한 편으로 문학상을 거머쥐고도,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지 않은 이유다. 그는 독자로서 책과 맞서는 짜릿하고 풍부한 경험을 더 사랑했기에 자족하는 독서가가 될 수 있었던 게다.

 

이 책은 놀랍도록 깊고 확장적인 독서의 힘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망구엘은 우리 시대의 정치인과 혁명가(체게바라)를 검토하고, 문학과 독서에 대한 영감을 주었던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의 기억을 되살린다. 단테와 피노키오 그리고 돈키호테의 작품과 인물들을 샅샅이 살피며, 어린 시절 읽어냈던 동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한 편의 세계관에서 독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성실히 책을 읽어온 그는 조국 아르헨티나의 정치사를 가장 정확히 꿰뚫어보고, 서양 고전을 통해 인간이 나아가야 할 삶을 인문적으로 고찰할 능력을 뽐낸다. 그는 문필가로서보다 평범한 독서가로서 자신의 이력을 더 사랑하며, 이 책을 읽는 누구에게나 인문주의자 망구엘의 삶을 선망하게 한다.

 

책읽는 사람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며, 세상의 지식을 흡수해서 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린 책장을 펼치는 순간, 자기발견의 여정에 들어서는 법이다. 그 어떤 취미와 사물도 책처럼 영혼에 직접 가닿지 못한다. 책읽는 사람은 `우리의 역사가 불의(不義)가 지배했던 긴 밤의 역사'임을 알고 있다. 독자는 책을 통해 세상을 읽으며,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을 읽어내는 조타수가 된다. 그래 책이 개인을 넘어, 사회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게다. 정치적 망명객으로 살며 일평생 세계를 떠돌았던 알베르토 망구엘은 곁에 책이 있었기에, 품위와 행복을 지키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왔다. 책이 가진 힘, 독서가 가진 위력을 그의 삶이 증거한다.


무엇을 위하여 책을 읽어야 하는가? 한 권의 책이 풍요로운 서평이자, 역사비평, 인물평이자, 자서전으로, 또 시나 소설의 다양한 장점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망구엘은 작가가 아닌 독자의 길을 선택했으나 결국 흥미롭고 유익한 책의 저자가 되었다. 독자로서의 길은 힘있는 시민이 되는 길이자, 인문주의자로서의 미래며, 결국 저자로서의 삶이기도 하다. 책읽는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가능성이자 희망이지 않은가?

 

 

 

 

 

 

 

2013.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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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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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조선 왕조는 500년이란 시간을 뒤로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됨으로써 역사에서 사라진다. 하나의 왕조가 500년간 지속된 사례가 희귀하 듯, 우리 역사에서 이민족의 식민지가 된 것 또한 처음이었다. 1259년 고려가 몽골족에게 또 1637년 조선이 만주족에게 항복한 것은 말 그대로 `항복'에 그쳤다. 이민족의 간섭과 인명,경제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20세기 초 대한제국의 망국처럼 국가와 국민이 해체되고 이민족에게 편입되는 수순을 밟은 것은 한민족의 사상 처음이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나라가 망한 사건은 지금의 관점에서 여전히 두가지 시사점을 준다. 일단, 망국이란 사건과 지금 시대가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망국은 물리적으로 불과 100년 전 일이다. 두번째, 일본 식민지배 트라우마가 아직 치유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반도 분단과 전쟁, 그 이후 정세들이 조선의 멸망과 긴밀히 연결 돼 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 대사관앞에선 위안부 할머니들의 반일 집회가 천회를 넘겨 계속 되고 있다. 망국은 전쟁과 분단, 남북대립과 국론분열을 불러왔다. 여전히 망국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조선의 망국은 한 왕조의 멸망이 아니라, 국민과 민족 정체성의 해체였다. 대체, 조선은 왜, 어떻게, 일본에게 잡아먹힐 수 있었을까? 역사를 공부하며 한번쯤 드는 의문이다. 기본적 역사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그런 질문에 막연한 답을 하게 된다. 망국의 의미를 깊이 파헤치기보다는 피상적인 공부에 만족했다. 역사학자 김기협은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에서 일단 19세기 조선과 일본, 세계의 정세를 풀어놓고 조선 왕조 500년의 역사를 되짚는다. 시야를 몇 가지 사건에 두지 않고 망국의 근원적 원인을 탐색한다.

 

서양문명은 19세기 중반을 넘어 동아시아 지역으로 밀고 들어온다. 이것을 서세동점(西勢東漸) 현상이라 한다. 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던 중국은 아편전쟁(1840)과 중영전쟁(1856)을 거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본도 1854년 미국에 의해 강제로 개항을 하지만 그들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국가로 뻗어나갈 체제를 정비한다. 메이지 유신에서 일본은 무사정권인 막부를 해체하고 왕정복고를 이룬다. 경제적으론 자본주의를 정치적으로 천황제를 기반으로 한 입헌정치를 시작했고, 사회 전 분야에 대한 근대화에 성공한다. 더불어 강력한 군사력을 키워 일본은 왕조시대에 머물러 있던 중국과 조선을 선점하기 위해, 서양세력과 일대 기득권 싸움에 뛰어들 수 있었다.

 

"19세기 후반에 일본을 경유해 한국을 덮친 서양 근대문명은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이었다. 한국보다 힘과 덩치가 훨씬 큰 중국조차 그 위세 앞에서 1840년경부터는 자세가 흔들리고 1860년경부터는 휩쓸려 들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그 위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조선이 아무리 굳건한 체제를 지키고 있었더라도 정체성의 큰 훼손과 그에 따른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20쪽, 김기협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조선왕조의 종말은 그러면 19세기 말 세계적 열강들과 탐욕스런 일본의 제국주의 노선이 불러온 불가피한 재물이었을까? 힘있는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선점해서 이권을 차지하는 양육강식의 세계가 제국주의였다. 제국주의는 힘있는 국가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게 도덕적으로 꺼리낌 없던 시대다. 그러면 근대화에 뒤진 조선이 일본에 먹힌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엔 다른 문제가 있다. 망국의 원인을 전적으로 외부적 요인에 두는게 맞느냐 하는 점이다. 19세기 조선은 통치이념인 유교질서가 피폐해진 시기다. 당시 조선은 군군신신(君君臣臣)의 나라가 아니었다. 즉 임금은 임금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신하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한다는 유교통치 질서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던 게다.

 

저자 김기협은 피치못할 외부적 요인보다는 망국의 내부적 요인에 집중한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는 것은 바이러스나 추위 때문이다. 하지만, 몸 상태가 양호하다면 쉽게 바이러스나 추위로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말 조선이 일본에게 먹히고 만 것은 일본이 강했다기 보다는 이미 나라의 기운이 망국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하는게 옳다. 세도정치로 권력은 사유화되고 권력의 공공성이 증발되고 말았다. 19세기 말 조선은 내부의 민란조차 스스로 진압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선은 어느 시점부터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걸까? 저자는 17세기의 명분없는 광해군 축출(1623년)를 그 시발점으로 본다.

 

저자는 유교국가의 작동 원리인 왕권이 중간 권력의 지나친 경쟁과 발호를 억제해서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데, 17세기 조선에서는 이 메카니즘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당쟁이 정책 결정보다 정권 쟁탈에 치우쳐 정치의 안정성이 무너지고 정통론이 정치 담론을 지배하게 되면서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줄어든 것이다. 약화된 왕을 명분없이 축출한 사건은 결국 이후 상황 변화에 유교 국가로서 대응할 자세를 잃어버리고, 군군신신의 정신또한 조선 정치에서 사라진 계기가 되었다.

 

"신하가 임금을 고르는 것은 임금과 신하 모두 자기 노릇을 못하는 극단적 상황이다. 충간(忠奸)의 기준이 확고할 수 없는, "성공하면 공신, 실패하면 역적"이 되는 상황이다. 왕도가 사라진 상황이며, 유교 국가의 기본 원리가 무너진 상황이다." 93쪽, 김기협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은 1907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지만, 저자는 고종의 무능함을 비판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세도정치로 허수아비 왕이되고, 민비와 대원군 사이에서 갈팡질팡했고 상납의 정도에 따라 신하의 충성심을 치하했던 그는 정치적 판단력이 없었다. 을사조약 체결 당시 의정부 8대신 중 확고한 반대자는 참정대신 한규설 하나뿐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을사5적 뿐만 아니라 나머지 대신들도 친일에 있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국가와 민족을 아낄 줄 모르고 제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의정부에 모아놓은 것은 누구였나? '

 

조선 왕조는 결국 말기에 이르러 `전통과 도덕성에 집착한 사람들을 대거 도태시키고 도덕성이 박약한 집단에게 사회적 주도권을 맡긴 것'이 신민통치라는 치욕의 역사를 만들어 낸 군불 같은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왕권과 유교정치의 원리를 되살리고자 한 마지막 왕, 정조 시대만 보더라도 정약용을 비롯한 많은 실력있는 실학자들이 정치에 기용되지 못하고 산야를 배회하다 이승을 떴다. 도덕정치와 유교 원리, 민본정치의 이념이 그들의 저서속에서만 살아 생동했던 것, 현실 정치에 응용되지 못한 것이 결국 100년 후 조선의 망국을 불러왔다. 을사늑약을 통해 일본에 나라를 판 의정부 8대신의 예에서 보듯, 한말 정치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정보다는 사사로운 이익에 눈 먼 자들의 것이었다. 이같은 망국의 논의는 그대로 현재적 관점에서 새로운 교훈을 준다.


" 한국인들, 특히 엘리트 계층 한국인들의 도덕성 수준이 20세기에 들어와 형편없이 떨어진 것은 국가가 망하고 이민족의 악질적 지배를 받은 때문이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밑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금 우리는 엽기적 수준으로 부도덕한 정치-경제 시스템에 빠져 있다. 앞장서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몇몇 사람만 처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무능한 진보보다 부패한 보수가 낫다', 도덕성이야 어쨌든 경제를 살릴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국민의 사고방식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299쪽, 김기협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잘못된 역사는 반복된다. 망국의 역사는 조선 사회를 지배했던 엘리트 계층의 부도덕성에서 그 첫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이익앞에 나라를 파는 조약에조차 이름 석자를 올리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훗날 어떤 친일 문학가는 일본이 그렇게 빨리 망할지 몰랐다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런 부도덕한 엘리트들에게 나라를 맡긴 국민은 불행하다. 일본의 야욕과 제국주의의 동물적 논리에 앞서, 조선은 이미 일본이 아니더라도 그 어떤 나라의 식민지가 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빵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라고 생각한다. 굶주릴지언정 자유가 소중한 법이다. 도덕적이지 못한 지도자가 주는 빵은 역시 부정하다. 21세기 그런데 `가치'보다 빵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도덕적 빈곤보다 흠있는 부자가 되는 길을 선호하는 이들도 많다. 정치도 결국 국민의 수준과 요구를 따르는 법이다. 우린 여전히 망국의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게다. 그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어찌 장담하겠는가?

 

 

 

 

 

20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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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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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과 가족애는 항상 선할까? 그게 절대적인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위험하다. 애국심이 지나치면 민족주의나 제국주의가 되고, 가족애가 지나치면 반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 국가와 가족에 대한 사랑조차도 냉철한 이성이 바탕을 둬야 한다는 얘기다. 이웃 일본이 경제위기와 중국과의 영토분쟁을 핑계로 급 우경화 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조차 제대로 끝맺지 못한 일본이 또다시 헌법을 고쳐 군사강국으로 발돋움 하는 일은 끔찍하다.

 

가장 친숙하고 가장 살가운 대상에 대해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하는 일은 그래서 어렵다. 하지만, 존경받는 정치인이나 작가라면 자신의 치부조차도 정직하게 평가받길 자원한다. 위화라는 중국의 3세대 작가가 있다. 원래 직업은 발치사였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었던 시절 국가의 명에 따라 치과의사가 되었다면, 훗날 그는 글쓰기를 갈고 닦아 작가로 전업을 `허가' 받는다. 위화는 많은 소설들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그런 영향력 있는 작가가 한 권의 산문집에서 10개의 단어로 중국의 과거와 오늘을 가감없이 그려 낸다. 위화는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에서 오늘의 중국을 `고작 30년 이란 짧은 시간 동안 정치지상주의에서 금전지상주의로 변신'을 거듭했다고 평한다.

 

이 산문집의 바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테마는 정치와 사회 그리고 성장이다. 위화는 열 개의 단어를 통해 중국이란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지만, 그건 곧 정치사회적 환경속에서 한 작가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열 개의 단어 가운데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한 것들이 있다. 독서(閱讀)나 글쓰기(寫作) 혹은 루쉰(魯迅) 같은 것이다. 하지만, 산채(山寨)나 홀유(忽悠) 같은 단어들은 현대 중국을 표현하는 속어들로 봐야 하겠다. 한 권의 역사책이나 사회비평서 보다 더 깊이 더 가깝게 과거와 현대 중국의 역사와 사회,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위화는 모든 주제에서 자신의 성장담 속에 묻힌 기억들을 꺼내 보인다.

 

가장 인상깊은 것은 위화가 자신의 조국과 사회를 그리는 용기 있고 정직한 태도다. 세계적인 독자들을 보유한 그가 순박한 애국심을 발휘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조국과 중국인의 마음씨를 포장하려 했다면, 이 책은 이상한 홍보서가 되고 말았겠다. 반대로 위화는 그 시대를 살아보고, 겪어보지 않았으면 모를 독자들에게까지도 속속들이 중국의 치부를 드러내 보인다.

 

중국의 민주화 운동인 텐안문 사건이 일어난 날짜인 6월 4일은 중국 인터넷에선 금지된 날짜다. 그래서 사람들은 5월 35일이라는 가상의 날짜를 만들어 그 날에 대해 이야기 한다. 텐안문 사건을 다룬 첫 장의 주제는 `인민(人民)'이다. 민주화를 위해 텐안문 광장에서 연좌 시위를 벌이던 학생,노동자,시민들은 탱크를 앞세운 무자비한 진압에 앞서 결의를 다진다. 자신들의 피와 살이 움직이면 군대와 탱크도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결기를 다지며, 밤을 지새운다. 작가는 그 순간 광장에서 울려퍼진 사람들의 목소리와 열기를 듣고 느낀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회상한다. 그러면서 지금 중국에는 `6월 4일'의 자유는 없고 `5월 35일'의 자유만 있다는 자조섞인 탄식을 내놓는다. 이 산문집이 여전히 중국에서 출판금지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30쪽,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작가의 성장기는 문화대혁명기 였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1966년에서 1976년까지 국가 주석 마오쩌둥이 일으킨 극좌파 사회주의 운동을 말한다. 공산당 내 자본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등소평 등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주석 마오쩌둥은 청소년 등을 주축으로 홍위병을 조직하고, 자본주의 타파를 외치며 국내 극좌파 운동을 10년간 지속한다. 이 가운데 무고한 사람들이 우파로 낙인찍혀, 희생되고 요직에서 강등되는 불운을 겪었다. 위화의 산문들 속에 깊이 박혀 있는 이 기간동안의 상처들과 교조주의적 사회상은 마치 1970년대 한국 유신 시절의 암흑기를 보는 듯 처참하다.

 

마오 주석을 위해 충성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며, 그의 가르침이 경전과 같이 취급되고, 주석을 비난하는 조금의 낌새가 발각되거나, 자본주의자로 의심을 산 이가 공개재판으로 처형되는 일은 일상사였다고, 위화는 회고한다. 그러면서, 그 시절의 맹목적인 시류에 기꺼이 동참했던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허탈해 하기도 한다. `영수(領袖)'라는 장에서 위화는 마오주석이 죽던 날, 학교 강당에 모인 동료들과 함께 소리내어 울던 거대한 군중이 자신에겐 어느 순간 유머로 돌변했다고, 전한다. 만약, 그가 그 순간 웃음을 보였다면 반혁명분자로 찍혀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독자들은 교조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의 몰이성적 시대상을 피부로 느끼게 될 게다.

 

`독서(閱讀)'라는 장에서 위화는 마오주석 어록이나 사회주의 서적 외에는 출판이 금지되어, 책이 귀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금서로 지정된 많은 서적들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출판되는 책은 귀했고 책을 사기 위해선 서점 앞에 서표라는 걸 들고 긴 줄을 서야 했다. 서표는 겨우 50장, 서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의 곁에 다가가 새 책 냄새를 맡아보거나 표지를 만져보곤 했단다. 너무나 오랜 시간 독서에 굶주렸고, 새 책에서 뿜어 나오는 연한 잉크 냄새가 마치 신성한 향기처럼 느껴졌다니, 문화대혁명이란 사회를 살아낸 중국인들의 비참한 삶이 그려지고도 남는다.

 

흥미로운 주제 가운데 마지막으로 `글쓰기(寫作)'에 관한 위화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그는 스물 두 살 무렵, 국가가 정해준 직업인 발치사 일을 하며 한편으론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를 뽑는 것은 생계를 위해서 였고, 글쓰기는 훗날 더이상 이를 뽑지 않기 위해서 였다. 그는 처음 글을 한 자 썼을 때는 치아를 하나 뽑는 일보다 더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원치 않는 발치사 일을 접고 국가가 인정해주며 글을 쓰는 일을 수행하는 문화관에 들어가기 위해선 계속 써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그는 젊었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글을 쓰는 일에 앞서 유혹들이 넘쳐 났다. 하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 `혼자 마른 나무처럼 탁자 앞에 앉아 장인이 쇠를 다루듯' 아주 힘들게 한 자 한 자 딱딱한 한자를 써내려갔다. 훗날 젊은이들은 종종 그에게 묻곤 했다. "어떻게 해서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나요?"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의 대답은 하나이다. 바로 `글쓰기' 덕분이었다. 글쓰기는 경험과 같다.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137쪽,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위화는 `한 개인의 운명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던' 시절을 살아온 작가다. 그가 성장했던 시절은 가난했고,정치적으론 암흑기였다. 여전히 지금 중국 정치 상황은 자유롭지 못하다. 이 책에서 위화는 중국 사회의 온갖 병폐를 용기있게 비판하고 성찰한다. 한 사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작가는 자신의 사회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애정은 무비판적 지지나 믿음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아이의 장래를 망치는 지름길은 부모가 잘못을 보고도 눈감는 일이다.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정치인은 미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철저히 비판하고 반성해야 밝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법이다.

 

입으로는 조국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들이 넘쳐나는 시절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과거 이 땅의 민초들을 사랑했을까? 되묻고 싶다. 그들은 쿠테타와 1인 독재, 그리고 영구 집권을 도모하며 유신헌법을 기획하고, 무수한 민주인사들을 사형대의 이슬로 눈감게 했다. 또 무고한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하며,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에겐 총뿌리를 겨누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대로를 활보하며 자신이 조국을 가장 사랑하고 있다고 떠벌린다.

 

위화라는 작가는 공산당의 최고 수장이 통치했던 한 시절의 결말을 `유머'라는 한 단어로 끝맺는다. 모두가 미쳐 날뛰던 시절,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사람의 언어를 신의 언어로 포장해서 유통하고, 공개재판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던 시절을 그는 온 몸으로 살아냈다. 작가가 그 심각한 시절에 유머를 떠올린건 왜일까? 한마디로 역사와 인간에게 웃음거리가 되던 시절이란 말 아닌가? 지극히 자조섞인 작가의 표현이겠다. 그 괴상한 시절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는 중국인이 있다면 그가 정상이겠는가? 위화라는 작가가 지금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할지 그저 궁금할 뿐이다.

 

 

 

 

 

201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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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한 글쓰기
오도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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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책을 펴보는 일은 즐겁다. 지금도 여전히 새책을 사고, 펴보는 일이 즐거운 것은 아직 내게 지식에 대한 갈망과 열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니 다행이다. 가끔은 책만 읽고 싶은 때가 있다. 예전에는 마음에 들지 않은 책은 서평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스스로 한 약속 때문에 읽은 책에 대해선 반드시 서평을 쓴다. 가끔 아주 형편없는 책만 빼고, 1년 동안 손에 잡은 책 대부분 후기를 남긴다. 사실 읽는 일은 즐겁고 쉬운데 쓰는 일은 여전히 고달프고 어렵다.

 

서평이기 때문에 책에 대해서 쓰면 된다. 소재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책 한 권을 읽고 뭔가를 쓰려고 앉으면 머릿속은 백지 상태가 된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직장생활에 치여 한달에 고작 읽는 책이 3~4권 남짓, 쓰는 서평도 그 정도지만 언제나 글쓰기는 어렵다. 1년 책읽기 중 글쓰기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보는 이유다. 글쓰기 책 저자들은 글쓰기 강사부터, 기자, 시인, 소설가 등 다양하다. 그 다양한 직종만큼이나 그들은 글쓰기에 대해 할말이 많다.

 

놀라운 건 그들도 여전히 글쓰기가 어렵고 힘들다고 자백하는 점이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글 잘쓰는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작가들은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쓴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잘 쓸 수 있다. 평범한 우리는 그래서 조급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바쁜 직장 생활 가운데서도 책 한 권을 읽고, 반드시 서평을 남기는 습관을 들이고자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결국 글쓰기도 연습이다. 꾸준히 하면 잘 쓰게 된다. 책과는 인연이 없던 내가 지금은 서평가 시늉을 하며 사는 건, 그래도 십 수년 책과 가까이 지내며 책 후기라도 끄적였기 때문이다.

 

<속 시원한 글쓰기>의 저자 오도엽은 노동자 시인이다. 그도 어릴 적부터 문학이나 학문, 글쓰기 소리를 들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용접, 도장 노동자로 변신한다. 어느날 화장실에서 힘을 쓰다가 벽에 낙서를 시작으로, 시를 쓰기 시작해 훗날 전태일 문학상을 받는다. 이 책은 노동자가 시인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글쓰기 노하우를 담았다. 그 노하우란게 별게 아니다. 삶과 노동을 글로 쉽게 풀어내는 것이다. 어려운 말 하려하지 말고, 쉬운 말로 자신의 노동과 삶을 그려내면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줄기에 해당하는 글쓰기 노하우다.

 

저자는 글 잘 쓰는 비결로 자신이 행한대로, 생각한 그대로, 생긴 그대로, 곧 사실대로 쓰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노동을 글쓰기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 노동은 정직하고 건강하다. 건강한 삶에서 건강한 글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글을 쓴다고 하면 모두 소설가나 시인처럼 멋지게 쓰려고만 한다. 글쓰기가 삶을 옮겨 놓는 일임에도 말이다. 글에 삶이 담기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 우린 모두 노동자임에도 노동과 노동자라는 말에는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노동의 가치를 가르치지 않는 잘못된 교육탓이다. 노동은 삶의 터전이다. 노동을 소외하니 글의 소재가 빈약해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노동을 소재로, 노동자를 인터뷰하며, 노동을 시로 옮긴 시인다운 말씀이다.

 

"글을 쓰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글을 쓰지 않아도 건강하게 산다. 노동을 하며 사람과 어울리는 게 세상살이다. 그러면 일하다 억울한 일이 생겨 세상에 알리고 싶을 때가 있을 거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하소연할 곳이 없으면 답답해 일기를 쓴다. 사랑에 빠지면 글 한 번 쓰지 않던 이도 연애편지를 쓸 생각을 한다. 이처럼 글은 책상 위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바로 삶과 노동에서 나온다." 49쪽, <속시원한 글쓰기>, 오도엽

 

많은 글쓰기 책이 문장법과 기교를 가르치려 한다. 이 책은 그것을 몰라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이며, 그 소재를 풀어낼 수 있는 정직과 용기이다. 책을 꾸준히 읽으면 문장법과 기교는 터득이 된다. 문법적으로 잘못된 문장을 쓰는 일이 없다. 기교는 배워서 익힐 수 있다. 하지만, 문장법과 기교만으로 화장한 글은 읽을 맛이 없고, 재미도 없다. 좀 투박한 글이라도 소재가 신선하고 진실하면 읽을 맛이 난다. 가볍긴 하지만 진실을 담고 있는 글쓰기론이다.

 

요즘 많은 곳에서 글쓰기 공모전을 개최한다. 작년까지 연속 3년 모 국가기관에서 개최한 청렴글짓기 대회 일반부에 응모했다. 요즘 많은 회사가 청렴을 강조하다보니 국가 기관에서 개최하는 청렴글짓기 대회 수상은 곧 회사 청렴도 점수와 직결됐던 거다. 그러니 회사에선 많은 직원이 응모하길 바라는 눈치고 말이다. 3년 동안의 노력끝에 작년에 일반부 장려상을 받았다. 그 상을 수상하면서 상금과 특전 등 두둑한 보너스까지 챙겼다.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얻은 작은 결실이다.

 

이 책에는 소설가 김별아가 쓴 에세이 한 편이 인용 돼 있다. 제목이 `에세이 공모전 입선 비결'이다. 이 글에서 김별아는 공모전의 입상 비결을 몇 문장으로 요약한다. `용례는 자신의 눈길이 닿는 곳, 반경 50미터 안에서 찾으라' `잘 쓴 글보다는 좋은 글이 오랜 감동을 불러오니 경험에서 건져올린 진정성을 담으라' 내가 삼수끝에 장려상이라도 받을 수 있었던 걸 되짚어 보니, 공모전의 심사위원 출신인 김별아의 비결에 수긍이 간다. 예화를 가져올 때,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불러오고 일상에서 감동을 가져오려 노력했던 것 말이다.

 

모든 글쓰기 책에는 글쓰기에 관한 특별한 처방이 없다. 허나, 그러한 처방을 받는다 해도 자신의 글은 곧바로 나아질 순 없다. 글쓰기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해도 글이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세상에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유명해지는 작가들이 넘쳐날 게다. 이 책의 저자는 노동처럼 정직하고, 땀이 깃든 글을 쓰라고 가르친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글은 곧 개성이며 각기 다른 개인의 인생이다. 누구나 훌륭한 소설을 읽으면 그처럼 쓰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 높고 높은 목표를 정해두고, 글쓰기를 갈고 닦아야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게다. 하지만, 글쓰기에서 이상도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것 아닐까? 그래서 난 기본적인 문장법을 익힌 후엔 스스로 자신이 지향하는 글쓰기를 갈고 닦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갈고 닦는 길은 많다. 가장 쉬운 것이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기는 일이다. 지속적인 서평쓰기는 책을 요약하는 능력을 키우게 한다. 어떤 책을 읽고도 요약하지 못하면 내 지식으로 온전히 소화된게 아니다. 서평쓰기를 통해, 내 생각을 보태어 책을 평가할 수 있는 실력이 는다. 좋은 점을 칭찬하고 부족한 점을 비평한다. 영화를 본 후, 영화평을 남기는 것도 좋다. 서평쓰기가 문장을 읽고 글로 풀이하는 것이라면, 영화평은 영상을 보고 느낀점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 두가지만 꾸준히 해도, 글쓰기 연습이 가능하다. 생각해보니, 지난 5년 동안 내가 쓴 글이 주로 서평과 영화평이었다. 그것도 한달에 겨우 3~4 편을 썼다. 단, 한달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했을 뿐이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이제 서평과 영화평을 시작으로 칼럼 쓰기로 글쓰기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 물론 목표는 내년부터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서평과 영화평도 마찬가지로 처음 쓸 때 두렵고 어려웠다. 처음엔 모두가 형편없이 부족한 법이다. 그렇게 차분히 쓰다보면, 새로운 글쓰기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게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마음 가짐으로 읽고 쓰자. 글쓰기는 오랜 수양임이 분명하다.

 

 

 

 

 

201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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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양장본)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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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11년 10월 5일은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날이다. 그는 몇 해 수차례 병가를 내고 애플 CEO 자리를 비웠다. 하지만, 가끔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애플이 세계 최초로 내놓은 아이패드라는 태블릿 PC를 공개할 때, 그는 삐쩍 마른 모습으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사람들은 그 혁신적인 기기에 놀라고 스티브 잡스의 수척한 모습에 두번 놀랐다. 결국 그 이후, 스티브 잡스는 다시 무대에 나와 프리젠테이션을 하지 못했다. 간간히 그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전세계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또 은밀히 포착된 사진이 그의 소식을 대신해 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기업인들의 회동에서 그가 수척한 모습으로 샴페인 잔을 힘겹게 들어 올리는 모습이었다. 그 이후, 그의 부고소식이 어느 가을날 하루를 우울하게 장식했다.

 

한갓 기업 CEO의 죽음에 뭇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이례적일까? 그는 독특한 CEO 였다. 우리가 상상하는 CEO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몰며 많은 수행원을 대동하고 높은 연봉에 권위의식으로 포장된 그런 사람? 스티브 잡스가 그 모든 것에 예외는 아니었다. 그도 그만한 여유를 즐길줄 아는 CEO였다. 하지만, 프리젠테이션 무대에 등장하는 그는 우리가 봐 왔던 CEO의 행색이 아니었다. 허름한 청바지에 벨트조차 없이 검은색 터틀넥 상의를 입은 이 남자는 훗날 세계에서 가장 쉽고, 흥미롭게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모든 비지니스맨의 교본이 될 만 했다. 애플 제품들처럼 단순함과 명료함, 그리고 직관과 통찰력이 번득였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혁신의 상징이 된 잡스의 죽음은 한 CEO의 죽음이 아닌, IT업계에서 더이상의 혁신은 기대할 수 없을거라는 두려움을 불러왔다. 그러한 두려움과 아쉬움은 주식투자자들만이 아닌 애플 마니아들에게 가장 절박한 것이었다. 그가 죽고 1년이 흐른 지금, 그같은 예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아이폰 5는 여러곳에서 빈틈을 보였다. IOS를 개발하고 잡스와 오랜시간 손발을 맞췄던 수석부사장 스콧 포스톨이 최근 사임하기도 했다. 잡스 없는 애플이 그의 부재 1년 만에 흔들리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혁신의 아이콘으로 애플을 각인시켰던 것일까? 스티브 잡스의 삶과 인생, 그의 목소리와 여정이 모두 담겨 있는 한 권의 책이 있다. 바로 윌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평전이다.

 

<타임>의 편집장과 CNN의 CEO를 지낸 바 있는 이 책의 저자 윌터 아이작슨은 어느날 잡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자신의 전기를 써 달라는 것이다. 아이작슨은 당시 기괴한 습벽과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한 잡스에게 한가지 약속을 받는다. 평전 집필 과정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해서는 안되고, 사전에 보여달라고 해서도 안된다는 조건이었다. 그에 잡스는 `이건 당신의 책이니까요. 읽어보지도 않겠습니다' 고 약속한다. 이 책이 객관성이 담보된 평전으로 쓰을 수 있었던 계기다. 아이작슨은 잡스와 40여 차례 직접 면담을 했고, 그의 육성을 어느 전기보다 가장 많이 담아냈다. 아내를 비롯한 그의 지인들에 대한 무수한 인터뷰를 통해, 잡스의 내면과 외면 모두를 살폈다. 스티브 잡스는 죽을 때까지 이 책을 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출생과 삶, 업적과 분투, 그리고 혁신의 줄기찬 여정을 모두 담아낸 최초의 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완벽주의자였던 잡스가 자신의 평전에 보인 관용 덕분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대학생 신분이자 친부가 시리아인이라는 이유로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하자 그들 부부는 아이를 입양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한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바로 대학에 반드시 보낸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가난한 농부였던 양부모 폴과 클라라는 잡스의 양부모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잡스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입양아로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잡스에게 양부모는 그가 친부모에게 버림받은게 아니라 자신들로부터 `선택'받았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시절 이후, 잡스는 "버림받음, 선택받음, 그리고 특별함"이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고 자신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고 훗날 회고한다.

 

양아버지 폴 잡스는 자동차 수리 전문가로 생계를 잇는다. 그는 무척 꼼꼼한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진정한 전문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의 완성도까지 신경써야 한다고 늘 잡스에게 가르쳤다. 이같은 가르침은 잡스가 애플 제품을 설계할 때 그대로 차용되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컴퓨터의 내부 회로 설계도 줄의 반듯함 까지 신경썼던 것은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다. 젊은 시절 히피 문화에 빠져들었고, 자유롭게 방탕한 생활을 했으며 LSD라는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한다. 훗날 잡스는 LSD의 복용 경험을 인생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할 만큼 크게 여겼다. 또, 대학을 중퇴하고 인도로 떠나 불교와 선 수행을 했던 시절의 경험,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와 선 수행자들과 교분을 쌓으며 사과 과수원에서 일하게 된 일 모두, 일평생 애플이라는 회사에 자신의 DNA를 뼛속까지 이식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애플이 보여주던 혁신의 유전자는 결국 잡스의 인생 경험과 젊은 시절 쌓은 철학이 담고 있는 잡스 DNA의 일부였던 게다. 애플처럼 CEO의 철학이 회사의 비전으로 담겨, 제품에 끊임없는 혁신을 불러온 경우는 흔치 않다. 그는 일평생 애플이라는 회사를 이윤추구의 도구로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컴퓨터로 녹여내 사용자가 감탄할만한 제품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 그래서 잡스는 회사의 CEO를 돈벌이나 추구하는 기업가와 영속적인 기업을 추구하는 리더로 나누었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CEO들은 시장에 훌륭한 제품을 내놓고 일단 시장을 독점 지배하고 나면, 더이상 혁신을 멈추고 고만고만한 제품들을 생산하며 돈벌이에만 집중한다. 그 대표기업을 잡스는 평생의 라이벌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라고 일갈했다.

 

" 어떤 기업을 시작했다가 매각이나 기업공개를 통해 현금이나 챙기려고 애쓰면서 스스로를 `기업가'라고 부르는 이들을 나는 몹시 경멸한다. 그들은 사업에서 가장 힘든 일, 즉 진정한 기업을 세우는 데 필요한 일을 할 의향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일을 수행해야만 진정한 기여를 할 수 있고 이전 사람들이 남긴 유산에 또 다른 유산을 추가할 수 있는데 말이다. 한두 세대 후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표상하는 회사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윌트 디즈니, 휼렛과 패커드, 인텔을 구축한 사람들이 해낸 일이다. 그들은 단순히 돈을 버는 기업이 아니라 영속하는 기업을 구축했다. 애플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884쪽, 윌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1980년대 후반,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난관을 지나 1990년대 후반 애플 컴퓨터로 다시 복귀한 잡스는 그때부터 놀라운 혁신적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인다. 1980년대 최초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춘 매킨토시에 이어, 애플을 떠나 있는 동안 픽사를 통해 <토이 스토리>라는 걸출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크게 흥행시킨다. 애플에 다시 복귀 후에 그는 기적같은 IT 업계의 혁신 스토리를 써 나갔다. 매장의 디자인 하나까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뿜어내는 애플 스토어를 전세계에 보급했고, 아이팟을 통해 주머니속에 1천곡의 MP3를 넣고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아이튠스 스토어는 불법 다운로드에 익숙한 음악소비자들에게 합법적인 방법으로 음악을 구입하는 길을 열었고, 아이폰을 통해 웹 서핑에서 음악,사진촬영, 동영상,이메일 등 모든 기능을 통합해 스마트폰이란 혁신기기로 전자업계의 방향을 돌려세웠다. 앱 스토어는 무수한 벤처 콘텐츠 제작 산업을 일으키는데 공헌하고, 아이패드를 통해선 태블릿 컴퓨터의 문을 열어 디지털 신문, 잡지, 책, 동영상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제공하기에 이른다. 잡스가 죽기 10여 년의 기간동안 선보인 혁신 기법과 기기들은 인터넷과 컴퓨터의 오늘이자 미래였다.

 

이 평전속에는 그같은 혁신의 전 과정이 상세히 담겨 있다. 그는 놀라운 IT 세계의 혁신을 구축하며 애플 마니아들을 양산해 냈다. 하지만, 그 이면에 그가 가진 괴팍한 기질들이 무엇이었는지 이 책은 한 인간의 긍정적 면과 부정적 면 모두를 놀랍도록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 20대 시절 인도에 다녀온 이후 선과 불교 수행자로서 삶을 추구하던 때의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이 그의 나머지 삶을 지배했다. 그는 부자이면서도 졸부들의 삶의 행태를 비난했고 그와 정반대로 살고자 노력했다. 제품들 속에서 단순함의 극치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던 그는 생활 자체가 무척 검소했다. 일평생 채식주의자로 살았고 애플을 막 창립한 시절에는 맨발로 다니며 비지니스 상대를 난처하게 했다. 집안에 가구를 들여놓는 일 자체를 무척 꺼려해 집안이 텅 비었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거나 꾸미지 않았다. 그는 흑백논리를 통해 세상엔 천재 아니면 바보, 훌륭한 제품 아니면 쓰레기가 있다고 믿었다. 남에 대한 배려와 공손한 말투를 그에게서 기대할 순 없었다. 그가 꾸리는 팀은 언제나 최고여야 했고 평범한 아이디어와 사람들은 자신의 회사와 프로젝트를 망칠 거라고 여겨 그들을 해고하곤 했다. 이것은 그의 못된 성질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놀라운 혁신 제품들을 선보이기 위한, 그 나름의 경영기법으로도 해석된다. 경영학 교과서가 가르치는 기법이나 리더쉽 이론은 잡스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다. 아무때나 불같이 화를 내고 맘에 들지 않는 직원들은 과감하게 해고하던 그에게서, 오늘날 각광받는 리더쉽 이론이 먹힐리가 있겠는가. 그러고도 그는 죽기 직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CEO 자리에 올랐다. 잡스의 독창적인 경영철학이 그걸 가능케 했다.

 

"나는 내가 사람들을 함부로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가 형편없으면 그저 면전에 대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뿐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의 일이다. 나는 내 말의 논지를 놓치는 법이 없으며 대개는 내가 옳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것이 내가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 문화이다." 884쪽, 윌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는 도덕적이고 선량한 측면에서 존경할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기부와 자선에는 무척 인색했고, 노동환경에 대한 고민도 전무했다. 이 평전에 싸구려 감동이 부족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천재였고 놀라운 직관력과 통찰력을 통해 미래의 컴퓨터 산업을 내다보는 혜안을 갖고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일반적인 사업가의 이상과 비전을 품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더 많은 돈과 이윤을 목표로 한게 아니라, 더 놀라운 제품을 통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 창의적인 기기를 통해 인류를 하나로 묶어 내는 것, 그게 잡스의 이상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같은 천재들은 그에 합당한 금전적 대우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합리적 생각도 품고 있었다.

 

젊었을 때 히피같은 삶을 추구하며 마약류의 하나인 LSD를 복용하던 시절을 인생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경험이라 고백하는 것은 의외였다. 인도를 몇 달 간 여행하며 돌아와 선과 불교 수행에 전념했던 시절, 그 이후 죽을 때까지 육식은 입에 대보지도 않았던 결벽성, 암 진단을 받고도 1년 가까이 외과 수술을 거부하고 대체 요법을 통해 병을 다스리고자 했던 그의 고집, 어쩌면 이러한 기질을 통해 우린 잡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가진 천재성은 닮을 수 있는게 아니다. 그래서 이 평전을 통해 우린 기껏해야 한 위대한 혁신가의 기행적 삶을 되돌아보는게 고작이다.

하지만, 인상적인 그의 삶의 자세는 우리에게 어떤 힌트를 던진다. 그 가운데 하나는 잡스가 무척 시간을 소중히 여겼고, 위대한 일에 도전하라고 젊은이들을 독려했다는 사실이다. 직설적으로 그는 `우리가 이 지구에 머무는 시간은 한정 돼 있다'고 경고한다.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연설에서도 그는 한정된 시간과 젊은이들의 자세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면서 타인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도그마에 발목잡히지 말며, 타인의 의견이 내면의 목소리를 뒤덮게 나두지 말라고 조언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심장과 직관의 소리에 따르는 용기임을 명심하라고 말한다. 그 연설문은 이 단순한 문장으로 끝난다.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갈망하며 우직하게 나아간 것, 그게 잡스의 일생이었다.

 

"우리가 이 지구에 머무는 시간은 아주 잠깐입니다. 정말로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물론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젊음을 아직 잃지 않았을 때 많은 걸 이뤄 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258쪽, 윌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애플은 뼛속까지 잡스의 DNA가 이식된 회사였다. 그래서 오늘의 애플은 진짜 애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애플 마니아들이 잡스의 죽음을 애통해 한 이유다. 잡스 없는 애플이 가능할까? 모든 혁신이 그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이 평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애플이 살아남는 길은 역설적이게도 잡스를 잊고 새로운 방법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잡스는 경영학 교과서에 없는 리더쉽을 선보였고, 독창적인 리더쉽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새로운 리더쉽만이 애플의 혁신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 평전속에는 잡스의 파란만장한 삶과 IT 분야에서의 성공의 여정이 담겨 있다. 천재였지만 괴팍한 성미를 갖고 있었고, 어린 시절 가난한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대학을 중퇴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지상에서의 삶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했고 전념했던 창의적인 사람이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주목해야할 것은 창의성과 더불어 그가 삶을 대하고 전념하는 자세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기에 끝없는 진화가 필요한 법이다. 오늘보다 좀더 나은 제품, 좀더 나은 생활, 좀더 나은 삶을 그는 욕망했다. 스티브 잡스는 인류에게 끝없이 진화해야 할 동기를 상속했다.

 

 

 

201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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