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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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해하고 싶긴 하지만, 그리고 내 마음을 앗아간 남
자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한 적도 있지만, 나는 이제 깨닫는다.
내 영혼에 와 닿은 사람들은 내 육체를 일깨우지 못했고,
내 육체를 탐닉한 사람들은 내 영혼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p. 32 열일곱 마리아의 일기)

인간은, 갈증은 일주일을, 허기는 이주일을 참을 수 있고,
집 없이 몇 년을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외로움은 참아낼 수 없
다. 그것은 최악의 고문, 최악의 고통이다.(p. 119)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p. 122)

이 책에는 두개의 '11분' 이 나온다. 나는 영원을 약속하는 사랑을 믿지 않지만, 순간이 영원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코엘료는 매번 나에게 그것을 확인시켜준다. 세상은 의미있는 것이며, 그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끊임없이 내 귓가에 속삭인다. 중반 이후로는 어쩐지 책을 계속해서 읽어 나가는 것이 불편하다. 그러나 손에서 놓지 않고, 최근 들어 처음으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치운다.

전에 읽었던 몇권의 책에서 그는 '평범하지 않은 것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일상을 드러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구나 한번쯤 미쳐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고, 또 누구나 한번쯤 비정상적인 쾌락의 노예가 될 수 있다. 물론 그것을 겪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아니다.

믿을 것이 없는 하루, 모든것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또 소유하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사람의 욕망에는 끝이 없다는 것 또한 맞는 말이다. 어떤 것을 갖게 되면,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그러면 이것이 아니었나봐, 다른 것을 찾고, 또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한다. 사실 진짜가 아닌 것은 소유의 방식이다.

사랑은 자유로운 것, 소유하지 않는 것. 그러나 한번도 자유로운 방식으로 가져본 적이 없는 우리는 그것을 소유해야만 안심할 수 있다. 그리고 잃게 될거라는 불안감과 싸워야 한다. 영원을 믿는 사람은 순간의 변화를 견뎌내지 못한다. 모든 것은 늘 제자리에 있어야만 하고, 한번 손에서 떠난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되고 싶어한다. 가지지 못한 사람, 갖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은 모두 외롭다. 너무 외로운 사람에게는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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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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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말, 돈을 벌기 위하여, 몰락한 양반의 권세를 다른 나라에서라도 세워보려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신식 군대에 밀려 퇴출당해서,등등의 이유로 멕시코행 배에 올라탄 1032명의 이야기.

그 시절 해외로 나간 사람들이 그랬듯이 잘못된 계약서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라리 얼굴에 침을 뱉었다면 반발했을 지 모르지만 '마소에게나 휘두르는 채찍'을 그들에게 휘둘렀을 때 그것이 모욕이라는 걸 아는데도 시간이 걸렸으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낯선 땅의 낯선 작물을 재배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해가 지날수록 사라져갔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연애를 하였고, 누군가는 농장주의 개가 되었고, 누군가는 사람들을 모아 파업으로 작은 성과를 거두었고, 누군가는 종교가 바뀌었고, 누군가는 원주민과 살림을 차렸다.

그렇게 그들은 살다가, 그냥 그렇게 갔다.

역사소설이라기 보다는 그냥 '여러 사람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분량임에도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 작년 무슨 문학상인가 수상했으므로 또 꽤 여럿이 읽게 되겠지.

김영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가이며, 그런 이유로 별 설명을 붙이고 싶지 않다(객관적 평가가 어려울 것이므로). 다만, 그의 일련의 저작들을 쭉 보고 있노라면 가끔, 이것이 한 사람의 작품인가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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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만납시다 - 2001년 최신개정판
지그 지글러 지음, 성공가이드센터 옮김 / 산수야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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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서 내지는 자기개발서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 요즘 나오는 '실용서'들 수십권보다도 더 읽어볼만 하다.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구축하고 유지할 것, 타인이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도와줄 것, 점진적으로 성취해나갈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할 것, 올바른 자세를 가질 것, 등 건강과 부, 그리고 행복이라는 성공을 얻기 위해서 갖춰야 할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노력했는데도 졌다면 당신은 졌다는 사실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손실을 크게 감소시켜준다. 분명한 것은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배울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p. 48)

성취의 크기는 당신이 목표를 달성해 나갈 때 극복한 장애물들의 크기에 좌우된다. (p. 145)

당신이 얼마를 넘어지든 그 숫자에 관계없이 넘어졌을 때 그냥 한 번만 더 일어난다면 당신은 성공할 수 있다. ... 1라운드만 더 싸우면 챔피언이 된다. (p. 287)

무엇보다 지글러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타인이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도와준다면 당신도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다. 최근 내가 고민하고 있던 개인의 능력과 도덕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명쾌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도덕적인 결함이 있는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 보이더라도, 그 사람은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성공'에는 이르지 못한다. 마음속에 쓰레기를 계속해서 쌓아둔다면, 결국은 부정적인 것을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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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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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 이리사와 야스오

반짝반짝 빛나는 지갑을 꺼내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고기를 샀다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도 샀다 
반짝반짝 빛나는 물고기를 사서
반짝반짝 빛나는 냄비에 넣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가 손에 든 
반짝반짝 빛나는 냄비 속의 물고기 
반짝반짝 빛나는 거스름 동전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와 둘이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고기를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밤길을 돌아간다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밤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물을 흘리며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는 울었다

일본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일본이 얼마나 '가깝고도 먼 나라'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루키고 뭐고, 도무지 거기 스며들어 있는 문화와 그로 인한 문체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월하게 읽히곤 한다. 각 나라의 소설들은 당연하게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것은 작가 각자의 개성과는 별개로 찍혀 있는 낙인과도 같은 것. 익숙해지고나면 내 안에도 어느정도 잔류하는 그런 것들.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에쿠니 가오리는 간혹 너무 아픈 이야기를 한다. 겪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아픈 사랑을 해본 것이 확실하다고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나와는 너무 다른, 이해하기 힘든 사랑의 방식이지만 '이런 것도 사랑이구나' 혹은 '그래도 다 마찬가지로군' 하게 된다.

그렇지만 두 사람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곁에 있어주어서 안심이 되는 관계라면, 쇼코와 곤, 둘 다 무츠키를 필요로 하는 날에는 이 '평화'가 깨어질 지도 모른다. 분명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지만 한껏 기대치를 낮추고 뒤로 숨어버리는 쇼코는 어쩌면 무책임하고, 그만큼 나약한 사람이다.

은사자 세마리, 소설 자체로서는 편해 보이지만 그게 생활이라면, 글쎄.. (이런 불만이 생겼다고 해서 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소설은 '생활'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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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판 사나이 열림원 이삭줍기 3
아델베르트 샤미소 지음, 최문규 옮김 / 열림원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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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어쩌면 영혼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라니, 그것은 사물보다 더 존재감이 떨어진다. 경계의 대상이며, 추방되어야 할 지도 모른다. 한순간의 욕망으로 그림자를 팔아버린 이 사내는 차마 영혼까지 팔지는 못하고 험난한 여행의 길을 떠난다.

그가 여행을 떠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익숙한 모든 것들과 결별하고 떠난 후, 낯선 곳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여행길에 비유한 흔한 말들도 결코 흘려들을 말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존재하기 위하여 살고 있는 것이니까.

아프리카의 소설 '야자열매술꾼'에 이어 이 출판사에서 낸 시리즈를 두번째 읽어보았는데,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많아졌으면 한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책들이 있으며, 그 모두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지는 않다(물론 사람들마다 저마다 다른 '기준'이라는 것이 내게도 있다).

김영하의 소설 중에도 이 이야기에 대한 언급이 있다. 책 속에서 또다른 책을 발견하거나, 내가 이미 읽은 책을 다시 발견하는 일 또한 책을 읽는 묘미 중 하나라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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