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의는 저마다 다를 테지만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조르주 페렉의 1965년 작 사물들의 주인공들도 행복을 찾아 헤매었다. 이제 막 사회의 초년생으로 첫걸음을 뗀 이들은 좀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이것을 소유하기 위해 힘들이지 않는 삶을 행복이라 여겼나 보다. 물질적 소유가 행복이 되고, 그 과정이 힘들어진 젊은이들에게 행복은 순간의 쾌락일 뿐 지속적으로 누릴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행복해지기 위해선 고통이 수반되었다. 사물들은 29살의 페렉이 바라본 그 당시 젊은이들의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사회가 조장하고 부추긴 쓸쓸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위로하기 위해 기록한 것일까? 젊은이들의 고뇌를 철저히 숨겨놓은 글 사이에서 그 모습을 발견했다면 나의 치기일까? 어느덧 기성세대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환기하게 시켰다. 책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관대했던 만큼 지금 이들에게는 그만큼 관대하지 못한 내 모습을 발견한다. 지금이야 어설프지만, 고통과 좌절, 실패를 겪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페렉은 어설픈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을지 비약적인 상상을 해본다. 아마 먼 훗날 행복해지는 것을 멈추고 행복을 누리고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