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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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무거운 짐, 영혼이 짊어져야 할 거대하고 이상한 짐이다……. 당연히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선택이며, 그런 선택은 어려울 수 있다.

—어슐러 K 르 퀸, 『아투안의 무덤』


34년만의 후속작이다. 아니, 34년을 기다린 건 아니다. 전작 『시녀들』을 읽은지 얼마되지 않았다. 오브프레드라는 이름의 여자가 남긴 기록의 열린 결말, 어두운 차안으로 몸을 던지는 마지막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공의 이름에서 알 수 있는 암시로는 그녀의 탈주가 성공적이리라 예상됐다. OF Fred(프레드의 것)를 의미하는 ‘Offred’를 달리보면 'Off Red'이니까. 우리의 시녀는 그들을 상징하는 ‘붉은 색’에서 벗어날 운명이었다.


시녀의 운명에서 탈출한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뱃속의 아이는 무사했을까. 그녀의 큰 딸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시녀의 탈출을 도운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소설 이후의 이야기도 궁금했지만 전작에서 무엇보다 궁금했던 건 길리어드가 만들어질 당시의 이야기였다.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성들을 착취하는데 앞장선 ‘아주머니’들 특히 리디아 아주머니가 궁금했다.


『증언들』은 전작이 남긴 대부분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속편이다. 그렇다고 전작의 물음을 그대로 받아 답안만 작성하지는 않았다. 길리어드에서 일어나는 상상초월의 여성비하와 착취의 시스템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괴물같은 착취구조의 붕괴가 어떤 작은 틈새에서 시작했는지를 전한다. 이번에는 세 개의 목소리다. 길리어드 밖의 십 대 여성, 길리어드 체제 내의 이십 대 여성, 그리고 ‘아주머니’다. 놀랍게도 작가는 리디아 아주머니의 목소리로 길리어드의 성립과 쇠망을 증언하게 했다. 다른 여성들도 이전 작품과 관련된 의미있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시녀이야기』에서 행방이 밝혀지지 않은 인물들 중 두 명이라는 사실이 힌트라면 힌트. 하지만 이것도 추정일 뿐이다.


세 여성의 증언들은 전작에서처럼 오랜 시간 후에 역사적 사료의 형태로 발견된다. 먼 미래, 길리어드가 붕괴하고 그들의 역사를 연구하는 ‘길리어드 연구 심포지엄’이 열린다. 리디아 아주머니가 남긴 자료는 책 속에 숨겨진 자필 원고 형태로, 젊은 여성들의 경우는 녹취록의 형태다. 자료가 가짜일 가능성도 얼마간 존재한다. 특히 리디아 아주머니의 자료는 길리어드 제국 내에서 그녀가 취한 행보와 너무도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시녀’ 시스템의 고안자였다. 판사라는 직업의 덕에 법률에 능통했고 생존을 위해 자신을 감출 줄 알았다. 그녀는 명확하게 예정된 치욕의 삶을 피하기 위해 권력에의 봉사를 선택한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영악하게 권력이 원하는 바 이상으로 적응한다. 마음 속엔 복수의 미래를 그리면서.


이 일은 반드시 갚아 주겠어. 아무리 오래 걸려도, 그 사이에 아무리 많은 똥을 처먹어야 한 대도 상관없어. 어쨌든 반드시 복수하겠어. p.218


리디아 아주머니는 길리어드의 종교근본주의적 여성 억압 시스템을 창안했다. 성에 따른 이분법적 사회 체계를 세웠지만 한편으론 국가 최고 권력의 부패와 모순에 대한 기록을 남겨 앞날을 준비했다. 그리고 은밀하게 바깥 세계와의 연결을 도모했다.

과거 평화로워 보이던 조국이 소리 없이 무너져가던 시기 리디아 아주머니는 판사였다. 안정되고 존경받는 자리에서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었다. ‘삶에 치명적으로 매혹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그 시기 모든 사람들은 국가가 쇠망해가는 증거들을 무시했다. 어느 순간 조국이라는 하늘은 한 순간에 무너졌고 사람들은, 특히 여성들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자유로웠던 그 때 좀 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음을 자책한다. 자유란 거대한 짐이 따르는 선택이다.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그 진리가 좀처럼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 또한 이해한다. 길리어드와는 다른 세계가 열릴 시간에서 자신의 기록을 보며 놀라워할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절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자신이 만든 세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알았다. 그러한 세상이 한 번 존재했던 이상 인류의 앞날에는 같은 악몽이 반복되지 않으리라 믿었다. 정말 그럴까.


사라진 나의 국가에서, 상황은 수년째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그러다가 분노했다.

실행 가능한 요법의 부재. 원망할 사람을 찾는 탐색.

나는 그런데도 왜 평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을까?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너무 오래 들어왔기 때문이었으리라. 하늘 한 덩어리가 제 머리에 떨어질 때까지는 아무리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못 믿는 법이다. p.99

그러나 나는 당신을 미리 용서한다. 나 역시 한때는 당신과 같았다. 삶에 치명적으로 매혹되어 있었다. p.251

어떻게 그렇게 서툴게, 그렇게 잔인하게, 그렇게 어리석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당신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당신이라면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만 당신에겐 그런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다. p.578

길리어드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국경선 내의 사람들의 생각을 변하게 하기는 충분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 사물화, 대상화, 착취를 비롯해 계급에 따른 인간 가치 평가까지 국민들의 무의식 속에 잠재하게 했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어떤 일이 당연하지 않을 것일 때 그것을 알아채는 눈이 필요하다. 길리어드를 무너뜨린 힘은 이런 사소함에서 비롯됐다. 십대 소녀는 '누구나 동의'하는 일이 '어딘가 잘못'됐다고 생각함으로써 권력을 붕괴시킬 틈을 만들었다.


원래 그렇게 하는 법이라고 했어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아주머니들이 동의한 일이었어요. 그렇게 가르쳤어요.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p.147




『시녀 이야기』의 만족감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책이었다. 베일에 쌓였던 비밀들을 풀어내면서도 어느 스릴러 못지 않은 극적 긴장감이 있었다. 이야기로도 훌륭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포는 거듭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굳이 페미니즘의 관점으로만 읽을 책은 아니다. 권력의 생성과 성장, 부패의 문제,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의 관계에 관한 서사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감사의 글'에서 작가는 이 이야기들이 상상의 창조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 역사에 없었던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절대 생기지 않을 일'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볼 수 있는 일을 썼다. 이 책은 좀더 많이 읽혀질 필요가 있다.


이 텔레비전 시리즈는 원작을 집필하며 세운 원칙, 즉 인간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사건은 소설에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존중해 주었다. p.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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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작렬지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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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물결에 흙색 벽돌로 지은 이층집이 잠겨 간다. 물은 마치 폭풍우 이는 바다인 것 마냥 넘실거린다. 집 앞을 비추던 가로등의 목까지 차오른 파도 위로 안온한 일상을 영유하던 화기(花期)들을 떠다닌다. 집 앞에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다. 시야 밖으로 뻗어 올라간 계단의 꼭대기는 어디에 가 닿은 걸까. 파도는 저 계단 끝까지 덮치려는 걸까. 흰 포말을 손톱처럼 바짝 세운 붉은 파도는 자연의 일부일까 혹은 높은 곳을 향한 욕망의 은유일까. ‘전 세계가 인정하는’ 작가 옌롄커의 신작 장편소설 『작렬지』의 표지다.

 

 

옌롄커는 ‘중국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노벨상 후보로 매년 언급되는 작가다. 한 나라를 대표 하는 거장의 작품을 읽는 일은 그 나라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읽어본 중국 작가는 루쉰과 위화 정도인데 이들의 소설엔 언제나 공감하기 어려운 해학과 풍자가 있었다. 인물들의 태도나 감정들이 과잉되어 있다고 느껴졌고 몹시 다른 정서를 가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여겨졌다. 소설이라는 창을 통해 다가온 중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도 다르지 않았다.

 

옌롄커는 “문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성취한 ’가장 폭발력 있는 작가‘로 평가“된다고 했다. 이전 중국 소설에서 대중적 인기의 원인을 알아채지 못한 탓에 옌롄커의 작품을 통해 다른 중국을 만나보고 싶은 기대가 있었다.

 

책은 ‘편집자 서문’으로 시작한다. 소설 속 지리서 『작렬지』를 쓴 저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인물은 어떤 사정으로 책을 쓰게 됐는지를 밝힌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쓴 역사지리서를 꼭 읽어주기를 당부한다. 마치 소설이 아닌 것처럼 운을 뗀다. 책의 차례 또한 자례시의 ‘지리 연혁1', ’개혁 원년‘, ’인물편‘, ’정권1‘, ’전통 풍습‘ 등을 소개하는 것처럼 짜여있다. “땅이 갈라지고 터져 달아났다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산기슭 작은 마을 자례(炸裂)촌이 더 큰 행정단위인 ’진‘, ’성‘, ’시‘를 거쳐 초대형 도시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은 듯이 보인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독자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발전하는 마을이나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둘리는 인간들과 그에 감응하는 자연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는 자례시의 지방지를 써달라고 작가에게 요청한 시장 쿵밍량의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쿵밍량의 아버지 쿵둥더가 마을의 세력가 주씨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다. 쿵둥더는 어느 날 꿈을 꾸다 한밤중에 일어나 아들들을 밖으로 내보낸다. 평생의 운명을 좌우할 물건을 찾아오라는 주문과 함께였다. 네 아들은 각자 자신이 주운 물건이 이끄는 삶을 시작한다.

“모두 나가거라. 지금 당장 나가서 각가 동서남북으로 걸어가. 돌아보지 말고 계속 가다가 무엇을 만나거든 허리를 굽혀 주워라. 그 물건이 평생 너희의 운명을 좌우할 게다.” p.28

 

환타지 소설인가.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일까. 중국 작가들에게서 느껴졌던 과장과 허풍의 최대치를 보게 되는 것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소설은 계속된다. 둘째 쿵밍량은 물건을 ‘훔치’는 행위를 짐을 ‘내리’는 일로 만들어 부를 일군다. 순식간에 이룬 부를 기반으로 촌장이 되고 그의 성공가도가 시작된다. 거짓과 부패로 둘러싸였지만 계속 달리는 한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고속도로다.

촌장인 쿵밍량이 누구든 ‘훔치다’라는 말을 절대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했다. 사람들은 모두 ‘훔치다’라는 말 대신 ‘내리다’라는 말을 사용하게 했다. …… 모두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게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월말에 쿵밍량이 돈을 나눠 줄 때 ‘훔치다’나 ‘도둑질’ ‘털다’같은 말을 한 사람의 월급에서 정말로 100위안, 200위안씩 공제하자 그런 어휘들은 자취를 감췄다. 매일 기차에 도둑질하러 간다고 믿는 사람도 더 이상 없었다. p.53

 

사실은 거짓에 가려지고 진실은 돈 앞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지도 잊는다. ‘이상한 일’은 이제 ‘익숙한 일’이 되어 간다.

진짜 비둘기도 가짜 같았다. 가짜도 진짜 같았다. 하지만 그런 진짜와 가짜들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기이하다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p.489

 

이상한 일이 익숙해지는 일에는 자연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과나무에는 배꽃이 피고 배나무에는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고 귤과 오렌지가 열린 감나무가 숲 속에 자랐다. 백열들은 검은 빛을 내뿜고 파란 전구에서는 자홍빛이, 회색 등은 하얀빛을, 빨간 등은 파란빛을 냈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마음의 변화에 따라 마을의 자연과 사물이 천변만화했다.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자 밍후이 앞에 있던 무당 벌레가 잠자리로 변해 날아갔다. 비가 내릴 것 같았다. p.335

 

소설은 중국 현대사의 격변을 배경으로 한다.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에 담긴 속내를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작가는 한 마을의 흥망성쇠 과정에 삶이 겹쳐진 사람들이 어떻게 운명을 만들고 또 알아채지 못한 채 그 운명에 허무하게 스러지는지를 이야기한다.

 

『작렬지』와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 작가는 ‘이해하기 힘든 역사’가 ‘새로운 글쓰기’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일견 황당해 보이는 현실과 무질서한 혼란 속에도 인과관계가 존재하며 이것이 문학이라는 형식을 거쳐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 작가들이 현실을 과장하거나 허구로 묘사하는 게 아니었다. 중국인들에게 닥친 현실 자체가 정말로 현실을 떠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현실은 새로운 글쓰기를 강요하고 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역사의 실재가 이른바 신실주의라는 문학의 탄생을 촉발하고 있다. 신실주의는 독특한 문학 기법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고 가려진 진실을 들추며 ‘존재하지 않은’ 진실을 그려낸다. p.656

중국의 현실과 역사, 현실 속의 모든 황당함과 무질서, 혼란, 몰이해, 마음과 영혼의 고통, 갈등은 모두 내적 진실 속 인과에 숨겨져 있다. 글쓰기가 이러한 내적 인과—현실과 삶을 폭발시키는 핵—를 포착할 때 신실주의의 ‘신’은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아도 문학에서는 보이고 존재하는 진실이 된다. p.660

…… 신실주의는 중국의 현실 속에서 숨어 있는 내적 인과를 찾고 핵분열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핵을 포착하여 분열 과정 중의 황당함과 혼란, 무질서, 거짓, 비논리를 설명한다. 『작렬지』에서 드러내려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촉발하는 핵이었다.…… 『작렬지』는 어둠 속에서 ‘가장 중국적’ 원인을 찾으려 했다. p.662

 

‘작가의 말’에서 중국의 역사와 현재를 이해하고자하는 작가의 치열함이 느껴졌다. ‘신실주의’라는 방식으로 작가가 보여주는 중국의 ‘보이지 않는 진실’을 제대로 알아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 주변에도 분명히 있는 일견 황당해 보이는 일들, 그런 일들을 바로잡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의문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진실’을 그리진 못할지라도 ‘가려진 진실’에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지.

옌롄커가 써 내려간 이 역사지리서는 화산 폭발로 인해 생겨난 ‘자례’라는 작은 마을이 도시로 급성장하고, 다시 폐허가 되기까지의 빛과 어둠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작렬지』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역사리지서 편찬이라는 소설적 상상력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견고한 허구의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고, 가려진 진실을 들추며, 존재하지 않는 진실을 그려낸다"

—출판사 책 소개 중(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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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지구 벙커X - 강영숙 장편소설
강영숙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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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전 세계에서 확산되고 있어 일상생활의 흐름이 멈추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코로나19 정보를 먼저 확인한다. 권고에 의해서든 스스로 그러하든 고립을 경험하고 있다. 재난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강영숙 장편소설 『부림지구 벙커X』가 궁금해진 이유이다. 재난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붕괴되고 고립될 때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은 어떨까 글자로 읽어보고 싶었다.


책에서 일어난 재난은 지진이다. 지진이 난지 1년도 더 지난 후 벙커X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구조대원도 의료인도 경찰이나 공무원도 아닌 일반인이다. 일반인 중에서도 중산층이나 지식인이 아닌 도시 빈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수진의 집 가정부로 일하면서 밤에는 과자를 먹으며 텔레비전 드라마나 보다가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드는 게 좋았다. 그렇게 살다가 죽고 싶었다. (p.39)

가진 것이 없어 재난이 와도 잃을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누리는 따뜻한 기쁨이기에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일상의 행복이 더 커 보인다.


지진이라는 재난을 다루고 있지만 『부림지구 벙커X』는 재해 상황에서 인명을 구하는 영웅 이야기나 삶을 재건하기 위해 애쓰며 희망을 찾는 이야기는 아니다. 제철단지와 부림타운으로 이루어진 부림지구가 생성되어 전성기를 지나 쇠퇴하여 폐쇄되고 지진으로 봉쇄되기까지 부림지구에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재해로 인해 타인에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상황은 느슨한 허구이고,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실제의 재해와는 다른 하나의 은유에 불과하다. (p.296)

작가의 말에서 강영숙 작가가 『부림지구 벙커X』에 대해 말한 것처럼 소설 속 지진이라는 소재의 역할은 재난이 가지는 위급한 이미지에 비해 느슨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지진이라는 재난을 당한 인간이라는 점보다 인간은 자신이 내면화한 가치관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라는 점을 더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부림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누구든 몸 안에 칩을 넣어야 했다. 범죄자와 불법체류자들을 감시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이재민들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몸에 칩을 넣고 정부의 관리 대상이 된 사람들은 부림지구를 벗어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으면 부림지구에 고립되었다. (p.15)


부림지구는 지진 이후 피난 지시 구역이 되었다. 정부는 이재민들의 몸에 생체 인식 칩을 넣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킨다. 벙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정부의 소거명령을 피해 벙커에 숨어산다. 부림지구 벙커X에 사는 사람들의 문제는 이제 지진이 아니라 생체 인식 칩이다. 벙커에 사는 사람들은 지진 이후 1년 넘게 식량과 생필품을 정부 구호물품과 부림타운에서 훔쳐온 것에 의지하고 있다. 정부는 부림지구에 대한 재난 지원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벙커X에 남은 사람들은 지진이 다시 일어날 위험을 감수하고 존엄은 커녕 생명을 지킬 최소한의 식량과 생필품도 마련하지 못하는 벙커생활을 계속 하려는 것일까? 생체 인식 칩을 넣고 정부의 관리 대상이 되어 다른 지역에서 도시 빈민으로 또 다시 살아가야할까? 인간은 존엄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존엄과 정체성은 생존보다 우선되는 가치일까?


『부림지구 벙커X』의 인물들이 서로 다른 선택을 했듯이 독자들도 각자 다른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물들이 서로의 선택을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 했듯이 독자도 그럴 것이다. 하나의 정답을 찾을 수는 없는 질문이기에 자신의 선택에도 타인의 선택에도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부림지구 벙커X』가 가야할 길이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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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알아야 할 음식 이야기
갈리아 타피에로 지음, 마르조리 베알 그림, 밀루 옮김 / 개암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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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32회 무앙 사르투 북 페스티벌

'지구를 위한 도서' 아동 부문 수상!


인류학 박사가 쓰고 법학 전공자가 그린 음식 이야기 책이다. 글을 쓴 갈리아 타피에로는 '사전, 백과사전,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자아내는 물건들, 그리고 꿈꾸게 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다.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아동책을 쓴다고 한다. 인류학을 연구했던 작가라서인지 책의 구성이 마치 음식문화사를 읽는 듯하다. 그림을 그린 마르조리 베알은 법학을 전공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 쌍둥이를 키우고 있어서일까. 그림의 색감이 아이들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알록달록한 식재료 그림이 눈길을 잡아 끈다. 유아용 그림책으로 보일만큼 예쁘다. 책 속 내용은 아기자기한 그림만큼 간단치 않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주제 문장 아래로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알아야 할 내용들이 꼼꼼히 정리돼 있다. '숨 쉬거나 자는 것처럼 먹는 건 필수!'라는 주제로 음식의 중요성을 먼저 설명한 후 '구석기 시대, 먹는 건 곧 생존!'부터 '함께, 즐겁게, 오래 먹기 위하여!'까지 모두 21개의 주제로 음식 이야기를 펼쳐 간다.




'구석기 시대, 먹는 건 곧 생존!', '불을 이용하여 음식을 익혀 먹다', '농경과 정착 생활이 가져온 변화들'을 서술하는 페이지는 먹는 일의 역사를 시간 순으로 보여준다. 구석기 수렵 채집 생활에서 신석기 농경 생활의 먹거리 문화의 차이를 설명한다. '생활의 지혜, 발효', '음식은 어떻게 보관했을까?'에서는 오랫동안 음식을 저장하기 위한 방법들이 발전한 과정을 보여준다. 한 페이지에 안에 몇 줄의 문장으로 서술된 요약이지만 각 주제를 훑어보기엔 부족함이 없다.


음식을 먹는 이유에 대해 '건강해지기 위해 먹다'를 주제로 한 페이지에서 알아보고 음식에 대한 과학적 분석의 역사도 알아본다. 음식은 부의 상징이기도 했고 국경을 넘나들며 나라 간 무역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달콤한 음식은 예나 지금이나 인기'이데 시원한 샤베트가 8세기 바그다드에서 기원한다는 재미있는 사실도 발겼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세계의 연간 1인당 설탕 소비량이 35킬로그램에 이른다는 놀라운 사실도.


종교나 지역에 따라서도 음식 문화는 달라진다. 식사를 하는 시간도 제각각인데 기후와 해가 떠 있는 시간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한다. 식사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나라는 프랑스, 가장 짧은 시간을 쓰는 나라는 멕시코다. 우리나라의 식사시간은 짧은 편일까. 긴 편일까.


육류 소비 증가로 환경이 파괴되는 일, 지나친 식사로 인한 비만은 현재 대두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 주제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고기는 채소보다 생산에 소비되는 물의 양이 몇 배나 많고 식량부족보다 과열량이 인간의 죽음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


반면, 몸에 해로울 정도로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가 심각해지는 경우도 있답니다. 2016년부터는 과체중이나 비만으로 죽는 사람이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보다 더 많아졌어요. 실제로 성인 2명 중 1명은 과체중이거나 비만이지요. 그리고 이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답니다.


1킬로그램의 소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15,0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답니다. 반면에 감자 1킬로그램을 재배하는 데에는 600리터의 물만으로 충분하지요. 그런데도 절반 이상의 토지가 가축을 사육하는 데 사용되고 있어요.


책 내용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환경에 해롭지 않은 먹거리, 곤충'이라는 주제였다. 곤충이 미래의 음식으로 고려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벌써 '해롭지 않은 먹거리'로 제시된다니. 포크에 꽂힌 하얀 애벌레를 아직은 맛있는 음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말이다. 미래를 위해서 곤충을 먹거리로 인식하는 일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인식의 전환에 상당 기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함께, 즐겁게, 오래 먹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건강한 먹거리를 먼저 찾는 일,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일 등이다. 『어린이가 알아야 할 음식이야기』는 우리가 먹는 일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거의 모든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얇은 책 한 권으로 먹거리에 대한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먹는 일에 대해 호기심가는 주제를 선별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더 넓고 깊은 읽기를 이어가는 일은 각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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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내
A.S.A. 해리슨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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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실한 건축가 남편과 조용한 심리상담가 아내가 나무랄데 없는 저택에 산다. 아이 없이 개 한 마리를 키우고 각자의 일에서도 성취를 거둔 부부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위해선 이렇게 남부러울 것 없는 부부가 비밀스러운 문제를 안고 있게 마련이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부부 자신도 모르는 듯 감춘,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 예를 들면 남편을 죽이고 싶어 하는 아내 같은 문제 말이다.

 

A.S.A. 해리슨의 소설 『조용한 아내』에는 탁 트인 호수와 하늘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저택에 사는 조디와 토드 부부가 등장한다. 토드는 자수성가한 건축가로 활동하고 조디는 개인심리상담가로 일한다. 외모조차 아름다운 조디는 자신의 이룬 가정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울타리가 영원히 유지되길 바라며 집안 내외를 가꾸고 남편 내조에 헌신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법적 부부가 아니다. 함께 살 뿐 결혼식을 올리지도 혼인신고를 하지도 않았다. 왜?

 

인생에 주어진 안정과 안전에 감사하며 그녀는 매일의 자유를, 요구와 복잡한 문제가 없는 삶을 소중히 여긴다. 결혼과 아이를 포기하면서 그녀는 여유로운 공간을 보장하는 깨끗한 백지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p.26

 

조디는 남편 토드가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안다. 하룻밤 상대부터 지속적인 관계까지 대상이 많은 것도 안다. 심지어 토드도 그녀가 안다는 사실을 안다. 둘에겐 가식의 삶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유지하기위해서 표면적인 평온을 유지하고자 한다. 조디는 ‘주변 사람들의 개별적 욕구와 특이성을 함께 수용하는 태도’로 계속 타협하는 과정이 ‘잘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한 가지 조건만 유지된다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욕구나 기대를 충족시켜주려 여기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 항상 우리를 친절히 대하라는 법도 없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분노와 분개의 감정만이 남는다. 마음의 평화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긍정적인 면을 강조할 때 온다. p.35

 

조디는 토드의 여자관계가 지나가는 바람으로 끝날 것임을 확신하고 토드 역시 불안한 관계들을 지속할 마음이 없다. 그저 남성성을 과시하며 즐기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남성의 당연한 본성이라고 여기며. 결혼관계가 유지되고 안정된 생활만 보장된다면 남편의 바람쯤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믿음은 위대롭기만 하다.

 

 

“남자들 모두 언젠가는 바람을 피워요.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내 아버지는 술과 바람을 피운 거죠.”

“난 알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에게야 어떻게 보이든, 결혼으로 맺은 유대 관계는 파괴될 수 없는 법이거든요.” p.78-79

 

파국은 두 사람에게 먹이를 향해 질주하는 갈매기처럼 다가온다. 작가는 종종 주변의 묘사를 통해 상황의 진행을 암시한다. 모든 단서를 무시하고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조디와 여느 여자들처럼 적당히 헤어질 거라고 여겼던 토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막다른 길에 갇힌다.

 

 

갈매기들은 망설이지도 어물쩍거리지도 않고, 수면 아래 자기들이 원하는 게 있다는 걸 알아챈 순간 전속력으로 곤두박질치며 무모하게 공격한다. 그들의 시끌벅적한 소리, 인간으로 치면 큭큭거리고 고소해하는 소리에도 먹이는 도망가지 못한다. 무엇이 덮치는지 알기도 전에 통째로 삼켜진다. p.135

 

스릴러라는 장르에 아들러 심리학을 결합한 소설이라고 했다. 한때 대단히 유행했던 아들러 심리학이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던바 아는 게 없다. 어떤 부분이 아들러 심리학을 차용한 것인지 알고 싶었다. 검색해보니 아들러 심리학의 주요 개념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개념들이 소설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는 한 가지 팁이 될 것이다. 코앞에 닥친 상황에 대해 인물들이 각각 어떻게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지, 인물들의 관계는 어떤 결과로 나아가는지에 주의해볼 수 있다. 또 조디와 토드의 행동의 원인이 되는 열등감의 유래와 가족 구도, 출생순위의 영향 등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아들러 심리학을 기반으로 상담하는 조디가 내담자에 대해 하는 분석과 자신 스스로를 분석대상으로 삼는 부분도 비교해서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개인심리학의 특징은 행동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목적을 분석하고(목적론), 인간을 분할할 수 없는 전체로서 파악하여 이성과 감성, 의식과 무의식 등의 대립을 인정하지 않고(총체론), 객관적 사실보다 객관적 사실에 대한 주관적 의미부여 과정을 중요하게 보고(현상학적 관점), 내적 정신세계보다 대인관계를 분석하고(대인관계론), 주체적 결단능력을 중요시한다(실존주의)는 것이다. 주요 개념으로는 열등감과 보상, 우월추구, 생활양식, 허구적 목적, 공동체감과 사회적 관심, 가족구도와 출생순위, 삶의 과제 등이 있고, 변화를 위한 핵심 요인으로 격려를 강조한다.

 

『상담학 사전』 2016. 01. 15., 김춘경, 이수연, 이윤주, 정종진, 최웅용, [네이버 지식백과]

 

 

조디에겐 아내에게 충실하지 못하고 바람피우기를 일삼는 아버지가 있었고, 토드에게는 가족을 구타하는 알콜중독자 아버지가 있었다. 조디의 어머니는 남편의 외도를 못 본 척 평생을 살았다. 토드의 어머니는 아들이 장성한 후 자신을 보호해 줄 때까지 폭력을 견뎠다. 조디는 삼남매 중 둘째로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서 자랐다. 둘째라는 위치의 특성과 함께 터울이 많이 지는 오빠와의 관계, 또 동생에 대한 역할 등이 그녀의 마음을 형성하는데 심리적 영향을 미쳤다.

 

조디는 어머니의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처럼 결혼과 아이에 묶여 자신의 삶을 잃고 싶지 않았다. 법적 혼인과 아이를 거부한 이유다. 하지만 그녀가 피하고 싶어 했던 어머니의 삶은 스스로 회피했던 조건들로 인해 자신에게 그대로 반복된다.

 

제러드: 어떤 면에서는 부모님이 저지른 실수의 대가를 당신이 치르는 셈일 텐데요.

조디: 저는 제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싶어요. 행복해지고 싶어요.

제러드: 행복한 우리가 미리 처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조디: 제 처지가 어머니처럼 되고 만다면, 탓할 사람은 저 자신밖에 없겠죠. p.164

 

조디는 정말로 토드가 죽기를 바란 걸까. 토드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를 잃으면 자신이 무엇을 잃게 되는지 알고 있었던 걸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내 입장은 부정적이다. 조디는 상황에 휩쓸렸을 뿐이다. 냉철해보이지만 실은 순박했던 그녀는 혼란 속에서 자기가 하는 결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우발적인 의도에 따른 결과에 의하면 토드는 조디의 평화로운 삶에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눈이라는 렌즈를 통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어떤 사건을 전혀 겪지 않았던 듯이 살아가는 능력’을 발견했다. 조디의 ‘능력’은 이번에도 발휘될 것이고 자신이 잃을 뻔한 것이 무엇인지를 ‘날카롭게’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자유’를 누릴 것이다.

 

숨차게 달려온 모든 서사에도 불구하고 조디의 자기 인식, 세계관, 믿음의 변화와 그에 따른 주변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변화가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아들러식 결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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