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 - 당신을 위한 글쓰기 레시피
김민영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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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저자의 책은 음성 지원을 음성지원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술술 풀리듯 읽히는 입말체가 귀에 들리는 듯 하다. 저자의 강연 또는 유튜브 영상을 본 적 있는 독자라면 문장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똑떨어지는 말 매무새처럼 책 속 문장이 깔끔하다. 글쓰기와 토론에 이어 말하기까지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당연하지 않나 싶을 수도 있지만 이론과 실제를 겸비하기란 (많은 이가 알고 있듯) 쉽지 않다.


배우는 사람으로서 저자를 만났을 때 인상적이었던 점은 초보에게 공감하는 태도였다. 글쓰기든 말하기든 토론이든 처음 해보려는 사람의 마음은 대다수 움츠려들어 있다. 궁금하고 잘 하고 싶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내 글이나 말 또는 생각을 내보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저자는 그런 '처음'의 순간에 쫄아있는 사람의 마음을 배려한다. 배우러 왔으니 당연히 자신의 것을 내놓을 거라는 가정을 최대한 미룬채 주저하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보듬을 줄 안다. 강의현장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이 한 마디의 말을 하고 한 줄의 글을 써보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안내를 따라 조금씩 전진해보자,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뭔가를 썼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등의 말로 초심자들이 시작하려는 마음을 북돋는다. 강의에서 느꼈던 장점은 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책은 "머릿속 빨간 펜은 잊어라", "탄탄한 글쓰기를 위한 얼개를 세워라", "읽는 이의 마음을 잡아라"는 소제목을 단 3부로 구성돼 있다. 글감찾기에서 퇴고, 공개로 이어지는 글쓰기의 과정을 13단계로 구성해 각 부에 나눠 넣었다. 글쓰기 책의 구성으로 특별할 것없지만 쓰기의 어려움을 전제한 친절한 서술 덕에 '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읽는' 재미가 있다. 여러 직업을 거친 저자의 경력 덕에 사례가 풍부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공지영 작가를 인터뷰 했던 경험은 '글감 찾기'의 예시로 등장하고 글쓰기 강의에서 만난 수강생과의 대화는 '글쓰기의 '발동'걸기'의 어려움의 소재로 쓰인다. 생생한 사례를 보면서 나의 글쓰기에 앞서 다른 이의 글쓰기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쓰기를 다루는 이 책에서 가장 이례적인 대목은 "말하면서 글쓰기" 부분이다. 글감을 찾고 용기를 낼 것이며 과욕을 부리거나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개요부터 짠 후 첫 단락을 쓰기 시작했다면 이제 글을 흐름을 살펴 자연스러운 연결을 만들어야 한다. 저자는 이 단계에서 '말하면서 글쓰기'를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한다. "자연스럽게 연결"된 글은 "술술 읽"히므로 거꾸로 말로 잘풀리는 글의 연결이 매끄럽다는 논리다. 이 방법에는 한계와 주의 사항이 있다.


마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게 조건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조용한 도서관에서 쓸 수 있는 방법은 못 됩니다. 자칫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거나 왕따가 될 수도 있으니, 조용한 공간에 숨어서 하는 게 좋아요.

p.99


그러나 이 방법을 사용하면 "글감을 찾을 수도" 있고 "보다 빠른 시간에 글을 쓸 수" 있다고 하니 한번 쯤 시도해볼 만하다. "특히 잡생각이 많아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권한다는 대목이 솔깃하다. (저자가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글쓰기에 필요한 읽기를 설명한 대목에서도 흠칫했다. "문학 편독, 간결한 글쓰기의 장애물"이라는 부분이다.


소설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 쓰게 될까요?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 

그러나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죠. 바로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특히 다른 분야의 책은 보지 않고 소설과 에세이만 읽는 사람들의 글은 객관성이나 설득력, 논리가 부족합니다. 넘치는 감수성으로 글을 쓰다 보니 장황해지거나, 마무리가 잘 안되기도 하죠.

p.132


이 말에 따르면 인문 고전과 소설 언저리를 맴도는 독서가 '치명적인 한계'를 가진 글을 생산한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생각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법을 배"울 일이다. 저자 말마따나 독서습관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편독은 글쓰기의 적입니다. 읽을 땐 재미있을지 몰라도, 소비형 독서에 그치기 쉽지요. 책을 많이 읽은 편인데도 배경지식이 부족하거나 잘 읽히는 글을 쓰지 못한다면, 독서 습관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pp.132-133


저자가 블로그에 『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의 개정판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알렸다. 절판된 책을 출간 십여년 후 다시 낸다는 건 여전히 그 책에서 기대해볼 만한 바가 뜻이다. 뒤늦게 읽고 배운 점이 많은 독자는 개정판에서 초판 이후 저자가 쌓은 글쓰기 지도 공력을 기대하게 된다. 그나저나 개정판 '읽기'에 앞서 '쓰기'에 좀 더 공을 들이는 게 저자에 대한 예의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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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파티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홍한별 옮김 / 강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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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모임을 위해 준비한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집이다. 모임 주제 작품인 단편 「가든 파티」 하나만 읽고나서 망설였다. 책상에 들어오는 빛을 가리도록 숙제 책들을 쌓아두고 있었다. 명절을 앞두고 마음은 조급해졌다. 시간은 없고 몸은 굼뜬데 단편집의 나머지 열두 개의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책이 손 안에 있을 때 읽지 않으면 언제 다시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작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토머스 포스터 교수가 문학 강의 책에서 굳이 단편 전문을 실어 분석한 걸 보면 영문학사에 특별한 위치를 점한 작가일텐데, 놓쳐버리긴 아까웠다. 번역자 홍한별도 호기심에 한 몫을 더했다.


맨스필드의 작품은 대부분 단편으로 단펴소설이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맨스필드는 체호프의 영향을 받아 플롯이나 캐릭터에 대한 탐구보다는 깨달음의 순간, 균형이 깨어지는 파열의 순간 등을 포착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p.354


맨스필드가 포착한 "깨달음의 순간"과 "균형이 깨어지는 파열의 순간"을 확인하고 싶었다. 특히나 맨스필드는 비평가들에게 "체호프와 비교해 폄하되"었다고 한다. "체호프가 넓은 시각을 가진 객관적인 관찰자인 반면 맨스필드는 개인적이고 사적이며 시야가 좁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당대의 부정적인 논평은 지금에 이르러 주목해야할 대목이 되었다. 거시적, 객관적 시선보다는 "개인적이고 사적이며" 좁아진 시야가 오늘의 소설에 맞춤하기 때문이다. 맨스필드의 깨달음과 파열의 순간들을 모아보고 싶었다.


단편 「딜 피클」에서 여자는 헤어진 옛 남자를 우연히 조우한다.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서로의 기억이 다름을 확인하던 여자는 과거의 선택에 의심을 품고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잠시후 과거와 변함없이 남자의 고지식하고 이기적인 면모를 발견한다.


세상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행복을 발로 차버렸다니. 이 사람은 그녀를 이해했던 단 한 사람인데. 너무 늦은 걸까?너무 늦어버린 걸까.

(…)

그가 고지식해 보이는 투박한 태도로 큰 소리를 냈다. 끔찍하게도 예전에 그랬던 것과 똑같이……

(…)

그녀는 가버렸다. 그는 깜짝 놀라 그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충격이었다.


여자는 남자가 과거의 모습에 회한을 느끼고 여자의 진정한 모습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착각할 뻔했다. 남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자는 과거의 선택을 반복한다. 의심없이. 여자가 나간 뒤 남자의 행동을 보면 그녀의 선택에 더 공감하게 된다.


「대령의 딸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두 딸이 겪는 마음의 출렁임을 따라간다. 폭압적인 아버지 아래 가사를 돌보며 독신으로 지낸 조세핀과 콘스탠셔는 권위의 공백에도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다. 쉽게 웃지 못하고 아버지의 임종을 도운 간호사와 집안일을 돕는 가사도우미 케이트의 눈치를 본다. 죽은 아버지의 그늘을 벗기 위해 자매는 용기를 내 케이트를 해고하자고 상의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둘의 생각은 흩어지고 만다. 케이트와 콘스탠셔는 원하던 것을 잊어버린 과거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번에는 평상시와는 달리 멍한 상태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어떤 갈망 같은 것이 솟았다. (…) 바닷가에 갈 때마다 혼자 최대한 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쉴새없이 움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자기가 지어낸 곡조를 흥얼거리곤 했던 것도 기억났다. 그것과 다른 여기의 삶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동굴 속에서 일어난 일 같았다. 실제가 아니었다. 동굴에서 나와 달빛 속에 있을 때나 바닷가나 폭풍 속에 있을 때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럴까? 그녀가 늘 원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디로 가는 걸까? 지금은? 지금은?

(…)

무언가를 조세핀에게 말하고 싶었다. 뭔가 아주 아주 중요한 것, 무언가ㅡ 무언가 미래와 또……

(…)

침묵. 잠시 뒤 콘스탠셔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말할 수가 없어. 잊어버렸거든……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지."

pp.66-67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갈망은 말이 되지 못하고 잊혀진다. 미래도 더불어. 자매의 망각은 우발적인 걸까 의도적인 걸까. 서로에게 말을 미루더 끝에 언니 조세핀은 "나도 잊어버렸어."라고 말한다. 살아오던 관성에 벗어나기가 두려워 다른 삶을 잊고 싶었던 건 아닐까.


삶의 변화를 거부하는 미묘한 심리는 「신식 결혼생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사를 하고 친구들에 둘러싸여 가족에 소홀했던 이자벨은 남편의 편지에 감동해 태도를 바꾸려 한다. 하지만 놀러나가자는 친구들의 부름에 답장을 미루고 친구들에게 발길을 돌린다. "전과 달라진 그 방식"으로 웃는 그녀는 '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때가 왔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 '아, 망설일 게 뭐가 있나? 당연히 가지 말고 편지를 써야지.

(…)

아냐, 편지 쓰기는 너무 힘들어. '가야지, 가야겠다. 편지는 나중에 쓰고. 나중에. 언젠가. 지금은 말고. 하지만 꼭 쓰긴 쓸거야.' 이자벨이 서둘러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전과 달라진 그 방식으로 웃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p.227


「어린 가정교사」는 냉정하고 단호한 모습의 영국 가정 교사가 겪은 불행을 고소해하는 호텔 급사의 환호로 끝난다. 젊은 가정교사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여행 기분에 들떠 급사를 낮춰 보고 하대했다. 급사의 말은 교사 고용주에게 나쁜 인상을 주고 가정 교사는 낯서 도시에 고립된다. 작가는 영국에서 독일로 가게 된 교사가 겪는 충격과 혼란이 급사의 기쁨과 대비되는 장면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부인은 어디 계세요?"

어린 가정교사는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이 부들부들 떨려 손수건을 입에 갖다 대야 했다.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급사는 이렇게 말하고 새로 들어온 손님을 맞으러 잽싸게 달려갔다. 갈빗대 속에서 심장이 얼마나 신나게 뛰던지 킥킥 웃음이 터져나올 지경이었다.

'잘했어! 잘했어! 본때를 보여줬지.'

p.98


「미스 브릴」에서는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자기 삶의 모습에 만족하고 살았던 부인이 타인의 폭력적인 언사에 상처받는 모습을 그렸다. 반대로 스스로의 모습을 직시하지 못하던 여성이 다른 사람의 직언에 눈을 뜨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까. 내 판단은 전자쪽이다. 부인에게 쏘아붙이는 남자는 젊은 여자와 함께 있는 현재에 취해 안하무인이다. 함부로 내뱉은 말은 미스 브릴의 선물같은 휴일을 울음소리로 끝맺게 했다.


「가게집 여자」는 "작품이 가볍다고 거절당한 뒤에 야수파의 영향을 받아" 쓴 단편이다. 스릴러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세 명의 짐꾼이 남편 없는 여자가 주인인 도로 한 켠 가게집에서 하룻밤을 머문다. 그들 중 하나는 주인 여자와 눈이 맞아 머물기를 선택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여자의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아이는 무슨 그림을 그렸던 걸까. 폭풍치는 밤 여행객의 방문은 아이가 그린 그림으로 인해 섬뜩한 공포로 마무리된다.


힌과 나는 그림을 옆에 두고 새벽이 올 때까지 앉아 있었다. 비가 멎고 아이는 잠이 들어 색색 숨소리를 냈다. 우리는 일어나 집에서 빠져나와 방목장으로 갔다. 분홍빛 하늘에 흰 구름이 둥실 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젖은 풀 냄새가 났다. 안장 위에 앉자 조가 가건물에서 나와서 우리에게 가라고 손짓을 했다.

"곧 따라갈게."

조가 소리쳤다.

길모퉁이를 돌아서자 그곳 전체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p.133


조는 친구들을 따라갈 수 있었을까. 길모퉁이만 돌면 사라지는 '그 곳'에서 그도 영원히 사라진 건 아닐까 싶어 서늘한 기분이 든다.


「심리」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남자와의 소통에 실패한 여성이 마침 찾아온 숭배자를 맞이하며 변화하는 마음을 그렸다. 의도와 다르게 어긋나던 남성과의 대화에 의기소침했던 여성은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을 만난 후 마음이 달라진다. 냉대당하면서도 계속 찾아오는 숭배자를 보면서 비록 엇나가는 관계일지라도 아름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던 걸까.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은 가볍고 편안해졌고 "또 오세요"라는 편지로 이어진다.


「마 파커의 인생」은 평생 노동으로 피폐해진 여성 마 파커가 어디서도 쉴 곳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황량하게 그려졌다. 그녀는 딸이 걱정할까 집에도 가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잃고 고통스러웠던 삶을 애도할 장소가 없어 방황한다.


아, 숨어서 혼자 있고 싶은 만큼 있을 수 있는 데는 없는 걸까? 다른 사람한테 피해도 주지 않고 다른 사람이 신경 쓰지도 않을 데가? 이 세상에 그녀가 울 수 있는 데가, 그토록 참았다가 마침내 울 수 있는데가 한 군데도 없나?

마 파커는 멈춰 서서 위아래를 쳐다봤다. 얼음 같은 바람이 앞치마를 풍선처럼 부풀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데도 없었다.

pp.200-201


홍한별이 번역한 도서출판 강의 『가든 파티』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초기부터 후기까지의 작품 가운데 오늘날 많이 읽히는 작품을 골라" 엮은 선집이다. 작가가 죽기 전 해에 출간한 같은 제목의 책과는 다르다. 「레만 식당」은 1911년, 「가겟집 여자」는 1912년, 「심리」, 「영화」, 「딜 피클」, 「어린 가정교사」는 1920년, 「대령의 딸들」, 「미스 브릴」, 「마 파커의 인생」, 「신식 결혼생활」, 「가든 파티」, 「만에서」는 1922년에 출간됐고 「인형의 집」은 작가 사후 발표된 작품이다. 맨스필드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단편을 모았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읽고 맨스필드의 성취에 대해 검색해보니 옮긴이가 말한 "번역을 통해 작품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제라도 맨스필드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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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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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정은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듣고 박상영 작가와 그의 첫 장편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알게 됐다. 출간전 연재때부터 열독했다는 황정은 작가의 폭풍칭찬과 엉뚱한 위트로 무장한 박상영 작가의 입담을 들으며 호기심이 충만해졌다. 두 작가의 대화에서 엿보이는 소설의 내용은 얼핏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퀴어 성향이 복합돼 있다는데 그렇다면 서사는 밝은 분위기로 가기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방송으로 들은 박상영 작가는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사람으로 보였다(들렸다). 이렇게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소설을 써낼까.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책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소설은 십년이 넘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전개된다. 시간의 간극을 넘어 도착한 메시지가 발단이다. 심리상담 전문가인 '나'는 방송 인터뷰로 이름이 알려지게 된 후 '1004'라는 아이디로부터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는다. '1004'는 '나'에게 "과거가 되지 않은 채 현재로 남은" 기억을 떠올린다. "철저히 숨길 수 있"다고 믿었던 한 시절은 두려움이 되어 되돌아왔다.


학교, 학원, 집을 오가는 2000년대 초반 학창 시절을 세밀하게 묘사한 청춘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소설은 주인공 '나'의 비밀에 의해 스릴러의 색채를 띤다. '나'는 동성 친구 윤도를 사랑했고 그것이 폭로될까 두려워했다. '나'와 윤도의 관계를 공개하겠다는 태리를 물 속으로 밀치고 도망쳤던 밤 이후로 진실은 그 무게를 더해간다.


'나'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두 가지 갈래다. 사랑의 기쁨과 그에 따른 두려움. '나'는 동성을 좋아하는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모범생으로 살아왔다. 아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위장전입을 서슴지 않은 부모 아래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학생으로 말이다.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서 자신의 고향을 떠나는 날만을 고대한다. 지금사는 이 곳을 떠나면 정체성의 혼란이 해결될 것이라 믿은 것이다.


오늘 하루는 단지 또다른 하루일 뿐이다. 이대로 조금만 더 버티면,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떠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다. 이곳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나 자신인 채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괜찮다. 정말 괜찮다.

p.91


그러나 우연히 한 동네에 사는 윤도에게 마음이 흔들리고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아야하는 마음과 윤도에게 기우는 마음이 부딛혔기 때문이다. 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윤도의 주변을 맴도는 '나'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흔들린다.


내가 알고 있는 윤도의 세계는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내 비밀의 무게에 짓눌려 남들도 자신의 몫의 비밀을 짊어지고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짐작도 하지 못할 만큼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p.125


윤도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절절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사랑의 특별함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나'는 윤도가 자신과 같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한 윤도의 태도는 '나'를 괴롭게 한다.


너이기 때문에, 그 어려운 일이 가능한 것 아닐까. 네 목소리로 들으면 무슨 얘기든 재밌고, 너를 보고 있으면 네가 아주 나쁜 일을 저질러도 이해해줄 수 있을 것만 같거든. 나는 언제든 너라는 세계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은데. 너는 어떨까. 너를 향해 쏟아져 버릴 듯 차오른 내 마음을 이해해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역시나 무리겠지. 너에게 난 영영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일 테니까.

p.293


윤도와 함께한 기억은 십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선명하게 '나'의 마음에 새겨져 있다. 윤도는 정체성을 억누르며 살아온 '나'의 두려움을 넘어 두 사람이 연결된 세계를 꿈꾸게 했다. 세상 어디로도 넓어지지 않고 둘만 이어지는 '1차원의 세계'는 아름다운 꿈이었다. 그들의 '1차원'은 학교라는 3차원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럼, 우리 1차원의 세계에 머무르자."

네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너와 나라는 점, 그 두 개의 점을 견고하게 잇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 말이야."

p.130


학교 안에 '나'의 비밀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윤도마저 '나'를 외면했다. '나'의 두려움은 '나'에게 마음을 표현한 태리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됐다. 혼자가 되리라는 공포, 모두가 나를 외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이렇게나 컸다. '나'는 심리적 붕괴 상태에 이른다. 소설은 이 대목에서 성적 지향성이 본인의 의지에 반하여 공개되는 일이 당사자에게 어떻게 '폭력'으로 경험되는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웃팅은 "약점을 드러낸 채 짐승처럼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물어뜯기는" 것같은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쳐서야 실은 내가 꽤 오래전부터 태리의 연락을 무시해왔으며, 그는 그저 나에게 생일 선물을 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내 생일을 축하하고 싶었던 사람을 밀쳐낸 것도 모자라 진심을 다해 원망하고 있는 나. 그런 내가 견딜 수 없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별수없었다. 태리를 원망하는 게 가당치 않음을 알았지만, 그런 마음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두려웠다.

두려워서 견딜 수 없었다.

p.287


이들 중 누군가가 나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 내 목숨줄을 쥐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비밀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날, 이 모든 아이들은 순식간에 나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나는 완벽한 혼자가 될 것이다. 

p.302


윤도와의 시간을 부정하며 과거에 두고 살았던 '나'는 친구 무늬의 말에서 힘을 얻는다. 무늬 역시 동성을 사랑한 아이였기 때문에 '나'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윤도와 '나'가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던 "순간"의 진실을 일깨워주었다. '나'와 윤도의 마음이 같은 방향으로 가지 못했다 하더라도 둘이 마주보던 한 때, 서로에게 "진짜"였다는 사실은 '나'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했다.


"그냥, 그건 진짜였다고. 너희 둘이 무슨 말을 주고받았고, 무슨 일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 그 순간은 진짜였다고."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의 눈 속에 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것.

그 순간들이, 그 때 우리의 마음이 다 진짜였다는 것.

그 한마디로 말미암아 내가 살 수 있었다는 것을, 그것을 마치 경전처럼 주워 삼키고 되새겼기에 내가 간신히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을 무늬는 알고 있을까?

p.395


박상영 작가는 2000년대 초반 학창시절의 향수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만화책, 음악으로 소환되는 기억들이 아련한 가운데 사춘기의 혼란이 묘사된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밀쳐내고 배신하는 모습" 속 한 켠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관계"가 숨어 있다.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구원의 서사에서 누군가 "차마 들여다볼 수 없었던 과거의 어떤 시절을 마주"하기를 바랬다고 썼다. "고통조차도 때로는 희망의 한 조각이" 되길 바란 작가의 진실이 누군가에게 가닿길. "현재형의 공포를 과거의 한 시절로 남"기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 누군가에게 이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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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말들 -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
은유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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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저자를 어떤 계기로 알게 됐었던가.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책으로 먼저 알게 됐는지, 강좌 수강이 먼저였는지. 길지 않은 시간인 것 같은데 저자 은유는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많은 책을 냈다. 저자의 블로그를 자주 드나들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나서였던 것 같다. 글쓰기 선생님으로 알고 있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가 하는 '글쓰기'가 남달랐다.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성노동자들과 같은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어 보니는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저자의 블로그에는 글들이 있었다. 생활에서 건저 올린 생각, 공부하면서 풀어낸 사유, 가족 이야기까지. 저자의 문장을 아쉬움없이 만날 수 있는 장이었다. 그래서 『다가오는 말들』이 낯익었다. 블로그에서 읽었던 글들 다수를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올드걸의 시집』이 시를 통한 사유라면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는 여성으로서 겪는 일상에 대한 생각을 담아낸 책이었다. 『다가오는 말들』에서는 저자가 사유하는 방식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일과 가정에서 얻은 삶의 소재로 글을 쓰면서 하나의 글에는 그에 적절한 책 한권씩이 들어가 있다. 문장을 인용하기도 하고 책 내용을 소개하기 한다. 저자가 어떤 책들을 읽고 생각을 만들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발견합니다. 글을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48쪽) "미리 어떤 것을 써야지 생각하고 머릿 속에 준비해둔 원고를 '프린트아웃'한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218쪽)

p.75, 우치다 다쓰루,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인용


여성의 말하기와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쓴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겪으면서도 이유를 몰랐던 상황들이 이해가 된다. 여성에게 말하기 기회가 드물었다는 것, 남성에겐 여성의 말하기를 듣고만 있기를 어려워 한다는 걸 저자의 글에서 선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주변의 상황에도 대입해볼 수 있었다. 왜 나의 말이 특정인 앞에서 그렇게 매번 동강나는지, 왜 누군가는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지.


여성의 말하기 기회가 드물기에, 여성의 말하기를 듣는 기회도 없다면 '그냥' 듣고 있는 게 남성으로선 어렵고 어색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평생의 억울함을 터놓는데 잠시의 억울함도 견디지 못하고 끼어드는 말은 제 스스로 힘을 잃는다.

p.50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아마 그것 고생 끝에 낙이 온 사람에게만 발언권이 주어졌기 때문일 거다. 그들은 자서전으로, 인터뷰로 자기 말을 퍼뜨리지만, "성실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실했다가 개죽음을 단한"(189쪽) 이들은 말이 없다.

pp.124-125, 천주희,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인용


에릭 호퍼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떠돌이 노동자 출신의 사상가다. 도스토옙스키나 몽테뉴의 저서를 거의 외울 정도로 읽었고, 글을 쓰면서는 "제대로 된 형용사를 찾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31쪽). 밑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무모함, 빠져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부어댈 때 잠깐의 흘러넘침, 그것이 사유의 결과물로 손에 쥐어진다. 이 아름다운 낭비에 헌신할 때 우리는 읽고 쓰는 존재가 될 수 있다. 

p.142,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인용


"게으름뱅이로서 나는 맹세한다. 터무니없이 오랜 시간을, 특히 몇몇 기업 양아치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으려 투쟁하기로. 가능한 한 스트레스가 나를 침범하지 못하게 막아내기로. 천천히 먹기로. 리얼 에일을 자주 마시기로. 더 많이 노래하기로. 더 많이 웃기로. 토하기 전에 정시 근무라는 회전목마에서 내려오기로. 혼자 있을 때나 남들 앞에서나 스스로 즐기기로. 일이란 단지 고지서에 찍힌 비용을 지불하기 위한 것임을 인식하기로. 친구들이 힘의 원천임을 항상 기억하기로. 단순한 것을 즐기기로. 자연 속에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로. 대기업과 회사에 소모하는 시간을 줄이기로. 그 대신 좋은 것을 많이 만들기로. 순리를 벗어나기로. 아무리 사소한 수준이라도, 세계와 주위 사람을 변화시키기로."('영국 게으름뱅이 연합 맹세' 목록 중에서)

p.271


글쓰기와 나에 대한 성찰을 연결한 대목도 인상깊었다. "자기-삶을 진득하게 들여다"보아야 글을 쓸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내 글의 부족함의 이유를 생각해보게 했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남의 사고에 집중하는 연습"보다는 나의 생각을 직조하는데 집중해야 할 일이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제 글이 이상하고 못났던 것은 배움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어요. 필사를 하지 않아서, 단어를 많이 몰라서, 독서량이 부족해서. 그게 아니더라구요. 나를 생각하지 않아서였어요.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고독과 외로움이 괴로워서, 그럴 때 늘 찾았던 친구들, 드라마, 영화, 책이 문제였어요. 나 자신과 생각보다 서먹한 사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귀한 깨우침이 담긴 고백이다. 나는 수업과 강연을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 아니 자기-삶을 진득하게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는 걸 자주 느낀다. 그래 본 적이 없어서인 것 같다. 한국에서 입시제도 위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에게 글쓰기란 남에게 평가받는 일이다. 출제자 의도에 부합하는 표준화된 '답'을 찾다 보니 자기로부터 멀어지고 남의 사고에 집중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게 된다.

p.74


읽고 생각하고 삶의 경험에 대입하는 저자의 능력은 부러울 지경이다. 무슨 수행을 해서 얻은 능력일까 싶다. 답은 당연히 저자의 삶에 있다. 이른 나이에 사회 생활을 했고 노동조합에서 일했다. 일만 하지 않고 읽고 배우고 쓰기를 쉬지 않았다. 저자의 공부는 학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과 삶에 밀접한 것이었다. 그런 공부를 장기간 하다보니 공부와 삶이 하나로 화하는 경지에 오를 것이리라. 노인의 삶을 '고생한다'고 정서화하기 보다 '노동한다'로 정밀화하는 저자의 날카로움은 그렇게 벼려진 것일 거다.


퇴근이 없고 정년이 없어 평생 몸을 가만두지 못하면서도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보상과 보호도 받지 못한 여성들. 자식 돌봄. 부모 봉양, 가사 노동, 남성 부양 의무까지 이중·삼중 노동을 수행하는 쪼글쪼글한 그들로 인해 나는 여자는 '고생한다'는 막연한 통념을 벗겨내고 '노동한다'로 인식을 바로잡았다.

p.104


저자의 르포 작업을 보면 그가 얼마나 듣는 데 능숙한 사람인지 느껴진다.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를 인터뷰한 『폭력과 존엄사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다룬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여러 사람의 말을 씨실과 날실 삼아 묶어낸 이야기다. 다수의 목소리가 들어 있되 하나의 주제를 밀고 나가는 힘이 있다. 말하는 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려 한 저자의 노력을 "들을 준비"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말을 소리로 흘려버리지 않고 준비하고 귀 기울여 듣을 때 '고통의 서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다는 뜻이리라.


내가 아는 공감 방법은 듣는 것이다. 남의 처지와 고통의 서사를 듣는 일은 간단치 않다. 자기 판단과 가치를 내려놓으면서, 가령 '왜 이제 말하느냐' 심판하는 게 아니라 왜 이제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해하려 애쓰면서, 동시에 자기 경험과 아픔을 불러내는 고강도의 정서 작업이다. 온몸이 귀가 되어야 하는 일. 얼마 전 본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당신이 할 말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들을 준비를 할 거예요."

p.128


무엇보다 열린 마음이 저자가 가진 글쓰기의 기본 자세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무서운 "기성세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깨질 용기가 필요하다. 저자는 글을 쓰면서 자신이 "편견이 많다는 사실을 안" 것을 가장 큰 수확이라고 썼다. 자신의 편견을 깨달을 수 있는 인지와 그것을 부끄러워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저자 은유의 다음 에세이를 기다린다.


"말투에 트집을 잡는 사람은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 것"

(…)

기성의 관념에 갇히는 건 게으름 탓 같다. 특히 이분법은 사유의 적이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누구나 기성세대가 된다. "선입관이 현실을 만나 깨지는 쾌감"(고레에다 히로카즈)은 세상에 자기를 개방할 때만 누리는 복락이다.

pp.17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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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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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이스하키단일 뿐이다. 운동경기일 뿐이다. 환상일 뿐이다

p.203


아이스하키는 우리 나라에 익숙한 스포츠는 아니다. 게임룰도 낯설고 영화에서 본 산더미만한 덩치들이 한데 엉켜 으르렁거리는 장면만 기억난다. 선수 뿐 아니라 관중까지 열광의 덩어리로 불타오르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모양이다. 『오베라는 남자』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작가로 등극한 프레드릭 배크만이 차가운 얼음위의 스포츠를 소재로 책을 냈다. 전작 『베어타운』에 이어 올해 『우리와 당신들』이 출간됐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 머리 속에 일정한 틀을 가진 공식이 떠올랐다. 기댈데 없는 가난한 환경에 처한 천재적인 재능의 선수가 약점은 있지만 뛰어난 지도자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승리하거나 그에 준하는 인간적 성장을 이루는 인생역전 드라마. 이야기꾼 프레드릭 배크만이 스포츠 드라마를 어떻게 변주할지 궁금했다.


작디 작은 퍽 하나를 두고 온 몸으로 싸우는 경기 아이스하키에 일 년 삼백육십오일을 넘어 평생을 몰두하는 마을이 있다. 베어타운이다. 스포츠는 경기에 직접 참가하는 선수뿐 아니라 보는 관중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환상이다. 결과가 나오는 마지막 희비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지금의 삶이 아니라 누렸어야 하는 다른 삶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도시와 마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그들의 엄청난 이야기를 이이해하고 싶으면 소소한 이야기부터 귀담아 들어야 한다.

p,96


『우리와 당신들』은 무엇보다 편견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타인에게 갖는 편견과 우리가 우리에게 갖고 있는 편견. 우리는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진정으로 객관적인 입장이 될 수 있을까. 또 틀렸다고 반대하거나 싫어하는 일에는 그럴만 한 근거가 있는 걸까. 하키를 유일한 인생의 낙으로 섬기는 베어타운은 선수가 저지른 불미스러운 일로 찢기고 분열된다. 전작 『베어타운』이 대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일이 옳은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우리와 당신들』은 우리와 다른 누군가를 포용하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베어타운』의 주요 조연이었던 선수 벤이와 사건 피해자 마야를 비롯한 모든 인물들이 타인이 만들어 놓은 인물틀을 뚫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 나간다. 남성성을 분출하는 하키 선수라는, 문제를 일으킨 ‘계집애’라는, 선수단과 마을을 뒤에서 조종하는 훌리건이라는, 여자를 좋아하는 코치라는 견고한 틀을 벗어버린다. 여자 코치 사켈은 현실에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는 불공평한 게 공평한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현상이지.”(p.438)라고 인정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다. 어떤 일에도 한 가지면만 존재하진 않는다. 주정뱅이 술집 주인 라모나을 말처럼 다름을 알아보려면 시간과 분별력이 필요하다.


“……요즘은 인간들이 두 부류로 나뉘거든.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부류와 분별력이 좀 더 필요한 부류. 두 번째 그룹은 가망 없지만 그들의 머릿속에 분별력을 때려 넣기 전에 첫 번째 그룹이 몇 명이나 되는지 먼저 파악해야 하는지 몰라.”

p.463-464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저들과 다르지 않을지 모르고 저들도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용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좌우되는 삶을 사는 우리는 그래서 서로를 용서하기 어렵지만 또 그래서 서로에 대해 책임이 있다. 산골마을 베어타운이 그나마 자부심을 가질 수 있던 것은 그들의 아이스하키팀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배척하는 사이 팀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하지만 누군가의 피 앞에서 서로를 보살피는 지혜를 터득한다. 사람들은 서로를 책임지며 다시 함께한다. 대척점에 있었던 당신들이 우리의 곁으로 와 함께하는 삶이다.


베어타운 사람들은 세상이 단순하다고 큰 소리 치지 않았다. 인생 자체에 삶이 녹다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거의 무의미한 무언가를 전혀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외칠 자격이 있다.


“그래서 뭐! 원래 힘든 거야. 안 그러면 대도시의 아무 새끼들이나 할 수 있게?”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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