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발견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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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즉시 고전이 된 베스트셀러”라니, 홍보가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리의 발견”이라는 제목도 거대한데 출간과 동시에 고전의 반열에 들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책은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걸까. 840쪽의 책 두께는 고전에 가까웠다.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대개 벽돌 두께를 가볍게 넘는 법인데 『진리의 발견』도 못지않은 부피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읽게 된 계기는 미리보기로 읽어본 에피소드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토막토막 연재된 글들이 흥미로웠다. 이렇게 존재감있는 부피의 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가볍고 아름다운 문체였다.


책의 발문에서 다시 한번 흐믓해졌다. 올리버 색스의 친구였던 위스턴 휴 오든의 문장이었다. 올리버 색스와 관련 된 모든 것을 애정할 준비가 된 나에게 책 두께는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별들이 타오른다면

우리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하지만 우리가 보답할 수 없다면

동등한 애정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면

좀더 사랑하는 쪽이 내가 되도록 해야지

- 위스턴 휴 오든


결론부터 말하자만 프롤로그부터 퐁당 빠져버렸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무슨 밑줄을 이렇게 많이 치고 색색깔의 택은 또 어찌나 많이 붙였는지. 시는 아닌데 시 같은 울림이 있는 문장이 책 속에 한가득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전기인 듯도 하고 네 세기에 걸친 역사서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게 이 책은 하나의 맥락였다. 여성에 대한, 여성을 사랑한 여성의, 여성과 여성의 이야기였다.


책은 케플러부터 시작한다. 정확히는 케플러의 어머니에서 시작한다. 케플러가 우주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쓴 책 《꿈》 때문에 그의 어머니가 마녀로 몰린다. 사람들이 책의 우의적 묘사를 곧이곧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케플러는 어머니가 고초를 겪은 이유가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머니를 불학무식하게 만든 것은 어머니의 본성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 결정한 사회적 위치”였다는 말이다. 『진리의 발견』의 저자 마리아 포포바는 사회가 세운 한계를 뛰어넘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키지만 마거릿 풀러,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레이철 카슨을 중심에 놓고 있다. 이 세 인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인물들이 살아간 시대의 상호관계와 주변 인물 사이의 연결점을 살필 때 한 인물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독립된 개인이라는 환상”, “타자라는 환상”을 탈피할 때 더 큰 진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란 다른 삶과 얽힐 수밖에 없으며, 그 삶의 직물을 바깥에서 바라보아야만 인생의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에 어렴풋이나마 답을 구할 수 있다. pp.15-16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장편 서사시《오로라 리》의 모델이 된 마거릿 풀러는 미국의 여류평론가, 편집자, 여권운동가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고 그녀의 드라마틱한 일생이 놀라웠다. 에머슨의 초월주의 운동을 함께 했고 죽기 전에 이탈리아의 해방운동에 참여해 그 과정을 글로 남겼지만 그녀의 가족과 함께 바다에 수장됐다. 열다섯 살의 나이에 “나는 탁월해지기로 했습니다.”라고 선언했던 풀러는 “천재가 될 수 있는데, 누가 여편네가 된단 말인가?”라고 물으며 자신만의 길을 갔다.


《오로라 리》를 좋아한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극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길 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방안에서 침잠했고 자신의 사랑에 몰두했다. 에밀리의 뜨거운 문장 뒤에는 수전이 있었다. 에밀리는 수전을 향한 사랑을 시에 고스란히 담았다. 수전은 먼저 에밀리의 친구였지만 후에 그녀의 오빠와 결혼한다. 평생 가까이 살면서 마음을 주고받은 사이다. 저자는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시인으로서만이 아닌 여성을 사랑한 여성의 삶으로 다룬다. “의심할 여지 없이 아름다우면서도 모호한 의미로 마음을 설레게도 하고 꾸짖기도 하는” 그녀의 시들은 오랫동안 “후대에 남기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일로 여겨졌다.”


『침묵의 봄』으로 잘 알려진 레이첼 카슨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눈길을 끈 것은 그 책과 말라리아 창궐의 연관성을 언급한 부분이었다. 『침묵의 봄』을 주제로 한 토론 모임에 참여했었다. 책에 관한 이야기가 한참 오가던 중 이 책이 아쉬운 부분이라며 어떤 분이 한 말을 『진리의 발견』에서 다시 만났다. 레이첼 카슨이 살충제 사용을 억제한 덕분에 말라리아로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토론 당시에는 사실관계를 몰라서 침묵했다. 마리아 포포바에 따르면 그러한 악의적인 주장은 카슨을 반대하던 쪽에서 퍼뜨린 허위주장이었다. 내 머리 속에 든 수많은 허위 중 하나라도 수정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난 후 내가 이 책에 대한 논평을 트위터에 공유했을 때 누군가가 2500단어로 된 논평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답글을 달았다. 그는 당시의 허위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면서 말라리아로 100만명이 사망한 책임을 카슨에게 돌렸다. 문화의 세포에 일단 자리 잡은 허위의 반감기가 이토록 길다. p.763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은 거미줄같은 책이다.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 속에 책 속 다른 인물의 인생 한 부분이 지나기도 하고 수세기를 앞뒤로 오가기도 한다. 어쩌면 이 많은 인물들이 서로서로 이렇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또 포포바는 그걸 어떻게 알아챌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책의 목차에는 각 장이 하나의 인물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표시돼 있지만 책 내용 전체는 흐르듯이 연결된다. 앞장의 인물은 뒷장에 또 그 다음에 계속 등장한다. 그리고 목차에 표시된 인물 뿐 아니라 들으면 알만한 반가운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칼 세이건 같은. 특정인의 전기적 사실을 읽는다기 보다 어떤 흐름에 이끌린다는 기분으로 읽기를 권한다.


저자는 “아름다움 같은 어떤 진실은 상상과 의미 부여라는 빛을 슬쩍 비출 때 가장 명확하게 보인다”는 말을 저술의 기본 태도로 삼았다. 인물에 대해 끝없이 상상하고 그들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함으로써 우리는 기존에 알았던 그녀들의 모습보다 더 선명하고 친근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마리아 포포바가 묘사하는 장면이 현실과 얼마나 가까운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그녀의 상상과 의미부여가 있었기에 새로운 마거릿 풀러와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레이첼 카슨의 진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나게 아름답고 견고한 진실을 말이다.


아름다운 삶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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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자, 장자크 상페 그림, 박종대 역자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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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의 파트리크 쥐스킨트다. 『향수: 어느 살인자이야기』를 90년대 언제쯤인가 읽은 것이 마지막이다. 꽤나 충격적인 작품이어서인지 도무지 『비둘기』 또는 『좀머씨 이야기』를 쓴 작가의 작품으로 여기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전자가 독특한 사건에 대한 서사에 집중했다면 뒷쪽의 두 책은 평범한 삶의 한 단면을 길고 자세히 바라보는 책이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을 자세히 펼쳐보여 독자로 하여금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좀머씨 이야기』에서는 끊임없이 떠도는 남자를, 『비둘기』 에서는 집 앞에 나타난 비둘기를 이야기의 단서로 삼았다. 단편 『승부』의 실마리는 체스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승부』는 1994년에 출판된 『깊이에의 강요』에 포함된 단편이다. 열린책들의 <2020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판>에서는 장자크 상페의 그림과 함께 독립된 한 권으로 출판됐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기름한 책의 판형과 패브릭 장정에 시원한 편집이다. 채 100쪽이 안되는 내용이어서 잡고 앉으면 단숨에 읽을만 하지만 상페의 유머러스한 그림들을 차근히 살펴보며 느긋하게 읽기를 권하고 싶다. 독서란 누구와 승부를 내야하는 일은 아니므로.

거리는 "두 명의 체스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삶의 축소판과 같은 이야기"라는 출판사의 소개 그대로다. 마을의 체스 챔피언 장은 어느 날 저녁 무렵 처음 보는 맞수를 만난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젊은이는 단숨에 구경꾼들의 호감을 산다.


구경꾼들의 관심은 온통 도전자에게 쏠려있다. 까만 머리에 파리한 얼굴, 상대를 깔보는 듯한 짙은 눈의 젊은이다. 남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표정 변화도 없다. 이따금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이리저리 뱅뱅돌리기만 하다. 전체적인 인상은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냉담함이다. p.9


포커 페이스에 말이 없는 이 도전자는 장마저도 주눅들게 만들고 체스가 시작되지마자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수를 둔다. 체스판 주변에 모여든 모두는 젊은 고수에게 열광한다. 그가 무슨 수를 두어도 환호한다. 심지어 퀸을 희생시키는 수에 감탄을 쏟아낸다. 누구도 이런 수를 둔 적은 없다면서.


어찌 됐건 구경꾼들은 체스판에 첫수가 두어지기 전에 이미 이 남자가 지금껏 자신들이 내심 기대해 온 기적, 즉 이 동네 체스 챔피언을 무너뜨리는 기적을 모두에게 보여줄 재야의 숨은 고수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p.12


주변에 둘러선 구경꾼들은 하나같이 체스를 좀 둔다는 사람들이지만 이제껏 이런 수를 실전에서 둔 적은 없다. 이게 바로 진정한 고수의 포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름지기 고수란 어느 순간이건 독창적이고 위험한 수를 과단성 있게 두는 사람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의 체스꾼과는 차원이 다르다. 때문에 일반 체스꾼은 고수의 수를 일일이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p.19


구경꾼들은 누가가 촉촉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자신들은 그렇게 두고 싶지만 감히 두지 못하는 수를 이 젊은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실행에 옮기고 있지 않은가! 물론 젊은이가 왜 저렇게 두는지는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 그럼에도 이 젊은이처럼 두고 싶다. 저렇게 당당하고, 승리의 자신감에 넘치고, 나폴레옹처럼 영웅적으로 싸우고 싶다. p.34


장은 당황한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당연히 의도했다는 듯히 퀸을 갖다 바치는 상대에게 오히려 송구해해지기까지 한다. 이 수에 뭔가 다른 꾀가 숨어있지는 않은지, 자기가 못 본 수가 있는 건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들이 아는 챔피언은 분명 조심조심 이 애매한 궁지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신중한 지연 전술이다. p.22


장처럼 소심하게 망설이듯이 질질 끌며 두고 싶지는 않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 자신이 실전에서는 장과 똑같이 두기 때문이다. p.34


혜성처럼 등장한 신참은 과연 진정한 고수였을까. 장은 경기를 이길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책장을 성급히 넘겼다. 경기는 끝나고 장은 체스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경기의 승패를 떠나 자신이 "체스를 두는 내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욕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승자의 자리에 머문 장은 언젠가 멋진 패배를 맛보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이겨야한다는 부담감, 동료들로부터 받는 질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한 번의 패배가 오늘이리라 기대한 탓이었는지 장의 눈이 흐려졌다. 그렇게 한심한 초짜를 알아보지 못한 거다. 장은 홀로 막 끝난 경기를 복기하며 스스로에 대해 이런 생각들을 떠올렸다.


솔직히 장은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그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게 이방인에게 경탄했고, 그와 함께 자신이 수년 전부터 그렇게 기다려 온 패배를 마침내 그 인간이 최대한 강렬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맛보게 해주기를 소망했다고 말이다. 그래야 자신은 언제나 최고여야 하고 어떤 상대든 무너뜨려야 하는 짐을 벗어던질 수 있고, 그래야 질투로 찌든 그 망할 놈의 구경꿈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줄 수 있고, 그래야 스스로 평온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p.64


오늘 실제로 패배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복수할 기회가 영영 없고, 미래의 어떤 빛나는 승리로도 만회할 수 없기에 더더욱 비참하고 결정적인 패배였다. p.64


경기의 예의도 갖출 줄 모르는 무뢰한에게 졌음에도 장은 홀로 경기를 복기한다. 그런 초짜를 알아보지 못했음에 분하기도 할테고 자신에게 한 번의 지지도 표하지 않은 구경꾼들에게 화가 났을 법하다. 하지만 장은 자신에게만 몰두한다. 왜 신참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경기를 질질 끌었는지, 그게 자기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다. 오랜 시간 챔피언의 자리를 지킨 이유가 드러난 장면이다. 경기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끝까지 생각하고 분석하는 것. 이런 점이 "냉정하게 분석하려 하지 않"고 경기가 끝나자 마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뜬 체스꾼들과 장이 구별되는 점이었을게다. 경기를 엎어 버리다시피 하고는 인사도 없이 자리를 뜬 "체스의 <체>자도 모르는 신출내기"는 말할 것도 없이.


분위기에 휘둘릴 때가 있다. 뭔가 미심쩍은데도 그냥 믿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때가 있다.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체스판을 둘러쌌던 구경꾼들처럼 보고싶은 대로 보게되는 그런 일이 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증거들도 외면하며 자기 합리화에 매몰되기도 한다. 장이 냈던 용기를 기억하고 싶다. 자신이 행하는 일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드는가를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 장의 복기처럼 지나 간 일을 차분히 되짚어볼 수 있다면. 그것이 누군가를 해하거나 잘못된 일이 아닐지라도 스스로의 가치를 무시하는 일은 아닌지 깨우칠 수 있다면 좋겠다. 경기 후의 복기처럼 비록 모든 일이 끝난 후, 조금 늦더라도 말이다.


장자크 상페의 삽화는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저 공원 풍경을 보여주고 체스판 위의 순간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삽화에 등장하는 너른 공원 한쪽에 장이 앉아 있을 것같고, 장이 체스를 두는 시간의 파리가 이런 풍경이리라 상상했다. 그림에 상상을 더하는 여유를 즐긴 독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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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창 - 제주4.3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김홍모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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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동포들이여! 경애하는 부모 형제들이여!

‘4‧3’ 오늘은 당신님들의 아들 딸 동생이 무기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매국 단선 단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독립과 완전한 민족해방을 위하여!

당신들의 고난과 불행을 강요하는 미제 식인종과 주구들의 학살 만행을 제거하기 위하여!

오늘 당신님들의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풀기 위하여!

우리들은 무기를 들고 궐기하였습니다.

4‧3 유격대 호소문 pp.158-159


제주 4‧3 ‘유격대 350여명이 도내 12개 지서와 서북청년회 숙소를 습격하며 도민에게 보낸 호소문’이다. 잘 안다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한국 근대사는 슬쩍 들춰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외세에 저항하기 위한 힘도 모자란 때에 언제나 내분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얼마전 읽은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는 하와이 한인 사회가 이승만 지지 세력과 박용만 지지 세력으로 나뉘어 갈등하는 장면이 배경으로 등장했었다. 제주의 항일 독립운동과 4‧3을 다룬 『빗창』에서는 더 처절한 역사를 확인했다. 일본인이었던 한국인이 미국의 앞잡이가 되어 참혹하게 동족을 학살한 그 사건이 아직 종료되지 않은 채였기 때문이다.


『빗창』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기획으로 네 명의 작가가 그리고 쓴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중 하나다. 김홍모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제주도를 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과 감수’에 주안점을 둔 기획에 집중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제주도의 풍광, 해녀들의 생활상, 독특한 제주 사투리가 작품 속에 잘 녹아 있다. 작가는 제주해녀항일운동과 4‧3을 연결해 다루면서 여성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피해자로서의 여성만이 아니라 역사의 주체로서 해방정국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힘 있게 다루고 싶었어요.”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작가 인터뷰 中 - 출판사 창비 사이트


미량, 재인, 련화. 세 명의 주인공은 1932년 해녀항쟁을 주도했던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을 극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빗창을 움켜쥐고 당시 제주도 도지사였던 다구치 데이키를 압박해 부당한 수탈에 대항했다. 빗창은 전복 채취에 사용하는 도구다. 물속에서 빨리 전복을 떼어내려고 쓰는 날카로운 빗창이 무기가 되어 해녀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저항의 의미를 깨달은 소녀들에게 다가온 해방은 그들이 바라던 세상이 아니었다. 미군정의 수탈은 일제보다 심했고 무엇보다 일제 부역자들을 권력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소녀들을 고문했던 친일경찰은 미군정 경찰이 되어 주민들에게 총질을 일삼는다. 제주의 사람들은 일제에서 미군정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인 폭압에 저항하기로 한다. 반공의 이름아래 모든 반대 세력을 몰아세운 이승만과 미군정은 이남에서 유일하게 단독선거를 무효화한 이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평화적인 해결은 이승만과 미군정의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서북청년회가 투입되고 나카무라 사다오(한국명: 송요찬) 상사가 토벌 사령관으로 제주에 내려온다. ‘1948년 10월 17일 초토화 작전’이 시작된다.



4‧3의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4월에 제주 모든 집이 제사를 지낸다는 말이 있다. 2만 5천명에서 3만명으로 추산되는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희생자의 정확한 수가 파악되지도 않은 상태다. 사건에 대한 국가차원의 진상 규명이 시작된 것이 2003년이다. 50년이 넘어서 말이다. 그 시간을 제주 사람들은, 그 희생자 가족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제주4‧3은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오랫동안 철저하게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제주 사람들에게 4‧3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살아 있는 역사이다. 생존자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빨갱이’ 취급을 받으며 숨죽여 살아야 했던 일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작품해설 中 p.243


다카키 마사오(한국명: 박정희)가 두려웠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그렇게 4‧3을 숨기고 싶었던 걸까. ‘만주에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제주 토벌대와 같은 사고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5‧16의 주역들에겐 독립운동도 민주주의도 모두 좌익사상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일제의 군인들이었고 어떻게든 4‧3의 학살과 관련돼 있었다. 그들은 권력을 잡은 방법 그대로 자신들의 치부를 은폐했다.



바라던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중년이 된 세 소녀는 동네 주민의 손에 또는 군경의 총알에 희생당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아이가 있다. 토벌대에 속아 마을 사람들을 살리려고 굴욕을 무릎 쓴 련화의 딸이다. 동네 주민 전체가 학살당한 피구덩이에서 살아남은 아이의 이름은 민주다. 련화와 친구들이 바라던 세상, 일제를 물리치면 오리라 기대했고, 자주통일을 이뤄야만 올 것이라 믿었던 세상의 이름, 민주주의다. 련화의 딸 민주가 모두의 희생 속에 살아남는 장면이 작가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폭력과 존엄 사이』(은유, 오월의 봄, 2016)에 나왔던 4‧3피해자 김평강에 관한 기록이 생각났다. ‘젊은 사람은 있으면 다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살기위해 일본으로 도망갔던 그는 돌아온 후 ‘간첩’으로 몰렸다. 검사는 ‘모든 것이 애매’하지만 사형에 처하라고 구형하고 김평강은 7년여를 복역한다. 다른 간첩 사건 피해자와 김평강은 그가 살던 공동체에서의 평가였다. 김평강은 복역 후에도 마을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았다. 구명을 위한 아내의 끈질긴 노력도 있었지만 4‧3에 대한 제주 사람들의 기억이 그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아름답게만 기억됐던 제주의 색이 다르게 느껴졌다. 청명한 하늘과 잦은 바람이 모두 젖은 빛깔이 됐다. 돌무더기를 둥그렇게 쌓은 해녀들의 휴식터를 보면서 생각했던 물질과 물질 사이의 담소는 고통스런 울음소리가 됐다. 관광지로서만 인식하던 제주를 4‧3의 기억으로 다시 봐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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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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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그의 종아리에 고래가 있었다. 파도를 헤치며 물살위에 얼굴을 내민 검푸른 빛깔의 고래. 한쪽 다리의 반 정도를 차지한 크기에 아연했다. 아프지 않았는지 물었다. 별로 안아팠다고 했다. 젊은 혈기도 아니고 이제 와 무슨 생각에 이런 걸, 하고 다시 물었다. 수영하는데 다리가 너무 하얘서. 그의 대답이었다. 싱거운 대답. 구병모 작가의 책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첫 부분을 읽으며 떠오른 기억이다.



순식간의 폭발사고로 중년 남성이 사망한다. 사망자는 전신2도 화상을 입었지만 함께 있었던 그의 딸은 죽은 남자에게 당한 폭행 흔적 이외의 상처가 없다. 혼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집에서 사람이 맹수에게 뜯겨 죽는다. 그 남자의 집 옷장 안에서 결박당한 전 애인이 발견된다. 한 기업인이 자신의 집 안에서 익사한다. 집에는 물이 찼던 자국만 있을 뿐 정작 물은 없다. 범인을 특정할 수 없는 사망사건, 이 미제사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건 관련 인물 중 한 사람에게 문신이 있었던 흔적이 있다는 것. 한 사람에게 시술받은 문신이었고 사건과 함께 문신이 사라졌다는 것.


이야기의 화자 시미는 직장동료 화인의 목덜미에 샐러맨더(도롱뇽) 문신에 끌려 문신 숍을 소개 받는다. 주저하며 찾아간 간판 없는 가게에는 구한말의 것인 듯한 양복을 입은 문신술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시미에게 말을 건넨다.


"우선 손님이 무엇에 관심이 있으신지부터 얘기해 볼까요.“ p.47


브리야 사바랭의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는 말이나 조르바의 “네가 밥을 먹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와 통하는 말이다. 어떤 문신을 할지 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사례를 보여 달라는 말에 문신술사는 당신 자신에 대해 말해달라고 청한다. 시미는 머뭇거린다. 50년을 살아온 지금 자신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남들처럼 살지 못한 자신의 인생,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핏줄만 떠오를 뿐이다. 시미는 화인의 말을 생각한다. 그녀는 몸에 샐러맨더를 새긴 후에 변화를 느꼈다고 했다. 시미도 그런 변화를 갈망했기 때문에 낯선 그곳을 찾아갔을 터다.


흘러넘친 끝에 고갈되었으나 일상의 바닥에 들러붙은 꿈의 침전물을 목격한 어느 날, 충동적으로 몸에 새긴 샐러맨더에 대해. 샐러맨더 한 마리를 몸 안에 키우면서, 잃었던 자신감과 의욕이 다시금 심장에 고이는 듯했던 날들에 대해. 저녁놀이 건드리고 지나간 것 같은 몸통의 그라데이션과, 그 무늬 아래 타래를 틀고 도사린 이야기들에 대해. p.40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문신술사가 새긴 문신들은 자신이 새겨졌던 몸을 지켰다. 문신은 위기에 처한 존재를 지키는 상흔이었다. 몸에 상처를 내고 색을 입힌 문신은 주인에게 심적 지지 뿐 아니라 물리적인 보호까지 행하는 신비로운 표식이었다. 문신을 새기는 과정에 자신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를 깊이 생각한 사람들은 자신을 지켜줄 존재, 스스로를 대신하는 존재를 고통과 함께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런 줄 알면서 또는 모르면서. 문신술사는 시미에게 거듭 묻는다. 무엇에 기대고 싶은지, 삶을 어디에 지탱하고 싶은지를.


그렇다는 것은 사람을 지켜준다는 행위가 반드시 누군가를 해함으로써 완성되는 게 아니라, 다만 그 사람을 지지하는 버팀목 같은 것도 포함되는 것이 아닐까. p.131


무엇이 자신을 지켜줄지—지탱해줄지—시미는 결정하지 못했다. p.133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

“그러니 시미 씨가 원하는 걸 말해주세요. 무엇이 시미 씨를 돌봐주었으면 좋겠는지.” p.138


시미는 삶이 달라지길 원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삶은 반드시 계획한대로, 생각한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충동을 따라가는 일을 두려워한다.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눌려 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생각하고 망설인다. 문신술사가 시미의 마음을 도와준다. “충동과 우연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자연이며 우주”가 만들어졌다고 말이다. “내 몸이 어제와 달라지기를, 나를 둘러싼 외부 조건이나 상황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기를” 기원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문신을 새기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시미는 자신만의 별을 몸에 새겼다. 손목에 작게 새긴 문신은 그녀의 충동이며 에너지, 삶에의 열망이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의례 그럴 법하게 살아온 인생에 대한 반항이다. 별은 그녀의 앞에 밝게 떠올랐다. 떠오르는 별은 시미의 팔목을 잡아당겼다. 별을 따라가는 시미의 내일이 궁금해졌다.


스스로가 빛나지 않는다면, 시미는 다만 몇 발자국 앞이나마 비추어줄 한 점의 빛을 보고 싶었다. 바라는 건 그 뿐이었다. p.148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구병모 작가의 따뜻한 판타지가 잘 드러난 소설이다.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에 걸맞게 손보다 조금 큰 사이즈에 150여 페이지의 책이다. 작가는 짧은 분량 안에서 판타지에 빗댄 우리 사회의 맥락을 보여준다. 그가 그려낸 사회의 모습은 외형적으로는 지금 우리 사회와 닮아있다. 하지만 약자를 보호하는 무엇이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차원에서 판타지다. 현실에서 온몸에 고통이 새겨진 채 희생당하는 건 언제나 약자이기 때문이다.


싱거운 고래남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진 않았었다. 나는 그에게 좀 더 이야기를 건네야 했던 걸까. 왜 하필 고래인지를 그리고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물어야 했던 걸까. 책을 덮고 나니 무엇보다 그 커다란 고래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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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 교양 고전 Pick 1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임경민 옮김 / 지식여행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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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한 ‘햄릿형 인간’과 저돌적인 ‘돈키호테형 인간’ 유형을 최초로 제시한 고전

뒷표지 中


햄릿형 인간과 돈키호테형 인간에 대해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한쪽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느라 내내 결정을 유보하는 인간형, 다른 쪽은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행동하고 보는 인간형. ‘햄릿’과 ‘돈키호테’가 유명한 만큼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의 인간형 구분에 대한 이런 저런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정작 그 말의 출처를 확인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햄릿과 돈키호테로 인간유형을 구분한 사람은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다. 그는 1860년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궁핍한 작가‧학자 구제협회’의 대중 낭송회의 강연에서 이러한 인간형의 구분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대개 햄릿형 인간인가 또는 돈키호테형 인간인가에 대해 논하는 경우는 사람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일 것이다. 사고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사람은 햄릿형으로 실천력이 돋보이는 경우는 돈키호테형으로 불린다. 누군가는 “사색적이고 우유부단한 인간”이고 다른 쪽은 “앞뒤 재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모든 사람이 “이 두 유형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해 있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느 한쪽에만 속하는 인물은 드물다고 말한다. 해제를 쓴 디타 뮐레로바(체코 흐라데츠 크랄로베 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말처럼 투르게네프는 “인간 본성의 기본원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들은 두 대척적인 경향의 극단적 표현에 불과하다. 삶은 이 두 극단의 어느 한쪽을 향해 움직이지만 그들 중 누구도 한쪽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검토하고 탐색하는 분석의 원칙이 《햄릿》에서 비극의 극단으로까지 뻗어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돈키호테》에서는 열정이 정반대 편에 있는 희극의 상황으로 몰려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순수한 희극이나 온전한 비극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p.74


여기서 반전이 있었다. 투르게네프가 단지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를 빗대 인간 유형을 구분하는 목적만으로 이 글을 쓴 것이 아니었다. 투르게네프는 글에서 돈키호테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햄릿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돈키호테는 “신뢰,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 무언가에 대한 믿음”으로 전형화되는 인물이라고 평하면서 “자기희생의 완벽한 화신”으로 추앙하고 있다. 반대로 햄릿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로 진단하면서 “그 자신에 관해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이 두가지 유형 중에 한 쪽에 속한다고 말하려면 한 쪽을 일방적으로 저평가해서는 안 될텐데 말이다. 왜 이렇게 기울어진 평가를 한 것일까. 디타 뮐레로바 교수의 해제에 답이 있었다.


투프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가 편찬된 시기는 러시아 사회 개혁의 시기였다. 이때는 “국가의 필요한 변화를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영웅” 즉 “새로운 인물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 당시 문학비평 분야에서 더 선호되던 햄릿 캐릭터 보다는 돈키호테에게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된 이유다. 사회적 허영심, 회의론, 이기주의를 내보이는 햄릿형 인간보다 “이상에 헌신하고 그 이상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투르게네프의 소책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세르반테스의 소설에 대한 역사문학적 분석이 전혀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p.101


투르게네프는 당시의 사회 상황이 자신의 견해에 끼친 영향 아래서 자신의 사상과 이념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의 견해는 시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p.109


지식여행 출판사의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읽으면서 든 의문점이 있다. 책은 3개의 장과 해제 그리고 옮긴이의 말로 구성되어 있다. ‘2장 햄릿과 돈키호테’는 투프게네프가 쓴 글이다. ‘1장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같은 듯 다른 인생’과 ‘3장 햄릿과 돈키호테 안의 광기’는 투르게네프가 아닌 다른 저자의 글로 보인다(1장은 확실히, 3장은 아마도). 해제를 쓴 디타 뮐레로바의 인용 중 3장의 내용은 없다. 3장의 글은 두 캐릭터가 공히 ‘광기’를 표출하는 인물들임을 주장하고 있다.


돈키호테와 햄릿은 사내다운 전사이다. 전자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미친 사람이지만 후자는 확실히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어쨌든 두 인물은 미친 상태로 불의와의 전쟁에 나선다. 둘 다 똑같이 “무모하다.” p.84


2장의 주장과 반대되는 내용도 종종 나타난다. 예를 들어 2장의 햄릿은 “일반 백성들을 혐오”(p.52)하지만 3장에서는 “하층민들에게 신경을 쓰고 온정적”(p.89)이다. 또 2장에서는 오필리아에 대한 햄릿의 감정이 “냉소적이거나 과장되어”(p.58) 있다고 평한 반면 3장에서는 같은 인용구에 대해 “오필리아를 향한 햄릿의 사랑”의 “진실이 드러난”(p.95) 장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3장 햄릿과 돈키오테 안의 광기’의 저자는 누구일까. 투르게네프가 햄릿과 돈키호테의 유사성을 ‘광기’에서 찾고 싶어 쓴 글일까. 그렇다면 2장과 3장의 글에서 보이는 괴리의 이유는 무엇일까.


“한 시인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시인이 살아온 환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 괴테 p.34


투르게네프가 인용한 괴테의 문장처럼 『햄릿』과 『돈키호테』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시대를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를 이해하기 위해선 작가가 살았던 19세기 러시아를 알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햄릿과 돈키호테를 문학의 테두리안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학 작품으로서의 『햄릿』과 『돈키호테』를 알고자 하는 독자보다는 투르게네프가 문학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바라본 시각이 궁금한 독자에게 더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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