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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N. K. 제미신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평점 :
22개의 단편을 모은 566페이지의 책을 읽는데 얼마나 걸릴까? N.K. 제미신의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얘기다. 책에는 SF와 환상 장르의 단편이 가득하다. 작가의 데뷔작인 「비제로 확률」(2009)부터 책이 출판된 2018년까지의 작품까지. 6쪽에 이르는 짧은 것부터 50쪽에 가까운 것까지. 작가가 그려내는 한계 없는 시공간을 같이 떠돌다보면 내가 앉아 있는 이 곳이 낯설어질 지경이었다. 하나의 단편이 끝날 때마다 '다음은? 그 다음은?'하며 책장을 넘기다보니 어느새 '감사의 글'과 마주하게 됐다.
이 책은 좀 특별하다. 휴고 상을 수상한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인 자신의 정체성을 도드라지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인종적)정체성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반영됐다기 보다는 작가 자신이 의식적으로 작품을 그렇게 썼다. 대학에서 심리학과 상담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전 직업은 당연하게도 상담 심리사였다. 일을 하는 동안 글쓰는 일 외에 저자가 관심있었던 두 가지 활동이 있다. 하나는 SF와 환상문학,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에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성차별과 인종차별 및 여러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별이라는 주제를 역시 오랫동안 즐겨온 문학에 접목해 특별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SF와 환상문학은 "중세 유럽과 아메리카 식민지화"가 주무대였고 이성애자 백인 남성이 쓴 것이 아니고는 출판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이런 출판 시장에 "흑인 여성으로서 SF와 판타지를 사랑하기"로 결정한 작가의 용기에 존경을 보낸다. 그녀는 자신이 "쓰는 소설에서 나 자신을 제외시킬 수는 없"었고 그런 그녀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현재 SF, 판타지 문학에서 작가가 이룬 성취가 그 증거다. 그냥 그녀의 단편집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N.K. 제미신의 작품이 구태의연한 SF와 다른 어떤 독특함을 가지고 있는지.
2002년에 SF와 판타지를 쓰고 싶은 흑인 여성으로서, 내게는 작품을 출간한 기회도, 비평가들의 눈에 띌 기회도, 중세 유럽과 아메리카 식민화를 끝없이 변주하는 내용 말고는 원하는 것이 없어 보이는 독자층의 인정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
p.8, 책머리에 中
그 글(2013년에 쓴 에세이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은 … 내가 흑인 여성으로서 SF와 판타지를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에 대한 사색이기도 하다. SF와 판타지 그리고 그 업계에서 뿜어 내는 인종차별과 내가 스스로 내면화한 인종 차별에 맞서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야 했는지. 내 민족에게 이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라밍 아무도 없음을 깨닫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내가 보고 싶은 미래를 자아내기 시작하자 얼마나 흐뭇한지.
p.12, 책머리에 中
당연하게도 저자가 "작가로서, 그리고 운동가로서 성장한 과정을 기록한 연대기"인 단편집에서는 두 가지의 강렬한 뉘앙스가 담겼다. 등장인물의 인종적 다양성에 대한 남달리 세밀한 묘사와 시공간을 뛰어넘는 차별의 보편성이다. 대중 소설에서 '창백한 피부에 하늘 빛 눈동자, 태양을 닮은 머리칼...'의 인물은 대개 주연급이다. 이런 묘사는 소설의 주인공이 고난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고 잘 생겼다고 서술되는 것 만큼이나 관습적이다. 주요 등장인물 특히 여성에 대한 제미신의 다음과 같은 묘사는 대중 소설의 그것과 구별된다.
그 여자 기억하나? 키가 아주 크고 갈색 피부에, 근사한 얼굴에 머리를 밀고, 솔직한 즐거움 속에서 애정이 가득한 모습으로, 먹구름 회색 옷을 잘 차려입은 그 여자 말이야.
p.24,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 中
부자들이 의뢰하는 조각상도 그녀의 입술처럼 탐스럽지 않았고, 그녀의 뼈대처럼 우아하지 않았다. 설탕을 입힌 건포도도 그녀의 피부처럼 유혹적으로 검지는 않았다.
p.434, 「수면 마법사」 中
다름에 대한 배제와 차별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문제지만 아주 먼 미래에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을 모양이다. 미래를 그리는 소설들에서 작가들이 끊임없이 그 문제를 다룬다. SF 라는 장르가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할 뿐 현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까. 다양한 차원의 차별은 지금의 세계가 풀어야할 중요한 문제다. 아니면 배제와 차별의 문제가 그 근원이 언제인지도 모를만큼 오래 전부터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것이기 때문일까. 그 해소나 소멸이 가능하기 위해선 인간 존재가 먼저 중대한 변화를 맞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지늘은 이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지 이해한다. 존재함으로써, 지늘은 그들이 자신이 대수롭지 않음을 상기하게 만든다. 다름으로써, 지늘은 그들이 "적"을 재정의하게 만든다. 스스로 최선을 다함으로써, 지늘은 그들에게 가진 잠재력을 다 활용하라고 부추긴다.
p.246, 「졸업생 대표」 中
"생김새가 참 반반하시군요, 마드무아젤 두몬드. 그런데 당신 같은 검은 여인들이 과거에 제 조상들을 꾀어 아주 저질스런 짓을 하게 했고, 그래서 제 조상들은 혼혈 자녀를 명예롭게 키워 그 일을 속죄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군요.
…
어차피 백인들에게 우리는 전부 비슷하니까요. 비록 나는 혈관 속에 가장 순수한 프랑스인의 피가 흐르고, 당신은 아프리카 정글에서 곧바로 넘어온 사람이나 다름없다 하더라도!"
p.129, 「폐수 엔진」 中
작가는 정신을 시스템으로 다운로드, 업로드 할 수 있는 세상을 그린다. 그 정신은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네트워크의 카오스에서 태어난 존재 혹은 변칙적 진화를 통해 생겨난다. 생물학적인 실체에서 유래한 인간은 자신들과 구분할 수 없게 진화한 그 존재와 공생할 것인가 혹은 배제할 것인가. 이것은 현실의 인종적, 계층적 차별과 배제의 문제에 대한 은유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작가의 질문이다.
N.K. 제미신의 단편집 읽기는 상상력의 바다를 헤엄치는 일이자 22개의 세계를 여행하는 일이었다. 하나의 세계를 읽고 이해해 머리 속에 그리는데 일정의 시간이 걸리는 독자에게는 22개의 세계가 무한에 가깝게 느껴졌다. 작품의 배경은 IT 네트워크 내부에서 인간화된 전기 신호가 창조한 세계에서 화성 너머 소행성대의 우주 서식지를 지나 게센인이 사는 우주 연합에 이르는 공간을 넘나든다. 시간의 파노라마는 근대의 제국주의 시대부터 추측 불가능한 미래의 어느 시점까지 펼쳐진다. 하나의 단편이 끝나고 그 세계를 머리 속에 배치하기 무섭게 다음 순서의 낯선 세계가 닥쳤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지만 그것을 해독해야 하는 머리는 종종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단편집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는 총천연색 초콜릿이 담긴 상자같다. 당신이 무엇을 고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이 가지각색의 맛으로 당신의 혀끝을 자극할 것임을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