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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처럼 문학 읽기 - 작가는 굳이 말하지 않고, 독자는 달리 알 길이 없던 문학 속 숨은 의미 찾기
토마스 포스터 지음, 손영민.박영원 옮김 / 이루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작가는 굳이 말하지 않았고, 독자는 달리 알 길이 없었던 문학 속 숨은 의미 찾기
부제
책 제목보다 부제가 더 눈에 띄었다. 읽긴 읽었는데 검은 글자만 안구를 스쳐간 느낌이 책을 읽을 때 종종 든다. 시를 읽기를 멀리하는 이유이기도 한 이 '느낌'은 '이해하기 어렵다'에서 시작된다. 분명 한글로 된 문장인데 어려울 때가 있다. 앞뒤 문장과의 맥락을 모르겠고 뜬금없이 등장하는 표현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모호함에 빠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놓치고 있는게 뭘까?" 서사의 재미에 휘둘리기보다 의미를 캐내는 읽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이런 궁금증이 늘어만 간다.
토마스 포스터 미시간대 영문학과 교수의 『교수처럼 읽기』는 문학 읽기의 (전문가적?) 비법을 공개(?)하는 책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비법은 그 단순명료함면에서 칭찬할 만하다. 포스타 교수에 따르면 단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기억, 상징, 패턴"
기억, 상징, 패턴. 이 세 가지야말로 독서에서 전문가와 일반인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p.13
물론 수학 공식을 외웠다고 해서 수능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 것처럼 비법을 알았다고 문학 작품을 투시할 수 있는 건 (당연하게도) 아니다. 원리 다음은 유형 정복이고 마지막 단계는 자유로운 활용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세 가지 문학 해독의 원리를 제시하고 그것이 어떻게 실제 작품에 적용되는지 실례(實例)을 제시한다.
그런데 문학 교수들이 책을 읽을 때는 이야기의 감정적인 차원에도 반응하지만 대개는 다른 요소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이 작품의 감정적인 효과는 어디서 오는가? 등장인물은 누구와 비슷한가? 이런 장면을 전에 본 적이 있는가? 단테(혹은 초서나 컨트리 가수 멀 헤거드)가 이런 말을 했던가? 이런 의문들을 제기하는 습관을 갖추거나 문학 작품을 이런 식으로 보게 된다면, 새로운 관점에서 문학 작품을 읽고 이해하게 될 것이고, 독서가 더 보람 있고 즐거워질 것이다.
pp.12-13
안타깝게도 저자가 제시한 첫 번째 비법에서부터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었다. 문제의 비결은 '기억'! 하루가 다르게 뽀얗게 지워겨 가는 기억력을 노력으로 극복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하니 재빨리 첫 번째 단계를 수긍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이 '기억'의 문제는 나머지 두 가지 비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이미 읽은 작품들을 기억해야 두 번째, 세 번째 비법인 '상징'과 '패턴'을 찾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이래서 공부는 젊을 때 하라는 거였다.) '기억'을 단념하니 '상징'도 '패턴'도 먼나라 이야기다. 이제 '교수'처럼 읽기는 단념하고 이 책을 '자기개발서'처럼 읽기로 한다.(자기개발서는 저자에게 한정된 개발의 방법을 소개하는 책으로 독자에게 그 방법들이 얼마나 유용할 지는 책과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상징'이나 '패턴'을 알아보기 위해선 작품과 작품 사이의 연계성을 '상호텍스트성'이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이나 설정이 다른 작품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하는 걸 말한다. 이런 관련성을 알아볼 수 있을 때 각 설정들이 같은 맥락 안에서 의미를 풍부하고 만들고 있는지 혹은 이전의 가치를 비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책과 책이 주고받는 '상호텍스트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개개의 문학작품은 읽을 때마다 나름의 의미를 지닐 뿐 역사성을 알아보거나 더 넓은 의미망 속에서 작품이 갖는 위치 등은 알 수 없게 된다.
이전 작품과 새로운 작품들 간의 이런 상호작용든 여러 차원에서 늘 일어나는데, 비평가들은 시나 소설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 현상을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라고 부른다. '상호텍스트성'은 텍스트에 다층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독서 경험을 더 깊고 풍부하게 해주는데, 그중 어떤 의미는 독자들이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작품이 다른 텍스트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이 인지할수록 똑같거나 비슷한 점을 더 쉽게 알아볼 수 있고, 작품이 더 생기를 띠게 된다.
pp.63
상징과 패턴을 인지하고 해석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독자가 작품에 대해 똑같은 모양의 이해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인 요인이 문학 독해에도 영향을 미친다. '글을 어떻게 이해하는가'하는 문제에는 나의 특성도 반영되는 것이다. 독자의 생각이 편향돼 있다면 작품이 제시하는 방향과 상관없이 나의 시선만을 확인하게 된다. 책을 읽는데 있는 이것처럼 무서운 일도 없다.
독자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작품을 경험한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수준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강조하고, 그런 차이가 작품의 한 측면을 서로 다르게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분명 각자의 역사, 즉 지금까지의 모든 독서 경험을 동원하지만, 그와 동시에 교육 정도, 성별gender, 인종, 계층, 종교, 인간관계, 철학적 성향을 투영하게 마련이다(그 밖에 다른 요소도 포함될 수 있다). 이런 변수 들은 필연적으로 독자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렇다면 독서에서 상징만큼 독자의 개성이 분명히 드러나는 측면도 없을 것이다.
p.157
저자의 지적대로 '창작'하는 독서는 지양되어야 한다. '상징'과 '패턴'을 이해해 보겠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 끝에 저자의 의도와 아무 상관없는 먼나라에 도착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문학 작품을 쓰는 일은 상상의 활동이라는 점을 명심하라. 독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어떤 작품이 말하려는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싶다면 반드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당 작품이 우리가 원하는 그 모든 것을 의미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 작가의 상상과 무관한 우리만의 상상에 불과하고, 또 그게 뭐든 작품에서 보고 싶어 하는 무엇을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그것은 독서가 아니라 창작이 된다.
p.183
시대성을 고려한 독서에 대한 지적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21년을 사는 우리의 눈으로 청동시 시대의 아킬레우스를 재단하지 말 것이며, 현재 먹거리를 기준응로 제임스 조이스 작품의 파티 음식을 품평해서는 안된다. 또 1950년대 할렘가의 풍경을 21세기의 윤리 의식으로 재단하려한다면 작품의 의도와는 아무 상관 없이 도덕군자스런 평가만 늘어놓게 될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역사적 순간을 공유"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만약 독서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고자 한다면 최대한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그 작품이 원하는 의도 그대로를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제시하는 공식은 다음과 같다.
당신만의 눈으로 읽지 말라.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서기 2천 몇 년이라는 현재의 입장에 고정되어 있는 당신만의 시각으로 작품을 대하지 말고, 그 이야기가 쓰인 역사적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관점에서 바라보라는 뜻이다.
pp.321-322
책 중간 중간 저자의 문학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면 묻고 싶을 질문들을 배치했다. 책의 서술 자체도 수월한 강의를 듣는 듯 편안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문답을 읽고 있자만 이런 교수님 강의를 한 학기쯤 실제로 듣고 싶다. 어떤 황당한 질문에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답을 줄 것만 같다.
책에는 문학을 파헤칠 수 있는 여러 기법과 사례들이 들어 있다. 저자의 비법을 다 활용못해도 예로 등장하는 작품을 읽어보고 해당 분석을 이해해 보는 정도만으로도 가치있을 것같다. 셰익스피어에서 시작해 온갖 서양 작품의 의미를 무겁지 않게 말을 건네듯 풀어내는 저자의 태도 덕에 읽기만해도 흥미진진했다.
저자는 다양한 분야의 읽기를 안내하는 책을 냈다. 이른바 '교수처럼' 시리즈라 할만하다. 『교수처럼 소설 읽기』, 『교수처럼 시 읽기』, 『교수처럼 논픽션 읽기』, 『교수처럼 문학읽기(어린이판)』. 단, 국내에는 『교수처럼 문학 읽기』 단 한 권만 번역되어 있다. 다른 책은 몰라도 『교수처럼 소설 읽기』는 꼭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