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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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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겨울이 지나가고, 우리에게 봄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뒷산에서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와 마치 책 속의 세상을 온전히 여행하는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베란다로 보이는 산에서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하얀 구름이 수놓아진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책을 읽고 있으면 신선이 된 기분이다.


 하지만 이윽고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우리는 전쟁과 핵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말하는 정치인들을 볼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어쩌면 이렇게 다툼을 좋아하고, 시민들의 공포를 부추기는 사람이 한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이 되고, 정치인이 되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를 당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우리가 그동안 정치를 외면한 탓에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이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거짓말, 막말, 접대를 좋아하는 탐욕적인 사람이 저곳에 앉아 있어 우리 사회는 엉망이다.


 헬 조선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꿈꾸고 있으면, 이윽고 그저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많은 젊은 청년이 이민을 가고 싶다고 말하고, 한국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에 여행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숨 쉬는 것조차 답답한 여기를 잠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읽은 책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는 겨울이 다가오면, 한국을 떠나 남쪽 나라에서 체류한 저자의 여행을 담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종종 저자가 말하는 한국의 어떤 부분에서는 잠시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지만, 책은 따뜻한 봄을 맞은 휴식 같았다.


 아마 내가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를 유독 편하게 읽은 이유에는 올해 내가 대학 복학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다녀보았지만, 전혀 어떤 가치를 발견할 수 없었던 대학 생활을 비싼 등록금과 왕복 4시간에 이르는 거리를 오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답답했다.


 오죽하면 '대학 개강일 이전에 로또 복권에 당첨되면, 당장 때려치워야지!' 같은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기도 하고, '대학 등록금 때문에 악착같이 모은 적금으로 확 여행이나 떠날까?' 같은 용기가 없어서 실천하지 못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의미를 모르는 대학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게 너무 아까웠다.


 한국에서는 대학에 다녀야 하는 일에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고, 갈 수 있다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하는 일이다. 어떤 학교의 이사장이 올해 SKY에 입학한 사람이 적다며 교사를 질책했다고 한다. 참, 한국에서는 느긋한 여유를 가지며 사는 일이 어려운 것 같다.


 그런 까닭에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는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한 달 동안 머무르며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사람을 만나는 저자의 여행은 부러웠다. 답답한 수업이 있는 대학 캠퍼스를 오가는 일과 비교하면 정말 여행이 백배, 천 배는 더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았다.


인적이 끊긴 거리를 걸어 돌아오는 길, 수연 씨가 못다한 이야기를 털어놓듯 말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바텐더라고. 한국에서는 바텐더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해서 용기를 못 냈는데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단다. 바텐더 자격증도 따놓았다는 스물다섯 그녀는 돌아가면 새로운 길을 걸어가겠구나. 그래, 여행이 우리가 품은 질문에 답을 주진 않지만 어딘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주긴 하지. 일단 나아가면 결국 답도 찾을 수 있으리라. 아니, 평생 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던져진 질문과 마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수연 씨도, 하나 씨도, 나도 저마다의 질문을 품고 이곳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본문 74)


 블로거 김동범(바람처럼) 님은 지금 세계 여행을 하고 있다. 무작정 여행을 떠나서 무작정 돌아다니고 있는 그분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과감히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저자도 마찬가지다. 6~7개월 일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을 현실에서 몇 명이 과감히 선택할 수 있을까? 그래도 안정적인 직장, 내 집을 마련해 거주하는 일이 아직은 우리에게 최선의 일로 손꼽힌다. 솔직히 나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그렇듯이, 다른 사람도 마음속에는 자유로운 삶을 향한 갈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과 집을 오고가야 하는 대학생도, 직장과 집을 오고가야 하는 직장인도, 새 일을 찾아 떠도는 은퇴자도 모두 한결같이 자유롭게 내 삶을 살고 싶을 것이다. 인생은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일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낯선 나라 발리, 스리랑카에서 알지 못했을 사람과 만나거나 알지 못했을 길을 걷는 일은 대단히 평화롭게 느껴졌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호흡을 길게 가지고 읽을 수 있는 저자의 글이 더욱 책을 평화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은 후에 관광 명소를 찾아가는 틀에 박힌 여행이 아닌, 길을 걸어 다니며 산책을 할 수 있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머무를 수 있는 여행을 해보고 싶어졌다. 당장 대학 등록금으로 과감히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애써 그 마음을 책으로 여행하며 오늘을 나는 버티고 있다.


 답답한 일상 속에서, 다시 마주해야 할 불편함 속에서 여유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를 소개해주고 싶다. 여러 욕심이 뒤엉켜 불협화음을 내는 목소리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면, 잠시 책을 읽어보며 다른 곳에 있는 나를 상상해보자. 지친 몸을 일으켜줄 시간이 될 것으로 믿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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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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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시드니'라는 도시를 아는가? 나는 '시드니'이라는 도시를 잘 몰랐다. 도시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시드니 올림픽?'이라며 문득 올림픽이 떠올라 검색을 해보니 2000년도에 시드니에서 하계 올림픽이 열렸다고 한다.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람은 자신이 관심이 없는 분야는 이렇게 모르는 법이다.


 시드니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항구 도시로서, 한국과 사뭇 다르게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도시하면, 나는 문득 일본의 교토가 떠오른다.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워낙 자주 일본 문화를 접한 탓에 고요하고, 도시의 시간이 한적할 것 같은 이미지가 교토로 자리 잡았다.


 한국도 분명 어디에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한적함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은 워낙 어디를 가더라도 '빨리빨리' 문화가 깊숙이 베여있는 까닭에 한적하게 흐르는 시간의 여유를 천천히 음미할 수가 없다. 길었던 설날 연휴를 다시 떠올려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5일간의 긴 휴식이 있었던 설날 연휴지만, 우리는 고향에 다녀오거나 친척들과 만나면서 바쁘게 움직였다.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한 일이라고는 출근 시간(혹은 등교 시간)에 맞추느라 부족했던 잠을 보충한 일밖에 없지 않을까?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했던 몸을 8시까지 재우는 일 말이다.


 비록 그렇게 휴식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휴식 중에서도 '빨리빨리'를 잊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떠올린 도시 교토의 이미지는 그 자체가 고요함과 한적한 여유를 가졌고, 오늘 소개할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의 두 저자가 머문 시드니 또한 고요함과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는 시드니에서 30일간 머무른 박연준과 장석주 두 작가의 글을 엮은 에세이다. 1장은 박연준 작가의 글이고, 2장은 장석주 작가의 글이다. 비록 두 사람이 부부라고 하더라도 두 명의 작가가 한 권의 책 분량을 반반으로 나누어서 만든 건 재미있는 일이다.


 책을 읽는 동안 두 사람의 시선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고,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른 시점에서 적은 글이 상당히 재밌었다. 특히 남자와 여자로 성별이 다른 두 사람이 낯선 도시 시드니에서 보내면서 눈길을 준 장면이 다르다는 게 분명하게 드러났다. 역시 부부라고 해도 보고, 생각하는 건 다른 것 같았다.


 박연준 작가의 글은 감성이 좀 더 깊게 묻어나왔으며, 장석주 작가의 글은 좀 더 시드니의 풍경과 만난 사람의 일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역시 여성이 조금 더 감성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사람들의 말이 맞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느낀 이런 차이가 시드니를 좀 더 즐겁게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항구도시인 시드니는 얼마나 아름다운 빛을 머금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볼 수 있을까? 나도 시드니에 가면 하루가 48시간인 것처럼 느껴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고, 조용한 방에서 타닥타닥 아이패드 블루투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간혹 새소리를 들으며) 글을 적는 것뿐이라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시긴 고요하게 흐른다는 건 도대체 어떤 걸까? 그저 '빨리, 빨리' 문화를 고집하는 한국에서는 좀처럼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아침과 낮은 내내 일과에 매달리느라 정신이 없고, 밤에는 불을 켠 네온사인과 시끄러운 음악이 차지하는 한국에서는 '고요함'이라는 단어 자체를 말하는 게 어렵다.


 얼마 전에 뉴스 보도를 통해서 한국의 젊은 세대 중 상당수가 '강박증'이라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거나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특정 행동을 고집하는 상태를 강박증이라고 말하는데, JTBC 뉴스에서 인터뷰했던 정신과 전문의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20, 30대 젊은이들이 처해있는 상황들, 미래에 대한 불안. 긍정적인 걸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기여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살아야 하고, 당장 할 일이 없더라도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긴 그런 습관이 '빨리빨리' 문화를 더욱 재촉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특정 행동을 고집하게 된 것은 아닐까?


 성공에 대한 집착은 놀라울 정도로 강하지만, 우리는 그 집착과 비례하여 불안과 불신감 또한 상당히 높다. '오늘을 즐기게 되면, 내일 후회한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우리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서 고요하다고 말할 수 있거나 하늘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을 하는 일조차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걷기로 했다>에 이런 글이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과도한 경쟁으로 사람들의 피를 말린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이유 불문하고 어릴 때부터 과도한 경쟁에 휩싸여 지냈고, 끊임없이 수치로 계산된 평가를 받아왔으며 다른 사람과 비교당했다. 이기지 못하면 뒤처지는 것이고, 앞서지 않으면 지는 것이라고 배웠다. 2등은 덜 값진 것이라고 배웠다. 무엇이든 옆 사람보다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만들었다. 도대체 왜? 왜 옆 사람보다 항상 잘해야 하는 것일까?


한국이 싫어서, 다른 나라로 떠나겠다는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본문 83)


 한국에서 우리는 어디를 가더라도 남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남과 경쟁하지 않는 것은 도태되는 것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푸른 하늘이 화창한 날, 혼자서 책을 읽거나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분에 넘치는 일이 되었고, 빠르게 흐르는 시간의 낙오자가 된다는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살 수는 없을까? 흐르는 시간이 적막과 같을 때도 우리는 잠시 그 고요함에 빠져서 머릿속에 아무것도 아닌 일을 떠올려볼 수는 없는 걸까?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책을 읽으며 두 작가가 보낸 30일의 시드니는 몇 번이고 나에게 묻게 했다.


햇살을 흠뻑 받은 꽃들이 만개한다. 연보라색 등꽃들이 숭어리숭어리 탐스러운 꽃송이들을 늘어뜨리고, 체리블라썸은 솜사탕 같은 분홍꽃들을 가지마다 활짝 피웠다. 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된 교외 생활은 무중력 상태와 같다. P와 나는 고요하고 청정한 지역으로 피정을 나온 사람들 같다. 우리는 이 단순하고 느리고 조용한 삶이 좋다. 분주한 서울과는 다른 삶의 속도,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시드니에서 우리는 지나온 삶의 시간들을 돌아본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음 속에서 쫓기는 짐승처럼 살았던가! 서울에서의 하루는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가버렸던가? (본문 124)


 나는 한국의 평범한 한 도시 속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저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애써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자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잔다. 이것도 어쩌면 일종의 강박증일지도 모른다. 여유를 느끼고자 하지만, 여유가 좀처럼 여유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천천히 걸으면서 지금 걷는 길의 아름다운 두려움을 알아야 한다. 지나가면 우리는 뒤돌아 걸을 수 없다. 책의 제목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는 길을 걷는 동안 빨리빨리 가느라 찰나에 불과한 지금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할까 서로에게 건네는 말이 아닐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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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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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6년 새해를 맞아 많이 사람이 올해 꼭 실천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바로 여행이 아닐까. 여행은 우리의 버킷리스트에 항상 들어있는 단어로, 좀처럼 일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가 항상 상상하는 일 중 하나로 가슴 속에 남아있다. 아마 이 글을 쓰는 나와 글을 읽는 당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올해 대학교에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여행을 한번 떠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년에 100만 원을 정기 예탁을 해놓았다. 이번 4월에 그 100만 원을 찾게 되면, 벚꽃이 피는 일본으로 꼭 여행을 가보고 싶다. 교토와 오사카, 그리고 아키하바라. 오타쿠인 내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그 장소에 말이다.


 그러나 말은 이렇게 '갈 것이다.'라고 말하더라도 막상 그때가 되면, 또 어떤 선택지를 고를지 모른다. 우리는 항상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하고 떠날 것이라 말하지만, 사람들은 마음처럼 훌쩍 떠나지 못한다. 내 마음은 이미 가벼운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저곳을 떠돌지만, 내 몸은 TV 앞에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곳의 관광지만 둘러보는 패키지 투어도 매력적이지만, 본디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혼자서 낯선 곳을 걷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을 것이다. 말은 쉽게 나오지만, 그런 여행을 떠나는 일은 용기가 없으면 좀처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늘 나는 여행을 떠나는 용기를 다시금 곱씹어줄, 여행이라는 게 왜 매력적인지 말해주는 한 권의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위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손미나 전 아나운서(현재는 작가 겸 허핑턴포스트 담당자)가 집필한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이라는 책이다.


 나는 '페루'라는 나라를 솔직히 잘 몰랐다. 페루는 남반구에 있는 우리나라와 계절이 정반대인 곳이라고 한다. 브라질과 함께 남아메리카에 있으며, 그곳에는 우리가 익히 한 번은 들어보았을 '마추픽추' 유적과 함께 '나스카 문양'이 있는 나라였다. (역시 사람의 지식은 아는 것만 알 수밖에 없다.)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는 페루를 여행하는 손미나의 여행기다. 그녀는 파트너 레이나와 함께 그곳을 방문했는데, 책을 통해서 그녀와 레이나가 겪은 고산병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페루의 생생한 모습을 그대로 읽어볼 수 있었다. 아주 담백한 여행기라는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여행기를 저술한 책이지만, 이 책은 한편의 에세이집이다. 나는 책을 통해서 그녀가 페루에서 만난 한 명의 친구와 그곳에서 우연히 인연이 된 한 명의 택시기사와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고 현지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통해서 '이래서 여행은 멋진 것 같다.'라며 감탄했다.


소박하지만 행복했던 우리의 만찬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갈 시간. 아주머니는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서둘러 훔쳐내고 다정하게 포옹하며 볼에 키스를 해주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진정한 기쁨으로 가득했지만, 분명 삶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도 함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아주머니, 행복하세요?"

그녀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이내 내 손을 꼭 쥔 채로 이렇게 말했다.

"젋은 아가씨, 우리의 땀이 곧 우리의 삶이에요. 인생은 그런 거지요. 어디에서 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똑같아요. 중요한 건 가슴에,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있죠. 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 당신도 부디 행복하세요."

그 순간 아주머니가 용맹한 아마존의 여전사처럼 멋져 보였다. 우리의 땀이 곧 우리의 삶이다... 어둠을 가르며 달리는 택시 안에서도, 낯선 호텔 방에 누워 잠을 청하면서도 그녀의 한마디가 계속 귓전에 울렸다. 갑자기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로 인해 마주하게 되는 일들이 얼마나 값진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비행기가 결항된 것이 고맙기까지 했다. (본문 92)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관광지를 둘러보기 위한 목적이 전부가 아니다. 비싼 돈을 내고,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떠난다'는 의미는 내가 가진 것을 잠시 내려놓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미나의 페루 여행기에서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우연한 만남이 무척 소중한 인연이 되고, 친구가 되어 집에 초대를 받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던 고인이 된 아버지의 넋을 위로받기도 했다. 사람이 여행을 떠나 사람과 만나고, 같은 하늘을 다른 곳에서 바라보는 일은 이래서 멋지다.


 우리가 여행을 동경하는 이유도 분명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매일 같은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지만, 우리가 쳐다보는 하늘은 그 장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내가 방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자유를 꿈꾸는 하늘이고, 내가 자전거를 타며 바라보는 하늘은 강하게 페달을 밟으며 손을 뻗게 하는 하늘이다.


 낯선 저 페루의 하늘은 어떤 하늘일까? 내가 서보지 못한 저 땅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어떤 하늘일까? 무척 궁금했다. 책을 통해서 컬러로 선명하게 인쇄된 사진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책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아야 우리는 그 하늘이 우리에게 주는 감명을 받을 수 있어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나는 겁쟁이다. 매해 목표로 여행을 한 번은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종이에 까만 샤프로 쓴 글로 옮겨 적어 다짐했다. 그러나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매번 나는 똑같은 변명을 했다. '돈이 없다'는 상투적인 변명을 하며 그곳에 떠나지 못하는 나를 감쌌고, 나는 언제나 제자리다.


 오늘도 여행을 다니는 블로거의 글을 읽어보았다. 부럽다고 생각했다.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슴 한편으로 '나는 저렇게 떠날 수 있을까?'는 질문을 던지면서 현실적인 고민을 했다. 당장 책을 사느라 통장에 6천 원밖에 남지 않은 잔액을 보며 한숨을 쉬었고, 내 가슴에 몇 번이고 되물었다.


"나는 정말 일본에 가고 싶은가? 일본에 간다면, 부족한 일본어로 길을 묻거나 찾을 수 있는가? 일본에서 정말 살아갈 수 있는가?"


 어정쩡하게 인생을 살았던 나는, 스스로 질문을 하면 항상 어정쩡하게 대답한다. 나는 잘난 체 하면서 글을 쓰지만, 스스로 잘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냥 여느 20대와 마찬가지로,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오늘을 고민하면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나의 고독을 글로 옮기며 몰래 눈물을 훔친다.


 비록 낯선 곳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소중한 인연을 찾는 여행을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지금 떠날 수 있는 인생이라는 여행에서는 겁쟁이가 되어선 안 된다. 책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를 읽으며 다시금 여행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어 좋았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읽은 글 일부를 남긴다.


"그때가 참 좋았지. 근데 지금도 좋아. 미나야, 네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인생은 모든 순간이 그 고유의 가치가 있는 거란다. 겉으로 보이거나 소유하고 있는 것들과 상관없이 의지를 가지고 추구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 법이며 그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단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기쁘다. 늘 행복해라." (본문 283)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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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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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스물여섯에 숫자 하나가 더해지는 새해가 되었지만, 아직 나는 눈앞에 쌓여있는 책을 하나둘 읽는 데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은 소설은 금방 읽어버리지만, 시집이나 인문학은 오랫동안 책을 붙잡고 있어야 해서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책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건 행운이다.


 그러나 책의 세계에 빠진다고 하더라도 머릿속에 '???' 기호를 띄우게 되는 책을 만나기도 한다. 현재 알라딘 신간평가단 활동으로 받은 책 <우물에서 하늘 보기>가 바로 그렇다. 나이가 스물일곱이 되었어도 나는 아직 시를 잘 읽지 못한다. 여전히 시는 잘 상상할 수 없는 문학으로 남아있다.


 상상력이 부족한 탓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시를 읽기 위해서는 시를 분석하는 일이 아니라 상상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는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된 문학으로, 우리가 시를 알기 위해서는 작가가 무엇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상상해야 작가와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는 평범히 시를 나열한 책이 아니다. 시 한 편의 한 구절과 함께 시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다. 시를 지은 시인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우리 현실을 비탄하며 시를 말하는 책이기도 했다. 그동안 읽은 시집과 달랐기에 책을 도중에 덥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를 잘 모른다. 그래서 글을 쓸 때 어느 부분에서 시를 적절히 활용할 수 없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에서 저자가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한 편의 시를 인용해 독자를 설득하는 부분은 강한 힘이 있었다. 책을 읽으며 역시 글은 '상상력'이 추가되면,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글을 쓸 때마다 나는 자주 머리를 45도 왼쪽으로 돌리면 보이는 하늘을 바라본다.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답답할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며 상상한다.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좀 더 쉽게 사람들이 글을 편안히 읽을 수 있고, 어떤 단어와 문장을 사용해야 하고 싶은 말을 쉽게 표현할 수 있을지.


 작가는 아니다. 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는 일이라는 건 이토록 어렵다는 걸 안다. 아무래도 나는 조금 더 감성적인 존재가 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시를 쓴 시인들은 사랑을 해보았고, 이별의 슬픔을 알았고, 손을 뻗어도 닿지 못하는 좌절을 알았다. 과연 나는 얼마나 그 시인들처럼 경험을 해보았을까.


 턱없이 부족하다. 스물여섯을 이제 갓 넘어선 나에게 인생의 경험은 보잘 것 없다. 결코, 쉽게 살아왔다고 말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지금도 저 소녀상 앞에서 대치하는 두 세력의 어떤 인물보다 나는 부족하다. 경험하지 못했고, 생각하지 못했고, 상상하지 못했다. 저절로 손에서 힘이 빠진다.


 나는 자주 티스토리 블로그(링크)를 통해서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마주하는 머리 아픈 문제를 언급했다. 쓸데없이 참견하는 게 아니라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20대 청년으로 당연히 관심을 지녀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고, 배운 것이 짧아도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을 넘어 입속에 가득 찼기 때문이다.


 단순히 십 원이 들어간 욕을 하면서 침을 '퉤' 뱉을 수도 있지만, 졸필을 쓰는 멋 모르는 놈이 글로 남기고 싶었다. 어제 발행한 <헬조선에서 아르바이트는 최저임금 포기가 조건?>(링크) 글도 이렇게 글로 남기고, 누군가 읽어줘야 한층 더 우리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는 작가가 들려주는 시에 담긴 이야기, 시를 통해 보는 이야기, 우리의 오늘을 잠시 시로 옮겨보는 이야기다. 앞에서도 말했다. 그런데 과연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단순히 시를 소개한 책이라고 말하기에 책에서 읽은 글은 지나치게 날카로운 부분이 있었다.


 그런 부분이 나는 인상적이었다. 나는 글을 적으면서 부족한 지식을 매꾸기 위해서 뉴스를 다시 읽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나'를 중심으로 다시 생각한다. 작가는 그 생각에 시를 끌어들였고, 시를 해석하며 담은 주장은 오랫동안 남았다.


 책을 읽는 동안 흔적을 남기고자 포스트잇을 듬성듬성 붙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는 이 책을 잊어버릴 것이다. 현실에 돌아가게 되면, 여기서 반박했던 그 현실을 자연히 받아들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되더라도 다시 블로그를 통해 이 글을 읽으며 오늘을 떠올리기 위해서 여기에 글을 남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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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라의구슬 2016-01-15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면서 하셨던 생각과 고민들이 진심으로 다가오네요. ^^ 좋은 글 계속 써 나가시길 응원합니다!

Mikuru 2016-01-15 21: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꾸준히 쓰겠습니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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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떠나고 싶다. 가을 단풍이 절정에 달한 지금 이 시기에 나는 유독 그런 감정을 강하게 느낀다.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유럽 도시의 풍경을 보고 싶고, 아직 내가 보지 못한 계절이 다른 일본의 풍경이 보고 싶다. 가을의 단풍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여행은 그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여행은 누구나 가슴 속에 묻고 있는 꿈이다. 하지만 부끄러운 꿈이기도 하다.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면, 곧장 떠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하니까.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하면, 우리는 '네가 그런 돈이 어디 있어?'이라는 핀잔을 들으며 '그러니까.'라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으니까.


 적금을 해제하고, 가진 물품을 처분해서 유럽 혹은 일본으로 가는 최저가 항공의 비행기 값을 예약할 수 있다고 치자. 만약 우리 중에 몇 명이 과감히 지금 가진 것을 다 처분하고, 다짜고짜 여행을 떠나려고 할까? 아마 정말 간절히 여행을 떠나고 싶거나 용기가 있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렇다. 모으고 있는 적금을 해제하면, 곧장 일본으로 갈 수 있는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있다. (운 좋으면 유럽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후일이 걱정되어 막상 떠나려고 하니 '나는 도대체 왜 가고 싶어 하는 걸까? 정말 가고 싶어?'라는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라딘 신간 평가단 활동으로 읽은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여행기의 저자는 그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우연히 만난 하나의 욕망을 채우고자 무턱대고 몽골의 알타이로 여행을 떠났다. 알타이의 갈잔은 저자에게 '당신은 여기를 방문한 최초의 한국인'이라고 했으니 오죽했을까.


 저자가 알타이로 여행을 떠난 이유는 특별하다고 하면 특별하고, 특이하다고 하면 특이하다. 책의 저자는 '갈잔 치낙'의 소설 '귀향'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읽은 후에 스스로 이유를 잘 알지도 못한 채 갈잔 치낙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서 일을 처리하고, 떠난 것이었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에서는 그렇게 무작정 알타이로 떠난 그녀가 여행 과정에서 느낀, 그리고 생활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평범한 여행기다. 하지만 이유가 특이했고, 한 번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몽골이라는 나라에 속한 알타이의 풍경은 저자의 눈과 귀를 통해 신비롭게 느껴졌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생각한 것은 오직 하나다. 과연 나는 <처음 보는 유목민>의 저자처럼 막연한 갈증을 채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인가. 에펠탑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어 파리로 떠날 수 있을까, 도쿄 아키하바라의 메이드 카페에 가고 싶어 일본으로 떠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나는 높은 확률로 떠나지 못할 것 같다. 바보 같은 이유를 핑계 삼아 과감히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를 나는 갖고 있지 않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통해서 보는 유럽의 풍경은 나에게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하지만, 나는 그 손에 '그래!' 대답하며 짐을 쌀 용기가 없다.


 언제나 나는 나약한 변명을 하면서 '운이 좋지 않아. 언젠가 떠날 수 있을 거야.'는 위로를 스스로 건넬 뿐이다. 통장 잔고에는 십만 원이 채 들어있지 않고, 글을 통해 조금씩 들어오는 돈은 달을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가장 배우고 싶은 피아노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하면서.


 그래서 나는 여행자가 되지 못한다. 도전자가 되지 못한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나를 잊어버리는 일임에도, 나는 나를 잊어버리는 용기를 갖지 못한다. 겁 많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방문을 잠근 채, 불이 꺼진 방 한구석에서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뿐이다.


 여행은 스스로 내가 모르는 장소에,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나를 드러내 나를 잊어버리는 하나의 방법이다. 여행을 선택하지 못하기에 나는 스스로 고독한 공간에 나를 집어넣고, 스스로 혼자가 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그러하며,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이 그러하다.


 오늘 읽은 책 <유목민의 여인>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오스트리아 관광객은 다음날 이른 아침에 지프를 타고 뽀얀 먼지와 함께 사라졌는데, 그들은 울란바토르에 폭우가 내려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남기고 갔다. 그제야 나는 내가 이미 일주일 이상이나 신문이나 방송을 접하지 않고 살았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늘이 도대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사실상 알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또다른 사실도 깨달았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거의 절반쯤은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었음을. 그건 예상치 못하게 아주 행복한 기분이었다. (본문 139)


 여행을 통해서 우리가 행복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까닭일 것이다. 관광과 다른 여행. 우리는 제각기 다른 인생에서 모두 고독한 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러나 그 여행은 너무 평범해서 우리는 새로운 일탈을 꿈꾼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 알지 못하는 곳에 가려고 한다.


 여행은 누구의 마음속에나 자리 잡고 있는 꿈이다. 나는 이 꿈을 실천하지 못한다. 통장 잔고를 보며 한숨을 쉬고, 책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상상할 뿐이다. 세상에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용기 있는 자다. 오늘따라 유독 나는 그런 용기가 부럽게 느껴진다.


 비록 에펠탑을 보기 위해 파리로 떠나지 못하고, 아키하바라에 있는 메이드 카페를 체험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지 못하지만, 오늘 나는 여기서 여행을 떠난다. 살며시 눈을 감고, 생각을 멈추고, 잠시 내 몸속,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낡은 문을 열어본다. 나를 잊어버리기 위해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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