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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종종 나를 괴롭히는 악질적인 괴물을 만난다. 그 괴물은 어릴 때부터 언제나 나를 괴롭혔고, 2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이 괴물을 스스로 이겨내고자 창과 검을 들고 맞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괴물은 나를 괴롭히며 내가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스스로 저주하며 끙끙거리게 해버린다.


 이건 어떤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 괴물은 바로 무료(無聊)함이다. 오늘 살아가는 것이 무료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덮치면서 '오늘 세운 계획을 실천해야 하는데, 도무지 할 기운이 나지 않아.'이라는 늪에 빠져 도무지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단순히 어떤 일을 하는 데에 무기력해지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이 멈춰 서서 허무한 감정 속에서 초점을 잃은 상태로 있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히 억지로 무엇을 하려다 도중에 그만두는 일을 반복하는데, 그때마다 상당히 큰 자책을 하면서 나에게 화를 낸다.


 어릴 적에 들었던 '넌 해봤자 안 돼.', '네까짓 놈이 뭐가 되겠다고.'이라는 말은 내 뇌 속 깊은 곳에서 되살아나서 나를 조롱하는 웃음을 만든다. 나를 덮치는 그 괴물에 저항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하지만, 잘되지 않아 자주 시간을 의미 없이 소비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나는 이후에 나 자신에게 화가 너무 난다. 그리고 크게 자책을 한다. '왜 이렇게 시간을 쓸데없이 보냈을까?'라며 괴로워하고, '언젠가 이렇게 내 삶에서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지면서 나도 갑자기 사라지는 건 아닐까?'이라는 두려움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몸을 떨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지금도 20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매일 플래너에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 이렇게 극심한 감정의 기복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사라질 것 같으니까.


 솔직히 이 부분은 아직 내가 겪은 우울증의 증상이 남아있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무료함이라는 괴물이 만드는 나를 이겨내고자 약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다른 생각, 좀 더 다른 풍경,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통해 이겨내려고 한다.


 피아노 레슨도 그래서 시작했고,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책은 어릴 적부터 혼자였던 내게 손을 내밀어 준 몇 안 되는 소중한 존재였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내 삶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나에게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오늘은 그렇게 걸어가는 도중 만난 한 권의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 책은 위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태도에 관하여>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인데, 이 책은 작가 임경선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책의 표지가 전해주는 뭔가 여백이 느껴지는 느낌 그대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태도에 관하여>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삶의 태도를 강요하지 않았다. 단순히 이야기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종종 한 이야기에 멈춰서 잠시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나는 전체적으로 우리의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나는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무료함'이라는 괴물을 이겨내기 위해서 내일 읽기로 미루어 두었던 책을 다시 펼쳐서 읽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태도에 관하여> 책을 펼쳐서 읽지 않았다면, 나는 또 나를 '바보 같은 놈'이라며 질책하며 아픈 주말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책은 잠시 어지러운 마음을 가진 내게 위로, 아니, 위로라고 말하기보다 아래로 축 처진 고개를 다시 들고 앞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태도에 관하여>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그런 이유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아래에서 글 한 개를 읽어보자.


'누가 뭐라든 난 이걸로 됐어'라며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돌이켜보면 왜 과거의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을까 안타깝다. 만일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며 또 하나의 인생을 자신에게 주어진 옵션이라고 착각하고 제멋대로 상상하던 나는 뭐랄까,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대안의 삶에 멋대로 싸움을 붙인 후 알아서 지고 있었다. 대안의 인생,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행여 있더라도 분명히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저쪽 인생의 나'도 똑같이 '이쪽 인생의 나'를 시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p24)


 '왜 난 그렇게 바보 같은 시간을 보냈던 거지?', '왜 더 해보려고 하지 않았던 거지?'이라는 자책감에 괴로움을 넌지시 느끼고 있을 때, 책의 거의 맨 앞에서 읽은 이 이야기는 정말 내게 힘이 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사는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안고 살아가겠는가.


 우리 인생은 모두 저마다 불확실한 위험함을 가진 선택지를 선택하는 우리의 의지에 의해서 그 길이 달라진다. 어떤 선택은 쭉 뻗은 길을 통해 앞으로 곧장 달려갈 수 있게 해주기도 하지만, 어떤 길은 땅으로 떨어지거나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빙빙 돌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은 불안한 여행이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우리는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시기하고, 괴로워하면서 스스로 상처를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태도에 관하여>의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그렇게 우리가 사는 삶의 태도였고, 다소 '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내게는 더 책이 고마웠다.


 언급한 작은 이야기 이외에도 책에서는 꿈에 대한 이야기, 사랑과 성에 대한 이야기, 연애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어디까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태도에 관하여> 이 책은 10대가 읽어도 괜찮은 책이고, 20대가 읽으면 정말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읽는 독자가 어떤 삶의 태도를 결정하도록 힘주어서 강요하지 않지만, 책을 읽는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잠시 내 삶을 돌아보며 '난 어떻게 살았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지?'이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주제로 이야기하는 책은 무수히 많다. 이나모리 가즈오 선생님의 <인생에 대한 예의>에서도 그 주제를 엿볼 수 있었고, 배우 류승수의 에세이 <나 지금 잘 살고 있는걸까?>에서도 그런 삶의 태도에 관한 고민을 읽어볼 수 있었다. 결국, 어디에나 이런 이야기는 있다.


 책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내 눈 앞에 펼쳐진 보이지 않은 인생에 대한 확실한 정답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삶을 사는 데에 참고할 수 있는 이야기, 내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이야기, 내가 혼자 끙끙 앓을 때 손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아직 내 삶을 사는 데에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 책 <태도에 관하여>가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강압적으로 '이렇게 사세요.' 하고 말하는 책이 아니라 고민에 빠진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책이기에 분명히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온기를 느끼며 읽을 수 있다고 믿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나른하고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의 방식을 항간에서는 예찬하지만, 그것이 가치 있으려면 어디까지나 자기 규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겸손한 주제 파악이 인간의 미덕일 순 있지만 삶을 팽팽하게 지탱시켜주진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내가 나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입하는 기분은 내가 생생히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실감을 안겨준다. 그렇게 조금씩 걸어나가는 일,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결국 열심히 한 것들만이 끝까지 남는다.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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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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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가 사는 한국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뿌린 한 시민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는데, 쓰레기 무단 투기 죄가 아니라 상당히 말도 안 되는 법을 적용하여 압수 수색이나 강한 처벌이 논의되어 큰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아마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이라는 말과 함께 가장 엮이는 건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이라는 사이트가 아닐까 싶다. 일베는 한국 여성을 '김치년'으로 조롱하는 글부터 시작해서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숨진 피해자와 세월호 유가족, 서거한 고 노무현 대통령을 악랄하게 비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베의 이런 행동을 가리켜 어떤 사람은 표현의 자유라면서 옹호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일정한 선을 넘은 명백한 명예훼손이자 일종의 범죄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마 '표현의 자유'이라고 말하며 일베의 편을 드는 사람은 '박근혜 풍자 또한 똑같지 않으냐?'며 크게 반박하기도 해서 할 말이 없게 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가 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위반이 되는 걸까? 이런 문제를 정의하는 데에는 상당히 격렬한 논쟁이 발생할 것 같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풍자해서 비웃는 일베와 현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해서 비판하는 두 집단 세력은 그렇게 오늘도 대립하고 있는 상태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선을 나눌 수 있는 건 '단순한 악의인가, 아니면, 사회적 의미가 있는가?'이라는 질문이 기준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베'는 그냥 악의적으로 남을 조롱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뿌려진 박근혜 풍자 포스터는 사회 비판을 담았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문제는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을 향해 의견을 결정하더라도 다른 쪽에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문제이고, 형평성 논란부터 시작해서 걸고넘어질 수 있는 문제가 한두 가지에서 끝나지 않으니까. 아마 그래서 요즘 우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재정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노컷뉴스 기사를 통해서 독일 베를린에 전시될 예정이었던 한국 홍성담 작가의 풍자 그림이 국내 기업이 운송할 수 없다1면서 작품을 운송하지 않은 일을 읽어볼 수 있었다. 그 기사를 읽어보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과 함께 현재 우리 한국이 껴안은 문제가 꽤 심각하게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을 운송하면 회사가 파산할 수도 있다.'이라며 홍성담 작가의 그림 운송을 거부한 기업의 행동은 마치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모습 같아서 안타깝다. 그래서 '부분적 언론 자유국가'라는 이름표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표현의 자유'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은 할 수 있어도 답을 찾을 수 있는 난제에 직면한 한국은 아직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다 바꾸겠다던 한국 정부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고, 드러난 잘못은 바로잡기를 선택하기보다 감추기에 급급하다. 그게 우리 현실이다.



 갑자기 내가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게 된 건, 위에서 볼 수 있는 책 <조지프 앤턴>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과거 '악마의 시'를 출판해 극단주의 무슬림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아 전 세계를 발칵 뒤엎은 작가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인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책이라고 한다.


 나는 알라딘 신간 평가단 활동으로 이 책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책을 읽을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유명한 책이고, 책에 대해 간단한 정보를 얻고자 살펴본 서점 소개에서도 상당히 흡수력이 뛰어난 작품으로 소개되어 있어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겠다.'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을 펼친 나는 도무지 책의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책은 총 818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지만, 내가 읽은 건 겨우 83페이지 정도였다. 약 1/10을 읽는 데에 3일이 걸리고 말았다. 책의 글자를 읽으려고 하면 졸음이 왔고, 서서 읽더라도 내용에 집중되지 않아 책을 읽는 것을 포기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구글에 '조지프 앤턴'과 '살만 루슈디' 두 키워드를 검색해서 책의 내용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아야 했다. 이 책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살해 위협과 여러 부조리한 구조와 오랫동안 다툼을 한 작가의 자서전이었고, 3인칭 시점에서 상당히 흡수력이 있다고 한다.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 <조지프 앤턴>은 단순히 자신의 과거를 과대 포장해서 홍보하는 전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과 달리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도 거침없이 솔직하게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뭐, 일부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작은 변명도 붙이더라도 읽는 맛이 풍부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 참고했던 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여정 혹은 변명, <조지프 앤턴> : http://goo.gl/M3aLoY

한국일보 '악마의 시' 이후… 도망자 루슈지는 조용히 살지 않았다 : http://goo.gl/9KGWKN


 나는 이 책 <조지프 앤턴>을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한 번 더 읽어볼 생각이다. 몇 번 더 이 책을 읽으려고 시도해 본 이후에 도저히 나와 맞지 않아 내가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없다면, 부산에서 독서 모임을 주최하는 아는 지인에게 책을 양도할 생각이다. 그게 이 책의 운명일지도 모르니까.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오늘 글에서 소개한 이유는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는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에서 '살만 루슈디'이라는 이름이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회, 인문, 문학에 관심이 깊은 사람 중에서 '살만 루슈디'이라는 이름과 '악마의 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하고….


 비록 나는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알게 되어 구글 검색을 통해 그에 대한 지식을 알 수 있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슬람 광신도와 싸웠고, 문단 내부 인사와 싸웠고, 경찰 간부와 싸웠고, 배신자와 싸웠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사람을 끌어당겼다.


 오늘날, 우리 한국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여러 시민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뭐, 사는 게 다 그렇지.'이라고 말하면서 가만히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 한국은 여전히 소수 권력층에게 유리한 흐름으로 모든 문제가 흐른다. 우리는 과연 보아야 할 것을 보고 있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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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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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상할 정도로 책을 많이 읽는다. 그저 친구가 없어서, 할 것이 없어서, 서평단 활동이라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붙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여기서 쓰러지고 싶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싶다.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독서가와 비교하면 내가 읽은 책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나는 읽는 책의 분야가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짙고, 책을 읽은 후에 하는 활동도 그렇게 막 가치가 반짝반짝 빛나는 일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색채가 없는 그런 일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일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기에 나는 오늘도 이렇게 책을 읽은 후에 아이패드의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다. 어떤 사람은 내게 '복권을 구매하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책만 읽는 게으른 선비.'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인걸.


 이 과정에서 나는 정말 이상한 책 한 권을 만났다. 그 책은 에세이 장르의 책이었고, 읽기가 편하게 작은 글과 일러스트가 함께 있는 책이었다. 그런데 그 책은 이상하게도 책을 읽는 내내 자꾸 눈물을 꾹 참게 했다. 책을 읽는 동안 가슴 깊숙한 곳에서 눈물이 흘러넘쳐 너무 가슴이 아렸다.



 그 이상한 책은 바로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그래도 괜찮은 하루>이라는 책이다. 이 책의 작가 구작가 님은 실제로 어렸을 때 앓았던 열병으로 귀가 들리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시력마저 잃어버리는 병에 걸려 빛까지 사라지는 세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사실이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도무지 다음 문장으로 이어질 문장을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귀가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게 될지 상상할 수 없는데,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된다면 도대체 얼마나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니게 되어버릴까? 상상만 해도 무섭다.



 그런데 구작가 님은 앞으로 빛이 보이지 않게 될 그 세상을 덤덤히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 책을 통해서 구작가 님이 보낸 하루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경험하게 된 눈앞의 나날을 이상한 감정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상한 감정. 나는 도대체 이 감정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슬픈 것도 아니고, 즐거운 것도 아닌데….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부분에서 막 눈물이 당장에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만약 이 책을 내가 밖이 아니라 내 방에서 읽었다면, 분명히 나는 혼자 한동안 크게 '엉엉' 울었을 것이다.


 왜 이런 감정이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나를 휘감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이때까지 눈물이 나오는 여러 책을 읽었지만, 이렇게 사소한 이야기와 그림만으로 이런 감정의 늪에 빠지게 된 건 26년 인생 처음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가슴 깊은 한구석에 어떤 뜨거운 덩어리가 느껴졌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이라는 책을 읽기 전에 나는 <'행복하세요.'이라는 말은 어쩌면 잔인할지도 모른다>이라는 글을 작성했었다. 어쩌면 내가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내 삶을 돌아보며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기에 책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어떤 메시지와 감정이 나를 이렇게 울게 한 것이 아닐까?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기분 속에서 지금 글을 쓰고 있는데, 정확히 정리하지 않은 채로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감정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점점 옅어지는 마음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싶었다. 비록 대단한 글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앞으로 수일 내에 귀가 들리지 않게 되고,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면, 과연 나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하고 싶을지. 단지 '무료하다.'고 느끼는 일상이, '도대체 언제 세상은 멸망하나?'라고 생각하는 오늘 이 하루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을지…….


 사람은 절대 쉽게 바뀌는 생물이 아니라고 한다.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착한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놓여도 착하고, 나쁜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 놓여도 나쁘니까. 결국, 우리는 그렇게 아웅다웅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도 괜찮은 하루>의 작가 구작가 님은 분명히 선례에 해당할 것이다. 삶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기에 쉽게 절망하지 않았고, 더 깊어질지도 모르는 절망 앞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했다. 과연 내가 이렇게 삶을 대할 수 있는지 나 스스로 묻는다면, 나는 '절대 불가능.'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앞에서 나는 사람은 절대 쉽게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끔 바뀌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소위 콩깍지가 씌는 사랑에 빠지는 일과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 딱 그 두 가지가 모습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확률 높은 무대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아직 콩깍지에 씌이는 일도 없었고(앞으로도… 아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던 적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심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꿈을 꾼다고 말할 수 있는 건, 하고 싶은 일이 내 가슴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 책에서 버킷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도 읽어볼 수 있었는데, 지금 당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번 나열해보고 싶다. 음, 파리의 에펠탑 보기, 일본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문해보기, 그랜드 피아노와 책장이 무수히 놓인 내 집 가지기, 피아노 연주회 해보기…….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몇 가지가 없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꽤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정말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은 몇 가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왠지 무서워진다. 하고 싶은 것이 없어진다면, 지금보다 더 칠흑 같은 인생이 될 테고, 내일을 살 수 없을 테니까.


 아아, 지우기. 지우기. 지우기. 지우기. 지우기. 지우기. 지우기. 지금 순간에 든 감정을 지우고, 그냥 비록 그 수가 적더라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맞을 것이다. 책 <그래도 괜찮은 하루>가 독자에게 전해주는 이미지는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음, 아마 그게 맞을 거야.)


 <그래도 괜찮은 하루>이라는 책을 읽고,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힌 채로 쓴 이 글은 여기서 마치고 싶다. 이상한 감정 속에서 눈물이 흘러넘칠 것 같았고, 왠지 모르게 가슴 안쪽이 뜨거워졌던 이상한 책. 이 이상한 책을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 혹시 과거에 나와 비슷한 트라우마가 있다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할지도 모르니까.


 이 글이 발행될 토요일 아침에 블로그를 방문해 이 글을 읽을 모든 사람의 하루가 책의 제목대로 '그래도 괜찮은 하루'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뭐, 내게는 이렇게 글을 편집해 예약 발행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그래도 괜찮은 하루일까? 아하하.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아직 빛이 남아 있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은
모두, 여기까지예요.
눈이 안 보이게 되면
저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죠.

누구나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
늘 미뤄놓기만 하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만약
오늘이 나의 마지막 하루라면….
어떨가요.
별생각 없었던 것들이 모두 큰 의미로 와 닿아요.

요즘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햇살을 볼 수 있는 게
아주 행복한 거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여러분도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그렇다면 제게 들려주세요.
정말 소중한 오늘 하루,
내 하루만 소중한 게 아니라
여러분의 하루도 정말 소중하니까요.
당신의 버킷리스트를 듣고 싶어요.
대신, 규칙이 있어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의 버킷리스트를 고민해보세요.

페이지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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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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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 내가 언제 최초로 책을 펼쳐서 읽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책 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언제나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나는 가방에 책 한 권은 넣어서 다녔으며, 책 없이는 어디를 가지도 않았다. 책 읽기는 그렇게 26년의 내 삶의 기둥이 되어왔다. 책 없이는 이 인생이 없었고, 책이 있기에 이 인생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책을 꾸준히 읽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막 전문가처럼 어려운 책을 독파하는 것은 아니다. 고전 중 열심히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마키아밸리의 <군주론>과 <논어> 두 권밖에 없고, 그 이외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과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같은 도서가 있다.


 그 이외에도 몇 권의 책이 있는데, 대체로 대학 수업을 통해서 우연히 읽게 되었거나(군주론) 그저 읽었던 책에서 소개한 책(논어), 혹은 서평단 활동을 통해 만나게 된 책이었다. '책을 좀 읽는다.'고 말하는 입장에서 부끄럽지만, 나는 독서 편식이 상당히 심한 편이다. 나는 내가 끌리는 책이 아닌 이상, 아무리 잘 팔리는 책이라도 읽지 않는다. 그냥 읽어보고 싶은 책만 언제나 읽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블로그를 운영하게 우연히 접하게 된 여러 도서 서평단 활동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독서 편식이 강한 내게 좀 더 다양한 책의 맛을 맛볼 수 있게 해주었고, 미처 내가 좋아하는지 몰랐던 책의 맛을 맛보고 공유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단지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내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맛의 책을 만나는 일상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얼마 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중에 '한 번도 글을 쓰는 것이 싫은 적이 없었니?'이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아니요.'이다. '예'라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종종 '이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고민하다 '아, 이건 글로 쓰기 귀찮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은 비슷하지 않을까?


 오늘 쓰는 글도 몇 번이나 쓴 글을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을 반복하면서 쓰고 있다. 이 글은 알라딘 서평단 활동을 통해 만나게 된 <책이 좀 많습니다>이라는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 쓰게 된 글인데, 글을 쓰기 전에 미리 노트에 정해둔 느낌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키보드가 텍스트를 입력하고 있어 상당히 놀라고 있다. 그래서 글을 몇 번이나 지우다가 그냥 막연히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책이 좀 많습니다>이라는 도서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저자 윤성근 씨가 헌책방을 통해 만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평범히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도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역시 책을 배치할 곳이 부족해 고민하는 모습부터 책을 대하는 자세 모두가 '역시'이라는 느낌이었다.



 책은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책을 만나는 사람도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래서 헌책방 같은 곳에 들러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독특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법인데, <책이 좀 많습니다>는 그 이야기를 편하게 읽어볼 수 있었다. 아마 나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도 상당히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의 소재로 사용된 헌책방을 하다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과거 재미있게 읽은 <비블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을 떠올릴 수 있었다. <비블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은 고서점을 운영하는 고우다 다이스케와 시노미아 시노부가 헌책을 팔려오는 사람의 이야기에 엮이게 되는 소설인데,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추리 소설이었다.


 <책이 좀 많습니다>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그들이 책에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읽는 건 <비블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과> 즐거움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책, 나도 '책' 하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여기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역시 책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 특별한 한 책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나는 <책이 좀 많습니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나만의 서재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어느 책벌레나 꿈꾸듯이 나도 나만의 서재를 갖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그 꿈을 위해서는 돈을 모을 필요가 있지만 대체로 책을 구매하느라 돈을 잘 모으지 못한다. 책에서 읽은 아래의 말이 정말 공감 가는 이유는 그래서였다. 아마 다른 책 바보도 비슷하지 않을까?


 위대한 책벌레들의 우상 릭 게코스키(Rick Gekoski)가 한 말이 맞다. 책 많은 사람치고 넓은 집에 사는 이가 없고, 넓은 집에 사는 사람이 책 수집가가 될 가능성은 많지 않은 모양이다.


 뭐, 지금 이 글을 마지막으로 편집하게 되는 내 책상 뒤에 있는 3단과 2단 책장 두 개를 살펴보면 일반 도서와 함께 내가 읽는 라이트 노벨이 정말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책의 수가 수납 가능한 수를 넘었기에 가지런히 꽂아두는 것은 포기하고, 눕히거나 이중으로 꽂거나 등 여러 방식을 통해 책을 보관하고 있다. 정말 좀 더 넓은 공간에 책장을 두고, 정리하고 싶다. 언젠가는.


 글이 어떻게 시작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나와 같은 책벌레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잠깐이나마 즐거웠다고 말하고 싶다. 책 <책이 좀 많습니다>에서 만날 수 있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가까운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아보자. 책을 좋아하는 우리는 다른 사람이면서도 정말 닮았다. 아하하. (아니, 난 오타쿠인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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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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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 글을 쓰는 3월 3일은 밖에서 고요히 비가 내리고 있다.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깊숙이 생각하기 좋은 이런 날씨에 나는 책장에 꽂힌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은 작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사고의 유가족 육성기록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블로그 활동으로 하는 한 서평단의 활동 때문이었다. 좀 더 일찍 이 책을 읽어볼 기회가 있기도 했었지만, '도저히 책을 읽을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일부러 그 기회를 포기했었다. 도무지 책을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너무 힘들 것 같았다. …….


 그런데 만나게 되는 인연은 항상 찾아오는 법이라고, 한 번은 피했던 그 책을 이렇게 다시 만나서 읽게 되었다. 책을 펼쳐 읽기 전까지도 나는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읽고 싶지 않다.'이라는 마음과 '그래도 읽고, 글을 이야기하는 게 내 역할이다.'이라는 마음이 더해지면서 책의 무게가 정말 무거웠다.


 그런 무거움 속에서 나는 책을 펼쳐서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나는 도저히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없어 그만 멈추고 말았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너무 안타까웠다. 책을 읽는 동안 연신 훌쩍이는 코를 휴지로 닦아야 했고, 눈물이 맺혔다가 흘러내리는 것을 도저히 조절할 수가 없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무능한 우리 정부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화가 나는 것보다 유가족의 이야기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점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세월호 유가족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이용만 되고 있을 뿐, 제대로 된 배려와 대책이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인양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되는 문제다. 특히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와 함께 정치적으로 세월호 사건이 이용되면서 이미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고 말았다. 지금은 그저 몇 명의 유가족이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는 것과 적은 시민의 관심, 그리고 메마르지 않은 눈물이 가까스로 남아있을 뿐이다.


 나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책을 펼쳐 읽다가 도저히 계속 책을 읽을 수 없어 이렇게 글을 먼저 쓰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책을 읽어보세요. 정말 우리가 꼭 읽어야 합니다. 세계에서 우리 한국처럼 이렇게 바보 같은 나라가 또 있을까요?'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한 영향력을 가지기도, 글을 잘 쓰지 못하는 내가 겨우 블로그에 이 글을 올리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늘 블로그를 방문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블로그 글이 공유되는 SNS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더 여전히 현재진행형 문제를 볼 수 있으면 충분하다.


"처음 후지TV 기자가 인터뷰하자고 연락했을 때는 안 하려고 했어요. 산 애들은 그렇게 한다지만 죽었는데 인터뷰 하면 뭐하나. 그리고 지난 기억들 다시 떠오르는 게 싫었거든. 그런데 기자란 분이 '생존학생들이 하는 말이 반장이 선장 역할을 다 했다, 걔 떄문에 살았다, 그래서 학생들이 너무 많이 울더라' 그러더라구. 어차피 딸은 죽어서 살아오지 않지만 그런 일은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게 괜찮지 않겠나 싶어 인터뷰에 응하게 됐지. 일본 입장에서는 이웃나라 일일 뿐이고 자기네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잖아. 그런데 사람들은 열과 성의를 다해서 보도해주더라구. 우리나라 같이 이런 게 아니야. 해설위원하고 기자들이 진지하게 대화를 많이 하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솔직한 말을 다 하더라구. 우리나라는 감추기에만 급급한데…." (p57)


 위에서 인용한 두 개의 글은 <금요일엔 돌아오렴> 책을 펼치면 먼저 읽어볼 수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 중 일부분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지난해 볼 수 있었던 우왕좌왕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전원구조부터 시작해서 현장을 방문한 정치인의 행동과 말까지 스르륵 지나갔다.


 하지만 어느 것도 지켜진 것이 없었다.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은 일부 세력에 의해서 자식으로 맹목적으로 돈을 번다는 식으로 유족을 비판하는 색을 띠게 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인사들이 말한 세월호 대책과 안전 불감증을 비롯한 인양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


 이러니 우리가 어떻게 정부를 믿을 수 있겠으며, 정부를 신뢰하면서 그들의 정책을 지지할 수 있겠는가. 아직 우리는 세월호 사건이 보여준 우리나라의 거짓된 모습을 바꾸지 못했고, 그저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조금씩 무뎌지고 있을 뿐이다. 세월호 기사에 연예인 뉴스가 덧칠되어 점점 잊히고 있다.


"이웃들은 아직도 안 끝났냐고 해. 그러면 설명을 다 해주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어떻게 끝내냐고. 그런데 바깥에서는 그게 아닌가봐. '너희들 보상 많이 받았잖냐. 너희들 10억씩 받았는데 더 받으려고 그런 거 아니냐?' 이런 말 나오면 기가 막히지. 보상의 보자도 모르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하고 나면 그제서야 사람들이 아, 그랬느냐고 해. 언론 플레이가 진짜 무서운 거야. 우리도 사고 나기 전엔 언론에 나온 거 다 믿었어, 100퍼센트. 그런데 직접 당하니까 하나도 믿을 수 없는 거야.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야당도 못 믿으니 유가족 힘으로 다시 뭉쳐보자고 했어.

사실 유가족들도 지금 많이 지치긴 했어. 벌써 몇 개월이 지난 거야. 유가족들도 반반이지. 끝까지 가자는 사람도 있고, 우리가 정부를 싸워 이기겠느냐, 계란으로 바위 치는 거다 하는 사람도 있지. 너무 힘드니까. 근데 누구 하나 이탈하는 사람은 없어. 그렇게 힘들어도 같이 가는 거지. (p63)


 세월호와 돈의 문제는 지금도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는 문제가 되고 있다. 그 많은 국민 성금이 다 어디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부는 '비용 문제'를 거론하면서 세월호 인양2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이는 이탈리아의 세월호 사건과 너무 비교되는 모습이다. 이러니 나라에 정이 떨어질 수밖에!


 우리나라가 세월호 사고 이후 한 것은 세월호 문제를 이용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여당이나 야당이나 그저 똑바로 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세월호 진상과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항의하자 "유가족이면 가만히 있으라." 하고 고함만 치는 정부 수준에서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서울시에서는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에게 천막을 제공해줬다는 이유로 박원순 시장을 경찰이 입건해서 조사하고 있다. 겨우 이 수준이다. 태극기 달기 운동을 생각하는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수준이 겨우 이 정도 수준이니 대체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불통, 고집, 외면, 은폐, 조작. 다섯 개뿐이다.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마지막으로 동생 얼굴 보라고 그랬는데 무서워서 못 봤어요. 부어 있는 동생모습이 다시 보기 싫어서,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봐야 하는데 못 보겠는 거예요. 그러고 내가 왜 장례식장에 있어야 하나 그것도 싫고, 사람들 우는 것도 짜증나고... 장관이나 그런 사람들이 장례식장으로 보낸 화환을 집어던졌어요. 부하들 시켜 꽃 보낸 것도 싫고 슬픈 마음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꽃만 냅다 던져주고 힘내라고 그러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고. 또 '이제 네가 큰언니니까 엄마 아빠 잘 돌보고 잟해야 한다'라는 말들도 싫고. 어쩌다가 이런 날에만 오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니 자기들이 뭔데 나한테 그러나 싶고. 저한테 무책임한 말들을 하는 게 싫었어요. 힘내라는 말도 짜증났어요, 위로도 안 되고. (p89)


 이 이야기를 읽은 이후 나는 도저히 <금요일엔 돌아오렴> 책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채, 바로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을 쓰는 것도 그냥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뿐인데,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 순간에도 마음이 너무 아련하다. 이 아픔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먹먹하다.


 한 번은 '도저히 책을 읽을 자신이 없다.'고 생각해서 읽을 기회를 피했었지만, 다시 내 앞에 놓인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고 있자니 그냥 이게 내 운명인가 싶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다른 사람처럼 세월호가 가진 가슴 아픈 이야기를 외면했을지도 몰랐을 테니까.


 단순히 '꼭 책을 읽어보세요.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야기입니다.'이라고 말하면서 책을 권해주고 싶지는 않다. 마음으로 읽지 않는 건, 읽지 않는 것보다 못할 테니까. 대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책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아픔입니다. 왜 아직도 모른 척하시나요?' …이라고.


 글을 마무리하려는 오후에도 오늘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감정이 이 비 때문에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 비가 마치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인 것 같고, 당시에 울었을 희생자의 눈물 같고, 글을 쓰는 내 눈에 맺힌 눈물 같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눈물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아픔에 익숙해지면서 잘못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며 체념하고 있다. 거리에는 현 정부를 비판하는 풍자 포스터가 뿌려지고, 경찰은 그 범인을 잡아서 취조를 한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사는 걸까?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특정한 정치적 목을 가진 책이 아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아픔을 견디는 부모와 그 가족의 이야기와 아픈 눈물을 함께 흘리면서 기록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에서 흐르는 눈물은 우리의 눈물이며, 책에서 제시한 과제는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비 오는 오늘의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해본다.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우리 마음속의 우중충한 비가 계속 내리게 하는 것일까……?' 하고. 유독 오늘 손에 집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손이 떨린다. 아아…… 젠장.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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