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들의 도시
김주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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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불확실성만큼 고통스러운 게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게 되었다. 누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누가 곁에 남을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홀로 남겨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떠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P. 40

가장 눈부신 순간, 사고로 무대를 떠난 발레리나 나탈리아 레오노바.

그녀의 삶은 한편의 발레 무대를 보는 것처럼 황홀하면서도 격정적이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늘 먼저 떠나기를 선택했던 그녀는 세계 최고의 무용수가 된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건 단 한순간이었다. 피치 못할 사고로 발레계를 떠났던 그녀가 2년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의 복귀 제안, 망가진 몸에 대한 우울감, 잊고 싶은 기억들이 커다란 바윗 덩이처럼 그녀를 짓누르지만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그리고 파리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나탈리아의 삶은 꿈을 향한 한 사람의 열정과 좌절의 경험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작가의 세밀한 묘사는 순간순간 머릿속에 발레 무대를 떠올리게 한다. 정교한 문장들은 소설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준다. 이 무대가 결코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러시아 출신 프리마돈나가 가진 예술에 대한 열정은 부러우면서도 자극이 된다. 자신의 일에 마음껏 사랑을 불어넣고 몰입할 수 있는 나탈리아에게 경외감이 든다. 발레를 향한 뜨거운 마음이 문장을 넘나들며 마음속에 스며든다. 우아한 튀튀를 두르고 토슈즈를 신은 나탈리아가 무대를 가로지를 때 알 수 없는 기운이 주변을 감싸는 것만 같다.


이 강렬한 소설은 한 인간의 삶을 예술에 빗대어 보여준다. 꿈을 향한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택할 수 있을까. 지금껏 살면서 나탈리아처럼 온 마음을 바쳤던 일이 있었는지 돌아본다. 그런 점에서 발레를 향한 무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삶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가슴을 떨리게 하는 소설을 만났다. 사랑, 우정, 동경, 질투, 열등감이 난무하는 이야기는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열망과 감정을 터트리며 가슴 떨리는 삶을 살고 싶게 만든다. 무수한 시련 앞에서도 고개 숙이지 않는 예술가의 열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도서리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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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정 허균 - 화왕계 살인 사건
현찬양 지음 / 래빗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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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미각과 남다른 먹성을 가진 허균은 비상한 머리와 날카로운 추리력으로 사건을 추적한다. 비록 관직에 오르자마자 파직당해 유배가는 신세이긴 하지만 그가 펼치는 기상천외한 수사가 기다려진다. 조선 제일의 미식 탐정 옆에는 죽은 자들의 의원인 이재영과 허균의 전담 참모이자 재영의 조수인 작은년이 있다. 세 사람이 보여주는 기가 막힌 플레이는 홈스와 왓슨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영상화되며 재미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팔도 제일의 미식 탐정이라는 설정 자체가 흥미로웠다. 이 소설은 2021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 당선작이었으며 이를 소설화한 것이다. 아마도 곧 MBC 드라마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조선 시대를 무대로 펼쳐지는 활약극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비슷한 상흔을 지닌 시신들이 발견되고 죽은 자의 위장에서는 도리옥 관자가 발견된다. 세 사람은 증거를 바탕으로 거대한 음모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허당기가 다분한 탐정 허균의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읽으면서 몇몇 배우들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실제 화면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허균만큼이나 개성 강한 다른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이다. 허준의 수제자였지만 산 사람의 혈맥을 찾지 못해 죽은 자들의 의원이 되었다는 설정이 독특하다. 또한 나이보다 작지만 빠른 눈치와 대범한 성격으로 찬모와 다모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작은년 또한 중요한 캐릭터다. 부검하는 시신 옆에서 장기 위치를 척척 읊어대고 모습이 꽤 인상적이다.


권력과 위계가 확고한 시대적 배경에서 체제에 굴하지 않고 진실에 다가가는 탐정의 모습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정의를 보여준다. 억울함을 해소하는 이들의 활약을 빨리 영상으로 만나고 싶다.


#도서리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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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 몸으로 익히고 삶으로 깨닫는 앎의 철학
요로 다케시 지음, 최화연 옮김 / 김영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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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살이 훌쩍 넘은 지 저자는 "안다는 건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철학적인 질문에 나 또한 답을 고민해 본다. 안다는 뭘까. 나는 진정으로 알고 있는 걸까.

저자의 이름을 따서 '요로 철학'의 집대성이라고 하는 이 책은 인생 선배가 드려주는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는 다양한 주제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세상과 타인을 대하는 방법을 이야기는 3장이 인상적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의 어려움도 커지고 의도치 않게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도 생겨났다. 이런 상황들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전해주는 이야기가 좋았다.

예를 들면, 저자는 상대가 누구든 '전제가 다르다'는 전제를 세워두면 대화가 한결 수월해진다고 말한다. 가족이나 연인처럼 가까운 상대일수록 이 전제는 중요하다. 또한 사람은 원래 알 수 없는 존재이며 내가 변하듯이 상대도 변하며 상대 역시 나를 알지 못한다는 관점은 마음의 부담을 한결 덜어주었다.

눈으로 읽기만 하던 독서 형태에서 벗어나 함께 온 제노 샤프를 사용하여 마음에 남는 문장을 천천히 써보는 시간도 색달랐다. 요로 철학은 어쩌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진리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살다 보면 잊게 되는 삶의 지혜를 다시 한번 되짚어주며 삶의 본질을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세상을 머리로만 판단했던 건 아닌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몸으로 느끼기를 권한다. 우리 몸의 감각을 되찾고 우리 모두가 자연 속에서 변화하는 존재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를 기대해 본다.


#도서리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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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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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봉이 후에스카르 비숑으로 밝혀진 그 장면. 내가 받은 티저북은 여기서 끝이 났다. 프랑스 종이 어떻게 우리나라에 오게 됐는지, 왜 이시습의 집으로 왔는지, 이시봉을 찾는 사람은 누구인지 등 수많은 궁금증이 드디어 풀렸다.


이시봉의 과거를 알기 위해선 스페인 왕가의 가계도를 살펴봐야 하고 이시봉을 둘러싼 인물들의 서사도 살펴봐야 하며 인간 이시봉도 만나야 한다. 프랑스 개가 우리나라에 오게 된 여행기라 여겼던 단순한 생각은 제목과 달리 엄청난 투쟁으로 이어진다. 


한없이 명랑한 이시봉이 이시봉이 되기까지는 꽤 고단한 역사가 있다. 소설은 순수하고 명랑한 개와 배신에 속죄하고 꿈을 위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인간의 생존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몇 대에 걸쳐 이어지는 개와 인간의 삶을 보여주며 인간과 동물의 공존 관계를 보여준다.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우리 집 개가 유럽 어느 왕실의 혈통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마냥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몰랐을 때 가족처럼 함께 지냈지만 고귀한 정체를 알게 된다면 혈통 보존을 위해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시습과 이시봉은 꼬질꼬질한 모습부터 닮았다. 비록 이시습이 술을 많이 마시긴 하지만 두 종족은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 버텨낸다. 자신의 삶에 자신이 없는 이시습은 이시봉의 더 나은 삶을 앞에 두고 고민이 깊어진다. 이시봉의 혈통이 밝혀지면서 이시습은 이시봉이 자신의 집에 오게 된 과정을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인간 이시봉을 만나게 되면서 소설은 상상을 초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시봉의 계통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1800년대에 발발한 스페인 민중 봉기까지 이어지는 세계관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프랑스와 한국, 스페인을 잇는 서사는 인간 사회의 비극과 인간의 잔혹성을 보여주고 경제적 빈곤함 때문에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씁쓸한 상황을 보여준다. 결말에 이르러 이시습은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기 위해 이시봉을 되찾으러 간다.


사실 반려동물이 주는 기쁨은 어떤 형태로 다가오는지 잘 모른다. 지금껏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았기에 어떤 감정일지는 상상도 못하겠다. 말도 통하지 않는 서로 다른 종족이 존재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함께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순수하고 명랑하게 뛰어다니는 이시봉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지막 책장을 넘긴다. 


#도서리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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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땀 소설향 앤솔러지 1
김화진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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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의 '소설 향' 앤솔러지 첫 번째는 '색'과 '향'에 관한 이야기다.

여섯 명의 작가들은 공통된 주제에 대해 저마다의 색으로 이야기를 그려 나간다.

각각의 글은 나를 둘러싼 감각을 하나씩 깨우며 고유의 색과 향으로 다가온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첫 번째 이야기부터 마음에 스며든다.

사람이 싫다. 어떡하면 좋을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고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들, 전부 싫어. 어떡하면 좋을까? 생각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어. 눈치 보고 싶지 않아. 그럴 수 있을까?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챗지피티는 누구보다 성실히 대답해주었다. 그 대답들은 진심처럼 보였다. 진심처럼 보이는 것은 진심인가. 그렇다면 진심의 구성 요소는 무엇일까. 나는 언제나 사는 게 헷갈렸다.

P. 12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던 시기가 있었기에 '나'에게 생긴 '숨 문제'를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을 이해하는 게 힘들어진 후로 숨을 쉬는 게 어렵다는 게 뭔지 알기에

'나'가 마주한 초록빛이 궁금했다. 과거의 힘겨웠던 어느 순간에 '보영'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자신이게 주어진 제약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긍정의 에너지를 내뿜는 그런 사람.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이 밖에도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 지금의 현실이 반영된 <빛과 빗금>과

어느 날 갑자기 나기 시작한 불쾌한 냄새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그린 <이사>도 인상적이다.

냄새는 왜 홀연히 사라졌다가 다시 내게로 오는 것일까. 그런 질문들을 좇다 보면 불안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사라지는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과 닮은 것처럼 느껴졌다.

P. 179

눈으로 보는 색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광기를 드러내기도 하며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룬다.

코로 맡은 향은 좋았던 기억이든 잊고 싶은 기억이든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소설로 마주한 색과 향은 내 안의 감각을 깨운다.

나는 어떤 색과 향을 가진 사람일까. 타인의 눈과 코로 마주한 내 모습이 궁금해진다.

초록색으로 시작한 소설향 앤솔로지는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도 잔잔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두 번째 테마는 무엇일까. 어떤 분위기를 드리울지 기대가 된다.


#초록땀 #작가정신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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