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바위보
앨리스 피니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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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실인증으로 아내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애덤은 다른 사람이 쓴 소설을 각색하는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판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그의 아내 어밀리아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두 사람은 소원해진 부부 사이를 되돌리기 위해 외딴곳에 있는 예배당으로 주말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야기는 각자의 시선과 애덤의 부인이 쓴 편지를 교차로 보여주며 서서히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같은 사건이지만 화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라 펼쳐진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의 진실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다소 히스테릭하게 느껴진 어밀리아. 그녀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소름이 끼쳤다. 작가는 "당신의 배우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서늘한 질문을 던지며 평온한 부부의 일상으로 끌어당긴다. 하지만 평온함 뒤에는 일그러진 욕망과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애덤은 매일 밤 악몽을 꾸고 애덤의 아내는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부치지 않는 편지를 쓴다. 서로 다른 화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할수록 개인의 이기적인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각자가 보려고 하는 것만 보고 듣고 믿으려는 모습에서 이 부부의 신뢰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우려스럽기만 했다.

부부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불안감은 증폭된다.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어 단숨에 읽었다. 두 사람이 머물고 있는 예배당에 '로빈'이라는 낯선 인물이 등장하면서 긴장감은 점점 커져갔고 마침내 작가의 트릭을 마주했을 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작가를 왜 '트위스트의 여왕'이라고 하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과연 나는 누군가를 100%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기발한 반전이 매력적인 트위스트 스릴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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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 -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
성파.김한수 지음 / 샘터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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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2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김한수 종교 전문 기자와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 성파 스님의 대담을 정리한 책이다. 종교를 떠나 한 사람의 사람으로서 성파 스님이 걸어온 길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공부란 무엇이며 왜 공부하고 일해야 하는지, 궁극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은 성파 스님이 출가 전 사연부터 시작하여 통도사 종손으로서의 삶과 출출가, 즉,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출가 인생을 그리며 평생을 일하고 공부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기나긴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갈수록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수행자의 삶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궁금증이 커져갔다. 스님은 말한다. 출가 이후로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말하는 스님의 삶이 부러웠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은 어떤가. 돌이켜 보면 밥벌이를 한다는 핑계로 마지못해 일하고 억지로 공부하며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지난 시간이 떠오르며 부끄러워졌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진정한 배움과 행복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새로 만나는 것은 다 배움이라 생각한다는 스님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스님의 모든 배움이 인상 깊지만 그중에서도 전통문화를 향한 그의 배움과 노력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스님은 한지에 쪽물을 들인 감지라는 사라진 기술을 복원했다. 활자로 접한 그 과정은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스님의 열정을 보여준다. 감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지에 쪽물을 들이는 염색 과정을 알아야 하고 염색을 위해서는 전통 한지를 만들어야 한다. 쪽을 수소문하여 키워내고 쪽물 염색을 업으로 하는 염색장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쪽물을 만들고 난 후에는 옛날 장지를 뜰 줄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고 3년 만에 성공한다. 그리고 스님은 이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밖에 우리의 전통 장을 되살리고, 산수화와 옻칠을 배우고 시조를 육성하려 시조 상을 만들고 버려지는 종이책을 정해진 목표치 없이 계속 모으고 있다. 한 사람이 하나도 이루기 힘든 어려운 일들을 홀로 개척해가며 완성해 나간다. 이 모든 일에 대해 스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체가 소유라 말하며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욕심을 드러낸다. 나는 스님만큼 노력해 본 적이 있던가. 자만심에 콧대만 세웠던 삶을 깊이 반성해 본다. 진정한 배움과 일은 어떤 형태일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커다란 자극이 된 책이다.

이 공부에는 불교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어요. 진리는 불교나 기독교라는 구분이 없는 거리. 남의 것이 좋다 나쁘다 할 것 없이 자기 것을 하면 되는 겁니다.

p.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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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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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필수 노동 가운데는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여겨져 더욱 은밀한 곳으로 숨어든 노동이 있다. 나는 이를 '더티 워크'라고 부른다.


p. 22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직업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나가고 있다. 모두가 꺼리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 이를 더티 워크라 부른다. 이 책에서는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그러한 노동의 일면의 보여준다.

솔직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어떤 종류의 더티 워크가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나의 평온한 삶은 모두가 꺼리는 노동을 기꺼이 맡아서 하는 이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탐사보도 전문 기자인 저자는 더티 워크의 현장을 보여준다. 정신 병동의 교도관, 암살 드론 조종사, 도축 일을 하는 미등록 이민자까지 그가 만난 사람들은 정신적 트라우마 속에서 취약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더럽다고 외면하는 사회적 차별 속에서 직접 마주한 그들의 삶은 처참하다.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참혹한 현장이다. 생계를 위해 불결한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의 현실이 충격적이다.

저자는 동료 시민으로서 책임과 연대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사회적 희생양이 된 사람들의 현실을 통해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낙인찍기, 가난과 빈곤, 착취와 은폐 등 외면하고 싶은 노동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하나의 구성요소로서 맡은 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차별은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나쁜 노동자를 만드는 사회구조는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약자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의 일상 속 수많은 더티 워커들에게 부당한 책임을 강요하지 않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해결책에 대해 고민이 깊어진다.

더티 워크는 사회의 많은 구성원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해결하고 싶어 하는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는 노동, 그러므로 사회의 '필수' 노동이다.


p.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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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의 건너편 작별의 건너편 1
시미즈 하루키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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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재회란, 죽어서 이곳 작별의 건너편을 찾아온 사람에게 현세에 있는 사람과 한 번 더 만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허락된 시간은 24시간. 그러니깐 꼬박 하루라는 시간이 주어집니다.

p. 17

사방이 유백색인 이 공간에는 달달한 커피를 음미하며 마시는 수상한 안내인이 있다. 이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다. 안내인은 이들에게 현세에 있는 존재와 한 번 더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당신이라면 누굴 만나겠는가?


소설을 읽기 전에 일단 죽음과 소중한 사람이라는 소재부터 눈물 버튼을 누르고 시작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작별의 건너편에서 저마다의 소중한 사람을 떠올린다. 가족, 은사님, 첫사랑 등...나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가족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규칙 상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존재'만 만날 수 있으니 가족은 패스다. 그렇다면 누구를 만나야 할까. 친구들도 사실을 알 테니 패스고 첫사랑 또한 잘 살고 있을 테니 패스다. 소설을 읽고 난 후에도 누구를 만나야 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소설에는 각각의 사연 외에도 수상한 등장인물이 있다. 천연덕스럽게 사람들을 마지막 만남으로 안내하는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달달한 커피만을 느긋하게 마시는 그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안내인이 현세에서 보낸 마지막 순간에 손에 들고 있었던 게 소중한 이가 준 캔 커피가 아니었을지 상상해 본다.


나름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다 자신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지만 아주 가끔은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순간들이 생각났다. 이제라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하자라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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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심리학자, 메타버스를 생각하다 - 사람이 모이는 가상공간은 무엇이 다른가
김지헌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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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잘 만들기만 해서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꾸만 몰리는 가상공간을 이해하고 메타버스에서 통하는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이 책은 기술 중심의 프레임에서 벗어 심리학 관점에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가상공간 전략을 소개한다.

메타버스 가상공간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가상현실에서의 비즈니스 모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메타버스에 투자하고 있는 현실에서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저자는 소비자가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 가상공간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며 기술보다 사람을 생각하는 디자인 전략을 보여준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내가 가상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은 매우 짧다. 익숙하지 않은 플랫폼에 대한 두려움과 실제 눈으로 보고 만져봐야 믿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가상세계의 자극 역시 낯설다. 그 때문인지 간혹 북토크와 같이 가상공간에서 진행되는 모임에서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가상공간에서의 익명성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존재감을 지우려는 노력만 더해갔다. 이에 대해 저자는 가상공간에서도 현실세계와 같은 심리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분석하며 경험이 주는 가치를 만족시켜야 한다 말한다. 

​또한 가상공간에서 경험하는 사회적 접촉과 상호작용 등을 통해 사람을 모으는 메타버스를 만드는 해법을 제시한다. 즉, 소비자와 직접 마주하지 않는 상황에서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고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제품 진열 방식을 보여주며 구매로 이끄는 전략을 이야기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가상 스토어를 구성하는 전략이었다. 양극단을 피하고 중간을 선택하려는 인간 성향을 반영한 배치부터 시선에 따라 소비자가 제품 가격을 인식하는 경향까지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마케팅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현실세계를 넘어 가상세계에서 통하는 마케팅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소비자의 무의식까지 움직이는 심리학적 접근이 신기하면서도 재밌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상공간의 심리학을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배우며 사람의 관점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비법을 찾아낼 수 있는 책이다.

p. 243 

메타버스 투자를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 기준은 첫째, 현재 고객이 우리 브랜드를 좋아하는가? 둘째, 우리 메타버스가 현실세계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추가 가치를 제공하는가?이다. 두 조건이 충족된다면 성공을 장담하기는 어려워도, 메타버스 투자는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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