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 - 만성질환 혹은 이해받지 못하는 병과 함께 산다는 것
메건 오로크 지음, 진영인 옮김 / 부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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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간 오른쪽 아랫배와 옆구리에 통증이 지속되었다. 하루 이틀 지속될 때도 있고 짧은 시간 나타났다 사라졌던 적도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이 생겨났다. 결국 올봄 미루었던 국가건강검진과 거금을 들인 추가 검진까지 진행했다.


당시 통증은 극심했고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2주 후 받은 결과는 만성위염을 제외하고는 이상 없음이었다. 순간 내가 거짓말쟁이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분명 난 오랜 시간 통증으로 고통받았는데 이상 없다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정체불명의 병에 시달린 저자의 이야기에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무렵부터 정체불명의 증상들에 시달린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이해받지 못하는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고 의사들은 그녀가 아픈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나 역시 내가 아팠을 때 원인이라도 제대로 알고 싶었다. 왜 무엇 때문에 통증이 생기는지 알면 분명 없앨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 이상이 없으면 의사들은 스트레스  때문이라 말하고 운동을 병행하라는 처방을 내린다. 그때의 경험 때문일까. 저자의 답답한 마음이 이해된다.


​저자는 신체적 고통과 자신의 병이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로 인한 심리적 고통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모호한 병 때문에 피로도와  통증이 극심했지만 여성의 질병은 심리적인 문제라는 오래된 편견으로 인해 나약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아픈 이유를 찾고 건강을 찾으려는 여정을 계속한다. 그래서 이 책은 병의 회복이 아니라 병과 함께 살아갈 의지를 보여준다. 


​건강검진 이후 통증 빈도는 많이 줄었지만 어느 순간 콕콕 찌르는 통증이 나타날지 몰라 늘 긴장하고 있다. 저자가 써 내려간 10년의 기록은 자신의 고통을 떨쳐버리기 위한 처절한 노력의 이야기다. 스스로 면역계와 의학에 대해 공부하고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유법에도 매달리며 살아남으려 한 그녀의 투쟁기는 현대 의학의 한계와 질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생각을 확장시킨다. 이해받지 못하는 병과 함께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는 병을 극복하는 건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다는 인식 너머에 있는 만성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p. 79
만성질환은 결국 심한 불안을 끌어낸다. 계속 아프다 보면 통증 같은 실제 증상으로 인한 아픔을, 훗날 통증이 더 심해지고 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는 불안에서 생기는 아픔과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질병이 마음속에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은 의미를 창조하는 기계로서 새로운 상태에 끝도 없이 의미를 부여하며, 그 자체로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


p. 88
지식이 있으면 치료 혹은 치유의 희망이 생긴다. 치유가 안 된다고 해도, 진단을 앎의 한 형태로서 진단이 나와야 타인에게 우리의 경험을 인정받을 수 있고, 우리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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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통해 예민함을 나만의 능력으로
전홍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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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무척이나 예민한 아이였다. 좋게 말해서 눈치가 빠른 거지, 유독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며 자랐다. 그런 성향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고 이런저런 사정까지 겹쳐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었다. 그 당시만 해도 공황장애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이라 나는 아프지 않다고 큰소리치며 진료실을 나왔다. 이런 예민함을 "특별한 능력"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정신의학 전문의 전홍진 교수는 이 책에서 예민함을 자신만의 능력으로 바꾸는 실천법을 이야기한다. 예민한 특성을 4가지로 나누어 다양한 상담 사례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감정들을 파악하고 분석하며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능력으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분명 책에는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어 있는데 왜 상당 부분 내 이야기를 읽는 것만 같을까. 특히 불안과 우울편에 소개된 사례는 내가 실제 겪었던 일들이 대부분이라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실수했거나 잘못한 기억이 자꾸 떠오르며 갑자기 숨을 쉬기 힘들고 이러다 죽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 타인의 눈을 마주치는 것도 힘들고 땅만 보며 걷던 시간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나와 맞지 않는 상사와의 대립 때문에 회사 생활이 힘겨웠던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예민함 때문에 방전되어 무너졌던 과거의 나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지금에서야 웃으며 그런 시절도 있었지 하고 넘기지만 당시에는 다음 날 눈을 뜨는 것조차 두려운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괜찮아졌을까. 그 답은 5부 실천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스스로 찾아서 하고 있던 일들이 이 책의 실천편에 담긴 내용과 상당히 비슷했다. 홀로서기를 선택한 후  외부의 자극을 어느 정도 차단하고 내게 맞는 생활 패턴을 찾아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좋아하는 일을 안전 기지로 택하여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여러 시도를 해보면서 예민함을 활용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고 있었다. 예민함을 단점이라 생각하지 않고 세상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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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 -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뉴노멀 시대 새로운 비즈니스 경쟁력
엘라 F. 워싱턴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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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구글, 나이키 등 끊임없이 혁신에 성공하는 기업들은 DEI에 집중하고 있다. DEI란 다양성(Diversity,), 형평(Equity), 포용(Inclusion)을 뜻하는 데, DEI를 기치로 내세운 기업들은 "다양한 인력이 평등하게 일하기 좋은 포용적인 직장"이라는 단연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과연 우리나라 현실에도 이런 기치가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DEI 전문가인 저자는 수많은 기업들을 컨설팅하며 DEI 가치가 실제 기업 가치와 직원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직에 적용했을 때 구성원의 공감을 이끌어낸 다양한 사례를 설명하고 시대가 변한 만큼 조직의 성공을 위해 리더들이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 역시 변해야 하는 이유를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조차 낯선 현실에서 DEI의 개념을 정립하고 적용하는 것은 이제 직원과 기업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저자는 DEI를 '가야 할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책에 소개된 기업들의 사례는 사정에 맞게 DEI 전략을 구성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각자에게 필요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가 제시한 인식, 순응, 전술, 통합, 지속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 개인과 기업은 각자에게 알맞은 DEI 여정을 만들고 실천할 수 있다. 여러 기업의 스토리와 DEI 전략을 읽다 보면 '다정한 조직'이 뜻하는 바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불행히도 지난 직장 생활에서는 DEI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리더를 만나지 못했다. 과거의 틀에 갇혀  변화를 배척하고 무조건 자신이 옳다는 아집에 빠져 매년 구성원 중 한 명씩 꼭 퇴직하게 만드는 상사를 직접 겪게 됐을 땐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 자존감마저 바닥으로 떨어졌다. 결국 조직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일하게 되었고 클라이언트와 끊임없이 피드백을 하며 다양성을 인정받게 되면서 일에 대한 자신감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스스로가 리더이자 구성원이 된 지금, DEI 노력이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는 기본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P. 280
DEI를 종착점이 정해진 마라톤이라 생각하지 말고 직장 문화에 영구히 통합해야 할 요소라 생각하길 바란다. 회사 인력 구성이 인구학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성 평등 정책이 자리 잡았다 해도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모든 직급의 직원들이 존중받고 가치를 인정받는지 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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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생각 10 - 기후위기 탈출로 가는 작지만 놀라운 실천들
박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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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 되기도 전부터 폭염주의보가 곳곳에서 발효됐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를 마주할 때면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다만 이런 고민이 일시적이라는 게 문제다. 기후와 환경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실천을 이어가야 하지만 극도로 덥거나 추울 때 외에는 기후 위기라는 단어조차 잊고 있다. 그렇다면 지속적으로 환경에 대해 기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대표 환경 작가인 저자는 엉뚱하게 보이는 일상의 생각들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변신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알려준다. 물건 다이어트를 통해 미니멀리스트로 거듭나고 넘쳐나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발한 상품을 소개하며 지구를 살리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책의 첫 장부터 공감과 반성의 연속이었다. 미니멀한 삶을 꿈꾸면서도 물건들로 가득한 현실을 보니 당장 물건 다이어트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또한 형식적으로 했던 재활용 쓰레기 분리도 좀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 문제는 혼자 힘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이에 저자는 도시재생, 생태도시, 생태여행 등 개인과 사회가 함께 자연과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로 7017, 핀란드의 카타야노카 등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삶을 위한 아이디어를 배울 수 있다. 


​먹을 수 있는 컵과 폭탄을 재활용해 만든 팔찌, 오렌지로 만든 전력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자. 끝이 없는 재활용의 상상력 세계에 빠져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환경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P. 9 

모든 것은 사람들의 생각에서 비롯되었어요. 우리 생활을 한결 편리하게 만든 새로운 기술도, 지구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정책도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작은 생각이나 반짝이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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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쿠쿠 랜드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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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쪽이 넘는 어마어마한 양의 소설에는 다섯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각자가 속한 세계에서 소외된 자들로 더 나은 현실을 절실하게 희망한다. 그리고 그 순간 각자는 고대 그리스 소설 <클라우드 쿠쿠랜드>를 만나게 된다. 


700여 년이라는 시간 간극으로 다섯 인물은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은 모두 같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들 앞에 한 권의 책이 나타난다. 책의 제목인 <클라우드 쿠쿠랜드>는 몽상의 세계를 뜻하는데,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의미한다. 



소설은 15세기 콘스탄티노플의 고아 소녀와 불가리아 산속 마을의 언청이 소년, 21세기 미국의 동성애자 노인과 자폐 스펙트럼 소년, 그리고 22세기 인류의 새로운 터전을 찾아 여행 중인 우주선 안 소녀까지 다섯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섯 가지 서사로 전개된다. 처음에는 시간대가 오락가락하고 등장인물들이 많아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차차 익숙해지니 오히려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한 권을 책을 매개로 오랜 시간 이어져온 이야기는 결국 책의 존재와 이를 지키는 사람들의 용기를 보여준다. 시련을 이겨내고 단단하게 성장한 이들에게서는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가 느껴진다. 작가는 다양한 주제를 한 권의 소설에 섬세하고 절묘하게 녹여낸다. 독서가 가진 힘과 가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p. 77-78 

한 권의 책은 앞서 산 사람들의 기억이 담긴 안식처야. 영혼이 먼 길을 떠난 후에도 


기억이 그 자리에 영원히 남게 하는 방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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