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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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정지 사고가 계속되는 대도시의 건널목에서 찍힌 한 장의 유령 사진. 소설은 이 사진의 정체를 밝히려는 취재 기자의 시선을 따라 죽음의 진상에 다가간다.

선로 위에 하얀 실루엣이 떠다니고 있었다. 정처를 잃은 미아처럼 가로등이 비추는 건널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p. 353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먹먹한 기분에 애꿎은 책 표지만 만지작거렸다. 유령 사진이라는 소재 때문에 여름을 겨냥한 장르 소설이라 가볍게 여겼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존재의 정체에 다가갈수록 인간의 삶이 참 애처롭게 느껴졌다. 1994년 말이라는 배경은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이 끈기와 집념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의 모습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요즘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기자 정신을 오랜만에 소설에서 보게 되니 반가우면서도 씁쓸했다. 가십거리라 여겼던 유령 사진은 여성 착취와 조직 폭련단, 부패 정치인과 건설사의 유착 관계로 이어진다. 당시 기술로는 조작이 불가능한 사진, 새벽 1시 3분마다 걸려오는 의문의 전화 등 작가는 촘촘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전개로 소설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소설에서 보이는 초자연적 현상이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유령의 정체가 밝혀질수록 설득력 있는 장치로 다가왔다. 한 인간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 어른이 되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끔찍한 삶, 마지막 순간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간절한 마음이 모두 합쳐져 한 장의 사진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유령, 호러, 귀신 등이 등장하는 소설을 즐겨 읽지 않지만 사회파 미스터리 거장이 보여준 심령 소설은 모처럼 결말에 대한 여운과 이야기에 대한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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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배신 -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을까?
김영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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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성공하고 싶다면 최소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일명 '1만 시간의 법칙'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최선을 다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분명 성공할 수 있다는 이 말을 믿으며 노력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고 열심히 노력해도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만 깊어 갔다. 어른이 되어서도 노력에 대한 결과는 늘 실망스러울 뿐이다. 내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라는 질문은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한 의심으로 번져 나갔다. 


<노력의 배신>은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노력만 강조하는 진짜 이유를 파헤친다. 오랜 시간 미신처럼 굳어졌던 노력의 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노력 신봉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책을 읽을수록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배경에서 노력을 대하는 태도와 차이를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공부를 잘하는 것과 노력의 관계를 설명한다. 또한 노력과 능력 중 성공의 배경이 되는 속성에 대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며 노력 신봉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갈수록 세상에 배신을 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실패한 이유는 노력이 부족한 것일까. 재능이 없어서일까. 재능이 없는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명쾌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닸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뭘까. 저자는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타고난 능력이나 노력 외에도 사회적 환경과 구조가 개인의 성공을 좌우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소 모호한 주장처럼 들리지만 소득 불평등을 예로 들어 설명한 부분을 읽다 보니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개인이 가진 재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구조의 중요성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각자가 가진 재능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빨리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p. 112
성과에서 재능이 노력을 압도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재능이 있어야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력은 아무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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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88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노력의 힘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 인생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노력보다 훨씬 더 강한 타고난 능력과 자질, 그리고 환경과 기회라는 주요인이 있으며, 그것들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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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doj 2023-07-2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는 이 말을 믿으며 노력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고 열심히 노력해도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만 깊어 갔다...
이 책에서 주장한 바에 따르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재능이라 사실 열심히 노력할 수 없거든요.
열심히 노력해도 될 수 없다라는 명제에 모순이 됩니다.
저는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주어진 재능과 환경아래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이 저자는 오만하네요. 한 번 실제 강의를 듣고 싶어요. 이 책의 느낌과 얼마나 다른지.
 
이렇게 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지 - 오늘의 행복을 찾아 도시에서 시골로 ‘나’ 옮겨심기
리틀타네 (신가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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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중반이 지나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외갓집 근처로 이사 가리라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 복잡한 서울의 삶에 지치기도 했고 어디든 노트북과 인터넷만 있다면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대책 없이 생각한 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외삼촌들은 언제든 내려오라고 환영했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젊은 나이에 귀촌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에는 늘 관심이 쏠리게 된다.


​이 책은 30대에 취업, 연애, 결혼을 모두 포기하고 귀촌을 단행한 유투버이자 프리랜서인 리틀타네의 공감 에세이다. 작가의 배경만으로도 뭔가 깊은 공감대가 형성될 것만 같아 보인다. 책 표지만 봐도 그동안 모았던 돈을 모두 쏟아부은 작가의 귀촌 이야기가 기대된다. 


세상의 잔소리 대신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행복을 찾아 떠난 작가의 삶은 좌충우돌 우당탕탕 실수와 배움이 반복되는 유쾌한 삶이었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시골 생활을 함께 읽으면서 나 역시 기분이 한결 유쾌해졌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까지 잠시 나만의 타임아웃을 갖게다는 그녀의 삶의 모토가 예사롭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필요한 만큼 쓰면서 자신의 선택을 믿고 소신 있게 살아가는 그녀의 당당함이 참 좋았다. 물론 매일이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며 답을 풀어나갔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과정이란 걸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맞는 삶의 속도를 찾아냈다. 


​시골에서의 삶은 도시에서의 삶보다 조금은 불편하다. 또한 끊임없이 자신을 움직여야만 한다. 그래도 작가는 버티는 삶이 아니라 멈추는 삶을 선택함으로써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간다. 작가의 호미질 라이프는 내게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나의 30대는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 내 삶은 제자리다. 지금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에 도전조차 망설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찾고 싶어졌다. 

p. 245-246
‘만약에’라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나는 그것을 끝내 붙잡았던 것 같다. 결과는 나조차 알 수 없지만, 괜찮다. 용기를 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면 그것으로 된 거다. 용기의 기록이 쌓일수록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깊어진다. 인생을 겁내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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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지 - 오늘의 행복을 찾아 도시에서 시골로 ‘나’ 옮겨심기
리틀타네 (신가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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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호미질 라이프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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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마지막 숲을 걷다 - 수목한계선과 지구 생명의 미래
벤 롤런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엘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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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집 근처 둘레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자연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적이 있었다. 한 시간가량 흙길을 따라 걷고 나무 그늘에 잠시 쉬기를 반복하던 시간이 참 좋았다. 그 후로도 시간이 날 때면 둘레길로 산책을 나갔고 장마철인 지금은 잠시 쉬고 있다. 도심에서 살면서 제대로 나무를 인식한 적이 있었던가. 기후 위기가 화두로 떠오른 순간에도 나무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조차 갖지 않았었다. 그 때문인지 <수목한계선과 지구 생명의 미래>라는 이 책의 부재가 궁금해졌다.


​이 책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 현상의 변화와 결과를 기록하고, 이에 대응하려 사슴을 죽이고 나무를 베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을 이야기한다. 4년여에 걸쳐 여섯 국가의 숲을 방문하고 지구 최북단 숲 북부한대수림에서 수목한계선과 기후변화를 연구한 과학자들을 만나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심도 있는 주제를 던진다.


​저자는 드넓은 자연림을 탐험하며 "숲은 움직이는 공동체"라고 말한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북극이 초록으로 변하고 있는 현실을 경고하며 수목한계선이 해마다 북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즉,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면서 빙하가 녹고 나무가 뿌리내릴 땅이 늘어나고 영구동토대가 녹으면서 오랜 시간 저장되어 있던 메탄가스가 방출될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위로를 건네던 나무가 이제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주장이 무섭게 느껴졌다.


​또한 이러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어렵고 복잡한 선택지를 논하는 데, 스코틀랜드 소나무 숲의 번성을 위해 사슴 개체 수를 인위적으로 줄여야 하는 것이나, 노르웨이 생태계 복원을 위해 순록의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나무를 베어야 하는 현실을 설명한다. 한쪽을 살리기 위해 다른 한쪽을 무조건 희생시켜야 한다는 생각지 못했던 문제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인간이 자연에 의존하고 다른 생명체와 공생했다는 현실에 기반하여 스코틀랜드와 노르웨이처럼 생태계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기후변화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접근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숲 여정 기록을 따라가며 숲과 지구 생명의 유기적인 관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지구 생태계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기후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개인의 입장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던 나무들이 보내는 경고를 이제라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P. 14 
인류가 대양, 숲, 바람, 해류의 지구적 체계를 들쑤셔 애초에 우리를 탄생시킨 물과 공기의 기체 균형을 깨뜨린 지금은 주목이 선사하는 위로에 의구심이 든다. 나무가 건네는 것은 이제 위로가 아니라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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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45
생태계와 서식지를 정의한다는 측면에서 수목한계선은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빚었으며 더 나아가 인류 문화의 조건을 규정했다. 우리의 장소는 늘 숲 가장자리에 있었으며 숲과 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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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401-402
우리가 숲과 공진화한 오랜 역사 속에서 바라본다면 인류가 자연과 결별한 것은 눈 깜박할 순간의 일이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아온 이야기는 자본주의의 역사보다 길고 넓으며, 무엇보다 중요하게는 아직 결말이 쓰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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