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인간 - 좋아하는 마음에서 더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정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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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땐 어디론가 떠나는 인간을 뜻하는 줄 알았다. 환승이라는 단어 자체를 쓸 일이 많지 않기에 그저 교통수단의 일부로 여겼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을 환승이라 표현하며 지금껏 거쳐 간 수많은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간 한정현과 작가 한정현의 세계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마주할 수 있다.


​저자는 스스로에게 스무 개도 넘는 이름을 붙였다. 난희, 경아, 프란디에 등 수많은 이름은 각각의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인생을 사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녀는 이러한 환승을 통해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라는 사람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이름으로만 살아왔기에 그녀의 생각이 신선하면서도 신기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무거운 삶의 짐을 홀로 짊어져야 했던 과거의 나에게 여러 존재를 만들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삶이 조금을 달라졌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한 사람의 삶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


​저자는 개인적 이야기부터 글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꽤 담담하게 보여준다. 마치 친한 친구와 조곤조곤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온전하게 지켜주는 환승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고 글로써 풀어나간다. 


저자의 소설 속에 등장했던 이름들 역시 같은 선상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지켜준 이름들 덕분에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관계를 지켜나가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나라면 어떤 이름으로 환승할 수 있을까. 어느 소설 속 주인공으로 환승 여행을 떠나볼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소설이 더 읽고 싶어졌다. 어느 소설에서든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해 본다.

p. 43-44
고유성을 드러내는 어떤 것으로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한 게 아니라 그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이름에 힘을 좀 줬던 거다. 

p. 138-139
내 인생의 모토는 '살아만 있자'인데, 사실 이건 책과 인생이 유사하다고 느끼는 지점 때문에 더욱 그렇다. 책이 끝나지만 않으면 다음 장은 분명 예측 불가하지만 흥미로운 일들이 존재하고, 인생도 그렇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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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이시우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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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픈 홀어머니를 모시며 온종일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세일은 '업계 최고 대우'로 신입사원을 뽑는다는 일간지 광고에 혹해 이력서를 넣어본다. 예상치 못하게 면접을 보게 된 세일은 반경 수십 킬로미터 이내에 인적조차 없는 개활지 한가운데 있는 건물에서 면접에 임하고 합격하고 만다. 


정체 모를 이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다인실 병실에 입원해 있던 어머니가 특실로 옮겨지고 수억의 대출이 쉽게 이루어지는 등 사회적 대우가 180도 달라진 삶을 살게 된다. 또한 이제 겨우 입사했고 그마저도 3개월 인턴 과정을 거쳐야 하는 상황에서 통장에 꽂히는 월급은 상상하지 못할 만큼 큰 금액이었다. 


놀라운 건 세일이 맡은 업무가 벽에 붙어 있는 시곗바늘에서 절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는 게 전부라는 점이다. 월급은 국가에서 받고 국정원이 경호해 주는 이 회사의 정제는 무엇일까.

성별, 학력, 자격, 나이무관
3교대 근무
정년보장
업계 최고 대우


단 네 줄의 신입사원 모집 공고. 그럼에도 업계 최고 대우를 보장한다는 문구에 가장 먼저 신경이 쓰인다. 이 의문투성이 소설을 읽으면 가장 먼저 든 질문은 '과연 나라면 이 회사에 입사할 수 있을까'였다. 아무런 정보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의심스러운 세명의 노인들만 있는 이 곳에 덜컥 발을 내밀 수 있을까. 이에 더해 하는 업무에 비해 과도한 대우도 무서웠다. 그리고 그 무서움은 소설을 읽을수록 계속되었다. 


이 기묘한 소설은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을 담고 있다. 작가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 따라 받게 되는 차별적 대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벌도 배경도 인맥도 없는 취준생이 한순간에 국가 원수 급 대우를 받는 상황이 어이없으면서도 두렵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은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일의 업무는 8시간 동안 시계를 지켜보는 일이다. 9시에 있는 시곗바늘이 3시를 넘어가게 되면 손잡이를 잡아당겨야 한다. 하지만 손잡이를 당겼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3시가 넘어가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오로지 자신의 판단을 믿고 한 선택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질문에 대한 답을 쉽게 내릴 수 없었다. 무거운 질문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설정과 흥미진진한 전개 덕분에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세 노인의 정체와 이들이 맡은 업무의 의미, 꿈속에서 세일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 등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남아있다.

p. 293
문명이, 이 세계가 온전히 돌아간다는 것이 내가,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자네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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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김지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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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생이 많은 동네 특성 덕분에 꽤 여러 곳에 빨래방이 있다. 날이 좋으면 이불을 한가득 담은 봉투를 들고 빨래방에 간다. 커다란 세탁기에서 빙굴빙굴 돌아가는 빨래와 거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세탁이 끝나면 커다란 건조기에 넣고 보송보송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돌아가는 빨래들만 보고 있을 뿐인데 걱정도 고민도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은 사람의 온기와 내가 평소 빨래방에서 느낀 기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떤 고민이든 깨끗하게 씻어준다는 이상한 빨래방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사연을 읽으며 모처럼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평범한 이웃들의 사는 모습을 담고 있는 소설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어느 빨래방에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현실의 고민과 닮아 있기에 더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빨래방 테이블에 놓여있는 연두색 다이어리에는 사람들의 고민과 답글이 가득 담겨 있다. 경제적 문제로 사는 게 힘겹거나, 계속되는 도전에 번번이 실패하여 좌절감만 늘어나거나, 보이스피싱으로 가족을 잃었거나, 믿었던 연인에게 깊은 상처를 입은 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이들은 힘들 때면 라벤더 코튼 향이 가득한 빨래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익명의 누군가가 남겨 둔 답글은 위로를 받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힘겨운 이들의 눅눅했던 마음이 깨끗하게 보송보송 해지는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에서 모처럼 따뜻한 온기와 포근한 정을 느낀다. 또한 오랜만에 더불어 함께 사는 기쁨과 간질간질한 연애 세포가 깨어나는 듯한 기분을 마주했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던 걸까. 익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람 사는 이야기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p. 362
누구나 목 놓아 울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다가 필요하다. 연남동에는 하얀 거품 파도가 치는 눈물도 슬픔도 씻어 가는 작은 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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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 - 호모사피엔스에서 트랜스휴먼까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찾는 열 가지 키워드 묻고 답하다 5
전주홍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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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에 인간과 생명의 정의에 대한 정의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인간 중심의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출산부터 노화까지 인류의 생로병사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 과학과 인문학, 철학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팁을 제시한다.

P. 21 
생물학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여러 학문적 전통과 만나고 섞이면서 복잡하고 독특한 특징을 띤 과학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생물학을 역사 그 자체라고 불러도 그리 어색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생명의 역사는 우연한 변이와 자연선택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이 일어난 역사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생명현상이나 생리작용이 역사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놓친다면 생물학적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과학과 관련하여 화학, 물리학, 지구과학, 생물학의 네 가지 부문으로 나눠 수업을 들었다. 이 중에서 가장 흥미를 끈 분야는 생물학이었다.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는 점에서 유독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더 나아가 분자유전학 및 병리학과 관련한 학위를 받고 난 후에도 지금까지 이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대전환의 시대에 과학적 소양과 인문학적 소양을 균형 있게 쌓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생명과학이 발전하면서 상상의 세계로만 여겨졌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시대에 기술이 불러올 충격에 대비하는 방법 중 하나로 인문적 상상력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유전자 조작 기술의 성공 사례가 늘어날수록 인간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에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 현실에서 과학적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좀 더 넓혀야 하는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다. 


저자는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발달과 맞춤 아기의 현실화, 노화를 막기 위한 젊은 사람의 혈장 수혈, 사망 즉시 환자의 냉동 보관, 트랜스휴먼과 포스트휴먼 등에 이르기까지 의견이 엇갈리는 과학적 현상과 사회적 혼란의 예시를 보여주며 생명의 정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다.


​우리는 경이로운 과학 기술의 발달에 감탄하자마자 윤리적 도덕적 충돌을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과학자에게 통합적 인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과거의 논쟁거리를 보여주며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이 필요한 이유를 강조한다. 소개된 다양한 사례는 과학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경계하고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더욱 설득력을 높여준다. 따라서 이 책은 기술의 발전과 윤리 의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현명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P. 197 
비만은 전염병과 유사한 속성이 있다는 거지요. 사실 사회적 관계가 가까울수록 식생활 습관에서 공통점을 지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한 사람이 살이 찌면 주변의 가까운 사람도 같이 살이 찔 확률이 올라갑니다. 그렇다면 개인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사회적 관계를 고려하여 접근한다면 비만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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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스파이 -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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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스파이, 원자 폭탄. 작가는 이 기발한 주제를 멋지게 버무려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과학사를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손에 넣지 못하도록 고군분투한 과학자와 스파이의 활약과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p. 22
모든 임무는 당연히 일급 기밀이었고, 이 임무에 자원한 사람들 중에는 어두운 동기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때로 이들은 적보다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더 많은 힘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린 개인적 악마를 억누를 수 없었다 하더라도, 나치의 위협 앞에서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으로 여겨지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중심에는 원자폭탄이 있다. 과학적 진보가 인류의 전쟁사에 끼친 영향은 거대하다. 나치와 히틀러가 원자폭탄으로 미국과 영국을 잿더미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연합국은 과학자와 스파이로 구성된 특수 부대를 만들었고 작가는 이들의 활동을 추적하며 인류의 전환점이 된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다. 


그의 이야기에는 하이젠베르크나 마리 퀴리처럼 이름만 알고 있는 과학자부터 메이저리그 포수 출신의 스파이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 중 여러 인물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부터가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과학자들의 행동 때문에 스파이와 원자폭탄을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의 분위기는 유쾌하다. 작가는 불륜 때문에 중요한 실험을 망쳤거나 파리 해방 전투에서 화염병을 던지고 투쟁했거나 왕년의 메이저 리그 스타가 미국 최초의 원자 스파이가 된 과정 등을 소개하며 어두운 역사에 숨겨진 엉뚱하면서도 기묘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꽤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인류가 발명한 가장 위험한 무기인 원자폭탄을 둘러싼 치열한 첩보 작전을 무대로 악당과 영웅들이 펼치는 추격전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과학과 역사를 함께 다룬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혼돈의 시기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1944년 12월 18일 스위스 취리히의 작은 물리학 세미나장. 만약 나라면 과연 방아쇠를 당겼을까. 



p. 571
핵분열은 20세기 물리학의 획기적인 발견 중 하나였지만, 그것은 단지 중요한 과학 현상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사회 현상으로 떠올랐다.... 모든 단계에서 관련 당사자들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원자를 쪼갬으로써 그들은 세상을 분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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