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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이시우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7월
평점 :
몸이 아픈 홀어머니를 모시며 온종일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세일은 '업계 최고 대우'로 신입사원을 뽑는다는 일간지 광고에 혹해 이력서를 넣어본다. 예상치 못하게 면접을 보게 된 세일은 반경 수십 킬로미터 이내에 인적조차 없는 개활지 한가운데 있는 건물에서 면접에 임하고 합격하고 만다.
정체 모를 이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다인실 병실에 입원해 있던 어머니가 특실로 옮겨지고 수억의 대출이 쉽게 이루어지는 등 사회적 대우가 180도 달라진 삶을 살게 된다. 또한 이제 겨우 입사했고 그마저도 3개월 인턴 과정을 거쳐야 하는 상황에서 통장에 꽂히는 월급은 상상하지 못할 만큼 큰 금액이었다.
놀라운 건 세일이 맡은 업무가 벽에 붙어 있는 시곗바늘에서 절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는 게 전부라는 점이다. 월급은 국가에서 받고 국정원이 경호해 주는 이 회사의 정제는 무엇일까.
성별, 학력, 자격, 나이무관
3교대 근무
정년보장
업계 최고 대우
단 네 줄의 신입사원 모집 공고. 그럼에도 업계 최고 대우를 보장한다는 문구에 가장 먼저 신경이 쓰인다. 이 의문투성이 소설을 읽으면 가장 먼저 든 질문은 '과연 나라면 이 회사에 입사할 수 있을까'였다. 아무런 정보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의심스러운 세명의 노인들만 있는 이 곳에 덜컥 발을 내밀 수 있을까. 이에 더해 하는 업무에 비해 과도한 대우도 무서웠다. 그리고 그 무서움은 소설을 읽을수록 계속되었다.
이 기묘한 소설은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을 담고 있다. 작가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 따라 받게 되는 차별적 대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벌도 배경도 인맥도 없는 취준생이 한순간에 국가 원수 급 대우를 받는 상황이 어이없으면서도 두렵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은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일의 업무는 8시간 동안 시계를 지켜보는 일이다. 9시에 있는 시곗바늘이 3시를 넘어가게 되면 손잡이를 잡아당겨야 한다. 하지만 손잡이를 당겼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3시가 넘어가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오로지 자신의 판단을 믿고 한 선택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질문에 대한 답을 쉽게 내릴 수 없었다. 무거운 질문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설정과 흥미진진한 전개 덕분에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세 노인의 정체와 이들이 맡은 업무의 의미, 꿈속에서 세일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 등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남아있다.
p. 293
문명이, 이 세계가 온전히 돌아간다는 것이 내가,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자네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