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경성 -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 살롱 드 경성 1
김인혜 지음 / 해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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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와 그림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주제에 호기심이 생겼고 당시 천재 화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천천히 읽으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던 이들의 삶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전쟁과 분단이라는 가혹한 세상을 살아간 예술가들의 삶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러한 삶은 화가들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화가와 문인 우정, 화가와 아내의 사랑 등 예술을 향한 이들의 집념과 열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책에 소개된 예술가과 그들의 작품을 보며 어쩌면 이들은 시대를 앞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혹했던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천재적인 재능과 예술을 향한 열망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낭만 가득한 예술가들의 삶을 알아갈수록 그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깊어만 간다. 


이 책에는 이상과 정지용 등 학창 시절 교과서를 통해 알게 된 예술가부터 이쾌대와 이인성처럼 처음 알게 된 예술가까지 수많은 예술가가 등장한다. 개개인의 삶은 물론 서로 연대하고 의지하는 모습은 진정한 '멋'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역사의 한순간은 저자의 글을 통해 입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나타난다. 


이 책을 읽고 만족스러웠던 점은 당시 미술 지식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애부터 삶의 방식과 철학이 드러난 작품까지 두루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무지했던 한국 근대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 또한 덧붙이고 싶다. 이 책은 그동안 한국 미술에 대해 가지고 있던 거리감을 단숨에 좁혀주었다. 슬프도록 찬란한 우리 근대문화사의 유산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낭만적인 예술가들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길 기대해 본다.     

p. 46
인생은 나그네길이라 정박할 곳 없는 삶이란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인지 모른다. 그러나 높은 이상과 처절한 현실 사이 간극을 누구보다 극명하게 인식했을 선구자들에게, 그들의 숙명은 더욱 냉엄한 것이었으리라. 많은 작품을 남기지도 못했고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후세가 그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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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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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청춘 소설이다. 어린이 병원 휴게실에서 처음 만난 세이디와 샘은 함께 게임을 하며 둘 도 없는 친구가 되지만 사소한 오해로 서로 멀어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샘과 세이디는 우연히 지하철 플랫폼에서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함께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여기에 샘의 룸메이트 마크스가 합류하고 첫 게임인 <이치고>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소꿉친구의 삶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설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게임들이 등장한다. '슈퍼 마리오'나 '테트리스'는 학창 시절에도 즐겨 했던 게임이라 소설에 등장했을 때 그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청춘들의 열정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고 있으니 잠시나마 과거로 돌아간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소위 청춘은 무한한 가능성이 넘쳐나는 세대라고 여긴다. 그 시절이 그리워서일까. 수없이 도전하고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한층 더 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에 자꾸만 나를 대입하게 된다. 이들은 첫 도전에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지만 인생이 쉽지만은 않다. 어린 시절 사고로 다리를 다친 샘은 점점 통증이 악화되고 세이디는 연인 도브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매듭지지 못한다. 또한 당시 게임 업계의 근무 환경은 열악했고 기술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는 게임에서 무한한 부활과 무한한 구원의 가능성을 찾게 된다. 게임을 사랑하고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세계는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이에 따라 소설의 형식 역시 독특한 데, 인터뷰나 게임 채팅 등의 형식을 활용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샘과 세이디의 관계를 단순히 로맨스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어색하다. 두 사람이 플랫폼에서 재회하는 장면은 로맨스 소설의 전형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전장에서 함께 싸우는 전우 같기도 하고 서로에게 자격지심을 느끼면서도 동경하는 모습에서 사랑 이상의 감정이 보이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반짝이는 시절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었고 사랑과 삶이라는 게임에서 내가 남은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다시 시작되는 내일, 그 내일이 이어지는 어느 순간에 다시 반짝임을 찾을 수 있을까.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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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상실 - 해결되지 않는 슬픔이 우리를 덮칠 때
폴린 보스 지음, 임재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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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상실의 경험을 겪는다. 여기서 상실이란 죽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넓은 의미로 가족의 실종과 죽음,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이혼과 입양뿐만 아니라 일 중독, 치매, 만성적인 정실질환 등을 포괄한다. 가족심리치료 전문가인 저자는 오랜 시간 불완전한 상실로 고통받는 개인과 가족을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 사화에 만연한 상실에 대한 의미와 치유를 제시한다.


저자는 해소하지 못한 감정이 지속되면 만연한 고통과 상실감으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런 상태를 '모호한 상실'이라 정의하며 수많은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이를 인정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우리가 겪게 되는 모호한 상실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살면서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보편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모호한 상실을 겪게 되지만 이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희망과 절망의 극단적인 감정을 반복적으로 느끼고 이는 우울과 불안 더 나아가 신체적 질병까지 나타나게 된다.


책의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과거에 실제로 이런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저 스트레스로만 여겼고 내가 예민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정신적 신체적 문제가 생겨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문제가 단지 상실을 경험했기 때문에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본질적으로 개인이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으므로 가족사회학 개념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와 내면 심리를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지적에 따르면 나 역시도 오랫동안 모호한 상실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아픈 가족이 있는 경우 부득이하게 삶의 중심이 바뀌게 되고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상실 상태에 처하게 된다. 저자는 해결되지 않은 슬픔에 대한 두 가지 상황을 제시했고, 내 경우는 '육체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심리적으로 부재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해소되지 못한 상실감이 오래 지속되면서 불안장애와 공황장애 같은 정신적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더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아직은 나를 돌볼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의 말을 되새겨보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내면을 온전히 들여다볼 용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가족을 하나의 체계로 보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 책의 제목인 '모호한 상실'이라는 말 자체가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내 안의 슬픔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외면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내 삶을 되찾고 건강한 가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려 한다.

​p. 24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상실 가운데, 모호한 상실은 정확하게 규정하기 힘들고 불분명한 상태로 남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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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크리스마스 NEON SIGN 1
조동신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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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오만은 취업시장을 전전하며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는 백수다. 어느 날 주택가 건물 2층에 위치한 북카페 E퀸에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말에 오만은 북카페 문을 연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중요한 이벤트를 준비 중이라는 사장의 제안에 백수에서 탈피하고자 승낙하지만 면접 첫날부터 도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심상치 않은 북카페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네오픽션의 새로운 경장편 시리즈 <네온사인>의 첫 작품이다. 172쪽의 가벼운 소설이지만 일상의 미스터리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면접 첫날 책방에서 사라진 고서적부터, 아빠에게 선물로 받은 호두까기 인형을 찾아달라는 소녀의 의뢰, 크리스마스 빵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달라는 제빵사의 의뢰,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 보석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카페 사장님의 의뢰까지 솔깃한 소재에 관심이 쏠린다.


주인공이 취준생 백수라는 설정부터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캐릭터를 기대하게 만든다.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미스터리를 그리고 있어서인지 정통 미스터리 소설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특히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일상에서 찾은 단서를 하나씩 풀어나가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오만의 추리 과정이 재미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요즘에 특히나 읽기 좋은 소설이다. 잠시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색다른 이야기와 함께 삶의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작가의 소소한 일상의 미스터리를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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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레시피 - 논리와 감성을 버무린 칼럼 쓰기의 모든 것
최진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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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column): 

신문, 잡지 등에서 시사, 사회, 풍속 등을 촌평하는 기사 또는 난. 

(출처: 위키백과)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지금 서평을 쓰는 순간에도 머릿속에서 온갖 문장들과 단어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고 그 안에서 필요한 것을 찾는 과정이 꽤 복잡하다. 하물며 칼럼이라니. 생각도 해 본 적도 없다. 보통 칼럼이라고 하면 정치나 사회 분야처럼 심도 있고 어려운 주제를 다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칼럼이란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소재와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의 한 장르일 뿐이라 말한다. 개인이 자신의 SNS에 직접 올린 글 또한 일종의 칼럼이라는 말에 솔깃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칼럼 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줄 특급 레시피다. 글쓰기의 기본부터 여러 강의 현장의 경험을 녹여내어 맛깔나는 칼럼 한편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직접 쓰기 시작하면 어렵다고 느끼겠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저자는 좋은 글감을 찾는 법부터 흡입력 있는 첫 문단을 쓰는 법, 매끄러운 전개를 위한 꼬리 물기 전략, 대화 문장을 활용하는 방법은 물론, 은유와 상징을 세련되게 활용하고 문장력을 키우는 실전 연습까지 풍부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또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더욱 칼럼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짧기 때문에 한정된 분량 안에 주장하는 논지를 효율적으로 배치하면서 문장을 다듬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칼럼에서 다루는 주제가 한정적이지 않고 세상과 이웃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신문이라 잡지에 실린 칼럼은 어려운 말이 잔뜩일 거라 지레 겁먹고 피했지만 이제부터는 먼저 챙겨 볼 수 있을 것 같다. 가끔은 활자 중독처럼 무작정 읽기만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칼럼을 찾아보려 한다. 자신만의 문장력과 문체를 개발하거나 좋은 글을 알아보는 안목을 키우고 싶다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p. 39
하루 중 일정한 시각을 정해 칼럼 몇 편을 읽어 보세요. 요일마다 언론사를 정해서 읽어도 좋고, 여러 매체를 돌아가며 선별해도 좋습니다. 칼럼에서 언급된 사안, 사건, 사례 등을 메모하세요. 글의 주장이나 근거 등은 넘겨도 괜찮습니다. 어색한 흐름을 발견해도 개의치 말고요.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주제라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칼럼에서 실제로 활용된 소재를 메모하는 건 칼럼 바다에서 유영하는 싱싱한 보물을 건져 내는 일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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