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평점 :
인간은 악한 존재로 태어나는가, 악한 존재로 길러지는가.
19-20세기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유전학과 우생학이라는 과학 지식이 어우러져 완벽한 인간을 만들려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그려낸 소설이다. 소설은 도망자 신세인 아들 카토가 그의 어머니 케케와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듣게 된 이야기로 전개된다.
몰락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리센코 후작은 인간을 개조하여 강한 민족을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황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수백 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시작한다. 이 아이들은 20년간 끔찍한 추위에 강한 유전자를 만들기 위한 숙주로 길러진다.
남자아이 집단과 여자아이 집단으로 나누어 극한의 추위에 살아남은 아이들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통해 우성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을 생산하는 도구로 이용된다. 이 끔찍한 실험이 진행될수록 끌려온 대부분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게 되고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며 그곳을 탈출해서 살아남은 단 한 명의 실험체 케케는 그의 아들에게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소설을 다 읽고 에필로그를 읽는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여러 실존 인물들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팩트와 픽션의 경계에서 방황하게 된다. 작가는 과학적 사유와 역사적 사실이 빚어낸 SF 소설이라 말하지만 잔혹한 실험의 사실 여부가 실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또한 떠나는 아들을 바라보는 케케의 시선에서 끝까지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악함의 본질이 유전이냐 아니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게 된다. 과연 실험은 실패한 것일까. 카토의 이후 삶을 보면 실험은 완벽하게 성공한 것일지도 모른다.
리센코가 매료된 '획득 형질의 유전', 즉, 환경의 영향을 받아 체득한 특징이 후천적으로 유전된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인류는 어떤 특징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까. 또한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돌연변이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체득한 특징이 유전되지 않는다면 존재하는 인간을 폐기해야 하는 걸까. 환경에 따른 필요 부분의 가치는 누가 결정하는 걸까. 소설을 읽고 나니 많은 의문이 생겨난다. '악은 유전되는가'라는 주제를 빼어난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낸 흥미로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