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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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탐정 킴볼의 사무실에 옛 제자 조앤이 찾아온다. 남편의 외도를 조사해 달라는 제자의 부탁을 수락했지만 석연치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되고 외도 현장을 뒤쫓던 중 킴볼의 남편과 외도 상대의 시신을 마주하게 된다. 킴볼의 기억 속에서 조앤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학생이었다. 결국 자신이 조앤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주는 도구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 사건의 진실을 찾기로 결심한다. 그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 착한 죽음을 선사했던 릴리 킨트너를 찾아가 함께 진짜 살인자를 잡기로 한다.


​살인자를 잡기 위해 또 다른 살인자와 손을 잡은 탐정이라는 설정부터 흥미진진하다. 1부에서는 킴볼과 조앤의 시점이 교차하며 현재와 과거를 보여주고 2부에서는 킴볼과 제3의 인물인 리처드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전개된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릴리와 조앤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결말을 향해 간다.


시점이 교차하기 때문인지 속도감이 더해져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킴볼이 과거를 되짚으며 조앤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이나 릴리가 조앤에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악을 이기는 악이라는 설정부터가 신선했다. 심증뿐인 과거 살인 사건까지 더해져 악의 결말이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조앤의 태도에 짜증이 났다. 그래서인지 악과 악의 대결에서 선악의 기준이 모호해져 버렸다. 악을 이기기 위해 또 다른 악을 이용하여 결론으로 치닫는 장면에서 소설을 읽는 쾌감을 잠시 느꼈지만, 과연 이러한 선택을 옳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피터 스완슨은 바로 이 선악의 기준을 흔들며 악을 이기는 악이 용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집필에만 무려 8년이 걸렸다는 <살려 마땅한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을 걱정할 때 행복하다는 한 여자의 비틀린 욕망과 살인부터 결단을 내리려는 착한 살인까지 최상급의 스릴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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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빠진 로맨스
베스 올리리 지음, 박지선 옮김 / 모모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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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조지프 카터의 일정
8:52 am 시오반과 첫 아침 식사 데이트
2:43 pm 미란다와 근사한 점심 식사
6:30 pm 제인과 직장 동료 약혼 파티 참석


어느 밸런타인데이 세 여자를 바람맞힌 조지프 카터의 삼중 연애가 시작된다. 그는 진정한 능력자인 걸까. 그에게 숨겨진 사연은 무엇일까. 다소 황당한 설정의 로맨스 소설이라 시작부터 궁금증을 일으킨다. 한 남자와 세 여자의 사랑이라니. 이 연애의 끝에 숨겨진 반전이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표지에 속지 말 것!'


소설은 세 여자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조지프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라 세 여자의 시선에서 조지프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시작부터 독특한 설정 때문에 조지프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이 생기게 되고 과연 이 로맨스 소설의 끝이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성격도 직업도 다른 세 여자가 가진 매력 또한 다르기 때문에 누구 하나만 응원할 수도 없다. 조금 더 조지프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지만 소설이 끝을 향해 가면서 밸런타인데이의 비밀이 풀리게 된다. 예상할 수 있는 전개일 수 있지만 작가는 억지스럽지 않게 잘 풀어나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믿음은 중요한 문제다. 소설은 상대에게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 낸다. 오랜만에 읽는 로맨스 소설이라 그런지 잠시나마 마음이 말랑해지는 걸 느낀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는 세 여자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세 여자의 마음을 움직인 조지프의 매력 역시 더 알고 싶어졌다. 


​단순히 바람둥이 남자와 세 여자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 등 일상의 소중한 순간들을 통해 위로받고 치유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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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 -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뇌과학자의 자기감 수업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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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인식하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신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다. 따라서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심리학적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사회적 개인적 이유로 불안이나 우울, 분노 장애 같은 현상이 늘어나면서 심리적 용어로 사용되던 자존감을 생물학적 용어로 설명하여 자존감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우리 몸의 '뇌'를 이해함으로써 자존감이 만들어지고 과정과 흔들리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심리학으로만 생각했던 분야를 생물학으로 확장함으로써 감정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준다. 이러한 시도가 낯설면서도 재미있다. 다양한 과학적 연구 결과와 예시를 읽으면서 내 안에 있는 인정 욕구를 다스리고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는 과정을 배울 수 있다.


​특히 개인마다 신체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비율이 다르며 심리적 자존감을 과학적 자기감으로 이해하고 신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존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스스로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제시된 뇌 활동을 측정한 결과를 통해 객관적으로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다양한 가설과 이론을 통해 사회적 자기와 타고난 원초적 자기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즉,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 SNS 중독, 갑질과 분노 등이 자존감을 불균형 상태로 방치하게 되고 뇌에서는 왜곡된 기억이 생성되어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만들어지게 된다. 감정을 뇌과학과 연관 지어 이해하게 되니 신체 항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 수 있다.


돌이켜보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해야 하는 시기에 정신적으로 무너졌고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건강 또한 좋지 못했었다. 이 책에 소개된 뇌과학으로 본 감정은 신체 불균형을 뇌가 먼저 감지하고 알려주는 신호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적 안정을 위해 감정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고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이유가 중요한 지금, 이 책을 통해 뇌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 115-116 

일반적으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사회적 행동의 결과를 계산할 때 이익에 더 많은 가중치를 부여한다. 이는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가 지니는 가치를 더 강하게 느낀다는 의미다. 그 결과 이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 시도할 때 이 행동의 결과가 초래할 비용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마도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계량기는 일시적인 사회적 실패에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 충분한 완충제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P. 300
인정 욕구는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에서 행동을 지배하는 강력한 동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욕구의 최상위 단계가 될 수는 없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위 단계의 욕구는 나 자신을 온전한 형태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일 텐데 이는 자기감과 더 관련될 것이다. 즉,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목표는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확립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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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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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한 일터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이 있다. 매일같이 일터에서 누군가가 죽는다. 이들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알게 되는 건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누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 다소 무거운 주제 때문에 처음부터 참혹함과 안타까움을 심정을 어찌할 수 없었다.


​크고 작은 재난 현장을 취재하던 저자는 노동 분야를 담당하게 되면서 더 이상 누구도 일하다가 죽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일터에서 죽음이 발생하게 되는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나 역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노동자가 싸우는 현장은 잘 알지 못했다. 사무실이나 연구실의 책상 앞에서만 있던 내게 현장의 모습은 낯설었고 마치 전쟁터처럼 보였다. 위험 요소가 많은 곳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죽음에 의문이 들었다. 사고가 일어나면 같은 사고가 없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왜 방치할까. 저자가 말한 산재의 유형을 살펴보니 그 의문이 풀렸다. 노동자의 안전이 생산과 효율에 밀렸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사고를 노동자의 과실로 돌린다. 개인의 안전 인식을 문제 삼거나, 처벌에만 집중한 나머지 근본적인 원인을 무시하고, 노동자의 안전이나 설비 개량 대신 생산량을 강요하는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일터에서의 죽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산재로 희생된 노동자의 유가족들이 떠난 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생업을 포기한 채 사고 관련 자료를 찾아내고 산재의 위험성을 알려야 하는 현실이다. 평택항 이선호 씨의 사고는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애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터에서는 여전히 이름 없는 죽음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들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을 울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일터의 죽음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 22-23
산업안전보건법 보니깐 디테일하게 잘 만들어놨어요. 근데 사업주들이 왜 법대로 안 하냐고. 왜 법대로 안 해서 사람을 이렇게 만드느냐는 말이에요. 사람 하나 죽어도 벌금이 500만 원밖에 안되잖아요. 지금 중대재해처벌법 만들어 놓은 거 경영자들 사업 위축된다고 손본다던데, 가진 놈 돈 더 벌게 하려면 흙수저 애들 다치고 죽어도 된다는 말입니까.


p. 293-294
재해를 안다는 것은 그 진상을 규명해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떠나간 이들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마음 깊이 추모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터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온몸을 쭈뼛 세워 받아들이고 아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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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데드 해방일지 - 퇴사욕구와 인정욕구 사이에서 좀비화한 요즘 직장인 을 위한 일 철학
시몬 스톨조프 지음, 노태복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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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회사를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기계적으로 출근하고 인정욕구와 퇴사 욕구 사이에서 흔들리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된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모든 일상이 일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삶.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과거 종교가 하던 역할을 현재는 직업이 대체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런 경향을 '워키즘(Workism)'이라는 신조어로 표현한다. 따라서 일명 워키스트들은 일을 통해 돈을 벌고 성취감을 느끼며 나아가 삶의 의미까지 찾고 싶어 한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뭘 하는 사람입니까?"라고 물으면 "번역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나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일로 표현하고 일이 곧 나라는 잘못된 믿음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이 하는 일이 곧 자신이라는 착각부터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착각, 직업이 삶의 바탕이자 핵심이라는 착각, 나의 가치가 실적으로 결정된다는 착각, 친밀할수록 좋은 직장이라는 착각, 오래 일하는 만큼 일을 잘하게 된다는 착각, 사내 복지는 무조건 좋다는 착각, 위로 올라가야만 성공이라는 착각을 깨부수고 일과 조금 멀어져도 괜찮다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즉, 가짜 노동에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이제는 진짜 '나'를 위해 일할 때라고 주장한다. 일이 왜 직업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일을 통해 삶의 의미와 공동체, 목적의식까지 찾으려는 기대를 버리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3년 동안 100명이 넘는 직업인을 취해하고 다양한 분석을 통해 덜 일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내가 일 책에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후 더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환경에서 일을 많이 할수록 내 가치가 증명되고 몸값이 올라간다는 믿음을 맹신하여 무리할 때가 종종 있었다. 몇 년째 휴가 한번 가지 못했고 휴일에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번아웃의 터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토대로 일하는 시간을 조정함으로써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고 "덜 이해야 더 나은 인간이 된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생각해 볼 질문이 있다.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수 있다면 당신을 일할 것인가?" 가끔씩 일을 하지 않아도 통장에 고정적인 수입이 찍히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고민 끝에 내가 내놓은 답은 '일을 한다'이다. 하지만 일을 생각하는 마음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더 이상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 일을 향한 열정을 자신을 향한 호기심으로 집중하라는 메시지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p. 26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평생 단 하루도 노동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명언에 동의하냐고 물었을 때, 모이가니는 내가 결코 잊지 못할 대답을 했다. "일은 그냥 일일뿐이에요. 누군가는 좋아하는 걸 일로 삼아요. 다른 누군가는 일하지 않을 때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일하기도 하죠. 둘 다 거기서 거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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