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인간 선언 - 기후위기를 넘는 ‘새로운 우리’의 발명
김한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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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은 여름처럼 더웠고 겨울처럼 추웠다. 한창 늦가을의 정취에 물씬 취해야 할 때 역대급 기후 변화를 경험하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환경운동가인 저자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기후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공생 방법을 고민한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의 실상을 보여주고 이를 초래한 인간중심적인 가치와 관습들을 비판하며 우리의 책임과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솔직히 최근 들어 기후위기에 관심이 생긴 것이지 내 생활과 크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들쑥날쑥한 기상과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여러 기후 변화를 뉴스로 접하며 생각보다 우리의 현실에 훨씬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위기는 인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분별한 성장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가 급증하고 이로 인해 대기와 해양 등 각종 오염이 심해졌다. 인류가 초래한 문제는 이제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숙제를 떠안겼다.


​이에 저자는 탈인간중심주의를 선언하며 책임질 줄 아는 인간으로의 전환을 선포한다. 그러면서 신공항 건설을 중지하고 포획 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등 인간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변화를 이야기하고 공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저자의 주장에 따라 각자가 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함으로써 전 인류가 하나가 되어 기후위기를 타개해야 한다. 


​저자가 제안한 여러 방향 전환 중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역시나 나를 바꾸는 것이다. 완전한 비거니즘이 되기는 힘들겠지만 육식 위주의 식습관을 서서히 바꾸고 기후정치 시민행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변화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후위기라는 커다란 숙제 앞에서 나로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변화를 범위를 넓혀 함께 연대하고 공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이다.

P. 9 
탈인간은 먼저 탈인간중심주의의 준말로, 말 그대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그것이 몸부림인 이유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벗어남을 완벽히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세의 비극을 탄생시킨 인간에 대한 반성과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목표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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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루스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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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세니는 중세 러시아의 시골 마을에서 의술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지만 사랑하는 연인과 아이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아르세니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우스틴, 암브로시우스, 라우루스 등의 이름으로 여러 나라와 도시를 떠돌며 속죄와 박애의 길을 떠난다. 



이 소설은 페스트가 창궐했던 중세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사람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를 치유하고 순례자로서 그리고 수도자로서 삶의 신성함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삶의 신비와 순수한 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교적 색채가 짙게 느껴지며 한 한 번의 완독으로는 소설의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상 깊었던 건 한 사람이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삶의 다양한 순간들이었다.


아르세니는 뛰어난 치유 능력으로 명예를 얻게 되지만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의 고통을 경험한다. 때로는 아름답지만 때로는 처절한 한 남자의 인생을 통해 각자의 인생을 투영하며 삶과 죽음, 존재의 가치 등에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신론자이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아르세니를 신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가 보여주는 모든 능력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월적인 존재를 투영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삶은 신성하다. 구원을 찾아 떠나는 한 남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신앙과 사랑의 힘을 느끼고 기꺼이 운명 앞에 당당해질 수 있다. 삶은 늘 위기의 연속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고 회복할 수 있을지 답을 찾는 과정은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미숙한 지금의 삶에서는 찾지 못했던 답을 그때는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 495
라우루스, 조약돌 하나하나에는 무언가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이것은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조약돌을 한꺼번에 쥘 수 있는 사람을 만나려는 것입니다. 바로 그가 조약돌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라우루스, 형제님의 삶도 그러하답니다. 삶의 단일성을 깨고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고 자기 자신을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모자이크 같은 형제님의 삶에는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분께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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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 - 교유서가 소설
박이강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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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무엇일까. 나는 신뢰라고 생각한다. 이 신뢰는 타인에 대한 믿음에 기반하여 형성되는 데 우리는 믿음으로 포장된 관계 속에서 표현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박이강의 소설은 바로 이 믿음에 대한 단상을 보여준다. 믿음을 주제로 한 9편의 단편을 읽으며 잊고 있던, 아니 잊고 싶은 경험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단편을 즐겨 읽지 않지만 박이강의 단편에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내 이야기를, 내가 목격한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기에 몰두할 수 있었다. 오피스를 배경으로 한 각각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견디는 삶에 익숙해져 한순간의 충동에도 희열을 느끼던 시간들이 문득 생각난다.


​카드 명세서와 퇴사 결심을 반복하는 10년 차 직장인의 미소, 상사에게는 비굴한 선의를 보이지만 스스로에게만은 비겁하지 않으려 하는 세영, 전 직장 상사에 대한 상처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계약직 지수, 불안한 미래에 휴가지에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희수 등 일과 삶의 굴레에서 방황하는 이들의 모습이 측은하면서도 공감이 간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는 헛된 믿음을 맹목적으로 믿으며 현재를 견뎌낸다.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은 그런 나의 헌신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만 같다. <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는 살기 위해 오늘 하루를 무사히 견뎌낸 모든 이들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소설이다.

​p. 13-14
내 마음은 변화를 갈구하는 만큼 변화에 저항했다. 부장을 참을 수 없어 하면서도 10년째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고, 늘 자책하면서도 여전히 습관처럼 공과금 연체료를 내며. 하물며 전 남자친구와는 그만 만날 결심을 하면서 몇 년을 더 만나지 않았던가. 어쩌면 변화에 대한 저항이야말로 지금의 삶을 지탱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p. 233
오늘 하루가 지났다.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오늘이 어제와 비슷했듯이 내일도 오늘과 비슷하겠지. 따지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 날들일 뿐이다. 무탈해 보인다고 무탈한 건 아님을 모르지 않지만, 나는 그렇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삶이 무탈하기를 바라는 건 누군가의 순정한 얼굴만을 보길 기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임을 알고 있으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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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 윤석열 정부 600일, 각자도생 대한민국
신장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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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저녁에 작업을 하게 되면 라디오 앱을 켜고 MBC 표준 FM을 찾는다. 그리고 라디오 청취율 1위를 달리는 신장식의 <뉴스 하이킥>을 통해 오늘 하루 있었던 뉴스를 듣는다. 내가 뉴스 하이킥을 듣는 이유는 속이 시원해서다. 진행자의 명쾌한 목소리와 막힌 속을 뚫어주는 멘트 때문에 유일하게 찾아서 듣는 시사 프로다.


​이 책은 2022년 3월 10일부터 현재까지 쓴 '신장식의 오늘'을 모아둔 책이다. 이제 겨우 1년 반이 지났는데 나라 꼴이 엉망진창이다. 어디서도 자랑스러웠던 나라가 어떻게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을까. 한참이나 과거로 돌아간 모양에 한숨만 나온다. 


참담한 나라의 처참한 현실을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불편할 따름이다. 꼭 읽고 싶었던 책이지만 아프고 불편한 기억들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책임지는 이 하나 없는 씁쓸한 현실이 야속하다. 당연한 상식으로 여겼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게 되니 이게 정녕 나라가 맞나라는 생각도 든다.


​일련의 사건들을 돌아보고 나니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제목에 유독 공감이 간다. 그럼에도 절망만 할 수는 없다. 국익과 국격이 실종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각자도생의 현재를 버텨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다시 한번 가져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보다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높이도 훨씬 높아졌고 <뉴스 하이킥>처럼 비판과 풍자, 그리고 사회에 대한 믿음이 있는 시사 프로그램이 있다.


​비록 정치에 대한 불신은 깊어만 가고 무너져가는 경제 때문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지금의 현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대환장 대한민국의 오늘을 꼼꼼하게 기억하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이다.

p. 15
모든 권력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 끝이자 새로운 시작의 자리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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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거짓말
라일리 세이거 지음, 남명성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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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 데이비스는 부잣집 아이들이 주로 가는 캠프가 궁금했다. '나이팅게일 캠프'라 불리는 캠프에 열세 살 여름방학에 캠프에 참가하게 되면서 세 살 위 언니들인 비비언, 내털리, 앨리슨과 같은 오두막에서 생활한다. 오두막의 리더 격인 비비언이 유독 에마를 친동생처럼 여기고 잘 챙겨주었지만 캠프 운영자인 프래니의 아들 테오를 짝사랑하던 에마는 우연히 비비언과 테오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고 세상이 끝나버린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후 에마는 잠결에 세 언니들이 오두막을 떠나는 모습을 보지만 아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5년 후 에마는 다시 문을 연 나이팅게일 캠프에 프래니의 권유로 미술 강사로 참여하게 되고 어린 세 학생과 오두막에서 지내며 사라진 아이들의 비밀을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이제부터 게임을 하려고. '두 진실, 한 거짓말'이라는 게임이야.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세 가지를 말하는 거야. 세 가지 말 중에서 둘은 반드시 진실이어야 해. 하나는 거짓말이어야 하겠지. 그럼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말이 거짓인지 맞히는 거야.
p. 114


거짓말만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 게임의 목적은 거짓으로 상대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상대를 속이는 것이다. 소설은 자연 속 캠프를 배경으로 실종 사건에 대한 진실을 현재와 15년 전 과거를 교차하며 풀어 나간다. 특히 참가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점과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라는 설정은 사건의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어린 소녀들은 게임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상대의 비밀을 폭로하고 복수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주인공인 에마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는 실종사건의 범인에 대한 궁금증 뿐만 아니라 에마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또한 이미 캠프의 경험이 있는 비비언의 말과 태도는 에마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일조한다. 


​어른이 된 에마가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 나서고 같은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면서 과거의 사건은 현재진행형이 된다. 에마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되자 나 역시 혼란스러웠다. 비비언 일행이 사라진 건 에마의 짓일까. 열세 살 소녀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등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복잡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소설 앞부분의 복선이 하나둘씩 맞춰지고 결말에서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마주했을 때 심리 스릴러를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잔혹한 행위나 끔찍한 범죄 없이도 충분히 서늘함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마지막 진실에 다다르면 소름 끼치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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