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사람들 | 원제 Mundo del fin del mundo (1989)
루이스 세풀베다 Luis Sepúlveda (지은이), 정창 (옮긴이) | 열린책들

정   가 : 7,500원 | ISBN(13) : 9788932905037
출간일 : 2003-08-10 | 양장본 | 200쪽 | 196*130mm

출간일과 서지 정보가 좀 이상하다. 내가 가진 책은 2003년 5월 30일 초판 1쇄로 발행되었고, 160쪽에 본문이 끝나고 판권 면까지 합쳐 161쪽으로 되어 있다. 출판사에서 석 달도 안 되어 200쪽짜리로 다시 편집해 냈단 말인가? -.-

7년 전에 시아 출판사에서 [세상 끝으로의 항해]란 제목으로 나온 것(1995년 11월 15일 펴냄)을 읽었더랬는데,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을 모두 가지고 싶은 욕심에 열린책들에서 새로 번역 출간한 것도 사서 앞부분을 비교하니, 두 책의 번역이 너무 달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아 출판사 쪽 번역은 번역가가 잘 모르는 부분은 제대로 옮기지 않고 그냥 넘어가 버린 듯하다;;;

오랜만에 다시 읽다 보니, 아, 그동안 이 책의 느낌만 막연히 기억하고, 뒷부분의 아름다운 장면은 몽땅 까먹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예하 출판사에서 1993년 4월 30일 펴낸 것)을 읽고 루이스 세풀베다의 팬이 된 뒤 두 번째로 읽은 책인데,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이 워낙 좋았던 탓에 좀 실망스러웠더랬다. 사실 지금까지 읽은 세풀베다 작품 중에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만 한 것이 아직 없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보니, 실망할 만큼은 아니었다. 야만스런 일본 국적 포경선이 그냥 ‘일본인들’로 표현되는 것에 약간 거부감이 들었지만(포경선과 포경 산업이 나쁘지 모든 일본인이 나쁜 건 아니잖아), 파타고니아 남쪽 남극 바다의 서늘한 기운과 자연에 대한 믿음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자연에 대한 믿음’이란 것도 인간의 일방적인 희망은 아닌지...

나의 동족들은 예부터 고래들을 자기 자신을 지킬 줄은 모르지만 남에게는 동정을 베푸는 유일한 동물로 여겼소.(151쪽)

자기 자신은 지킬 줄 모르지만 남에게는 동정을 베푸는 동물이라니. 자기 자신을 지킨다는 이유로 남을 해치다가 결국 자기 생존마저 위협하게 된 인간과는 정반대로구나. 눈물겹다.

그렇잖아도 공간 감각이 떨어지는데, 수많은 섬과 협곡으로 이루어진 칠레 남쪽 바다의 복잡한 항해로를 묘사하는 부분은,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ㅠ.ㅠ 나에게 푸에르토몬트에서 티에라델푸에고에 이르는 바다의 모든 섬과 항구가 나와 있는 지도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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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반짝 2008-01-19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많은 섬과 협곡, 곶,항만은 정말 옮긴이의 말처럼 눈을 찌르더군요.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전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 다음으로 괜찮은 책인 것 같아요..^^

가랑비 2008-01-2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극취호님, 저랑 느낌이 비슷하시다니, 반가워요. ^^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구판절판


오늘날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교육’이라고 불리는 과정은, 똑같은 가정(假定)과 똑같은 유럽 중심의 모델에 기초를 두고 있다. 보편적인 지식이라는 동떨어진 사실과 수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책들은 지구 전체에 적합한 것으로 의도된 정보를 전파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생태계나 문화와는 동떨어진 종류의 지식만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므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본질적으로 합성된 것이고 살아있는 맥락에서 유리된 것이다. <중략> 서구의 교육체계는, 온 세계의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환경에서 나오는 자원을 무시하고 똑같은 자원을 사용하도록 가르침으로써 우리 모두를 더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교육은 인공적인 결핍을 만들어내고 경쟁을 유발한다.-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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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은이), 김종철, 김태언 (옮긴이) | 녹색평론사

정가 : 8,000원 | 246쪽 |
1996년 7월 15일 초판 발행 | 2001년 4월 30일 개정증보판 제1쇄 발행

언제 어디서 샀는지 모르겠다.
책에 바코드가 인쇄되어 있지 않고, 아마 서점에서 붙였을 바코드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 환경운동(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사는 법을 회복하고 개발하는 운동’)의 고전을 읽은 것이 겨우 두 달 전이다. 지난 10월 하순, 여름에 내지 못했던 휴가를 내어 동해의 추암 바닷가에서 3박 4일을 박혀 있었다. 그곳, 추암 바다에서 읽기 시작해 서울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다 읽었다. 정말 재미있다.
소설 [사자개]와 몽골 전문가 이평래 선생의 글 덕분에, 내가 유목 민족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는지 조금 깨닫게 된 때에 읽었기에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지난번 [사자개] 독후감에서 유목민이 물고기를 먹지 않는 까닭을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 정확하게는 이 책 덕분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물고기는 먹는 일이 없다.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면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공급할 수 있는 커다란 동물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먹는다면 훨씬 많은 생명을 빼앗아야 할 것이다. 짐승을 죽이는 일은 가볍게 여겨지지 않고, 반드시 용서를 빌고 많은 기도를 올린 후에야 한다.

내가 타고 짐을 싣는 짐승들,
나를 위해 죽임을 당한 짐승들,
내가 고기를 먹은 모든 짐승들,
그들이 빨리 부처가 되기를
(52쪽)

그렇다고 우리가 물고기를 먹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주위 환경에서 먹을거리를 구할 수밖에 없고, 물고기를 먹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지역도 분명히 있다. 다만 라다크처럼 고원의 초원 지대에서는 물고기보다 염소나 야크를 먹는 것이 더 적절한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좋은 것은 군데군데 실린 라다크 사람들의 사진이다. 사진 속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할머니부터 갓난아이까지, 한결같이, 티 없이 맑게 웃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활짝 웃을 수 있을까.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져서 나까지 저절로 따라 웃게 된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책에 관해 약간 씁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 책을 애초에 번역 출간한 녹색평론사는 이 책을 알리면서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를 한국에 초청하는 등 정성을 다했고, 한국어판 번역 자체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까 이 책이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고 널리 읽히게 된 것은 녹색평론사의 공이라 할 수 있는데, 이번에 저자 쪽에서 출판권 계약 기간을 연장해주지 않아 한국어판 출판권이 다른 곳에 넘어가 버렸다고 한다. 보통 출판권 계약은 5년 단위로 갱신된다. 출판사에서 책을 잘 못 팔았다거나 저자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지 돈 많은 다른 출판사에서 높은 계약금을 제시해 빼앗아 버린 거라고 한다. 어려운 살림을 꾸리면서도 좋은 책을 꾸준히 찾아내 소개하는 작은 출판사에 그나마 힘이 되던 스테디셀러를 대형 자본이 가로챈 것이다. 그 돈 많은 출판사(중앙일보 계열사라나...)도 나쁘지만, 서구식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대안의 삶을 고민하고 실천한다는 저자가 그냥 돈에 넘어갔다는 것에 이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배신감이 큰 모양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 책을 읽고는 싶으나 아직 안 사신 분은 녹색평론사에 재고가 얼마 남아 있을 테니, 그 새로운 출판사 판(2007년 11월에 나왔더군요...) 말고 녹색평론사 판을 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책값도 더 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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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7-12-29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근사한 책소개입니다. *^^*

가랑비 2007-12-29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고마워요. 아, 우리 언제 만나죠?

Mephistopheles 2007-12-30 0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다행입니다..얼마전에 주문넣어 받은 책이 녹색평론사 쪽이군요.^^

chika 2007-12-30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은 건 좀 오래전이지만... 저도 참 좋게 읽었는데, 이 소식은 다른곳을통해 이미 알았으면서도 또 새삼 맘이 씁쓸하네요. ;;

그나저나 많이 바쁘죠? 잘 지내고 있나요? ^^

가랑비 2007-12-3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아아 반가워요. 다행이라 얘기해주셔서 더 반가워요. ^^
새벽별님, 와락. 우웅우웅~ (어디서 어리광이얏^^)
치카님 치카님, 사실 일이 바쁘다기보다 마음이 산지사방으로 날아다니는 탓에 여유가 없어요. 치카님은 잘 지내나요? 집에는 잘 돌아가신 거죠?

사람을 호도하는 소리 2008-01-02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세계화라는 대세를 과연 거스를 수 없다면 우리는 세계화와 문화적 다양성, 탈중심화의 조화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에프티에이를 반대한다고 문화적 다양성, 농민들의 삶이 보호되는 것이 아닌데 무조건적인 반대는 세계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고, 결국 후세를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트리는 행위다.

문제는 에프티에이 반대를 하는 사람들은 '~카더라'는 식의 근거없는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다. 정작 자신들은 세계화 개방화의 혜택을 다 누리면서.

녹색평론이 이 책을 알리는데 많은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재번역 출간한 회사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전파하는 것은 서평을 쓰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출판사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출판계에 많은 정보를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녹색평론은 저작권이 명확하지 않은 때에 '저자의 허락없이' 책을 번역 출간했다. 그래서 사실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할 뻔 하였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의 취지를 살려 녹색평론에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좋은 책이라고 번역 출간한 녹색평론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저작권을 침해한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이므로, 용서는 하되 정식으로 계약은 하지 않은 것이다.

규모가 큰 출판사, 잘되는 기업이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자본가'로 몰아부치는 논리는 옳지 않다. 그런 사람들도 본인 또는 친인척 또는 자식이 그런 회사에 다니기를 원하지 않는가. 우리에게 기업이란 삶이 터전이다. 기업은 잘되야 하고 규모가 커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가 부자를 욕하면서도 모두 부자가 되길 원한다. 참 이상하다. 스스로 욕하는 자리에 가고 싶어 하니 말이다. 위선을 벗어 던져라. 거짓을 벗어 던져라.

가랑비 2008-01-03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을 호도하는 소리님, 정말 호도하는 소리를 남기셨네요. ^^ 에프티에이나 큰 회사, 부자에 관한 말씀은 님과 저의 의견이 다를 뿐일 테지만요, 녹색평론사에서 저자의 허락 없이 책을 출간했다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정보입니다. 녹색평론에서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저자와 녹색평론 대표가 직접 합의하여 한국어판을 냈고, 녹색평론에서는 저자가 운영하는 재단에 꾸준히 돈을 보내는 방식으로 저작권료를 지불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제가 믿는 지인이 녹색평론 편집장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제 자세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이야기하시는 것은 상관없지만, "왜곡된 사실"을 전파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
박노자 (지은이) | 한겨레출판
정   가 : 10,000원
출간일 : 2003-12-23 | ISBN(13) : 9788984311091  
반양장본 | 314쪽 | 223*152mm (A5신)

이 좋은 책을 읽고, 딱히 더 보탤 말은 없다.
오리엔탈리즘을 일상의 차원에서 개인적인 삶의 태도로 바꿔 말한다면,
풍문으로 듣거나 언뜻 스쳐 본 인상만 가지고 ‘안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포털의 악플들을 보고 가수 문희준을 싫어한다든가.
이명박이 부자라니까 괜히 나를 잘살게 해줄 거라고 믿는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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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니스의 비밀 - Agatha Christie Mystery 36 | 원제 The Secret of Chimneys(192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은이), 유명우 (옮긴이) | 해문출판사
출간일 : 1999-10-20 | ISBN(13) : 9788938202352  
337쪽 | 188*128mm (B6) | 정가 : 5,000원

1987년 5월 25일 발행본으로 가지고 있다. 뒤표지에 ISBN도 없는.^^
이때 책값은 1500원이었다.
알라딘의 저자 소개 정보에 따르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본명은
Agatha Mary Clarissa Miller Christie Mallowan이란다. 

 


죽음을 향한 발자국 - Agatha Christie Mystery 37 | 원제 So Many Steps to Death(195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은이), 이가형 (옮긴이) | 해문출판사
출간일 : 1991-07-01 | ISBN(13) : 9788938202376  
326쪽 | 188*128mm (B6) | 정가 : 5,000원

1987년 6월 25일 발행본으로 가지고 있다. 당시 책값은 역시 1500원.
영국에서 출판된 제목은 Destination Unknown이고,
So Many Steps to Death는 미국판 제목이란다.

둘 다 비전문 스파이가 등장하는 모험소설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스파이 모험소설은
(해문의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지금까지 읽어온 바로는) 대개
평범한(때로는 꼭 평범하지도 않은) 남녀가 우연찮게
국제적인 음모에 휘말리게 되어 이를 해결하는 줄거리인데,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적 오해와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은근한 멸시
(자본주의와 의회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영국인의 자만심?)가
바탕에 깔려 있다 여겨져서,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좋지만은 않았다.
정치에 대한 작가의 인식도 그다지 깊이 있고 치밀하지 않은 것 같았고.

[침니스의 비밀]도 그러한데, 이보다 근 30년 뒤에 발표한
[죽음을 향한 발자국]은 역시 연륜 덕분인지 분명 차원이 다르다.
치밀하다든가 기발하다든가 로맨스가 은근하다든가 하는 것은
도리어 [침니스의 비밀] 쪽이 낫다고 할 수 있지만,
정치나 사람살이에 대한 시선 자체가 다른 것 같다.

무엇이든지(인간의 노력과 두뇌까지) 사고파는 대상으로 만드는
‘돈’의 속성을 간파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노예 같은 처지가 되어서도
안락하기만 하면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를 포기하고 적응해 버릴 수 있으며,
그게 바로 무서운 일이라고(그렇기 때문에 노동귀족과 일상의 파시즘이 생겨난다) 지적한다.
[침니스의 비밀]에서는 정치나 로맨스를 그저 소설의 흥미를 위한 소재로만 다루었다면,
[죽음을 향한 발자국]은 좀더 많이 알고 느껴 본 이가 하는 이야기 같달까.
그래서인지 막판의 반전은 도리어 사족 같다.

그러나 역시, 무언가 바꿔 보려는 인간의 노력에 대해,
“인정과 개성을 키우기에는 이 엉망진창의 세계가 오히려 더 나은 사육장”이라고,
작가는 주인공인 힐러리의 입을 빌려 말한다.
“연민과 이해와 동정과 결별을 선언하는 우수한 로봇의 세계보다는,
차라리 불완전하긴 하지만 인정 있고 인간적인 세계를 선택하겠”노라고.
물론 힐러리는 엘리트 과학자들의 오만한 발언들을 듣고 나서 이런 말을 한 것이지만,
사람들이 힘을 합치고 머리를 맞대어 만들려는 세상이 꼭
“연민과 이해와 동정과 결별을 선언하는 우수한 로봇의 세계”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1954년 당시, “이 엉망진창의 세계”에서 도리어
영국 같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엘리트들이 “연민과 이해와 동정” 없이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을 마치 기계처럼 부려먹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지금도 “연민과 이해와 동정” 없이
사람을 돈 버는 도구로 부려먹는 질서 아니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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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12-29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에서 기대할 것은 추리적 트릭 이외에 없는 것 같아요.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작가의 시각은 그때에도 보통 영국인의 시각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착취가 당연히 생각되는 이들에게 바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가랑비 2007-12-29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만두 언니!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 이야기에는 와주시는군요. 감사 감사! 제가 언니 서재에 들른지도 너무 오래 되었지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