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다운 너... 
이현주 목사님께서 보내신 새해 덕담이랍니다.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자신을 발견하기...
새해 목표로 삼아 보심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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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9-01-0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리꼬리아우 새해 꼭 그 목표 이루길 바래.
복 많이 받고 건강하고~

가랑비 2009-01-02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만두 언니. 쉽진 않겠지만... ^^ 언니도 여전히 기운 내시고요~

진주 2009-01-0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관 크기를 볼 때 저것은 연하장 정도 크기가 아니라 대형 사이즈인 것 같아요?
목사님께서 우리벼리꼬리님을 얼마나 이뻐하시길레 저런 정성을....^^
잘 지내시죠?

가랑비 2009-01-0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는... 것 같아요, 진주님. ^^ 사실은 [풍경소리]라는 잡지의 구독자에게 보내는 선물이랍니다. B4 용지 크기쯤 되지요. 진주님도 새해 복 많이~

조선인 2009-01-0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리꼬리님 부비부비 새해 복많이, 건강하고, 가내 무고하시길.

chika 2009-01-03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아름다운 당신! ^^

가랑비 2009-01-04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새벽별을보며님, 조선인님, 치카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패배자의 회고록
La Mémoire des Vaincus

미셸 라공 Michel Ragon 지음 |  이재형 옮김 |  예하 |  531쪽
발행일 1992년 5월 10일, 당시 값 6,700원.
원서는 프랑스 Albin Michel 출판사에서 1990년에 냈는데,
프랑스판 위키피디아에는 작가가 1989년에 썼다고 나온다.

예하에서 나온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지인에게 빌려주었다가
알게 된 책입니다. 지인이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뒤표지 날개에 소개된 제목을 보고,
이 책도 있느냐고 묻더라구요. 자칭 아나키스트인 그이는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이야기라는 데 끌렸던 게지요.
그래서 저도 호기심이 생겼는데, 절판되어버린 이 책은 헌책방에도
쉽게 나타나지 않더군요. 1년 넘게 틈틈이 헌책방 사이트를 뒤져도 못 찾았는데,
올 8월 혹시나 하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기적처럼 한 권이 나왔습니다. 놓칠세라 당장 주문했지요.
알라딘 중고서점을 검색한 것도, 이용해본 것도 처음이었어요.
책값은 저렴하여라, 5000원에 배송비 2200원.

제목을 직역하면 ‘패배자들의 기억’입니다. 그러니까 소설의 주인공인
알프레드 바르텔르미 한 사람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혁명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마다
가장 열심히 투쟁하고도 늘 배신당하고 배제당했던
아나키스트들, 혹은 아나키스트 운동 자체에 관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아나키즘은 본래 ‘우두머리가 없다’는 뜻이므로
‘무정부주의’는 잘못된 번역이라고 하지만,
“볼셰비키들은 (압제와 권력을 의미하는) 정부와 군대를 없애겠다고 해놓고
지금 어느 때보다 더 강한 정부와 군대를 만들고 있다”고
소련의 권력 구축 과정을 비판한
이 책 속 아나키스트들의 관점에서는 ‘무정부주의’라고 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정부’라고 하면 무질서와 혼란을 연상하기 쉬운데,
이러한 연상 역시 ‘정부’만이 질서를 관리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의 소산 아닐지요.

이 책에는 너무 많은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1899년에 태어나 1985년에 세상을 떠난 프레드, 곧 알프레드 바르텔르미
(작가는 어느 실존 인물의 가명인 것처럼 썼어요)는
부모를 잃고 고아로 길거리를 방황하던 어린 시절에 우연히
아나키스트인 리레트와 빅토르의 도움을 받은 뒤로 평생을
노동자로, 혹은 소련 정부의 일원으로, 혹은 망명객으로, 
혹은 자유롭고 또 외로운 아나키스트 활동가로서
고민하고 싸우고 사랑하고 방황합니다.
러시아 혁명과 에스파냐 내전을 비롯해 역사가 크게 굽이치던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기에, 이 사람의 인생을 스쳐 가는 사람도 많을 수밖에요.
하지만 저는 아나키즘과 러시아 혁명사를 공부하지 않은 터라
그 사람들, 그 사건들을 바로 이해하고 넘어가기 어려웠어요.
그런 점에서 그리 친절하지는 않은 소설입니다.

그리고 프레드가 왜 아나키즘을 받아들였는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는 나오지만.)
아나키즘의 무엇이 길거리를 방황하던 ‘부랑아’ 프레드를 설득했는지,
프레드가 아나키즘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는,
그의 자유로운 성정과 정직한 심성,
그리고 정말 해야 할 말은 하는 용기를 통해서 짐작할 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단 한 번도 권력을 쥔 적 없었고
영웅이 된 적도 없었던 이 사람의 일생이,
패배하기만 했던 아나키즘이,
무용한 것이라거나 패배했으니 사라져야 할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섣부른 생각이겠지만, 아나키즘은 패배할 운명이라서 가치 있는지 모릅니다.
아나키즘은 권력을 배격하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패권을 쥘 수가 없습니다.
인간 사회에는 권력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별수 없이 있게 마련이고,
권력이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소외시키게 마련이라면,
인간이 그나마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건
패배해도 패배해도 도전과 저항을 그치지 않는
아나키즘 같은 정신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래서 프레드가 결국 앙상한 껍데기같이 늙어갔더라도,
아름다웠던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에서도 그랬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20세기까지(사실은 지금도 그럴지도)
어떤 ‘사상’은 남자들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여성 공산주의자, 여성 아나키스트가 등장하지만
주인공이 남자다 보니 여성들은 동료나 벗이라기보다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이 책에 등장하는 아나키스트들에게는 더욱,
뭐랄까, 원초적인 ‘남자’ 느낌이 납니다.
세련된 지식인의 교묘한 남성중심주의보다는 그게 낫지만요.
주인공 프레드가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평생의 연인 플로라,
소련에서 일했을 때의 아내 갈리나,
프랑스로 돌아와 숙련 노동자로 안정된 가정을 꾸렸을 때의 아내 클로딘,
에스파냐 내전에서 만난 많은 여성 전사들,
그리고 노년의 프레드를 돌보았던 이자벨(이름만 나오고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그리고 이름 모를 헌신적인 여성들...
그들의 생애에 프레드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프레드와 플로라가 너무 어렸을 때 낳은 아들 제르미날은,
전쟁 때문에 부모가 헤어져버려 아버지 없이 자라지만, 
성장하여 정치와 사상에 귀 기울이게 되자
자신을 키워준 엄마 플로라보다는 
그때까지 남이나 다를 바 없었던 아버지 프레드와 친구이자 동지가 됩니다.
프레드가 우러러 사모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도
멀리서 "마음으로만 의지하는" 어머니 같은 존재지요.

프롤로그와 본문 다섯 장(章)의 앞에
인용된 글귀가 인상 깊어, 여기에 옮깁니다.

(프롤로그 앞)
이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 이상이 갖고 있는 사상을 위해
죽을 수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며, 정치라는 것은 우리가
그 사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때 존재한다.―샤를르 페귀

(1장 ‘생선 수레를 타고 온 소녀’ 앞)
하지만 난 불쌍한 녀석이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이승에서는
이렇게 불행하게 지내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하늘나라에서는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우리들이 벼락을 내리게 될 거야.
―게오르그 뷔흐너, 《보이체크Wayzeck》

(2장 ‘트로츠키 동지의 쓰레기통’ 앞)
모든 예술이 최고의 아름다움들을 만들어 냈지만
통치술만큼은 추잡한 괴물들밖에 만들어 내지 못했다.
―생 쥐스트

(3장 ‘비앙쿠르의 식인귀’ 앞)
비겁한 사람들이 실로 아연실색할 만큼 무분별해지면,
결국 가장 용감한 사람들에 비견된다. 그들의 심복들을 하나는
근위병으로, 하나는 재판관으로, 또 다른 하나는 세무서원으로
위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한, 그들은 화염에 휩싸인
도시 한복판을 비스킷과 통조림으로 살아내면서, 머지않은 장래에
보수파가 승리하기를 숨죽여 기다릴 테니까.
―조르주 베르나노스 《보수주의자들의 대공포La Grande Peur des bien-pensants》, 1931

(4장 ‘인민의 치욕’ 앞)
……결국 또다시 권력이 승리할 것이다. 결코 죽지 않는
영원한 권력. 쓰러졌다가도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나는 권력.
사람들은 혁명을 통해서, 소위 혁명이라 이름붙인 학살행위를
통해서 권력을 무너트렸다고 믿었다. 그러나 권력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 것이다. 다만 까만색에서 빨강색으로 그리고
노란색으로 파란색으로 자주색으로 색깔만 바뀐 채. 한편 인민들은
또다시 권력에 굴복하거나 순응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권력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리아나 팔라치, 《한 인간Un homme》, 1979

(5장 ‘헌책 장수’ 앞)
이성의 이름으로 영혼이 소멸되고 나면
그 이성 또한 소멸되고 말리라.

정의의 이름으로 자비심이 소멸되고 나면
그 정의 역시 소멸되고 말리라.

물질의 이름으로 정신이 소멸되고 나면
그 정신(* ‘물질’의 오타인 듯!) 역시 소멸되고 말리라.

무가치한 것의 이름으로 인간이 소멸되리라.
인간의 이름이 소멸되리라.
더 이상 이름이 존재하지 않으리라.

바로 우리처럼

―아르망 로뱅, 《달갑지 않은 시Les Poèmes indésirables》, 1945


이 책은 곧 지인에게 선물할 것이라서,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표지 앞날개의 작가 소개.




저작권 표시.




권두의 헌사. ‘장 말라위리’가 누구일까요?
혹시 알프레드 바르텔르미의 실제 모델?




차례.





표지 뒷날개의 예하 책목록.
[레이스 뜨는 여자]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도
예하에서 먼저 나왔더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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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8-10-2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꼭 구해 볼랍니다.
무지하게 땡기네요.


가랑비 2008-10-27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문드문 틀림없는 오역도 보이고, 교정 실수인지 앞뒤 안 맞는 부분도 가끔 있답니다. 이 책, 벌써 선물해버려서 빌려드릴 수 없지만, 로드무비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해요.

진주 2008-12-18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너무 띄엄띄엄이시네요..

가랑비 2008-12-18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주님 진주님 진주님... 거기 계신 거지요? 글썽.
 

1년 반쯤 된 것 같아요. 다른 생각을 도무지 할 수 없었던 시간이.
이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기분...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사실은 아직 그 거울이 투명하게 보이지도 않아요.
뭔가를 얻고, 또 뭔가를 잃고...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도 아직 모르는...
그런 상태입니다.

아, 회사는 잘 다니고 있고요. 가정도 그럭저럭 무탈합니다. ^^
그러나 내 안에,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났어요.
지금 거울에 비치는 내가 굉장히 낯설고, 조금... 쓸쓸합니다.

아, 이럴 때 만날 술친구도 만들어놓지 못했구나, 하는
허전한 기분.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다시 제자리 찾아갈 거예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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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0-1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오셨는데 그간 뭔가 일들이 많으셨던듯...
뭐라 말씀드리기는 힘드네요. 그냥 힘내세요.

2008-10-15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8-10-15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이네요 :-)

2008-10-15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8-10-1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닥토닥

가랑비 2008-10-1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고맙습니다. 저는 제가 보낸 시간에 자꾸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부질없는 습관이 있어서요. 그냥 놓아버릴 줄을 모르나 봐요. 흘려보낼 줄을 모르나 봐요.
10-15 00:04 속닥님, 앗, 제가 1년 반 전에도 이랬나요? 이런... 보고 싶어요.
라주미힌님도 보고 싶어요. 정말루.
10-15 09:23 속닥님, 하핫, 부지런해져야겠네요. 고맙습니다. 하, 하지만 자기 전에 30분 빠르게 걷기라니... 으윽.

가랑비 2008-10-1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 언니, 고마워요. ㅠ.ㅠ

울보 2008-10-15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뵈어요,
벼리꼬리님,,
잘 지내셨군요
저도 요즘 많이 힘든시기를 보냇는데 만나서 술마실 친구가 없네요,,제가 술을 못해서 ㅎㅎ

가랑비 2008-10-15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오랜만이에요. 다정하고 맘 약한 우리 울보님은 힘든 시간을 어떻게 버티실까...

가랑비 2008-11-03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나침반님, 고마워요. 이제는 덧입고 더 커진 모습보다는 버리고 더 가벼운 모습이 되고 싶어요.

새벽별 2008-11-05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제야 뒤늦은 댓글 보탭니다. 힘내셔요.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습니다...

가랑비 2008-11-0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고마워요. 아, 사는 게 다 그런가요? 어쩌지...
 
경찰서여, 안녕
김종광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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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부터 한국인 작가의 소설을 잘 안 읽게 되었다. 한국소설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그냥 소설이 아닌 다른 책, 소설이더라도 외국소설에 더 끌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선옥, 박정애의 작품집은 ‘의리로’ 꼬박꼬박 사려 애썼지만, 사놓고는 쟁여놓기만 했다. 그러다 작년에 동료의 추천으로 김종광, 손홍규 같은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박영한, 전상국 같은 좀 오래된(^^) 이름들에도 새로이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래서 읽게 된 {경찰서여, 안녕}. 참으로 오랜만에 읽은 단편소설집이다. 1998년 여름 문학동네 문예공모로 등단하고 나서 발표한 소설 11편을, 등단작 [경찰서여, 안녕]부터 발표 순서대로 묶었다는데, 네 번째 작품을 읽을 때까지, 신기하게도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한 걸음씩 더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찰서여, 안녕]은 썩 좋지는 않았다. TV에서 그럭저럭 볼 만한 베스트 극장 한 편을 본 느낌이랄까. 그런데 다음 작품 [분필 교향곡]은 꽤 인상 깊었고, 그런 인상의 깊이가 네 번째 [전당포를 찾아서]까지 조금씩 더 깊어지다가, 잠시 소강상태, 그리고 여덟 번째 [정육점에서]는 최고점을 쳤다. 그 뒤는 조금씩 하강.

단편소설에서 주인공이 한두 명으로 압축되지 않은 경우는 내가 알기로 별로 없는데([토지]나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에서야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일 수 있지만), 이 작가는 한 가지 작은 사건(이라기보다 일화)이 흘러가는 데 따라 관계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점을 이동한다. 그 일이 벌어지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사람 모두, 각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정이 있었음을, 그들 모두 자기 인생에서는 주인공임을, 장황한 설명 없이 간결하게 보여주려는 것 같다. 주인공 한 사람에게 주목하는 작품에서라면 행인 1, 2나 경비 정도로 처리될 인물 한 명 한 명에게 ‘이홍수, 68세’ ‘양미정, 30세’ ‘박순복, 54세’ 하는 식으로 이름과 나이를 부여하고, 그 순간 그 인물의 기분과 그 인물이 하는 행동의 이유를 밝히 드러낸다.

[분필 교향곡]의 시대 배경은 1989년쯤, 아마 전교조 사태가 처음 벌어졌을 무렵 한 남자고등학교 교실에서 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루었는데, 정말로 그랬을 법한 풍경을, 교실의 이 구석 저 구석을 모두 조명하며, 희망도 절망도 없이 간결하게 펼쳐 보인다. 등장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종필, 승만, 영삼, 대중, 일성, 정일, 게다가 건희, 주영, 심지어 봉주, 찬호까지, TV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이름으로 짜놓은 것이 재미있다.

[많이많이 축하드려유]가 어느 읍내의 원동기 면허시험 전후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 푸근한 웃음을 떠올리게 한다면, [전당포를 찾아서]는 피식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짠하다. 줄거리를 굳이 압축하자면 대책 없이 순진한 농촌 출신 대학생이 서울로 시위하러 왔다가 닭장차에 실려 서울 한복판에 떨어지게 되어, 낡은 싸구려 시계라도 잡혀 차비를 마련할 요량으로 전당포를 찾아 헤매다가, 어찌어찌하여 학교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인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학생을 잡았다가 떨궈버리는 전경 한 사람도 그냥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익명의 ‘전경’이 아니라 이름과 나이가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무 살 남짓, 주변머리 없는 시골아이가 10원 한 장 없이 서울거리를 헤맬 때의 막막함.

[정육점에서]는 나를 가장 아프게 한 작품이다. 성매매 집결지의 어느 성판매 업소에서 하룻밤 동안 일어난 이야기인데, 현실에서 흔히 있는 대로 파는 쪽이 여자, 사는 쪽이 남자가 아니라, 남녀의 성을 바꾸어놓았다. 현재에도 있는 호스트바 정도를 배경으로 성판매 남성의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미아리나 청량리 등등에 있을 법한 업소를 배경으로 하여 ‘군복을 입은 년’이나 ‘사업상 접대하는 년’을 ‘삼촌’이나 ‘아빠’가 붙잡아 오면, ‘연미복’을 곱게 차려입은 ‘우리들’이 낙점을 받아 쇼를 하고 ‘좆’을 판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완전히 가상인데, 나는 이 이야기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어서, 이 리뷰를 쓰는 것이다.(‘리뷰’란 말에는 왠지 무게감이 있다. 그래서 한동안 ‘뭔가 그럴듯하게 써야 할 것 같은’ 리뷰를 피하고 페이퍼 난에다 ‘별점 없는 리뷰’라며 편하게 주절거렸더랬는데.)

[짚가리, 비릊다]는 등단하기 직전, 농사짓는 부모님 댁에 한심하게 얹혀살면서 글쓰기의 진통을 겪던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나에겐 가장 생동감이 떨어졌다.

-뒷말-
이 책을 다 읽은 지는 한 달이 넘었지만, 맨 뒤에 실린 문학평론가의 서평은 오늘 이 리뷰를 읽기 직전에야 보았다. 이 문학평론가와 나의 소감은 얼추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씩 엇갈리곤 하는데, [편안한 밤이 오기 전에]에 대해서 “작가는 최 노인의 완고한 어투를 빌려, 아무리 세상이 변하여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거나, [중소기업 상품설명회]에 대해 “시골에까지 침투한 경박한 소비풍조의 일단을 그리고 있”다고 간단히 평해버리고 만 것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느끼기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게 아니라 세상 변하는 데 그토록 가늘게 길게 적응하면서도 자기만의 여유를 마련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모 그 자체이고, 작가가 그리고자 한 것은 “시골에까지 침투한 경박한 소비풍조”가 아니라 그런 장삿속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농촌 부인네들의 욕구와 생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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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 M의 성생활 | 원제 La Vie Sexuelle de Catherine M. 

카트린 밀레 Catherine Millet, 2001 (지은이), 이세욱 (옮긴이) | 열린책들
출간일 : 2001-12-20(초판 1쇄), 2003-2-20(초판 5쇄)
ISBN(13) : 9788932904634
양장본| 334쪽| 196*126mm

전에 마냐님이 방출한, 아마 2003년에 아담한 양장본(이른바 열린책들 판형)으로
재출간된 책을 받아 가지고 있었는데, 작년 4월에 헌책방 온고당에서
양장본 아닌 초판본(신국판)을 동료에게서 선물받았다.
동료 왈, 이 책을 읽고 성해방을 이루라고. -.-
그래서 같은 책을 두 권 가지게 된 셈인데,
지난해 말, 올 초에 걸쳐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아버지(남자) 이야기를 읽고 났더니
여자 이야기가 읽고 싶어서 펴 들었다.

20대까지 성관계를 매우 두려워했고, 마흔이 다 되도록
성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워하던 나에게
꽤 필요한 책이었다. 인간행동의 하나로, 거리를 두고
담담히 볼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자유의사로, 서로 배려하면서 하는 일이라면,
그게 항문섹스든 그룹섹스든 스와핑이든 각자의 취향일 뿐이다.
금기는 무지의 소산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게 실제로 무엇인지도 모르고, 모르기에 두려워 피하는.
성관계의 자세나 방법을 상상할 때 매우 흥미롭기도 했지만
줄창 섹스 이야기만 나와서, 나중에는 좀 지겨워지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불특정 다수와 맺는 ‘자유분방한 관계’보다는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좀더 ‘충실한 관계’가 더 좋다.

카트린 M과 나의 공통점을 두 가지 발견했는데, 하나는 공간에 대한 집착이다.
카트린과 애인 자크(나중에 남편이 된다)는 사랑하여 함께 살게 된 뒤에도
서로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겼지만,
“우리의 추억이 서린 친근한 풍경 속에”(109쪽)
다른 여자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느끼면 격심한 고통을 느낀다.
“우리의 살이 닿은 물건이나 우리가 내밀한 목적으로 사용했던 물건은 어느 것이나 확장된 우리 몸의 일부이며 감각 능력이 있는 보철 기구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없을 때에 그의 살이 닿은 물건을 만지는 것은 간접적으로 그 사람을 침해하는 것이다.”(232-233쪽)

그리고 편집자로서 취하는 자세도 비슷한 것 같다.
“나에게는 도달해야 할 목표가 없다. 있다면 남들이 나에게 부여한 목표들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일단 목표가 주어지면, 나는 대단히 성실하고 끈기 있게 그것을 추구한다. ......
나는 편집부에서 내가 하는 역할을 항구가 어디 있는지 아는 안내자로 생각하기보다는 레일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기관사와 같다고 느낀다. 나는 섹스도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했다. 나는 어떤 고정관념에 매여 있지 않았고,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도달해야 할 이상을 설정하지 않았다.”(41쪽)

하지만 나는, 사랑에서는 어떤 ‘이상’을 설정하는 실수를 범하곤 한다...
그리고 가끔 부당한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점도 비슷하다.
“부당함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 부당함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부당성에 대한 몰이해라고 정의한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되면,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부당하다는 느낌조차 갖지 못한다.”(106쪽)

여기 적은 쪽수는 모두 양장본의 것이다. 양장본 표지의 M자를 보면,
사람이 손바닥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린 자세가 연상된다.
카트린 M이 섹스할 때 즐겨 취하는 자세다. ^^

아무튼 마냐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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