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이게 서재 2.0인가요?
적응 안 됨...
제가 너무 격조하긴 했나 봐요.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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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6-17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어...뉘시온지요?

물만두 2007-06-17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뉘시온지 2올씨다.

2007-06-17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랑비 2007-06-17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을보며님, 어흐흑. 덥석.
파란여우님, 만두 언니! 너무하셔욧.
오옷, 속닥님, 속닥님~!!! 제가 모를까 봐요? 어머어머!!

chika 2007-06-17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파란여우님, 만두언냐~ 벼리꼬리님이잖수! 흥~!
오랜만에 왔으니 반겨주셔야짓! (가재는 게, 아니 개편 ㅋㅋㅋ)
잘 지냈어요? ^^

가랑비 2007-06-17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치카님밖에 없어요!!

가랑비 2007-06-18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6-17 22:26님, 아, 저분이 그분인지 아직 확실하진 않으나 그러리라고 사료되옵니다. ㅎㅎ
 

소설에서는 그 이름을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에요.
지난주 금요일 회사에서 일영으로 야유회 가는 길에
쉐부아조각공원이란 델 들렀거든요.
거기서 회사 동료가 이 꽃이 매발톱꽃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이파리는 이렇게 생겼어요.



여름이 다가오네요. 나날이 안녕하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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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7-05-22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이름이 참 특이하죠?

아영엄마 2007-05-22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조기 밑에 있는 건 쑥 맞죠~~(^^)> 처음 보는(정말 그럴가??) 꽃구경 잘하고 갑니다.

가랑비 2007-05-22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받침 끝이 매발톱처럼 꼬부라져서 그런가 봐요. ^^

가랑비 2007-05-22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새 아영엄마님이... ^^ 아하, 쑥이군요. +_+

가랑비 2007-06-03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나침반님, 오랜만이어요. 저는 탈도 많고 말도 많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요. 나침반님은? ^^
 



어제가 제 생일이었답니다. ^^ 회사 동료가 허브 화분을 선물했어요.
헉. 파괴의 에너지 소유자에게 화분이라니...
그치만 화분을 선물한 동료는 허브를 곧잘 키운다니까
그 동료의 도움을 받아 이 화분과 함께 잘 살아보겠습니다.



이름은 레몬밤(Lemonbalm)이래요. 엄청 신 레몬향이 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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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05-0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생일 축하드립니다. 맞아요.레몬향이 진하죠~~ 잘 키우세용!
그리고 자주 들어오세용.

가랑비 2007-05-03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세실님도 얘를 아시는군요. ^^ 혼자 바쁜 척하느라고 자주 못 오네요. ㅠ.ㅠ

물만두 2007-05-03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벼리꼬리아우 생일축하해^^

날개 2007-05-03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생일 축하드려요!^^
화분 근사하네요..

chika 2007-05-0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생일축하해요! ^^
레몬밤.. 저는 두번이나 죽여버려가지고..ㅠ.ㅠ
잘 키우세요~ 튼실하니 잘 클 것 같아요. ^^

반딧불,, 2007-05-04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stella.K 2007-05-0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축하해요.^^

가랑비 2007-05-0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 언니, 날개님, 치카님(아니 언제 미친토깽이가 되셨대?), 반딧불님, 스텔라님 고맙습니다. ^^a

가넷 2007-05-1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브는 키우기가 힘들더라구요. 툭하면 죽어버리고...;;;

가랑비 2007-05-14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늘사초님, 그, 그래요?
 

[펌] 도쿄조선 제2초급학교와 함께 하자 !!!!!!
2007.05.01 19:07

 

아래 기사를 쓴 기자님처럼 펑펑은 아니더라도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더군요...'우리 학교'를 보면서도 그랬었는데........

일본을 욕하면서도 일본에서 살아가면서 우리 말과 우리 생각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들은, 그들이 단지 북측의 도움을 받았다거나 조총련계라거나 하면서 무시해버렸던 우리들.......

설령 그들이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북측에 치우친 내용이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가고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던 생각도 들었던 것도 솔직한 생각이었지요......적어도 북측은 그 학교를 지었고 또 계속 도와왔으니까, 지금은 예전과 같이는 하지 못하지만.......

방송이 끝나고 볼펜과 종이를 집어들었는데, 계좌번호가 나오지 않더군요....그래서,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 이제야 관련 기사를 다시 보면서, 퍼왔습니다....(기자님, 죄송....)

 

"일본 조선학교 아이들 때문에 펑펑 울었다"
조선학교 아이들이 준 감동... 도움 손길 '밀물'
    조은미(cool) 기자   
▲ 도쿄, 조선 제2초급학교 아이들이 준 감동에 시청자들은 이런 방송이 있어 고맙다고 털어놨다.
ⓒ sbs

"마음이 찡합니다."(김현옥)
"정말 펑펑 울었습니다. 방송 보고 정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양향화)
"진심으로 부끄럽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였습니다."(진은주)
"가슴이 너무 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제작하고 알려주신 제작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김영숙)


29일(토) 밤 'SBS 스페셜- 도쿄, 제2학교의 봄'(연출 박기홍)편이 나간 뒤 SBS 스페셜 시청자 게시판엔 감동과 감사의 말들이 넘쳐났다. 권영희씨는 "이런 좋은 내용을 소개해줘 정말 감사하다"며 "가슴이 훈훈해지고 또 너무 미안해지는 밤"이라고 털어놨다. 이 SBS 스페셜을 연출한 박기홍 PD는 "방송이 나간 뒤 격려 이메일과 전화가 쏟아져 다른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SBS 스페셜 '도쿄, 제2학교의 봄'편은 도쿄 에다가와에 있는 전교생 65명인 조선 제2초급학교를 장기간 밀착 취재해 내보냈다. 2005년 9월 방송한 '나는 가요- 도쿄, 제2학교의 여름'편에 이은 후속편이다. 2005년 방송한 이 전편도 2006년 방송위원회 대상, 백상예술대상, 한국방송대상, 2005년 YWCA가 뽑은 올해의 좋은 프로그램 대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 29일 방송 뒤 제2학교의 어려운 처지가 알려지자 시청자들은 자발적으로 후원금 계좌번호를 물어보고, 자발적으로 도쿄, 조선 제2학교를 돕기 위한 카페(http://cafe.naver.com/edagawaschool.cafe)를 꾸렸다. 일본 도쿄도 정부의 소송으로 제2초급학교가 없어질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2003년 12월 도쿄도 정부는 제2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학교가 수십 년간 무상으로 써오던 학교 운동장을 반환하라는 소송이었다. 이 제2학교가 있는 에도가와는 과거에 일본 쓰레기 하치장이었다. 일본인들은 일제시대 때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와 이곳에 이주시켰다. 이 역사적 책임을 물어, 일본 정부는 그 뒤 줄곧 조선인에게 무상 대여해왔다. 하지만 그 학교 땅에 도쿄도 정부가 갑자기 어마어마한 사용료를 내라고 소송한 것이다.

제2학교, 1억7000만엔 마련하려 발 동동

▲ 도쿄도 정부와 소송에 이겼지만, 제2학교는 6월말까지 1억7천만엔을 마련해야 한다.
ⓒ sbs

이 소송은 3년 3달을 끌고 지난 3월에 끝났다. 이 피 말리는 재판에 큰 힘이 된 건 일본 시민 사회 사람들이었다. 결국 재판부는 도쿄도 정부더러 조선 제2학교와 합의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조선 제2학교에겐 아직도 숙제가 남았다. 6월29까지 1억7000만엔(우리 돈으로 14억원 가량)을 도쿄도에 지불해야 한다. 판결대로 시가 10분에 1이란 적은 가격으로 학교 땅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SBS 스페셜은 이 희망적인 소식과 숙제를 남기고 끝났다.

이 SBS 스페셜 '도쿄, 제2학교의 봄'을 연출한 박기홍 PD는 "2005년 도쿄 제2학교가 방송에 나가고 나서 남쪽 사람이 관심 많이 갖게 된 건 사실이지만, 실질적으로 학교에 도움을 도움 못 줘서 안타까웠다"며 "이번엔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박기홍 PD를 주축으로 제2학교 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 모임이 준비 중이다. SBS도 제2학교를 도울 후속 조치에 대해 논의 중인 걸로 알려졌다.

박기홍 PD는 "도쿄 제2학교를 본격적으로 도울 모임이 5월 초엔 구체적으로 뜰 예정"이라며 "제2학교를 돕기 위한 진척 상황은 SBS스페셜 홈페이지에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 주기적으로 공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SBS 스페셜 홈페이지에서 도쿄, 제2학교 지원을 위한 모금운동 중이다. 도쿄 조선 제2초급학교 교장인 송현진 교장에게 격려 메일도 보낼 수 있다.

박기홍 PD가 웃으며 말했다. "제작하면서 이런 것까지 하기가 참 힘이 드네요."
도쿄, 조선 제2초급학교 지원계좌 : 신한은행 330-03-004075 (예금주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
격려메일 : edagawa2@topaz.ocn.ne.jp (도쿄 조선 제2초급학교 송현진 교장)
문의 : babepark@SBS.co.kr ('도쿄, 제2학교의 봄' 프로그램 연출자)

  • 마주보며말하기 2007.05.01 19:18 
  • 지금, 아주 조금 정말 조금 보냈다....누구라도 조금 아주 조금만이라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아자 ! 조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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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 2007-05-03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리꼬리님, 오랜만이에요. *^^*

    물만두 2007-05-03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감사^^

    가랑비 2007-05-03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정말 오랜만. ㅠ.ㅠ
    만두 언니, 늘 반겨주시니 저야말로... ^^

    chika 2007-05-03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겁없이 울 직원들에게(특히 저보다 돈 많으실 것 같은 국장님들께!!)
    메신저 보낼라고 하는데요;;;;
    혹시 까페 주소를 그냥 복사해도 될까요? 아님... 저 원문을 퍼가야할까요? ;;;;;;

    가랑비 2007-05-0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페가 아닌디요, 치카님... ^^ 아무러나 편한 대로 하셔도 되어요. 그렇게 애써주심 감사하죠.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던 조희문 선생이 [서평문화]에 기고한 글이다.

    출처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웹진(http://www.kpec.or.kr/site/web/sub.asp?menuKMCD=KP0065&iframesrc=sub%5FframeView%2Easp%3FmenuKMCD%3DKP0065%26selKMCD%3DKP0115%26BKNO%3D973)

     

     
    한국영화사 연구의 새로운 시선
     
    서명 : 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
    글쓴이 : 조희문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저/역자 : 김려실 지음
    출판사 : (주)도서출판 삼인
    2006-12-20 / 352쪽 / 18,000원

    영화연구 분야에서 한국영화사 연구는 새로운 관심 대상이다. 1999년 <쉬리>가 흥행바람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한국영화는 갑작스럽게 문화의 중심으로 진입했다. <공동경비구역>, <친구>,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로 이어진 흥행신기록 돌파는 영화계 내부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과정이었다. 영화제작은 단기간에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유용한 투자 대상이 되었고, 관객을 불러들이는 극장은 문화가 상품으로 거래되는 장터 역할로 주목받았다. 흥행바람을 일으킨 영화는 동시대적인 문화의 화두로 떠오르며 바람을 탄 산불처럼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불러 모았다. 오랫동안 싸구려 저질문화의 상징처럼 홀대 받던 한국영화는 시대를 리드하는 첨단문화로 격상했고, 미래의 대안처럼 위상이 바뀌었다.


    변화는 학계에도 나타났다. 한국영화의 비약적 성장은 현상과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촉발시켰고, 많은 연구자들이 한국영화로 방향을 돌렸다. 한국영화가 산업적 혹은 문화적으로 중심에 진입 할수록 연구자들의 수도 늘어났다.


    한국영화사 연구는 세 단계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1960년대의 한국영화사 연구는 영화가 서양에서 전래한 이후 어떤 과정을 통해 한국적인 문화로 정착되었는가에 대한 경험적 정리 수준으로 접근하고 있다. 안종화의 『한국영화측면비사』를 비롯하여 노만의 『한국영화사』, 이청기의 『한국영화의 전사단계와 발생기적 특성에 관한 연구』, 이영일의 『한국영화전사』는 주로 국내에서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 때서부터 해방 시기까지의 무렵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 연구자들은 영화계에서 직접 활동했거나, 일제 강점기 시대에 성장기를 보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어느 경우든 영화는 멀리 떨어진 ‘과거의 현상’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이나 경험과 대체로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측면비사』는 영화계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과 영화인들의 활동, 그들이 만든 성과에 대해서 일화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영화계의 내부 사정을 살피는 데는 더 없이 유용한 성과로 주목받았다. 오랜 동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전거로 존재하며 후속 연구의 인용자료 역할을 했던 이유다. 한국영화의 초창기 시절부터 직접 활동한 원로 영화인이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서술한 ‘진술서’의 내용에 대해 시시비비를 걸만한 경력이나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노만, 이청기, 이영일의 연구도 안종화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이 시기의 연구는 한국영화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점에서는 한국영화의 탄생과 성장기를 같이 보낸 세대들의 1차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오류와 왜곡의 씨앗을 뿌리는 작업이기도 했다. 의도적이지는 않았겠지만 경험과 기억에 의존한 정리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탓에 사실의 부정확함, 연대기적 순서의 혼란, 일제강점기 시대에 대한 과거사적 부담으로 인한 과민한 생략과 특정한 인물, 작품에 대한 영웅화 작업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영화가 처음 소개되는 것은 담배회사인 영미연초회사가 자사 판매의 빈 담뱃갑 10개를 가져오면 영화를 보여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 같은 경우는 영화의 대중적 인기가 확산되자 뒤늦게 담배판매 시장에 뛰어든 영미연초회사가 오히려 영화를 판촉에 이용한 사례를 거꾸로 설명한 것이다. 일본이 중국,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여 극단적인 통제와 선전체제로 전환하는 1940년대 이후에 제작된 군국주의 선전 영화들은 한국영화 목록에서 사실상 제외하고 있다. 언급할수록 일본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지며 한국영화의 독자적 위상은 훼손된다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이같은 시각은 나운규의 활동과 그의 작업에 대한 과장된 평가로 이어졌다. 1924년에 단역배우로 영화 활동을 시작한 이후, 1936년 <오몽녀>의 감독을 마지막으로 사망할 때까지 12년 동안 배우, 감독,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로 활동한 나운규는 대표적인 영화인이자 영화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의 역할과 공헌에 대해서는 일제에 저항한 민족투사의 이미지를 크게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1992년에 조희문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표한 ‘초창기 한국영화사연구’는 야사와 일화, 감성적인 정서에 의존하던 영화사 연구의 경향을 사료와 기록 등을 바탕으로 한 실증적 연구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전의 연구가 영화제작 단계에서부터 시작한 것과는 달리 영화가 국내에 유입되어 새로운 문물로 확산, 정착되는 과정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정리함으로써 ‘한국영화’의 개념과 범주를 새롭게 설정하는 단계로 전환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자료에 근거한 실증적 접근은 이전의 작업성과 또는 상식처럼 통하던 여러 가지 단정들을 부정하거나 반박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실증적 연구는 조혜정의 박사학위논문 ‘미군정기 영화정책에 관한 연구’(중앙대,1997), 복환모의 ‘식민지통치에서의 조선총독부의 영화정책’(와세다대, 2005) 등으로 확산되며 한국영화사 연구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최근에 나온 이화진의 『조선영화-소리의 도입에서 친일영화까지』(책세상, 2005), 김려실의 『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1901~1945년의 한국영화사를 되짚다』(삼인, 2006)는 한국영화사 연구가 새로운 단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증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문화적 상상력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는 영화가 국내에 도입되는 과정에서부터 말머리를 끌어낸 뒤 일본 제국주의가 어떻게 영화를 식민지 통치에 활용했는가에 대한 변천을 꼼꼼한 자료와 함께 서술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선전영화들이 성행하던 무렵의 작품들 -<미몽>, <군용열차>, <어화>, <지원병>, <복지만리>, <반도의 봄>, <집없는 천사>, <그대와 나>, <망루의 결사대>, <조선해협>, <젊은 모습>, <사랑과 맹세>-에 대한 텍스트와 콘텍스트적 교차를 해석하고 있는 부분은 이 분야 연구의 진전이다. 친일과 반일, 지배와 피지배, 억압과 저항 같은 이분법적 시각을 벗어나 친일과 선전을 강요하던 이런 영화들이 대중에게 어떻게 비춰졌는가를 들여다봄으로써 친일영화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 일본은 영화를 통해 당대의 이데올로기를 투사하려 했지만, 관객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나름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다른 가치로 받아들였다는 주장은 흥미롭다. ‘제국-문명의 상징계가 투사한 빛에 결코 동화될 수 없는 식민지가 원시적 어둠 속에서 실재계와 접촉하게 되는 문화적 장소(location of culture)’가 바로 식민지 조선의 영화관이었다는 대목은 식민지 시대의 한국영화(조선영화)에 대한 복합적인 위상을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대의 한국영화 중에서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리랑>(1926)의 영화적 위상에 대해 ‘항일영화’ 또는 ‘항일영화는 조작된 신화’라는 영화연구자들 간의 논쟁을 아우르면서 ‘의도된 모호성’을 반영한 영화라는 새로운 주장으로 전환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저자야말로 의도적으로 모호한 평가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감독과 주연, 원작이 이전의 평가대로 나운규가 맞는다면 이후 영화가 거둔 열광적인 지지가 ‘항일영화=민족영화’라는 등식에 부합하는 것이지만, 나운규가 이 영화를 감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따른다면 이 영화가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민족영화이자 항일영화’라는 평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나운규가 이 영화의 감독이라는 주장과 감독하지 않았다는 주장 어느 쪽도 확정하기 어려운 상태에서(적어도 저자 입장에서는) 또한 <아리랑>의 내용이 항일적 표현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는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리랑>의 위상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논쟁을 흡수하는 대안으로 의도적인 모호함을 담았고 관객들이 그것을 읽고 반응했다는 논리는 비단 <아리랑>에만 한정되기 어렵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수업료>라는 영화에 대해 조선총독부 측에서는 좋은 영화라고 홍보했지만 일반관객들은 별달리 열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당시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상당수 학생들의 어려운 처지를 드러내는 사실주의 적 경향으로 해석한 경우도 얼마든지 ‘의도된 모호성’에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리랑>이 ‘의도된 모호성’을 담은 영화라는 저자의 평가는 필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아리랑>의 추상적 가치에 또 다른 의미의 신화를 더하는 결과로 연결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자료인용의 원칙이랄까 윤리에 관한 부분이다. 한국영화사 연구 특히 초창기부터 일제강점기 시대의 기간은 부족한 자료와 기록을 재구성해야 하는 부분이 태반이다. 자료의 발굴과 그것에 근거한 다양한 평가는 한국영화사 연구 분야의 중요한 기초 역할을 한다. 그러나 몇 번의 인용을 거듭하는 사이에 자료의 출처가 모호해지며, 심한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연구결과처럼 오인되는 사례도 자주 나타난다. 이 책에서도 국내에 영화가 전래되는 시기와 경로를 정리하고 있는 ‘영화의 전래를 둘러싼 주장들’, ‘활동사진과 극장체험들’, ‘상상된 민족영화 <아리랑>-영화소설과 시나리오’ 같은 부분들에서 서술하는 내용들 중에서 재인용의 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1차 조사인 것처럼 자료를 동원하는 부분이 여러 군데 나타나고 있는 대목은 유감스럽다.


    그러나 이같은 몇 가지 부분들을 제외한다면 일제강점기 시대의 한국영화사를 과거의 자료와 기록을 재구성하는 단계에서 현재적 시각으로 평가하는 단계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성과로 꼽을 만하다. 최근에 발굴된 필름을 실제 연구 자료로 활용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연구의 새로운 단계를 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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