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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1. 테이크아웃?

 

책상에 두었던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피를 토하는 듯한 편집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우토 선생님, 아직 멀었나요?! 인쇄소 사람한테서 몇 번이나 전화가 오고 있는데요?!

, 알았어요! 이제…… 이제 금방이니까요!”

같은 대화를 2시간 정도 반복하고 있었다.


아직 새해 인사가 오고 갈 시기, 장소는 아파트의 내 방이다.

컴퓨터 책상 주위에는 빈 도시락이나 빈 영양 드링크, 벗어둔 속옷,

자료로 쓴 책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액정 태블릿에 펜을 움직였다.

화면에는 흑백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었고, 그 일러스트의 명암을 조절하고 있었다.

이른바 하이라이트를 넣는 작업이고 최종적인 단계다. 완성 직전이라는 건 사실이었다.


쿄바시 유우토는 일러스트레이터다.

라이트노벨 삽화를 맡고 있다.

처음 정했던 마감 날짜는 한 달 전에 지났고,

날짜를 3번이나 다시 정했는데도 아직 넘기지 못했다――.


담당 편집자인 나가이 케이고가 떨리는 목소리로 제시했던

최후, 최종, 절대준수

까놓고 말해 진짜 마감시간이 두 시간 전에 지난 상태였다.


컴퓨터의 시계는 10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방금 16분이 되었다.

나가이는 인쇄소에 지연된 것에 대해 여러 번 사과를 하고,

회사 내부를 돌아다니며 관계부서를 달래는 한편, 재촉하는 전화를 걸고 있었다.

완성 원고를 메일로 받는 즉시 공장으로 간다고 했다.


선생님, 한계예요! 어서 받지 않으면 큰일이 나버린다고요!

새해가 된 뒤로 며칠이나 지난 줄 아세요?!

이번 권은 연말 진행이고 애니메이션에 맞춰서 만화 동시 발매 캠페인이나 사인회도 있으니

절대로 펑크내면 안 된다고―― 진짜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요!!

알았어요! 이거! 이거! 지금 저장하면 끝…….”

그래픽 툴이 반응하지 않았다.


으에?”

유우토는 펜으로 약간 세게 액정 태블릿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다.

바로 마우스를 잡고 조작했다.

다행이다! 마우스는 움직인다.

액정 태블릿이 뻗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미 저장은 했으니 이제 파일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치명적이진 않다.

안심한 순간―― 익숙하지 않은 파란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업그레이드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곧 멋진 OS로 바뀝니다.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액정 태블릿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액정 태블릿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지만 연달아 한 철야로 인해 궁지에 몰린 뇌에는

그런 판단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잠깐…… 잠깐……?! 그만…… , …….”

선생님! 사인회에서 신간 펑크났습니다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셈이신가요?!

사인회가 아니라 사과회가 된다고요?!

그만…… 그만둬……?”

유우토 선생님, 듣고 계신가요?! 더 이상은 안 돼요! 적당히 좀……!!


부셔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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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아이는 오늘 같은 반 남학생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던 것이다.

초등학생에게는 아직 조금 이른 감도 있지만,

물론 그 눈물을 무시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귀여운 손녀가 눈물을 흘린 이유가

그런 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백…… 안 할 걸 그랬어……!”

 

내가 보기엔 귀여운 이유라도,

본인은 지금 세상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슬퍼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그 슬픔을 위로해줘야겠다 싶어서

아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아이, IP를 보여주렴.”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손목에 감긴 웨어러블 단말기를 가리켰다.

아이는 새빨갛게 부은 눈으로 의아한 듯이 나를 쳐다보고 단말기를 조작했다.

홀로그램으로 확대 표시된 모니터 안에는

IEPP라는 글자 아래에 여섯 자리의 디지털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

정수가 세 자리, 점을 사이에 두고 소수가 세 자리.

소수 세 자리는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로 어지럽게 변해갔지만,

정수 세 자리는 또렷한 숫자를 표시하고 있었다.

때마침 그 숫자가 [000]이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것은 이미 배웠을 터이다.

 

아이. 아이는 조금 전에 고백 안 할 걸 그랬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이가 용기를 내 고백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

평행세계에 대해선 학교에서 이미 배웠지?”

.”

아이는 말이지, 고백을 함으로써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낳았단다.

 제로 세계의 아이는 차였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랑

분명 맺어졌을 거야.”

……다른 세계의 내가 맺어졌더라도 이 세계의 내가 차이면

아무 소용도 없잖아.”

그렇지 않아. 어떤 세계의 아이도 같은 아이야.

아이는 23의 세계로 이동한 적 있지?”

몇 번인가 있어.”

그 세계에 있던 할아버지는 미웠어?”

안 그랬어!”

고마워. 할아버지도 다른 세계에서 온 아이도 마찬가지로 좋아한단다.”

…….”

평행세계는 이 세계에서는 실현되지 못한 가능성의 세계야.

 그러니 아이의 용기는 반드시 어딘가의 세계에서 보답받고 있을 거야.

다른 세계에서 맺어진 아이도 같은 아이야.

그건 즉, 아이의 고백이 쓸모없는 게 아니라는 뜻이지.”

……이해 못 하겠어.”

 

역시 아직 초등학교 5학년에게는 일렀던 걸까.

그렇지 않아도 평행세계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도 젊었을 적에는 그 화제로 무척이나 고민한 적이 있다.

다만, 잘 모르겠다며 입술을 뾰로통하니 내민 귀여운 손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슬픔을 달래다니,

정말이지 어른들이나 쓸 법한 고지식한 수단이지만 말이다.

 

그럼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볼까.

아이는 차였지만, 그 덕분에 다음엔 온 세상의

누구와도 맺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손에 넣었단다.

아이는 분명 더 멋진 남자아이를 만날 거야.

그렇게 해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거지.”

더라니, 어느 정도?”

글쎄…… 할아버지 정도?”

안 돼! 더 젊은 사람이 좋아.”

 

손녀에게 차였다. 은근히 충격이었다.

하지만 우선 기운은 차린 것 같다.

이 빠른 회복력도 젊기 때문일까,

아니면 혼자 남게 되면 다시 울기 시작하려나.

방을 나가는 아이의 등을 배웅하고 다시 침대에 몸을 파묻고 불을 껐다.

그리고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어쩌면 앞으로 아이가 아침에 눈을 떴더니

오늘의 고백이 이루어진 평행세계로 이동해서

한때의 행복에 얼떨떨해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역시 맺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제로 세계의 아이를 대신해서

그 세계에서 찾아온 아이에게 물어보자.

그쪽 세계의 나는 고백에 성공한 너를 어떤 말로 축복했느냐고.

분명 그것은 지금 내가 상상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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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모든 너에게"

"너를 사랑했던 한 사람의 나에게"

두권의 초판이 초판한정 박스판으로 출간됩니다.

(각권은 초판한정 박스판 판매가 종료되면 구매하실 수있습니다.)

 

 

"두 권이지만, 이것은 또 하나의 이야기"

 

책을 읽어보시면 왜 두권을 세트로 판매했는지 알 수있습니다~

11월 23일 전국 서점에 배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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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혹은 종장

 

 

재택 임종이라는 말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암에 걸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가 병원의 치료나

호스피스의 돌봄을 거부하고 익숙한 자신의 집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그 선택지가 같이 살던 아들 내외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나는 행복했다.

아들 부부나 손녀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참기 힘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모두가 나와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지내고 싶어 한다고,

그렇게 쉽게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항암제는 사용하지 않을 것, 연명치료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두 가지 조건하에 나는 재택 임종을 선택했다.

 

일흔셋. 어쩌면 죽기에는 아직 조금 이를지도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공포심이나 불만은 없었다.

큼직한 집에서 사랑하는 아내, 믿음직한 아들, 상냥한 며느리,

귀여운 손녀에게 둘러싸여 보내는 노후.

설령 내일, 괴로움 속에서 이 심장이 고동을 멈춘다 하더라도 곁에

가족이 있어준다면 웃으며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인생이었다.

다만 나는 지금부터 사흘 동안만큼은 절대로 죽을 수가 없다.

 

왼쪽 손목에 감긴 웨어러블 단말기에 사흘 후 날짜를 음성으로 입력하자

캘린더 기능에 기록된 ‘817, 오전 10, 쇼와 거리 교차로, 레오타드 소녀

라는 스케줄이 불려나왔다.

 

쇼와 거리 교차로라고 하면 우리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이 동네에서 제일 큰 교차로다.

레오타드 소녀라는 것은 그 옆에 세워진 동상 이름이었다.

사흘 후 오전 10시 쇼와 거리 교차로, 레오타드 소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스케줄에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내가 사용하는 단말기는 월말이 되면 다음 달에 입력된 스케줄을

자동적으로 통지해준다. 그 기능으로 이 스케줄을 알게 되었지만,

과연 이건 누구와 한 약속일까? 나는 언제 이 약속을 입력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한테 그 기억은 없었다.

그렇다면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내 단말기에 몰래 스케줄을 입력한 걸까?

단말기는 성문 인증을 하기 때문에 타인은 조작할 수 없을 테지만,

무슨 일에든 숨겨진 테크닉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물어봤지만, 역시 아무도 짚이는 구석이 없다고 했다.

손녀는 할아버지가 입력해놓고 잊어버린 거 아니야?”라고 얄미운 소리를 했다.

역시 그렇게까지 늙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이 나한테 이런 거짓말을 할 이유 또한 생각나지 않았다.

최근에는, 아니, 어쩌면 정말로 내가 입력해놓고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뭐어, 누가 입력했든 상관없다.

사흘 후 오전 10. 쇼와 거리 교차로에 가보면 알게 되겠지.

그곳에 누가 기다리고 있을지, 그게 지금 내가 제일 기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 사흘간은 절대로 죽을 수가 없다.

 

머리맡의 불을 끄고 슬슬 자려고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잠에서 깨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이틀.

다행히도 요즘 들어 몸 상태가 상당히 양호해서

이틀 후에 잠시 외출하는 것 정도라면 아무 문제도 없으리라고 낙관하고 있다.

교차로까지 나들이를 나가는 것은 오랜만이다.

나이답지 않게 들떠 좋은 꿈을 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노크 소리에 바로 눈을 떴다.

 

들어오렴. 문 열려 있어.”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전등만 켜서 방문자를 들였다.

머뭇거리며 얼굴을 내민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인 손녀, 아이[]였다.

 

할아버지, 자고 있었어?”

슬슬 잘까 싶었지. 괜찮아.”

몸은 어때?”

나쁘진 않아.”

이야기 잠시 할 수 있어?”

물론이지. 들어오렴.”

 

뒷짐을 지고 문을 조용히 닫은 아이는 뭘 그리 망설이는지

좀처럼 용건을 꺼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수상쩍다.

아이는 평소 이렇게 얌전한 성격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라면 똑 부러지게 하는 타입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그러니? 뭐든지 말해보렴.”

 

몸을 일으켜서 되도록 자상하게 말을 걸었다.

설령 가족일지라도 아무래도 동성에게는 엄격하고

이성에게는 부드러워지기 마련인지,

손녀는 엄격한 할머니보다도 자상한 할아버지 쪽을 따른다.

물론 할머니도 아이를 몹시 사랑하고 있지만

때론 엄하게 매를 들어주기에 나는 마음 놓고 사탕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가까이 다가와서

내 품에 얼굴을 파묻고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평소엔 하교하면 제일 먼저 내 방에 와서

다녀왔다고 말해주던 아이가 오늘은 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무슨 말썽이라도 있었던 걸까?

하지만 억지로 물으려 하지 않고 아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잠시 울고 있던 아이가 훌쩍이면서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띄엄띄엄 나온 그 말을 주워 연결해보니,

아무래도 그 정도 걱정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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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비 2017-11-19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잼있다 키킼
 

안녕하세요

소미미디어입니다.

11월 16일에 나올 신간 도서 안내해드립니다.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 2권!!

 

학교 제일의 미소녀 '코미'양은 커뮤증을 앓고 있습니다.

눈치가 빠른 '타다노'와 친구가 되어 커뮤증을 고치기로 했고

2권에서 드디어 새로운 친구 '야다노'와 '야마이','나카나카'등 독특한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타다노'와의 관계에도 살짝 발전이?

 

'코미'양의 사랑스러움을 즐길 수있는 2권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초판 한정 부록으로 귀여운 스티커도 있으니 많음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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