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거리를 걸어 지금에 이른다.

금화 스무 닢이 큰 액수인지 작은 액수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잠시 동안은 살아갈 수 있는 돈을 얻었다.

화폐 가치도 포함하여 이 세계에 관해 서둘러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가능한 한 서둘러 이 나라를 나가자. 왕을 보고 내린 판단에 따르자면,

이곳이 좋은 나라일 리 없어 보였고,

여기 있어본들 좋은 꼴을 당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좋아, 그렇다면 바로 행동 개시다.

왕도(王都)의 거리는 중세 유럽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우선 이 근처에 무리 지어 있던 거리의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잠깐 괜찮을까? 시골에서 막 올라온 참이라 이 나라에 관한 걸 잘 모르거든.

저기 있는 가게의 꼬치구이를 사줄 테니까 그 대신에 이것저것 가르쳐주지 않을래?”

맨 처음에는 의심스러워했지만, 식욕을 이기기 힘들었는지 부탁을 받아들여 주었다.

아이들에게 노점의 꼬치구이를 두 개씩 건네고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은 제일 중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화폐 가치부터.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판단한 결과, 다음과 같은 느낌이라는 것을 알았다.

철화 한 닢 → 10엔

동화 한 닢 → 100엔

은화 한 닢 → 1,000엔

금화 한 닢 → 10,000엔

대금화 한 닢 → 100,000엔

백금화 한 닢 → 1,000,000엔

아이들에게 사준 노점의 꼬치구이 하나가 철화 다섯 닢.

금화 여섯 닢이면 4인 가족이 최저한으로 한 달 동안 생활할 수 있다는 모양이다.

그 외에도 나라에 의존하지 않는 모험가 길드와 상인 길드가 있으며

(이건 판타지 계열 소설에서는 당연한 설정이지)

그중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면 나라에서 나라로,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기가 쉬워진다.

요컨대 쓸데없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다.

모험가 길드나 상인 길드의 길드 카드 이외의 신분증을 가진 경우나,

신분증이 없는(시골 출신이나 자신들 같은 거리의 아이들은 신분증이 없다고 한다) 경우는 나라와 도시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출입을 위한 통행세를 내야 한다고 한다.

이 부분은 전형적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 나라에 관해서도 물어보았다.

이야기에 따르면 마족과 다툼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이 나라 쪽에서 먼저 덤빈 모양이다.

인간을 적대하는 마족을 멸망시키겠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인 듯하지만,

결국은 마족 나라의 영지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인간이 다스리는 주변 나라들과의 사이에서도 전운이 감돌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도망치는 사람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고 한다.

자신들도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라고 했다.

아이들은 의외로 척척박사였다. 여러 잡일을 맡아 하면서 하루하루 먹고살기 때문에

다양한 것들을 보고 듣는가 보다. 거리의 아이들, 듬직하구나.

아무튼, 오늘 밤은 이곳의 숙소에서 묵고 내일 이 나라를 떠나도록 하자.

왕도에서 이웃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키루스 마을까지 가는 승합마차가

매일 운행되고 있다는 아이들의 말에 따라 그걸 타고 왕도를 탈출하기로 했다.

그 후 이웃 나라로 가서, 그다음 일을 생각하기로 하자.

아무튼 이 레이세헬 왕국을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밑천이 필요한데, 그 점에 관해서는 생각이 있다.

게다가 나에게는 이 나라에서 지급한 금화 스무 닢이 있으니까 말이지.

한 사람 몫치고는 약간 넉넉하게 준 이유는, 어찌 되었든 자신들의 사정 때문에

유괴나 다름없는 소환을 한 사죄의 뜻을 다소나마 담았기 때문이리라.

이 수상쩍은 나라가 돈을 이만큼이나 내준 것은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

일단 당장은 이걸로 견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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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용사 소환에 휩쓸렸지만 수상쩍어 도망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중세 유럽 같은 검과 마법의 판타지 세계였다.

내 이름은 무코다 츠요시.

27세, 독신, 일본의 지방 도시에 사는 별 볼 일 없는 샐러리맨이었다.

그런 내가 어째서 이런 세계에 있는가 하면, ‘용사 소환’ 의식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심심풀이 삼아 인터넷 소설을 자주 읽은 터라 이런 이야기는 질릴 정도로 익숙하지만,

설마하니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그것도 용사가 아니라, 단순히 휩쓸렸을 뿐이라니…… 농담이 아니라고.

그 농담도 안 되는 ‘용사 소환’ 의식을 집행한 것은 레이세헬 왕국이라는 나라였다.

세 명의 용사를 소환했는데 네 명이 나타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있던 높으신 분들이

모두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말이지, 제일 곤혹스러운 건 갑자기 이세계에 소환된 우리들이라고.

갑자기 ‘용사 님’이라잖아.

인터넷 소설을 자주 읽은 나는 단박에 이세계 소환이라는 걸 눈치챘지만.

용사님이라고 부르기에, 솔직히 아주 살짝 기대했었다고.

그 기대는 빗나갔다는 사실이 금세 판명되었지만…….

소환된 우리들은 곧바로 감정(鑑定)의 마도구인가 하는 걸로 스테이터스를 감정 받았다.

그 스테이터스 감정 결과, 나 이외의 사람들(모두 교복 차림이었으니 고등학생이리라)은 직업란에 ‘이세계에서 온 용사’라고 되어 있는

반면 나는 ‘휩쓸린 이세계인’이라고 되어 있었다고.

게다가 다른 세 사람은 체력이나 마력 등이 700~800 정도인 반면,

나는 전부 겨우 100 정도였다.

그 정도도 이 세계의 평균을 웃도는 것인 모양인지 그럭저럭 힘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다른 세 사람과 비교하면 크게 부족한 것이 틀림없는지라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스킬 수도 나와 나머지 세 명은 전혀 달랐고 말이지.

공통 스킬인 감정과 아이템 박스 외에도 그들은 성검술이나 성창술(聖槍術)이나

(聖) 마법 같은, 그 자리에 있던 높으신 분들이 경악할 정도의 스킬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불, 물, 흙, 바람, 빛, 번개, 얼음 같은 마법 스킬도 갖추고 있었다.

바로 치트라는 것이다.

반면 내 것을 보자면, 고유 스킬이 ‘인터넷 슈퍼’였다.

아니 아니, 그게 뭐여? 라는 느낌이라고.

물론, 인터넷 슈퍼가 뭔지는 안다.

여러 가지로 신세를 지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스킬이라고, 스킬.

다른 마법적인 무언가가 있을 텐데?

이세계인들은 인터넷 슈퍼가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인 데다,

직업 용사 세 명에게는 웃음거리가 되는 등, 이 고유 스킬 덕분에

바로 쓸모없는 존재 취급을 받았다고.

그래도 ‘용사 소환’으로 이쪽 세계에 소환된 것은 틀림없으니

나도 왕을 알현하는 자리에 입회할 수 있게 되기는 했는데,

그 왕이 하는 말이 어찌나 수상쩍던지.

왕이 말하길,

마왕이 이 나라를 지배하려 꾀하였고, 이 나라를 여러 번 공격해 왔다.

지금은 어찌어찌 막아내고 있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 나라의 국민은 괴로워하고 있다.

매달리는 심정으로 고대의 용사 소환 의식을 행했다.

이쪽 형편만으로 소환해놓고 제멋대로인 부탁이지만, 부디 이 나라를 구해주었으면 한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은 이 나라에 전해지지 않지만,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마법 실력이 뛰어난 마왕이라면 알고 있을 터다.

뭐, 이런 느낌의 내용이었다.

명백하게 수상쩍잖아. 특히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 부근이 말이야.

그리고 왕의 한 말대로라면 이 나라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건데,

이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은 전부 비장감이 없거든.

게다가 왕은 뚱뚱하게 살찐 아저씨에, 얼마나 돈을 들인 거냐 싶은

번쩍번쩍한 보석을 덕지덕지 단 망토를 걸치고 있잖아.

왕 옆에 앉은 왕비도, 두 사람의 옆에 있는 공주 쪽도

온갖 사치를 다 부린 듯한 화려한 드레스를 몸에 걸치고 있다고.

백성들의 괴로움에 고뇌한다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여봐란 듯이 마음껏 사치를 부릴까?

그러한 여러 가지 것들을 종합하여 판단한 결과,

이 상황은 글러먹은 타입의 이세계 소환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용사라고는 해도 결국 이 나라의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에 끌려 나간다든가,

아무튼 이 나라에 좋을 대로 이용될 뿐이리라.

게다가 나는 용사도 아니니 제대로 된 취급을 받지 못할 테고,

최악의 경우에는 처형될 가능성도 있다.

나는 지금 당장 성에서 나가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단 왕의 아래로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용사도 아니니, 여기 있어봐야 여러분에게 폐를 끼칠 뿐입니다.

그래서는 제 마음이 무척이나 괴로우니, 직업을 구할 때까지

두세 달 정도 생활할 수 있는 돈을 좀 주신다면

제 스스로 어떻게든 해나가 볼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예상대로라고 할까,

 귀찮은 존재를 쫓아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금화 스무 닢을 주고 성 밖으로 추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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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유년기

 

 

일곱 살의 나는 이혼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고 있어서

아빠와 엄마 누구와 함께 살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딱히 동요하지 않고 답을 낼 수 있었다.

 

아빠는 그 분야에서 이름 높은 학자였고, 엄마는 자산가 집안의 딸이었다.

어느 쪽을 따라가더라도 금전적인 불편함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마음이 가는 대로 결정하면 되었기에

최종적으로 나는 엄마를 따라가기로 했다.

다만, 이것은 내가 아빠보다 엄마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빠를 따라가면 연구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혼의 원인은 아빠와 엄마의 대화가 엇갈려서인 모양이었다.

아빠는 연구소에 묵는 일이 허다했고,

가끔 집에 돌아올 때면 엄마에게 연구 내용을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늘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빠는 자신이 이해하는 것은 상대도 이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대화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엄마와는 일상 대화의 템포도 맞지 않아서

혼자 고민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그런 아빠였기에 나도 분명 곁에 없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니, 역시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분명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재밌게도 아빠와 엄마의 관계는 이혼한 후가 더 양호했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을 정도로 서로에게 애정은 확실히 있었던 모양인지

내가 어릴 적에는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나를 통해 부모는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분명 그 정도 거리감이 두 사람에게는 딱 적당했던 걸 테다.

나는 평온한 모습의 부모를 보며 기뻐했고,

두 분이 바라지 않았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어릴 적 기억 중에 특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부모님이 이혼한 뒤 외가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하고

몇 개월 후에 아빠가 에어건을 사줬을 때의 일이다.

 

어느 휴일, 나는 엄마와 함께 공원에 갔다가 아빠를 만났다.

매일 함께하다가 한 달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게 되면

외롭지 않을까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빠가 하는 일은

근무 시간도 휴일도 불규칙해서 원래부터도 그렇게

자주 얼굴을 마주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한 달에 한 번 가족끼리 외출하게 되었다고 생각해보면

반대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을지도 몰랐다.

 

코요미.”

 

한 달 만에 아빠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함께 살고 있을 적에는 어느 정도의 빈도로 이름을 불러줬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관계도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갖고 싶은 거 없니?”

 

바로 얼마 전 나는 생일을 맞이해서 여덟 살이 되었다.

그 선물을 말하는 걸 테다.

이혼 전에는 나에게 뭔가를 사주는 건 늘 엄마의 역할이었기에

아빠가 선물을 사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기뻤다.

게다가 그때 나는 때마침 갖고 싶은 물건이 있었다.

 

에어건이 갖고 싶어!”

에어건?”

. 지금 학교에서 유행하고 있어.”

. 어디에 팔고 있으려나.”

 

어느 백화점 장난감 매장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에어건을 가지고 있는 같은 반 친구가 그곳에서 샀다고

실컷 자랑을 했기 때문이다.

그길로 백화점 장난감 매장으로 부모님을 데리고 갔고,

매장 한쪽 구석에 조금 쌓여 있던 에어건을 발견했다.

총 종류에 대해선 전혀 몰랐지만,

어쨌거나 다들 가지고 있는 물건이 갖고 싶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하나를 빼서 아빠에게 내밀었다.

 

이게 좋아!”

의외로 저렴하네, 2천 엔도 안 하는 걸 보니. 좋았어, 그럼.”

 

그러다 아빠가 말을 멈추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얼굴을 쳐다보자 아빠가 상자로 시선을 물끄러미

떨어뜨리고 있었다.

 

대상 연령, 10세 이상인가.”

 

맙소사.

당시의 나는 이제 막 여덟 살이 된 참이었다.

물론 에어건을 자랑한 같은 반 친구도

다들 여덟 살이거나 일곱 살이었지만,

세세한 것은 따지지 않는 부모가 꽤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아빠가 어떤 타입의 부모인지 잘 몰랐다.

참고로 엄마는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빠가 사주는 선물이니 엄마는 관계가 없지 않을까――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마는 게 아이다운 발상이다.

 

만약 아빠가 대상 연령을 이유로 안 된다고 한다면

같은 반 친구들은 다들 가지고 있다는 것,

여덟 살이든 열 살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절대로 위험하게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 등……

다양한 말로 아빠를 설득시킬 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기우였다.

 

뭐어, 여덟 살도 열 살이랑 크게 다를 건 없지.”

속으로 승리 포즈를 취했다.

아빠는 자잘한 것은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었나 보다.

아빠의 말을 듣고 역시 엄마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아마도 막 이혼한 참이라서

마음 한구석으로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대상 연령에 대해서 잔소리를 듣지 않고

약간 고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에어건을 감쪽같이 손에 넣었다.

다시 공원으로 되돌아가서 에어건으로 얼른 잠시 놀았다.

이윽고 배가 고파서 식사를 함께 하고

다시 한 달 후에 만날 약속을 한 다음 아빠와 헤어져

엄마와 둘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 커다란 골든 리트리버가 장난을 걸었다.

 

다녀왔어, 유노.”

꼬리를 흔드는 유노의 귀 뒤편을 쓰다듬어줬다.

유노는 그렇게 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유노는 내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가 기르기 시작한 개로

가끔 외가에 올 때면 늘 함께 놀았다.

그게 지금은 매일 함께였다.

외할아버지 댁에 살게 되고 나서 기뻤던 일들 중의 하나가 이거였다.

 

이거 선물 받았어. 부럽지?”

유노에게 에어건을 보여주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노.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빵 하면 죽은 척하는 재주를

유노도 부릴 수 있을까?

 

유노한테 쏘면 안 돼.”

내 생각이 전해졌는지 뒤에서 조금 날카로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에, 하고 얌전하게 대답했다.

사람한테 쏘면 안 된다는 소리를 돌아오는 길에 실컷 들은 후였다.

잔소리 참 많네, 다 안다고요.

유노를 한참 쓰다듬어주고 나서 손을 씻고 집에 들어와

거실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에게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할아버지!”

오오, 다녀왔니? 코요미, 재밌었니?”

 

할아버지가 온화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말수는 적지만 늘 달콤한 사탕을 주는 자상한 할아버지다.

 

. 할아버지, 사탕 줘.”

오늘은 이미 먹었잖아. 하루에 한 개씩이야.”

 

다만 사탕을 하루에 하나밖에 절대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치사하다.

나는 그 사탕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많이 먹고 싶은데,

할아버지는 내 손이 닿지 않는 옷장 가장 위 서랍에 넣어 놓고

마음대로 꺼내 먹지 못하도록 했다.

사탕 하나라 해도 많이 먹는 건 좋지 않으니까라며 하루에

하나밖에 주지 않는다.

그 엄격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는

아빠가 사준 에어건을 아무 생각 없이 할아버지에게 자랑하고 말았다.

 

됐어. 그것보다 할아버지, 이것 봐!”

오오, 에어건이구나. 사내아이라면 역시 갖고 싶은 법이지.

할아버지도 어릴 적에…….”

 

온화하게 미소 짓던 할아버지의 눈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코요미, 그거 잠시 보여주렴.”

? …….”

 

심상치 않은 할아버지의 분위기에 에어건을 얌전히 상자째 건넸다.

그것을 받아 든 할아버지는 박스 일부를 가리키며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령 대상이 10세 이상이라고 돼 있잖니. 너한텐 아직 일러.”

 

그렇게 말하고 할아버지는 일어나서 방을 나갔다.

그길로 내 에어건은 돌아오지 않았다. 버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큰 소리로 울고서 그날부터 할아버지를 제일 미워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도 나를 싫어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만큼 날 위로해준 자상한 할머니를 따르게 되었고,

할아버지와는 그다지 말을 섞지 않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나름대로 날 좋아해줬다고 깨달은 건,

그로부터 2년 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이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한 가지 수수께끼를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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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에는 공교롭게도 아침부터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그 사실을 숨기고 약과 지갑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잠시 나갔다 올게.”

. 조심해서 다녀와.”

 

역시 오랜 세월을 함께한 만큼 아내에게는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왔기 때문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보내주었다.

817, 오전 9시 반. 쇼와 거리 교차로로 향했다.

더 이상 걷기는 어려워졌기 때문에 늘 신세를 지는 전동 휠체어에 앉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시속 10킬로미터 이상 속도도 거뜬히 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새삼스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옛날에는 자신의 다리로 활보했던 거리를 바라보며

시속 4킬로미터로 천천히 나아갔다.

 

어째서인지 묘하게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옛날에는 저런 건물이 없었지, 그 오브제는 언제 철거된 걸까,

이 가게는 어째서 망하지 않는 걸까…….

동네 한 군데 한 군데에 추억을 되새기며 그 광경을 눈에 각인시켰다.

분명 더 이상 이렇게 외출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너무 꾸물댔나 보다.

10분 전에는 도착할 생각이었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가 되어 있었다.

 

쇼와 거리 교차로.

이 지방 도시의 중심지를 사등분하는 가장 큰 교차로다.

당연히 교통량도 많아서 신호는 보행자 차량 분리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옛날에는 모든 도로에 걸쳐져 있던 거대한 육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다리 기둥 때문에 시야가 가리는 탓에 위험하여 철거했다고 한다.

나는 오랜 사진에서 본 그 육교를 너무 좋아해서 자주 멈춰서는

위를 올려다보고 육교를 건너는 자신을 상상하곤 했다.

그런 추억이 담긴 교차로였지만.

도착해서도 역시 약속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 오전 10.

쇼와 거리 교차로.

어느새 자신의 단말기에 입력되어 있던 의문의 스케줄.

어쩌면 자신이 입력하고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때가 되면 떠오르지 않을까 하고

얕은 기대감을 안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나 보다.

 

교차로 남서쪽 모퉁이 옆,

공원이라고 부를 만큼 그리 넓지 않은 일대에 아담한 나무가 심겨져 있고,

그곳에 레오타드 소녀가 있다.

수줍어하듯이 손으로 가슴을 가린 육감적인 소녀의 동상으로

내가 태어났을 적부터 쭉 있었던 것이다.

익숙하긴 하지만 모델이 누구인지,

어떤 의미가 있어서 이곳에 세워져 있는지 등은 전혀 모른다.

약속 장소는 이곳일 테지만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 말고

나를 기다리는 듯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휠체어를 멈추고 멍하니 그 동상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왠지 주변의 이목이 신경 쓰여서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보행자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도 이제 그곳에 없었다.

대신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지방 도시다보니 텔레비전에서 보는 도회지의 교차로에 비하면 훨씬 작다.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의 대부분이 다 건넜는데도 신호는 아직 깜박이지 않았다.

보행자 신호로 더디게 바뀌는 만큼 보행자가 길을 건너는 시간이 긴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단 한 사람, 횡단보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여자가 있었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이쪽으로 다 건널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도,

이쪽으로 오지도 않고 저쪽으로 달려가지도 않은 채 단지 그 자리에 서 있다.

아무리 보행자가 건너는 시간이 길다고는 해도 그런 곳에 계속 서 있으면 위험하다.

휠체어를 움직인 나는 횡단보도로 다가가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그런 곳에서 뭐 하니? 위험하단다.”

 

내 말에 여자아이가 돌아보았다.

중학생쯤 되었을까?

하얀 원피스를 입은, 길게 뻗은 생머리가 아름다운 예쁘장한 아이였다.

아이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고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데리러 와준 거야?”

 

데리러 왔다는 말은 조금 과장스러웠지만, 행위로서는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 신호가 깜박이기 시작했기에 아이에게 맞춰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데리러 왔단다. 그러니 이리 오렴, 같이 가자.”

 

그렇게 말하고 손을 뻗자 소녀는 기쁜 듯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손을 뻗은 채 나는 굳어졌다.

이윽고 신호가 바뀌고 차가 눈앞을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선 휠체어를 뒤로 돌려서 동상 앞까지 돌아왔다.

다시 횡단보도를 쳐다봤지만 역시나 어디에도 소녀의 모습은 없었다.

눈앞에 있던 소녀가 갑자기 사라졌다.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은 있지만,

오랜만이다 보니 역시 한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말았다.

요컨대 나는 지금 패러렐 시프트한 평행세계로 건너간 게 아닐까.

패러렐 시프트란 같은 시간 어딘가의 평행세계에 있는 자신과

의식만 교체되는 현상이다.

장소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이 세계의 나도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비교적 가까운 세계일 테지만,

소녀가 두세 번째 정도 옆 세계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마도 열 번 정도는 시프트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건너간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렇다면 최악의 가능성으로 제로 세계에서는

소녀가 그대로 차에 치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직 IP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아침에 일어났을 시점에 이미 나는 어딘가의 다른 세계에 있었고,

지금 제로 세계로 돌아왔을 가능성도 있다.

IP를 확인하기 위해서 손목에 찬 단말기에서

음성조작으로 IEPP 화면을 불러내 여섯 자리의 디지털 숫자를 켰다.

이 수치가 0이라면 이곳은 제로 세계지만.

하지만 그 화면에는 숫자가 아니라 [ERROR]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망가졌나……?”

 

무슨 일이지. 이래서는 자신이 지금 어느 세계에 있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만약 자신이 지금 제로 세계에 있고 횡단보도에 소녀가 있었던 것이

어딘가의 평행세계라고 한다면 그건 이미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만약 자신이 지금 있는 곳이 평행세계고

횡단보도에 소녀가 있던 곳이 제로 세계라면…… 몹시 걱정이 되었다.

제로 세계에 간 이 세계의 나는 그 아이를 제대로 구했으려나?

어떻게든 지금 바로 이곳이 어느 세계인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고 하다가 타인의 IP를 보더라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공서에 가면 대체 단말기를 구할 수 있지만,

몇 가지 심사가 필요해서 바로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뭔가…… 하고 생각하던 중에.

문득 생각났다. 자신이 지금 어느 세계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그게 당연하지 않았던가.

어느 한 과학자에 의해 평행세계의 존재가 증명되어

사실 인간은 아무 자각 없이 일상적으로 평행세계를 이동하고 있다고

판명된 지 수십 년이 지났다.

지금은 초등학교에서도 가르칠 만큼 일반 상식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평행세계라는 개념은 픽션 속에서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무렵으로 돌아간 것뿐이지 않은가.

그때. 평행세계라는 것은 너무나도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

내가 처음으로 평행세계를 의식한 것은 때마침 10살이 되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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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토는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아아아아아아아악…… ?”

침대 위다.

걷어 찬 이불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전력질주를 한 직후처럼 호흡이 거칠어졌고,

고동이 리듬게임 EX 모드처럼 연달아 울리고 있었다.

둥글고 하얀 실링 라이트에 미세한 요철이 있는 하얀 벽지.

픽쳐 레일에 걸려 있는 변웃고태피스트리,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책장과 나뭇결무늬 바닥.

커튼 틈새로 여름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약간 낡은 대형 에어컨이 소리를 내며 차가운 바람을 내뿜고 있다.

사이드 테이블에서 스마트폰을 들었다. 시간은 918, 편집자에게서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 인가.

진짜로 꿈이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그것은 반년 전에 일어났던 악몽 같은 사고였다.

결국 그 때는 30분 정도 뒤에 낯선 OS로 변한 PC를 사용해 원고를 메일로 보냈고――

담당 편집자가 인쇄소에서 엎드려 사과해준 덕분에.

무사히……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납득할 수 있는 작품이 발매일에 맞춰 서점에 나가게 되었다.


아니, 여기…… 내 방……이지?”

유우토의 기억이 확실하다면 자기 방은 자료로 쓰는 책이 바닥에 가득 차 있고,

침대 머리맡과 발치까지 점령하고 있어서 겨울에 고양이가 그러는 것처럼 몸을 웅크리지 않으면 잘 수 없을 정도로 혼돈스러운 참상이었을 텐데.


자료는 책장 앞에 쌓여 있었다.

책상 주변에 굴러다니고 있었던 도시락이나 컵라면, 페트병과 영양 드링크 같은

수라장의 흔적들이 쓰레기봉투로 정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유우토는 갈아입은 기억도 없는데

이벤트 때 입었던 파카와 청바지 차림이 아니라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알겠나? 왓슨 군.

명탐정처럼 물어봤자 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유우토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미스터리의 범인, 아니, 유우토의 더러운 방을 정리해준 듯한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문이 열렸다.

괜찮으신가요?! 엄청난 소리가…….”

흐악?!”

침실로 들어온 것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마법소녀 카니버스터에 나오는 아카기 카니야였다.


――환경오염의 원흉인 인류의 정화를 내세우는 꽃게 세계 사람들로 인해 세계는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때 이세계에서 전해진 마법을 통해 소녀가 카니버스터로 변신한다! 환경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으며(여자 초등학생이 과격한 옷을 입고 활약하는) 진지한 사회파 작품이다. 아마도.


치마가 V자로 뚫려 있어서 속옷……이 아니라 마도 내장갑(마기 인아머)이 보였다. 머리에는 게의 집게발을 본딴 좌우 비대칭 리본을 묶고 있었다.

유우토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아직 꿈 속이었나…… 아니, 환각인가?”

밤을 너무 샜나.

카니야가 걱정스러운 듯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저기…… 엄청 큰 목소리가 들렸는데요, 괜찮으신가요?”

환상에게까지 걱정을 끼칠 줄이야.”

정말 괜찮으신가요? 땀이 많이 나요. 뭐 필요하신 거 있나요?”

……그럼 …….”

, 선생님!”


――선생님?!

마법소녀 카니야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리가 없다. 아니, 부를 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그녀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다.

냉정하게 생각하니 꿈속은 아닌 것 같다. 아마 환각도 아니겠지.

다시 말해 침실로 들어온 소녀는 이른바 코스어였다.

코스튬 플레이어. 이 경우에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로 분장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녀가 물을 가져다주었다.

컵을 받아들고 단숨에 마셨다.

잠에서 덜 깼던 머리가 시원해지고 나서 잘 살펴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어제 이벤트(여름 코믹)에서 판매원을 해준 소녀였다.

서클을 돕는 건 처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해줬다는 건 기억하고 있다.


저기…… 너는 분명…….”

, 노기 노노카예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본명은 몰랐지.”

으아…… 그랬죠! ‘노노노예요.”

, 그 이름은 들었는데.”

, CN(코스네임)이에요.”


CN이라는 것은 코스튬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PN(펜네임)이나 HN(핸들네임)인 모양이다.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해요. 어제 제대로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서…….”

아니아니…… 내가 아마 제대로 듣지 않았을 거야. 멍하니 있었으니까.”

이벤트 날은 정신이 없으니까요.”

그렇기도 한데…… 잠을 안 자서.”

일을 하셨군요.”

유우토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 일 쪽 그림은 날짜가 바뀌기 전에 보냈는데.”

잠이 안 왔나요?”

요즘 사흘 정도 철야로 일 쪽 그림을 그려서……

끝난 순간에 우오옷, 내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신이 나버려서. 그럴 때가 있잖아.”


그녀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철야로 그림을 그렸는데도요?”

결국 출발할 시간까지 그림을 그렸거든. , 그러고 보니 그대로 놔뒀던가?”

침대 옆에 있는 사이드 테이블에 두었던 은색 iPad Pro를 들었다. 지문 인증을 겸하고 있는 홈 버튼을 누르자 그림을 마친 채로 두었던 어플 화면이 떴다.

카니버스터를 좀 그리고 있었어. 낙서긴 한데.”

노기가 들여다보고 소리를 질렀다.

흐아~?! 이게 낙서인가요?! 책으로는 안 내세요?!”

그야 뭐, 해상도도 낮으니까.”

저는 엄청 갖고 싶어요! 선생님이 그린 카니야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요?!”


――연하 여자애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니 쑥스럽네.

, 마음 내키면 pixiv에 올릴지도 모르는 정도야.”

꼭 올려주세요!”

이야기가 한참 엇나가 버렸다.

낙서보다는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이 있다.


저기…… 노기 양.”

선생님만 괜찮으시면 노노카라고 불러주세요.”

, .”

“‘노노노라고 부르셔도 되지만요!”

그거 현실생활에서는 창피해. 발음도 힘들고.

동료 일러스트레이터의 펜네임 중에도 밖에서는 소리 내어 말하기 힘들 정도로 기괴한 것이 가끔 있다. 서로 본명으로 자기소개를 하진 않는다. 술을 마시는 자리 정도면 괜찮지만 주위에 일반인이 있는 곳에서 부를 때는 은근히 곤란하다.


유우토는 자기 본명을 가타가나로 표기한 것을 펜네임으로 쓰고 있다.

그럼 노노카 양.”

왜 그러시나요, 선생님!”

내 눈에는 네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유가 뭐야?”

하으으…….”


노노카가 얼굴을 화악 붉혔다.

얼굴을 붉히다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그래픽 툴의 채우기 도구로 색을 넣은 것처럼 변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귀까지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 이거 울려는 거 아닌가?

유우토는 당황했다.

, 미안해! 뭔가 이유가 있는 거지?!”

…….”

이벤트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갈아입었으니까.”

동인 이벤트 때 코스프레 차림으로 집에 가는 건 규칙 위반이다. 그녀도 다른 판매원들과 마찬가지로 옷을 갈아입었을 텐데.

생각나기 시작했다.


이벤트가 끝날 때쯤, 친구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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