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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해온 주소지에 서있는 것은 오래된 2층짜리 연립주택이었다.

방 한 칸 한 칸이 얼마나 비좁은지는 건물 외관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근처에 대학이 몇 군데나 있어서 주로 그 대학생들의 입주를 전제로 한 건물일 터였다.

1층 가장 안쪽이 와키사카 다쓰미의 방이었다.

프레임에 온통 녹이 슨 자전거가 현관문 옆에 세워져 있었다. 작은 창문 너머는 깜깜했다.

도어폰이라는 세련된 기기는 눈에 띄지 않아서 고스기는 직접 문을 두드려야 했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와키사카 씨, 와키사카 씨, 라고 두 번 불러봤지만

안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은 없었다.

집에 없나?” 고스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녁 먹으러 나갔는지도 모르죠. 잠시 기다려볼까요?”

시라이의 제안에 그러자고 대답하면서 고스기는 옆집을 살펴보았다.

문패는 달리지 않았지만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고스기는 그쪽 현관문 앞까지 이동해 노크해보았다.

곧바로 네에, 라고 남자 목소리가 응했다.

잠깐 실례 좀 해도 될까요?” 고스기가 말했다.

누구십니까?”

관청 사람입니다. 잠깐 물어볼 게 있어서요.”

대답은 없었지만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자물쇠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하지만 체인은 걸어둔 상태였다.

문 틈새로 얼굴을 내민 사람은 젊은 남자였다. 아마 대학생일 것이다.

고스기는 경찰 배지를 제시했다. “저녁 시간에 미안하네.”

청년의 눈이 둥그레졌다. 두려움과 놀람이 섞인 기색이 얼굴에 떠올랐다.

옆집의 와키사카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뭔데요?”

와키사카와는 평소에 왕래가 있나?”

청년의 눈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 마주치면 인사 정도는 합니다. 같은 대학이고 해서요.”

가이메이대학?”

, 라고 청년은 대답했다.

근데 학부는 달라요. 저는 공학부, 그 친구는 아마 경제학부일 거예요.”

고스기가 이름을 묻자 청년은 마쓰시타 히로키라고 밝혔다.

와키사카와 마찬가지로 4학년이라고 했다.

와키사카가 지금 집에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어디 갔는지 알아?”

마쓰시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모르는데요.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아서…….”

학생은 오늘 계속 집에 있었어?”

아뇨, 오전에는 학교에 갔어요. 집에 돌아온 게……3시쯤이었나?”

그 뒤에는? 어딘가 외출했어?”

아뇨, 혼자 집에 있었어요.”

와키사카는 어땠지? 집에 있는 것 같았어?”

글쎄요…….” 마쓰시타는 고개를 외로 꼬았다.

죄송합니다.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직접 본 건 아니라는 거지?”

, 그렇죠. 오늘은 못 봤습니다.”

집 안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없었어?”

들렸을 수도 있지만, 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이 아파트가 워낙 벽이 얇아서 밖에서 여러 가지 소리가 뒤섞여서 들려오거든요.”

와키사카의 휴대전화 번호는 알고 있나?”

아뇨, 모르는데요.”

메일을 주고받은 적은?”

그것도 없어요. 볼일이 있으면 직접 가는 게 더 빠르니까요.”

그러면 와키사카와 친한 사람 중에 자네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까?”

여기에서도 마쓰시타는 트릿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구가 자주 놀러오는 것 같긴 하던데, 제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

허탕인가, 하고 고스기는 낙담했다.

이 대학생에게서는 유익한 정보를 얻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됐습니까? 제가 내일까지 꼭 제출해야 할 리포트가 있어서요.”

, 이거 미안하게 됐네. 협조해줘서 고마워.”

고스기가 인사를 건네자 마쓰시타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닫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체인은 풀어주지 않았다.

도무지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네.”

고스기가 속닥거린 직후, 코트 속에서 스마트폰이 착신을 알렸다.

난바라에게서 온 것이었다.

, 고스기입니다.”

와키사카는 만났어?”

그게요, 지금 집에 없어요.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어서

여기서 좀 더 기다려볼까 하던 참입니다.”

그 아파트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은 없었나?”

옆집에는 물어봤는데 그리 친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 그래? 근데 혹시 문 손잡이는 만지지 않았지?”

문 손잡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와키사카 집 현관문 손잡이 말이야.

혹시 만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거야. 아니면 벌써 손을 댄 거야?”

초조한 듯이 난바라가 재우쳐 물었다.

고스기는 와키사카의 집 쪽으로 몸을 돌리고 현관문 손잡이를 쳐다보았다.

아뇨, 우리는 손대지 않았는데요.”

좋아. 그럼 그대로 거기서 대기하고 있어. 곧 그쪽으로 감식반이 나갈 거야.

문 손잡이의 지문을 채취하기로 했으니까 아무도 손대지 않게 잘 감시해.”

사건현장에서 범인의 지문이 발견된 겁니까?”

아까 얘기했던 대로 우편함 바닥에 숨겨뒀다는 그 부엌문 여벌열쇠야.

감식반에서 조사해본 바, 피해자의 것도 아니고

후쿠마루 부부의 것도 아닌 지문이 찍혀 있었어. 게다가 명백히 최근에 찍힌 것이래.

그 부부의 아이들은 지난 일 년 동안 손을 댄 적이 없다고 하니까

이건 범인의 지문일 가능성이 높아.”

그 지문, 사건현장에서도 발견되었어요?”

현장에는 여러 개의 지문이 남아 있어서 지금 대조 중이야.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자네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알았지?”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은 뒤 고스기는 시라이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부엌문 여벌열쇠에 지문이라고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범인이 그런 걸 남겨두고 갈까요?”

 시라이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깜빡하는 실수라는 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어.

사람을 죽인 직후이고 보면 도망칠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해져서

그런 것까지는 미처 신경을 못 썼는지도 모르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원박스 왜건이 나타나 바로 앞 도로 옆에 섰다.

슬라이드 도어가 열리고 모자를 쓴 감식반 담당자 두 명이 내렸다.

고스기는 그 둘 다 면식이 있었다.

늦게까지 잔업하느라 수고가 많네.”

나이 많은 쪽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건네왔다.

그쪽이나 이쪽이나 느닷없이 생고생이지 뭐야.”

내일부터는 더 힘들걸요?” 고스기가 말했다.

일단 본청 사람들이 들이닥칠 테니까요.”

하하하, 그건 그렇지.” 맞장구를 치면서도 어딘가 여유가 있었다.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는 관할서 감식반은 초동수사로 대부분의 업무가 끝난다.

본청 사람들에게 턱짓으로 지시받을 일은 없다고 안심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나저나 문제의 그 집은 어디야?”

저기예요.” 고스기는 와키사카 다쓰미의 집을 가리켰다.

저 자전거도 이 집 사람 것인가?”

아마 그럴 겁니다.”

나이 많은 감식반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젊은 파트너에게 뭔가 귀엣말을 했다.

곧바로 두 사람은 작업에 들어갔다. 젊은 쪽이 현관문 손잡이의 지문을,

나이 많은 쪽이 자전거의 지문을 채취하기로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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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7-12-2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건을 읽어보면서 풀어보고 싶어지네요^^

고귀한 수영이 2017-12-23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슬슬 게이고옹 특유의 감질맛 나는 사건이 시작되는 군요.

애니는재미있어 2017-12-2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밝혀지는 느낌이네요.
 

한 담 어······까나~

 

 

바람의 여신 닌릴은 평소처럼 수경(릣떮)으로 하계라고 할까, 그 일행을 보고 있었다.

늦느니라, 늦느니라, 늦느니라.”

이세계인 놈, 좀처럼 이 몸에게 공물과 기도를 바치지 않느니라.

기다리다 지칠 무렵에 펜리르가 이세계인에게 화를 냈다. 잘했다,

펜리르. 역시 이 몸이 가호를 받을 만하니라.

하나 이 몸에게 공물과 기도를 바치지 않은 이유가 잊고 있었다라니!

이 몸에게 공물을 바치고 기도를 올리는 신성한 의식을 잊다니,

정말로 어리석은 자로구나.

이세계인이 이제야 겨우 공물을 바치며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오오, 드디어로구나. 정말이지 얼마나 기다리게 할 셈이냐.”

이세계인이 이쪽에도 여러 가지로 일이 있어서라는 변명을 했다. 그건 거짓말이지 않느냐.

이 몸은 모두 간파하고 있느니라. 하지만, 이 몸은 관대하니라.

흐응, 이번에는 용서해주겠으나 두 번 다시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하거라.

너무 늦어지기에 몇 번이나 신탁을 내리려고 했는지 아느냐.

하나 이 몸 쪽에도 여러 사정이 있어서 그럴 수 없었느니라…….”

정말로 몇 번이나 신탁을 내릴까 생각했던가.

그러나 예의 여신 동료와 전쟁의 신, 대장장이 신이 있단 말이다.

특히 여신 동료들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이 몸 주변에 신출귀몰하게 나타나는 상황이니라.

섣불리 신탁 같은 걸 내리면 들킬 위험도 있느니라.

이 몸도 세심하게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 다른 신들에게 알려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세계인이 여러 가지로 준비했다는 말을 하기에 공물을 살펴보았다.

우오옷! , 이것은!!”

각양각색의 단것들이 잔뜩 있지 않느냐. 게다가 전부 다른 종류의 단것이니라.

장하니라, 장하니라. 무어라? 이세계인 녀석, 지나치게 많은가 생각했다고?

, 무슨 소리냐. 지나치게 많지 않다. 이게 좋으니라.

다음에도 이 정도를 바치거라. 명령이니라.”

그러하니라. 지나치게 많지 않느니라.

이세계인의 말에 따르면 이 과자들은 생과자라고 하며

냉장 보관을 해야 하고 늦어도 내일까지는 다 먹어야 한다고 한다.

후후후, 그러나 이 몸에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느니라.

알았느니라. 하나 이 몸은 신이니 냉장 보관도 시간 경과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느니라.

매일 하나씩 즐길 것이니라. 우후후~.”

우후후~ 우후후~ 우후후~ 기대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좋구나.

, 이세계인에게 이 말만은 전해두어야 하느니라.

그럼 다음에도 이 정도 양으로 부탁하마. 절대 잊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우하하하, 단것이 이렇게나 잔뜩 있다니 훌륭하니라. 그럼, 바로 먹어볼까.

······까나~. 좋아, 이것이니라. 붉은 과실 같은 것이 얹어진 하얀 삼각형의

딸기 쇼트케이크라는 과자니라. 어디 어디, 덥석. 우오옷, , 이건 엄청나게 맛있느니라!

안의 폭신폭신과 주변의 하얀 것이 엄청나게 잘 어울리는구나.

이 빨간 과실도 새콤하고 달콤해서 실로 좋구나.

우걱우걱우걱우걱. , 벌써 다 없어졌느니라.

조금 부족한 기분이드니, 하나 더 먹겠느니라.

다음은, 이거니라. 둥글고 부드러운 슈크림이라는 것이니라.

어디 어디. 덥석. 우오옷, 주변의 부드러운 것 안에 노란빛이 감도는 달콤~한 것이 정말 좋구나. 이건 좋다, 맛있느니라. 우걱우걱우걱우걱. , 다 없어졌느니라.

아직 부족한 것 같으니 하나만 더 먹겠느니라. 이걸로 하겠다.

뭔가 특이한 모양을 한 몽블랑이라는 과자니라.

누르스름한 가늘고 긴 것이 구불구불하게 빙빙 둘러져 있구나.

그 위에는 무슨 열매인가? 싶은 것이 얹어져 있느니라.

어디 어디, 덥석 우오옷, 누르스름한 가늘고 긴 것의 부드러운 단맛이 맛있지 않느냐.

위에 얹은 열매 같은 것도 질리지 않는 단맛이라 정말 좋구나.

우걱우걱우걱우걱. , 이제 없느니라.

, 아아아아아아니 된다. 조금씩 먹으며 즐기려고 생각했는데, 세 개나 먹어버렸느니라.

, 참아야 한다. 내일의 즐거움이 사라지고 마느니라. 내일 다시, 내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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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0여 분만 달리면 도쿄역에 도착한다고 생각했을 때,

가슴팍 호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착신을 알렸다.

개인 스마트폰이 아니라 직장에서 대여해준,

아니, 그보다는 강제로 지급해준 스마트폰 쪽이었다.

고스기 아쓰히코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채 좌석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차문을 열고 연결통로로 나온 뒤에 스마트폰을 터치해

고스기입니다라고 짐짓 딱딱한 말투로 응했다.

출장은 잘 다녀왔어?” 상사 난바라가 끈적끈적한 말투로 물었다.

, 정말 피곤하네요.” 고스기는 대답했다.

아침 첫 신칸센으로 센다이에 가서 온종일 돌아다녔거든요.

점심시간 빼고는 잠시도 쉬지 못했습니다.”

돌아오는 신칸센에서 한숨 잤잖아.”

근데 제가 요즘 불면증이에요. 겨우 눈 좀 붙이는가 했더니 이 전화가 걸려오네요.”

흥 하고 난바라가 코웃음을 쳤다.

하루 출장 근무를 마치고, 자아, 이제 집에 가서 맥주라도 한잔 하자, 라고 했더니만

업무용 스마트폰으로 연락이 왔단 말이지.

그러면 뭐, 당연히 방어선을 치고 싶은 마음도 들겠지.”

그런 게 아니라고 애써 변명할 이유도 의리도 없어서 그에 대한 대꾸 대신 고스기는

무슨 일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난바라는 괜히 한참 뜸을 들이고 나서야 사건이 터졌어라고 말했다.

그야 물론 그럴 거라고 고스기는 생각했다.

센다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사람에게 단순한 허드레 심부름을 시키려고 전화를 걸었다면

그거야말로 큰 민폐다.

무슨 사건인데요, 라고 물어보려는 참에 난바라가 말을 이었다.

살인사건이야.”

고스기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제발 잘못 들은 것이기를 빌었다.

, 저기요.” 헛기침을 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믿고 싶지 않은 그 심정은 잘 알아. 나 역시 똑같은 심정이니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거짓말도 아니고 농담도 아니야. 말 그대로 살인사건이야.

현장은 미타카 시 N동의 단독주택. 강도 살인이야. 금품도 훔쳐갔어.

살해된 피해자는 그 집에 사는 80세 노인이야.”

난바라의 말을 듣고 고스기는 가슴속에 암울한 기분이 퍼져갔다.

조무래기 깡패들이 서로 싸우다가 기운이 넘쳐서 죽여버렸다느니 하는

단순한 사건은 아닌 것 같다.

저기요, 계장님.” 희미한 기대감을 품고 고스기는 물었다.

범인은 어떻게 됐습니까?”

잡히지 않았어. 자수한 것도 아니고.”

역시 그런가, 하고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고개를 툭 떨구었다.

일이 그렇게 됐으니까라고 난바라는 말을 이었다.

당장 초동수사에 들어가야 해.

자네도 피곤할 텐데 미안하긴 하지만 도쿄에 도착하는 대로 사건현장에 출동해줘.

가능한 한 빨리 가야 해. 주소는…….”

잠깐만요, 오늘은 직접 퇴근할 예정이어서 이미 이런저런 일정을 잡아뒀어요.

일단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도 되겠습니까?”

아니, 그럴 시간이 없어. 혼자 사는 처지에 집에 안 들어가도 별 문제 없잖아?”

고양이 밥 챙겨주고 오는 걸 깜빡했다고요.”

고양이는 그리 쉽게 굶어죽지 않아. 걱정 말라고, 오늘 밤 안으로 집에 보내줄 테니까.

사건현장 주소, 얼른 받아 적기나 해.”

얄미워죽겠는 마음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스기는 양복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난바라가 알려주는 주소를 휘갈겨 썼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이건 큰 사건이야.

수사에 우리 경찰서만 나서지 않을 거라는 점도 미리 알아둬.”

상사의 말에 고스기의 마음은 한층 더 암울해졌다.

합동 수사본부를 꾸린다는 얘기지요?”

틀림없이, 라고 난바라는 단언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우리 서에 수사본부가 설치될 것 같아.

아침 첫 일정으로 수사회의가 소집될지도 모르니까 그 준비도 해야 돼.

내일부터는 당분간 집에 못 돌아가는 걸로 생각해.”

, 그럼, 이라는 말을 던지고 난바라는 고스기의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고스기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동댕이치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며 객실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를 조금 지난 참이었다.

 

도쿄역에서 지하철 중앙선으로 갈아타고, 가장 가까운 역에 도착해서는 택시를 이용했다.

N동은 단독주택이 차례차례 이어진 조용한 주택가였다.

택시에서 내린 고스기는 곧바로 해당 집을 발견했다.

앞쪽 도로에 순찰차가 줄지어 서있었기 때문이다. 구경꾼도 모여들었다.

집 문패에는 후쿠마루라고 적혀 있었다.

고스기 씨, 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돌아보니 후배 시라이가 다가오는 참이었다.

학생시절에 럭비를 했던 만큼 투박한 몸집의 사나이다.

그런 편 치고는 얼굴은 동안이었다.

외동딸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아이들 사이에 호빵맨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는 모양이다.

센다이는 어땠어요? 우설(牛舌), 먹어보셨습니까?”

식탐이 강한 시라이는 다른 사람이 출장을 갈 때도 그 지역 특산물을 검색해보는 버릇이 있다.

그럴 틈이 있었겠어? 온종일 뛰어다니느라 녹초가 됐는데.” 고스기는 내뱉듯이 말했다.

실제로는 점심식사 때 우설을 먹기는 했지만 그런 일을 솔직히 신고할 의무는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늦은 시간의 신칸센으로 돌아왔을 텐데.”

아이구, 참으로 애통하시겠습니다.”

! 그나저나 어떤 상황이야?” 고스기는 집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감식반이 작업 중이라 아직 안에는 못 들어가요. 하지만 사진은 받아뒀습니다.”

시라이는 태블릿을 손에 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수사원들과 분담해서 근처 탐문을 돌고 있습니다.”

난바라가 말한 대로 본격적인 초동수사에 들어간 모양이다.

난바라 계장님은?”

서에서 피해자 가족의 진술을 듣고 있을 거예요.”

고스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하기는 했지만 투덜거리고 있을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곁에 있던 경관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차해둔 경찰차 뒷좌석에 둘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경시청 통신지령센터에 신고가 들어온 것이 오후 412분입니다.

여자 목소리였는데, 집에 있던 사람이 살해되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상당히 놀란 상태여서 설명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인근 파출소에서 경관 두 명이 출동해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그때쯤에는 신고한 여성도 조금 안정이 되어서 제대로 진술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시라이의 설명에 의하면, 신고한 여성은 이 집의 주부 후쿠마루 가요코였다.

가요코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처 슈퍼마켓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일이 끝난 뒤에는 친구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귀가하는 것이 일과였다.

오늘도 그런 패턴으로 오후 4시 전에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의 잠금장치가 풀려 있었지만 딱히 수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회사에 근무하는 남편이 귀가했을 시간은 아니었어도

함께 사는 시아버지가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시아버지가 문 잠그는 것을 깜빡 잊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가요코는 대문에서 마당을 지나 직접 부엌문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이변을 곧장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알게 된 것은 거실로 이동했을 때였다.

거실장 앞에 온갖 물건이 어질러져 있었던 것이다. 서랍이 빠져 바닥에 엎어진 상태였다.

가요코는 거실을 뛰쳐나와 옆방 문을 두드리며 시아버지를 불렀다.

그곳이 시아버지의 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답이 없어서 더럭 겁이 난 그녀는 웬만해서는 무단으로 여는 일이 없는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본 것은 켜져 있는 텔레비전이었다. 그리고 다음에 눈에 들어온 것은.

이런 상황입니다.” 시라이는 들고 있던 태블릿의 화면을 고스기 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다다미방이었다. 바닥에 추리닝 차림의 노인이 엎드린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

옆에는 바둑판이 놓여 있다.

시라이가 화면을 터치하자 다른 사진이 표시되었다.

노인의 목을 클로즈업한 것이다. 명백히 교살흔으로 생각되는 거무칙칙한 선이 보였다.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시라이의 말에 의하면, 피해자의 이름은 후쿠마루 진키치.

나이는 80. 전직 회사 임원이었지만 현재는 연금 이외의 수입은 없다.

동거자는 장남 히데오와 며느리 가요코뿐이고

손자 둘은 각각 취직해서 집을 떠났다는 얘기였다.

난바라 계장님은 금품을 훔쳐갔다고 하던데?”

거실장 서랍에 들어 있던 현금 20만 엔 정도가 사라졌어요.

생활비로 다달이 그곳에 넣어두는 게 습관이었다고 합니다.

가요코 부인이 집을 나갈 때는 그 돈이 틀림없이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밖에 훔쳐간 것은?”

피해자의 방에서 뭔가를 훔쳐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피해자 본인 외에는 모르는 재산이 많아서 현재로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부부와 자녀들의 방은 2층에 있는데 범인이 그쪽에 올라간 흔적은 없는 모양입니다.

어느 정도 현금을 손에 넣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도주하는 것을 우선했는지도 모르지요.”

침입 경로는?”

감식반이 대충 둘러본 바로는 부엌문이나 창문에는 안에서 열쇠를 채웠고

망가진 흔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현관으로 들어오고 나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고스기는 집 쪽을 흘끗 보았다. “방범카메라는?”

시라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설치를 안 했더라고요.”

그래?” 고스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왜 정부에서는 방범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지 않는 거냐고

투덜거리고 싶어진다.

시라이가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스마트폰을 꺼냈다. 전화가 걸려온 모양이었다.

, 시라이입니다. ……지금 고스기 씨와 함께 있어요. ……, 알겠습니다.

곧 복귀하겠습니다.” 시라이는 전화를 끊고 고스기를 보았다. “난바라 계장님 전화예요.

급히 서로 돌아오라고 하시는데요.”

무슨 일인데?”

글쎄요, 라고 시라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발 성가신 일은 떠맡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경찰차에서 내려 둘이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간선도로로 나온 뒤에 택시를 잡았다.

서에 들어서자 벌써 다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결코 넓다고 할 수 없는 복도를 사무기기며

통신기기를 끌어안은 젊은 서원(署員)들이 바쁜 걸음으로 오가고 있었다.

수사본부가 설치될 예정인 강당으로 운반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얼굴빛은 하나같이 칙칙했다.

관할서 경찰관에게는 살인사건의 합동 수사본부가 설치되는 것만큼 우울한 일도 없다.

이쪽의 인력이 동원될 뿐만 아니라 아니라 경비도 들어간다.

당연히 상사들의 기분은 점점 험악해질 뿐이다.

두 사람이 형사과로 들어가자 난바라가 다른 부하와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누는 참이었다.

난바라는 고스기 쪽으로 무뚝뚝한 말상 얼굴을 향하고

고단할 텐데 미안하네라고 전혀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인사를 건네왔다.

어떤 상황입니까?” 고스기가 물었다.

, 보시다시피 이런 상황이야.” 난바라는 빙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정신없이 바쁘게 뛰고 있어. 자네도 얼른 거들어줘야겠어.”

이미 거들고 있잖습니까.”

고스기가 코트를 벗으려는 것을 , 그대로 입고 있어라고 난바라가 제지했다.

지금 즉시 나가서 알아봐야 할 인물이 있어.”

누군데요?”

산책 담당.”

산책 담당?” 고스기는 미간을 좁혔다. “뭡니까, 그게?”

유족의 진술에 의하면, 후쿠마루 가에서는 시바견을 기르고 있었어.

산책을 시켜주는 것은 피해자가 맡은 일이었는데 반년 전쯤에

허리를 다친 뒤로 장시간 걸을 수가 없게 됐어.

그렇다고 개를 산책시키지 못하면 너무 가엾다고 대학생 알바를 쓰기로 했던 모양이야.”

그 집에 개가 있었던가?” 고스기가 시라이에게 물었다.

시라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는 못 봤는데요?”

그 개, 지난달에 아파서 죽었어.” 난바라가 말했다.

열다섯 살이었다니까 개로 치자면 상당한 고령이야.

원래부터 지병이 있었는데 다리까지 다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바람에

더 악화된 끝에 죽은 모양이야.

그나저나 문제는 그 부상이야.

산책 중에 자전거와 접촉사고가 났다는 얘기인데,

산책을 시킨 사람이 그 알바생이었어.

제대로 주위를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피해자가 엄청 화를 내면서 그 알바생을 해고했다는 거야.”

그게 석 달 전쯤의 얘기야, 라고 난바라는 덧붙였다.

그 알바생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탐문수사를 돌던 친구들에게서 들어온 정보야.

근처에 사는 아주머니가 어제 점심때 후쿠마루 씨 집 안을 들여다보던 남자를 목격했어.

하지만 전혀 낯선 얼굴은 아니고 길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거야.”

혹시 방금 그 이야기에 나온 개 산책 담당 알바생?”

딩동댕.”

난바라는 굵직한 목소리로 어울리지도 않는 리듬을 입에 올리며 검지를 바짝 세웠다.

그러고는 책상에서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유족에게서 어떤 인물인지 얘기를 듣고 우리 쪽에서 검색해봤어. 바로 이 녀석이야.”

사진은 운전면허증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추출한 모양이었다. 찍힌 사람은 젊은 남자였다.

이십대 초반인가. 턱이 날렵하고 눈꼬리는 조금 처졌다.

뭐가 불만인지 무뚝뚝한 표정으로 카메라로 바라보고 있었다.

침입경로에 대한 얘기는 들었나?” 난바라가 물었다.

시라이의 말에 의하면 현관으로 드나든 것으로 보인다고 하던데요.”

난바라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면서 쯧쯧쯧 하고 혀를 찼다.

감식반의 당초 견해는 그랬지. 근데 사정이 바뀌었어.

유족에게서 중요한 정보 제공이 있었거든. 범인은 부엌문을 통해 침입했을 가능성이 있어.”

부엌문? 부인이 집을 나갈 때 열쇠 채우는 것을 잊어버렸던가요?”

아니, 틀림없이 문은 잠근 모양이야. 하지만 여벌열쇠가 있었어.”

여벌열쇠?”

우편함 바닥에 작은 용기를 붙이고 거기에 부엌문의 여벌열쇠를 숨겨뒀어.

열쇠를 잃어버린 가족이 못 들어올 때를 대비해 넣어둔 것이래.

아까 감식반에 확인해보라고 했더니 틀림없이 열쇠가 들어 있다는 연락이 왔어.”

그 여벌열쇠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유족의 얘기로는 자기 가족만 알고 있다고 하는데…….”

난바라는 뭔가 다른 뜻이 있다는 듯이 말을 끊었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난바라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바견을 실외에서 기르고 마당에 개집도 만들어줬는데 날이 흐릴 때는

부엌문을 통해 실내로 데려오곤 했던 모양이야.

다리가 불편한 피해자가 산책 담당 알바생에게 여벌열쇠가 있는 곳을 알려줬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고스기는 새삼 얼굴 사진에 시선을 떨구었다.

이 알바생에 대해 유족은 어떤 식으로 얘기하고 있어요?”

그게, 가이메이대학 4학년이라는 것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더라고.

피해자가 직접 지인에게서 소개를 받은 모양인데

개 산책을 위해 이 알바생이 집에 드나든 시간이

마침 아들 부부가 부재중일 때라서 제대로 얘기를 해본 적도 없다는 거야.”

흐음.”

이 정도만 들어봐도 충분하잖아? 당장 이 녀석을 찾아봐.”

그렇게 말하고 난바라는 메모 한 장을 내밀었다. 주소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것도 모두 면허증 데이터베이스에서 꺼내온 것일 터였다.

전화번호는 없습니까?”

아들 부부는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했어.

하지만 피해자는 알고 있었을 테니까 이제 곧 밝혀질 거야.

판명되는 대로 알려줄게. , 어서 가봐.”

 난바라는 두 사람을 쫓아내듯이 양쪽 손바닥을 내보이며 까딱까딱 까불었다.

그때였다. “어이, 난바라 계장!” 탁한 목소리가 입구에서 들려왔다.

누가 들어온 것인지는 굳이 얼굴을 확인해볼 것도 없이 알 수 있었다.

고스기가 돌아보자 형사과장 오와다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참이었다.

네모난 얼굴에 굵은 눈썹이 특징이어서 뒤에서는 주로 게다짝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그 집 인근의 방범카메라는 어떻게 됐어? 영상을 죄다 압수해오라고 얘기했잖아.”

지금 입수 중입니다!” 난바라가 직립부동의 자세로 대답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영상에서 뭔가 찾아낸 거 없어?”

아뇨, 영상 해석은 지금 시작하는 단계라서…….”

빨리빨리 해! 뭘 우물쭈물하고 있어?

어물거리다가 1과 쪽에서 성과를 가로채가면 어떡할 거야?

어떻게든 그자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범인 체포의 전망을 세워야 해. 알고 있지?”

, 물론 알고 있습니다.” 난바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오늘밤이 고비야, 오늘밤이! 우리 쪽 인원을 총동원해서라도 단서를 잡아.

약간 강제적인 수단쯤은 내가 다 커버해줄 테니까.”

,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시라이가 고스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 “가시죠.” 작은 소리로 말했다.

, 그게 좋을 것 같다.”

오와다가 난바라를 향해 꽥꽥 소리치는 것을 등 뒤로 들으며

고스기는 시라이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게다짝 과장, 대체 왜 저래? 유난히 길길이 뛰잖아. 평소보다 더하네.”

걸음을 옮기면서 고스기가 말했다.

서장이 본청 수사1과에 지원을 요청했다잖아요.”

역시 그렇군. 하긴 강도 살인사건에 범인이 오리무중이라면 당연히 지원을 요청해야지.”

근데 1과의 담당 팀이 어딘지를 들은 뒤부터

오와다 과장님 기분이 갑자기 험악해졌다는 거예요.

아까 언뜻 들었는데 7팀이 재청(在廳)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고스기는 발을 멈췄다. “7팀이? 진짜?”

재청이란, 즉각 수사에 투입될 수 있게 경시청에서 대기한다는 뜻이다.

수사본부가 설치될 때는 기본적으로 재청 중인 팀이 출동하게 된다.

그 팀이 출동하면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시라이가 물었다.

“7팀의 하나비시 팀장이 오와다 과장과 경찰학교 동기잖아.”

고스기는 목소리를 낮춰 속닥거렸다.

옛날부터 견원지간이라서 매사에 경쟁했던 모양이야.

둘 다 똑같이 경감 급이라도 한쪽은 본청이고 한쪽은 관할서야.

아무래도 차이가 나버렸다는 느낌은 부정할 수 없지.”

아하, 그렇군요.”

수사본부가 설치되면 아무래도 주역은 본청이 되잖아.

관할서는 준비와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동동거리는 잡무 담당이지.

오와다 과장으로서는 그러잖아도 굴욕적인 판에 실질적으로 지휘권을

잡는 사람이 천적 하나비시 팀장이라면 아마 속이 부글부글 끓을 거야.”

그래서 1과가 들이닥치기 전에 어떻게든 범인 체포 전망을 세우라는 거군요.”

“1과가 오게 되면 초동수사 기록은 물론이고 그 밖의 온갖 정보를 죄다 내놓아야 하니까.”

큼직한 박스를 품에 안은 서원 두 사람이 앞을 지나갔다.

각자 얼굴에서 이미 피곤한 빛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들 역시 수사본부 설치를 위한 준비에 차출됐을 터였다.

이 녀석이 범인이라면 일이 정말 수월할 텐데.”

고스기는 난바라에게서 받아온 메모를 들여다보았다.

주소는 미타카 시, 이름은 와키사카 다쓰미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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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2017-12-2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미미디어에서 히가시노 게이노작가님의 작품이 나왔네요 믿고보는 게이고작가님 기대합니다!!

이자 2017-12-20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지 모를 여성과 살인사건의 등장...흥미롭네요! 기대할게요!

필리아 2017-12-21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건 어떤 것을 봐야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으시는걸까, 하고 기대하고 찾아보게 되네요

전자책상가 2017-12-2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는, 이벤트로 처음 알게 된 작가입니다. 아무래도 라노벨을 읽다보면 1인칭 시점의 화자가 많은데, 이런 3인칭 시점의 글을 보니깐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1,2를 쭉 보는데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박동현 2017-12-22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의자 X의 헌신을 통해 알게된 작가님! 추리소설의 거장이라고 할 분이죠. 은은하면서도 탄탄한 구성, 흡입력 있는 스토리. 이번 눈보라 체이스는 스키장에서 펼쳐지는 추격전이라는데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고귀한 수영이 2017-12-23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연재도 정말 흥미진지하네요. 정말 빨리 책으로 만나보고 싶고 이렇게 연재로 읽는 것도 나름 재미가 남다르네요.

애니는재미있어 2017-12-24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건이 발생했네요.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요
 

마침 딱 좋을 만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리프트에서 내려서자마자 와키사카 다쓰미는 자리에 앉는 일 없이 뒷발의 바인딩을 장착했다.

그리고 그 길로 잽싸게 타고 내려갔다.

다른 사람이 준비를 끝내기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혼자 왔을 때의 큰 장점이다.

워밍업 걷기는 충분히 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평소에 다니던 지점으로 향하기로 했다.

원래는 레귤러 스탠스지만 간간이 스위치 스탠스로 바꿔가면서

정비를 마친 중급 정도의 코스를 내달렸다.

카빙을 즐기기에는 최적의 경사면인데도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의 모습은 많지 않았다.

그 앞에는 비압설(非壓雪)의 상급자 코스가 기다리고 있어서 눈이 내린 직후가 아니면

거의 전면이 울퉁불퉁한 비탈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다쓰미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쪽으로 내달린 것은 자기만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압설(壓雪) 부분을 지나가자 설면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적당히 부드러운 곳은 활주하면 상쾌할 만큼 재미있지만 그것도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어제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니까 이대로 가면 그 울퉁불퉁한 비탈길에 돌입하는 것뿐이다.

일부러 그런 곳에서 스노보드를 타겠다고 새벽같이 일어나

달랑 혼자 차를 운전해가며 여기까지 찾아온 게 아니다.

미리 점찍어둔 포인트가 점점 다가왔다. 다쓰미는 스노보드를 저어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남의 시선은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잔소리 많은 패트롤 아니라면 신경 쓸 필요 없지만 규칙을

위반하는 장면은 가능하면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경사지 왼편으로 숲이 펼쳐졌다. 그 앞쪽에는 빨간 로프가 가로막고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너머는 활주 금지구역이다.

그래도 다쓰미는 로프를 향해 속도를 올렸다.

목표 포인트를 발견했다. 그곳을 노리고 상체를 낮추며 한껏 머리를 숙였다.

무사히 로프 밑을 통과. 내달려온 힘을 이용해 멋지게 오르막을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아직 방심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것은 거기부터다.

좁은 간격으로 서있는 나무들을 피해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나치게 신중해져서 필요 이상으로 속도를 늦추는 것은 그야말로 금기사항이다.

장소에 따라서는 극단적으로 경사도가 낮아지는 곳이 있다.

숲 속은 비압설(非壓雪)이다.

보드가 눈에 파묻혀 옴짝달싹 못하게 되면 그건 정말 눈뜨고는 못 볼 처참한 꼴이다.

나무가 밀집한 구역을 무사히 빠져나오자 갑작스럽게 시야가 확 트였다.

발치에 멋들어진 파우더 존이 펼쳐져 있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최고의 비밀장소다.

다쓰미는 속도를 늦추는 일 없이 뛰어들었다.

풍성한 눈이 그의 스노보드를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그대로 중력에 몸을 맡기고 타고 내려간다.

마치 손오공의 근두운(觔斗雲)을 탄 듯한 부유감과 질주감이 있었다.

, , . 바람, 바람, 바람. 친구들과 함께였다면 틀림없이 포효를 내질렀을 것이다.

이러니 스노보드는 그만둘 수가 없다. 파우더 런은 그야말로 최고다.

하지만 천국의 시간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광대한 산 속이라도 적당한 경사도를 갖췄고

게다가 나무들이 밀집하지 않은 구역은 극히 일부분뿐이다.

그래서 다시 밀집한 나무 사이를 빠져나가야 한다.

단 이건 이것대로 긴장감이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기는 하지만.

저만치 앞쪽에서 사람이 보였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투톤 컬러 스키복에 검은색 헬멧.

스키 폴을 들지 않은 것을 보면 스노보더일 터였다. 몸매로 봐서는 여자인 것 같았다.

나무 사이에 멈춰 서서 뭔가 하고 있었다.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일까.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사고 같은 건 아니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셀카였다.

카메라를 들고 팔을 한껏 뻗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앵글로 찍히지 않는지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쓰미는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제가 찍어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넸다.

여성 스노보더가 다쓰미 쪽을 돌아보았다.

 

?”

다쓰미는 카메라로 찍는 포즈를 취하며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셔터 눌러드린다고요.”

, 부탁 좀 해도 될까요?”

약간 허스키하지만 젊음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좋아요, 어떤 식으로 찍어드리면 되죠?”

그러자 그녀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스노보드의 한쪽 발을 풀어놓은 상태,

이른바 원풋으로 다쓰미가 서있는 곳까지 올라왔다.

 

저 앞에 하트 모양으로 생긴 경치가 있는데, 보이세요?”

그렇게 말하며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저 먼 곳을 가리켰다.

하트 모양이라고요?”

저기 바로 앞에 큰 나무가 있는데 윗부분의 나뭇가지가 Y자로 크게 갈라졌죠?

그리고 그 너머에 산의 능선이 있어서 정확히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데.”

어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곧바로는 알지 못했지만 상하좌우로 시야를 이동시키는 사이에 문득 그 모양이 눈에 잡혔다.

하트의 아래 반절을 나뭇가지가, 위 반절을 능선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 진짜네. 재미있는데요? 이런 식으로도 보이는군요.”

그 하트 모양을 배경으로 저를 찍어보려고 했는데 잘 안 잡혀서요.”

알았어요. 찍어볼게요.”

다쓰미는 오른발의 바인딩을 풀고 카메라를 받아들었다.

고글을 쓴 채로는 액정화면이 잘 보이지 않아서 비니모자 위로 올렸다.

 

어디쯤에 서면 하트가 나올 것 같아요?” 여자가 물었다.

거기서 조금만 더 뒤로 물러서보세요. 몸 전체가 다 들어가는 게 좋아요?”

아뇨, 상반신만 나오면 되는데.” 여자가 천천히 뒤로 물러서면서 대답했다.

그럼 거기쯤에 서면 돼요. , 찍습니다. 치즈.”

여자가 오른손으로 V자를 만들었다. 고글과 페이스마스크 때문에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 안 나올지 모르니까 한 장 더.” 그렇게 말하고 다쓰미는 카메라를 다시 맞추려고 했다.

, 잠깐만요. 기왕이면 이렇게.” 여자는 고글을 헬멧 위로 올리고 페이스마스크를 벗었다.

다쓰미는 가슴이 덜컥했다.

커다란 눈은 적당히 눈 끝이 치켜 올라가 오만한 고양이를 떠올리게 했다.

갸름한 얼굴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턱이 가늘고 콧날은 높고 반듯했다.

그야말로 다쓰미가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너무 빤히 쳐다볼 수도 없어서 앵글을 정하고 셔터를 눌렀다.

고마워요. 다행이네요.”

여자가 원풋으로 다시 다쓰미가 있는 곳까지 올라왔다.

다쓰미는 카메라를 돌려주었다.

화면으로 사진을 확인한 그녀는

와아, 정확히 잡혔는데요?”라면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여기 자주 오세요?” 다쓰미가 물었다.

자주, 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 시즌에 몇 번 정도? 마음에 드는 스키장 중 하나예요.”

역시 그렇군요.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곳을 타고 내려갈 리가 없죠, 이런 비밀장소를.”

그녀는 카메라를 호주머니에 챙겨 넣더니 어깨를 으쓱 쳐들었다.

코스 밖의 구역을 달리는 게 금지사항인 줄은 알지만

아무래도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어서요. 나쁜 짓이죠?”

그렇게 치자면 저도 똑같은 죄를 졌죠.”

그래도 덕분에 좋은 사진을 찍었어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페이스마스크를 쓰고 고글을 다시 내렸다.

헬멧 옆에 별모양의 핑크색 스티커가 여러 개 붙어있는 게 눈에 띄었다.

 

혼자 오셨어요?”

조금 마음에 걸려서 다쓰미는 확인해보았다.

여성 스노보더는 뒤꿈치의 바인딩을 잠근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요? 나도 혼자 왔는데.”

혼자 타면 마음 편해서 좋죠?”

마치 다쓰미의 속셈을 꿰뚫어본 듯한 한 마디였다.

괜찮다면 함께 타시겠습니까, 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 그렇죠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주로 어디서 타세요?”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바꾸었다.

홈그라운드는 사토자와예요. 오늘 여기서 달려본 뒤에 다시 그쪽으로 돌아갈 예정이에요.”

, 사토자와 온천스키장?” 다쓰미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국 최대급의 스키장이다.

나는 아직 가본 적이 없지만 굉장히 넓고 설질(雪質)도 훌륭하다던데요.”

최고예요. 한 번 오세요.”

꼭 가봐야겠네요. 이번 시즌에 한참 더 타실 거죠?”

물론 그럴 생각이에요. 겨울철에는 이게 유일한 즐거움이니까.”

, 그렇다면 나하고 똑같네요.”

서로 간에 부상 없이 재미있게 타기로 하죠. , 그럼 또 어딘가에서.”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손을 흔들더니 활주를 시작했다.

다쓰미도 서둘러 바인딩을 장착하고 출발했다.

뒤를 따라가며 그녀의 활주 모습을 보고는 보통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밀집한 나무 사이를 눈보라를 일으키며 휙휙 빠져나간다.

그 자세가 화려하고 다이내믹했다.

마치 여자라고 얕잡아보지 말라고 일갈하는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가 벌어지고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윽고 정규 코스가 앞쪽에 보이기 시작했다.

다쓰미는 코스를 벗어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머리를 한껏 낮춰 로프 밑을 지나갔다.

곧바로 경사면 아래를 둘러봤지만 조금 전 그 여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면 아직 코스로 돌아오지 않고 또 다른 코스 밖 루트를 달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아쉽다,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거절당할 각오로 함께 타자고 말이라도 해볼걸.

이래저래 후회를 하면서 다시 타고 내려갔다.

그야말로 잠시잠깐 바라본 여자의 얼굴이 눈에 선하게 남아 있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돌아온 것은 오후 3시가 지난 무렵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스노보드와 부츠를 짐칸에 휙 넣었다.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다 운전석에 앉아서 마셨다.

지금부터 몇 시간 동안 도쿄를 향해 혼자서 운전해야 한다.

뺨을 탁탁 때리며 다시 한 번 기합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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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수영이 2017-12-23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진짜 대박이네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게이고 성님의 신작 눈보라 체이스라니!! 정말 대박 기대됩니다.

애니는재미있어 2017-12-2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기대되는 시작이네요!
 

◇ ◇ ◇ ◇ ◇

 

방으로 돌아와 스이를 재운 다음,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우선 어떻게든 해두고 싶은 것이 모험가 랭크다.

모험가 길드는 고기 확보를 위한 해체 작업 때문에 반드시 신세를 져야만 하므로

탈퇴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G랭크로는 등록 말소까지의 기간이 한 달밖에 안 되니까 말이지.

여행을 하며 느낀 건데, 여행을 하다 보면 한 달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 버린다.

그러니 모험가 길드의 랭크를 이 도시에 있는 동안에 올려둘까 한다.

모처럼 안정된 레온하르트 왕국에 왔으니, 이 나라 이곳저곳을 여행해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F랭크가 되면 기간이 3개월로 늘어난다고 하니 앞으로 여행을 할 때도

조금은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런고로 여기서 열심히 해서 F랭크를 만들어두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람베르트 씨와 피닉스 여러분과 아는 사이가 된 덕분에

의지할 수 있는 존재도 생겼으니까.

다만, 랭크를 올리려고 해도 지금껏 모험가를 메인으로 활동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랭크가 올라가는지를 잘 모르겠단 말씀.

그래서 내일 모험가 길드에 가서 물어볼 생각이다.

의뢰를 수행한 횟수 같은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은 틀림없을 테니, 의뢰도 받아볼까 싶다.

지금은 약초 채취 의뢰 같은 걸 차근차근 수행하며 노력할 수밖에 없겠네.

괜찮은 걸까? , 모험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닌데 말이지.

 

◇ ◇ ◇ ◇ ◇

 

아앗, 이런. 또 잊어버릴 뻔했다. 그거다. 여신(유감 여신)님께 공물을 바쳐야 한다.

잊어버렸다가 또 불평을 들을 뻔했네. 지금 바로 할 일을 하고 자자.

어디, 인터넷 슈퍼를 열고. 뭐가 좋으려나……

지난번에는 양과자뿐이었으니까 이번에는 화과자로 해볼까.

우선은, 콩떡이랑 딸기 찹쌀떡하고 만주로 할까.

, 밤이 통째로 들어간 만주도 있네. 이것도 하자.

그리고 경단 꼬치는 소스를 바른 거랑 단팥이랑 깨로 하고.

다음은 카스텔라랑, ! 화과자라면 도라야키를 또 해도 괜찮겠다.

도라야키는 전에도 바친 적이 있지만, 그 여신이라면 불만을 가질 리 없지.

,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갱을 통째로 하나 해야지. 좋아, 이 정도면 됐겠지.

여신님에게 바칠 상품들을 계산하고 종이 상자 제단에 화과자들을 올려두었다.

바람의 여신 닌릴 님, 공물을 받아주십시오. 신의 가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자마자 머릿속에서 여신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옷, 기다렸느니라! 더 늦어지면 신탁을 내리려 하던 참이었느니라!

저기, 지난번에 꽤 많이 줬잖아? 그거 벌써 다 먹은 거냐?

단것만 먹으면 살찐다고요. 신도 살이 찌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 이이이이 몸 같은 신이 살찔 리 없지 않느냐. 이 몸은 어, 언제나 아름다우니라.

저기, 왜 말을 더듬으십니까?

, 시시시시끄럽구나. 그 케이크니 푸딩이니 하는 게 너무 맛있는 탓에

사흘 만에 다 먹어버리거나 하지는 않았느니라.

여신님은 정말 유감스런 사람(?)이로군요. 스스로 까발리고 있잖아. 글렀잖아.

살찔 리 없다느니, 아름답다느니 하는데, 완전 의심스럽다.

말을 더듬는 걸 보면, 신도 과식하면 살찌는 모양이다.

그보다, 사흘 만에 그 양을 다 먹었다면 확실하게 살찌겠지.

크으으으읏, 그 이야기는 끝이니라. 그런 것보다도, 이번에는 어떤 단것을 준비했느냐?

, 목소리만 들려서 다행이야. 고작 단 음식에 대체 얼마나 흥분하고 계신 겁니까요.

여신님이 눈앞에 있었다면 몸을 쑥 내밀면서 달려들듯이 물어봤을 것 같잖아.

뭐라? 고작 단 음식이라고? 이 어리석은 놈! 단맛이야말로 지고이니라.

, 오오,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그보다 전부터 생각한 건데, 완전히 내 생각 읽고 있는 거지?

그러지 말라고. 이거, 명백한 사생활 침해니까.

, 뭐가 사생활 침해냐? 이 몸은 신이니라. 신 앞에 사생활 따위가 있을 리 없지 않느냐.

보려고 하면 네 생활 하나하나를 전부 볼 수 있고, 네가 생각하는 것도 손에 쥐듯 알 수 있느니라. 이 몸은 신이니 말이다. 대단하지 않느냐? 그러니 이 몸을 공경하도록 하거라.

……그러하십니까. 대단하지 않느냐, 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구나. 정말로 유감스런 여신님이다. 가능한 한 생각을 읽는 건 그만둬 주십시오. 그리고 제 생활을 전부 지켜보는 것도요.

내 생활을 지켜본들 재미도 없을 거라고. 게다가 공경하라고? 그런 무리한 말 하지 말아주세요. 자신의 언동을 좀 생각해보시라고요. 단걸 엄청 좋아하는 유감스런 여신님.

크으으으읏, 이 몸은 유감스럽지 않느니라.

, 예이예이. 그러시군요.

귀찮아질 것 같으니 화제를 바꾸자.

저기, 이번에는 화과자로 준비해봤습니다. 제가 살던 나라의 과자입니다.

닌릴 님이 바라셨던 단팥빵과 도라야키 안에 들어 있던

검고 단 단팥이 잔뜩 들어간 과자입니다.”

뭣이라?! 단팥이 들어간 과자인 게냐?

그건 질리지 않는 부드러운 단맛이 참을 수 없이 맛있었느니라.

역시 유감스런 여신님. 쉽군그래.

보시는 대로, 도라야키도 또 준비해두었습니다.”

오오, 도라야키를 준비했느냐. 잘했구나.

도라야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그럼 받아주십시오.”

알았느니라. 바로 신계로 전송이니라.

종이 상자 제단에 있던 화과자가 엷은 빛에 감싸이며 사라져간다.

지금까지는 그다지 자세히 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느낌으로 전송되는 거구나.

우오옷, 이번에도 잔뜩 있느니라. 아주 잘했느니라.

그러니까, 우오옷이 뭐냐고 우오옷이. 정말 진짜로 유감스런 여신님이네.

그럼 바로 도라야키를 먹겠느니라. 우물우물…… 우홋── 도랴아키는 여전히 맛있느니라!

뭐야, 이번에는 우홋이냐. 하아, 딴죽 거는 건 그만두자. 어차피 유감스런 여신님이니까.

그럼 유감스런 여신님은 내버려 두고, 나는 이제 슬슬 자야겠다.

유감스런 여신님이랑은 더 이상 어울려줄 수 없으니,

서둘러 스이가 있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자. 하아~ 역시 날 치유해주는 건 스이뿐이야.

 

◇ ◇ ◇ ◇ ◇

 

어제에 이어 페르와 스이를 데리고 모험가 길드에 왔다.

아침 시간대는 붐비리라 생각하고 그 시간을 피해서 온 덕분에 금방 접수대에 도달했다.

저기, 조금 문의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 무슨 일이신가요?”

저기 말이죠, 저는 지금 G랭크인데, F랭크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이제 와서? 라는 느낌으로 한순간 놀란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접수창구의 직원 아가씨는 설명을 제대로 해주었다.

랭크를 올리기 위해서는 퀘스트를 성공시켜서 일정 포인트를 획득할 필요가 있으며,

거기에 C랭크보다 위의 랭크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시험도 치러야 한다고 한다.

C랭크 이상이 될 생각은 없으니 시험에 관한 건 괜찮겠지.

G랭크에서 F랭크로 올라가기 위해서 필요한 포인트는 100포인트지만,

G랭크가 받을 수 있는 의뢰는 대부분 1포인트나 2포인트, 많아 봐야 3포인트라고 한다.

G랭크는 모험가가 될 때까지의 훈련 기간에 해당하며,

그 사이에 모험가의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는 모양이다.

모험가에 맞지 않는 자는 자연스레 탈락하고,

모험가를 생업으로 삼으려는 자는 그 기간에 다양한 것을 배워간다.

그런 이유도 있어 G에서 F로 올라갈 때 필요한 포인트는 높게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과연, 그렇군. 그런 의미가 있었던 건가. 모험가로 등록할 때 그런 건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말이지. , 모험가를 생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지만,

재등록하기도 했고 F랭크로는 올려두고 싶으니까 열심히 해봐야지.

, G랭크에서 F랭크로 올라가는 데는 빠른 경우 3개월, 보통은 반년 정도 걸립니다.

무코다 님도 열심히 해주세요.”

뭐어? , 그렇게나 걸리는 거야? 모험가를 얕봤는지도 모르겠어…….

그보다, 빨라도 3개월이라니, 나는 더 걸릴 게 틀림없잖아?

이 도시에 장기 체재 결정이네. G랭크 등록 말소 기간이 1개월인 데다,

F랭크로 올라갈 때까지도 꽤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G랭크 모험가는 멀리 나가는 의뢰 같은 건 받을 여유가 없겠는데?

그 부분을 접수창구 직원에게 물으니 웃는다.

애초에 G랭크에게 멀리 나가야 하는 의뢰 같은 건 들어오지 않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은 G랭크 모험가가 F랭크로 올라가는 것을 내팽개치고

멀리 나가는 일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모험가 길드에 맨 처음 등록한 도시에서 F랭크로 올라갈 때까지

의뢰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보통이란다.

나 등록했을 때 딱 한 번 약초 채취를 하고 바로 여행을 떠났었다고.

안 되는 거였잖아~.

어제 접수창구의 아가씨가 기간이 제일 짧다 보니 종종 그런 분들이 계시답니다라고

말해줬지만, 마음을 써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들은 이야기로는,

모험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은

F랭크로 올라갈 수 있게 의뢰를 수행하며 포인트를 모으는 것이 보통인 모양이니까.

하아, 뭔가 모르는 것투성이네. 모험가 길드에는 신세를 져야만 하니,

이건 열심히 할 수밖에. 가자, F랭크로.

 

◇ ◇ ◇ ◇ ◇

 

바로 의뢰를 받기 위해 게시판을 살펴보았다.

접수창구 직원의 말대로 G랭크가 받을 수 있는 의뢰는 한정되어 있네.

의뢰는 도시 안에서 하는 잡무가 많았다.

의뢰서의 오른쪽 아래에 포인트가 쓰여 있다고 했었지…… , 있다.

잡무 의뢰로 획득 가능한 포인트는 전부 1포인트로군.

그 외에 G랭크가 할 수 있는 건 약초 채취다.

이게 2포인트. G랭크에 토벌 종류의 의뢰는 거의 없지만 유일하게 고블린 토벌 의뢰만은 있었다. 이게 3포인트다. 으음, 미묘하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약초 채취가 제일 나을 것 같은데?

이걸로 하자.

약초 채취 의뢰서에 손을 대려 했을 때 페르가 염화로 말을 걸어왔다.

고블린으로 해라.

? 싫어. 그보다, 페르는 인간의 문자도 읽을 수 있는 거야?

이 몸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이 몸에게

인간의 문자를 읽는 것 따위는 별것 아니다.

예이예이, 그러십니까. 그래도 고블린은 각하.

약초 채취 의뢰서에 다시 손을 대자 그러니까 고블린으로 하라고 했다라며

페르에게서 염화가 날아왔다.

그러니까 싫다고. 약초 채취 의뢰가 좋다고.

자네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포인트라는 게 필요한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포인트가 제일 높은 고블린으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니, 여기는 안전제일(차근차근)로 포인트를 벌어나가기로 하겠어.

무슨 말이냐. 그래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바다에 갈 수 없지 않느냐.

? 언제부터 바다를 향해 가는 게 목표가 된 건데?

바다라니? 바다에 간다니? 나 그런 말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내가 가기로 정했다. 생각했더니 시 서펜트나 크라켄이 먹고 싶어졌다.

뭐여 그게.

그러니 자네는 서둘러 F랭크라는 게 되어야만 한다.

그런 말을 한들 말이지. 고블린에 관해서는 안 좋은 추억이 있다고. 어느 분 덕분에.

스이,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산탄을 쏘며 싸우고 싶지 않느냐?

페르의 염화에 스이가 가방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싸우는 거야? 스이 퓻퓻 쏘고 싶어.

이것 봐라. 스이도 이렇게 말하지 않느냐.

크으으, 스이를 내세우다니.

스이, 퓻퓻 쏘는 거 말고 약초, 여러 가지 약의 재료가 되는 풀을 찾으러 가자.

우으, 스이 아픈 거 낫는 약 스스로 만들 수 있으니까, 퓻퓻 하고 쏘는 쪽이 좋아.

크읏, 그것도 그렇구나.

스이도 이렇게 말하니, 이번에는 고블린 토벌 의뢰를 받아라.

고블린? 고블린이면 초록인 거? 스이, 고블린한테 퓻퓻 해서 해치울 거야.

, 스이?

자네, 그만 포기해라.

크으으으으으……. , 졌다. 즐겁게 퓻퓻 해서 해치울 거야라고 말하는 스이에게

안 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나는 고블린 토벌 의뢰서를 게시판에서 떼어내 접수창구로 가져갔다.

 

◇ ◇ ◇ ◇ ◇

 

고블린 토벌 의뢰를 수락한 우리는 도시 동쪽 숲으로 왔다.

접수창구의 아가씨에게 최근 동쪽 숲에 고블린이 자주 출몰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고블린×5로 의뢰 달성이다. 보수는 은화 세 닢이며, 포인트는 3포인트 들어온다.

냉큼 고블린을 사냥해서 마을로 돌아가자. , 그게 좋겠다.

숲속을 걷고 있다 보니 바로 고블린 발견. 세 마리 있군.

주인, 스이가 퓻퓻 해도 돼?

되고말고.”

, , .

고블린은 스이의 산탄을 맞고 푹 쓰러졌다.

쓰러진 고블린은 세 마리 모두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

변함없이 대단한 위력이네.

잘했어, 스이. 고블린을 해치운 증거로 귀를 가져가야만 하니까,

머리에 맞추면 안 돼. 알았지? 지금처럼 배 근처에 맞춰야 해.”

알았어.

그렇다. 고블린을 토벌한 증거로 오른쪽 귀를 잘라 가져가야만 하는 것이다.

으으, 하기 싫어. 하지만, 그런 말을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니까…….

나이프를 꺼내 과감하게 잘랐다.

잘라낸 오른쪽 귀는 여기 오는 도중에 잡화점에서 산 포대 안에 넣었다.

, 기분 나빠.

기분을 전환하고 다음 사냥감을 찾으러 가자. 다시 고블린을 찾아 숲속을 뒤지고 다녔다.

어이, 저기에 다섯 마리가 있다.

그 말을 듣고 페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있었다.

스이가 해도 돼?

기다려라, 스이. 이번엔 자네가 해보아라.

예이예이. 여기는 숲속이니까 파이어 볼보다 스톤 배럿을 써야겠지?

좋아, 정신을 집중해서.

스톤 배럿.”

돌멩이(스톤 배럿)가 날아가 고블린에게 세게 부딪쳤다. 두 마리가 털썩 쓰러졌다.

남은 세 마리는 그다지 대미지를 받지 않았는지 그갸그갸악하는 외침과 함께

곤봉을 휘두르면서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스톤 배럿, 스톤 배럿, 스톤 배럿.”

이쪽을 향해 오던 고블린들이 풀썩 쓰러졌다. 후우~ 겨우 쓰러뜨렸다.

스톤 배럿은 세 번 정도 동시에 쏘지 않으면 공격에 틈이 생기는구나.

주의하자. 숨이 끊어진 고블린의 오른쪽 귀를 엉거주춤한 자세로 잘라냈다.

이걸로 여덟 마리인가. 의뢰는 어찌어찌 완수한 모양이다.

의뢰 달성을 위해 필요한 수는 다 채웠으니까, 그만 돌아가자…… 페르?”

페르에게 말을 걸었지만, 페르는 대답하지 않은 채 지면에 코끝을 대고 킁킁 냄새를 맡더니

멀리를 응시했다.

왜 그래?”

이 앞에 고블린 집락이 있다.

? 집락?”

간다.

간다, 가 아니거든. 안 갈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고블린을 사냥하면 포인트라는 것이 모인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집락에 가서 고블린을 모조리 사냥하면 포인트라는 것도 잔뜩 쌓일 테지.

그야 그렇지만 고블린, 아니, 특히 고블린 집락에는 엄청나게 안 좋은 기억이 있단 말이다.

스이, 아직 더 싸우고 싶지 않느냐?

, 스이 더 더 퓻퓻 쏘고 싶어!

크으으, 이 자식 또다시 스이를 내세우는 거냐.

저기, 스이. 이제 충분하니까 마을로 돌아가자.”

에이, 싫어. 스이 더 퓻퓻 쏘고 싶어. 주인, 제발.

스이여, 너는 어째서 그렇게 전투를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이냐?

평소에는 귀엽게 푸들푸들 떨고 뿅뿅 뛰어다니며 나의 위안이 되어주면서.

그렇다고 한다.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어서 내 등에 타라.

크읏, 또 졌다.

퓻퓻 할 수 있어? 만세!

스이는 내 주변을 뿅뿅 뛰어다니며 기뻐하고 있다.

그리고 내 가슴으로 뛰어올라 주인 고마워 정말 좋아라며 푸들푸들 떨었다.

크으, 스이 귀여워. 정말이지 전투를 좋아하든 어떻든 상관없어. 스이의 귀여움은 최강이라고.

어이, 서둘러라.

예이예이. 모처럼 스이의 귀여움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스이를 가방 안에 들어가게 한 다음, 나는 페르의 등에 올라탔다.

 

◇ ◇ ◇ ◇ ◇

 

고블린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며 집락을 살펴보니, 당연하게도 고블린이 우글우글 있었다.

어떡하지?”

어떻게라니, 뭘 말이냐?

아니, 그러니까 이제 고블린 집락을 어떻게 공격할 생각이냔 말이야.”

그야 전과 같은 방법인 게 당연하지 않느냐.

전과 같은 방법이라니, 그냥 덤벼들라는 거냐? 아니 아니 아니, 뭔가 작전 같은 걸 말이지.

멍청하게 있지 마라. 간다.

그렇게 말하자마자, 페르가 크아────하고 포효했다. 역시 그렇게 나가는 거냐고.

페르의 포효에 고블린들이 일제히 이쪽을 보았다.

그리고 곤봉이나 검이나 도끼를 든 수많은 고블린이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평소처럼 너희 주변에는 결계를 펼쳐두었다. 이 몸은 상위 고블린을 사냥하러 갈 테니,

피라미들은 자네와 스이 둘이서 처리해라.

그렇게 말한 페르는 시원스레 달려갔다. 또 이렇게 되는 거냐아──────.

우와아, 초록이 잔뜩 있어! 주인, 퓻퓻 쏴도 돼?

스이가 가방에서 기어 나왔다. 그래, 전과는 다르게 스이가 있었지.

되고말고. 잔뜩 퓻퓻 해서, 여기 있는 초록인 것들을 나랑 스이 둘이서 전부 해치우는 거야.”

스이랑 주인 둘이서 해치우는 거야?

그래. 나랑 스이 둘이서 여기 있는 걸 전부 없애는 거야. 할 수 있겠어?”

, 할 수 있어. 스이, 열심히 할게.

그럼, 가자!”

.

그 다음은 필사적이었다고. 아무튼 내가 쓸 수 있는 마법인 파이어 볼과 스톤 배럿을 쏴댔다.

스이도 종횡무진하며 산탄을 날렸다. 명중률이 엄청나서, 노린 사냥감에 백발백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한테 날아오는 건 아닌지 움찔움찔 했다.

그도 그럴 게, 위력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고,

스이는 산탄을 적에게만 명중시켰다.

솜씨도 좋지. 계속해서 고블린에게 산탄을 맞추어 쓰러뜨린다.

나도 스이에게 지지 않도록 파이어 볼과 스톤 배럿을 쏴댔다고.

그런 느낌으로 전투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고 끝이 났다.

하아, 지쳤다. 겨우 끝난 건가.”

만세! 주인, 전부 해치웠어.

스이가 뿅뿅 뛰며 기뻐했다.

이번에는 정신을 잃지 않았지만 나는 꽤 지친 상태였다.

반면 스이는 힘이 넘친다. 스이의 전력은 상당한 것이었고,

여기에 있는 고블린의 80퍼센트는 스이가 사냥한 것이었다.

새삼 생각한 건데, 스이 강하구나. 주변을 살펴보니………… 사체가 산더미.

그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주변 전체가 고블린의 사체로 채워져 있다.

겨우 끝냈나.

페르가 어슬렁어슬렁 모습을 드러냈다.

페르 쪽은 괜찮았어?”

이 몸 쪽은 아까 전에 끝났다.

고블린 킹과 고블린 제너럴, 고블린 메이지에 고블린 솔저가 있었다.

예에, 그러십니까. 고블린 킹이 있었구나. , 이 정도 집락이라면 당연히 있겠지.

눈앞에 있는 것은 200 이상은 될 터인 고블린의 사체.

하아, 귀 자르는 시간이 더 걸리겠네.”

귀를 잘라내는 건 자네밖에 할 수 없으니 어서 해라.

예이예이, 알겠습니다. 그 후로는 묵묵히 고블린의 오른쪽 귀를 잘라냈다.

스이의 산탄에 맞아 좀비 영화의 좀비도 새파랗게 질릴 법한 모습이 된 고블린도 있었지만,

그곳은 보지 않도록 하면서 오른쪽 귀를 자르는 데 집중했다.

마음을 무()로 만든다는 건 바로 이런 뜻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세 시간 가까이 걸려서 겨우 오른쪽 귀 잘라내기가 전부 끝났다. 세어보니 227개였다.

무시무시한 숫자네. 그러고 보니…….

저기, 페르. 고블린 킹이나 다른 상위종은 마석을 갖고 있지 않았어?”

지난번에는 마지막에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는데,

킹 정도라면 갖고 있을 것 같기도 하거든?

고블린 킹 말이냐? 작지만 있었다.

마석, 있구나. 좋아, 고블린 킹은 아까우니까 가지고 가자.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가져가 볼까? 나는 페르가 쓰러뜨린 고블린 킹×1, 고블린 제너럴×3, 고블린 메이지×2,

고블린 솔저×7을 아이템 박스에 수납했다.

돌아갈까 하다가 주변을 보고 문득 생각했다.

페르, 이 고블린 사체 그대로 둬도 괜찮을까?”

뭐가 말이냐?

아니, 이렇게나 많으면 위생적으로도 안 좋을 테고, 마물이 몰려들지 않을까 해서.”

고블린 사체를 먹으러 오는 마물은 있을 테지. 그게 자연의 섭리다.

그건 그렇지만, 이만큼이나 있으면 몰려드는 마물도 엄청나지 않을까?

그중에 강한 마물이 있으면 성가신 일이 될지도 몰라. 여기는 도시와도 가까우니까.”

그 말을 듣고 보니 분명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태우는 편이 좋겠지.

태운다고 해도 말이지, 이렇게나 많아서는…….

게다가 숲속이니까 삼림 화재가 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 스이가 있잖아. 스이의 산으로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스이, 이 초록 놈들을 평소의 퓻퓻 하는 걸로 전부 녹여줄 수 있을까?”

, 있어. 이 초록 전부 녹여버려도 돼?

전부 하면 돼. 부탁해도 될까?”

알았어. 하지만, 조금 기다려줘.

그렇게 말한 스이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 , 스이?!

부들부들 떨던 스이가 갑자기 커졌다. 옆으로 2미터 반, 위로 1미터 반 정도는 될 것 같다.

페르보다도 살짝 클지 모르겠다.

스이는 진화하고 있다라는 페르의 말에 스이를 감정해보았다.

 

이름스이

나이1개월

종족빅 슬라임

레벨2

체력684

마력679

공격력668

방어력674

민첩성682

스킬산탄(酸彈), 회복약 생성, 증식

 

…………스이, 어느 틈에 빅 슬라임이 된 거니? 빅 슬라임으로 진화한 데다 레벨 2가 되었잖아. 게다가 스테이터스 수치가 엄청나게 수직 상승했고, 스킬도 늘었어. 증식이라고 되어 있는데,

어떤 스킬이지? 스이가 커다래진 것도 이 증식이란 스킬 때문인가?

페르, 이 증식이란 스킬 본 적 있어?”

없다. 원래 슬라임이란 건 어느 일정 레벨을 넘으면 분열한다만, 그뿐이다.

, 페르도 모르는 건가.

스이, 진화해서 스이한테 증식이라는 새로운 스킬이 생긴 것 같은데,

그 커다래진 모습은 증식 스킬을 쓴 거니?”

잘 모르겠어. 그치만 스이 커졌다 작아졌다 할 수 있는 것 같아.

커졌다 작아졌다?”

저기 있지, 해볼 테니까 봐봐.

커다래진 스이는 그렇게 말하고서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스이에게서 작은 슬라임이 분열해 나오더니, 스이가 원래 크기로 돌아갔다.

모두들, 초록 녀석들을 녹이고 와.

분열되어 나온 작은 슬라임이 고블린 사체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사체 위에서 퐁 하고 파열하더니 액체가 흩날렸다.

흩날린 액체는 산인지, 그 산이 순식간에 고블린의 사체를 녹여갔다.

마지막에는 고블린의 뼈도 남지 않았다. 그 광경에 나도 페르도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페르, 이런 거 본 적 있어?”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 몸이지만, 본 적 없다.

스이, 그건 어떻게 된 거냐?

스이, 그 자그맣게 분열한 건 뭐야?”

우응, 그것도 스이야.

그것도 스이?”

그러니까, 커다래지고 싶다고 생각하면 스이의 몸은 커다래질 수 있지만,

아지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스이의 몸이 나눠져.

나눠진 건 잠깐 동안 스이랑 얘기할 수 있어. 시간이 지나면 얘기 못 하게 돼버려.

저기, 증식이란 스킬로 커질 수 있고, 그 증식된 부분은 분열시킬 수 있다는 건가?

그 분열되어 나온 부분은 단시간은 통신 가능하지만, 장시간은 할 수 없다. 흐음흐음.

그래서, 나뉘어 나온 부분은 어떻게 된 거야?”

그 점이 신경 쓰이거든.

그러니까, 스이는 여기 있으니까 나뉜 애들은 시간이 한참 지나면 없어져버려.

분열한 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건가. 분열체에는 수명이 있다는 거로군. 그것참,

뭔가 엄청난 스킬이네.

분열체에 수명이 있다고는 해도, 지금 상황으로 판단하기에 10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걸 생각하면, 자기 자신은 멀리 있으면서 분열체에게 공격을 시키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해지고, 기습 공격 같은 것도 손쉬워질 터다.

게다가 분열체에게 스이 특제 포션을 만들게 하면 생산성이 무척 높아지리라.

어쩐지, 스이가 점점 강해져가네…….”

그렇구나. 하지만 강해진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그야 그렇지만 말이지.

주인, 배고파.

, 그렇구나.

, 두 먹보 캐릭터가 슬슬 그 말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었어.

그럼, 여기서는 먹을 마음이 들지 않으니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식사하자.”

아무리 그래도 고블린 사체가 있던 곳에서 식사할 마음은 없다고.

그런고로 스이는 가방 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페르 등에 올라타 장소를 옮겼다.

조금 이동했을 때 이 부근이면 되겠어라고 페르에게 말을 걸었다.

좀 지쳤으니까, 바로 줄 수 있는 단과자빵이어도 괜찮을까?”

뭐든 좋으니 어서 내놓아라.

예이예이. 나는 인터넷 슈퍼에서 단과자빵을 구입했다.

늘 먹던 단팥빵과 잼 빵과 크림빵에 이번에는 메론 빵과 초코 소라 빵도 구입해보았다.

그리고 빵을 먹을 때 없어서는 안 될 캔 커피.

이건 처음 보는군.

페르가 눈썰미 좋게 메론 빵과 초코 소라 빵을 발견하고 말했다.

네네, 종류별로 다 줄 테니까 기다려줘.”

봉투를 열어 접시에 담고 페르와 스이에게 내주었다.

이거, 맛있어.

, 맛있군. 처음 먹어보는 것들도 제법 괜찮다.

스이도 단과자빵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페르도 멜론 빵과 초코 소라 빵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도 캔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단팥빵을 베어 물었다. , 맛있다. 지친 몸에 당분이 스며드는구나.

그건 그렇고, 고블린 토벌 의뢰가 어쩌다 고블린 집락 섬멸로 바뀌어버린 걸까.

하아~. 뭐 이걸로 100포인트 벌었으니 됐지만. 장기 체재를 각오했었는데,

하루 만에 끝나버렸다. 이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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