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토는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어?”
침대 위다.
걷어 찬 이불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전력질주를 한 직후처럼 호흡이 거칠어졌고,
고동이 리듬게임 EX 모드처럼 연달아 울리고 있었다.
둥글고 하얀 실링 라이트에 미세한 요철이 있는 하얀 벽지.
픽쳐 레일에 걸려 있는 《변웃고》 태피스트리,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책장과 나뭇결무늬 바닥.
커튼 틈새로 여름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약간 낡은 대형 에어컨이 소리를 내며 차가운 바람을 내뿜고 있다.
사이드 테이블에서 스마트폰을 들었다. 시간은 9시 18분, 편집자에게서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꿈, 인가.
진짜로 꿈이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그것은 반년 전에 일어났던 악몽 같은 사고였다.
결국 그 때는 30분 정도 뒤에 낯선 OS로 변한 PC를 사용해 원고를 메일로 보냈고――
담당 편집자가 인쇄소에서 엎드려 사과해준 덕분에.
무사히……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납득할 수 있는 작품이 발매일에 맞춰 서점에 나가게 되었다.
“아니, 여기…… 내 방……이지?”
유우토의 기억이 확실하다면 자기 방은 자료로 쓰는 책이 바닥에 가득 차 있고,
침대 머리맡과 발치까지 점령하고 있어서 겨울에 고양이가 그러는 것처럼 몸을 웅크리지 않으면 잘 수 없을 정도로 혼돈스러운 참상이었을 텐데.
자료는 책장 앞에 쌓여 있었다.
책상 주변에 굴러다니고 있었던 도시락이나 컵라면, 페트병과 영양 드링크 같은
수라장의 흔적들이 쓰레기봉투로 정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유우토는 갈아입은 기억도 없는데
이벤트 때 입었던 파카와 청바지 차림이 아니라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알겠나? 왓슨 군.
명탐정처럼 물어봤자 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유우토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미스터리의 범인, 아니, 유우토의 더러운 방을 정리해준 듯한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문이 열렸다.
“괜찮으신가요?! 엄청난 소리가…….”
“흐악?!”
침실로 들어온 것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마법소녀 카니버스터》에 나오는 아카기 카니야였다.
――‘환경오염의 원흉인 인류의 정화’를 내세우는 꽃게 세계 사람들로 인해 세계는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때 이세계에서 전해진 마법을 통해 소녀가 카니버스터로 변신한다! 환경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으며(여자 초등학생이 과격한 옷을 입고 활약하는) 진지한 사회파 작품이다. 아마도.
치마가 V자로 뚫려 있어서 속옷……이 아니라 마도 내장갑(마기 인아머)이 보였다. 머리에는 게의 집게발을 본딴 좌우 비대칭 리본을 묶고 있었다.
유우토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아직 꿈 속이었나…… 아니, 환각인가?”
밤을 너무 샜나.
카니야가 걱정스러운 듯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저기…… 엄청 큰 목소리가 들렸는데요, 괜찮으신가요?”
“환상에게까지 걱정을 끼칠 줄이야.”
“정말 괜찮으신가요? 땀이 많이 나요. 뭐 필요하신 거 있나요?”
“……그럼 ……물.”
“네, 선생님!”
――선생님?!
마법소녀 카니야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리가 없다. 아니, 부를 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그녀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다.
냉정하게 생각하니 꿈속은 아닌 것 같다. 아마 환각도 아니겠지.
다시 말해 침실로 들어온 소녀는 이른바 ‘코스어’였다.
코스튬 플레이어. 이 경우에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로 분장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녀가 물을 가져다주었다.
컵을 받아들고 단숨에 마셨다.
잠에서 덜 깼던 머리가 시원해지고 나서 잘 살펴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어제 이벤트(여름 코믹)에서 판매원을 해준 소녀였다.
서클을 돕는 건 처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해줬다는 건 기억하고 있다.
“저기…… 너는 분명…….”
“아, 노기 노노카예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본명은 몰랐지.”
“으아…… 그랬죠! ‘노노노’예요.”
“아, 그 이름은 들었는데.”
“네, CN(코스네임)이에요.”
CN이라는 것은 코스튬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PN(펜네임)이나 HN(핸들네임)인 모양이다.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해요. 어제 제대로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서…….”
“아니아니…… 내가 아마 제대로 듣지 않았을 거야. 멍하니 있었으니까.”
“이벤트 날은 정신이 없으니까요.”
“그렇기도 한데…… 잠을 안 자서.”
“일을 하셨군요.”
유우토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음~. 일 쪽 그림은 날짜가 바뀌기 전에 보냈는데.”
“잠이 안 왔나요?”
“요즘 사흘 정도 철야로 일 쪽 그림을 그려서……
끝난 순간에 우오옷, 내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신이 나버려서. 그럴 때가 있잖아.”
그녀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철야로 그림을 그렸는데도요?”
“결국 출발할 시간까지 그림을 그렸거든. 아, 그러고 보니 그대로 놔뒀던가?”
침대 옆에 있는 사이드 테이블에 두었던 은색 iPad Pro를 들었다. 지문 인증을 겸하고 있는 홈 버튼을 누르자 그림을 마친 채로 두었던 어플 화면이 떴다.
“카니버스터를 좀 그리고 있었어. 낙서긴 한데.”
노기가 들여다보고 소리를 질렀다.
“흐아~?! 이게 낙서인가요?! 책으로는 안 내세요?!”
“그야 뭐, 해상도도 낮으니까.”
“저는 엄청 갖고 싶어요! 선생님이 그린 카니야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요?!”
――연하 여자애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니 쑥스럽네.
“뭐, 마음 내키면 pixiv에 올릴지도 모르는 정도야.”
“꼭 올려주세요!”
이야기가 한참 엇나가 버렸다.
낙서보다는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이 있다.
“저기…… 노기 양.”
“선생님만 괜찮으시면 노노카라고 불러주세요.”
“아, 으.”
“‘노노노’라고 부르셔도 되지만요!”
그거 현실생활에서는 창피해. 발음도 힘들고.
동료 일러스트레이터의 펜네임 중에도 밖에서는 소리 내어 말하기 힘들 정도로 기괴한 것이 가끔 있다. 서로 본명으로 자기소개를 하진 않는다. 술을 마시는 자리 정도면 괜찮지만 주위에 일반인이 있는 곳에서 부를 때는 은근히 곤란하다.
유우토는 자기 본명을 가타가나로 표기한 것을 펜네임으로 쓰고 있다.
“그럼 노노카 양.”
“왜 그러시나요, 선생님!”
“내 눈에는 네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유가 뭐야?”
“하으으…….”
노노카가 얼굴을 화악 붉혔다.
‘얼굴을 붉히다’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그래픽 툴의 《채우기 도구》로 색을 넣은 것처럼 변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귀까지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어? 이거 울려는 거 아닌가?
유우토는 당황했다.
“미, 미안해! 뭔가 이유가 있는 거지?!”
“……네.”
“이벤트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갈아입었으니까.”
동인 이벤트 때 코스프레 차림으로 집에 가는 건 규칙 위반이다. 그녀도 다른 판매원들과 마찬가지로 옷을 갈아입었을 텐데.
생각나기 시작했다.
이벤트가 끝날 때쯤, 친구가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