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불교입문
채지충 지음 / 대현출판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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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의 만화화로 저명한 채지충은 중국 고전뿐 아니라 불교 관련 만화도 몇 권 낸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공드리고 소원성취하는' 기복불교가 아닌 제대로 된 불교를 알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연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이들을 위해 추천할 만한 책이다.

만화라고 하지만 이 책이 일정한 스토리를 갖고 있거나 한 것은 아니다. 초심자를 위한 경전 내지 근본불교의 핵심경전인 [아함경]을 기초로 하고 있는 이 책은 말 그대로 불교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해설해주고 있다.(형태로는 분명히 만화지만, 성격으로는 삽화에 가깝다. 리우스의 만화들과 비슷하다.) 실제로 페이지 하단마다에 각주처럼 '잡아함경' 본문이 첨가되어 있기도 하다.

무턱대고 빌고 믿는 것과 별로 상관 없는 원래의 불교, 사상이자 실천수행으로서의 불교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논리적이고 현대적인 방법으로 설명해주고 있으므로 문외한들도 전혀 낯설어하거나 거부감 갖지 않고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만화적 재미'에는 별 기대를 갖지 마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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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성 시문학시인선 14
알렌 긴스버그 / 시문학사 / 199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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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긴즈버그'라고 표기하는 이름을 '긴스버그'라고 표기한 통에(책 자체에 그렇게 표기되어있다), 그리고 'Howl'이라는 번역하기 막막한 제목 탓에('아우성'이라는 번역은 마음에 들지만) 이 책은 잘 검색되지도 않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이 바로 그 책이다. 50년대 비트닉스 문학의 양대 기념비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앨런 긴즈버그의 [Howl]이다.(나머지 하나인 잭 캐루악의 [On the Road]는 번역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번역되지 않을 것 같다. 거의 번역 불가능 판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Howl과 기타 시(詩)]라는 제목을 가진 긴즈버그의 첫 시집을 그대로 번역해낸 것은 아니고 그의 시선집이다. 위의 시집에서 표제작을 비롯한 8편, 후속작인 [긴즈버그 선집]과 [하얀 수의]에서 각각 21편과 15편이 선별 수록되어있다. 그 유명한 표제작(13페이지 분량)은 듣던 대로 현란하고 난해하지만 나머지들은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고 문지 계열의 80-90년대 한국시들과 많이 닮아있다고 느껴지는 정도다.

번역에는 불만이 적지 않다. 이 시들을 번역한 것은 몇 명의 재미교포 시인들인데, 원문을 잘 살렸는지는 둘째치고 한국어 표현 자체가 낡고 어색한 것이 곳곳에 보일 뿐 아니라 오자는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번역자들이 미국에 너무 오래 살아서 한국어가 서툴어진 것인지 출판사 직원들의 성의가 부족했던 것인지 분간이 어렵다. 그래도 김명희에 의한 [긴즈버그 선집] 중 21편 번역은 괜찮은데 나머지 대다수를 번역한 최연홍의 것들은 문제가 있다.(외국에 너무 오래 산 사람의 번역 역시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교훈은 얻을 수 있겠다.)

비트닉스 작가들의 작품은 이 시집 외에는 거의 아무 것도 번역되지 않고 있다. 유독 노먼 메일러라는 작가의 책만이 여러 가지 나와있지만 그것은 비트닉스 문학으로서가 아니라 저널리즘적 현실참여 문학으로서이다.(작가가 두 번에 걸쳐 퓰리쳐상을 받았다는 점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번역을 접어주고 이것이라도 먼저 보든지, 아니면 애초부터 원서를 구해보는 편이 나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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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 전6권 세트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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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의 책들이 얼마나 유명한지를 가늠할 수 있는 또하나의 사실: '호빗'이란 게 유럽 전설에 원래 등장하는 건지 궁금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한사전에서 'hobbit'을 찾아보았다. 뜻밖에도 항목이 있었는데, 설명이 이렇다. '영국의 작가 Tolkien의 작품에 나오는 가공의 난쟁이.' 내가 가지고 있는 영한사전이 89년판이니까 국내에선 [반지]고 톨킨이고 거의 알려져있지 않은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흔히들 [반지의 제왕]을 판타지의 걸작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내 생각엔 대하역사소설적인 성격도 상당히 강하다. 이를테면 [서유기](이거야말로 동양 판타지의 고전이자 정점이 아닐까)같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삼국지]같기도 한 것이다. 다만 후자의 측면은 바탕에 도저하게 깔려있어서 금방 드러나지를 않을 따름이다. 이런 면은 본 번역판의 4-6권에 나뉘어 실려있는 방대한 양의 부록(거의 한 권 분량이다)을 통해서, 나아가 [반지]의 전사(前史)랄 수 있는 [실마릴리온](제1기를 주로 다룬)까지를 통해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삼국지]나 심지어 호메로스의 서사시들과도 달리 [반지]는 실제 유럽의 역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예컨대 저자는 1권 서장에서 이야기의 배경(제3기 말엽)이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랜 옛날'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테면 초고대 문명의 시대가 되겠다. 제4기부터를 우리가 아는 실제의 고대 문명이라고 가정한다면 짧게 잡아도 5천여년 전까지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거의 아무도 이런 설정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소설의 사실성과 그것을 읽는 재미 혹은 보람이 또한 무슨 상관인가? 제갈공명의 호풍환우가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시비걸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심정으로 이 유럽식 대하소설을 읽어주면 될 것이다.

사실성의 빈 자리를 풍족하게 대신해주고 있는 것은 [서유기]의 재미와 모험이다. [서유기]가 갖가지 동양사상과 설화들을 자유자재로 가져다 써먹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일이 [반지]에서도 벌어진다. 요정족과 난쟁이족에서부터 마법사, 악마, 용, 영웅과 보검(나르실), 신통력을 지닌 보물들(팔란티르의 돌 등등), 상위계의 신적 존재들(발라르), 아틀란티스 신화를 연상시키는 가라앉은 옛 땅(누메노르)과 [니벨룽겐의 반지]를 연상시키는 반지까지, 그야말로 유럽의 신화, 전설, 민담, 설화를 집대성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반지]는 유럽, 만만치 않은 역사와 유산을 지닌 이 지역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평화로운 호빗들이 옹기종기 모여살고있는 촌구석 샤이어가 알고 보니 몇 천년 전에는 자유종족과 악의 세력 간의 처절한 격전장이었다든가, 스치듯 묘사되는 폐허더미가 실은 과거 한 왕조의 도읍이고 주인공은 그 후예였다든가 하는 설정은 뒷산 언덕에 1-2천년은 된 유적을 묵혀두고 사는 '구대륙 사람들'이 아니면 감히 떠올릴 수 없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같은 영어로 쓰여졌다는 이유만으로 '영미문학'이라는 분류가 통용되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톨킨과 긴즈버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공통점이 있단 말인가? 미국, 캐나다, 호주 정도만을 따로 모아 '영어권 신대륙 문학'으로 묶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여러 가지 점에서 [반지]는 동서양의 고전 대하소설들을 상기시킨다. 길이와 설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던져주는 교훈성의 폭과 깊이에 있어서도 그러하다.(보는 만큼 보인다는 점에서 또한 아마 그러할 것이다.) 이들과 달리 [반지]는 불과 50년 된 '현대문학'일 뿐이지만, 그리고 혹은 그래서 아직까지는 대중소설의 명작 정도로만 취급되고 있지만, 보다 긴 세월이 흐른 뒤에는 [오딧세이아], [신곡], 그리고 [파우스트]로 이어지는 유구한 유럽 대하문학의 적통을 잇는 작품으로 자리매김될 것이 틀림없다. 그 대하적 위용에 있어서나 판타지적 성격에 있어서나.

* 책과 관련된 여러 보충정보들을 모아놓은 글 : 이곳을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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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범우사상신서 3
에리히 프롬 지음. 방곤,최혁순 옮김 / 범우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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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포함하여 에리히 프롬의 몇몇 유명한 저서들은 '쉽게 쓰여졌다'는 이유로 오히려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인문학적 지식이 고작 전문기술의 하나인 것처럼 취급되는 사회풍토를 반영하는 것 같아 영 씁쓸하다. 쉬운 얘기도 어렵게 하고 한번에 하고 남을 얘기도 여러 번 나누어 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보탬이 된다고 여기는 지식 상인들이라면 당연히 프롬의 저서들을 외면하고만 싶을 것이다.

그만큼 프롬의 이 책은 깊고도 넓은 내용을 난해하지 않게 풀어쓴 역저이다. 여기저기의 인문/교양 추천도서 목록에 자주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우습게 여긴다면 곤란하다. 프롬은 평생에 걸친 연구와 고민의 결과를 이 한 권에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난히 읽어나갈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를 지니고 있지만, 사회철학을 공부한 독자일수록 페이지마다에서 여타 현대사상가들의 여느 주저 못지 않은 무게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읽기에 까다롭지 않으면서도 심오한 고전들이 얼마나 많은가.)

책이 처음 쓰여진 것이 1976년이고 약간의 수정을 거친 재판이 나온 것도 1978년이라는 사실(프롬은 1980년에 세상을 떠났다)은 이 책의 현재적 가치를 조금도 훼손하지 못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 모두에 대한 그의 고찰과 비판은 25년여의 시간 정도는 소화하고도 남을 만큼 발본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필 당시의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은 그대로 몰락의 예언이 되었고(예를 들어 제4장에서 프롬은 '러시아 혁명은 실패했다'고 단언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 여전히 서슬이 퍼렇기만 하다.

그러한 비판의 근거가 되는 것들은 과연 노대가답게 광범위하고도 깊이있다.(일부 소장학자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한두 가지 밑천을 두고두고 우려먹기' 식과는 정반대다.) 때로 그것은 현대의 정신분석학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불교나 기독교처럼 오래된 종교이기도 하다. 에크하르트, 맑스 등 유럽의 사상가들은 물론이고 필요에 따라서는 영국의 시인 테니슨이며 일본의 시인 바쇼까지도 동원된다. 비판의 지점도 다방면이어서 때로는 강의를 그대로 받아적는 데 급급한 학생들의 공부방식이, 또 때로는 전세계를 풍미하다 썰물처럼 퇴조해버렸던 히피이즘이 도마 위에 오른다. 이 거침없이 넓은 보폭이 그러나 정연한 체계와 논리에 따라 흐트러짐 없이 이어지는 모습은 고수의 무공을 보는 것 같은 쾌감마저 불러일으킨다.

현대사회와 현대인에 내리는 그의 진단결과는 '소유양식이 지배하는 삶'이다. 신좌파의 주요이론가 중 한 사람답게 자본주의 체제를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으되 현실 사회주의도 이 문제를 전혀 극복하지 못했다고 보아 함께 표적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해결책 역시 단순히 사회체제의 재편이 아닌, 삶의 양식 전반에 걸친 변화(특히 정신적인 면을 매우 중요시하는)로 파악한다. 그 방향을 일컬어 프롬은 '존재양식이 지배하는 삶'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프롬이 꿈꾸는 변화된 삶-사람-사회는 상당히 구체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제8장에서는 '새로운 인간'의 21가지 특성을, 제9장에서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8가지 과제를 마치 정당 강령처럼 정리해놓기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부차적인 과제 8개까지 제시하고 있다.(놀랍게도 그것들 중 대다수는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주요 쟁점이 되어온 것들이다. 소비자 운동, 참여 민주주의, 사회보장제도, 관료주의 타파, 가부장제 극복, 정보 민주주의 등.) 그리고는 말미에 가서 이 새로운 사회의 실현가능성 여부까지를 스스로 되짚어가는 태도에서는 학문적 엄밀함만이 아니라 필생의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는 노대가의 진심 어린 절박감마저 느껴진다.

적자생존식 무한경쟁을 골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그것에 반대하는 세력 간의 마찰이 전지구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지금, 프롬의 깊이있는 통찰은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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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사는 것도 제기랄 죽는 것도 제기랄
한대수 지음 / 아침이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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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몇 가지 사항을 서평 대신으로 써봅니다.

1. 개정증보판인 이 책은 초판이었던 [물 좀 주소 목 마르요](98년, 가서원, 절판)와는 표지나 장정, 가격 외에도 몇 가지 중요한 내용 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는 98-99년을 다룬 4부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초판의 4부에 해당하는 5부(여러 주제에 관한 견해들)는 일부 내용이 더해지고 일부 내용은 빼졌습니다. 또한 초판의 1, 2, 3부(출생부터 97년까지)가 개정증보판에서는 2, 1, 3부 순으로 재배치되어있기도 합니다.

2. 한대수씨는 이 책의 원고를 영어로 썼고 다른 분이 국역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일종의 번역서인 셈이지만,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수의 자서전들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한대수씨가 직접 쓴 책이라는 증거도 되겠군요.(영어 원고가 별도로 출간된 적은 지금까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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