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헌터 City Hunter 1 - 완전판
츠카사 호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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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농담이다. 색조도 곱게 바랜 추억을 더듬어 어릴 적의 명작만화를 다시 들추었더니 이건 그야말로 유치찬연의 수준이더라는 경우도 다반사임을 감안할 때, 투니버스의 애니판으로 다시 봐도 여전히 낄낄댈 수 있을 만큼 본작은 썩 양호한 수준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루팡 3세]를 떠올려도 큰 실례가 안될 만한 '잘 만들어진 상품'이다.(예술성은 다른 우물에서 찾으시도록.)

해적판으로 처음 소개될 당시의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것이었다. 거짓말 안보태고, 신권이 나오면 적어도 3명은 기다려야 간신히 차례가 돌아오곤 했다. 그냥 기다리기가 지루한 덕에 '이삭줍기'로 읽혀진 만화도 꽤 될 것이다. 방의표(당시 해적판의 주인공 이름)는 마흥식과 함께 남학생들의 장래희망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열광적 호응은 당시까지 성적 농담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만화나 영화를 대하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형편의 반증이었을 것이다. 요즘이야 히히덕거릴 만한 것들이 원산지를 막론하고 넘쳐나지만 그때의 텍스트 세상은 콘텍스트만큼이나 양극 아니면 음극이었다.([소나기]거나 '세운상가'거나.)

그런 엄숙한 이분법에 가위눌려 살던 남학교 앞 만화방에 운석처럼 떨어진 방의표가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켰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이런 비비꼬인 추억 탓에 요즘도 이 만화의 표지를 흘낏거리는 나의 표정은 회상과 신물이 묘하게 배합된 그 어떤 것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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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지마니까야 1
전재성 지음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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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쌍윳따 니까야'에서 이어지는 전재성 박사의 팔리어 '맛지마 니까야' 완역이다. 팔리어 '니까야'는 곧 한문경전의 '아함경'이고, 이는 다시 다섯 부(部)로 나뉜다.(한문경전에서는 네 부로 나뉘지만, 팔리어 경전은 한 부가 더 있다.) 그중 '쌍윳따'는 '상응부'라고 한역되는 부분으로서, '아함경'으로는 잡아함에 해당된다. '맛지마'는 '중부'로서 중아함에 해당된다. 기왕에 나머지도 소개하자면 '디가'=장부=장아함, '앙굿따라'=증지부=증일아함, '꾸다까'=소부이다.(소부가 바로 팔리어 경전에만 있는 나머지 한 부인데, 법구경, 숫타니파타, 본생담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총5권으로 완역된다니 우선 반갑기부터 하고, 앞으로도 나머지 부분들까지 마쳐져 결국 팔리어 대장경 중 경장에 해당하는 '니까야'가 수십권으로 모두 번역될 것을 생각하면 겸허해지기까지 한다. 이 실로 대단한 작업을 묵묵히 진행중인 역자에게 존경심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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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그림일기
오세영 지음 / 글논그림밭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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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으로 묶어 출간된 것은 90년대 후반의 일이지만, 수록된 단편들은 모두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것이다. 그나마 90년대 초반의 세 편은 월북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련의 작품들이며, 나머지는 모두 88년부터 90년 무렵에 발표된 것들이다.

그 당시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87년 시민항쟁이 있었고, 직선제 대통령(저간의 사정이야 어쨌거나)이 선출되었고, 한 마디로 민주화라는 것이 진행되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수많은 금서, 금지곡들이 해금되고 창작의 자유가 대폭 확대되었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서 만화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회비판적 창작물들이 쏟아져나왔던 것이다. 그 한 정점에 이 단편집의 수록작들이 있었다. 이른바 기념비적 작품이랄까.

하지만 21세기 초인 지금에 와서 보면 확실히 '기념비같은' 작품이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동시대적 생생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소설로 치면 마치 황석영의 [객지]나 조세희의 [난쏘공]이나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같은, 시로 치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나 신경림의 [농무]같은, 음악으로 치면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같은 정서로 고스란히 점철되어있다. 민중적이랄지 서민적이랄지, 내용에서도 형식에서도 리얼리즘 원칙을 모범생처럼 고수하고 있는 그 모습은 좀 답답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작품의 상당수가 20세기 초중반을 시대적 배경으로, 농촌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도 큰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낡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치면 명작이라고 불리는 것의 대다수가 같은 신세가 되어야 할 터이다. 세월을 뛰어넘어 호평을 받는 작품에는 항상 역사적 의의 이상의 것이 있기 마련이며 본작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내용뿐 아니라 그림과 구성 모두에서 구절구절 찾아볼 수 있는 '성실함'은 최대의 미덕이 아닐까 한다. 다만 작가의 기본시각 자체가 80년대식 사실주의의 갑옷을 단단히 두르고 있는 탓에서 기인하는 '답답함'은 아쉬운 대목이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 그 시대의 잔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독자의 정서가 진짜 원인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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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람시에게로
칼 보그 지음, 강문구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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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학자 칼 보그가 쓴 이 200쪽 남짓(역자의 보론격 논문을 제외하면)되는 책의 원서는 1976년에 간행되었다. 원제는 [Gramsci's Marxism]이다. 문자 그대로 그람시의 사상을 간략하게 개괄하고 있는 입문서이다. 20세기 초반 이후 이렇다할 좌파의 발전상을 보여주지 못했던 영어권 독자들에게 그람시는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무척 낯선 인물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그의 저작은 모두 이탈리아어로 쓰여있었고, 이탈리아어를 아는 영어권 독자들은 거의 없었다. 68년 학생운동을 거치며 신좌파가 전면에 부상하고, 그 여파의 덕택인지 72년에 영어판 [옥중수고 선집](우리 나라에 [그람시의 옥중수고 1,2](거름)로 번역되어 나온 것)이 발간되면서야 비로소 그람시 연구가 영어권에서도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연구성과에 기반하여 발간된 입문서가 이 책인 것이다.

따라서 그람시에 입문하고자 하는 모든 초보자들에게 괜찮은 안내자 구실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다시 그람시에게로'라는 제목에 현혹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건 그냥 입문서지 다시 뭘 하는 연구서가 아니다.) 평이하고 무난하게 서술되어있으며, 해석하는 관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아무런 사전준비도 없이 바로 [옥중수고]를 읽는다든가 하는 무모한 시도는 마실 것을 권한다. [옥중수고](Prison Notebooks)는 말 그대로 감옥에서 쓰여진 단편적인 연구노트들을 사후에 묶어낸 책이다. 당연히 체계적이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반드시 한두 권 이상의 입문서, 해설서를 통한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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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와 마르크스주의 철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동녘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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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92년에 초판이 나온 책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소의 소장 진보계 철학자들이 각각 한두 장씩을 맡은 공저이다. 총17장으로 되어있는 책의 8장까지는 '고전적 맑스주의', 즉 맑스, 엥겔스, 제2인터내셔널, 레닌까지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수도 없이 많은 책들이 나와있거니와 이 정도(약 150쪽)로 간단하게 개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300여쪽짜리 책 한 권으로 맑스 자신부터 20세기의 다양한 흐름까지 맑스주의 이론사 전반을 개괄하려 한 것은 입문서라고 해도 좀 과욕이 아니었나 싶다.(비록 20세기의 백가쟁명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한 용도도 있다고는 하지만.) 실천운동사까지 집어넣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관심을 둘 만한 부분은 그 다음, 9장부터 17장까지이다. 루카치, 그람시, 비판이론, 실존철학적 맑스주의, 알뛰세, 반헤겔적 맑스주의, 하버마스, 포스트 맑스주의, 분석적 맑스주의가 각각 한 장씩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들을 각기 20-30쪽 분량으로 개괄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워낙 다양한 입장, 다양한 흐름들이 있다 보니 초보자로서는 우선 이렇게라도 개괄을 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 쉽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의의를 가진다. 다만 맑스 자신에 대해서는 좀 더 상세한 책으로 우선 기초를 다진 후, 20세기 맑스주의로 들어가는 관문 내지 약도로 이 책의 후반부를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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